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먼저 발표를 하고 질문은 나중에 받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왜냐면 여기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오늘 안으로 끝을 못 볼수 있습니다. 오늘의 발표자 정대호님.
일동 : (박수)
정대호 : 반갑습니다. 일단은 새해 복 많이 쟁취하십쇼. 옛날에 하던 방식인데 오랜만에 써먹었네. 다들 같은 분야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지난번에 우리 박태오씨가 창작 방법론을 너무 잘 설명하고 요약을 잘 하셨기 때문에 제가 중언부언하는 꼴이 되지 않기위해 노력을 해야되는데. 그게 걱정이고요. 그리고 전 나름대로 세미나 자료를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큰 성과를 얻었어요. 자료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모으는 계기도 되었고 나름대로 또랑광대에 대해서는 개념적인 동의를 하고 실천하시는데 저는 아! 이거다! 할 정도로 확실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토론을 통해서 입장이 선회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럴정도로 또랑광대에 대해서 그동안에 콤플렉스 내지는 자기비하적인 그런 것이 없지 않아 잔재되어 있었는데 그런 것이 말끔하게 없어지게 되었다는 솔직한 고백을 드리는데요. 그런면에서 창작판소리가 아닌 양식을 고민을 해보자는 것으로 맺음을 하고자합니다. 제가 창작 판소리를 접하게 됐던 것이 가장 큰, 또 광대의 길로 들어가는데 큰 계기가 됐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제 경험을 가지고서 죽 얘기를 들려드리고 지루하시드라도...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자기 경험하고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을테고 색다른 경험에 준해서 창작에 대한 단상이 떠오를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40대 초반을 넘어선 나이가 되다 보니깐 창작 판소리가 몇 개 되지는 않지만 시간은 꽤 지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첫 페이지에 써놨는데요, 창작판소리를 접하고 작품으로 만들었던 지난날. 처음에는 모창했습니다. 전 좀 특이체질인데, 전통판소리를 먼저 배우지 않고 먼저 창작판소리를 배워서 나중에 전통판소리를 다시 배운 그런 케이스 중에 한사람입니다. 군대를 86년도에 재대해서 본격적으로 지역에서 원주민속연구회라고 하는 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개인적으론 판소리를 취미 삼아 흥얼거리고 듣기도 했는데 제일 귀에 쏙 들어오는게 창작판소리드라구요. 임진택 선생님의 '똥바다'하고 '소리내력' 동학이야기중에 일부 담겨있는 테입이 있습니다. 열심히 열심히 들었어요. 많이 듣다 보니까 짧은 소리는 외워지드라구요. 첫발표, '소리내력'을 제 기억으론 80년대 말이 아닌가. 임진택 선생님이 원주에 오셔가지고 똥바다 기획 공연을 유치해봐라. 저희가 기획을 한 적이 있어요. 똥바다 기획공연을 하고 뒤풀이 자리에서 제가 '소리내력'을 발표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처음 모창을 했구요. 그담엔 '똥바다'를 외워가지고 소리를 했는데, 목구성이나 공력이 무지하게 딸려, 20분만 소리를 하면 목이 왕창 쉬어 버리는 그런 수준이었었는데, 88년도에 아마 3월달에 공연을 했던 것 같은데, 요때는 임진택 선생만이 유일하게 했던 작품이라 제가 긴히 허락을 받고 했습니다. 요걸 했던 계기가 어떤거냐면 88년도에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됐거든요, 2월 초중순경에 취임식을 했는데. 그렇잖아도 군사독재자가 정권을 잡았으니가 데모가 심했죠. 대통령 취임식때 데모를 한거에요. 지금 우리 단원이신 결이 아빠라고 이지원씨가 있는데, 기획실장인데. 그때 돌맹이를 딱 들고 시위대에서 "애태우고 속태우는 노태우를 불태우자!"
일동 : (웃음)
정대호 : 하고 돌을 던졌는데, 그전에 이미 돌이 왔다갔다하고 화염병이 왔다갔다 했는데, 경찰이 던진 돌을 다시 집어 던진건데 불태우자 하는데 여기(오른팔 어깨 바로 밑 안쪽) 에 딱 돌을 맞아가지고 꺾어져 버렸어요. 복합골절에 돈이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병원에 입원해가지고 수술하고 그랫거든요. 수술비를 모금을 해야되니까 어떻게 할 길이 없어가지고 공연을 빙자해서 그때 못하는 소리지만 완창 판소리 한다고 뻥쳐놓고 사람들한테 기획을 해서 돈을 받고 유료공연으로 한 사람당 2천원씩, 당시, 그때 모금을 해가지고 치료비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똥바다' 모창을 빨리하는 계기가 됐죠. 그 이후로 몇 번에 거쳐서 초청과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짭짤한 수입을... 봤는지 안봤느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억이 납니다. 이때까지가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이 있어요. 임진택 선생님은 여기에 있는 '오적'이란 판소리를 직접 하셨었고 '5월 광주'니 이런것들도 추가로 나중에 하셨었고.... 제가 알기론 동학의 녹두장군을 창작판소리로 올리신 기억이 있습니다. 또 재미난건 88년도에 지금 김명자씨가 같이 일했던 아리랑이라고 하는 극단을 만드신 분이 지금 국립극장 극장장이신 김명곤 선배님인데. 그 선배님이 88년도 '금수궁가'를 처음 불렀어요. 한마당 소극장에서 했는데 첫날 첫 회 공연에 득달같이 갔습니다. 판소리를 넘 좋아해서, 이걸 (녹음기) 들구서. 그래서 녹음했어요. 녹음을 한걸 가지고 창본집을 사서 흥얼흥얼 댔었죠. 제가 89년서부터 4년정도는 안타깝게 광대 생활을 못한적이 있습니다. 전 굉장히 하고 싶었었는데, 89,90,91,92. 광대의 공백긴데, 한축으론 지역에서 필요한 일이어서 제가 잠깐 전업을 했습니다. 돈 버는건 아니고, 노동, 정치, 어쩌고 어쩌고 있잖아요... 그거 때문에 4년간 하면서도 워낙 제가 개인적으로 판소리를 좋아해서 사무실에서 동지들하고 업무 보다가도 점심먹고 나서 다들 식곤증에 졸고 있을 때 나는 옥상에 옥탑방 같은데가 있어요. 창고. 거기에 가가지고 더운 여름날에 웃통 다 벗고 이 금수궁가를 테이프로 듣고서 했든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해서 어느정도 하다가, 이것도 발표한 동기가 굉장히 불순해요. 92년도가 대통령 선거가 있었든 때거든요.
