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발 전 기
(1) 종각 건립과 축복
현실에서 바쁘게 생활하다가도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게 된다.
그리하여 조철현 비오 주임신부는 우선 본당 부대 사업으로 종각 건립을 계획하고 설계를
착수하였다. 성당 옆에 5층 높이의 종각 건립을 계획하였고 교우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2개월 만에 6백만원의 거금이 모아졌다. 그리고 1978년 3월 1일 드디어 종각 기공식을 갖게 되었다.
신축공사는 예정대로 잘 진척되었고 그 동안 종 구입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구상하다가 살레시오 수녀원의 주선으로 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구입하였다.
처음 타종은 1978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아 종 축복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이후에 우리 본당의 종소리는 계림동, 산수동, 동명동, 풍향동 일대의 주민들에게 영신적 위안을 주었으며, 일상 생활의 안내를 하는 종소리로 역할을 하였고 주민들에게 성교회의 다정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높다란 종각은 가톨릭센터에서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광주의 대부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상징물이 되었다.
(2) 부대 건물 축복
교구의 사목방침인 신개발 지역의 성당 건립 계획에 따라 본당의 부지 일부를 매각하게 되었다. 1981년 6월 1일 전체 부지 2,400평 중 현재 본당 부지 1,340평을 제외한 나머지 부지를 매각하였다. 이에 따라서 1964년 3월에 임시성당으로 사용되었고, 이후에 유치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90평)과 초창기 사제관, 수녀원이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현재 대명맨션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식 건물로 신축된 사제관, 수녀원, 유치원, 사무실등이 동시에 신축되어 1981년 11월 1일에 축복되었다.
(3) 두암동 본당 분할
두암동 본당은 1983년 6월 10일 두암동 공소가 설치되어 신앙생활 및 선교를 하다가 교세 확장으로 인해 1984년 6월 24일 두암동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그에 따라 두암동 일부 신자들이 두암동 본당으로 분할되었으며 첫 주임신부로 골롬반 외방선교회 도 요셉 신부가 부임하였다.
(4) 산수동 본당 분할
산수동 본당은 계림동 본당, 지산동 본당, 두암동 본당 일부 신자들의 교적을 이관받아 현 산수동 본당으로 분할되었으며 1997년 2월 4일 초대 문병구 스테파노 주임신부에 의해 첫미사가 봉헌되었다.
5. 시 련 기
(1) 5.18 민주화 운동과 주임신부 옥고
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하여 조철현 비오 주임신부는 의욕적으로 사목 활동을 하였다. 그 결과 예비신자의 수가 계속 늘어나 20여 명 정도로 증가하였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1970년대에 접어들어 사회 정의와 평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1980년 5월 18일에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조치에 항의하는 대학생 시위가 시내 곳
곳에서 일어났고 폭력 진압에 따른 엄청난 유혈사태가 10일 동안 진행되면서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광주대교구 소속 남동본당 김성용 프란치스코 주임신부는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일 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하였고, 계림동 본당 조철현 비오 주임신부 역시 6개월간의 수감생활을 하였다.
계림동 교우들은 주임신부의 조속한 석방과 사태 마무리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하였다. 이때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하여 본당 교우인 전영진 아오스딩 형제가 고교 3학년 재학중 희생되었고 여러 교우들이 부상당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