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벽 4시 알람소리에 눈이 뜨였다.
전날부터 태풍의 간접영향 때문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하여 날씨에 신경이 쓰여서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기울여보니 하나 둘 빗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컴을 켜서 카페에 들어와 별다른 공지사항이 없는지 훑어보고
안여종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비가 오는데 일정에 차질이 없나요?”
이 정도 비면 강행하겠다고 하시어서 부리나케 준비하기 시작.
4시 40분까지 약속장소인 전민동 소방서 앞으로 달려가느라 디카를 빠트리고 갔다.--;;
점점 장대해지는 빗줄기 때문에 우산 들고 기록하기도 벅차겠다 싶어서
부러 디카를 가지러 다시 집으로 가지 않았는데, 두고두고 후회할 줄이야...
지난 답사에 이어 전수경/ 김종훈씨가 오시고, 처음 뵙게 된 박윤미씨와
따님인 초등학교 6학년인 수연이도 부랴부랴 차에 탔다. 수연이를 보니 지난 번에
박미라씨와 함께 온 세영이가 생각났다. 세영이도 6학년이라는데, 참 재밌는 우연이다.
시립미술관에서는 고현주씨와 박정아/이재호씨가 합류하시어 모두 여덟 명이 됐다.
비가 와서 못 오신 부부의 자리가 빈 채로 성북동을 향해 출발!
성북동 가는 차 안에서 박윤미씨가 준비해오신 달콤한 모닝커피를 한 잔씩
마셨는데, 비 내리는 새벽길을 달리며 마시는 커피맛이란! ^^(더이상 말이 필요없죠?)
사담은 여기까지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답사 시작!
우리가 가는 길의 왼쪽이 대정동, 오른쪽이 교촌동인데 대정동은 이름 그대로 동네에 큰 우물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교촌동에 대해선 별 말씀이 없으셔서 검색해보니, 좌석버스 1번이 진잠을 지나 이 동네를 거쳐 동학사까지 다닌다는 정보와 유성구에 소속된 지역이라 요즘 뜨고 있는 부동산 유망지역이란 정보만 있을 뿐이다. 혹시나 요즘 브랜드 치킨으로 유명한 교촌 치킨의 원고장인가? 했던 처음의 생각은 나만의 억측에 불과했다.--;;(호남고속도로 타고가다 보면 나오는 양촌휴게소를 ‘전원일기’에 나오는 그 양촌리인 줄 알고 내심 반가워했다가 나중에 거기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허탈해했던 때랑 비슷한 느낌)
대정동에는 큰 규모의 유통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조성과정에서 가마터와 2기의 고인돌(*참고 2)을 발견했고, 교촌동의 산자락에서 일곱 개의 고인돌이 발견되어 칠성당 고인돌(* 참고 3)이라 불리는데, 진잠에서만 총 13기의 고인돌분이 발굴되었단다. 오른쪽으로 쭉 가다보면 빈계산 자락이 보이는데, 이게 계룡산이 동쪽으로 달리다 수통골이 있는 백운봉을 거쳐 도덕봉과 금수봉으로 나뉘는데 이 금수봉이 바로 빈계산으로 해서 진잠의 산으로 연결된단다.( *참고 4/ 이 부분에서 ‘대전의 산’이 궁금해 * 참고 5에 자세히 올렸습니다. )
관저동을 지날 무렵, 저 앞에 구봉산이 보였다. 구봉산 정상엔 흔히 보는 팔각정이 아닌 구각정(‘구봉정’으로도 불림)이 있다고 한다. 이 구봉산(九峯山)은 높은 봉우리가 아홉 개가 빼어나게 솟아 있다 하여 구봉산이라 표기하고 있으나, 옛날 여지도서에는 구봉산(九鳳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구봉산은 계룡산의 산줄기가 동남쪽으로 치달리다 진잠에서 불끈 솟아나온 아홉 봉우리가 있다 하여 구봉산(九峯山)이라 했다지만 일설에는 아홉 마리 봉새형으로 구봉산(九鳳山)으로도 불린다. 그것은 이곳에 구봉귀소형(九鳳歸巢形) (아홉 마리 봉새가 집으로 돌아오는 형)으로 명당이 있다 해서 부른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아홉 봉우리가 한 줄로 늘어서서 마치 조복 입은 대신들이 허리를 굽혀가며 신도안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라 하여 군신입조형(群臣入朝形) (신하들이 조정에 들어가는 형상)의 명당이 있다는 전설도 있다. 어쨌든 구봉산은 대전팔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암괴석(奇岩怪石)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특히 가을 단풍의 풍경은 더욱 일품이다. (구봉산 이름의 유래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대전8경에 대해 알게 되어 *참고 6에 소개합니다. 그리고 ‘신도안’이 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참고 7에 소개합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보면 한밭 남쪽인 보문산과 구봉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은 서울의 동교(동대문밖)보다 낫다, 혹은 비슷하다고 하여 이 지역이 오래 전부터 풍수적으로 살기 좋은 지역임이 명시되어 있다. 그 때문인지 관저지구에 속속 들어서는 아파트들이 좋은 전망을 해치고 있어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관저동을 지나 논산으로 가다가 보면 야트막한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여기가 바로 서낭당이(서낭댕이) 고개이다. 이 고개에는 라이온스동산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 잠깐 내려 커다란 은사시나무가 묵묵히 길을 지키는 작은 오솔길로 들어갔다.(수피가 흰색으로 자작나무와 많이 혼동하는데, 자작나무는 누가 일부러 심어놓은 게 아니면 야산에서 발견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산에서 종종 마주치는 하얀 줄기의 나무들은 대부분 은사시나무라고 박정아씨가 알려주셨다. 이것도 모르고 그동안 나민이한테 자작나무라고 뻥쳤다. 으~~, 똑바로 알고 가르쳐줘야지.--;; * 참고 8) 조금만 들어가면 남들에겐 거의 안 알려진 연꽃방죽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가는 길에 풀섶에서 어기적어기적 기어가는 두꺼비를 만났다. 두꺼비는 개구리와 달리 마주치기 힘든 동물이라 그 놀라움과 반가움이 더했다.(안여종 선생님이 두꺼비인지 개구리인지 헷갈리다고 하셨죠? * 참고 9에 자세한 내용 올려놓을게요. 덧붙여 황소개구리랑 두꺼비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재미난 질문과 답도 올려놓았습니다.)
무슨 가스공사 건물인가를 지나 50m쯤 올라가니 오른쪽에 연방죽이 나왔는데, 그 작은 연못에 연잎들이 가득 들어차있었고, 달뿌리풀들(* 참고 10)도 방죽을 빙 에워싼 채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연꽃은 아직 피지 않은 채 봉오리만 동그랗게 올라와있는 걸 보니, 다음 주쯤부터 피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안여종 선생님의 기행후기를 읽다보니 연꽃과 수련을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아 아래 * 참고 11에 비교해놓습니다. 우리가 본 연방죽에선 수련이 아닌 연꽃이 필거예요.) 연방죽을 보는 사이 저 위에 있는 목장에 우유를 가지러 가는 낙농협의 거대한 우유트럭이 우리를 지나쳐 올라갔다. 그 시각이 아마 새벽 5시 30분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생활전선에서 뛰는 분들의 노고에 고마움과 함께 잠시 마음이 숙연해졌다. 집에서 쉽게 받아먹는 우유 한 모금도 이렇게 힘들게 얻어지는 건데....
연방죽을 나와 논산방면으로 쭉 가다가 성북동 산림욕장 가는 오른쪽 길로 살짝 빠졌다.
조금 올라가니 왼쪽으로 대전에서 제일 크다는 방동저수지가 넓게 펼쳐져있다. 이곳은 새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한데, 얼마 전엔 천연기념물 제 327호인 원앙새 떼가 방동저수지를 둘러싼 산자락 밑에 약 300여 마리가량이 쫘악 앉아있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단다.(* 참고 12)
원앙은 원래 철새였다가 텃새로 자리잡았는데, 계절에 따라 우리나라의 위아래로 이동을 한다고 한다. 이는 대표적인 텃새인 참새와 백로도 마찬가지란다. 재미난 사실이었다. 새 이야기 나온 김에 지난 2월, 1993년 이후 11년만에 갑천에 찾아온 고니 가족 이야기를 하며, 생태하천 가꾸기의 중요성과 낚시금지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하천에서의 낚시가 왜 위험하냐면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오물도 문제지만, 하천바닥이나 풀에 걸려있는 낚시바늘이 새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한다. 고니 가족의 11년만의 갑천회귀때도 혹시 이 녀석들이 낚시꾼들이 빠트리고 간 낚시바늘에 걸려 다치거나 죽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셨단다. 안선생님이 관찰하신 바로는 다행히 별 사고 없이 갑천에서 한 달여를 보내고 3월 1일 떠났다고 한다.
방동저수지 관리소를 지나니 저 앞으로 성북동이 펼쳐진다.
성북동의 남에서 북으로 달려가는 거였는데, 왼쪽을 보니 정말 뻥하니 뚫려있었다. 풍수적으로 이렇게 허한 부분을 보하기 위해, 비보의 의미로 성북산성이 있는 산비탈 앞에서부터 금곡천 앞까지 느티나무를 일렬로 쭈욱 심었다고 한다. 이 나무들의 수령은 2~3백년으로, 그 세월동안 성북동에 액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행운이 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주막거리에 있는 고거수 하나가 무슨 이유에선지 죽어가고 있어서 인공수피를 씌워 점차 살아나고 있는 걸 빼면, 모든 나무들이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떡 버티고 서서 마을을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가!
