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김주용
옹송옹송한 기분으로 살피꽃밭 곁 따라간다.
샘바리 마냥 덜퍽진 꽃들 부러워 나도 몰래
바듬히 입술 내밀고 비뚜로 서서 흘기고 말았다.
꽃송이 하나 둘씩 돌라방쳐 가슴에 품고
노랑, 분홍, 자주 꽃잎 더금더금 덧게비치면서
애처럼 나뱃뱃한 얼굴 성긋벙긋 웃으며 논다.
꽃들 얼굴 봄이 단장시켜 댕가리진 지 옛날이고
조각보 마냥 꽃잎 덧대 여름의 연 만드는데
꿀벌이 둘레 춤추며 부스댄다고 부르댄다.
중앙일보 시조 백일장 2006년 5월 장원작
심사장 술렁거리게 한 대학생 응모자
첫 작품으로 장원 김주용씨
심사장이 술렁거렸다.이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혹여 표절은 아닐까. 아니다, 여태 이런 작품은 본 적이 없다.아무리 그래도 첫 작품이 이 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는가.이한성 이정환 심사위원 둘은 좀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5월 중앙 시조백일장 장원을 차지한 김주용(22.성균관대 독분과 3년. 사진)씨의 '여름'은 놀라웠다.
`샘바리` `바듬히` `돌라방쳐` `나뱃뱃한` 등, 시인도 사전을 뒤져봐야 할만한 수준의 순우리말이 수시로 등장했다. 더욱 놀라운 건, 생경한 어휘를 부리는 솜씨였다. 낯선 어휘들은 적확한 장소에 적확한 의미를 띄고 배치돼 있었다. 김씨에게 전후 사정을 물어야 했다.
"시조시인 이지엽(경기대 교수) 선생의 '시 창작 강의' 수업을 듣고 있다. 3학점짜리 국문과 전공 수업이다. 이 수업에서 시조 짓기를 배웠고 선생님의 권유로 시조백일장에 응모하게 됐다."
확인 결과 성대 학생은 모두 44명이 응모한 것으로 집계됐다. 평소 시조 사랑이 지대한 이지엽 선생이 학생들에게 시조 백일장 믕모를 숙제로 낸 것이었다. 선생님이 시킨 건 알겠는데, 독특한 언어 능력은 아직 모를 일이었다.
"평소 시를 쓰고 싶었다. 전공은 독문학이지만, 부전공이 국문학이다. 이지엽 선생의 수없을 신청한 것도 나만의 문체를 갖고 싶어서였다. 선생님께서 '사전을 보면서 자신만의 어휘 단어장을 만들라'고 하셔서 그대로 따라해 봤다."
심사위원들은 한결같이 "깜짝 놀랄 수준"이라고 말했다. 잘 다듬으면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겠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선자는 되레 고개를 숙였다. 그 자체로 "우리말의 어감은 정말 사랑스럽다.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가 된다. 나는 부끄럽다. 나는 그저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시조를 지었을 뿐이다." 자유시도 좋지만 시조가 오히려 창작력을 높이는 것 같다며, "앞으로 시조를 계속 쓰고 싶다"고 당선자는 말했다. 그러나 당선자가 모르는 사실 하나가 있다. 월별 백일장에서 이토록 주목받은 작품은 전례가 없다.
심사위원 한마디
맛깔스런 우리말 녹여낸 요리 솜시 놀라워
시조의 한 수 즉 단수는 3장 6구 12마디로 되어 있다. 초장과 중장은 '3/4/3/4', 종장은 '3/5/4/3' 구조를 가진다. 각 마디는 한두 자의 가감이 허용되나 종장 첫 마디는 석 자로 불변이고, 둘째 마디는 5 이상 7 이하가 되어야 정격이라 이른다. 흔히 초보자의 작품에 한 장에서 한마디가 부족하거나 불필요하게 늘어난 경우를 볼 수 있다. 각 장은 네 마디로서의 의미구조를 충실히 갖출 때 비로소 시조의 골격을 이루게 된다. 종장의 반전은 창의적인 공간 창출의 좋은 예이다. 그래서 ㅜ대부붖의 시조는 종장에 의도한 주제가 함축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응모자들은 정격에 충실한 작품을 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입상작을 보자. 장원에 오른 김주용의 '여름'은 말 드대로 괄목할 만하다. 백석의 시나 조운의 시조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고유어를 살려 쓴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놀랍기가지 하다.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말들을 행간에 적절히 녹여 표현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샘바리(샘이 많은 사람), 덜퍽진(푸지고 탐스러운), 바듬히(짜인 몽양이 밖으로 약간 벋다), 돌라방쳐(어떤 것을 빼돌리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대신 넣어), 더금더금(조금씩 더하는 모양), 나뱃뱃한(얼굴이 나부죽하고 토실토실한), 댕가리진(됨됨이가 깜찍스럽게 다라진), 부스댄다(부석부석 소리를 낸다),부르댄다(선낸 소리로 떠들어 댄다)등 우리말이지만 낯선 낱말들을 적재적소에 놓아 독창적인 작품을 빚은 점은 주목을 요한다. 쉽게 읽히지는 않겠지만 시어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차상 홍원경의 '소매물도에서'도 눈길을 끈다. 여정에서 맞닥뜨린 자연 경물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삶의 무게를 실었다는 점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