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농원’ 디자인 총괄 김범은 어떤 아티스트?
김범,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2010, 돌, 목재 탁자, 12인치 평면 모니터에 단채널 비디오 (12시간11분), 매일홀딩스 소장, 이의록, 최요한. 촬영. 사진 리움미술관
김범, '두려움 없는 두려움', 1991, 종이에 잉크, 연필. 이의록·최요한 촬영. 사진 리움미술관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2010),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2010)…. 작품 제목부터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작품 하나하나가 진지한 농담 그 자체다.
목재 탁자 위에 돌 하나 툭 얹어놓고 그 옆에 설치된 비디오에서는 열띤 강의가 열리고 있다. 돌한테 들려주기 위해 정지용의 시를 낭송하는 사람, 배를 앉혀 놓고 지구가 육지로만 돼 있다고 가르치는 학자가 보인다.
지난달 27일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의 전시장 풍경이다. 작가는 이처럼 사물을 동원해 우리 교육 시스템을 비추며 현실을 뒤돌아보게 한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리움은 이번 전시에서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총 70여 점을 통해 한국 동시대미술에 큰 영향을 준 김범의 작품세계를 조망한다. 사나운 개가 벽을 뚫고 달아난 흔적 같은 ‘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 망치라는 공구가 지닌 생산적 기능을 동물의 생명력과 연결한 ‘임신한 망치’(1995) 등이 작가 특유의 기발한 발상과 표현력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현재 김범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홍콩 M+ 뮤지엄, 클리브랜드 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매일컬렉션’이 주목한 주요 작가와 작품
양혜규, ‘Reflected Metallic Cubist Dancing Mask’, 2020
양혜규,'Reflected Metallic Cubist Dancing Mask', 2020, cherrywood, steel, ashwood handles, casters, self-adhesive glitter, holographic carbon and metal effect vinyl film, brass and nickel plated bells, metal rings, 208 x 118 x 104 cm. 사진 매일홀딩스
양혜규는 2000년대 이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이다. 매일컬렉션은 최근 양혜규 작가가 많이 선보인 시리즈들 외에 초기 작업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9x13 = 36’ ‘Celebrating Caution’ ‘Video Trilogy’ ‘Dehors’ 등을 소장하고 있다.
빨래 건조대에 옷을 입히거나 뜨개질로 덮은 작품 ‘비-펼칠 수 없는 것’(2000~2010)도 주목할 만하다. 수작업과 공산품이 대조되는 모순적인 요소를 드러내는 추상적인 형태의 조각이다.
구정아, ‘닥터 포그트(Dr. Vogt)’, 2010
구정아, 'Dr. Vogt', 2010, Unique installation of linoleum floor with 60 drawings, ink on photographic paper, dimension variable. 사진은 상하아틀리에 구정아 전시장 전경.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구정아는 1990년대부터 일상적인 장면을 포착하거나 평범한 사물을 이용해 작업해 왔다. 오브제, 사진, 동영상, 사운드 등으로 특정 장소의 형태와 맥락에 설치되는 그의 작업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의 설치작업 ‘닥터 포크트(Dr.Vogt)’(2010)는 벽면에 걸린 60점의 드로잉과 함께 공간 전체를 형광 분홍색 빛으로 연출한 것. 각 드로잉에는 인물의 구체적인 행동과 몸짓이 드러나기도 하고 고립된 섬과 바위, 휑한 군도의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관객은 특수한 기계장치 없이 단순한 빛과 색, 종이의 조합으로 만든 이 장소에서 낯선 체험을 갖게 된다.
구 작가는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라는 주제 아래 ‘한국 향기 여행(Korean scent journey)’이라는 개념의 신작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도호, ‘낙하산병 V(Paratrooper-V)’, 2005
서도호, '낙하산병 V(Paratrooper-V)', 2005, 리넨, 폴리에스터, 콘크리트, 플라스틱 혼합재료. 279.4 x 499.6 x 715㎝. 사진 매일홀딩스
천으로 만든 ‘집’으로 세계를 홀린 설치미술가 서도호는 백남준, 이우환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서울대,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학교, 예일대 등을 거치며 회화와 조소학을 공부했으며, 2001년 제49회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며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설치작품 ‘낙하산병’은 작은 군인이 자기 몸의 수백 배가 되는 커다란 낙하산을 당기고 있는 형태다. 그 낙하산 끝에는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그들은 이 작은 개인(군인)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카르마’와 더불어 ‘나’라는 존재가 무수한 타인들과 서로 연결돼 있다는 주제를 전한다.
