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확, 뒤바뀐 생활
그 곳, ‘카리브 해’ 바닷가 마을에서의 내 행복도 그리 길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 행복이라고 무한정 이어질 거라고 여기지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토록 한 순간에 확 날아가버릴 줄은 몰랐다.
왜냐면, 바깥 세상과는 단절된 듯한 너무나도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었기에, 뭔가 특별한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그 행복 역시 웬만큼은 느릿느릿 이어질 줄 알았고, 설사 사라진다 해도 뭔가 여운을 남기며 서서히 떠날 것 같았는데,
어느 날 한 순간 확 날아가버렸던 것이다.
가,'쓰레기'들
내가 성격이 좀 급하고 직설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지칭해 '쓰레기'라는 표현을 쓴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이 바닷가 마을 숙소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겐,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을 써야 할 것 같다.
*
오늘 아침은 이상하다.
물론 엷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서 세상 자체가 다소 침울해 진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다른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아침 나절 늘 나를 환상의 세계로 몰고가던 그 상큼한 바람이 스산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상하지만,
사람들의 움직임도 뜸하기만 하다.
얼핏 아이들이 학교로 가는 건 봤지만,
내가 일을 하느라 못 봐서 그런지, 포구로 향하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적은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일을 하고 있는데 언뜻 창을 보니, 차단막 사이로 자전거 한 대가 막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윌리암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도 웃기는 게, 그 짧은 순간 차단막 사이로 내 존재를 확인한 상태로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에게 인사를 해왔던 것이라서, 우습기도 했지만 또 그의 천성이 밉지만은 않아,
나도 얼른 일손을 멈추고는 테라스에 나가 보았다. 그를 그냥 보낼 수 없어서.
그랬더니 그는, 그 옆집 망고 나무 가지에 반쯤 가려진 채로 자전거를 멈춘 채, 내 답을 기다린 듯,
"아, 나왔군요! 인야, 어때요?(Como esta?)" 하고 묻기에,
"좋아, 그런데 너는? (Bien, Gracias! y Tu?)" 하고 답하자,
어깨를 들썩했다. 그래서,
"근데, 왜 이 옆 방엔 손님이 안 와? 어제부터 온다고 난리를 치더니?" 하고 묻자,
"지금은 ‘니께로’에 있다나 봐요. 어젯밤 니께로까지 왔다는데, 거기서 자고 오늘 도착한다는데요. 그러니, 지금은 여기로 오고 있을 거에요." 하기에,
"그렇구나!" 하자 그가 돌아가려고 페달을 밟기에, "아, 윌리암... 며칠 전 니가 ‘유까’를 사줬잖아? 내가 그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 그거, 지불할 게!" 했더니,
"괜찮아요." 하기에,
"그런 게 어딨어.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지불할 건 해야지." 하자,
"그거 몇 푼 안가는데, 괜찮아요." 하고 여전히 내빼려고 해서,
“아, 윌리암, 나 머리 좀 깎게 해 줘.” 하자,
“알았어요. 내가 이발사한테 알아보고 알려 줄 게요.” 하고 자기 집 쪽으로 쏜살같이 내려갔다.
그럴 거면 뭣 땜에 길을 가다 일부러 나를 불렀는지 우습기도 했지만, 내 쪽에서 보면 할 얘기는 다 했던 것이다.
그런 뒤 햇볕은 점점 살아났는데, 그건 구름이 걷혀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햇볕에 나는 이미 사바나와 벼게를 테라스에 내다 놓는 등,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날씨는 어제와는 달리 습도도 느껴지고,(어느새 등에서 땀이 맺히는 느낌) 바람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파도가 그리 쳐도, 어느 파도 하나 똑 같은 게 없는 것처럼, 날씨라는 게 어느 한 날 같은 날이 없을 것이었다.
11시가 되면서 옆방 손님들이 도착했다.
갑자기 바깥이 떠들썩하기에 테라스에 나가 보니, 그들이 내가 보면서 사진을 찍어두던 트랙터 차량에 장비와 개인용품 몇 배낭씩을 하나 가득 싣고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일부는 윌리암 집에서 자고, 나머지는 이 집 옆방에서 네 명이 자고 한 명은 테라스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는 것이었다.
글쎄, 내가 그들의 잠자리까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더구나 그들은 쿠바 정부의 한 프로젝트에 의해, 여기에 '생태 탐방과 연구'를 위해 온 전문가들(대학 교수, 사진가, 잠수부 등)이라기에,
내 방하고 똑 같은 크기와 구조의 방에서 어떻게 네 명이나 잔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기는 했다.
(허긴, 이전에도 그 방에서 대여섯명도 잤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과 비교하면 독방을 쓰고 있는 내가 지나치게 호화로운 거 같아서,
'내가 원래 그런 사람도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게 비춰질 것 같은데......' 하고, 왠지 자유롭지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게 내 잘못은 아닐지라도.
그렇지만 나는 그들에게, 그들 짐이 다 그 방에 들어가지가 않는다면, 내 방의 빈 공간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말을 윌리암을 통해 전달했고, 그 중 가장 연장자에게도 직접 그 말을 했더니,
고마워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개인용품이다 보니 타인의(내) 방에 맡기면 번거로울 게 분명해서, (그들도 내 방에 맡기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방 뒤 테라스에 놓는 쪽을 택하기에)
'내가 친절을 베풀려고 했지만, 현실성은 없을 것 같네......' 하고, '괜히 그런 말을 했나?' 하기도 하는 등,
아무튼 그들이 도착하면서 갑자기 숙소 전체가 온통 난리구석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도 그들이 떠드는 바람에 오후 내내 내가 정신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어서, 문을 닫은 채로 겨우 글 작업의 (그냥 넘겨집기로)교정을 조금 보았을 뿐이다.
그래도 오전과는 달리 오후엔 아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실내에서도 그리 답답하지 않게 보낼 수는 있었다.
4 . 28
*
그들이 오고 난 어제부터 세상이 뒤바뀌었다.
시끄러워 못 살겠다.
그들은 내가 옆 방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아, 화가 치밀기도 한다.
어젯밤에도 어찌나 떠드는지,
그들이 도착하자마자부터 쉬지 않고 떠드는 바람에 하루 종일 참아왔던 내가 참다 참다,
"아, 미치겠네!" 하고 한국말로(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튀어 나왔다.) 소리까지 지를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 떠드는 소리 때문에 못 들었는지,
내 비명소리에도 여전히 떠들다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조용해졌다.