성북동의 옛이름은 ‘잣뒤마을’로 잣은 성(城)의 옛말이고, ‘뒤’는 북(北)의 의미이다. ‘뒤’는 부르기 쉽게 ‘디’로 바뀌어 ‘잣디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성의 북쪽 마을이란 뜻이다. 이 고유의 마을이름을 들으면 금방 지명의 유래를 알 수 있건만, 한자로 바꾸어놓으니 한참 헤매며 이렇게 저렇게 풀어내야만 겨우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지명유래는 50%가 풍수에 영향을 받고 있고, 이래저래 따져보면 거의 90%가 지역의 특색과 직간접적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일제 시대 때 일본인들이 한자를 써서 멋대로 바꾸어버려 사라진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지명들이 많다고 한다. 잣디마을... 얼마나 정겹고 딱 알아먹기 쉬운 이름인가? 그런데 성북동이라니 왠지 서울의 성북동이 떠올려지면서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가 노래한 현대문명에 파괴되는 자연의 아픔이 느껴진다. 다행히 대전의 성북동, 잣뒤마을은 아직 현대문명의 무차별한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느티나무 비보수 끝에 위치한 돌탑에서 매년 거리제를 지내며 온 마을 사람들의 단합된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잣뒤마을엔 두 개의 제례가 있는데, 하나는 앞서 말한 돌탑에서의 거리제로 일명 ‘탑제’라고도 불리운다. 이는 온 마을 사람들이 참가하는 제례이고, 다른 하나는 금수봉 아래 새뜸마을에서만 치러지는 산신제로 산에서 지내는 제례이다. 대전 도심에 근접한 동네인데도 여전히 이런 제례가 남아 매년 치러지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이 동네가 단합이 잘 되는지 알 수 있겠다. 비보수 끝자락 돌탑 바로 옆엔 오래 돼 보이는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데, 교회의 기독사상과 돌탑에 제를 지내는 민간신앙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란 점도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어떤 분은 들어서면 안 되는 곳에 버젓이 교회가 들어섰다고 성토를 하시기도 했지만 말이다.
금곡천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진잠에서 넘어오는 고개인 성재가 보이는데, 이 부근에 남아있는 성북산성 터를 보면 성의 둘레가 600m에 달한다고 한다. (* 참고 13)
금곡천이 흘러나오는 위쪽엔 금수봉이 자리하고 있는데, 산세가 참으로 멋졌다. 비가 한창 내리다 잠깐 주춤하면서 내려앉은 하얀 비구름까지 얹혀있어 신비로운 느낌까지 갖게 했다. 이 금수봉은 계룡산 백운봉이 두 갈래로 갈라져 오른쪽이 금수봉, 왼쪽이 도덕봉이 되었는데 금수봉 정상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주위의 풍경이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 http://sharim.new21.net/mt1/cn/geumsubong.htm ) 금수봉 꼭대기에 이런 경치를 감상할 정자가 있다고 하니 다음에 꼭 한 번 가보리라 다짐했다.
금곡천이 흐르는 양옆으로 분지가 조성되어 농사짓기에 좋아, 너른 들이 펼쳐져있는데 금곡교를 지나 오솔길을 쭉 따라가면 쇠동이라고 백화점에 채소를 납품하는 동네가 나온단다. 또한 금곡천은 잣디마을을 반으로 나누는 역할을 하는데 이 금곡천의 오른쪽이 원래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원 마을이고 왼쪽이 새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새뜸이다. (‘뜸’은 마을 안에서 대여섯 가구가 따로 모여 사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 금수봉은 바로 이 새뜸의 뒤에 위치하고 있다.
금곡천에서 새벽답사의 별미인 새벽참 먹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데도 안선생님 사모님이 이른 새벽에 정성껏 준비해주신 따끈따끈한 국수를 빗소리를 들으며 먹었는데, 어찌나 맛이 예술인지, 아 정말이지 이런 맛에 새벽답사 나온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국수 없는 새벽답사는 앙꼬 없는 찐빵과도 같지 않을까? ^^고현주님의 부인께서 서울에서 공수해다 주신 모찌떡도 일품이었고, 전수경씨가 가져오신 버터바른 빵과 떡, 박정아씨의 토마토도 맛있었다. 마지막에 박윤미씨가 후식으로 제공하신 커피는 아까 답사길 오를 때 마셨던 것과 같은 커피임에도 맛이 아까와 달라서 다른 커피를 내오신 줄 알았다. 진짜 맛있는 커피였다.
참, 이때 대전플러스의 이은혜 기자가 뒤늦게 합류해 열심히 인터뷰하셨는데, 이분 저분 돌아가며 취재하시느라 제대로 드셨는지 모르겠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먹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 불편함까지도 운치로 여겨질 정도로 멋진 시간이었다.
배불리 참을 먹은 뒤에 성북동 산림욕장으로 달렸다. 가는 길에, 새뜸휴게소 앞에 멋지게 자란 나무가 있었는데, 이게 바로 ‘애들’이 심었다는 나무다. 여기서 말한 애들이란 칠팔십 되신 할머니들이 하신 말씀으로, 이 애들이 지금은 60이 넘은 어르신들이다.^^;;
산림욕장 입구부터 갖가지 나무들이 반기고 있어, 이번에 숲해설사로 데뷔하신 박정아씨가 조근조근 설명을 해주셨다. 까맣게 익은 버찌를 달고 있는 벚나무, 합환수로 불리우는 자귀나무(공작털처럼 생긴 분홍빛 술꽃이 달리는 이 나무의 잎으로 잠자리모양을 비롯해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 수 있단다.), 개암(개금)나무와 물오리나무의 차이점, 요즘 가로수로 각광받고 있는 이팝나무, 신갈나무, 미국자리공풀, 삼출엽인 칡나무, 어린 시절 맹감 혹은 명감이라고 부르던 청미래덩쿨, 연분홍빛 자잘하고 귀여운 꽃이 달린 싸리나무, 줄기가 붉은 옻나무, 그 외에 이름을 알지 못한 채 잎만 떼어와야 했던 나무들이 산림욕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박정아씨의 설명덕분에 붉나무에 기생하는 애벌레집은 약용으로도 쓰인다는 것, 줄기에 가시가 달린 엄나무의 정싱명칭은 ‘음나무’라고 불린다는 것도 알았다. 숲을 거닐며 새로운 나무와 풀에 대해 자연스럽게 공부할 수 있어 좋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많이 올라가진 못하고 되돌아 와야했는데, 성북동 산림욕장까진 41번 버스가 다니고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올 수 있으니, 다음에 나무도감을 들고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고현주씨가 비오는 날의 산행을 적극 추천하셨고, 대전에 있는 장용산(남대전 식장산 자락), 장태산(가수원), 장동(계족산) 휴양림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씀해주셨다. 그러다 이야기가 메타세콰이어, 히말라야시다 같은 침엽수림으로 넘어갔다가 이재호씨의 캐나다 벌목과정과 집 짓는 과정 이야기로 해서 전북 남원에 있다는 대안학교, 작은학교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실상사의 도법스님이 만드셨다는 작은학교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고,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http://blog.empas.com/exsisyphus/1785715 중등대안학교 현황소개) 지난 답사 땐 이정님 선생님이 대전의 대안학교인 푸른숲학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대안학교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참 좋은 정보들이어서 열심히 메모했다. 푸른숲학교는 초등과정, 작은학교는 중등과정, 그리고 나중에 박윤미씨와 전수경씨가 말씀해주신 산청의 간디학교(* 참고 14)는 고등과정이다. 나민이가 나중에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더 많은 대안학교가 생겨서 더 많은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참된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마음 속에 담으며, 비가 와서 더욱 더 좋았던 오늘의 새벽답사가 막을 내렸다. 다음 답사는 3주뒤에나 가능하시다고 하셨는데, 어디로 가게 될지 지금부터 기대가 된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에 걸쳐 보문산 남쪽 기슭에서 발굴조사된 청자·분청사기, 백자가마터의 존재로 대전은 중부권 도자문화의 새로운 핵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대전에서 기존에 알려진 대표적인 가마터로는 유성구 성북동 가마터를 들 수 있습니다. 성북동 가마터는 일제시대에 일본인 학자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고 청자·상감청자를 제작한 도자생산집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발굴조사가 진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마의 분포와 조성시기, 성격 등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계룡산 학봉리 철화분청사기를 제작한 집단에 대한 조사의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중구 보문산 기슭에서는 고려시대 중기인 11세기경부터 17세기에 이르는 청자와 분청사기, 백자 등 다양한 질의 도자기가 발견되었고 체계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구완동·정생동 일원에서 조사된 가마터는 대전지역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도자기 가마터 발굴조사라는 점에서 학계의 많은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중구 나아가 대전 도자문화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기존 조사된 구완동·정생동 가마터의 발굴성과를 중심으로 중구 도자문화의 성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구완동 청자가마터
구완동 "어청골"마을의 서쪽에 남북으로 발달한 구릉상 야산의 동쪽사면에 가마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가마터는 대전산업대학교 향토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대전남부순환도로 건설예정구간에 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가 확인된 것으로 해강도자기미술관에서 1995년8월9일∼10월 17일가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가마는 구릉사면의 중앙에 기와가마가 있고 그 좌우로 1기씩의 청자가마가 위치해 있습니다.
1) 1호 청자가마
이가마는 기와가마의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특징은 일반적 가마축조법인 기반토를 약간 깎아 내고 바닥에 모래를 깔아 굽도록 설계한 반지하식 구조가 아니라, 가마가 위치할 기반토의 좌우를 깊이 깎아 내고 그 위에 가마를 조성하여 가마전체가 지상으로 노출되도록 배려하였다는 점입니다. 유구의 상태는 천장부가 모두 함몰되었으나 가마벽의 바닥부분이 약간 남아 있으며 연소실, 소성실 및 연도까지도 구조가 비교적 잘 남아 있습니다. 연소실에서 연도에 이르는 가마의 총길이는 18.3m, 가마벽선의 너비는 내벽이 110∼120cm입니다. 조사결과 유구는 약 2∼3차례의 걸쳐 보수한 흔적이 있습니다. 연소실은 평단면이 하트형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소성실과는 약 30cm높이의 단벽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소성실은 단벽에서부터 22°∼25°정도의 경사면을 이루며 연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연소실을 구축할 때 사용한 소형 자연석과 바닥면의 탄층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가마의 윗쪽인 연도 가까운 부분에는 초벌구이편이, 그 아랫쪽 부분에서는 재벌구이편이 주로 발견되었습니다.
