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는 인도양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나라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나라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여행지로서 매력을 고루 갖추고 있다. 스리랑카는 생각보다 역사가 깊다. 싱할라 왕조로부터 시작된 역사는 대략 2500년이나 된다. 스리랑카는 세계적인 홍차 명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홍차 다음으로는 불교유적이 유명하다. 기원전 247년에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오랫동안 불교문화를 발전시켰다.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아누라다푸라를 비롯해 폴론나루와, 캔디, 시기리야 등이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유적지들이다.
아누라다푸라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불교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 크고 작은 탑과 사원들이 무수히 산재해 있다.
기원전 4세기 무렵에 건설된 아누라다푸라는 남인도의 초라 왕조에 의해 멸망당하기 전까지 1400여 년 동안 싱할리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다.
현재 아누라다푸라에는 옛 왕궁을 비롯해 사원, 불탑 등과 같은 많은 유적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일명 '스리 마하 보디 트리'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 나무다. 수령이 약 2200년으로 추정되는 이 거목은 인도 아쇼카왕의 딸이었던 상가미타 공주가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에서 꺾어온 나뭇가지를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리수 나무 옆에는 로하파사다 승원터가 있다. 기원전 161년에 창건될 당시에는 9층 건물에 1000여 개의 승방이 있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창건된 지 14년 만에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 밖에도 아누라다푸라에는 높이 55m의 흰색 불탑인 루반벨리세야를 비롯해 발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제타바나 라마야, 아누라다푸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탑인 투파라마 대탑, 커다란 바위를 뚫어서 세운 사원인 이수루무니야 등과 같은 유적들이 있다.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스리랑카 싱할라 왕조의 수도였던 폴론나루와는 아누라다푸라에서 약 100㎞쯤 떨어져 있다. 폴론나루와는 인도의 잦은 침략에 견디다 못한 싱할라 왕조가 1293년에 수도를 포기한 이후 수백년 동안 밀림 속에 방치돼 있었다. 그 후 1900년 무렵에 유적 발굴이 시작되면서 중세의 불교 성지로 빛을 보게 되었다.
옛 시가지 한가운데에 있는 왕궁터는 폴론나루와에서 가장 이색적인 유적지다. 지금은 비록 다 허물어져 가는 앙상한 기둥과 벽만 남아 있지만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왕궁터 외에도 폴론나루와에는 거의 원형상태로 보존된 투파라마 불당을 비롯해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바타다게 불당,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비석인 '갈포타' 등과 같은 불교 유적들이 있다.
폴론나루와 최고의 관광명소라 할 수 있는 '갈 비할라'에는 커다란 바위를 깎아서 3체의 불상을 만들어 놓은 불교사원 유적이 있다. 이들 불상 가운데서도 특히 맨 오른쪽에 있는 열반불상은 그 길이가 무려 13m가 넘어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싱할라 왕조 최후의 수도인 캔디는 스리랑카의 고원휴양지이자 문화여행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사방이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데다 스리랑카 고유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스리랑카에서 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로 불린다.
캔디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캔디 호수는 1812년 싱할라 왕조 마지막 왕인 '라자싱하'에 의해 조성되었다.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잘 관리되고 있으며 캔디 시민들은 물론 여행자들에게도 좋은 사색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호수 속에는 캔디 사람들이 매우 신성하게 여기는 흰색 자라가 서식하고 있다.
캔디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인 불치사는 불치(부처의 이)를 모신 사원이다. 이곳에 있는 불치는 기원전 543년 인도에서 석가를 화장할 때 입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치가 캔디로 옮겨진 것은 1590년이다.
불치사는 새벽부터 해질 무렵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참배할 수 있다. 불치가 있는 방의 문은 하루에 세 번 행해지는 푸쟈 때만 열린다. 하지만 불치 실물이 공개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참배객들은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금제상자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 상자는 일곱 겹으로 싸여 있는데 그 안에 불치가 있다. 불치의 실물이 공개될 때는 금으로 만든 연꽃 모양의 접시 위에 놓여진다.
△교통편=우리나라에서 스리랑카로 가려면 일단 도쿄나 방콕, 싱가포르 등지로 가서 콜롬보행 항공기로 갈아타야 한다. 콜롬보에서는 아누라다푸라를 비롯해 주요 관광명소인 캔디, 폴론나루와, 시기리야 등지로 떠나는 버스와 열차가 수시로 운행되고 있다.
[송일봉의 여행속으로] 싱할라족의 정신적 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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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전체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싱할라족은 그들 스스로 '사자의 후예'라 믿고 있다. 심지어는 국기에도 칼을 든 사자를 그려 넣었을 정도다. 사자를 영물로 여기는 싱할라족 사람들에게 '사자산'이라는 의미를 지닌 시기리야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시기리야는 사자를 뜻하는 '싱하'와 산을 뜻하는 '기리얀'이 합쳐져 생겨난 말이다.
시기리야는 195m 높이의 거대한 바위산과 그 바위벽에 그려진 벽화인 '시기리야 레이디'로 유명하다. 바위산이 있는 곳은 주변이 온통 밀림에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마치 미로처럼 바위틈 사이로 난 돌계단과 철계단을 이용해 바위산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바위산은 473년에 부왕인 다세나를 죽인 아들 카샤파가 왕세자이자 이복동생인 모갈란의 복수가 두려워 세운 임시 왕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또한 이 바위산에는 카샤파가 아버지 다세나의 영혼을 위해 당대의 예술가들로 하여금 그리게 했다는 벽화들이 1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있다.
21명의 미녀들이 벽화로 그려진 바위벽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옛날에는 정원이 있었다는 넓은 공터가 하나 나타난다. 이곳에서 다시 사자의 날카로운 발톱이 새겨진 왕궁의 출입문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마침내 옛 왕궁이 있었던 꽤 넓은 정상에 서게 된다.
바위산 꼭대기에는 커다란 돌을 깎아서 만든 왕좌가 놓여 있다. 아마도 카샤파는 바위산에서 11년을 사는 동안 이 왕좌에 앉아 불안한 상태로 연회를 감상하거나 깊은 사색에 빠지곤 했을 것이다.
시기리야의 관문 구실을 하는 담불라는 2000년이나 된 석굴사원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다. 기원전 1세기 무렵 남인도 타밀군에 쫓기던 싱할라 왕조의 발라감부 왕은 잠시 동안 담불라의 야트막한 바위산을 은신처로 이용하게 된다. 훗날 피난기간 동안 정성껏 도움을 준 승려들을 위해 발라감부 왕이 석굴을 지어준 것이 담불라 석굴사원의 시초다.
현재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담불라 석굴사원은 다섯 개의 석굴에 모두 160여 기의 석불이 모셔져 있다. 석불들을 만드는 데 이 동굴 속에서 캐낸 자연석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