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iginal version Played In Moscow 1996
With
Kim Kyung Min,
Yi In Young
Han Ju Yun
Yi Yong Hee
나오는 사람들
명자 - 20대 초반
숙희 - 20대 후반
영란 - 20대 후반
길수 - 20대 후반, 男, 흑인 혼혈.
1996년 6月初, 대한민국 경기도 송탄시. 작은 클럽 `Moody blues'.
Osan Air base의 주한 미군들은 업무가 끝나면 부대 앞에 산재한 여러 클럽, 당구장, 디스코텍 등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 곳은 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작은 클럽이다. 큰길에 있지도 않고 번화가 끝의 골목 귀퉁이에 있는 이 클럽은 숙희의 노래 솜씨 때문에 단골들은 꽤 있는 편이다.
(탁자 둘에 빠텐의자가 다섯 개 정도 놓여져 있다. 객석에서 왼쪽 앞은 출입구. 중앙에는 빠텐이 자리하고 있고 빠텐 왼쪽 뒤는 내실과 화장실이다.)
때는 금요일 저녁.
앞치마를 두른 명자는 클럽內를 청소하고 있다. 아니, 청소를 한다기 보다는 어루만진다는 말이 옳을 듯 싶다. 물건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닦는다. 그리고 벽의 낙서들을 읽는다. 옛일이 생각난 듯 웃음을 짓기도 하고 또 어떤 낙서는 자세히 읽어보기도 한다. 다시 청소를 한다. 안에서 숙희의 목소리.
숙희 - 명자야, 그래서 태섭씨가 뭐래던?
명자 - 뭐래긴! 좋다고 그러지 뭐.
숙희 - 확실히 정신이 나갔어.
명자 - 정신이 나간 게 아니라 날 사랑하는 거야.
숙희 - 아무리 사랑을 해도 그렇지 아이를 낳지 말자는데 그러자는 사람이 어디 흔하니?
명자 - 그래, 그게 날 사랑하는 거지 뭐. (주방에 놓여져 있는 과일접시에서 파일애플 한쪽을 먹는다) 사랑.
숙희 - (놀리듯) 자신 있어? 사랑?
명자 - 그럼!
숙희 - (갑자기) 너, 정말로 아이 낳기 싫어?
명자 - 응. 난 내 애가 나 같은 운명을 살을까봐 겁나. 그러려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좋거든.
숙희 - 그래도 아이를 낳는 게 좋아. (나온다) 너 뭐하니?
명자 - 청소.
숙희 - 너 정말! 신부가 청소를 하니?
명자 - 오늘이 내 마지막 청소야, 언니.
숙희 - 그건 알겠는데 빨리 들어가. (민다) 어서 들어가서 옷갈아 입고 준비 해. 영란이 오면 바로 시작하게.
명자 - 아이 참!
숙희는 명자를 들여보낸 후 테이블 하나를 구석으로 밀어붙이고 나머지 테이블에는 세련된 솜씨로 식기와 잔등을 배열해 놓는다. 그리곤 생각이 난 듯 서랍에서 ‘Closed'라는 푯말을 꺼내 밖에 내다 건다. 명자는 자기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숙희 - 명자야, 웨딩드레스는 맘에 드니?
명자 - 그럼!
숙희 - 더 좋은 거 빌릴 수 있었는데...
명자 - 나한텐 이게 더 잘 어울려.
숙희 - ...그리고 피로연은 우리 가게에서 하기로 한 거 알지?
명자 - 응!
숙희 - 예식장 근처에서 하면 맛도 없고 괜히 복잡하다구.
명자 - 맞아, 언니!
숙희 - 그리고 사진관 최씨 아저씨네 차 알지?
명자 - 응, 마르샤?
숙희 - 응, 그걸로 너랑 태섭씨 김포공항까지 데려다 준데.
명자 - 진짜?
숙희 - 응.
명자 - 어머, 잘됐다. 걱정했었는데...(헤어 드라이어 소리) 그런데 최씨 아저씨가 갑자기 왠 친절?
숙희 - (웃으며 주방 쪽으로 들어가며) 글쎄-? 아마 그때 보증인 때문에 문제됐었던 게 좀 미안했나 봐.
