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이용자 + 보호자 + 활동보조인 = 좋은 친구
취재도움 엄정심
글 채희아 조현호
복지관 5층엔 셀프운동실이 언제나 열려있다. 복지관 이용자라면 누구나 오고 싶을 때 와서 운동도 할 수 있고, 운동을 하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땐 소박한 담소도 함께 나눌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바쁘게 정신없이 사는 사람과는 조금은 다른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한 방울 한 방울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삶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주는 것 같아 보인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중에서도 유난히 참 아름다워 보이는 분이 있다. 중년의 나이를 조금 넘겨 보이는 두 사람이 일주일에 3~4번은 이곳에 와서 사이좋게 운동을 도와가며 삶의 즐거움을 뽐내는 것 마냥 함께 하는 주변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누구일까? 과연 무엇이 이들을 웃게 하는 걸까?
『우린 베스트 프렌즈!!(We are Best Friends )』
“친구를 얻은 느낌 이예요~ 뭐랄까... 전 그 사람의 조언자나 전문가도 아니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선생도 아녜요. 그저 함께 하는 동료이기에, 그 안에서 의견 조율도 함께 하면서 자연스레 이 사람과 또 이분의 보호자와 더불어 친구가 된 거죠. 전 보조자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엄정심님은 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업 중에서 활동보조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보조인이다.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이용자는 바로 동갑내기인 강명규님이다. 우연치곤 참 소중한 관계이다. 두 사람에겐 한사람은 돕고 다른 한사람은 도움을 받는, 그런 일방적이고 고정된 관계 역시 아니다. 바로 함께하는 좋은 친구이다.
“처음엔 집에서 가정주부로 있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물론, 집에서 살림한다는 것이 가치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무언가 밖에 나가서 나에게 맞는 ‘일’이란 걸 해보고 싶었고, 사회 생활이라는 것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의 동의를 얻고 '활동보조인’이라는 일을 하게 된 거죠. 사실, 그 전에 성북병원에서 행려자들을 위해 간병인으로 봉사한 적이 있었는데, 1년을 좀 넘게 하면서 누군가에게 간병을 하고 돌보는 것에 대한 기술을 많이 배웠었죠. 그러다가 활동보조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고 용기를 내서 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참 도움이 되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해서 활동보조교육을 받기 시작했어요. 교육 이수를 하고서, 마침 이청자 관장님이 추천을 해주신 덕분에 서대문장애인복지관에 가게 되었고, 문현주 선생님의 소개로 강명규님을 만나게 된 거죠. 처음 만났을 때, 강명규님은 비교적 활동하기에 다소 불편한 부분이 많았어요. 잘 움직이지도 못했을 뿐더러, 함께 살고 있는 부인 역시 다 감당하기엔 벅찬 부분도 있어보였어요.”
『‘둘’에서, ‘셋’이 함께하기』
“강명규님의 활동보조인으로 처음 활동을 시작하면서, 내 자신이 정한 원칙들이 몇 개 있었어요. 그 중에 하나는 ‘서로 간에 존중’이었어요. 강명규님은 물론이고, 그의 아내 분까지 친절한 것은 물론이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하려 했어요.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까지 장애인 건 아니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있는 모습 그대로, 예의를 갖춰서 대하는 것이 참 중요하단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활동보조인으로 강명규님을 도와드리거나 씻겨드릴 때에도 ‘남자’라는 생각보다 보조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아내분과도 자연스레 협력이 잘 되었고, 점차 ‘재활’이라는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복지관에 월례모임을 하러 갔는데, 복지관에 있는 셀프운동실을 알게 된 거죠. 그 전까지만 해도 강명규님의 경우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한계를 느껴서 집으로 돌아온 상황이어서 제가 먼저 셀프운동실 이용을 제안했어요. 처음엔 어렵게 시작한 거지만 점점 운동을 통해서 익숙해지다 보니 지금은 공원에 매일 30분씩 걸을 정도로 기능이 많이 좋아졌어요. 참 놀라운 일이죠~? ^^* ”
『관계망의 핵심, 바로 마음이 통하는 ‘대화’죠~』
“둘 다 서울이 고향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대화가 조금 편했어요. 그 중에서도 좋아하는 가요나 팝송을 얘기하고 있노라면 참 재미있었죠.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어요. 같은 관심사나 같은 공감대가 생기면서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일어난 거죠. 일에서 시작된 관계가 일에서 끝나는 게 아닌, 정말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통해서 관계망이 형성되었어요. 누구 한 사람에게만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망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망이 되어준 거죠. 강명규님과 보호자분은 새로 사귄 친구이자 보조자가 생겨 좋은 거구, 저에겐 가정에서의 무료함을 달래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친구이자,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멋진 생각도 할 수 있도록 도와 준거죠.
사실, 집에 오면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아요. 그러다보니 활동보조와 관련된 생각도 많이 나기도 하고 이용자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다 보니, 문득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보호자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짝짜꿍이 맞았어요. 그러면서 점점 관계가 생겼고, 그 관계가 없었다면 아마 힘들었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관계’예요. 이런 관계가 없었다면 실패했을 거예요.”
『명규씨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구요? 하하하~ 강명규님이 점점 기능이 좋아져서 지금처럼 잘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볼 때가 최고죠~! 처음에 강명규님의 경우, 걷기조차도 힘들었는데,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서 조금씩 걷기를 통해 많이 좋아졌어요. 가끔씩 날이 좋은 날이면 셋이서 함께 월드컵공원에 가서 3~4시간씩 산책도 하면서 많이 걸어요. 쉽지는 않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강명규님을 보고 있으면 정말 코끝이 찡하죠.
이런 활동을 해서 그런지 딸이 재수한다고 할 때, 딸한테 특수교육과를 가보면 어떻겠냐고 설득도 했었어요. 그러다보니 나중엔 딸이랑 얘기도 잘 하게 되는 편이고, 이래저래 제 맘을 넉넉하게 해주는 것들이 많네요.”
『봉사냐, 직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많은 분들이 현재 활동보조인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 분들 중에는 적은 시간동안 일하시는 분도 계실 테고, 저처럼 많은 시간을 일하시는 분도 계실꺼예요. 중요한 것은 일하는 시간과 관계없이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활동보조인이 하는 일은 단순히 봉사차원이 아닌, 그것을 넘어선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야 하고 사명감도 가져야 하는 것이죠. 물론 쉽지 않죠. 근무 환경이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있을 테고, 이용자와의 관계가 아직까진 어렵거나 서먹한 부분도 있을 거예요. 절대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죠. ‘작은 배려’와 ‘실천’이 ‘망설임’이라는 자물쇠를 열어주는 열쇠가 되어줄 거예요.“
현재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에는 엄정심님과 같이 활동보조인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약 140명이나 된다. 또한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시는 장애인분들은 약 180명에 이른다. 각자가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일하고 있지만 서비스를 받는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할 때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활동보조인 엄정심님은 이용자의 재활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파트너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엄정심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활동보조인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며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그들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은 활동보조인이나 이용자들에게 여러 가지 시행착오과정이 있는 시기이지만, 앞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통해 지금보다 더 많은 중증장애인들과 활동보조인들이 좋은 친구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