허긴, 그 시간대에는 자신들도 자야 할 것이었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여기 마을 사람들과 나) 염두에 둔 행동일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그런 다음에야 나도 자기로 했는데, 일을 하려고 불을 켜면 곤충들이 날아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긴 ‘방충망’은 아예 없는 나라인데다, 요즘엔 불만 키면 날 것들이 몰려드니까.
그렇지만 나는 새벽 3시 경에 일어나 5시 넘어 까지 일을 하긴 했다.
그런데 그 시간 대에도 곤충들이 몰려와 노트북 모니터에까지 기어다녀,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잠이라도 자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옆 방 손님들도 아침 6시 경에는 일어나던데,
그 소리에 나도 일어나 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아침을 챙겨 먹는 사이에 그들도 아침을 챙겨 먹는 듯하더니 일 나갈 준비(잠수)를 했고,
결국 그들이 나간 뒤,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갖고, 어제 하다 만 ‘파도’(크레파스 드로잉)를 마무리 지었다.
그런 뒤, 어쩐지 수채로도 하나 더 하고 싶어 새로 그림을 시작해 오전 내내 씨름해 그 그림도 완성을 했다.
그러자 주인이 망고 한 봉지를 가져왔는데,
70뻬소라는 것이었다.(100뻬소가 미화 1 달러)
'농부들은 어떻게 살라고, 그리 싸단 말이지?' 하는 심정의 나는, 좋기는커녕 이들의 삶이 오히려 안타까워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제 본격적인 망고 철이라 가격은 갈수록 싸질 터라......
내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옆방 손님들이 돌아왔고, 그들 역시 점심을 먹는다며 우루루 마을의 식당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한 시간 쯤 뒤에 그들이 돌아왔는데, 또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문을 열면 그들이 보여 문도 닫아놓은 상태로) 방안에서 한숨만 쉬고 앉아 있었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 밖에 없었다.
'내가 여기 쿠바에 온 이래, 이 바닷가 마을의 방을 구한 뒤부터 한 보름 정도?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한창 내 일에 빠져, 너무나도 흡족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물론 여기는 개인 집이 아닌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민박집'이니, 다른 손님들과 함께 이용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만의 (조용히 지낼)권리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저들은 최소한의 에티켓이나 공중도덕도 없는 사람들인가? 어떻게 저리 막무가내로(타인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있는지......' 하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결국 그들이 저녁을 먹으러 가기 직전, 윌리암 집에 머무는 사람들까지 다 모여서, 그것도 더군다나 바로 내 방문앞에서 왁자지껄 떠들기에, 약도 오르고 또 미칠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내가 내 방문을 주먹으로,
"꽝!" 치고 말았다.
그러자 갑작스런 소리(내 반응)에 잠시 주춤하던 그들 중 일부가, 바삐 서둘러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내가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연장자로(어제 내가 말을 걸었던 사람도 있어서) 보이는 두 사람이 있기에,
"여보세요, 이거 너무 시끄럽게 구는 거 아닙니까? 당신들은 하고 싶은 대로 맘껏 떠드는 것 같은데, 이 곳은 공식적인 '민박집'이고, 당신네들만 여기에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하자,
움찔하고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당신 말이 맞습니다.(Tiene razon.)" 하고 시인을 하기에,
"저, 너무 소란스럽고 시끄러워서 개인적인 일도 못하고 있거든요?" 하고 한 마디를 더 덧붙이자,
"미안합니다.(Disculpe......)" 하고 사과를 해왔다.
그래서,
'이쯤 되면 되겠지.' 하면서 조용히 돌아서 다시 문을 닫았는데,
물론 그들은 그렇게 식당으로 몰려갔기 때문에 조용해진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9시가 다 된 시각에 돌아왔던 그들은 약간 조심하는 듯 낮 같이 떠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은 낮에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여자들은(둘) 조금도 변함없이 소란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차라리 밖의 절벽에 나가 바람을 쐬어, 말어?' 하면서 바다쪽을 바라보니 오늘 따라 가로등도 없이 어둡기만 해서, 밖에 나가거나 여기 있으나 바람은 거의 마찬가지일 것 같아, 그냥 침대에 누웠다.
그래도 그들의 떠드는 소리는 여전했고, 나는 귀까지 막으면서 몸부림을 치다가 잠이 들었던가 보았다.
10시가 넘어도 그들은 테라스의 불조차 끄지 않았고,
11시에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더니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그제야 잠잠했다.
4 . 29
*
그런데 옆방 손님들과는 상관없이, 나에겐 다른 문제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날벌레들 때문에, 밤에 방에서 불을 키고 앉아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 쿠바의 집에는 ‘방충망’이 없기 때문에, 5월이 가까워지면서 요 하루 이틀 사이에 내 바람이 잘 통하는 방에도 모기를 비롯한 날벌레 들이 창문의 차단막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다.
더구나 전기를 켜면 다양한 곤충들이 수도 없이 날아들기 때문에, 내가 밤에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뭐지?' 했지만, 여기가 그런 세상인 걸 내가 어떡하겠는가.
그렇게 불도 켜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짜증스럽게 잠자리에 들 수밖에.
다시 눈을 뜨니 5시 경이었는데, 일어나 노트북만을 켜고 ‘제 6권’ 교정을 보는데, 한 10여 분 사이에도 벌써 벌레들 대여섯 마리가 노트북 모니터에 기어 오르니... 일할 맛이 싹 가셔, 노트북을 끄고 다시 누웠다.
7시가 넘어서야 겨우 아침이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문을 활짝 열어놓고 싶어도 옆방 사람들 때문에(그들이 아침을 챙겨 먹느라 테라스를 다 차지한 채 벌려놓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어서), 나는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내 방에 숨어서 아침을 챙겨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또, 윌리암 집에서 잔 사람들까지 다 모여 한바탕 떠들썩하게 나갈 준비를 하기에, 여전히 나는 숨죽인 채 있다가(?), 그들이 나가고 나서야 겨우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들이 최소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생태학자들이라면, 적어도 외국을 다니면서 '국제적인 회의'라거나 '워크샾' 같은 데에 참여도 제법 했을 법한데, 그렇다면 외국에 나가서는 어떻게 현지 호텔에서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경우라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떠들고 자기들 맘대로 하지는 않았을 텐데(못했을 텐데), 여기서는 자기네 나라라서 그런지 도무지 '공중도덕'이거나 '에티켓'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니...... 혹시 동양사람 혼자(나)라고 무시하는 건가?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그저께 아침까지도 나만의 평화로운 아침이곤 했었는데......
