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리(鳳岩里)
거대한 규모의 장재늪 서쪽에 위치한 봉암리는 또 다른 큰 늪으로
번개늪(電湖)이 북쪽에 있어 큰 늪 사이에 끼인 마을인 셈이다.
취락지는 야산(높이 30m)일대에 자리 잡았으나 넓고 큰 들판을
가지고 있어 논농사뿐인 전형적이 농촌 마을이다.
봉암리는 영산면의 서부 끝으로 남쪽은 월령이고, 북쪽은 계성면
봉산리와 장마면 유리이고, 서쪽은 남지읍 성사리 학암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들 가운데에 번개늪에서 흘러 나오는 수로가 서쪽에
있어 남지읍과 경계를 이루나 월령과 함께 생활권은 남지에 속하고
있다.
따라서 남지 마산 쪽으로 진출을 많이 하고 있다.
번개늪 끝에 천태산이란 산은 작고 낮으막하나 이곳에 마고할미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는 산이다.
작포는 조선 중기에 월령리에 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둔암은
계성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작포(鵲浦)와 둔암(屯岩)이 합하여져 두 마을의 글자를
하나씩 따서 이명(里名)으로 삼았다. 그러나 작포의 까지 [鵲]이
어렵고 획수가 많으므로 같은 새 종류이며 까치보다는 봉황새가
더 좋다하여 새 [鳳]을 써 [봉암]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다.
◈까치늪(鵲浦)
봉암리의 남쪽 마을로 60여 호가 산다. 행정 리 이름으로 작포라 한다.
마을앞 일대는 지금은 논으로 경지정리가 된 일등 호답이나 예전에는
물구덩이가 곳곳에 있었던 늪지대로 이 늪지대가 까치형국이므로
까치늪이라 불리었다 한다. 대체적으로 까치는 인가 근처에 살므로
아마 이 일대에 까치가 많이 살았기 때문에 까치늪으로 불린것이
아닌가 한다
◈진등(陳嶝)
작포 동남쪽의 마을이다. 산등성이가 길어서 진등이라 하는데 진등의
남쪽에 뜸이 있는데 집들로 산 등성이에 일렬로 3,4호가 있다.
장재늪의 수로와 제방이 있는데 그 북쪽이다.
서남에 월령 마을이 있다.
◈장재늪가
진등의 뜸으로 장재늪 물넘기 바로 옆에 있는 뜸이다.
◈둔듸미(屯岩)
봉암리의 북쪽 마을로 70여호가 사는데 행정 리 명칭은 둔암이다
마을 근처 부근에 바위가 많아서 듬바위라 불리던 것이 듬바위-
둠듸미- 둠듬등으로 변했다고 한다.
[듬] [덤]은 큰 바우나 절벽, 암벽, 큰 더미 등을 가르키고,
[듸미]는 더미의 이곳 말이나 곧 바위더미가 있는 곳이란 뜻이다.
둔듸미를 음훈차하여 [屯岩]으로 쓴 곳이다.
그런데 둔듸미를 쓰면서 [屯]을 쓴 것으로 보아 혹시 屯田이
있었지 않았나 한다.
◈남산포
까치늪 동북쪽의 마을로 둔암의 남쪽으로 이곳 낮은 동산을 남산이라
부름에 따라 남산앞의 갯가이므로 남산포라 불린다.
◈불근등
둔암의 북쪽 마을로 황토가 들어나 산등성이였으므로 붉다하여
붉은등이라 한것이다.
◈연포(蓮浦)
봉암리의 제일 북쪽 마을로 둔암리의 북쪽이다. 창원 황씨가 오래
살아서 봉오재와 지산재 등이 있다.
연포는 장재늪 서쪽이어서 이 늪에 연꽃이 많이 피므로 연밭의
개(浦)라는 뜻으로 연포라 불리었다.
◈천태(天泰山)
청태산이라 하기도 하는데 번개늪의 동편에 있는 산으로 하늘 아래
제일 큰 산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은 높이 30.3m 내외의 길다란
산줄기뿐인 야산이다. 장마 유리와 경계로 이 산 너머 북쪽에 번개늪의
물넘기가 장마면과 영산면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지리산의 성모이기도 한 마고할미가 이 천태산에 살았다고 전해 온다.
지도상에는 증태산으로 나와 있는데 그것은 천태산의 오기이다.
◈남산
둔듸미 일대의 산이다. 마치 독산처럼 보이나 산 줄기가 계성면 봉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이다.
◈뒷들
진등 마을 북쪽에 있는 들로 마을 뒤에 있어 뒷들로 불리었다.
◈번개늪
천태산 북쪽 계성면 봉산리 구역에 있어나 그곳의 물이 둔암 앞으로 흘러갔다
월령리(月嶺里)
영남수리 들의 들판을 안고 있는 큰 마을인 월령리는 1914년 당포리를
합하여 월령리가 되었다.