2) 2호 청자가마
이 가마는 기와가마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조는 1호 청자가마와 같은 형태입니다. 연소실과 소성실의 일부가 발굴대상지를 벗어나 있어 소성실의 일부와 연도부만 노출된 상태입니다. 이 가마 역시 파손이 심하여 천장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가마벽면이 바닥으로부터 약20cm가량 남아 있고, 벽선 우측면 중간에 출입구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가마의 총길이는 알수 없지만 확인된 유구의 길이는 약 12.8m, 내벽선의 폭이 120cm, 소성실의 바닥경사도는 약15°가량 됩니다. 소성실의 좌우벽체에는 2∼3회에 걸쳐 보수한 흔적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출토유물은 주로 대접과 접시류가 발견되고 그 밖에 기종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유약과 태토의 상태로 볼 때 1호 청자가마의 출토품보다 저급품입니다.
위치 : 대전 중구 구완동 산18-7번지
시대 : 13세기경
문화재 : 대전기념물 제34호(1997.11.7 지정)
* 구완동 상감청자가마터
구완동 광명농장내의 상감청자가마터 발굴은 1995년 구완동의 순청자가마터 발굴과 마찬가지로 유적지를 복원하여 일반시민에게 문화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모두 2기의 가마터를 확인하였는데 1호가마로 명명한 가마는 상태가 불량하나 2호가마는 아궁이부터 굴뚝부까지 상태가 아주 좋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발굴조사는 1996년 8월 2일부터 10월 10일까지 해강도자미술관에서 실시하였습니다.
1) 1호가마
경작과 개간으로 인하여 유구가 심하게 파손된 상태에서 강우에 의한 침식으로 지반이 많이 깎여 나가 잡초를 제거하자 곧바로 가마의 바닥이 노출되었습니다. 퇴적토를 제거한후 윤곽을 드러낸 가마는 요상과 굴뚝부의 바닥면이 약간 남아 있었으나 아궁이 부분은 소실되었는지 전혀 유구를 확인할수 없었습니다. 아궁이 부분을 제외한 현재 가마의 총길이는 약 12m, 가마벽선의 너비는 내벽이 평균 100cm 가량되며 바닥면의 경사도는 11°∼13°정도입니다. 가마의 천장과 벽은 모두 소실되어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으나 가마바닥에 마지막으로 번조하였을 때의 천정파편이 그대로 얹혀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이가마의 운영기간 중에 폐기된 퇴적층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점과 가마벽선의 두께가 얇고 불에 익은 정도가 약하며, 함몰된 가마천정부의 단면에 보수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단기간 이용되었다가 구조상의 결함과 같은 이유로 바로 폐요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이 가마의 바닥에는 마지막으로 번조하였을 때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도침이 깔려 있습니다.
2) 2호가마
아궁이, 요상부, 굴뚝부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는 가마로 1호가마에 비하여 규모가 훨씬 큽니다. 발굴을 통해 드러난 가마의 전체규모는 총 길이가 약25m, 너비가 내벽의 경우 소성실 아랫쪽은 약140cm, 위쪽은 110cm 가량되며 가마의 경사도는 평균 20°로 1호가마에 비하여 가파릅니다. 가마축조방식은 기반토인 풍화마사토의 점토가 혼합된 생토를 깎아 그 흙으로 가마의 외벽을 높이는 재료로 활용하였습니다. 특히 아궁이가 있는 부분은 깊이 내려가야 하므로 아궁이가 위치할 주변의 생토를 등굴고 깊게 파내어 아궁이를 배치하고 흙을 파낸 부분에 폐기물을 버려 평탄화 시킨 후 활동공간으로 활용한 점이 특이합니다. 이 가마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을 함몰된 상태로 발견된 천정에서 볼 수 있는 데 천정 안쪽에 덧붙여 보수한 흔적이 10여회가 있어 많은 양의 도자기가 오랫동안 생산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마좌우의 활동공간이 경사가 가파르고 잡석이 많은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가마벽 우측에 약간의 폐기물 퇴적과 함께 잡석들을 일정간격으로 배치하여 계단으로 활용한 흔적도 흥미롭다 하겠습니다. 가마를 전체적으로 크게 고친 흔적은 노출된 벽면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아궁이의 경우 3개의 벽선이 발견되었고 소성실의 측벽선도 2-3개가 발견되고 있어 점차 가마폭을 줄여가면서 이용하였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소성실의 바닥면에서 절구처럼 생긴 도침과 장방형의 냇돌, 점토로 빚은 장방형의 도침이 혼재된 채 열을 지어 발견되고 있어 부속도구로 여러 가지가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마의 좌우측에서 여러 가지의 폐기물이 쌓여있어 많은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위치 : 대전 중구 구완동 15-4번지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문화재 : 대전기념물 제35호(1997.11.7지정)
* 참고 2
1. 대정동 한우물 고인돌
지정 번호 : 지정사항없음
시대 분류 : 청동기 시대
유적 위치 : 유성구 대정동
유성구 대정동 한우물 마을 뒷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표 위에 드러나 있는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1m, 폭 1.7m, 두께 0.4m으로
이 일대에서는 비교적 큰 편평한 판돌로 된 변형고인돌이다.
2. 대정동 맘골 고인동
지정 번호 : 지정사항없음
시대 분류 : 청동기 시대
유적 위치 : 유성구 대정동 맘골
유성구 대정동 고인돌과 불과 500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맘골(心洞) 마을 밭둑에서 고인돌 2기가 있다.
지표 위에 드러나 있는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8m, 폭 2.0m, 두께 0.3m,
길이 1.4m, 폭 1.8m, 두께 0.5m이고,
약 3.5m의 간격으로 놓여 있다.
덮개돌 표면에는 오목하게 구멍을 판 성혈(性穴)이 다수 만들어져 있다.
* 참고 3
교촌동 칠성당 고인돌
유성구 교촌동 "칠성당이" 마을 뒷산(북쭉) 해발 55m 가량의 구릉 능선에
칠성당(七星堂)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는데,
노송들 있는 능선의 15m×20m 범위 안에 7기가 밀집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고인돌의 배치는
3기, 2기, 1기, 1기씩으로 다시 작은 떼를 이루고 있는데
1호, 2호, 3호분이 각각 1.5m 이내의 간격을 두고 밀집되어 있고
이를 주위에서 둘러싸듯 4, 5, 6, 7호분이 배치되어 있다.
지표 위에 드러나 있는 덮개돌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2호 고인돌의 경우 그 크기가 길이 2.14m, 폭 1.6m이고
3호 고인돌은 괴임돌이 드러나 보이고 있다.
이 고인돌은 삼각형 또는 사각형의 편평한 덮개돌만이 땅위에 노출된
이른바 남방식(바둑판식) "변형고인돌(蓋石式)"이다.
이 고인돌은 주변 자연촌락의 명칭이 보여 주듯이
칠성 신앙과 결부되어 숭배되어 왔으며
목장을 만들 때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마을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다시 원 위치로 복구되었다.
이 고인돌은 갑천유역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것으로
우리 고장의 청동기 시대 문화 모습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흑룡산 도덕봉은 커다란 바위굴과 암릉 길로 이어진 아기자기한 산행길. 계룡산의 다른 코스들과는 연결되지 않는, 독립된 산행지역이다. 수통골 계곡 경관은 그리 신통치 못하므로 올라간 길로 되짚어 내려오는 것도 좋다.
*흑룡산(黑龍山)은 계룡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대전 지역 등산인들은 별도의 산으로 취급한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외따로 떨어져 있다. 밀목재 도로로 잘려져 나가 있으며, 때문에 계룡산의 다른 코스들과 연결 산행이 되지도 않는다.
이 흑룡산은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도덕봉이라고 표기돼 있다. 이 도덕봉과 능선이 연결된 백운봉(白雲峰·536m), 금수봉(錦繡峰·532m), 빈계산(牝鷄山·415m) 등을 포함해 흑룡산이라고들 부른다. 계룡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측은 아직 비정규 등산로로 취급하지만, 산길의 요소마다에는 대전 등산인들이 안내판이나 로프를 설치해두었다. 산은 매우 아기자기하다. 등산로의 핵심을 이루는 정상 남릉 길은 서쪽 면이 높이 50m가 넘는 암벽인 암릉길이다. 이 암릉 끄트머리에는 수통굴이라 부르는 커다란 바위굴이 형성돼 있다. 이 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 도덕봉은 금수봉과 마찬가지로 계룡산 천황봉에 서 뻗어나온 봉우리이며 계룡산 국립공원 구역에 속해 있다. 이산은 봄철에 진달래가 온 산을 빨갛게 물들고 산벚꽃이 많이 피어나며, 가을 에는 단풍이 고운 산이다. 이 산은 남쪽에 수통골과 북쪽에 도덕골을 품고 있으며, 도덕골은옛날에 이 골짜기에 도둑들이 많아서 도둑골이라고도 부른다
* 볼거리 : 옥녀봉 자락에 18홀 규모의 유성컨트리클럽이 있다. 한국 8경중의 하나인 국립공원 계룡산을 배경으로 마치 평풍을 두른듯 아름다운 뒷배경에 유성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35만평 면적위에 펼쳐진 18홀 전장 6.144m PAR 72로 홀마다 80년생 소나무가 빼곡하게 다라고 있어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것 같다. 유성온천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갑사, 동학사,마곡사 등의 유명한 사찰과 백제무녕왕릉, 공주 박물관 등 백제 문화권이 불과 3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또한 60실 규모의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어 가족과 같이 나들이 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지난 대전 EXPO 기간중에는 많은 외국인, 국빈들이 골프장을 방문했으며, 76년 개장이래 120만명의 내장객이 다녀갔다.
* 대중교통 : 학하동, 한밭대학교 쪽으로 103, 110, 133, 161번 등 4개 노선이 약 6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삽재 쪽으로 102번 노선이 약 10분 가격으로 운행된다.
금수봉 수통골
금수봉 수통골은 학하동 건천의 천변도로와 대전산업대 앞을 지나서 가게 되는 두 길이 있다. 학하동에서 수통골 주차장까지는 약 2.1km이며, 대전산업대 앞에서는 약 1.7km이다.