일동 : (박장대소)
정대호 : 그때 제가 한당 하는쪽에 있어가지고 그쪽에 대통령 선거 선전운동하는데 기획공연으로 붙여놓고 백기완 선생님 선거운동 한거죠. 문화공연으로. 그때 원주카톨릭센터에서 올려..... 전부다 올린 계기가 자기가 스스로 올린게 아니라 남 이케 이케 똥침 올려가지고 하는 케이스였었는데 이거 가지고 또 돌아다니고 햇엇는데 임진택 선생 소리 왈 만나면은 '해적소리꾼'이라고... 그때부터 해적판소리꾼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저도 독자적이 판소리를 만들리라 하고 있었는데 94년에 뜻하지 않은 계기로 장편 판소리 원주내력을 제가 사설과 작창과 소리를 만들게 됐습니다. 발표를 했는데.. 그때까지는 여전히 선생님과는 인연이 없는 카(세트)선생님만 오로지 모시고 다녔든 이런 상태에서 원주내력을 쓰게 됐는데, 가슴 아픈 사연인데요, 93년도 3월달에 원주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시는 영세민 분들의 자제분 세명, 초등학교 일학년 들인데 학교에 입학한지 일주일 밖에 안돼서 아이들이 학교갔다와서 놀데가 마땅치 않으니까 옛날에는 아파트 베란다 뒤쪽에 박스같은 재활용 같은 거있죠, 지금은 재활용 창고가 있는데 옛날엔 박스 같은걸 쌓아놓고 일주일에 한번씩 시청에서 수거해가고 그랬는데 거기서 숨바꼭질하고 놀다가 세놈이 숨어 있는데 못찾겠다 꾀꼬리 하는데도 안나타나니까 거기다 라이타 불로 지졌나봐요. 홀라당 다 타가지고 아이들이 세명이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애는 바로 그날 죽고 한 애는 다음날 병원에서 죽고 한 애가 두 달 가까이 병원에서 고통을 받다가 결국 두 달만에 죽은 사건인데 공교롭게도 제가 '원주민속연구회' 활동을 했는데 회원인분이 그 아이의 아빠에요. 친분이 있는데다 가깝게 지내던 사인데 아들이 비명횡사하게 됐죠. 다른 가족 아이들은 애기들을 일찍 잃었으니 나름대로 덜한데 두달 내내 병원에서 고생하고 간호하고 할 일도 못하고 그러다가 결국 두 달만에 애기를 보냈는데 그걸 보면서 제가 도와드릴 것도 없고 참 마음이 아프드라구요. 모두골을 93년도 6월달에 오픈을 햇거든요. 제가 정치, 노동 뭐 하다가 난 광대의 길로 갈래. 사실 백기완 선생님이 몇표 못얻었잖아요.
일동 : (웃음)
정대호 : 좀더 대중속으로. 난 광대가 낫겠다. 거기하고 체질에 안맞는다. 그 사건을 접한지 일년정도 지낫는데 부모들이 보상도 하나 못 받고 오히려 거기 숨바꼭질 하고 걔네가 잘못했다. 역으로 부모들이 오히려 오해의 음해를 받고 이래가지고 제가 한축으론 부모들을 한 분밖에 몰랐엇는데 나머지 두분 다 만나서 인사드리고 위로 해드리고 모금 운동 하고 그랫는데 결정으론 이분들이 그런 오해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풀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잇는 방법이 있을까 만에 하나라도. 전 한편으로 법정싸움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그거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거든요. 원주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수 잇는 창고를 짓지 않았다는거하고 한축으론 관리소홀로 해서 아파트회사를 상대로 해서 두 단체로 해서 법정 싸움을 하고 한축으론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라고 민변 소속의 변호사를 구했습니다. 어렵사리 이런 이런 싸움을 해서 승산이 있겠냐 했더니 그분이 장담은 못하지만 굉장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고 한번 해보자고.. 한축으로 법정 싸움 들어갔죠. 지방법원에서 1차 패소했어요. 다시 고등법원으로 올렸습니다. 고등법원으로 올려서 결정이 나기 전에 저희가 원주시민들에 알려야겠다 불손한 의도로 올리게 됐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매일매일 사설을 정리하면서 기왕이면 제가 혼자 부르면 공력이 딸리니까 입체창이라고 저희가 했는데, 풍물패도 들어오고 각설이도 들어와서 춤추고, 가수들도 집어넣고 아이들의 죽음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직접 참여해서 놀다가 흩어지는... 몇 명 아는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그렇게 구성했어요. 지금와서 생각해도 어떻게 이런 필력이 나왔는지
제가 놀라울 정도로 이런걸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것같은 생각이 정도로 불후의 명작 이
일동 : (웃음)
정대호 : 돼버린 것 같은데, 두 번만 하고 끝냈습니다. 다른 판소리처럼 재탕 삼탕 할게 아니고 가족을 위한 진혼굿이기 때문에 두 번만 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작품입니다. 여러 가지 법정싸움도 햇음니다만 고등법원에서도 패소하고 우리가 대법원로까지 갑시다 햇는데 너무 2년이상 싸움에 지쳐가지고 부모님들이 반대를 하시드라구요. 그 사건을 접었습니다. 승소를 하리라고 기대를 햇었습니다. 적어도 몇 푼 안되지만 한 가족당 1억 이상씩 보상되면, 돈 가지고 보상은 안되지만,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또 하나의 가슴아픈 사건이었습니다. 또하나 가슴아픈거는 세명이 있었잖아요. 다른 가족들은 애가 둘씩있었어, 근데 이 형님은 애가 하나인데 죽였단말야. 근데 제가 이거 판소리 할때까지는 이 아빠가 살아계셨어요. 애가 죽은지 3개월만에 화병으로 또 돌아가셨어. 졸지에 형수가 혼자 과부가 돼 버린거야. 애도 잃어버릭 남편도 잃어버리고 인생이란게 참 묘하죠. 이거 아마 드라마 쓰면 이것이 인생이다 나올 것 같은데. 재밋는거는 우리 같이 일하든 사람이 이 형수를 위로한답시고 열심히 보살펴 주고 그랬어요. 열심히 위로해준건 좋은데 49제도 지나가기 전에 배위로 올라가버린게 문제야. 위로가 '배위로'가 돼버렸어요. 둘이 같이 살 팔자가 돼버렸어. 지금은 애 셋씩이나 낳고 벌써 10년 사이에 잘 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다행이구나.
일동 : (얼씨구)
정대호 : 음, 사십구제가 뭐 필요한가 그런 생각도 들고... 잘했다~
일동 : (웃음)
정대호 : 그런 기가 막힌 사건이 이 원주내력에 담겨져 있습니다.