수리안전답이 된 이 들은 예전에는 곳곳에 늪과 물 웅덩이로 된 벌이었다.
따라서 계성천의 주류가 이 벌을 흘러내려 매년 홍수피해를 당했던
가난하였던 마을이었다. 1920년대에 제방이 축조되고 개답이 됨에 따라
쌀농사가 잘되는 곡창으로 변모되어 잘 사는 농촌이 되었다.
월령국민학교가 있으며, 마을은 76.3m 높이의 산의 둘레에 형성되어 있다.
이 산이 마치 달처럼 둥그렇게 생겼으므로 [달의 산] (재)이란 뜻으로
[달재]라 한 것이 [다재]로 된 것이다. 남쪽은 도천면 송진리와 서쪽은
남지읍 남지리, 신전리, 성사리 등과 경계를 하고 잇으며 북쪽은 봉암리,
동쪽은 신제리와 붙어 있다.
◈월령 1구
다재 본동의 행정 리 명칭이다. 큰 마을 하나로 다재(산)의 봉우리 빙 둘러
집들이 들어서 있다.
◈다재 (月嶺)
다재는 [달의 재(산)]이라는 뜻이다. 달재가 다재로 되었는데 100여호가 넘는
단일 마을이다. 마을 앞이 수리시설이 완비된 들로 경남의 곡창지대로 이름나
있다.
서쪽은 남지읍과 이어져 있어 면소재지인 영산보다는 남지로 가는 길이 가까워
장을 보는 일이나 중. 고등학교 교통편을 남지쪽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월령 2구
월령리 남부의 행정 리 명칭으로 당포, 학동, 신능 등 여러 자연 마을이 있다.
◈땅꿈(唐浦)
신제리의 땅꿈과 구별하여 이 마을을 월령 땅꿈이라 부르기도 한다.
월령의 남쪽으로 영남수리가 되기 전에는 이 일대가 늪지와 갈대가 무성한
저습지 굼으로 쓸모없는 지역이었다. 땅꿈은 땅이 질고 굼지는 곳에 붙혀진
지명으로 이 근처에 신제 땅꿈, 남지 땅꿈 등이 있다.
◈학동 (鶴洞)
당포 앞의 마을로 월령의 동남쪽이다.
월령 2구의 본 동네라 지칭되는데 남쪽으로 들이 펼쳐저 있어 살기 좋은
마을이다.지형이 황새처럼 생겨 학동이라 하였다.
◈솔고개 (松峴)
학동 동북쪽에 있는 고개인데 소나무가 많아 솔고개라 하였다. 인가가 있어
마을 이름으로도 불린다.
◈앞고개
학동의 남쪽에 바로 붙은 뜸으로, 당포의 동쪽이 된다. 동리앞에서 송진으로
가는 고개라 앞고개라 부른다. 별로 높지 않은 곳이다.
◈새링이 (新陵)
새능, 새링 등으로 불리는 마을로 월영 앞들과 고속도로 건너 산 모퉁이에
남향으로 있는 마을이다.
이 근처 산들의 생김새가 마치 네마리의 용이 감싸고 있는 지형이라 하여
[四龍]이라 한 것이 [새링]으로 되었다 한다. 또 들판이 새(갈대)가 우거진
새밭이라 이것에 연유되어 새링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새밭등
새링이의 동쪽으로 새(草)가 많았던 등성이므로 새밭 등성이 새밭등이라
불렀다.
◈양척산(良척山)
솥고개 북쪽에 있는 산이다. 양척의 [척]이 물가에 사는 작은 새 이름인
할미새 [척]이니 이곳에 할미새가 많았으리라 짐작된다.
◈교동갓
앞고개 서쪽에 있는 산으로 영산 교동 사람들의 선산을 지칭한다.
◈대밭고개
땅꿈에서 신제로 가는 고개로 예전에 대밭이 근방에 있었다 한다.
◈영남수리 제방 (靈南水利堤防)
월영의 동남쪽에 있는 영남들의 제방이다. 이 제방을 1925년대에 장마에서
송진까지 쌓아져 영남들 약 2,000여 정보를 계성천과 낙동강 범람 때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영남들
영남들은 영산과 남지의 들이란 뜻으로 두 면의 이름을 한자씩 따모아
지어진 이름이다.
이 들은 영산면의 월영리와 봉암리, 장마면의 유리, 남지읍의 성사리와
신저리, 도천면의 송진리 등 4개 읍면의 땅이 연결된 평야이다. 제방은
북쪽 장마면 유리 도동에서 시작하여 남으로 내려와 도천면 송진리에서
끝나는 길이 약 9km이다.
첫댓글 흥미롭고 훌륭한 글, 감사 감사.....
헌데, 이 글의 출처는 어떻게 되는지 상당히 궁금함다.
갯바위님께서 직접 조사했을려나?''''
갯바위님 정보가 대단하셔
윤교수도 오셨네
많은 정보 늘 감사히 보고가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