위 치 : 대전광역시 유성구 학하동
차량경유 : 1)유성에서 학하동을 거쳐 진잠, 논산방면으로 연결되는 호남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구도로가 있다. 유성에서 이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학하교에서 서쪽으로 넓게 뻗쳐 있는 하천[평시에는 거의 물이 없음]을 따라 난 천변도로를 타고 약 1.5 km를 가면 수통골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도덕봉, 금수산, 빈계산을 골라서 오를 수 있고, 일주할 수도 있다.
2)유성에서 공주, 동학사 방면으로 가다가 한밭대학교로 들어가면 한밭대 정문을 지나 약 1km를 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최근에 한밭대 정문에서 수통골까지 2차로 포장도로가 이어져서 편리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은 한밭대학교가 종점인 버스를 이용하여 이쪽으로 접근하거나 동학사, 공주방면 버스를 이용하여 삽재 부근 갑동에서 내려 도덕봉으로 오르면 된다. 유성 → 학하리 → 유스호스텔 // 유성 수통골(40분)
* 교통편 : 산업대학교(화산마을을 거쳐 수통골) : 109,814,161번, 학하동(학하교) : 161번, 성북산림욕장 : 241번
# 학하동, 대전산업대 쪽으로 160, 806, 814번 등 5개 노선이 약 6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삽재 쪽으로120, 121번 등 2개 노선이 약 40분 가격으로 운행된다.
* 방동저수지 기점 금수봉 산행코스
방동저수지에서 성북동 새뜸마을 시내버스 종점까지는 약 4.7km이다. 여기에서 북서쪽길로 약 0.2km 정도 올라가면 성북동 삼림욕장 관리사무소가 나오며, 오른쪽 산허리로 난 임도 겸 산책로에 들어서게 된다. 샛골 바로 위로 난 산책로를 따라서 계속 올라가면 골짜기 끝부분에 음수대가 나온다. 산책로 중간에서 삼림욕장으로 내려서서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도 음수대에 이를 수 있다. 이곳에서 휴게의자 옆으로 골짜기를 건너 산등성이를 오르면, 다시 산책로와 마주치게 된다. 왼쪽으로 산책로를 따라 약 0.6km쯤 더 가면 백운봉 남쪽 산등성이로 오르는 나무 다리가 있다. 백운봉에서는 도덕봉 갈림길을 지나 금수봉 등마루를 타고 정상에 이르게 된다. 하산길은 동남쪽 산등성이를 약 0.2km쯤 내려가다 남쪽으로 내려서면 감나무밭 아래의 샛골에 닿게 된다. 여기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농로를 따라 내려가면 곧이어 새뜸마을이다
대전은 지리적으로 계룡산, 계족산, 식장산, 만인산 등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이다. 때문에 옛부터 우리 지방 고을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남한의 중앙부에 위치하므로「중도」라고도 일컬으며, 영남과 호남으로 통하는 삼남의 관문으로서, 수도 서울까지는 167.3km, 부산까지는 294km, 광주까지는169km의 거리에 있다. 또한 대전은 경부, 호남 고속도로, 국도가 분기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통의 중심지이다.
소백산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이 북쪽으로 뻗어 대전의 동. 남. 서부 산지를 이루고 있는데, 남쪽으로는 보문산(457.3m), 망덕산(439m), 안평산(470.2m), 장군봉 등이 있고, 동쪽으로는 식장산(597.4m), 고봉산(364.3m), 개머리산(365m), 함각산(314.5m), 연봉, 백골산, 꾀꼬리봉, 꽃봉(285.2m), 약해산 등이 있고, 서쪽으로는 구봉산(264m), 우산봉(573.8m),
갑하산(469m), 도덕봉(534m), 빈계산(415m), 시루봉(435m), 조개봉(342m)등 계룡산계가 논산군의 두마면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쪽으로는 계족산(398.7m), 금병산(364m) 등이 있다. 따라서 대전은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 지형이다. 산과 산이 대전의 지형을 해발 50m이상, 100m이상, 300m이상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대전분지를 둘러싸고 있다.
# 계룡산지의 남쪽은 주로 반암류로 이루어진 구봉산(264m)이 동서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남부산지는 대전에서 가장 높은 식장산(597.4m)을 비롯하여 망덕산(439m), 마달령, 지봉산(464.3m), 만인산(537.1m), 안산(264.1m), 명막산(330.5m), 조중봉(333.5m), 안평산(470.2m), 장군봉(268.2m) 등으로 연결되는 고지를 이룬다. 남부산지는 노령산맥의 연장으로서, 충남에서 가장 높은 금산의 서대산(903.7m), 전라북도와의 경계에서 대둔산(877.7m)과 연결되어 대전 동남부 지역의 가장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식장산은 시생대의 옥천계에 속하는 결정편마암계의 변성퇴적암으로 되어 있고, 흑색점판암 등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보문산(457.3m)을 비롯한 화강암류의 분포지역은 이들 산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화와 침식에 약해 대전분지에 불규칙한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변성암류의 편리방향에 일치하는 금병산(364m) 산계는 대전의 동·서·남부의 산지에 비해 고도는 떨어지지만 대전의 북부지역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선정과정>
- "95. 6월 대전8경 조성 시장공약(민선1기)
- "95. 12월 대전8경 선정 기초자료 조사
- "96. 1-2월 시민설문조사 8,100명(20세이상자)
- "96. 3,4,5월 대전8경 선정자문위원회 구성, 시정조정위원회 심의
- "96. 6월 25일 대전8경 선정공표
대전8경 선정 이유 : 대전의 전통문화를 부각하고 현재와 미래지향의 대전 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고 시민의 애향심 고취와 여가공간의 다변화에 기여하며 관광대전을 위한
관광벨트 육성으로 지역경제 발전을 도모하고자 대전8경을 선정 발표함
1. 계족산 저녁노을
높이 423.6m인 계족산은 봉황산이라고도 불리는 산으로서 산줄기가 닭 발처럼 퍼져나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에서부터 일제에 의해 격하되어 불려진 이름이라는 설, 중요하거나 귀한 이름은 원래 감춰 불렀다는 설에 이르기까지 이름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계족산 줄기는 세천고개 너머 식장산과 맥이 이어지지만 남쪽으로는 용운동에서 북쪽으로 신탄진 석봉동, 대청댐 인근 미호동까지 16km 정도의 작은 산줄기를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숲과 골짜기, 역사적인 문화재 등이 많이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계족산은 정상에 전망대가 세워져 있으며 산자락의 맑은 공기는 자연의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다.
산에 오르다 보면 숲 사이로 펼쳐지는 대청호가 파랗게 와 닿아 시원함을 더해 준다. 또 정상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장관을 이룬다.
계족산에는 계족산성 이외에도 고분군, 절터, 가마터 등이 분포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의 사찰인 비래사가 남아 있다. 계족산은 장동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대덕구와 동구에 걸쳐 있는 이 산은 높은 봉우리가 특이하다. 예로부터 가뭄이 심할 때 이 산이 울면 비가 온다고 전하여 비수리, 백달산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또 이 산의 모습이 봉황처럼 생겨서 봉황산이라 불렀었는데, 조선시대 때 송씨 문중의 어느 어진이가 보배로운 이름은 감추어야 한다고 하여 굳이 계족산이라 바꿔 부르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산 위에는 백제 때 돌로 쌓은 계족산성이 있는데 계족산성은 대전에 있는 30여 개 백제성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된 산성이다. 큰 테뫼식 석축으로 축조되었으며 둘레가 1,037m나 되며, 높이가 7~10.5m, 폭이 3.7m로 성 안에는 큰 우물이 있다.
교통편
대전시내에서 먼저 추동에서 들어가려면 621번 일반버스를 이용하고, 용운동 쪽에서 가려면 828번, 829번 일반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가양동 쪽은 310번, 810번 일반버스를, 송촌동 쪽은 851번 일반버스를, 연축동이나 장동으로 가는 일반버스는 814번이 있다.
문의: (Tel). 042-865-7080
2. 구봉산 단풍
높이 264.1m인 구봉산은 서구 관저동, 가수원동, 괴곡동, 흑석동, 봉곡동에 둘러 싸여 길게 서 있으면서 아홉 개의 봉우리가 모두 제각기 멋을 자랑한다. 또한 봉우리가 가지런히 수려한 모습으로 솟아 있어 마치 병풍에 그려진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이 산의 남쪽에는 갑천이 휘돌아 흐르고 있으며, 바위 벼랑을 이루어 가파르기는 하나 1993년에 건립한 구각정 전망대에서 보면 서구 관내가 한눈에 조망되어 참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 구봉산(九峯山)은 높은 봉우리가 아홉 개가 빼어나게 솟아 있다 하여 구봉산이라 표기하고 있으나, 옛날 여지도서에는 구봉산(九鳳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구봉산은 계룡산의 산줄기가 동남쪽으로 치달리다 진잠에서 불끈 솟아나온 아홉 봉우리가 있다 하여 구봉산(九峯山)이라 했다지만 일설에는 아홉 마리 봉새형으로 구봉산(九鳳山)으로도 불린다. 그것은 이곳에 구봉귀소형(九鳳歸巢形) (아홉 마리 봉새가 집으로 돌아오는 형)으로 명당이 있다 해서 부른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아홉 봉우리가 한 줄로 늘어서서 마치 조복 입은 대신들이 허리를 굽혀가며 신도안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라 하여 군신입조형(群臣入朝形) (신하들이 조정에 들어가는 형상)의 명당이 있다는 전설도 있다. 어쨌든 구봉산은 대전팔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암괴석(奇岩怪石)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특히 가을 단풍의 풍경은 더욱 일품이다.