그런데 일을 하다 아래서 뭔가 파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웬 마부가 채소를 가져와 팔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얼른 돌아와 디카를 가지고 나갔는데, 이번에는 카스테라를 파는 여자들도 있어서, 나도 하나를 샀다.
그런데 가격이 130 뻬소였다.
'어? 전에 윌리암에게 살 때 얼마 주고 샀었지?' 하고 기억해 보니, 300 뻬소였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가 나에게도 배도 넘게 이문을 남겨먹었나?' 하기도 했지만,
'허긴 그는 장사꾼이기도 하니까, 이문 없는 장사를 하지는 않겠지.' 하고, 그를 이해해 주는 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분명 사람을 속일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닌데다, 사업자로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도 옆방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침 일을 했다.
물론 오늘 아침 역시 바람은 환상적이었는데,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저께까지의 아침들이 얼마나 행복했던 것인지를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일을 서둘러야만 했다.
오늘은, 오후에 집주인이 침구 일체를 갈아준다고도 했고,
점심을 먹고는 안토니오 영감님 집으로 이들을(옆방 손님들) 피해 도망갈 생각이라......
4 . 30
#완벽한 도피 장소#
어젯밤도 옆방에 든 쿠바 생태학자 그룹의 소란과, 모기에 뜯기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러다 보니 몸 컨디션도 안 좋고 짜증만 나기에, 아침부터,
‘이런 데가 무슨 천국이라고!’ 하고, 어디 화풀이할 곳도 없는 데도 불평만 늘어놓고 있었다.
아무래도 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라선지, 이런 ‘방충망’이란 개념마저 없는 세상에서는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창은 있지만 목재로 만든 차단막으로 돼 있어서 그 틈으로 얼마든지 곤충과 벌레들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라, 여기는 어디를 간다 해도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5월 1일)은 무슨 일인지 아침부터 후텁지근한 기운이 감돌면서 덥기까지 해서,
그 좋기만 하던 오전의 상쾌함과 쾌적함마저 종적을 감춘 것 같아,
‘아무래도 ‘열대기후’라 어쩔 수 없나 보구나.’ 하고도 있었다.
그렇게 별로 즐겁지 않은 기운과 기분으로 오전을 보내고, 점심도 먹었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이젠 그나마 불던 바람도 딱 멈추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어딘가로 도망이라도 가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몸은 끈적거리고, 팔뚝이며 발목이며 모기에 물린 자국은 피가 나게 긁도록 가렵고, 그런 와중에 방 안 여기저기에 개미는 개미대로 줄을 이으며(내 그림 도구인 크레파스와 수채화 빠렛은 물론 노트북의 자판과 모니터까지 기어다니는 등) 내 정신을 분산시키고,
어디 그뿐인가?
어젯밤에 불빛을 향해 날아들었던 이름 모를 날것들도 여기저기 죽어서 방을 더럽히고 있어,
정말 방 안에 있기도 싫고(여전히 모기 한두 마리가 계속 내 주변에 날아다니며 나를 귀찮게 하고, 극성스런 모기에 결국 지고 말았는데), 햇볕은 따갑고 마음 둘 곳이 없어,
'하는 수 없다. 안토니오 영감님 집에나 가보자!'며 길을 나섰다.
땡볕 아래 한 20분 쯤 걸리는 거리를 걸어갔는데, 한 낮이라 그런지 거기도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런데 라디오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는, 영감님이 낮잠을 주무실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앞 바닷가 나무 그늘에 혼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런데 집 쪽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그 소리가 멈추는 걸로 보면 영감님이 전화를 받는 게 분명해서, 전화가 끝나면 부를 계산으로 조금 기다렸다가 잠잠한 것 같아,
“세뇰, 안토니오!” 하고 두어 번 크게 부르자,
“왔어요?” 하면서 그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 안 들어오고요?”
“온지 제법 됐는데, 혹시 낮잠 주무시나 해서 안 깨웠는데요. 전화벨 소리가 나기에......” 하자,
“아, 우리 딸한테 왔는데...... 근데, 안으로 들어가겠소? 아니면 밖에 앉을까요?” 하기에,
“전, 여기가 좋습니다.” 하고 그 자리에 있기로 했다.
그렇게 앉아서 얘기가 시작되었는데, 나는,
어젯밤에 있었던 ‘생태학자’들의 요란함과 무례함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조용히 해달라’고 그들에게 부탁 겸 항의를 하자, ‘미안하다’면서 ‘당신 말이 맞다’ 고까지 했던 사람들이, 그 다음 날은 더 시끄럽게 떠드니, 내가 더 이상 할 말을 잊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참고 있는 중이라면서, 그 와중에 잠이 깨서 일을 하려고 해도, 불만 켰다 하면 날벌레들이 몰려 들어 불도 못 켜고 지내고 있답니다." 했더니,
“그럼, 일도 못해서 어떡합니까?” 하기에,
“그러게요.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일도 못하지, 모기들은 뜯어먹지...... 제가 머무는 방 말고는 갈 데가 없는 제가, 어디 갈 곳이 있어야지요. 여태까진 참 잘 지내왔는데, 이제는 옆방에 든 사람들까지 저를 또 힘들게 하네요.” 하자,
“그것도 문제네요......” 하고 그 분도 좀 허탈한 표정으로 웃던데,
“그러니, 제가 잠깐씩... '여기에 내가 왜 있지?' 하는 생각이 들고, 뭘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날은 더운데, 모기에 물린 곳은 시도 때도 없이 가려워 죽겠는데, 개미와 또 다른 벌레들이 못살게 구는 것도 모자라 이젠 사람들마저 막무가내로 저를 힘들게 하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앞으로 일주일이나 더 있을 거라니...... 도대체 어딘가 제 몸 하나 조용히 피할 안전한 장소가 있어야지요. 여기 쿠바는, 창에 방충망도 없어서 모기와 벌레들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될 공간 자체를 찾기가 불가능하고, 지금 여기 앉아 있어도 뭔가 물려고 달려들고, 가려운 건 여전하고......” 하면서 또 긁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오늘은 내 투정과 짜증으로 하소연을 하다 보니 대화 자체가 즐거운 리 없었고,
나는 여전히 불안과 혼란 속에서,
“아, 여까지 왔으니, 물에나 한 번 들어가야겠습니다. 몸이라도 좀 식혀보게요.” 했더니,
“그러세요. 그 사이에 나도 샤워 좀 하고......” 하면서 영감님은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바닷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오늘따라 물결의 움직임이 거의 없다시피 바다가 깨끗한 건 물론 그 속까지 환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어차피 혼자라 겁도 나고 해서, 그 부근에서 그냥 ‘물에 뜨는 연습’이나 하기로 했다.