사회 : 들어봤슴 좋겠습니다
정대호 : 이미 지워버린거라 모르겠어요 편편히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알고있는 모든 상식과 기존에 있는 판소리에서 노가바 할 수 있는거 그때는 소리길을 잘 몰라서 유숙이한테 부탁을 많이 했어요. 이 사설을 주고 몇 개만이래도 작창을 해다오. 유슉이가 굉장히 도움을 많이 줫어요. 동생이지만 결정적으로 작창의 힘이 컸고 제가 알고있는 대목을 무조건 노가바 해서 불렀던.... 나머지는 다른 장르가 받쳐주고. 무난하게~ 맨마지막은 황해도 철몰이굿의 고풀이란걸로 풀어주는걸로 했습니다. 저희는 이것의 명칭을 입체창으로 두고 싶구요. 소리가 주도적으로 주식으로 들어가는것과 비빔밥으로 들어가는것과 양념으로 들어가는것과 이런 유형이 잇다... 이렇게 하고 나니가 성음이나 목재치나 갈급하드라구요. 무대포로 해서는 안되겠구나. 제가 사부를 물색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여기저기 김지하 선생님도 찾아가서 우리나라 소리꾼중에 좋으신 분 있으면 추천해 주십쇼. 별로.. 뭐.... 신통잖은 대답을 들었어요. 거기선 명쾌한 해답을 못듣고. 좁혀서 딱 두분으로 좁혀졌어요. 한분은 은희진 선생니하고, 한분은 진봉규 선생님. 은희진 선생님은 돌아가셨잖아요. 젊은 나이에. 유숙이한테 물었더니, 우리 진봉규 선생님은 성우향 선생님하고 부부지간이었다가 나중에 헤어진 사이라 저친구는 성우향 선생님한테 배우고 하니 안 좋은 소리도 듣고 그랫겠죠. 은희진 선생한테 배우라고 그랫는데... 제가 경제적 사정과 뭐 하다가 진봉규 선생님을 만나게 됐는데 이분을 만난 결정적 계기는 판소리의 이론과 실기를 골구루 겸비하신 분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두말않고 찾아뵈었습니다. 기존의 명창분들은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부분들을 논리적으로 설명을 못하시고 국문학과 판소리 전공한 교수들은 많은데 소리대목 한 대목조차 제대로 못하면서 썰은 되게 까는거 보니까 현학적인 표현들이 많드라구요. 제가 어느날 교보문고 찾아갔다가 그 책을 딱 봤어요 (판소리의 이론과 실재). 이 양반은 첨 보는 양반인데 이름도 생소하고 근데 어떻게 이런 책을 다 썼을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찾아가겠다 이후에 인연이 돼서 찾아가 뵈었죠. 96년, 97년, 2년간만 산공부를 갔는데, 여기저기 앵벌이 좀 했죠. 내가 산공부 가는데 보태라. 칼 들고서 뺏어서
일동 : 웃음
정대호 : 춘향가 한 바탕을 할 즈음에 뜸하게 됐습니다. 모두골의 식구들이 불어나고 해서 활동을 많이 하다가 3년 전이네요 벌써, 신강쇠전을 했는데... 계기가 재밌는데.. 과천세계마당극축제가 있잖아요. 거기에 극본 공모작이 두 개가 당선됐는데 이걸 올려야 의미가 있거든요. 아무도 올릴만한데가 없으니까 예술감독으로 계신 박인배 선생님께서 저희한테 이걸 추천했드라구요. 제가 작품을 봤는데 이거 너무너무 이상해요. 변강쇠가 원전도 아니고.. 그래서 제목만 빼고 나머지는 다 각색해 버렸어요. 제가. 제 맘대로. 그걸 2시간짜리 마당굿으로 올렸습니다 저희가. 신판 변강쇠 마당굿이죠. 과천에서 세 번올리고 그날로 짜그라든 작품입니다. 그 이후로는 뭐 극단 미추가 mbc하고 쪼개면서 변강쇠전 나오는 바람에 더더욱 짜그라질수박에 없는 그런 작품이었죠.
일동 : 웃음
정대호 : 근데 너무 아까운거에요. 원래 제가 늴리리 돈보를 선택하게 된것도 꼭 한번 성을 다룬 작품을 마당극이든, 판소리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찰라에 그런 제안을 받고 각색을 하게 됐는데,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이걸 통해서 부활했다고나 할까. 마당극을 한 20명 떼거지로 했거든요. 이게 호흡이 잘 안 맞고 엉성하면 혼자서 부르니만 못해요 사실상. 덩치만 크지, 경제성 없지, 기동성 떨어지지... 함량미달 작품인데. 배우들의 연기수준도 그렇고 대본도 그렇긴 하지만.... 넘 아까와서 그동안 했든 것을 압축파일로 판소리로 만든거죠. 겸사겸사 돗자리가 전주에서 깔려진다니까 만든거고... 작년에 우리집 강아지 뭉치 이야기는 실제 저희 집안 얘기에서... 제가 살면서 느낀 것을 강아지를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이야기... 근데 제가 살고 있는 동네가 촌동네다 보니까 환경이나 생태적으로 시골 정취를 많이 느낄 수 있는 분위기라서.. 사실 창작하거나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어느날 아들이 강아지 새끼 한 마리 데리고 와서 말썽만 피우고 그런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데... 아들한테 뭔 구연동화 식으로 얘기를 좀, 엄마가 술 먹고 밤 늦게 들어온다고 전화를 받았든지...아들하고 자다가 그런 얘기를 죽 해줬어요. 뭉치가 어쩌고 저쩌고 동네에서 하다가.. 말이 막혔어 중간에. 그냥 자자
일동 : 웃음
정대호 : 끝냈거든. 아침 산책을 하다가 계속 이었으면 좋겠다. 중얼중얼 하다가 조금 나가요, 이야기 거리가, 또 막혀. 어느날 좀더 이어야 되겠다 하다가 정리를 했었어요. 뒷부분이 3분의 2지점이, 막혔었는데 수룩룩 풀리드라구요. 치다보니까 어, 고리가 생기드라고요. 마무리해서 모두골 카페에 올렸거든요. 아무생각 없이. 근데 리플이 아홉 개씩 달리는거야. 재밌긴 재밌는가 보구나. 그럼 소리로 형상화 해볼만한 거구나. 8월말에 카페에 올려 9월초에 일주일 정도 반응을 보구 일주일 정도 걸쳐서 소리로 만들었죠. 이런 과정이 판소리를 접하고 작품을 만들었든 과정입니다. 철저하게... 재밌었든 것은 경험에 입각해서 눈으로 직접 보고 피부로 느꼈던 것이 강할수록 표현하기도 편하구나.. 강아지 얘기도 집안 얘기고 원주내력도 늘상 같이 살았던 사람의 집안 내력과 사건에 절박함 그런 부분들이 공감해서 나왔던 것이 아닌가. 사실 신강쇠가는 맘에 안들어요. 왜냐면은 간큰 남자의 종말, 권선징악 정도라고요. 앞으로 개작하고 싶은 것은 탈북자들 잇죠. 탈북자들의 애환과 밀향선 타고 많이 오잖아요. 돈 벌러. 한국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여러 사람들, 결국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서 룸팬생활 할수박에 없는 자기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는 자기 애환들을 서로 나누고 보듬고 살려고 하는데 사회가 이것을 살려주지 못하니까 여자가 들병이 노릇을 하는거죠. 들병이라고 아십니까? 김유정 소설을 보면 들병이 개념이 나오는데 막걸리 사다가 잔술로 팔아 생활하는 사람이에요. 농촌에는 들병이가 나타나면 남자들이 바싹 화색이 돌면서 긴장하죠. 서로 푼돈 내가지구 불르자 오늘밤에 이렇게 하고. 양반이 놀러가는 권번하곤 달리 일반 서민들이 나름대로 주색을 하려고 했던 것은 들병이란 계층과 어울리는거거든요. 들병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그런 걸로 개작하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성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많이 좋아들 하시드라구요. 오히려 좀 과정이 길었는데, 제 생각에 판소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여기(자료) 쓰여져 있는대로 이렇게 했음 좋겠어요. 누가 좀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회 : 먼저 정대호님의 대표작을 소리로 먼저 들어봐야...