구봉산은 높이 264.1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으리만큼 경관이 아름답고 산세가 수려한 곳이다. 또한 구봉산 남쪽에는 갑천이 휘돌아 흐르고 있으며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 산에는 유난히 산벚나무가 많아서 봄에는 하얀 꽃이 산비탈 숲에 점점이 수를 놓고, 그 위에 바위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 경관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처럼 경관이 좋고 기이한 바위 봉우리들이 줄지어 서 있기 때문에 호남고속도로에서나 가수원, 진잠 일대에서 구봉산은 쉽게 눈에 띈다. 밖에서 볼 때 이 산의 바위 봉우리들이 우뚝하고 험해서 오르기가 어려울 듯 하지만 그 봉우리들에 붙어보면 묘하게 길이 잘 나 있어 가파르기는 하나 그리 어렵지 않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운장산 옆의 구봉산도 경관이 좋기로 유명해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구봉산 이름을 가진 산들의 봉우리는 꼭 아홉 개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팔각산, 팔봉산, 팔영산처럼 여덟이나 아홉은 좀 많은 수를 뜻할 때가 많다. 여기 구봉산도 대고개에서 비재까지의 큰 봉우리가 아홉 개로 셀 수도 있지만 애매한 점이 있다. 구봉산은 원래 산이 아름답고 골이 깊었기 때문에 산에 얽힌 이야기가 많고 산제나 부락제 등 이와 관계된 민속이 많이 전해진다.
교통편
대전시내에서 일반버스로 220번, 221번 등이 진잠까지 운행하고 논산이나 두계 등으로 가는 차도 그 앞으로 다닌다. 흑석동 쪽으로는 좌석버스 202번을 이용하여 고리골, 노루벌, 바깥말에서 이 산에 들어설 수 있다.
3. 대청호
대청호는 1980년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과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덕유리 사이의 금강 본류를 가로막는 대청댐의 담수로 인하여 생긴 인공호수이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 관내의 갈전동, 미호동, 부수동, 삼정동, 황호동, 이현동 등 6개 법정동과 대전광역시 동구 관내의 추동, 세천동, 신상동, 신하동, 사성동, 주촌동, 오동 등 14개 법정동이 대청호와 인접하여 있고, 충청북도 관내의 청원군, 옥천군, 보은군 등 200여 리까지 그 물줄기가 닿아 있다.
2개 시·도, 5개 군·구의 4,134 ㎢의 광활한 유역에 조성되어 있는 대청호는 14억 9천만 톤의 저수용량을 가짐으로써 금강 유역의 홍수 피해를 크게 줄이는 한편, 도수로(導水路)를 통하여 청주지구, 금강하류지구, 만경지구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또 대전, 청주, 공주, 부여, 논산, 천안, 아산, 장항, 군산, 전주, 이리 등에 전력 및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여 우리 나라 중부권의 젖줄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대청호는 이와 같은 경제적인 혜택 못지 않게 금강 유역민의 크고도 맑은 마음을 담아 보는 이로 하여금 속세의 사리사욕을 잊고, 마음을 정화케 하는 명경지수로서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다.
대청호로 인하여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농사를 지어 오던 생명과도 같은 농토를 잃고, 애환이 담긴 집과 마을이 물에 잠긴 고향을 바라보며 인고의 세월을 삭혀가는 수몰지역 인근민의 애절한 향수와 그 주변 지역의 숱한 전설은 아직도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대청호 안의 여러 섬들과 주변의 수려한 경치는 해상공원 한려수도를 방불케 한다.
이같은 대청호는 인근의 유성온천, 대덕연구단지, 엑스포 과학공원, 정부대전청사, 계룡산국립공원, 그리고 공주, 부여의 백제문화권 등과 연계되는 관광코스로서의 이점과 개발가능성이 커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통편
신탄진에서 버스나 택시 혹은 승용차를 이용.
일반버스는 신탄진역 앞에서 730번, 청주에서 오는 110번을 이용하면 약 15분 정도 소요
4. 보문산 녹음
높이 457.6m인 보문산(寶文山)은 대전의 남쪽 중구의 중심부 즉, 대사동 외 11개 동을 품고 있어 시민들에게 친근하고,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대전의 대표적인 녹음공원이다.
이곳에는 보문산성과 보문사지, 야외음악당, 전망대, 유희시설, 케이블카가 있으며, 시루봉 길 등 10여 개의 등산로와 20여곳의 약수터가 골짝마다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특히 보문산성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 9호로 지난 1992년 12월 백제시대 산성 중 전국 최고로 복원되었다. 둘레가 280m인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성안에 있는 장대루에 오르면 광활한 시가지의 발전상이 한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
보문산에서는 등산과 함께 위락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사정공원의 실내 롤러 스케이트장, 축구장을 비롯한 각종 레포츠 시설, 야외음악당, 케이블카, 그린랜드, 청년광장 등이 있으며, 시루봉 아래 고촉사에는 미륵상을 닮은 자연 암석이 있다.
교통편
보문산공원의으로 가는 일반버스는 111, 112, 113, 310, 520. 711, 721, 820, 826번이 있고, 산성동, 사정동, 무수동 쪽으로 접근하려면 888, 330, 330-1번 일반버스가 있으며, 이사동으로 가려면 512번 일반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5. 식장산 자연생태림
대전의 동쪽에 우뚝 자리잡고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오랜 세월을 지켜온 산, 식장산은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동, 세천동, 산내동 일원에 위치한 높이 623.6m의 산으로서 대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식장산은 충북 옥천군 군서면·군북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대전의 터줏산으로, 번화한 대전 시가지와 서쪽의 보문산(457.6m), 북쪽의 계족산(423.6m)을 내려다 보고 있으며 동북쪽에 자리잡은 대청호수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넣고 있다. 또한 멀리는 계룡산, 대둔산, 서대산과 대화하듯 마주하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식장산의 높고 빼어난 산세는 신비로움마저 던져주고 그 골짜기 골짜기마다 희귀식물과 숲이 울창하고 수많은 유적과 전설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식장산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의 국경을 이루었던 산으로, 대전의 상징처럼 동쪽에 높이 솟아 있다. 그런 만큼 많은 전설과 유래가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식장산은 자락이 넓고 물이 좋아서 옛날부터 만인을 살릴 수 있는 땅이라는 기록이 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가 되어 어떤 장군이 식장산에 많은 군량을 숨겼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식장산의 명칭에 대해서는 백제시대 성을 쌓고 군량을 많이 저장하고 신라 침공을 방어하던 요새 지역이었다는 기록에 연유하여 식장산이라고 불렀다는 설과, 먹을 것이 쏟아지는 밥그릇이 묻혀 있다 하여 식기산 또는 식장산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교통편
세천공원으로 가는 교통편은 640번 일반버스와 대전역을 거쳐 어부동, 회남, 방아실로 가는 630, 631, 632번 일반버스가 있다.
좌석버스는 대전 엑스포에서 구도동까지 가는 101번과, 중리동을 출발하여 용전동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대전역을 거쳐 산내에서 마전까지 가는 501번이 있다.
6. 엑스포 과학공원
엑스포 과학공원이 자리잡은 곳은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가 열렸던 유성구 도룡동 일원이다. 공원 앞으로는 물 맑은 갑천이 흐르고 있다. 갑천을 사이에 두고는 둔산 신시가지가 마주하고 있다. 과학공원의 범위는 연구단지로 들어가는 대덕대교와 엑스포 아파트로 들어가는 둔산대교 사이이다. 이 두 대교 사이에 태극을 상징화한 엑스포 다리가 과학공원의 중심지 한빛탑과 남문 입구를 연결해 주고 있다. 말하자면 과학공원과 갑천 맞은편 둔산 신시가지를 이 세 개의 다리가 끈끈하게 묶어주고 있는 셈이다.
관할행정기관은 유성구와 서구로서 서로 다르지만 두 지역은 뗄 수 없는 지리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갑천이란 물길이 갈라놓고 있으나 두 지역은 이와 입술처럼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엑스포 과학공원이 자리잡고 있는 도룡동은 본래 여흥 민씨 40여 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곳으로 우성이산 줄기가 감싸고 있어 아늑한 터전이다. 도룡동은 북쪽으로는 가정동과 서쪽으로는 구성동, 동쪽으로는 원촌동과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갑천과 둔산 신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햇볕 잘 들고 물좋은 명당터이다. 도룡동의 엑스포 과학공원과 마주한 둔산동은 서구에 속해 있다. 엑스포 과학공원의 남문은 둔산동에 있기 때문에 남문으로 들어가려면 둔산 지역을 거쳐야 한다.
도룡동 일대와 둔산동 일대는 현대뿐만 아니라 고대에서부터 줄곧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그 이유는 갑천 유역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갑천 유역은 대전에서 가장 먼저 인간이 정착해 살았던 곳이다. 이 일대는 삼천동(三川洞)이란 지명이 있듯이 세 개의 하천이 흐르다 합류하는 곳이다. 대전천(大田川), 유등천(柳等川), 갑천(甲川)이 제각기 발원지를 출발해 한밭이란 넓은 들을 적셔주면서 구비구비 흐르다 이곳 신시가지 일대로 모여 든다.
교통편
비행기를 타고 청주공항에서 신탄진을 거쳐 오는 방법이 있고 철도로는 대전역과 서대전역을 이용하면 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대전 I.C에서 한밭대로로 달리면 된다. 호남고속도로는 유성 I.C에서 둔산대로를, 엑스포 I.C에서는 엑스포도로를 달리면 금방 도착한다.