서 있으면 허벅지가 닿을 정도로 낮은 곳인데다 그 아래엔 수초도 있었는데,
지난번 팬티만 입고 들어갔다가 수초에 쏘여서 몇 시간 화끈거려 혼났기 때문에, 오늘은 아예 일부러 바지와 티셔츠도 팔목이 긴 걸로 입은 상태라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바다에 눕다 보니 물에 뜨는지 조금씩 내 몸이 바다 쪽으로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 있는 부분에 약간의 구름이 껴 있어서, 그 강한 햇볕을 직접 받지 않아 따갑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바다 위에 누워 눈을 뜨고 하늘과 약간의 주변을 볼 수 있게 된 내 부유 실력은,
지난번 영감님이,
“손가락을 딱 붙인 상태로 물장구를 쳐야지요.” 하고 가르쳐줘서(내가 손가락을 펴고 있었던가 보았다.), 오늘은 그 말을 잊지 않고 손가락을 모아 물장구를 쳤더니 확실히 밀려나가는 힘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확실히 바닷물 속에 들어오니 몸의 열기도 좀 식혀진 것 같고, 방금 전까지도 긁었던 팔뚝이며 발목의 모기 물린 자국의 가려움증도 잊혀졌고, 심리상태도 많이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하늘엔 날개짓 하나 없는 '군함조'와, 여기 청소동물이기도 한 ‘독수리’ 몇 마리도 떠 있었는데, 그렇게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한 순간,
‘어? 그러고 보니 어쩌면 나도 저 새들처럼, 이 바다 위에 무게없이 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고,
뭐랄까? 그런 새들과 뭔가 묘한(?) 일체감을 느꼈다고나 할까?(아마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웃긴다고 하겠지만)
정말 하늘에 무게감 하나도 없이 떠 있는 새들처럼, 나도 물 위에 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 여기는 그 무엇도 나를 귀찮게 할 것들이 없구나!’ 하게 되었고, ‘그러고 보니, 여기 바다 위가 완벽한 ‘귀찮은 것들로부터의 보호구역’이로구나!' 하고도 있었던 것이다.
몸은 시원했고,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완벽한 공간이자 상태였던 것이다.
아, 내가 어찌 알았으랴!
물속에 들어가는 것 자체에 무관심하다 못해 겁을 내며 아예 바다에 오면서 수영복조차 챙겨오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난데, 그런 나에게 바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안전하고 편한 곳이 될 줄을......
그렇게 한참을 혼자만의 그 상황을 즐겼다.
그런 뒤 여전히 물 위에 있다는 자체에 겁을 먹고 있던 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돌아왔는데,
내가 상의를 벗어 물기를 짜낸 뒤 다시 입고 하의의 물기를 빼내려고 잠시 앉아 있는데,
샤워를 해서 그런지 말쑥한 모습으로 영감님이 나오면서,
“벌써 나오셨어?” 하기에,
“그래도 저는 꽤나 오래 있었던 거 같은데요?” 하자,
“허긴, 오늘은 혼자였으니......” 하는데,
“근데, 저는 바닷물 속이 그렇게 안전한 줄은 몰랐어요. 그 어떤 것도 저를 귀찮게 하지 않는 곳이 바로 바닷물 위에 떠 있는 것인 줄도요......” 하자,
“아이고! 그걸, 알았네!” 하고 웃으면서, “그렇다오!” 하는 것이었다. #
#두 노인네의 읍내 나들이#
며칠 전 안토니오 영감님과 그 집 앞 나무 그늘 아래서 얘기를 하다가,
내가 머리를 깎아야 한다면서,
(윌리암과 얘기가 됐던 여기 이발사는 휴가를 갔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영감님은 어디서 머리를 깎나요?” 하고 물으니,
‘니께로(Niquero)’에 가서 깎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언제 머리를 깎을 생각이신가요?”하고 혹시 머리 깎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더니,
아직은 별로 깎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 길지 않은 머리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럼, 혹시 저하고 같이 니께로에 가서 머리 깎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영감님 머리 깎는 비용도 지불하지요. 아니 그뿐만이 아닌, 니께로에 나가는 비용 일체를 제가 내는 걸로 하고,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함께 가시지 않겠어요?” 하고 물으니,
그리 싫지 않은 눈치이면서,
“모레(수요일) 나갈까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럼, 점심도 먹어야 할 텐데, 머리 깎은 뒤 식당에 가서 점심도 먹고 돌아오는 걸로 하지요. 물론, 점심도 제가 사드리지요.” 했더니,
그저 웃기만 하셨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약속을 했다.
이곳의 공식적인 외부로 나가는 교통수단은 이렇게 일주일에 세 번(월수금),
그 중의 우리는 수요일 아침버스를 타고 나가 오후에 돌아오기로 했는데,
사실 나는 머리도 깎고 싶었지만, 숙소의 옆방 사람들의 소란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루는 그들을 피해서 도망치려는 계산도 깔려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으면서 그동안 버스가 오가는 걸 지켜보니, 나가는 버스는 항상 만원이었고, 이따금 들어오는 버스는 마을 초엽에서 사람들이 내리는지 어느 정도 여유가 있기도 한 걸 참고로 해서,
수요일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해서 나가니, 종점엔 긴 줄이 서 있었다.
그런데 영감님이 안 보여서(평소에 안경을 끼지 않는 분이라 그 날은 안경을 끼고 있던 영감님을 내가 못 알아봤고), 나는 또 시내에 나간다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영감님도 날 못 알아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찾느라, 하마터면 나는 그 버스도 못 탈 뻔 했다.
아무튼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 나를 알아본 영감님이 불러서 버스를 타긴 했는데, 다행히 영감님은 의자에 앉아계셨고, 나는 만원버스의 맨 마지막에 오른 승객이 되어 하는 수 없이 운전석 가까이에 선채로 버스는 역시 쿵쾅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스가 마을 진입로의 긴 숲길을 벗어나자 양쪽엔 야자수들의 밭이 펼쳐졌고, 이따금 그 쪽의 해변으로도 길이 연결된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니께로’에 닿기까지에도 도로변에는 상당히 많은 집들이 있고, 거리 양편에는 ‘망고’나무가 한창 제 철을 맞아 끝도 없이 서 있는 모습에,
‘이 많은 망고를 다 어떡한다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망고 세상'이었는데, 그런 길이 끝나니 또 바나나 나무들 밭 천지였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달려 니께로 도심에 닿으니,
영감님이 내렸는지도 몰랐는데 나를 부르기에 따라 내렸고,
“일단, 우리 여동생 집으로 갑시다!” 하기에 영감님의 지시대로 따라 다니게 되었는데,
한 나무 울타리로 된 집에 초인종을 누르니 아무도 나오지 않아, 영감님이 불러도 소리가 없었는데,
“빵을 가지러 갔나 보니, 그냥 들어갑시다!” 해서 그냥 들어가게 된 게 영감님의 여동생 집이었다.