명자 - 깔깔깔!
숙희 - (주방에서) 이, 이거 누가 먹었니? 니가 먹었니?
명자 - 뭐?
숙희 - 여기 파인애플 잘라 논 거!
명자 - 한 조각 먹어 봤다. 얼마나 맛있나.
숙희 - 넌 음식 집어먹는 버릇 고치기 전까지는 남편한테 사랑 받긴 다 틀렸다.
명자 - 괜찮아, 우리 태섭씨는 요리사니까. 히히히.
숙희 - 조그만 칼 못 봤니?
명자 - 어, 그거! ...영란이 언니가 쓰는 거 아침에 봤어.
숙희 - 영란이가? 아, 여기 있다. 아니 근데 얘는 왜 아직도 안 와?
명자 - ... 다음 차례 춤추는 애가 안 와서 땜빵하고 있나 보지!
숙희 - 땜빵? 하하! 그년이 땜빵을 할 년이니? 또 케빈이나 만나고 있겠지.
명자 - 근데 케빈하고는 정말 잘되어 가는 거야?
숙희 - 모르지. 그년이 사람을 진실되게 만나야지, 원!
명자 - 그래도 이번엔 아닌 것 같은데.... 케빈이 미국에 돌아갈 때도 됐고....데려 갈 수도 있을 거야.
숙희 - 난 안 믿어!
영란 - (밖에서) 얘들아! 빨리 문 열어! 명자야! 숙희야!
명자 - 어머, 영란이 언니다.
영란 - 빨리 문 열어!
숙희 - (열며) 왜 이렇게 늦었니?
영란 - 뭐하니? 문도 빨리 안 열고?
영란은 긴 코트를 입었는데 풀어 헤쳐진 앞섶에는 스트립 댄스 복이 보인다. 양손과 어깨에 핸드백, 술병, 꽃가루 광주리, 케잌, 선물 등을 들었다. 그녀는 들어오자 마자 물건을 내려놓기 半, 숙희에게 맡기기 半 하고는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간다.
물 내리는 소리.
영란 - 왜 문은 잠갔니?
명자 - (안에서) 언니 왔어?
영란 - 응 그래.
잠시후 나오며.
숙희 - 왜 이렇게 늦었냐니까?
영란 - 야, 이놈의 송탄시, 정말 빨리 뜨든지 해야지, 무슨 놈의 동네가 케잌이 없을 수 있냐? 두 시간을 돌아다니다가 하나 남은 거 겨우 사 왔다.
숙희 - 근데 이게 다 뭐니?
영란 - 뭐기는 다 필요한 거지.
숙희 - 이 샴페인은 못 보던 거다.
영란 - 응, 이게 미국에서 결혼식 전날에만 터뜨린다는 샴페인 아니냐!
숙희 - ...으응.
영란 - 캐빈이 내 동생이 시집간다니까 특별히 주더라구. 명자야, 니 형부께서 샴페인을 선물했다!
명자 - 그래? 언니, 일은 잘 끝났어?
영란 - 그럼! (하며 춤을 춘다) 뭐하니 안에서!
명자 - 응! 예쁘게 하고있어!
명자 - (영란을 보며) 너 어째 기분이 심상치 않다. 니가 내일 시집가니?
영란 - (손가락에 반지를 보이며) 캐빈이 줬어.
숙희 - 뭐? (본다)
영란 -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캐빈이 미국에서 언젠가 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선물한다고 사 논 건데, 나한테 딱 맞는 거 있지? 캐빈이 오늘 정식으로 나한테 청혼했어! (광주리를 들고) 이 광주리 봐라. 이게 결혼식 날 뿌리는 거 아니냐. 신부 퇴장 할 때! (뿌린다)
숙희 - 야야야! 그만 뿌려! 다 청소해 논 건데! (꽃가루 몇 개를 줍다가) 정말로 청혼했니?
영란 - 그럼!
숙희 - 너 그 케빈 만나지 마!
영란 - 에이, 정말! 날도 날이고 해서 일하다 말고 왔는데! 기분 깨고 있어!
숙희 - 니 기분이 명자 결혼 때문에 좋니? 케빈 때문에 좋지.
