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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일등제자 류경란 이야기 2
경란이 아기와 함께 당직을
1992년 스승의 날쯤에 제가 일요일 학교에서 일직근무 하는 날 이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전문경비 업체가 없어서 남선생님들은 순번대로 매일 밤에 숙직을 하고, 여교사는 일요일 일직근무를 했지요)
경란이는 아기를 안고(1991년 경란이는 첫딸을 순산했습니다-지금 대학교 2학년이지요) 기저귀. 우유가방 들고 교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경란이와 저는 이런 저런 결혼생활과 인생살이에 관하여 대화했습니다.
경란이 남편이 승용차로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또 약속된 시간에 학교로 데리러 왔습니다.(핸드폰이 없던 시절) 아내와 아기랑 오붓하게 지내야 할 일요일을 경란이 남편은 아내가 스승을 만나도록 배려하고 양보한거지요.
남편에게 배려 받으며 사는 모습을 보는 제 마음이 흐믓했습니다.
인천으로 이사를 간 경란이
시부모님 모시고 살던 경란이는 분가를 하여 인천으로 이사를 하였다고 1993년 스승의 날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1994년 스승의 날과 크리스마스 날
1995년 스승의날
1996년 스승의 날, 크리스마스에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EBS방송 ‘성일여고 탐방’프로그램에 출연한 저를 경란이는 우리선생님 출연한다고 아파트 이웃들에게 알려주고 함께 잘 보았다는 내용과 함께 - 성일여고 학생들이 주인공인 그 프로그램에서 교사 찬조로 ‘ 교복을 이용 한 패션쇼’에 두 명의 선생님이 출연했었습니다.
저는 교복 스커트를 레이스로 장식을 하고,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팔에 꽃바구니들고 완전 공주과 컨셉으로 출연했었습니다.
다른 선생님은 교복바지를 입고 교복재킷 깃을 올려서 보이시 하게 연출하고 출연했었지요.
많은 여선생님들 중에서 그리고 저 보다 젊고 예쁜 선생님들도 계신데 마흔이 넘은 저를 추천한 학생회장단 간부학생들에게 고마웠습니다.
학생들 덕에 제가 공중파를 다 타보았습니다.
혹시 영화배우 황인영을 아시나요? 성일여고 학생시절 슈퍼모델 출신인데 이 학생한테 모델 워킹도 배우고 학생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지요.
지금 생각하니 보람되고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심은아와 이요원도 성일여고 졸업생입니다)
1998년 스승의 날 - 사회활동이 하고 싶었던 경란이는 8살인 딸과 5살인 아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하며 형편이 어려워 보육비를 못 내는 아기를 조금은 그냥 돌봐 준다는 내용과 1종보통 운전면허 취득 했다는 이야기등이 쓰여있었지요.
1999년 스승의 날에도 어김없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분당으로 이사 온 경란이
경란이가 분당으로 이사를 와서 시부모님 모시며 다시 제 가까이에 살게되었습니다.
편지 보다는 안부전화를 하였고, 만나서 식사를 하곤 했지요.
2003년 제가 동아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입주하기 전 임시로 동아 아파트로 이사하였을 때, 부동산 사무실 직원으로 근무하던 경란이가 전세 구입부터, 도배.바닥 공사 업체까지 섭외해서 저를 도왔지요)
선생님!
이사 축하드려요
항상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는 선생님이세요
이렇게 가까이 계셔 주시는 점도
저에게는 감사할 일이고
선생님 정이 담긴 물건들 대할 때 마다
더욱 생각 날 것 같아요
제가 시간이 되면 청소고 짐 정리고 해 드리고
싶은데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 성의니까 받아 주시구요
병 안 나게 천천히 잘 하세요
늘 건강하시구요.
2003년 9월 30일 선생님 제자 류경란 올림
부동산 사장님이 직원스승님이시라고
(우리의 오래된 사제 관계를 세상에 흔치 않은 대단한 일로 생각하십니다)
복비를 마다 했을 때, 끝까지 드리고 나왔더니
그 만큼을 이사 축하 비용으로 보내왔습니다.