이주요, ‘십년만 부탁합니다’, 2017
'십년만 부탁합니다', 2017, mixed media. 사진은 2017년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 장면. 사진 매일홀딩스
전 세계를 다니면서 작업하는 이주요 작가에게 작품을 보관하는 일은 아주 큰 문제였다. 작가는 2007년 ‘십년만 부탁합니다’라는 전시를 통해 작품을 전시하고 향후 십년간 작품을 맡아줄 개인들의 신청을 받아 작품을 위탁했다.
2017년 작가는 위탁한 작품들을 다시 소환했다. 그리고 작가와 떨어져 있는 10년 동안 작품들이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위탁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해 연극 형식으로 이야기를 선보였다. 매일홀딩스는 작가가 작품을 연극무대에 올리기까지 작업 과정을 지원했고, 전시 작업을 소장했다.
작가는 신작 ‘러브 유어 디포(Love Your Depot)’를 통해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설치·영상·퍼포먼스가 이뤄지는 창작 공간이자 작품 보관의 기능을 가진 새로운 형태의 공간을 선보였다.
김홍석, ‘공공의 공백’, 2006~2008
김홍석, '공공의 공백', 2006~2008, 16 drawings and texts, pigment print on paper. 사진 매일홀딩스
김홍석은 현실과 픽션,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에 날카로운 현실 비평을 담아 왔다. 특히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체계 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화 번역 현상에 주목해 번역과 차용, 공공성과 개인성의 문제를 조각, 회화와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해 왔다.
작가는 주관적인 공공성을 주제로 한 드로잉을 통해 우리 현실에 놓인 무수한 여백에 주목하며 현대미술의 관심 영역 밖에 있던 윤리의 문제를 드러낸다.
문경원&전준호, ‘불 피우기’, 2022
문경원&전준호, '불 피우기', 2022, 혼합재료,1/3+2A.P, dimension variable. 사진 매일홀딩스
문경원&전준호는 2009년부터 듀오로 활동하며 정치·경제적 모순, 역사적 갈등, 기후 변화와 같은 인류가 직면한 위기와 급변하는 세상에서 예술의 기능과 역할을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들의 최근작 ‘불 피우기’(2022)는 관객 몰입형 설치 작업이다. 컴퓨터 그래픽과 실사로 구성된 화면으로 사실적 기록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허구를 뒤섞어 보여준다. 시공간을 알 수 없는 미지에서 펼쳐지는 기후 이야기를 통해 작가들은 실재와 가상, 기록과 허구,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깨운다.
김성환, ‘표해록(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 2022
김성환, '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 2022, 단채널 비디오와 사진, 오브제 설치. 사진 매일홀딩스
김성환은 2021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열고 존 시몬 구겐하임 기념재단의 펠로십을 수상하며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작가는 역사와 사회 구조, 교육 제도 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영상과 퍼포먼스, 음악, 빛,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업한다.
‘표해록’은 20세기 초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설치작품. 20세기 초 하와이로 건너간 한국인 이주자들과 하와이 원주민을 소재로 하와이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들과 한국 디아스포라를 두 프레임으로 나란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2021년 뉴욕 현대미술관과 2022년 호놀룰루 트라이에니얼에서 확장돼 소개된 바 있다.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 ‘콰트로 카미노스(Cuatro Caminos)’, 2007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 '콰트로 카미노스(Cuatro Caminos)', 2007, oil and encaustic on wood diptych, 각 22.4 x 14 x 2㎝. 사진 매일홀딩스
프란시스 알리스는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벨기에 출신 작가로, 회화·사진·비디오·퍼포먼스를 넘나들며 작업한다. 1985년 멕시코를 강타한 대지진 피해 복구 봉사단의 일원으로 멕시코시티를 방문한 뒤 그곳에 정착해 다양한 작업을 해 왔다. 그는 특히 멕시코시티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의 권력과 노동 등 사회·정치적 문제와 국경 분쟁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작품에 담아 왔다.
‘콰트로 카미노스(Cuatro Caminos)’는 그가 2008년 영상 작품 ‘강에 가기 전에 다리를 건너지 마시오(Don’t Cross the Bridge Before You Get to the River)를 준비하며 제작한 작품. ‘강에 가기 전에…’는 지브롤터 해협을 둘러싼 강대국들 사이의 갈등에 주목하며 시작됐지만, 회화는 스페인과 모로코 아이들을 시적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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