영란 - (보다가) 에이 정말!
명자 - (안에서) 언니들! 저 나가도 되겠어요?
숙희 - 다 입었니?
영란 - 웨딩드레스 입었니? (숙희 끄덕인다) 그래, 어디 좀 보자, 얼마나 예쁘게 입었는지.
명자, 나온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웨딩 드레스를 입었다.
처음엔 신부 등장처럼 하다가 갑자기 패션모델의 워킹 흉내를 낸다.
영란 - 어쭈, 어쭈!
명자 - 어때요? 언니들? (엉덩이를 더욱 흔들며 걷는다.)
숙희 - 야야야! 신부가 어디 엉덩이를 그렇게 흔들고 그래? (엉덩이를 때린다.)
영란 - 웨딩 드레스 이거 얼마 주고 빌렸니?
명자 - (계속 걸으며) 비밀!
영란 - 괜찮다, 얘.
숙희 - 괜찮니?
영란 - 응.
숙희 - 더 비싼 것도 있는데 명자한테 이게 더 잘 어울리더라구.
명자 - 워낙 세련된 여인 아니겠어요?
숙희 - 야야야, 볼 상 사납다. 자, 빨리 앉아, 앉아. 빨리 시작하자.
영란 - (앉으며 명자에게) 얘, 재떨이 좀 가져와라.
숙희 - 야, 넌 오늘 주인공한테 심부름을 시키니?
영란 - 앗, 미안, 미안. (재떨이를 가지러 주방으로 들어간다.)
숙희 - 그리고 오늘은 담배 좀 피지마.
영란 - (안에서) 그래, 딱 한 대만 피고.
숙희 - 얘, 거기 냉장고에 과일 담아 논 거 좀 가져 와.
영란 - 여기 짤라 논 거?
숙희 - 응.
영란 - 근데 모양이 어째 좀 이상하다?
숙희 - 왜 그러겠니? 명자가 또 쓱싹했지.
명자 - 히히히.
영란, 나오는데 파인애플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숙희 - 야! 정말! 너네들은 왜!
영란 - 음식은 먹으라고 있는 거야. 자, 먹자구! 케잌 뚜껑 좀 열어.
숙희 - 휴! 그래 먹자, 먹어. (연다)
영란 - 도대체 이놈의 동네는 케잌 하나 쓸만한게 없니? 확실히 동두천이 여기보다 나아.
숙희 - (영란에게) 야! 너 정말!
영란 - 왜?
숙희 - 무슨 얘 생일이니?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사오면 어떡하니!
영란 - 얘는 내가 모르고 이걸 사온 줄 아니? 아무리 돌아 다녀도 쓸만한 케잌이 없다고 얘기했잖아. 겨우 괜찮은 거 하나 찾았는데 해피 버스 데이라고 써 있는 걸 어떡하니! 뭐 글씨가 중요하니? 분위기 내자고 사는 케이큰데 멋있으면 그만이지.
명자 - 그래, 언니. 정말 모양이 멋있다. 난 이런 모양 첨 봤어.
영란 - 그치? 멋을 몰라요. 빨리 초나 꽂아!
숙희 - 근데 초는 왜 또 세 개야? 얘가 세 살이냐?
영란 - 무슨 얘 생일이니, 오늘? 우리가 세 명 아니냐? 이제 내일이면 명자하고 헤어지는데 셋이서 하는 마지막 파티잖아.
명자 - (초를 꽂으며) 그래, 그래. 언닌, 정말 속이 깊어.
숙희 - 그래, 정말로 내일이면 명자하고 헤어지는구나, 응?
명자 - 아이 참, 무슨 내가 미국으로 가나? 송탄하고 대전은 한 시간이다, 한 시간! (영란에게) 언니하고는 어쩌면 정말로 곧 헤어질 지도 모르잖아.
영란 - (초에 불을 붙이며) 숙희야, 노래 좀 불러라, 응?
숙희 - (놀라며) 노래? 무슨 노래?
영란 - 축가, 말이야. 결혼 축가.
명자 - 박수!!! (짝짝짝)
숙희 - (일어나며) 하하, 이것 참.
