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학교에서 자동차 공학을 가르치는 머클 위즈 교수님은 이태리차, 특히 피아트
팬인데 헛간을 개조한 그의 차고에는 잘 관리된 피아트와 아발트 차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언뜻 기억나는 것만 해도 10대정도 되네요. 교양과목중 미술사에서
1학점을 더 취득해야 하길래 교수님을 찾아가 1학점짜리 자동차 역사학 수업을 개설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흔쾌히 학생수 3명의 소규모 수업을 개설하게 되어 저는
학점을 취득할 수 있었고 그는 정규 수업으로의 자동차 역사학 강의를 준비하는,
서로에게 유익한 자동차 농담따먹기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교수님이
저한테 묻더군요. “이봐.. 큐.(미국애들은 ‘혁’ 발음을 하지 못해 그냥 저를
이렇게 부릅니다.) 새 주인을 찾고 있는 피아트가 하나 있는데 관심있어?”
“관심이야 있지만… 돈이 없죠.” “ 아.. 돈걱정은 말라구. 공짜니까. 근데 차는
자네가 고쳐서 타야해.” 귀가 솔깃하는 얘기였지요. 그의 설명은 계속되었습니다.
차는 68년식 피아트 850 쿠페로 850은 배기량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차체상태는
아주 좋으며 이태리차 답지 않게 녹슨 곳도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엔진과
트랜스미션이 없고 나머지 부품도 차에서 전부 분리된 상태라는 것이었지요.
사실 그동안 올드카 복원작업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그냥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결국 차체와 각종 부품더미를 받아 아파트 지하차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조금의 여유돈과 시간이 있을때마다 부품을 구하고 작업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더군요. 결국은 제 능력으로는 그 차를 복원할 만한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 차를 복원하지는 못했으나
지하주차장 한켠에 놓인 차체와 부품들을 보면서 그 차가 완성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었고 그 차는 제게 그런 사소한 공상의 즐거움을 안겨준 존재
였습니다. 결국 이 작고 아름다운 쿠페는 랜디라는 피아트 클럽의 아저씨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그 이후 연락을 못해봤는데… 그가 작업을 얼마나 진행했는지 궁금해
지네여. 850쿠페를 제게 소개해주었던 머클 교수님은 제가 그 차를마무리짓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일단 제대로 굴러가는 차를 구해 조금씩 손을 봐가며 타는것은 어떻
겠냐고 제안해왔습니다. 피아트를 봤던 김에 124 세단이 생각나서 “혹시 피아트 124
세단을 구할 수 없을까요?” 하고 물어봤습니다. 물어보면서도 사실상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서 피아트 124 세단을 본 건 단 한번 어느 빌딩 주차장에서
였고 그것도 그자리에 버려진 채 방치된 차였는지 도저히 누가 타고다니는 차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몰골이었습니다. 제 질문을 들은 그는 곧바로
“124 세단? 웬 세단? 124는 스파이더가 훨씬 이쁜데…”하고 되묻더군요.
그래서 예전에 제가 어릴때 한국에서 피아트가 조립생산 되었던 적이 있었고 그래서
괜시리 세단에 애착이 간다고 얘기해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세단이 한 대 있다고
하며 전화번호를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저와 74년식 피아트 124세단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또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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