7. 장태산 휴양림
장태산은 서구 장안동과 금산군 복수면 신대리 경계의 안평산(470.2m) 옆에 있는 산으로 높이 186m의 나지막한 산이다. 이 장태산 일대는 대둔산에 뿌리를 둔 산줄기가 장엄하고 아름답게 뻗친 곳에 마을이 생겨서 장안동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전하며, 임진왜란 때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난을 피해 장군종 아래 베틀굴에 숨어서 3년 동안 베를 짜며 살다가 지금의 원장안에 터를 잡아 편안히 살기 시작하였다 하여 장안동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전설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이 천혜의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진 장태산 휴양림은 1991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해서 지금의 거의 그 기틀을 갖추었으며 현재까지도 활발한 개발을 하고 있다. 그림 같은 호수, 괴암괴석 등 주변 경관이 절경이며 질서있게 조성되어진 나무들이 많고 길 또한 잘 다듬어져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장안동 산 46번지에 있는 장태산 휴양림은 지난 1991년 자연휴양림 조성계획을 승인 받아 1992년부터 1994년 사이에 시설한 산막(통나무집), 야영장, 정자, 어린이 놀이터, 체육시설, 사계절 썰매장, 삼림욕장, 조수 사육장, 산책로 등 각종 시설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즐거움을 준다. 이곳의 삼림욕장은 녹색공간이 부족한 현대인에게 푸르름과 신선함을 듬뿍 주고 있어 대전 시민들은 물론 사계절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장태산은 대전의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형제바위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붉은 낙조는 산 아래 용태울 저수지와 어우러져 가히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을 이루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장태산 일대의 울창한 침엽수와 활엽수림 17만여 평은 바쁜 도시 생활로 심신이 피로해진 우리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뿐만 아니라 인공으로 조성된 일만여 주가 넘는 메타세키이아나무는 이국적인 풍치를 보여줌과 동시에 자뭇 올곧은 자태가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아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장태산은 지금은 휴양지로 개발되어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예전에는 아주 깊은 산골이었다. 우선 휴양림에 들어서면 노산 이은상의 "나무마을" 이라는 시가 삼림욕장에 들어선 사람들의 마음을 안온하게 잡아 둔다.
8. 유성온천
유성 온천휴양지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명동이다. 유성은 뜨거운 온천수로 인해 역사가 생긴 곳으로 전설에 의하면 백제시대에 상처를 입은 학과 백제의 병사가 온천수로 아픈 상처를 치료했다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가, 근년에는 역대 대통령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휴양지이다.
유성의 면모는 날이 갈수록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충남대학교 캠퍼스 등을 비롯한 교육기관이 들어서서 학문의 고장으로 불리울만 하고 대덕연구단지가 자리잡아 한국 과학의 요람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과학산업단지와 전자관련 첨단 산업들이 들어서는 중이어서 명실상부하게 산·학이 조화를 이루는 과학기술의 메카가 되었다. 또한 서남부에는 시민들의 주거지역이 조성되고 있어 휴양과 주거 그리고 학문, 과학, 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전원적인 과학기술 도시가 되고 있다.
유성은 온천수가 쏟아져 나오는 탕거리를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너른 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끝으로 명산이 둘러 싸여 있어 아늑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계룡산 줄기인 갑하산과 우산봉이 둘러싸고 북쪽으로는 금병산과 적오산이 북풍을 막아 주고 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도덕봉과 금수봉이 자태를 뽐내며, 갑천 너머 동쪽으로는 계족산 줄기가 감싸고 있다.
조선초 이성계(태조)가 도읍 답사차 이곳 신도안 지역에 왔을때, 무학대사가
이 산을 보고 금계 포란형(金鷄抱卵形)이요, 비룡천형(飛龍天形)이라 함에
산의 이름이 계룡산이 되었다 한다.
- 도읍지 선정 : 그러나 뱃길과 교통이 불편하여 도읍으로 적당치 않다는 무학대사 말을 듣고 그만두었다고도 한다.
- 전설 : 이성계의 꿈에 계룡산 산신이 나타나 흙 한줌도 건들지 말라는 말에 신발까지 털고 갔다는 설 이 남아 있다. 인근에 신털이봉의 지명이 남아있다고 한다.
- 유적 : 왕궁공사를 벌였음을 입증하는 도량과 초석이 100여개 이상 남아있다.
- 신흥종교 본산 : 정감록 풍수설에 의한 십승지지의 명당이라 하여 화를 면하려 각지
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잡신과 잡종교의 온상지로 토속신앙과 무속등
40여 신흥종교가 모여 있었던 곳이다.
- 현재 : 계룡대(육군, 해군, 공군)본부가 들어서 있어 과거의 풍수지리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참고 8 : 자작나무와 은사시나무
- 자작나무 : 쌍떡잎식물 참나무목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 깊은 산 양지에 높이 20m까지 자라며, 한국의 중부 이북과 일본에 분포한다.
나무껍질은 흰색이며 옆으로 얇게 벗겨지고 작은가지는 자줏빛을 띤 갈색이며 지점(脂點)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삼각형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뒷면에는 지점과 더불어 맥액(脈腋)에 털이 있다. 암수한그루로서 꽃은 4월에 피고 암꽃은 위를 향하며 수꽃은 이삭처럼 아래로 늘어진다. 열매이삭은 밑으로 처지며 깊이 4cm 정도이고 포조각의 옆갈래조각은 중앙갈래조각 길이의 2∼3배 정도이다. 열매는 9월에 익고 아래로 처져 매달리며, 열매의 날개는 열매의 나비보다 다소 넓다.
나무껍질이 아름다워 정원수·가로수·조림수로 심는다. 목재는 가구를 만드는 데 쓰며, 한방에서는 나무껍질을 백화피(白樺皮)라고 하여 이뇨·진통·해열에 쓴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그림의 재료가 자작나무껍질이며, 팔만대장경도 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 은사시나무 : 쌍떡잎식물 버드나무목 버드나무과의 낙엽교목. 계곡이나 산기슭아래 분포.
은수원사시나무라고도 한다. 1950년 미국산 은백양과 수원사시나무 사이에서 생긴 자연잡종이다. 은백양과 비슷하지만 잎가장자리가 갈라지지 않고 가지가 더 적게 갈라지며 잎의 털이 떨어지기도 한다. 겨울눈은 달걀 모양이고 흰 털이 난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거나 타원형 또는 둥근 모양이며 길이 3∼8cm, 나비 2∼7cm이다. 불규칙한 이 모양의 톱니가 있으며 뒷면에는 흰 솜털이 빽빽이 난다. 잎자루는 길이 1∼5cm로서 납작하다.
꽃은 암수한그루이거나 암수딴그루이고 4월에 잎보다 먼저 핀다. 빛깔은 노란빛을 띤 녹색이고 꽃차례는 아래로 처진다. 열매는 삭과로서 5월에 익는다. 번식은 꺾꽂이로 한다.
수원사시나무에 비해 잎에 털이 빽빽이 난다. 수원사시나무는 은사시나무에서 갈라진 종류로서 사시나무와 비슷하다. 은백양과 수원사시나무를 인공적으로 교배하여 만든 것을 은수원사시나무 또는 현사시나무라고 하지만 은사시나무와 구별하기 어렵다. 관상수·가로수로 많이 심으며 생장력이 강하다. 민간에서는 나무껍질과 잎을 출혈·치통 등에 약재로 쓴다.
* 참고 9 : 두꺼비 (toad)
개구리목 두꺼비과(Bufonidae) 양서류의 총칭. 몸길이 10∼15㎝의 대형종이 많은데, 열대아메리카에 분포하는 파나마왕두꺼비(Bufo marinus)의 최대 몸길이는 20㎝이며 남아프리카·동남아시아에는 2∼3㎝의 작은 것도 있다. 몸생김새는 대체로 통통하고 머리가 크며 몸통이 굵다. 뒷다리가 짧고 발가락 사이의 물갈퀴는 제대로 발달되지 않았다. 피부는 꺼칠꺼칠하고 등에 크고 작은 돌기가 산재하며 눈 뒤쪽에는 자위용(自衛用) 귀샘이 발달되어 있다. 위험에 접하면 사지를 오므리고 머리를 숙여 귀샘을 적의 코 앞에 내민다. 귀샘에서 분비되는 독액은 부포톡신이라 하며 부포탈린 등 여러 종류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동물의 구강이나 점막에 묻으면 염증을 일으키고, 심근·신경중추에 작용해 적을 약하게 만든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두꺼비 독을 강심제로 이용하고, 한국에서도 한약의 원료로 쓰인다. 두꺼비는 평지의 숲·덤불 등 습한 장소에 많고, 번식기 이외에는 물에 들어가지 않으나 북아메리카의 콜로라도두꺼비(Bufo alvarius)는 산골짜기의 시냇물에 산다. 또한 나무에 오르는 종도 있다. 번식기에는 서식지에서 산란지(池)까지 몇 백 m에서 몇 ㎞의 거리를 크게 무리지어 이동하는데, 유럽에서는 두꺼비를 교통사고로부터 지키기 위해 도로표지를 세워 두고 있는 지방도 있다. 연못 등에서 무리지어 울음소리를 내면서 물 속에 끈 모양의 긴 난괴(卵塊)를 낳는다. 알은 작으며 한 마리의 암컷이 1∼2만 개까지 산란한다. 아프리카Nectophrynoides 속은 몸길이가 2∼3㎝인 소형이지만, 두꺼비 중 유일한 난태생으로 새끼를 100마리쯤 낳는다. 한국에는 두꺼비(Bufo fufo gargarizans)·물두꺼비(Bufo kankii) 등이 있으며, 약 10속 250종이 오스트레일리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세계 각지에 널리 분포한다.
*** 재미난 질문 : 황소개구리와 두꺼비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답변 1: 기술 따라 달릅니다... / 아, 글쿤요. --; (이거 참 황당하죠?^^)
답변 2: 지난 1998년에는 수컷이 10배 이상 덩치가 큰 ‘생태계의 침입자’ 황소개구리에 올라 타 결국은 죽인다는 사실이 밝혀져 ‘토종 생물의 지킴이’로서 또다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암컷의 등에 올라 타 배를 눌러 산란을 돕는 생식습성에 비춰 황소개구리를 질식사 시킨다는 설과 독을 내뿜어 죽인다는 설 등이 제기됐을 뿐 아직은 정확한 요인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연구 필요성도 높다고 하네요.
황소개구리는 두꺼비를 잡아먹지 못합니다. 예전에 우리 인간이 물두꺼비의 알이 정력제에 좋다면서 그 알을 먹더니만... 그 사람들 모두 죽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몸이 독성분으로 되어있는 두꺼비를 먹을수 없습니다. 따라서, 두꺼비의 승리~!
답변 3: 1967년도에도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두꺼비와 황소개구리와 싸우면.. 황소개구리가 이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덩치도 두꺼비보다는 2배 더 크고 힘이 가장 세 우리 나라 두꺼비는 이기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황소개구리가 이긴다는 것이지요. 독이 있는 두꺼비라고해도 황소개구리는 등이 좀 딱딱해 두꺼비에게는 물리지 않는 것이지요.