숙희, 노래를 부른다.
명자 - 야! 좋다!! 앵콜!!
영란 - 자, 인제 촛불을 꺼.
명자, 촛불을 끈다.
영란 - 그럼 다음 순서!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샴페인 시간입니다. 여러분, 방금 미국에서 날아 온 싱싱한 샴페인입니다. (터뜨린다) 자!!
샴페인은 온통 명자와 숙희를 적신다. 둘 비명.
숙희 - 어유, 야!! 그 아까운 샴페인을!!
영란 - 다 이렇게 하는 거야.
명자 - 언니...! 내 웨딩 드레스..! 어유, 나 어떡해!! 내일!!
영란 - 괜찮아. 이건 좋은 샴페인이라서 얼룩도 안지는 거야.
숙희 - (웨딩 드레스를 보고) 괜찮아, 여기만 좀 닦으면 될 것 같애.
영란 - 자, 한 잔씩 하자구.
서로들 따라 준다. 마신다.
명자 - 야! 맛있다!
영란 - 글쎄 좋은 술이라니까. 자! 인제 노래도 부르고, 촛불도 끄고, 샴페인도 마셨으니까 - 다음 순서! 눈감아.
명자, 눈을 감고 영란은 선물을 꺼낸다. 선물은 인형이다.
영란 - 자, 눈 떠!
명자 - 어머, 예쁘다!
영란 - 결혼 축하해. 태섭씨하고 잠자는 침대 머리맡에 놓고 있으라구!
명자 - 침대가 없는데!
영란 - 그럼 아무데나 놓고 봐.
명자 - 고마워, 언니! 선물같은 거 안해도 되는데...
영란 - (숙희에게) 얘, 너는 뭐 없니?
숙희 - 응? 으응..있지.
영란 - 그럼 빨리 꺼내 봐.
숙희 - ..내일 주려고 했는데...
영란 - 지금 주는거야.
숙희, 카운터 서랍에서 무언가 꺼낸다.
영란 - (숙희에게) 도대체 애가 촌스러워서 선물을 언제 주는 지도 몰라요. 자, 명자야, 우리 한 잔 하자.
명자 - 응, 언니.
숙희 등장. 명자에게 통장을 내밀며.
숙희 - 이걸로 침대 사.
명자 - (보다가)...언니, 이게 뭐야.
숙희 - 받어, 그냥. 실명제 때문에 내 이름으로 되 있지만 네 꺼야. 비밀 번호는 0222, 네 생일이다. 쉽지.
명자 - (통장을 내려놓으며) 언니, 이거 너무 커서 못 받겠어.
숙희 - 받어, 그냥.
명자 - 나 침대 필요 없어.
숙희 - (사이) 글쎄, 받어.
명자 - 언니! 나 이 돈 못 받어!.
숙희 - 아니, 얘가 정말! 받으라면 받을 것이지 무슨 말이 많아! 이거 니 돈이야! 일한 만큼 받는 거야.
명자 - 언니! 내가 줄 돈이 더 많아!
숙희 - 야!
영란 - 글쎄, 줄 때 받어. 침대 없으면 태섭씨가 힘들어. 허리 다 뿌러지고 무릎다 까져. (통장을 명자 가슴에 넣어준다)
명자 - ...언니.....
영란 - 자, 자, 한 잔 마시자구!
명자 - 잠깐! (하며 방으로 퇴장)
숙희 - (영란에게) 자, 한 잔하자.
영란 - (술을 따르며) 야, 돈 꽤 되더라? 무슨 딸 시집 보내듯 한다, 너?
숙희 - 으응, 그게...
명자 등장. 둘에게 선물상자를 준다.
명자 - 자 받어!
영란 - 얘는 시집가는 년이 무슨 돈이 있어서 선물을 하니? 태섭씨 한테나 잘하지.
명자 - 혼숫감 마련하고 돈이 조금 남아서...!
숙희 - 무슨 남을 돈이 다 있니! 돈 남았으면 웨딩드레스나 더 좋은 거 빌릴텐데!
명자 - 언닌, 참, 나한텐 이게 더 잘 어울린다고 했잖아.
