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사무라이. 제목을 들으면 황혼의 갈대숲을 배경으로 서 있는 심각한 표정의 사나이가 떠오릅니다. 곱게 빗어서 묶었을 머리는 어느새 올이 풀려 봉두난발이 돼 있고, 관자놀이에서는 가는 핏줄기가 흘러 내립니다.
하지만 타는 듯한 석양을 향해 카타나를 겨눈 채 굳어 있는 사내의 발 아래에는 서너구의 시체가 팽개쳐져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 사내는 석양을 등지고 걷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장면을 떠올리고 이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백이면 백, 모두 실망을 금할 수가 없을 겁니다. 도대체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에서 이런 사무라이의 로망을 풍기는 인물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이 영화의 실상(?)은 이렇습니다.
막부 말기 일본의 한 시골 번의 하급 사무라이 이구치 세베(사나다 히로유키)는 아내가 폐결핵으로 죽은 뒤 연봉 50석(각종 빚을 제하면 30석)으로 노망든 어머니와 어린 두 딸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입니다. 부족한 살림을 메꾸기 위해 그는 해만 지면 칼퇴근을 해 집에서 곤충집을 만드는 부업까지 해야 하는 처지죠.
그를 가리켜 동료들은 '황혼의 세베(해질녘만 되면 칼퇴근해서 집에 가는 세베)'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친척 어른은 재혼을 종용하지만 속깊은 세베는 함부로 새로운 인연을 맺기를 꺼립니다. 그런 그의 앞에 부잣집으로 시집갔던 죽마고우 이이누마의 여동생 토모에(미야자와 리에)가 이혼녀가 되어 나타납니다. 남편의 주정과 폭력 때문에 이혼하고 돌아온 몸이죠.
토모에의 전남편 토다(오스기 렌)는 이이누마의 집에까지 나타나 행패를 부리고, 싸움을 말리던 세베는 공교롭게 이이누마 대신 토다와 결투를 벌이게 됩니다.
진짜 인생이라면 칼퇴근이나 하고 가난 때문에 새 장가도 못 가는 쫌팽이 이구치 세베가 명문거족의 이름난 칼잡이 토다에게 이길 리가 없지만 이건 영화 속 얘깁니다. 한심한 꼬락서니만 보여주던 세베는 이 순간 사나다 히로유키의 포스를 제대로 풍기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토모에의 사랑도 얻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로 인해 그의 인생은 다시 한번 꼬이게 됩니다.
일본 역사에서 막말(幕末)이라고 불리는 시기, 즉 3세기를 끌어온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천황이 유신을 통해 친정에 나설 때 까지의 격동기를 가리키는 사극들은 영화와 드라마를 합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최근 NHK에서는 이 시기를 다룬 사극들은 시청률에서 참패하는 반면 전국시대의 군웅들을 다룬 사극들은 대성공을 거두는 징크스 때문에 당분간은 이 시대를 극화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만들어 진 것만으로도 엄청난 양입니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을 들 수 있죠.
이 시기를 다루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것이 몰락한 하급 사무라이들의 삶입니다. 특히 '황혼의 사무라이'는 아사다 지로의 소설 '칼에 지다(壬生義士傳)'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바람의 검 신선조 (壬生義士傳, 2003)'와 너무나도 흡사한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황혼의 사무라이'의 주인공 이구치는 '바람의 검 신선조'의 주인공 요시무라와 거의 쌍둥이같은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구치가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교토로 달아나버렸다면 아마도 그대로 요시무라(아래 사진 오른쪽)가 됐을 겁니다.
제목인 '황혼의 사무라이'는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칼퇴근하는 세베'라는 뜻도 있지만 이미 사무라이라는 계급 자체가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을 말해주기도 하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소멸한 것은 메이지 유신 직후, 사이고 다카모리 를 주축으로 한 구세력이 유신 정부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인 서남전쟁 때라고 흔히 얘기합니다. 하지만 사무라이 계급의 추락은 19세기 후반의 새로운 사건이 아니었죠. 17세기초 도쿠가와 막부가 기나긴 전국시대를 종식시키면서 무사 계급은 대량 실업의 위기에 봉착합니다.
일본 사무라이 최후의 로망을 간직했던 인물, 사이고 다카모리.
비록 임진왜란을 통해 잠재 불만 세력이 상당수 사라진 뒤였지만, 통일시대의 무력이란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재정의 낭비와 반란의 가능성이라는 해악만 두드러진 존재일 뿐이니까요. 결국 17세기 이후 일본의 무사계급은 끝없는 추락의 길을 걷습니다.
사실 칼잡이들의 운명은 묘하게도 글쟁이들에게 동정을 사 왔습니다. 칼 한자루에 인생을 건 사내들이나, 펜 하나에 장래를 건 사내들이나 모두 비장해지기는 마찬가집니다. 특히나 평생을 연마한 검법이 알량한 총알 한방에 물거품이 되는 시대의 칼잡이들이 걸었던 길은 인터넷의 발달로 온갖 어중이 떠중이들이 죄다 검객 아니 기자라는 명패를 달고 설치는 시기의 글쟁이들이 가고 있는 길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더욱 더 이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결말을 여기서 말씀드릴 수는 없고, 대신 한번 보시라는 권유를 남깁니다. 글 머리에 나오는 착각을 하신 분만 아니라면 제법 볼만한 영화입니다.
올해 76세인 야마다 요지 감독은 세계 영화사에 남는 족적을 남긴 거장입니다.
족적이라면 칸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 그랑프리를 흔히 연상하지만 야마다 감독은 누구도 깨지 못할 기록을 갖고 있죠. 바로 '남자는 괴로워' 로 최다 연작 기록을 세운 겁니다.
최다 연작은 007 시리즈 아니냐구요? 지금까지 나온 007 시리즈는 '남자는 괴로워'의 절반도 안 됩니다. 이 시리즈는 심지어 같은 주인공과 같은 감독으로 무려 48편을 뽑아냈습니다. 아츠미 키요시는 구루마 토라지로(위 사진 왼쪽)라는 촌스러운 로맨티스트 역할을 통해 일본 국민 누구나 다 아는 캐릭터가 됐죠.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48편씩 만들어졌을 리가 없잖습니까. 너무 성공한 덕분에 아츠미는 41세때인 1969년 이 영화를 시작해 지난 1996년 68세로 사망하기 1년 전까지 무려 26년간 같은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사나다 히로유키는 톰 크루즈와의 공연으로 와타나베 켄과 함께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었죠. 이런 영화의 후줄근한 역할로 나오기에는 아까운 외모입니다. '선샤인'에서도 미중년의 위력을 뽐냅니다. 이밖에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들로 유명한 국가대표급 배우 오스기 렌이 모습을 비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야자와 '산타페' 리에입니다. 충격적인 누드집으로 사진작가 시노야마 기신을 일약 국제적인 스타로 만들어 버린 네덜란드 혼혈의 17세 소녀는 어느새 과부 역할이 어울리는 중년미부가 됐습니다. 의외로 나이에 비해 빨리 늙는 듯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너무도 안성맞춤으로 빛을 발합니다.
이 영화로 리에는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도 받습니다.
공교롭게도 리에는 최근 개봉한 '하나'에서도 비슷한 캐릭터로 나오더군요. 일본식 사극의 미녀 과부 역할이 잘 어울린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걸로 연기 인생을 마치지는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