[답사] 남양주 묘적사(妙寂寺)의 팔각칠층석탑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82/9_cafe_2008_08_28_15_29_48b645d17206a)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의 묘적산 골짜기에는 '묘적사'라는 절이 있다.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서울-양평간 국도상의 '와부읍'(덕소) 쪽에서 올라가거나, 경춘국도방면의 '화도읍'(마석) 쪽을 통해 내려와도 무방하다. 이번에 나 같은 경우에는 춘천 쪽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회도로를 이용하는 기분으로 마석방면을 통해 이 절을 찾았다. 마석과 와부가 연결되는 지방도로의 중간쯤에 이 절로 들어가는 안내간판이 큼직하게 설치되어 있으므로 눈썰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곳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방도로에서 빠져나와 이 절로 올라가는 길은 아주 길지는 않으나 중간중간에 음식점들이 있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이 계곡의 풍경에 비춰보건대 여름철에는 제법 사람들로 붐비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절로 들어서면, 사진에서 보는 이러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건 다 모르겠고, 나는 이 팔각칠층석탑 이걸 보러 이곳에 온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85/1_cafe_2008_08_28_15_29_48b645d1a5fad)
▲ 이건 몇해전(아마도 2002년 9월쯤)에 촬영한 묘적사의 모습이다. 역시 계절이 틀린 탓인지 거의 동일한 사진구도인데도 훨씬 다른 느낌이다. 그때 석탑주변의 마당에 제법 많은 구멍이 뚫려있어서 뭔가 했더니 땅벌집이었다. 큼직한 벌이 윙윙거리며 나는데 집의 아이가 어릴 때라 혹시나 하여 조금은 겁이 나서 후딱 되돌아나온 기억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87/4_cafe_2008_08_28_15_29_48b645d1c2227)
▲ 여기서보는 팔각형 석탑은 사실 월정사의 팔각구층석탑 등에서 드물게 보듯이 그리 흔치 않은 양식의 탑이다. 물론 이곳과 가까운 남양주 수종사(양수리)에도 이와 매우 흡사한 팔각형 석탑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전국을 통틀어도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석탑에는 '향토유적 제1호'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향토유적이라고 하는 것은 시군 단위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사실상 비지정문화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상태가 썩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연히 이 석탑의 미술적 가치가 재평가되어 지정단위가 현저히 승격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83/7_cafe_2008_08_28_15_29_48b645d1eff8c)
▲ 법당앞 마당을 벗어나 동편으로 보면 옛날 활터였다는 공간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팔각형 석탑의 잔석(특히 상륜부 장식)이 남아 있다. 지금의 석탑과는 중복되는 부위라는 점에서 별도의 팔각형 석탑이 있었던 흔적인지, 아니면 기존의 팔각형 석탑을 수리교체한 흔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소중하게 관리해야할 유물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80/14_cafe_2008_08_28_15_29_48b645d241dcf)
▲ 상륜부 쪽의 장식을 보면 지금 남아 있는 석탑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84/13_cafe_2008_08_28_15_29_48b645d2dab4b)
▲ 이 석탑과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오가와 게이기치 조사 문화재자료>(1994)에 이 묘적사 석탑의 예전 모습을 담은 유리원판 자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대목이다. 사실 나 역시 이 사진자료를 보고 나서야 이 석탑의 존재를 알게되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확인해보고자 두어번 이곳까지 찾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오가와(小川敬吉) 조사자료는 이것 말고도 묘적사의 모습을 담은 유리원판자료가 여럿 남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목록으로만 파악할 수 있을 따름이지만 말이다. 참고 삼아 그 내역을 옮겨두면, 이러하다.
정리번호#02385-2 (사진) 묘적사 석등,
정리번호#04013 (야장) 묘적사,
정리번호#04014 (야장) 묘적사 배치도,
정리번호#04015 (사진) 묘적사 팔각다층석탑,
정리번호#04016 (야장) 묘적사 팔각다층석탑,
정리번호#04017 (야장) 묘적사 팔각다층석탑,
정리번호#04018 (사진) 묘적사 팔각다층석탑,
정리번호#04019 (사진) 묘적사 관음전 정면,
정리번호#04020 (사진) 묘적사 석탑,
정리번호#04021 (사진) 묘적사 석등
위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오가와의 것과 지금의 석탑은 윗부분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오가와가 촬영한 때에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 한번 넘어진 것을 억지로 복구해놓은 모양이란 것이 확연하게 보인다. 즉, 위쪽 부재의 체감률이 훨씬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는 '팔각칠층'으로 부르지만 원래는 '팔각구층'이었을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 보인다. 그리고 묘적사에 설치된 안내문안을 보면, 이 석탑은 "본래는 사원 앞에 위치해 있었으나 1971년 현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고 적혀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80/13_cafe_2008_08_28_15_29_48b645d29fa4d)
▲ 절에서 나오는 길에 입구에 놓여 있는 비석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대공덕주 영세기송비'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그 면면에 "보국 윤공덕영, 판서 홍공순형, 참판 이공달용, 주사 이후택종(?)"이라는 것이 보인다. 뒷면에는 자세히 판독할 수는 없으나, "佛紀 2958年 辛未"라 하였으니 1931년에 세워진 비석인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윤덕영(尹德榮)'이 누군지는 알만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친일귀족의 거두가 아니던가? 그네들의 시주로서 이 절은 명맥을 이어오고 있음은 또 어쩔 것인가?
(정리 : 2006.2.9, 이순우, http://cafe.daum.net/distor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