영란 - (열어보니 시계다) 어머! 너무 예쁘다!
명자 - 언닌 이 시계 자주 보면서 시간 좀 잘지키라구!
숙희 - 참, 얘는!....명자야 정말 고마워. 언니가 나중에 미국에서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선물 사줄게.
명자 - 됐네! 언니나 잘 살어! (숙희가 선물을 열고 있질 않자 숙희를 보며) 언니! 뭐해? (사이) 아이 참! (명자가 포장을 벗긴다.) 열어 봐! (열어보니 뮤직박스이다.) 고마워, 언니들! 결혼도 시켜주고... 정말 고마워. 언니들이 없었다면 난...(눈물을 글썽인다)
잠시 사이
영란 - 자, 자, 뭐하니 이렇게 좋은 날 우리 음악 듣자!
영란은 음악을 튼다. 댄스음악이 흐른다. 그들은 춤을 춘다. 숙희가 다시 음악을 바꾸는데 '별은 빛나건만'이 흐른다. 그 음악에 맞추어 영란과 숙희는 블루스를 춘다. 명자는 둘의 춤추는 모습을 보며 자리에 앉는다. 흐뭇한 미소. 통장을 열어본다. 다시 감정이 복받친다. 통장과 인형을 손에 쥐고 흐느낀다.
영란 - (춤을 추다가 명자를 보고) 얘, 얘! 너 왜 그러니? 우니?
숙희 - 명자야!
영란, 음악을 끈다.
명자 - (울음이 복받쳐) 언니들, 고마워...나 시집가면 언니들 보고 싶어서 어떡해! (운다) 정말 고마워!
영란 - 고맙고 행복한데 울긴 왜 우니? 그만 울어!
숙희 - 왜 그래, 애를! 정말 행복하니까 우는 거지. (보다가) 야, 야 볼상 사납다. 그만 울어! 눈이 붇겠다. 신부가 내일 눈이 퉁퉁 불어서 나가면 아주 예쁘겠다.
영란 - 야, 벌써 눈이 좀 불었는데! 그때 언제지? 얘 울어 가지고 눈이 퉁퉁 불어서 장사도 못하고 사장한테 야단 맞았던 적 있었지?
숙희 - 아, 맞다. 그래, 그래, 그때가 언제지?
영란 - 그래서 사장이 `아이구 못살아! 아이구 못살아!' 그러지 않았었냐?
일동웃음.
영란 - 맞아, 맞아, 그때가... 아! 맞다! 길수오빠 면회 갔다가 온 날이야! 어쩌면 그렇게 눈이 부었을까? 얘는 눈만 붇는 것이 아니라 볼, 입술, 다 붇는 것 같지 않니?
영란, 숙희 쪽을 보는데 숙희와 명자는 얼굴이 굳어있다.
영란 - (보다가)...왜..그래? 갑자기?
사이. 그러다 영란은 알아챈 듯 무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영란 - (담배를 물고)..라, 라이터가 어디갔지?
숙희 - 머리가 나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영란 - 야,...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숙희 - 아무리 우스개 소리를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할 말이 따로 있는 거지!
영란 - 얘가 정말! 어쩌다 나온 거 아니야? 내가 뭐 길수오빠 얘길 하고 싶어서 했냐? 무슨 내 가 큰 잘못이나 한 것처럼 그래! 일부러 그 얘길 꺼냈니? 눈이 부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어쩌다 나온 거지.
명자 - 괜찮아, 언니.
숙희 - 넌 그럼 너한테 스티브 얘기 꺼내면 좋겠니?
사이.
명자 - 언니!
영란 - (낮은 목소리로) 죽은 사람 얘기는 왜 꺼내니? 응? 죽은 사람 얘기는 왜 꺼내?
숙희 - 맨 미국 가는 꿈만 꾸다가 미국 귀신이 달라붙은거지 ...!
영란 - 니가 나한테 미국귀신 달라붙는데 뭐 보태준 거 있니? 스티브가 죽지만 않았어도 난 미국 갔어.
숙희 - 그래서 그 다음에 마틴이랑은 미국 갔니?