정대호 : 작품의 종자 찾기, 먼저 자기 경험과 자기가 정말 재밋는 현상이네. 느낀걸 판소리로 만들어 부르느게 젤 좋아요. 판소리는 처음에 이야기꾼이었다. 이야기를 얼만큼 잘 하느냐 이야기의 현실감, 생동감에 사람들이 빠져들고 그랫잖아요. 처음에 강담사로 출발했을 것이다. 사랑방의 할아버지처럼. 그러다가 모션도 집어넣고 노래도 집어넣고 그러다가 강창사로 변하고 결국은 전문예술인 소리꾼으로 왔을 것이다. 거기에 동의를 하고 그래서 하고싶은 이야기, 이야기꺼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이런거 저런거 있는데 두 번째에 있죠. 설화나 동화에서 선택해보자. 햇님 달님, 치악산 꿩이야기 있고. 39페이지 펴보시겠어요? 제가 부론면에 살면서 만든 단가 두갠데. 부론면 송곡리에서 사는데 송곡리가 왜 송곡리냐면 송곡 이달 선생이 칩거를 해서 집필 활동을 했기 때문에 호를 따가지고 송곡린데 송곡 이달 선생이 누구냐면 허균의 스승님입니다. 이분의 시는 김삿갓보다 훨씬 선배이고 김삿갓이 시선이라면 이분은 시조라 할 수 있겠어요. 제가 심심해가지구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한번 불러볼게요.
(진양조)
시골밭길 젊은아내 /저녁거리 떨어져서/비맞으며 보리베어/숲속으로돌아오네
생나무에 숲기짙어 /불길마저 꺼지는디/문에 들자 어린아이들/치맛자락 붙잡으며/울부짖네
계면조로 좀 잘했어야 했는데 잘 안나오네요. 부론면에 흥원창이라고 있어요. 섬강과 남한강이 마주치는 정경이 끝내주는 데가 잇는데 옛날에 조공을 바치던 배가 쌀을 싣고서 한양으로 가는 큰 부두였죠. 강원도 일대 조공을 바치러 가는... 거기에 배가 한 가운데에서 노수신이라고 하는 조선시대 대 문장가이자 영의정을 지냇던 분이 손곡이 이달선생하곤 24살이나 연상입니다. 그런데도 손곡 후배의 시에 반해가지고 손곤 이달 선생에게 주는 시입니다. '흥원선주증이달'. 흥원창이 잇는 강가운데서 이달에게 주는 시. 중머리 장단에 맞췄습니다. 우리 박흥주 선배님이 오셨을 때 '흥원창' 가가지고 제가 선배님의 볼펜을 빌려서 바람부는 데서 적어가지고 만들어봤습니다.
중머리 : 먼산에는 아름다운 기운이 감겨있고/ 긴 물굽이엔 햇빛이 걷히는구나/
친한벗이 눈속에 오직 하나 보이는디/ 향기로운 풀은 가득허네/
글 모임에 그의 시를 당할자 없고/맑은 이야기 속에는 술이 멀지 않도다/
어찌 벼슬을 근심이나 하겄는가/ 하루종일 흥원창 풍파와/ 함께 벗하며 놀아보리
요렇게 두가지를 만들었는데요. 제가 여러분에게 공모를 하나 하겠습니다. 다시 2페이지로 돌아오시면 단가만들기 예문이 나오죠? 제가 무지하게 좋아하는 시인데, 이백의 '월하독작'. 술먹는 사람한테 아주 풍류와 운치가 저절로 느껴지는 죽여주는 신데. 요 시를 드디어 여러분께 공모를 하려고 공모를 하려는데, 저도 아직 못했고 할려고 하는데. 여기 또랑광대서 '월하독작'을 단가를 만들어 주신다면 광대패 모두골 차기 작품이 술꾼이거든요, 술꾼의 주제가로 모시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사회 :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요. 창작을 어떻게 하게 되엇는가 원인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여기오신 분들은 어떻게하면 창작하는 방법, 그리고 고민하고 있는것도 맞물려서 고민이 풀어질까 하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구상을 해서 걸쳐서 작품이 나왔는데 과연 그것이 어떻게 나왔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일단은 듣고 싶은 소리가 이중엔 분명 계실 것 같아요. 저같은 경우에는 우리집 강아지 뭉치 이야기가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생활판소리로서 아주 좋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정대호 : 작품의 종자 찾기에서 계층별 기호나 공감대에서 소재 찾기, 우리 박태오씨가 청소년을 겨냥해서 스타크래프트 했죠? 그담은 기호나 공감대에서 소재 찾기, 놀이문화나 게임, 고스톱, 박태오씨가 소재, 또는 계층 했는데 공교롭게도 공통점이 있어요. 다 놀이문화를 가지고 하고 있잖아요. 김명자씨는 주부를 선정해서 슈퍼댁! 못을 박듯이,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서 겨냥해서 택하든지 아니면 저 소재가 재밋을 것 같다. 북한에선 소재와 종자는 다르다고 하죠. 소재는 무슨 문제, 이런걸 소재라 한다면 종자는 씨를 뿌리면 열매가 되가지고 뭔 과일이 될 것이다. 염두에 두는거죠. 단적인 예로 북한의 꽃파는 처녀 하면 그게 종자거든요 그 자체가 제목이기도 하면서. 처음에 꽃파는 처녀가 나약한, 꽃만 파는 사람이엇다가 나중에 혁명적인 투사로 바뀐다는거 아네요, 내용 자체가. 저 같은 경우는 촌동네다 보니깐 자연환경이 내 창작의 배경이 된다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 창작의 배경이 무궁무진하다고 저는 느낄정도로 고맙다고 생각되거든요. 뭉치이야기고 그렇고 단가도 그렇고 살아있는걸 가지고 장난했을 뿐인데 풍류로도 써먹기도 하고 초청공연도 하고 방송출연도 하고, 우리 모두골은 죽어라고 국립극장 가려고 애를 쓰는데 나는 하나 가지고 방송출연 두 번이나하고 횡재를 맞은 대단한...
