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2003년 6월 고3 모의평가>
가까운 부락들에는 안 갔었지만 먼 데 동냥을 나갔던 사람들은 계속 수상한 소문들을 듣고 왔다. 그만큼 했음 떠날 줄 알았던 문둥이들이 내처 버티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아주 밖으로 내쫓는다, 정 안 들으면 모조리 강에다 밀어 넣어 버리겠다고까지 벼른다는 것이었다.
㉠“미친놈들! 즈그만 살라는 땅인가? 어데 해보라지……?”
우중신 노인은 모두 들으란 듯이 일부러 큰 소리로써 구두덜거렸다.
밤에는 늦게까지 모닥불을 피워 놓고 놀았다. 그러면서 습격을 당한 이야기와,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어쩌겠느냐는 이야기들이 으레 나왔다. 속담에 문둥이가 풍은 대풍이라고, 모두 큰소리들을 쳤다.
맞서 싸우자는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 또 내쫓으러 온다면 놈들하고만 싸울 게 아니라 놈들이 사는 동네까지 마구 덮치자는 놈도 있었다. 나라가, 법이 못 지켜 줄 바에는 자기들의 힘으로써 그러한 불법을 막는 수밖에 도리가 있겠느냐는 주장들이었다.
그들은 의논한 결과 향토 예비군처럼 반을 나누고, 밤에는 제법 보초까지 다 세웠다.
그와 동시에 부근 주민들의 동정을 살피는 정보활동까지 개시했다.
하루는 동냥을 나갔던 한 패가 지레 돌아왔다. 온다는 것이었다.
“한 집에서 한 사람씩 꼭 나오게 대 있담더!”
“응…….”
우중신 노인은 무슨 계책이라도 서 있는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곧 ‘인간단지’에 비상소집이 내렸다. 모두 보통 때와 같이 일을 하다가 부락민들이 또 몽둥이를 들고 올 때는 곧 한곳에 모이기로 했다.
“먼저 손을 대서는 안 댄데잇! 저쪽에서 기어이 덤빌 때는, 그때는 한번 해 보자 말이다. 알겠나? ㉡이기고 지고는 이 번이 마지막이다.”
우중신 노인은 이렇게 당부를 하고 치구를 시켜 몇 사람의, 손가락 없는 불구자만을 천막 안으로 불러들였다. 힘으로는 못 당할 테니 악으로써 대결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손가락이 없는 팔뚝들에 낫을 한 자루씩 동여매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두 자루씩 가진 셈이었다. 이것이 그날의 소위 특공대와 같은 것이었다.
“놈들이 간대로 때리 쥑이지는 몬할 끼다. 이래서 우리들의 결심을 비이자 말이다.”
“멋하면 한 놈 쥑이고 나도 죽을라요!”
이마가 몹시 까진 ‘소신랑’이 역시 표독스런 소릴 했다.
결국 올 것은 왔다.
2백여 명의 장정들이 백주에 괭이며 삽, 몽둥이들을 들고 몰이꾼처럼 몰려왔다. 어느 얼굴을 보나 인간 백정이다.
50명 남짓한 ‘인간단지’의 식구들은 우선 손에 쥔 것 없이 그들의 천막 앞에 앉아 있었다.
부락민들은 천막들을 죽 에워쌌다.
구장인지 뭔지 얼굴이 넓적하고 입이 메기처럼 커다란 사람이 겁에 질려 있는 듯한 단지의 사람들을 보고 명령을 하듯 했다.
“여러 말 할 것도 들을 것도 없으니 곧 이곳을 떠나시오!”
목소리도 입 따라 우렁찼다.
경기까투리가 일동을 대표해서 따지려 들었다. 그러나 그는 두 마디도 못하고 구장인 듯한 사내의 발길에 채여 넘어졌다.
단지민들은 우꾼 하려다 말고 천막 안을 돌아보았다.
흰 수염을 덜덜 떨며 우중신 노인이 예의 긴 지팡이를 짚고 경기까투리가 섰던 자리에 나타났다.
“자네 말마따나 여러 말 할 것 없네. 우릴 쥑이라. 우선 나부터!”
우중신 노인은 누더기 같은 윗도리를 확 찢어 젖히며 뼈만 남은 가슴을 쑥 내밀었다.
그러나 구장깨나 해 먹을 만한 사람같이 보이는 메기아가리에겐 그까짓 거러지들의 불평이나 위협 따위에 왼 눈도 깜짝할 필요가 없다.
“자네? 이 자식이 머 이런 기 있노!”
메기아가리의 넓적한 손바닥이 우노인의 얼굴을 몰강스럽게 냅다 갈겼다.
쓰러질 듯하다가 일어나는 우노인의 수염에 피가 벌겋게 흘러내렸다.
- 김정한, 인간단지(人間團地) -
38.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② 배경 묘사가 사건의 전개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③ 사투리를 활용하여 사건의 현장감을 강화하고 있다.
④ 외양과 행동을 묘사하여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⑤ 인물들 사이의 대립 구도를 통해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39. 우중신 노인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낙천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다.
②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고 있다.
③ 주위 사람들의 신망이 두텁다.
④ 대담하면서도 용의주도한 면이 있다.
⑤ 상황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
40. 윗글의 소재가 된 사건을 심층 취재하여 <보기>와 같은 기사문을 쓴다고 할 때, ⓐ~ⓔ 중 본문에 나와 있 지 않은 것은?
나환자촌 단지민들과 인근 마을 주민들 유혈 충돌
○일 오후 1시 경, △△군에 있는 무허가 나환자 천막촌에서 인근 마을 주민들이 이 시설의 철거를 요구하다가, 이를 지키려는 나환자들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주, 나환자 수용 시설인 ‘자유원’(원장 박○○ )의 부정과 비리를 폭로한 나환자들은, 자유원을 떠나 ⓐ이 곳에 ‘인간단지’ 라는 거처를 마련했다고 한다. 나환자들이 이 곳에 정착하자 인근 마을 주민들은 극력 반발하였고, 급기야는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마을 구장은 “문둥이들이 우리의 철거 요구에도 불구하고 단지를 떠나지 않아 ⓑ 강압적 으로 쫓아낼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자유원 박 원장은 ⓒ자유원을 떠나 ‘인간단지’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간단지’의 대표격인 ⓓ우중신 노인은 마을 사람들의 폭력으로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할 뜻을 밝혔다. 한편 단지민들은 소외 계층인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나라와 법에 대해서도 불신감을 드러냈다.
① ⓐ ② ⓑ ③ ⓒ ④ ⓓ ⑤ ⓔ
41.㉠의 생략된 부분에 들어갈 수 있는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거야?
② 어째서 방귀 뀐 놈이 먼저 성을 내는 거야?
③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거야?
④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는 거 아냐?
⑤ 쥐 새끼도 급하면 고양이에게 접어드는 것도 모르나?
42.윗글을 희곡으로 각색하여 공연할 때, ㉡에 가장 잘 어울리는 동작이나 표정은?
① 이죽거리며 ② 반색을 하며
③ 손사래를 치며 ④ 비장한 표정으로
⑤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정답] 38. ② 39. ① 40. ③ 41. ⑤ 42.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