영란 - (흥분하여) 너, 니가 지금 마틴 얘기를 꺼내니? 마틴 얘기는 니가 꺼내면 안되지. 그건 다 너 때문에 못 간 거 아니니? (사이) 내가 그때 마틴이랑 캘리포니아 간다구 200만원만 빌려 달라고 그럴 때 니가 100만원만 줬어도 나 미국 갔어. 그랬으면 지금쯤 미국 가서 아들딸 낳구 잘 살구 있을 거라구. 내가 그 돈을 그냥 달라고 그랬니? 갚는다고 그랬잖아. 없다고 냉정하게 딱 잘라서 그렇게 사람을 우습게 만들었니?
명자 - 언니-
영란 - 지금 이 통장에 재밌게도 딱 200만원 있더라. 돈이 없어서 못준게 아니고 내가 미국 가는 게 샘나서 그런 거지? 내가 미군 애들한테 인기있는게 그렇게도 부러웠어? 이번에 캐빈은 제발 방해말아 줬으면 좋겠어, 알았지! 너 캐빈하고 나하고 질투하는거 아냐?? (담배 불을 붙인다)
숙희 - 그렇게 미국 가고 싶니?
영란 - 당연하지. 넌 미군부대 앞에서 장사하는 이유가 뭐니?
숙희 - 그러려면 괜찮은 미국 놈을 사랑하란 말야.
영란 - 허! 스티브가 어때서? 마틴이 어때서? 캐빈이 어때서? 깜둥이는 인간도 아니니? 고고한 척 하지마! 니가 이 바닥에서 고고해 봤자지!
숙희 - 내 다 얘기해 주지.
명자 - 언니, 이제 그만해. 됐어, 됐어. 언니, 제발!
숙희 - 너, 스티브랑 결혼 약속했지?
영란 - 몰라서 묻니? 걔 장례식 때 내가 훈장 받았잖아? 기억 안나? 훈장 보여 줘?
숙희 - 스티브 뼛가루 집으로 보냈다더라.
영란 - 당연하지. 그럼 그 뼛가루 내가 갖고 있으리?
숙희 - 스티브 부인한테 보내 줬다더라. 미국에 있는 버젓이 살아있는 딸 둘이 있는 스티브 부인한테 보내 줬다더라.
영란 - (사이) ...너, 지금 무슨 소리하고 있는 거야?
숙희 - 무슨 소리는! 너 만 모르고 이 송탄시에 쥐새끼까지 다 알고 있는 얘기를 해 준 것 뿐이다.
영란 - ...너 지금 한 말 책임 질 수 있어.
숙희 - 그리고 마틴. 그래, 내가 돈을 안 줘서 못갔다구?
영란 - 당연하지.
숙희 - 그래서 너 사랑한다는 놈이 너 못 간다니까, 너 돈 없다고 그러니까, 다음 날 바로 소울 트레인에 현정이 년 꼬셔서 끌고 갔니? 그리고 한 달도 못돼서 그 년은 다시 돌아왔니? 있는 돈 다 날리고 거지 되서 돌아왔니?
명자 - 언니, 제발-!
영란 - 내가 현정이 데리고 가라고 그랬어. 난 못 가니까 아무나 데리고 가라고 그랬어. 현정이는 관광 갔다가 온 거야.(태연한 척 하다가 침착을 잃고) 너 자꾸 그러는데 내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지만 니가 그때 200만원 만 빌려 줬어도 나 미국 갔고, 벌써 자리잡아서 니 돈 이자까지 쳐서 갚고, 명자 이번에 신혼여행, 미국으로 초청 할 수도 있었어. 이거 왜 이래!
숙희 - 그래, 좋아. 그럼 지금 캐빈은 어떠니? 캐빈은 너 좋아 한데?
영란 - 왜? 캐빈이 뭐? 이번 여름에 캐빈 제대 할 때 같이 미국 갈거야. 이번에 캐빈은 제발 훼방 놓지마! 이 반지 안 보여? 캐빈이 자기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 주려고 사 논거야.
숙희 - 너 저번 달에 임신해 가지고 여기 나간 언니 알지? 부산 내려간 언니. 그 애가 누구 앤지 알어! 바로 캐빈 애야. 캐빈하고 동거했었어.