일동 : 웃음
정대호 :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에 대해서 소재를 찾는게 가장 큰 창작의 배경이 되리라 생각하고. 저도 앞으로는 계속 생태 부분에 관심을 갖고 할 생각입니다. 굳이 자랑을 한다면 뭉치 이야기가 사실 뭉치의 철엽이 재밌었을 텐데..
사회 : 철엽?
정대호 : 소풍을 철엽이라해요. 관광. 뭉치의 철엽. 공감을 일으켰다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분석하는게 첫째로는 구연동화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어른이나 애나 귀 기울여 주드라. 둘째로는 성음은 둘째치고 자신의 장끼, 성대모사, (꼭끼오~)
일동 : 웃음 (진짜 닭 같아서)
정대호 : 오늘 잘 안되네. 내가 판소리는 15년 경력이지만 꼭끼오는 20년 경력을 가지고 있어 재대로 발휘했다는거, 개소리, 고양이 소리, 막 들어가니까 정신없죠. 또 게그콘서트에서 뒷통수를 치는 게그 있잖아요. 꼭끼오가 왜 꼭끼오냐? 정선에서 풍물치고 뒤풀이하고 술먹다가 문득 생각나가지고 뒤풀이 자리에서 얘기했는데 남들 웃길 줄 모르거든요. 그때 좋아하는 반응을 캐치햇어요. 나중에 써먹어야 되겠다. 병아리 얘기 삭 끼어논거죠. 의외로 사설이 줄줄줄 긴대도 꼭끼오 한마디 가는가죠. 잘 모르드라고 처음엔, 인사동에서 사람들이 잘 몰라서 한번더 꼭끼워로 확인해줘야 사람들이 알겠드라고. 게그적인 요소. 그런것들이 중층적으로 해서 좋아하시게 되지 않앗나. "개 삽니다~ "
일동 : 웃음
정대호 : 이것도 실제 있었든 일이에요. 저것도 재밋네. 결이네 집에서 술먹다가 갑자기 개들이 개소리를 안내고 늑대소리를 내드라고. 이상한 소리네~ 개장사 차가 지나가는거에요. 개들도 참 영리하구나. 개들도 죽지않으려고 발버둥치는구나. 뒷부분에 좀 집어넣고 해서...
사회 : 뭉치이야기는 그냥 시골 생활에서 나온게 아니고 평생 공력이 들어간 작품이군요.
정대호 : 그렇죠. 그리고 아침마다 산책을 하니까 동네 이름을 금방 외웠거든요. 지난번 kbs국악한마당 출연해서 앞에 1분 동네 선전한게 그대로 나왔거든요. 그거 때문에 동네 분들이 두분이서 그걸 봤다고, 반장님이 마침 본거야. 그래가지고 동네에서 스타로 떴어요. 그 다음부턴 지나가다 일부러 차도 세워서 태워주고,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데 관행이 달라지드라고... 산책, 운동삼아 하기도 하고, 명상이 필요하기도 하고, 연습이 부족하면 산책하면서 중얼중얼 개인적으로 연습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의미가있어요. 자연하고 교감하기도 하고. 술먹고 뻗지만 않으면 많이지키려 하는데. 동네를 봐뒀다가. 의식적으로 집어는 부분도 있습니다. 오리농법, 우리 동네는 오리 농법이 없어요. 다만 저희가 모도골 하고 많이 돌아다니면서 유기농업하는 조직하고 많이 관계를 맺거든요. 한살림이라든지, 팔당생명살림연대, 풀꽃세상이라든지, 수많은 생활협동 조합하고 연대를 하니까 우리동네서도 했으면 좋겠다 바램이 있었든거죠. 이 바램을 의식적으로 집어넣었어요. 오리 농법도 재밌게 표혔으면 좋겠다. 형아들 뭐하는거야? 꿱꿱, 시방 농사짓는다 시방아.
일동 : 웃음, (들어보고 싶어서 웅성웅성)
사회 :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작품이 궁금해지잖아요. 그 동안 생활의 공력이 어떻게 들어갔는가, 그 부분이 또랑광대에선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동 : 박수
정대호 : 우리집 강아지 뭉치 이야기, 실연
(휴식)
사회 : 판소리계 뿐만아니고 각계 각층에 계신분들이 또랑광대 정신을 가져다 쓰면 참 좋으리라 봅니다.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먼저 질문을 하겠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그런말을 들은적이 있어요. 정대호하고 김명자는 성음만 되면 된다. 사설 짜는거라든가 연극을 해왔기 때문에 발림이라든가 판을 노는데 그놈의 성음 때문에 아쉽다. 이런 얘기들을 하시거든요. 성음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
정대호 : 저는 게을러가지고 연습을 많이 못하는데...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 10이라면 골구루 하느냐 이건데, 소리에 목숨을 걸었다면 해볼만 하겟다 생각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술 먹는 데 보내기 때문에 이걸 줄이면 목이 좀 낫지 않을까... 96년도 산공부를 갔는데 놀라운 변화를 발견했어요. 한달에 통시성이 되드라구요. 쑥대머리 귀신형용 저엉~ , 끌어올리는게 통시성이라고 하는데. 그게 됐을 때 천금을 주고도 못.... 그런 느낌처럼, 그런 변화, 소리에 미치는 맛이 여기있구나. 하고 싶은데.. 제가 창작판소리를 먼저 접한 한계가 있는지.. 소리는 모질게 배워야 한다, 미련하게 배워야 한다,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드라고요. 비가비광대의 한곈데. 좀 힘들면 안하고 빼고.. 잔재가 있는거 같아요. 이런게 있으면 안하는거 같아요. 저도 매사에 성실하게 하고 싶은데, 소리만 죽 할수있는 조건을 스스로가 찾지 못한게 한축으로 문제고요, 순전히 저 개인적인 탓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그런소리 들을때마다 속으로 열이 받긴해요. 매일 한시간씩 하면 좀 나아질텐데.. 산책갔다오고 기체조하면 두시간 흘러버리고.. 그리고 오후에 출근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술 먹다보면 .... 그나마 산책하고 이런게 다행이고...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해요. 시간을 소리에만 투자하는것도 다른 양식을 무시하는거 아니냐. 춤도 배우고 무예도 배워야 되고... 광대7훈 중에서 판에 필요한 요소를 즐겁게 익혀라. 제가 스스로가 광대7훈, 주술을 하면서 지킬려고 하는 것들인데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왕에 창작판소리, 모두골이나, 다 말로, 솔로로 등극한다면 개인 창작 판소리꾼이 될겁니다. 그러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요. 같이 또 이렇게 하고. 요즘 또 박 모시기 주 무슨 전도사 만나면서 인생관이 굿에 미쳐갈라 그래요. 연극이나 뭐 이런것도 다 시답찮게 보이드라고요. 그 세계는 판소리보다 더 크거든요. 감히 어떻게 문을 두드릴까 고민이고. 한때 그런 생각했습니다. 기왕에 창작 판소리꾼 될라므는 세사람의 가장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인물을 스승으로 모셔야한다. 이야기꾼으로 서의 백기완서생같은 기질, 성음으로서의 임방울 선생같은 득음, 판을 휘잡는데 있어서의 공옥진 여사같은 판잽이적 능력, 이 세사람을 스승으로 삼아서 세사람 합친 창작판소리꾼, 이것이 목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봤습니다. 지금은 성음 조금 딸려도 그냥 술 먹는게 좋아요.