또 동아 아파트 전세 계약기간 2년을 못 채우고 (그래서 주인대신 복비를 제가 지불함)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도
제가 지불한 복비 만큼
아파트 입주 축하비로 보내왔었습니다.
자식들에게 교훈이되는 경란이의 스승사랑
경란이가 딸 승주와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제가 승주에게 질문했습니다.
‘승주는 이 다음에 엄마 같은 나이가 될 때까지
찾아 뵙고 싶은 선생님이 계시니?
-아니요-
‘앞으로 학교 생활하면서 승주가 존경 할만한
선생님을 만나고 엄마처럼 사제관계를 오랜 세월 유지 할 자신이 있니?
자신 없다고 당시 중학생이던 승주가 고개를 내젔습니다.
경란이는 사제관계에 대하여서도 자식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였습니다.
경란이가 저를 만나는 날은 시부모님을 포함해서 가족들에게 공식 발표(?)를 하고 외출을 한다고 합니다.
2004년 스승의 날의 편지
선생님께!
선생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축하드립니다.
담장에 붉은 장미꽃이 뾰족이 얼굴울 내미는
싱그러운 계절 오월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에 시간 가는 줄 도 모르고
어느새 스승의 날을 맞이하게 되어
인사도 늦었습니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아이들 선생님 선물 신경 쓰면서
정작 선생님께 인사는 오늘에야 여쭙게 되어 죄송스럽습니다.
우리나라는 스승의 날이 있어 잠시 잊었던
선생님을 떠올리며 학창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 정말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승주도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 찾아 뵙느라
친구들끼리 돈 모아가지고 꽃바구니 사서
찾아뵈었다고 하니까 기특하기도 하고
어버이 날 선물은 구경도 안 시켜준 점이 얄미워
한마디 충고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항상 열정이 넘치시는 선생님의 말씀 들으면
힘과 용기가 넘치게 됩니다.
선생님!
건강관리 잘 하시고 항상 즐겁고 젋게 사시는
선생님의 아름다우신 모습 간직 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시간 되실 때 연락 주세요
맛있는 것 사드릴께요.
아직 불경기지만 00부동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 형편도 조금 풀려서 차도 바꾸었는데 시승식 하겠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04년 5월 15일 류경란 드림
시승식을 하다.
정말 경란이는 검은색 중형차로 저를 시승시켜 주었습니다.
어느 제자가 새 차 구입하였다고 스승을 시승식 시켜 줄 생각을 할까요?
그 후로 분당 중앙공원 야외 음악당에서 열리는 음악회도 함께 참석하고, 또 어느 해인가는 밤에 성남시민의 날 율동공원에서 개최 된 ‘불꽃 축제’를 함께 참여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 놓는 멋진 광경을 보고 함께 삶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헤어지고 난 후 경란이는 꼭 문자를 보내옵니다.
‘오늘도 선생님과 좋은 추억 만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장 김치를 주는 경란이
2008년 11월 말 쯤 경란이에게서 퇴근하시면서 부동산 사무실에
잠깐 들리시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도로 변에 미리 나와 있던 경란이가 제차 트렁크에
김장 배추김치 한통을 실어줍니다.
‘입맛에 맞을 실지 모르지만, 재료는 최고로 했어요. 선생님!’
제가 뜻박의 귀한 선물을 받아, 다음날 학교에 출근하여서 선생님들께 자랑 좀 했습니다.
돈 주고 구입한 선물이 아니라 정성이 가득한 김장 김치 선물이어서요..........
2009년에는 김장 배추김치 실고 오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마침 외출 중이라 집에 오는 길에 경란이네 아파트로 가니
남편과 함께 주차장에 서 있었습니다(남편이 김치통을 들고서리.... ㅠㅠㅠ)
저는 경란이 남편에게 참으로 미안하고 민망한 생각이 들어서
‘아니! 남편이 힘들게 벌어다 준 돈으로 김장 담 구워서 선생님 퍼 주는데
아내를 야단치지 않고, 김치통을 들고 추운데 주차장에 서 계세요‘? 했습니다.
‘김치통이 무거워서요’ 하며 차 트렁크에 실어주고 두 내외가 인사를 합니다.