영란 - (경련을 일으키며) 니가 봤어?
숙희 - 내가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 반지, 바로 그 언니가 끼고 있었던 거야 , 이 바보야!
영란, 숙희의 뺨을 친다. 사이. 숙희, 영란에게 잔에 든 술을 얼굴에 뿌린다.
사이.
영란, 소리 없이 흐느낀다.
숙희 - 왜? 왜 울어? 넌 그런 년이야. 니가 뭐가 잘나서 울어!
명자 - 언니, 그만해 좀.
명자, 영란을 껴안는다. 둘의 긴 울음. 숙희, 영란에게 다가간다.
숙희 - ...그만 울어.
영란, 다시 숙희를 껴안고 운다. 셋 운다.
숙희 - 그만 울어.
영란 -(울먹이며) 나 화장 안 번졌어?
서로서로 화장 번진 모습을 보고 웃는다.
명자 - 나 어떡해-. 여기까지 부었어.
숙희, 영란은 명자를 보고 깔깔거리며 웃는다.
명자 - 난 몰라! 내 옷 다 구겨지고! 언니들 때문에 ! 이게 뭐야! 나 몰라! 빨리 물어 내! 나 시집 안 가!
셋의 긴 웃음.
침묵.
숙희,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
침묵
영란 - (침묵을 깨고)...에이- 케빈새끼 다신 만나나 봐라.....얘들아, 우리 빨리 케잌 먹자. 아직 한 조각도 못 먹었잖아. 내가 두 시간을 헤매면서 사온건데! 빨리 이리들 와. (갑자기) 어머! (숙희에게) 기집애, 이게 뭐니!
숙희 - 뭐?
영란 - 니 머리카락, 빨리 건져.
숙희 - 어디, 어디?
숙희가 케잌을 자세히 보는 순간 영란은 숙희의 얼굴을 케잌에 처박는다.
명자, 영란을 박장대소. 숙희 일어나며 크림을 영란에게 던진다. 셋은 놀이를 즐긴다.
숙희와 영란이 이제는 명자 쪽을 향하자 명자는 주방으로 도망간다. 뒤를 따라 둘이 들어간다. 시끌벅적한 소리. 비명소리. 이때 문이 열리면서 길수가 등장. 주방 쪽의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손에는 장미꽃 다발을 들었다.
영란, 뒤를 이어 숙희 등장.
영란 - !
숙희 - !
영란 - 길수 오빠...
명자 - (나오며)난 안 묻었지롱! (순간 길수를 보고 몸이 굳어 움직일 줄 모른다)!!!
사이
숙희 - 혀엉- 어떻게 벌써....특사 받았어요?
아무도 말이 없고 아무도 움직이질 않는다. 영란, 침묵을 깨며.
영란 - 저, 여기 좀 앉아요.....
사이
영란 - 아이, 참, ... 이렇게 갑자기.....오랜만에...반갑네....!
사이
영란 - 아참, 캐빈이 오라고 그랬는데...(빠져나가며) 숙희야, 너도 오라고 그랬어.
숙희 - 으, 으응?
영란, 숙희를 끌고 퇴장.
길수와 명자만 남는다.
길수, 명자에게 꽃을 준다.
명자 받지 못하고 자리에 앉고 만다.
사이.
그는 그녀가 앉아 있는 쪽의 테이블 위에 꽃을 내려놓는다.
뮤직박스를 발견, 열어 본다.
음악 소리.
나가려 하다가 꽃광주리를 발견, 본다.
사이.
광주리를 든다.
꽃가루 몇 개를 천천히 뿌려 본다.
사이.
명자에게 뿌려 준다.
차츰 차츰 많이 뿌린다.
그러다가 점차 흥분하여 더더욱 세게 뿌린다.
계속 세게 뿌린다.
방안은 온통 꽃가루 투성이다.
지칠 때까지 꽃가루를 뿌리고는 숨을 헐떡인다.
사이.
뮤직박스의 음악도 멈추었다.
사이
길수 나가려다가 문 가에서 잠시 멈추고 퇴장.
사이
명자의 끝없는 울음.
幕.
Version up April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