이덕인 : 뭉치이야기, 재밋거든요. 갈등구조를 심각하게 넣지 않았는데도 재밌거든요. 갈등구조의 필요성에 대해서...
정대호 : 필요하죠. 춘향가가 대표적인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까.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데. 할수만 있으면 하고 싶어요. 신강쇠가가 주제나 그런 부분이 미약한 부분이거든요. 좀더 남남북녀가.. 북이 체제도 그렇고, 여기서의 애환과 부부간의 갈등을 담아내면 좋겠다... 필력의 한곈데. 할 수 있을거 같애요. 느낌상으로 그정도는. 뭉치이야기에서는 거의 그게 없죠. 세상구경이니까. 간단하게 오리들이 힘들어하는걸 표현했을 뿐이고. 엄마하고 집에 안가겠다고 투정한 정돈데. 사실은 사실 결정적으로 갈등구조로 넣고 싶은 적이 있어요. 뭉치가 사실 3개월만에 교통사고로 죽었거든요. 우리가 9월 20일날 발표했잖아요. 근데 9월 10일날 죽었어. 그때가 추석 첫날이에요. 나갈려고 준비했는데 죽어버렸으니 고민했어요. 난 죽었다, 고수가 허무게그하는 것 같아요. 기것 잘 하다가 죽었다 그러면.. 살아있다는걸로 하자 아기자기 하게 동물들하고 대화하는걸로... 그걸 보면서 문명이 이기가 무섭구나. 부안에 가서도 느꼈지만. 어느날 산책하고 기체조하고 옆에서 졸랑졸랑 놀고 있다가, 깨갱 소리도 안났어요, 신작로에서 버둥버둥 거리고 있드라고. 뭉치야 왜 그래? 뼈다귀 물고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동작 상태가 심각해. 가까이 가봤더니 외상하나 안나고서 지나가는 뒷바퀴에 치었는지 그냥 움직임이 둔해지드니 죽 뻤드라고. 그런 문명의 이기로 부딫치는.. 뒷부분에 넣을까 생각을 햇었죠. 근데 극을 전반적으로 끌고가는데 있어서는 갈등구조보다는 아직까지 사람들이 잃어버린 고향같는, 도심에서 살고있으니가, 자연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리워하는, 아이들처럼 눈을 낮춰서 바라보고싶은, 귀소본능을 건드려서 좋아하지 않았나, 특별히 갈등구조보다는. 그렇죠.
사회 : 무비로 치자면 로드무비죠.
정대호 : 도심에서 하면 웃길거야. 다른 발상으로 하면. 아파트에서 개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린개가 구석구석 돌아다닌 얘기하면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까 사람들이. 자동차에 치어죽을뻔한 얘기, 개장수에 끌려 갈 뻔한 얘기, 도심에서 하면 이게 먹힐까하는 입장이죠.
박흥주 : 속편으로 나를 따라서 서울을 나들이를 하면서, 나서서 세상구경.. 서울에서 아이들과 놀던 얘기,
누구 : 애완견으로 길러지고
박흥주 : 부론에서 놀던 이야기도 하고.. 몇 개의 에피소드가 있다가 나중에 죽는걸로...사설을 보면서 단순한 뭉치 이야기가 아니고 상징적으로 함축적으로 이면이 다양하게 그려지면 더 좋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떠올라서,
정대호 : 아무튼 꼭끼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든거 같애요. 성인용으로 돼 버려서 방송에서 다 짤리고... 원주내력의 근원원자가 아니고 원자가 원망할 원자거든요. 장화홍련전, 소리내력을 두가지 응용한겁니다. 김지하의 소리내력은 서울에 사는 도시빈민 안도의 얘깁니다.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세상만사 개뿔도 안되가지고 악 소리 질렀는데 바로 철창에 잡아가지고 유언비어 설포죄, 갖은 죄명으로 철창에 가둬지고, 입도 봉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으로 항거한다 그래서 쿵쿵거리는 소리를 듣고 권력가진 사람이 벌벌 떤다, 그런 소리에 관한 내력인데, 저는 장화홍련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고을마다 사또마다 가린다 해서 그런 틀거리에 맞춰서 했었죠. 원망할 원자 원주가 빨리 제 이름을 찾아야 한다. 이런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도와달란 뜻이 있었죠. 그때 부채를 딱 펴면 봉할 봉자 딱 썼어요. 입을 봉한다. 맨 뒷부분 보면 부임 사또가 와가지고 세마치로, 봉한다 봉한다, 소품은 그정도로 응용했고. 작품마다 그런 제목이나 이미지가 있죠. 아무튼 날라갈 뻔한 것이 카페에 올려가지고 산게 광대가 같이 할 덕목과 자세거든요, 2페이지에서 4페이지, 몇몇분이 리플을 달아주셨드라구요. 어느분은 나같은 잡놈이 또하나 있었네그려. 그야말로 잡놈이구요. 그땐 연행자의 입장에서 썼는데, 지금은 천연염색도 하고싶고, 생태건축도 하고 싶고, 전주 잡놈을 만났을 때 넘 반갑드라구요. 실재하고 있는 분을 만나서. 또랑광대에 개념의 정의는 생활문화운동가다. 4페이지 마지막에 결론 비슷하게 내렸는데, 이효리가 되지 못하는 이상 우리 주변에서 재밌고 풍성한 일이 많찮아요. 어제는 치악예술관에 전인권이 오고 장사익씨 오고 그랫는데... 기타 한시간 하고 그랫는데, 너무 이것만 가지고 그랫는데 지겨운거야. 전인권씨 대단하죠. 보컬소리 넘 시끄러우니까 목소리가 못듣겠어. 난 그런거 젤 싫어하거든요. 전통판소리도 못알아먹는 소리 들리면 고개 딱 돌려버려요. 여위신혼금술위지, 뭐여, 락도 신명인데, 그냥 시끄럽게 하니까. 나랑 안만는거 같아요. 주변에서 뒤풀이하고 술먹고, 재미나게 놀고, 노래방에서 빼지 않고 놀며 사는게 훨씬 값지게 사는게 아닌가. 그렇게 맘을 정리하니까 또랑광대 미학과 자부심이 철철철 넘치고... 창작판소리꾼이 될려면 적어도 백기완선생과, 임방울선생과, 공옥진선생 합쳐서 정진을 해보든지.... 올해는 농사도 지려고 하고요 황토 농막지기 모임이 있는데 집을 짓는것도 할려고 합니다.