답변 4: 두꺼비가 이깁니다. 위 답변에서 두꺼비가 황소개구리를 죽이는 두가지 설이 있다고 했죠? 답은 두번째 ‘독으로 죽인다’ 입니다. 두꺼비는 황소개구리하고 짝짓기를 하려고 올라타서 안는데, 황소개구리가 짝짓기 하는데 도움을 안주니까 두꺼비가 스트레스로 인해 독을 내뿜어 죽이는 것이라고 하네요. 만약 안아서 죽이는 거라면 우리나라 두꺼비들은 다 죽었겠죠. 그리고 실제 덩치는 황소개구리가 큽니다.
* 참고 10 : 달뿌리풀 Phragmites japonica (용상초, 용수염풀)
벼목 벼과의 외떡잎식물. 높이 2m. 여러해살이풀로서 뿌리줄기는 땅속에, 가는 가지는 땅위에 가로로 뻗는다. 뿌리줄기는 마디에서 뿌리를 내면서 땅 위로 뻗는데 이 때문에 달뿌리풀(뿌리가 달리는 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뿌리줄기는 속이 비었으며 마디에 털이 빽빽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가 10∼30cm, 폭이 2∼3cm이며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입집으로 되어 줄기를 둘러싸고 있다. 잎집의 윗부분은 자줏빛이 돌며 잎혀는 짧은 털이 줄지어 난다. 꽃은 자주빛으로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가지는 거의 돌려나고 작은이삭이 빽빽이 있다. 수꽃은 가장 밑에 있는 꽃이고 다른 꽃은 양성화이다. 수술은 3개이고 꽃밥의 길이는 1.5mm이다. 전반적으로 갈대보다는 작은 편이며 잎이 한쪽 방향으로만 달리는 경향이 있다. 줄기는 원기둥 모양이고 모여 나며 곧게 서고 마디에 짧고 부드러운 털이 난다. 잎은 어긋나며 좁은 바늘모양이고 가장자리가 거칠거칠하고 길며 털이 없다. 꽃은 8∼9월에 원추꽃차례로서 피는데 길이 25∼35㎝로 크며, 처음에는 자주색을 띠었다가 뒤에 자주빛을 띤 갈색으로 바뀐다. 작은 이삭은 꼭지가 가늘고 4∼6송이의 꽃으로 이루어진다. 수술은 3개이고 암술대는 깃털모양이며 갈대에 비해 가는 가지는 가로로 길게 뻗으며 마디에 짧고 부드러운 털이 난다. 개울가의 모래땅이나 산의 골짜기에 나며, 한국·일본·중국·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비교 - 갈대 : 벼목 볏과의 외떡잎식물. 높이 3m. 여러해살이풀로 뿌리줄기는 거칠고 크며 길게 가로 뻗고 마디에서 많은 수염뿌리가 나고 황백색이다. 줄기는 길고 크며 원기둥형이고 단단하며 모여 나고 곧게 선다. 잎은 2줄로 어긋나며 좁고 긴 바소꼴이고 길이 50㎝, 나비 4㎝ 내외이며 끝이 점점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거칠거칠하며 녹색이다. 엽초는 털이 없으며 설편(舌片)은 짧고 가장자리에 털이 난다. 꽃은 원추꽃차례로서 대형이며 길이 15∼50㎝이고 줄기 끝에 나며 많은 가지가 갈라지고, 다수의 작은 이삭이 약간 밀착하며 처음에 자색이고 후에 자갈색이 된다. 작은 이삭은 꽃이 5개이고 가늘고 길며 끝이 날카롭다. 영(穎)은 2조각이고 길이가 같지 않으며 총포의 털은 길고 꽃보다 길게 나온다. 꽃은 9월에 핀다. 습지나 갯가, 호수 주변의 모래땅에 군락을 이루고 자란다. 줄여서 <갈>이라고도 한다. 한국 및 북반구의 온대·난대 및 아한대에 분포한다.
* 참고 11 : 수련과 연꽃의 차이
수련은 연밥이 없고, 연꽃은 연밥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 연꽃은 열매와 연꽃이 봉우리 때부터 만들어져서 나온다.(다른 꽃은 꽃이 피고 떨어지고 나서 열매가 나온다.)
또한 수련은 아침 일찍 피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꽃잎이 오므려지지만, 연꽃은 하루 종일
피어있는데 이 점도 큰 차이다.(사진전문가들은 이 걸로 그 차이를 금방 알아냄)
또 제가 알기로 수련은 잎이 방패모양의 타원형으로 수면에 딱 달라붙어 떠 있지만, 연꽃잎은 호박잎처럼 생겨서 물위로 높이 솟아오른 것도 있고, 물에 그냥 떠있는 것도 있는 점이 다릅니다. 수련 잎은 종에 따라서 사람이 올라타도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 크고 넓게 자라, 광고에 아이가 연잎위에서 놀고 있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이게 바로 수련 잎입니다.
- 수련 睡蓮 Nymphaea tetragona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여러해살이물풀. 속명은 그리스신화의 물의 요정 님프에서 연유한다. 수련속(睡蓮屬)에는 약 40종이 있는데 모두 수생의 여러해살이풀이며, 대형의 아름다운 꽃이 핀다. 진흙 속을 옆으로 기거나 덩이줄기 모양인 큰 뿌리줄기를 가진다. 잎에는 긴 잎자루가 있고 잎새는 타원형이며 수면에 뜬다. 꽃은 뿌리줄기에서 뻗은 긴 꽃자루 위에 1개가 핀다. 꽃받침조각은 4∼6장이고 꽃잎과 수술은 다수이며 씨방의 측벽에 붙는다. 씨방은 5∼40장의 심피(心皮)로 되어 있고, 각 실(室)의 측벽에 다수의 밑씨가 붙는다. 암술머리는 쟁반모양이다. 수련은 북반구 온대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비교적 소형의 종이며, 꽃은 흰색이고 지름은 약 5㎝이다. 오전에 꽃이 피었다가 저녁 무렵에 닫히기를 3∼4일간 계속한다. 수련속의 식물은 꽃이 아름다우므로 연못이나 온실에서 관상용으로 재배된다. 종자와 뿌리줄기는 녹말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세계 각지에서 식용되고 있다. 또한 뿌리줄기는 누파리딘을 함유하고 있어 위장약으로 사용된다. 〔원예품종〕 관상용 수련에는 교배 등으로 개량된 품종이 많이 있다. 온대계의 수련에서 내한성의 품종군으로, 열대계의 수련에서 아름다운 열대수련으로 개량되었다. 내한성 품종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의 L. 마를리아크가 개량한 아트락시옹 Attraction, 로제아 Rosea, 크로마텔라 chromatella, 알비다 Albida 등이다. 이들은 오늘날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이 무리를 하나의 종으로 보아 그를 기념하여 N. marliacea라고 부른다. 이 밖에 유럽산인 N. alba, 북아메리카∼멕시코산인 N. mexicana 등이 있고, 한국에도 야생하는 수련 등을 교배한 품종이 많다. 열대수련은 주로 미국에서 활발하게 품종개량이 이루어지고 있다. 열대권에서는 해마다 흰색·황색·분홍색·홍색·청자색 등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꽃의 지름이 30㎝에 이르는 대형종도 있다. 개화시간으로 보면 꽃이 낮에 피는 품종군과 밤에 피는 품종군이 있다. 원종계(原種系)로는 아프리카 원산인 N. capensis계가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다. 또한 북아프리카 원산인 N. caerulea와 앞의 종과의 교배에 의한 N. pennsylvania, 밤에 꽃이 피는 N. lotus와 N. rubra, 또는 이들의 교배종인 N. devoniensis 등도 재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연못에 심어 여름에 그 꽃을 즐긴다. 봄에 뿌리줄기의 포기나누기로 번식시킨다. 〔수련과 Nymphaeaceae〕 수련·개연꽃·순채 등을 포함하는 8속, 약 100종으로 열대에서 온대에 걸쳐 분포한다. 모두 수생식물이다. 잎은 홑잎으로 방패모양의 것이 많고 종종 수상잎과 수중잎의 2가지 형태를 볼 수 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이 많고 꽃받침조각은 3∼6장이며 꽃잎과 수술은 다수이다. 씨방은 상위(上位)에서 하위(下位)까지 여러 가지 진화단계를 나타내고 밑씨는 씨방의 벽면에 붙는다. 종자는 단단한 종피(種皮)에 싸여 있고 녹말을 많이 함유하는 배젖을 가진다. 수련과는 2개의 아과(亞科)로 분류된다. 수련아과는 수련·개연꽃·가시연꽃 등을 포함한다. 뿌리줄기가 굵고 꽃은 대형이며 심피(心皮)는 합착해 있다. 순채아과에는 순채·어항마름이 있고 꽃은 비교적 소형이며 심피는 떨어져 있다. 수련과의 식물은 다수의 꽃잎·수술·심피를 가지는데, 이 점에서 미나리아재비나 목련의 무리와 유연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수련·큰가시연꽃 등은 대형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므로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된다. 또 어항마름을 금붕어와 함께 수조에 넣어 가꾸면 섬세한 수중잎을 관상할 수 있다. 수련·개연꽃·가시연꽃은 누파리딘이라는 알칼로이드를 함유하고 있어 뿌리줄기와 종자를 민간약으로 사용하고 있다.
- 연꽃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뿌리줄기는 흰색이고 가늘고 길며 진흙 속을 기는데, 끝부분은 비후(肥厚)하여 연뿌리가 된다. 잎은 긴 잎자루가 있으며 수면에 뜨는 잎과 수면 위로 올라온 잎이 있다. 잎새는 원형이며 잎자루에 방패모양으로 붙고 지름은 약 30㎝이다. 잎의 표면에 무수히 많은 작은 돌기가 있어 물방울이 멈추었다 흐르곤 한다. 꽃은 빨간색 또는 흰색이며 여름에 꽃자루 위에 홀로 피고 꽃덮이조각은 많이 있으며 거꿀달걀꼴이다. 수술은 많고 수술대는 실모양이다. 꽃턱은 역원뿔형이고 많은 암술이 벌집모양으로 가득 차 있다. 종자는 넓은 타원형으로 길이 1㎝ 정도이며 검고 단단한 껍질이 있다. 종자의 수명은 길어 2000년 전의 종자가 발아할 정도이다. 동아시아의 열대에서 온대에 걸쳐 널리 분포한다.
