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어머님!
오늘 아침에 고의적삼
차입(差入, 갇힌 사람에게 옷, 음식, 돈 등을 들여보냄)해 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 동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길 없으셨으니 그
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건만
그래도 몸성히 배포 유하게(조급하게 굴지 않고 성미가 유들유들하게)
큰집에 와서 지냅니다.
쇠고랑을 차고 용수(죄수의 얼굴의 못 보게 머리에 씌우던 통 같은 기구)는
썼을망정 난생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 순사까지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하였습니다.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노인네의 얼굴은 앞날을 점치는 선지자처럼,
고행하는 도승처럼 그 표정조차 엄숙합니다.
날마다 이른 아침 전등불이 꺼지는 것을 신호삼아
몇 천 명이 같은 시간에 마음을 모아서 정성껏 같은 발원으로 기도를 올릴 때면,
극성맞은 간수도 칼자루 소리를 내지 못하며
감히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발꿈치를 돌립니다.
어머님!
우리가 천 번 만 번 기도를 올리기로서니
굳게 닫힌 옥문이 저절로 열려질리는 없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목을 놓고 울며 부르짖어도 크나큰 소원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도 없겠지요.
그러나 마음을 합하는 것처럼 큰 힘은 없습니다.
한데 뭉쳐 행동을 같이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그 큰 힘을 믿고 있습니다.
생사를 같이할 것을 누구나 맹세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기에 나
어린 저까지도 이러한 고초를 그다지 괴로워하여 하소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님!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니 같으신 어머니가 몇 천 분이요,
또 몇 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어머님!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니 같으신 어머니가 몇 천 분이요,
또 몇 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 외다.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 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지면 흘금흘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 먹기가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