유수곤 : 아니리 하실때 정통 판소리 아니리와 좀 다르게 하시잖아요. 창작판소리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데...
정대호 : 연극 아리랑을 김명곤 선배한테 허락맏고 한적이 있어요. 4대 품바 김영래씨하고 한적이 있는데... 판소리 기질이 있어가지고 인물전환을 해줘야 되는데 느리다 이거에요. 판소리 훈련에 넘 빠져있으면 변화를 줄 수 있는 연기적인것에 서툴수 있다는거죠. 그런 메너리즘에 빠지지 말자는거고. 판소리가 워낙 수백년동안 정제되고 정형화 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도 살릴 수 있는 요소는 많거든요. 그래서 함부로 다른 양식으로 도전해보기가 겁이 날 정도로 판소리가 정리된 양식인데, 그건 살리긴 살리드라고, 다른면에선 그런 투나 이런걸 바꿀 필요가 있어요. 도창자는 '그랬겄다' 이런식이 자연스럽지만, 사회자 입장에선 그런식으로 하면 느낌이 달라버리죠. 꿩이야기에선 도창 인형극 양식을 표현했는데, 제가 사회도보고 소리도 하고 나머지사람들은 뒤에서 인형도 하고 그러거든요, 문성근 같이 사회도 보고 복화술도 하고 소리도 해야되요, 너스래도 떨고, 한쪽에선 진행자의 말투, 나머지는 표현하기 좋은 말투를 찾아야죠. 대중으로부터 검증 받는수 박에 없죠.
유수곤 : 사설쓰실제 염두에 두는 부분, 의도적으로 중요하게 생가하는 부분..
정대호 : 작품을 세 개나 쓰게됐는데, 방식이 다 달랐던 것 같애요. 어떤거는 정말 짜내야 된다하고 했던거고, 신강쇠가 그랬고, 제1회때 출마해야되니까, 압축화일로 햇던거고, 원주내력같은경우는 제가 썼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아이들이 들어와가지고 했다고 느낄정도로 써지드라구요. 공수를 받았다고 하나, 그런 느낌이고, 뭉치이야기는 살아가다가 어쩌다가 나온 얘기고... 다 틀린 것 같아요. 제가 원래 모두골에서 극작가 아니거든요, 오로지 배우인데, 하게되는 이유는 딱 한가지에요. 내가 꼭 해야되는 상황이구나, 할수없이 펜을 들게 되는거지. 극작가도 있어요. 대본만 써주면 편하게 외워서 하는데, 판소리 양식은 직접 해본사람이 해야 잘 나옵니다. 안해본사람이 쓰면 말투도 이상해, 자기가 새로 쓴것만 못한 경우가 있어요. 판소리 양식이 필요할 때, 사건을 사람들에게 알릴 때, 별도의 양식이 필요할 때 할 수 없이 하게되고 그러죠. 제가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제제기 있잖아요, 또랑광대는 과연 창작 판소리꾼인가? 창작판소리꾼은 또랑광대의 부분집합이다. 그죠? 또랑광대가 전부 창작판소리꾼이 아니란 것을 명쾌하게 하고 싶고. 또랑광대 한 요소로 창작판소리가 있을뿐인데 다양한 양식, 저자거리나, 잔치판들이 있고, 일상생활에서 무수한 판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판들을 요소요소에서 써먹을 수 있는 폭넓은 광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구요. 그래서 할 일이 무지하게 많다, 또랑광대는. 예를 들면, 동네에서 상여하고 회다지 할때 소리는 하지만 못듭니다. 이거. 노인네들한테 우선권이 있잖아요. 동네 구석구석 숟가락 뭐뭐뭐 다 알아야 하는데, 삶하고 뒤틀린 소리를 하면 안되죠. 그런 부분까지도 소화할수 있는, 또랑광대의 진정한 공력은 거기까지 미쳐야 되지 않느냐. 여러 가지 양식들, 시대에 요청에 따라 양식은 다양해 질 수 있다는거고. 이게 바로 생활문화운동가다. 잔치판에서 공연만하고 삭 빠지는 사람 문제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잔치는 끝까지 잔치답게 끌고가는게 진정한 또랑광대다. 재주자랑만 하고 싹 빠지는거. 공연단으로서 개념을 낮추고 겸손하게, 일상을 이어주는 전체적인 흐름을 이어주는 역할까지 고민해야 되지 않느냐.
사회 : 또랑광대에 있어 창작판소리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 하구요, 풍물계라든가 굿쪽 영화, 그 부분도 또랑광대의 아주 중요한 레파터리라고 생각합니다.
박흥주 : 판소리를 다른쪽에서 활용했을 때 하고 새로운 판소리를 만들었을 때 다른 부분을 갖다 썼을때하고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거기서 느끼는 생각이라든지, 정리된 것이 있으면..
정대호 : 정리는 안됐구요, 필요할 때마다 해야된다는 생각이구요. 소리가 들어가는 공연판을 음식에 비유한다면 소리꾼은 그 음식을 요리하는 요리사이다. 첫째 소리가 주식으로 들어가는 양식, 비나리, 창작 판소리, 창극, 2인창극, 이런거... 2인창극은 대한민국에서 해본적이 없는데 유숙이랑 해보자 하다가 못 올린 경운데... 두 번째는 소리하고 다른 갈래가 비빔밥으로 섞인 양식, 창무가, 입체창 원주내력, 도창 인형극, 이런 것들이 비빔밥으로 좋겠다. 소리가 다른 양식으로 양념으로 들어가는 경우.. 무대극도 포함되지만 마당극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어 교안을 만들었습니다. 소리가 극에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구나. 어떤때는 양념, 주식, 다양하게 있드라구요. 모두골이 놀이꾼으로서 특출난 점이 있는데, 앞에 비나리로 풀어주고 대동놀이 하고 뒤풀이 할 때 소리가 판을 상승시켜주고 띄우는데 역할을 한다. 소리 성음이나 수준을 떠나서 그 자체가 용기이이기도 하고 윤활유 역할을 하니까. 하편으론 양념으로 우리 아들이 작년에 학예 발표를 했어요. 담임선생님이 사물놀이를 가르쳐서 발표하고 싶다고, 일주일에 한번씩 가르쳐 줬는데, 완성된 풍물을 가르칠 수 없을 것 같고 해서, 아이들이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거, 월드컵 응원단 컨셉에 맞춰서, 필요한 가락을 먼저 가르쳐주고, 아이들하고 놀기도 하다가 대본을 2주전에 띄워서 선생님한테 연출을 하라 해서 햇는데, 당일날 폭팔적인 호응을 얻었다. 풍물놀이 양식의 변화, 아이들, 유아용에 참고할만한 양식이 아닌가해서 소리하곤 전혀 상관이 없지만 참고하시라고 덛 붙였습니다.