결혼식 때 보고, 경란이가 인천 살 때 전화 통화 한번 하고는
어~언 20년 만에 처음 보는 경란이 신랑입니다.
경란이의 스승에 대한 마음이 남편과 자식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지요
2010년 12월 초에 김장 배추김치(예년보다 더 큰 통으로)와
시아버님이 농사 지으셨다는.... 시중에서는 돈주고
살 수 없는 야들 야들한 어린 상추, 그리고 선생님 맛보시라고 조금씩 보쌈김치와 갓 김치까지 담아서 우리 아파트까지 실어왔습니다.
그 정성에 제가 감탄했습니다.
저는 경란이가 준 김치를 성일여고에서 같이 근무하다 공립으로 전근가신 같은 동네 사는 12살 아래 싱글 후배교사에게 12쪽 중 4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김치를 사서 먹는 선생님께 우리 제자가 준 김장김치를 나누어 주니 부러워하며 좋아하십니다
경란이의 정성에 따라 갈 수는 없지만 저는 여행가면 꼭 경란이 몫으로 ‘겔랑’화장품을 삽니다.
여행을 못 가면 백화점에서 구매하여 선물합니다.
경란이는 화장대 위에 놓인 화장품을 보면서 제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시부모 모시고 살면서 6식구 살림만 해도 만만치 않을텐데
(친정 부모님도 경란이만 의지하고 사십니다)
이렇게 1981년 고1 담임이었던 저를
30년 세월을 소식 끊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제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제 인생에 1등제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글 제목’을 이해하시겠지요?
경란이는 왜 박경숙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실까요?
경란이는 중학교 3학년 2학기말쯤 성남으로
이사와서 전학오자 마자 적응도 못하고 곧 졸업을 하였습니다.
성일여상을 입학하였을 때 다른 친구들과 달리
중학교 시절의 반 친구도 없어서
외롭고 힘들었던(경제적으로도) 시절에
담임인 제가 늘 용기와 희망을 주고
인정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경란이는 제가 자신을 집에 데려와
선생님이 밥을 해주었는데 맛있었다고 하네요,
영란, 미선, 미경이도 이 말을 하는데
저는 기억이 잘 안납니다.
경란이는 다른 철없는 학생들에 비하여
품행이 단정하고 성적도 우수하며( 경란이는 여고 시절 3년 내내 1등을하여 장학생으로 수업료를 면제 받았어요)모범생이었기에
어려운 경제를 이끌어 가시느냐고 고생하시는
경란이 아버님께(5일장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심) 경란이를 칭찬하며 이 딸에게
희망을 가지고 사시라고 면담을 했었습니다.
경란이 아버님은 지금도 저를 기억하신다고 하시네요
후배들에게 모범 사례가되는 경란이
스승의 날에 경란이에게서 편지가 오면
저는 경란이 이야기와 함께 편지를 학생들에게
읽어 줍니다.
그 오래된 사제의 관계에 관하여 학생들도 감탄합니다.
나중에 쓰게 될지 모르는 제자 지선이가 말합니다.
‘선생님! 제가 아무리 잘해도 저는 선생님께 1등 제자가 돨 수 없다는게
좀 싫어요‘
경란이의 한결같은 스승에 대한 마음과 실천이
경란이의 훌륭한 인성,인품이
박경숙선생님의 교사생활을 풍요롭게합니다.
1년 선배인 영란, 미선, 미경이도 경란이 얼굴은 모르지만
저의 이야기를 통해서 경란이를 알고 있고,
경란이도 세 선배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언제인가 자리를 마련해 함께하여야 할 박경숙선생님의
소중한 제자들입니다.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스승이 한 분쯤은 계실 수도 있습니다.
한번쯤은 스승에게 편지를 보낸 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란이처럼 30년 세월을 한결같이 사제의 인연을 유지하는 사람은 드문니다.
제가 경란이의 인품에 고개 숙입니다.
경란이와 같은 제자와 인연이 닿은 것은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교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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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편의 인생드라마를 잘 봤네요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축복 받은 선생님 건강해서 늦게~ 늦게~ 까지 그들의 영원한 멘토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