그 얼마 뒤 통통한 노파 하나가 들어오는데, 안토니오 영감님의 두 번째 여동생이라고 했다.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고, 오누이가 이런저런 얘기로 근황을 확인하다가,
그 여동생이 나를 위해 뭔가 특별한 음식을 준비할 요량인가 보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구경이라도 시키라며 일단 시내 가까운 데를 한 바퀴 돌아보고 오라기에 우리는 그 집을 나왔는데,
영감님이 나를 데려간 곳이 니께로의 자기 친척들이 사는 동네였다.
바로 바다와 이어지는 바닷가 동네였는데, 거긴 바다 자체가 ‘까보 끄루스’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까보 끄루스’는 물색의 환상적인 카리브 해의 바다라면, 여기는 약간의 뻘도 있는(그 곶에서 안으로 많이 꺾어져 들어오는 만에 있어서인지), 얼른 보기엔 약간은 지저분했는데,
그렇게 몇 집을 돌며 인사를 나누다,
“여기가 내가 태어났던 집이라오.” 하고 집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친척들 집을 한 바퀴 돈 뒤, 이제는 도심으로 나를 안내했는데,
나름 규모도 있고 상권이 형성돼 있는 곳이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사기 위해 줄을 지어 서 있거나 오가는 모습이, 우리의 시골 장날 같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나로서는 쿠바에 와서 어쩌면 처음으로 시장의 모습을 본 것이라, 뭔가 장을 볼 생각으로 약간 들뜨기까지 했는데,
도심엔 도서관도 있었고 박물관도 있었는데, 영감님은 나에게 그런 곳도 구경시켜주고 싶었던가 보았다.
어쨌거나 나는 그저 영감님을 따라 다니면서 이따금 사진을 찍기도 하고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도심을 걷고 있었는데(확실히 도시라 생기가 느껴지기는 했다.),
여기는 시장이라고 해봤자 규모 면에서는 너무 초라해서,
‘이렇게 장사를 해도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렇게 시내 중심 광장 부근까지 가다가 내가,
“근데, 이발소는 어딘가요?”하고 물었던 곳이 바로 이발소 앞이었고,
한 젊은 이발사가 잠시 밖에 나와 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영감님이 뭐라고 하자,
“지금 바로 깎읍시다!” 하는 것이었다.
물론 머리를 깎으러 읍내에 나가긴 했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머리를 깎는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이발소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두 사람이 머리를 깎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이발소도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물론 회전의자가 있긴 하던데, 한 쪽의 거울을 보고 앉는 게 아니라, 실내 안 아무 데나 되는대로 앉아서 머리가 웬만큼 깎이면 거울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깎으면 됩니까?” 하고 묻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머리 깎이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기도 하는 등, 색다른 맛도 없지 않았지만 손님끼리 뭔가 어색함이거나 민망함을 느낄 수도 있는 구조였다.
물론 나도 한 의자에 앉게 됐고, 그러면서 나는 핸드폰에 있던 지난 내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깎아주면 되오." 했더니,
그도 충분히 이해가 됐는지 어렵지 않게 가위를 들면서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토니오 영감님은 머리를 깎지 않을 듯 서 있어서,
“왜, 깎지 않으시구요?” 해도,
“나는 다음에 깎지요.” 하면서 내 머리 깎이는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10 여분만에 내 머리는 대충 깎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튀기듯, 그러니까 아주 싱겁게 머리를 깎았다.
그렇잖아도 하절기가 시작되어 햇볕은 뜨거운데 머리가 길어서 짜증스러웠고, 난데없이 생각지도 않았던 숙소 옆방 손님들로부터 당하는 고통까지 가중되어 골까지 아프던 차에, 그렇게라도 머리를 깎으니 얼마나 시원하던지!
그런데 가격이 50뻬소라니, 우리 돈으로 600 원 정도여서,
‘이렇게 싸서야 머리 깎는 일로 어떻게 밥을 먹고 산담?’ 하는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었다.
어쩐지 공짜로 머리를 깎은 기분이기도 해서, 나는 돈을 지불한 뒤 휴대용 가방에 들어있던 KF 마스크(1회용)를 세 이발사에 하나씩 선물로 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걸 이리저리 살피면서도 너무들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머리를 감겨주지는 않아, 개운한 맛은 없이 그 상태로 이발소를 나오고 말았는데,
다소 상쾌한 기분에 도심을 조금 더 걷다 보니 어쩐지(원래 계획도) 영감님께 뭔가를 사드리고 싶어(특히 고기),
"우리, 고기 좀 살까요? 영감님도 드리고, 또 동생 분네도 좀 갖다 드리게......" 하자,
"여기서는 고기를 맘대로 살 수가 없고, 치부책을 가지고 가야 해요." 하는 것이었다.
고기 자체의 배급 물량이 적을뿐더러, 그걸 사려면 기록을 하는 ‘치부책’이 있어야 했고, 나 같은 사람이 고기를 사려면 ‘비공식적(야매?)’으로 달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래도 고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그러니,
'좌우간 이 나라는 ‘사회주의 경제’라, 뭘 사려 해도 살 수가 없네!' 하는 짜증이 난 건 물론,
그러고 보니, 내가 영감님과 함께 도시로 나온 목적인,
영감님 머리를 깎아드리고, 점심도 사드리고, 뭔가 필요한 물품도 좀 사드리려고 했던 계획이, 뭐 하나 제대로 되어 가는 게 없었다.
그러고도 또, 점심은 자기 여동생 집에 가서 먹자고 하니,
‘내가 여기에 왜 왔다지?’ 하는 생각만 드는 것이었다.
이때도 여전히 나는 쿠바의 시장경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냥 빈 손으로 영감님 동생 집에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거기 도로의 과자점에서 파는 몇 가지 과자 종류 중에서 두어 개를 섞어서 샀는데,
동생집에 도착하니 지금 한창인 과일 대여섯가지를 섞은 ‘과일 음료’(?)를 내놓았는데, 우리가 밖에 나가 있는 사이에 냉장고에 넣어두었던지 시원하고 맛은 좋았는데, 나에겐 너무 달았다.(여기 쿠바 사람들이 보통 그렇게 달게 먹는다는데)
그래도 아주 성의껏 만든 과일로 된 음식이어서 맛있게 먹었다.