사회 : 아나운서와 해설자
정대호 : 아이들 두명이 나와서 한명은 해설자 한명은 아나운서 해서, 나머지는 풍물단 하는거에요. 응원복장입고 아이들이 선반도 모르고.. 요 가락에 호흡을 맞춰서 하니까 어른들이 뒤집어졌다.
사회 : 오늘 각계 각층에서 오신분들의 간단한 소감을 듣고 싶은데요. 빨리 결정하거나 결론을 내거나 이런 자리는 아니고 먼저 우리 막내, 판소리계에 입문한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안효천씨. 02학번.
안효천 : 그동안 판소리하면 다섯바탕 위주로 하는 그런 판소리만 생각했엇는데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걸 보고 신선함이 있구요. 앞으로 마당극을 만들게 될 기회가 있다면 판소리를 꼭 넣고 싶습니다
사회 : 영상쪽의 다큐멘터리 감독님
고형렬 : 이 자리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으면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왜 이분들을 만나야 되는가. 비쥬얼하고 보여줄게 있고 내가 배울게 있고 하니까 멀리서 찾아온게 아닌가. 좋은 말씀속에 어떻게 보여질까, 어떻게 나같은 사람은 찍어야 할까. 여태까지 들은 얘기중에 가장 재밌게 들었던거 같습니다.
정대호 : (모두골 총무에게) 카드 가져왔지? 안돼? 거래정지야?
일동 : 웃음. 뒤풀이에서
사회 : 풍물계에서 김정숙씨가 오셨는데요. 제가 개인적인 얘기를 하다보면 지난번 또랑광대 콘테스트때 풍물쪽에서 또랑광대 풍물을 가지고 생각을 해서 '북치는 걸'이 출전한바 있습니다.
박흥주 : 자력으로 예선을 통과한. 소리로도 떨어진 사람이 있었는데.
사회 : 부산에서 올라온 스물 네 살 먹을 풍물꾼이었는데 북을 아주 잘 쳤습니다. 저는 또랑광대 정신이 풍물계로만 확산이 되면 대한민국은 뒤집어진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풍물쪽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그런생각을 하는데 오늘 어떻셨습니까?
김정숙 : 처음에 스타크래프트 듣고 전주에 가서 맨앞에 앉아서 어머나~
박태오 : 음반 속에 나온 아줌마
김정숙 : 아가씨. 오늘 좋은 내용에 얘기가 넘 재밌어서 또랑광대가 이때까지는 창작판소리라고 생각을 했엇나봐요. 오늘 와서 보니까 또랑광대의 의미가 가깝게 와진 것 같고, 명자언니 말대로 넓어진 느낌이 들어요.
사회 : 인사동거리소리판에서 겨울내내 고생한 우리 임영욱씨
임영욱 : 저도 한번 사설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써보긴 했거든요. 도저히 수습도 안되고 진도도 안나가고해서 몇 달전부터 손도 못대고 있는데 종자 찾기에서 자기 삶에서 찾아야한다 인상적이었고요, 뭉치이야기, 원주내력 등등이 선생님의 삶의 깊은, 일상적인 면에서 나왔다는 면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회 : 김지희씨, 내년 또랑광대 콘테스트 대상의 물망에 올라있는..
김지희 : 저도 사실 또랑광대 창작 판소리에 관심만 많았지 저하곤 사실 멀다고 생각햇거든요, 옆에서 직접 선배님께서 뭉치이야기, 고수로 따라다니면 정말 재밌거든요, 웃으면서 북을 잘 못쳐요. 굉장히 편하고 쉽고, 이런거구나, 오늘 여러분 만나뵈니까 욕심을 버려도 될것같아요. 잘해야되지 않을까, 사설도 잘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춤도 잘 춰야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들이 절 많이 누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구요. 오늘 편한 자리여서 즐거웠고 저도 열심히 공부할 계획이 좀 생기네요.
사회 : 4페이지에 있잔습니까. 어느 철학자의 금언
정대호 : 제가 젤 좋아하는 삶의 좌우명입니다.
사회 :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결국 아니 놀 고 무엇하리!
박태오 : 역시 연륜과 짬밥을 뼈져리게 느끼는 부분이 뭐냐면, 첫소리에서 청중들과 교감을 주고받는 부분에서 성대모사로 판을 잡는게 아주 인상깊고요. 가장 중요한게 그거 같애요. 처음에 내드름을 치고 판에서 내 호흡을 받아주면 그 판은 잘 풀려가는데 이 판에서 영 이게 안나올 때 당황하게 되죠, 그 판을 끌고 가기 어렵고, 뭉치 이야기처럼 첫소리를 그렇게 하니까 갈 수 있는 거 같고, 새소리나 그런 부분이 넘 좋은 것 같아요.
사회 : 이덕인씨, 아빠와 벌금으로 창작도 해보시고 고민도 해보셨을테데 또랑광대 판하고 사습대회 판하고 다른점이 잇나요?
이덕인 : 오늘 와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정대호 님의 인생이란 큰 작품에 더 큰 감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술 사셔야 합니다.
사회 : 피붙이!
정유숙 : 오빠가 그동안 생각하고 있엇던 것이 정리가 됐고 내가 왜 이것을 하는지 답을 찾았다고 해서 참 좋드라고요. 저도 순서가 있어서 오빠와 같이 명쾌한 답을 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고. 저는 전통판소리를 하면서 하게 된 경운데 저는 판소리에 대해서 초점을 두고 생각을 했는데 또랑광대 정신에 대해서 좀더 넓게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 계기가 되어서 좋았어요.
사회 : 형님, 술 사셔야 되겟는데요.
정대호 : 풀어 풀어!
사회 : 삶이 깊어야 예술도 깊다.
정대호 : 또랑광대패 모두골로 거듭났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과 고민을 해야되겠구나. 모두골이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있고 다양한 기대, 그런 부문이 참 힘들구나. 판소리는 개인적인 부분이 많은데 직간적으로 하는 호흡도 매우 중요하다. 혼자할때보다 푹팔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고. 혼자 하시기 힘드시면 원주로 오셔서 연락주십쇼.
박흥주 : 또랑광대 현판식이 있습니다. 잔치가 있는데요, 대보름 지나고 2월 13일 금요일 오후 4시입니다. 꼭 오셔서 노시기 바랍니다.
사회 : 깊이 있는 삶, 깊이 있는 대화, 형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