식용·약용
연의 거의 모든 부분이 약용된다. 한방에서는 연뿌리의 마디를 우절, 잎을 하엽, 잎자루를 하경, 꽃의 수술을 연수, 열매 및 종자를 연실, 꽃턱을 연방이라 하여 생약으로 쓴다. 잎·수술·열매·종자에는 알칼로이드가 들어 있어 다른 생약과 배합하여 위궤양·자궁출혈 등의 치료제로 쓴다. 연실은 자양강장제로 다른 생약과 배합하여 만성설사·심장병 등에 쓴다. 또한 연뿌리는 식품으로도 쓰이며, 녹말이 많은 종자도 식용된다.
상징
연은 더러운 물 속에서 자라나 깨끗한 꽃을 피운다고 하여 예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불교에서는 속세의 더러움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깨끗한 꽃을 피운다는 청정함의 상징으로 극락세계를 이 꽃에 비유하였다. 즉 극락세계를 <연방>이라고 하였으며,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태>라 하였다. 또한 연에 종자가 많은 것을 보고 민간에서는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 여성의 옷에 연꽃무늬를 새겨 자손을 많이 낳기를 기원하였다.
* 참고 12 : 원앙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27호로 지정되었다. 몸길이 43~51cm, 몸무게444~550g이다. 수컷의 몸 빛깔이 아름답다. 여러 가지 색깔의 늘어진 댕기와 흰색 눈 둘레, 턱에서 목 옆면에 이르는 오렌지색 깃털(수염깃), 붉은 갈색의 윗가슴, 노란 옆구리와 선명한 오렌지색의 부채꼴 날개깃털(은행잎깃) 등을 가지고 있다. 암컷은 갈색 바탕에 회색 얼룩이 있으며 복부는 백색을 띠고 눈 둘레는 흰색이 뚜렷하다.
한국에서는 전국의 산간 계류에서 번식하는 흔하지 않은 텃새이나, 겨울에는 겨울을 나려는 무리들이 내려오므로 봄·가을의 이동 시기에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경기도 광릉 숲에서는 해마다 15∼20마리의 무리가 번식한다. 여름에는 4∼5마리 또는 7∼8마리의 무리가 활엽수가 우거진 계류나 물이 괸 곳 또는 숲속 연못 등지에 살면서, 저녁에는 계류의 바위 위나 부근의 참나무 가지에 앉아서 잠을 잔다. 겨울에는 북녘에서 번식하는 무리가 내려와 저수지·수원지·호수·바닷가·냇가 등지에서 몇 마리 또는 100∼200마리씩 겨울을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낮에는 사람의 눈을 피해 주위가 가려진 나무 밑, 바위, 물위로 뻗은 나뭇가지에 앉아 머리를 등으로 올리고 한쪽 다리는 들고 잔다. 한배에 9∼12(때로는 13∼14)개에서 22개까지 알을 낳아 28∼30일 동안 품으며 알을 깨고 나온 새끼는 나무 위의 구멍에서 땅 위로 뛰어내려 물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다. 도토리를 비롯한 나무열매를 즐겨 먹으며 달팽이와 작은 민물고기도 잡아먹는다. 한국·사할린섬·일본·타이완·중국(북동부)·영국 등지에 분포한다.
* 참고 13
성북산성(城北山城)
▶ 시지정기념물 제 18 호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성북동20-5
▶ 시 대 : 백제시대
원내동에서 교촌동을 지나 산길을 따라 성북동 원잣뒤 동네쪽으로 넘어가다 보면 성재고개의 남쪽에 산성의 흔적이 나타난다. 이 산성이 성북산성이다.
표고 230m에 위치한 이 산성의 형태는 테뫼식이다. 돌로 쌓은 이 산성의 둘레는 약 450m정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석축은 무너져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며, 북벽의 일부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문지는 동북벽의 모통이에 위치하여 산의 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 곳과 그리고 북벽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 있다. 동벽과 남벽은 모두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삭토의 방법으로 조성하였으나 지금은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파괴되었다. 성안에서는 격자무늬, 파상무늬등을 새겨 넣은 경질토기와 가와파편 등이 수습되고 있다.
이 성은 7세기 전까지는 두량이성, 주류성, 지라성, 두릉윤성으로 불리우며, 백제의 중요한 산성중의 하나였었다는 학설이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또 15∼16세기에 와서는 "산장산성"으로 불리워졌고, 오늘날에는 이 부근을 "산성이재","성재"로 부르고 있다.
성북산성은 규모, 출토유물, 인문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백제의 중요한 산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전과 부여 지역을 잇는 주요 교통로의 인근에 위치해 있어 대전동부지역의 다른 산성과도 중요한 연계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어느때부터인지 성안에 분묘가 하나둘씩 생겨나 산성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아예 무연고자들의 공동묘지로 사용했다. 이는 허술한 상태로 방치되어 온데다가 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 때문에 산성 곳곳이 파괘돼 원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 참고 14 : 간디학교 http://gandhischool.net 경남 산청 소재
간디학교는 농가와 뚝 떨어져 섬처럼 동그마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경남 진주에서도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들어가 30여분을 더 걸어야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며 전인교육을 하겠다"는 설립목적에 딱 맞는 곳입니다.
입지조건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수업을 비롯한 모든 운영은 학생들의 자율적 선택을 줄기로 짜집니다. 일방적으로 학교에서 짜주는 수업시간표가 아니라 자기 관심과 장래 희망에 따라 스스로 수업시간표를 짭니다. 오전에는 국·영·수 등 지식교과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표현예술과 디자인 등 감성교과 수업에 참가합니다. 특히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육 철학에 따라 직접 옷을 짓거나 먹거리를 만들어 보는 의식주 교과가 따로 운영됩니다.
이 학교는 `작은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한 학년 20명 정원에 중·고 과정에 104명이 학생의 전부입니다. 지난 98년 고교과정을 정식 인가받아 내년 초 처음으로 16명의 졸업생을 배출할 예정입니다. 전교생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 등 공동체 생활을 하기에 토론과 합의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조절하는 법을 배웁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학생과 교직원이 모두 참가해 학교 문제를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식구총회"를 열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는 대학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생이기 이전에 청소년입니다. 인생의 한 과정에 있기에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학생들 스스로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꾸려가도록 돕는 교육을 하는 것이지요.” 이 학교 양희창(38) 교장은 간디학교의 교육이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전화 (055)973-1049.
부랴부랴 써서 올리느라 다시 읽어보니 틀린 데가 몇 군데 있어 고치러 들어왔더니 그새 안선생님께서 다녀가셨네요. 교촌에 향교가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군요. 아하~^^ 답사다닌 시간보다 후기 쓰는 시간이 배로 드는 것 같아요. 궁금한 거 있으면 검색해서 자료 찾아가며 쓰다보니. 그런데 그것도 참 즐겁답니다.^^
하항... 수련과 연꽃이 그렇게 다른거구나.. 지난 금요일날 아주미술관 가서 찍어온 사진을 올려봅니다. 찍으면서도 이거 이름을 뭐라 해야 하나? 하고 궁금하던 참이였는데.. 이제 확실해졌네요. 이 글의 리플로 그 사진 보여드릴께요. 저처럼 피자모양이 어쨌다는거지? 하실분들을 위해 ^^
정간사님의 열정적인 멋진 모습 또 뵙고 싶었는데 출장 중이셔서 못 오셨군요. 에구, 아쉬워라. 장동환님, 저 그냥 애 키우는 엄만데요.... 후기 쓰다보니 답사 다니면서 궁금했던 거 자료 찾아읽다가 나만 혼자 알기엔 아까워서 걍 후기에 집어넣는 거랍니다. 그래서 씨잘데없이 후기가 길어지는 느낌이...^^;;
첫댓글 대단하군요... 어찌 이렇게 기록을 하시는지... 역시 홍주영 선생님이 붙여준 별명 '기자수첩'이 정말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교촌동은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서 교촌동이지요.
부랴부랴 써서 올리느라 다시 읽어보니 틀린 데가 몇 군데 있어 고치러 들어왔더니 그새 안선생님께서 다녀가셨네요. 교촌에 향교가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군요. 아하~^^ 답사다닌 시간보다 후기 쓰는 시간이 배로 드는 것 같아요. 궁금한 거 있으면 검색해서 자료 찾아가며 쓰다보니. 그런데 그것도 참 즐겁답니다.^^
수련과 연꽃의 차이는 쉽게 - 한조각 떼어낸 피자모양( 둥근것에 잘려나간 부분) 이면 수련이고, 그냥 둥근잎이 다 있으면 연꽃입니다. 간혹, 피자모양은 아닌데 잎이 갈라져 있으면 이것도 수련입니다.
하항... 수련과 연꽃이 그렇게 다른거구나.. 지난 금요일날 아주미술관 가서 찍어온 사진을 올려봅니다. 찍으면서도 이거 이름을 뭐라 해야 하나? 하고 궁금하던 참이였는데.. 이제 확실해졌네요. 이 글의 리플로 그 사진 보여드릴께요. 저처럼 피자모양이 어쨌다는거지? 하실분들을 위해 ^^
비오는 새벽나들이라.... 넘 좋았겠네요. 전 출장중이라 대전에 없어 넘 아쉽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 하셔요. 말그미님. 놀라운 답사기의 연속이네요.
정간사님의 열정적인 멋진 모습 또 뵙고 싶었는데 출장 중이셔서 못 오셨군요. 에구, 아쉬워라. 장동환님, 저 그냥 애 키우는 엄만데요.... 후기 쓰다보니 답사 다니면서 궁금했던 거 자료 찾아읽다가 나만 혼자 알기엔 아까워서 걍 후기에 집어넣는 거랍니다. 그래서 씨잘데없이 후기가 길어지는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