그런 뒤 여동생은 우리를 위한 점심을 준비한다고 했고(물자 배급을 못 받아, 음식 재료 자체가 부족하다고 불평을 하는 것 같았는데), 영감님은 그 집에 있는 커다란 망고 나무에서 망고를 따기 시작했다.
아마 본인이 갖고 갈 것도 챙기려는 것 같았는데,
이 영감님은 가만히 보니 그렇게, 본인 집의 과수에서도 직접 열매를 따서 나에게 맛을 보여주는 등의 행위를 아주 즐겨하는 분이라, 여기서도 그런 행위는 전혀 어색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게 여동생의 성의 있게 지어준 점심을 먹고,
내가 어떻게 ‘까보 끄루스’라는 마을에 찾아가서 안토니오 영감님과 친해졌으며, 이렇게 자신의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자, 여동생이 감탄을 연발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넘자,
우리는 다시 '까보 끄루스'로 돌아가기 위해(3시 차) 거기 ‘니께로’의 버스 터미널로 가야만 했는데, ,
아까 본인이 땄던 망고 등 여동생이 혼자 사는 오빠를 위해 또 바리바리 싸 준(음식 등) 걸 들고 걷기엔 너무 멀다며, 영감님이 마차를 타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니께로 시내엔 승객 대여섯 명을 태우고 다니는 마차들이 자주 오가고 있었는데, 우리도 그걸 이용하려나 보았다.
물론 나에겐 신기한 일이기도 했는데, 하필이면 우리가 탄 마차는 총 여섯 명이나 되어, 그 땡볕 아래의 도심을 달려야 하는 말을 보며,
‘이 더운 날 이렇게 많은 승객을 태우고 달리기가 너무 힘들겠다......’ 하는 안쓰런 생각이 절로 들어,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 마차 삯은 5뻬소라, 우리 돈으로 100원도 안 돼, 이용하는 승객들 입장에서는 편하긴 하겠지만,
말도 마부도 힘들 것 같아, 내 개인적으론 좌불안석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거기엔 우리처럼 그 근방의 또 작은 마을들로 돌아갈 많은 승객들이 각자의 행선지에 따라 열 명에서 스무 명... 그런 식으로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역시 안타까워 보였다.
강렬한 한낮의 햇볕에 나른하게 늘어진 사람들의 모습과 분위기는, 멕시코거나 모로코, 그리고 여기 쿠바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되어, 그렇지만 영감님의 기지로 우리는 좌석에 앉을 수 있었는데, 버스는 아침에 출발할 때와 다를 바 없이 만원이었다.
10여 분 연착한 만원버스가 쿵쾅거리며 출발을 했는데,
쿠바 서민들의 땀내 나는 나른하고 고단한 삶을 싣고 달리는 것으로, 우리(두 노인네)의 읍내 나들이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목의 나는 여기 와서의 첫 도시로의 나들이였음에도 기분이 썩 가볍지가 않았다.
여기 쿠바의 현실이 그랬고, 또 돌아가면 옆방 사람들의 소란에 시달릴 게 현실 문제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
어젯밤도 마찬가지로 옆방 사람들과 모기 벌레들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 찌뿌등한 몸으로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그들이 일을 하러 나갈 때까지 오늘도 나는 앞 테라스는 나오지도 못한 채 뒤 테라스만 들락날락하다가, 그들이 차를 타고(쿠바 정부에서 말끔한 차 두 대가 그들에게 지원이 되는가 보았다.) 어딘가로 휭 나가서야 겨우 내 자유를 찾았는데,
한 댓세 그들에게 시달렸더니, 이제는 머리가 멍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잘은 모르되 요 며칠 사이에 그 아름답던 여기 '카리브 해'의 바다엔, 어디선가(먼 대양) 밀려오는 '모자반(Sargazo)'이라는 수초 덩어리가 있었는데, 끊임없이 띠를 이뤄 이 해안으로 밀려오고 있는 것도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아침 10시가 넘어가면서는 바람도 선선했고 기온도 쾌적해,
'뭔가를 해야 할 텐데......' 하면서도 일손이 잡히질 않아 뚱하게 앉아 있었는데,
"인야, 여기 유까 삶아왔어요." 하고 윌리암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가 가져온 유까는, 지금 막 삶은 듯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도 뽀얀 속살이 포슬포슬 일어난 상태였다.(감자와 비슷한 색감에 질감인데, 이게 더 투명하고 맑은 색이다.)
그래서 그 중 한 쪽을 포크로 찍어 맛을 보았는데, 따끈따끈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입안에 가득해져서,
"좋은데?" 하고 만족해 한 것도 잠시일 뿐이었다.
그 얼마 뒤 점심을 먹고났는데,
옆방 사람들이 오전 일을 끝내고 돌아왔다가 바로 점심 먹으러 가는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을 보고는,
'이 틈에 낮잠이라도 자자!' 하고 잠을 청했는데,
잠마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있는데 그들이 돌아와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처음엔 죽은 듯 방 안에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들의 소란이 쉬 멈춰질 것 같지 않아,
안토니오 영감님 집에나 가려고 문을 열고 나왔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내가 나가자 그들은 멈칫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잠시 잠잠해지는가 싶었는데, 어차피 내가 방의 자물쇠를 잠가야 해서 잠시 지체하는 사이, 그들 중 두엇은 슬금슬금 계단 아래로 도망치듯 내려갔고(윌리암 집에서 온 듯), 나머지도 자기네 방으로 들어가는 등 나를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여태까지는 비록 내가 그들 눈에 안 보였다 해도, 단지 창 차단막 사이를 두고 함께 있었던 거나 마찬가진데, 내가 나타나자마자 슬금슬금 도망치는 그들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내가 눈엣가시일 게 분명했고, 양심은 있는지 내 존재를 보면서는 이리저리 내빼기 바빴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말 한 마디 없이 그저 묵묵히 문을 잠그고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와 '안토니오' 영감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은, 영감님이 내가 올 줄 알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요!" 하기에,
"점심은 드셨습니까?" 했더니,
"당연히 먹었지요. 나도 점심은 빨리 먹기 때문에 한참 됐다오." 하면서, "어젯밤엔 어땠소?" 하기에,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 떠들지, 모기와 벌레들은 밤마다 늘어나지......" 하고 한숨부터 쉬면서, 결국 내가 인터넷 지도에서 그 분의 아들인 '토니'가 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는 소식 등, 그리고 어젯밤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들과 직접 부딛히는 대신 집주인 초초에게 항의도 했다는 등의 얘기를 하다가,
내가 물에 들어가겠다고
그런데 어제 '모자반'이 그렇게 이 해변으로 몰려들었는데도 그 부근은 아직까지는 깨끗해
갑자기 바뀐(아니, 이상해진) 문장을 접하면서 나는,
'이 일기도 쓰다가, 그들이 밖에서 떠드는 바람에 내가 갈등을 느끼다가 흥분해서 이런 식으로 썼던 건데......' 하다간, '내가 웬만해선 일기를 이렇게 쓰지를 않는데, 얼마나 짜증스럽고 힘들었으면 이렇게 말도 안 되고 쓰다 만 것처럼 내버려 뒀을까......' 하면서, '에이, 다시 다듬어야겠네!'하기까지도 했다가, '아니! 그런 것마저도 왜 이리 거부감이 나는지,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으니...... 그런 생각을 되씹는 것 자체가 싫으니... 에이, 그냥 넘어가자. 도무지 내키지가 않아.' 하고 그냥 건너뛰기로 했다.
