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우리에게 공통의 과거가 시작된 단초이자 인연이지.
나, 최 현용이다.
그동안 각자 개인적으로 아니면 알음알음으로 만나거나 소식들을 전하다이제는 이렇게 늦은 나이에( 맞나 ? )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게 되었군.
몇 번째의 만남이 이루어 지면서 서로 임의롭게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고 지난 얘기들을 웃으며 할 수 있게 된 걸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 지 모른다. 그리고 소식을 알 수 없거나 가끔은 어려운 친구의 얘기를 들을 때 우울해 지는 건 바로 우리가 한 동네 살았고, 같은 수원지의 물을 먹고 자랐으며 손잡고 중간놀이 시간에 퐄댄스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전국적으로 하루 20여분씩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건강 체조와 퐄댄스를 한 학교는 우리 밖에 없지 않았을까 ?
처음에는 daum에 들어와 회원등록을 하고 아무리 찾아도 우리 동문카페를 찾을 수도 없더라. 31회 선배들과 34회, 54회 등은 쉽게 찾았는 데 말야. 아마 우리 33회 동문회 카페는 이 카페를 만들고, 매번 모임때마다
수고를 아끼지 않는 홍숙희가 한글 띄워 쓰기에 너무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 ( 이 장면에서 박~수 )
지난 10월 26일 모임은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오랫만에 멀리서 찾아 준 소희와 재하 때문에 너무 너무 즐거웠다. 더우기 재하는 수많이 이사를 하면서도 ( 군인이기에 더욱 ) 졸업앨범을 간직하고 대구에서 공주까지 들고 온 걸보면 친구들이 너무 너무 보고 싶었다는 증거지. 너무 늦은 만남을 미안해 할 뿐이다.
혹시 졸업 앨범을 잃어 버린 사람은 얘기해 주기 바란다. 많이 복사해 놓았으니 보내 주지. 그리고 혹시 선생님들 근황이나 소식을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연락 해주고.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 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더욱 굳게 스스로 약속하곤 한다. " 좋은 친구들, 더욱 건강하고 열심히 살자 "고.
이제 이러한 공식적인 모임을 통해서라도 좀 더 많은 친구들 얼굴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탁할 것은 대한 민국의 남자들과 아들딸들은 부인내지 엄마가 어릴 적 옛 친구들을 찾는데 좀 더 협조적이길 바란다.
오는 연말 경에 서울에서는 한번 더 모일 작정이다. 그때는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겠지 ? 수능 시험도 끝났을 테니...
다음에는 좀더 재미있는 얘기를 쓰겠다고 약속하며 나는 그만 들어 간다.다들 건강하고, 연락들 자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