혼자 누워서 천천히 바위까지 갔는데,
뒤따라 온 영감님이 둥근 부표를 가져와
내가 그걸 깔고 엎어져 가는 법, 손으로 물 잡아당기는 법을 배워가며
한 바퀴씩 돌자
영감님은 수경을 쓰고 자기 통발있는 쪽으로 가던데,
내가 혼자 놀고 있는데,
영감님 쪽을 돌아보니, 잠수 하면서 돌아오고 있어
그런데 영감님 손에는 비록 작긴 했지만 ‘바닷가재’ 한 마리
그러고도 바닷가에서 시간을 때우다 돌아와
샤워하고 저녁 먹고
오늘은 파도가 세고 바람도 많이 불어
저녁 먹자마자 졸려(낮에 바다에 들어가서 피곤했던 듯)
그들이 저녁먹고 돌아오면 또 시끄러울 텐데......
그러다 약간 잠이 들었는데
왁자지껄 그들이 돌아와
역시 앞 테라스에(이제는 자기네쪽에서만) 불 켜놓고 여전히 떠들어...
5 . 2
'그래서 나는 또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와, 테라스의 불이 꺼질 때까지(자정 가까이) 거기 낭떠러지에 서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 바다와 테라스의 불 꺼지기만을 기다리며 서 있었던 건데...... 며칠 전 일인데도 가물가물하네. 그렇게 서너 차례 나는 그들을 피해 밖에 나가 언덕에서 두어 시간씩 서 있곤 했다. 정말 미칠 일이었다......'
*
그렇게 잠이 깼던 나는, 하는 수 없이 뒤 테라스에 나가 앉아 있었는데, 초승달이 떠올라
밤은 아름다운데,
어찌나 모기들이 달라붙는지, 미칠 지경
모기에 쫓겨 방으로 들어왔는데,
벽에 붙어 있는 선풍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태까지는 그 선풍기를 보고는,
'이런 방에 웬 선풍기?' 하고 웃긴다는 생각은 물론, 어떤 때는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기도 해서, '저건, 더 웃기네. 자연의 바람이 선풍기를 돌리네!' 하면서 웃곤했던 기곈데,
그걸 모기 퇴치용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고,
그 사이에도 몇 번을,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버티고는 있었지만,
'이러다 정신병자 되겠네!' 하는 생각까지 들어,
'도대체 내가 여기서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하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고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끝내 한숨만을 내 쉬면서 분노를 삭히고 있었는데,
그 쓰레기들 때문에, 그리고 모기와 곤충들 때문에 글 작업도 안 돼
'그 대처방법이 없으면? 여기서 내가 뭐해?' '떠나?'
5 . 3
#나에겐 '쓰레기'들#
예의는 물론 염치와 체면도 없는, 후안무치 생태학자들 때문에 내 여기서의 생활이 180도 바뀌었다.
오늘 아침에 인터넷을 하려고 윌리암 집에 갔는데, 마침 우리 까사 주인인 동생 초초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런데 윌리암이 내 눈치를 보는 듯하면서도,
"인야, 그 생태학자들과 마찰이 있었다면서요?" 하고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그렇잖아도 신경이 곤두서 있던 나는, 더구나 초초도 그 자리에 있는 김에, '마침 잘 됐다!'며,
"윌리암, 내가 못 살겠다! 그 사람들, 여기 쿠바의 대표적인 생태학자들 맞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자 공부도 많이한 사람들일 거 아냐?" 하자,
"그럼요. 박사들도 있고, 그럴 걸요?" 하기에,
"그래, 그런 사람들이 도대체 '에티켓'이나 '공중도덕'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니, 어차피 나나 그들은 니네 형제들 '까사'(민박)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숙박업소 손님들인데, 왜 그렇게 자기들만의 세상인 양 왁자지껄 다니면서 큰 소리로 떠들어 나 같은 사람 잠도 제대로 못자게 하고 일까지 방해하는 거야? 그것도 한두 시간이라면 또 몰라, 낮이고 밤이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테라스에 모여 소란을 피우고 있으니, 그럼, 나 같은 다른 손님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그래서 내가 사정을 하면서 항의를 한 거잖아? 내가 왜 그들과 마찰을 일으켜? 나 그런 사람 아니잖아!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던 거야. 그랬으면, 조용히 해줘야 할 거 아냐? 아니, 자신들 입으로, 미안하다고 해서 나는 믿었지. 근데, 그 다음 날 더 떠들어? 물론 자기들끼리 모이면 좀 떠들 수는 있겠지. 나도 이해는 해. 그렇지만, 이건 날마다 밤마다 모일 때마다, 아니 꼭 거기 테라스에만 모여서 난리법석이잖아? 그리고 내가 일단 항의를 했으면, 양심있는 사람들 같으면 좀 조용히 해 줘야지, 왜, 말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돌아서서는 더 떠드느냐고! 게다가 이젠, 아예 대놓고, 일부러 자기네들 창 쪽 놔두고 내 창 바로 옆에 까지 와서 뭐, '미 아모르(Mi amor 내 사랑)!' '미 비다(Mi vida 내 인생)' 하면서,(이 때 그들 형제는, 내 표현이 너무 웃겼는지, 그러면서도 민망한지 피식! 둘 다 웃었다.) 지들 부부간의 통화까지 해대며 큰 소리로 떠들고 난린지, 나만 병신된 꼴이라니까? 그럼, 나는 뭐야? 나는 니네 까사(민박) 손님 아냐?" 하고 그들 둘을 번갈아 보니, 둘 다 움찔하면서 내 눈을 피하기에,
"그렇게, 왜, 나 같은 다른 손님에게 이런 피해와 고통을 주느냐고! 나는 요즘 그들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지. 일도 못하지. 내가 여기서 일도 못하면, 뭣 땜에 이렇게 오래 머물어야 하는데? 그럼, 나... 떠날까?" 하고 씩씩거리면서 다시 그들에게 물으니, 여전히 어깨만 들썩하던데,
"근데, 그들이 배운 사람들 맞아? 이 나라의 어쩌면 대표적인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공중도덕'이란 개념 자체도 모르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는데, 아니 오히려 더 뻔뻔하게 무분별한 행동을 하던데, 그 사람들이 학자들이라고?' 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리고 한두 사람 그럴 수 있다고 쳐. 이렇게 파견나와 일을 하다 보면 뭔가 객기가 발동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근데,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 같이, 신바람이 난 듯 아예 나 같은 사람은 무시를 해버리는 식으로 누구 목소리가 더 큰지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그것도 왜 자기들 방 쪽 놔두고, 내 창문 벽에 바짝 붙어 노래까지 부르면서, 노래도 혼자 부르는 게 아닌, 이젠 아예 합창까지 하면서, 나를 일부러 골탕먹이느냐고? 그게, 쿠바를 대표하는 학자들이고, 배운 사람들이 할 짓이야? 니네는 공중도덕도 없냐? 내가 니네 까사에 머무는 동안, 조용히 지내는 쿠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일반적으로 숙박시설에 오면 누구든 일단 목소리를 낮춰야 하는 게 기본인데, 누구 하나 조심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거든? 내가 동양에서 온 사람이라고, 그리고 혼자라고 무시하고 깔아뭉개려는 거야?" 하고 흥분까지 하자,
"우리 쿠바 사람들이 원래 그래요......" 하고 윌리암이 겨우 한 마디 하기에,
"내가 차라리, 여기 바닷가의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그런다면 이렇게 흥분까지는 하지 않겠어. 아니, 이 나라를 대표한다는 학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체면도 예의도 없는 거야? 무식하기 짝이 없는 것들 같으니라구! 그러니 내가 '쓰레기'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어. 더구나 내 앞에선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해놓고, 뒤돌아서선 '엿먹어라!' 하고 더 크게 떠들어? 그건, 나를 완전히 '병신취급'하는 것이니,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거야? 근데, 지들도 양심은 있는지... 내가 견디다 견디다 힘들어 밖으로 나오면, 또 왜 슬슬슬 내 눈치를 보면서 피하거나 도망가느냐고! 그게 한 나라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할 짓이야? 길에서 구걸하는 거렁뱅이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주 비겁하기 짝이 없는 것들 아냐? 그러니 '쓰레기'지! 그렇다고 그런 쓰레기들하고 맨날 싸울 수도 없고......" 하고 푸르락붉으락 하자,
"미안해요, 인야......" 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마치 자신의 죄처럼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그래! 말 잘했어. 그리고 너희 두 형제가 다 있으니 잘 됐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도 니네 까사의 한 손님이거든? 나도 까사에 돈 내고 묵는 손님인데, 내가 왜 다른 손님들 때문에 그런 피해를 당해야 돼? 그리고 너희들도 너무 잘 알잖아? 내가 얼마나 조용하게 까사를 이용하는 사람인지." 하자 그들 둘 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래, 나 혼자 있을 때, 나로 인해 그 어떤 사고나 불미스런 일이 있었어? 니들도 봐 왔듯이, 나는 방에서 일만 하는 사람이잖아?" 하자,
"예......" 하고 동생 초초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해서,
"그런데, 그들이 오면서부터 나는 정말 생지옥에 있는 기분이라니까! 그러니까, 너희들도 책임은 있는 거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도 이제는 더 안 참겠어. 물론, 나도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만은 없지만, 최소한 잠이라도 편하게 자고 싶어. 그러니까, 밤 10시로 할까?" 하면서, "초초!" 하고 동생을 부르자 그가 움찔하면서 나를 바라보기에,
"만약, 오늘 밤 10시에 그들이 테라스의 불을 안 끄고 여전히 시끄럽게 떠든다면, 나는 그들과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고, 그 순간 나는 니네 집을 나갈 거야! 그리고 내일 이 마을도 떠날 거고. 정말이야! 밤 10시!" 하자,
"알았어요!" 하고 초초가 말했는데,
"아니, 요즘에 하필이면 그 이상하고 검은 벌레까지 갑자기 생겨서, 초초 니가 그랬잖아? '살가소(Sargazo:모자반)'가 몰고온 벌레라고?" 하자,
"예." 하기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게, 밤에 불을 키면 그 벌레들이 정말 새카맣게 몰려오는데, 왜 그렇게 밤 늦게까지 테라스에서 불을 켜놓고 있는지... 어젯밤에도 내가 하도 시끄러워서 밖에 나와 두어 시간을 절벽 언덕에 서 있다가, 10시가 되어 돌아왔는데, 정말.. 테라스의 내 문에 그 벌레들이 새까맣게 앉아 있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도 끔찍했었는데, 그들은 자기네 문 쪽 탁자에서 뭔가를 먹고 있기도 하던데... 어떻게 그런 벌레들이 시커먼데도 그 아래서 먹고 있느냐고! 음식에도 벌레들이 모여들 텐데...... 돼지들도 아니고!" 하면서 여전히 흥분해 있던 내가,
"그리고, 내가 뭣 때문에 내 돈 내고 까사에서 그들에 눌려서 조심을 해야 하고, 그들을 피해 밖에 나가 모기에 뜯기면서 두어 시간을 서성여야만 하고, 그들의 눈치를 보며 죽어지내야 하느냐고. 며칠 동안 그렇게 지내긴 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들이 나에게 그렇게 피해를 줄 권리도 없는 거야. 나도 이제는 더 이상 못 참아! 알아서들 하라고 전해 줘." 하고서야 말을 멈췄는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몸에 열이 다 난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인터넷도 연결이 안 돼줘서, 한참 윌리암이 씨름을 해도 안 되기에,
"할 수 없네. 다음에 할 수밖에...... 윌리암, 오늘은 그냥 가야겠다. 그렇지만 고마워." 하고 돌아오려고 하자,
"미안해요, 인야." 하기에,
"니가 왜 미안해? 니 동생네 집에서 벌어진 일인데......" 하고 여전히 퉁명스런 어조로 말을 했지만, 그가 나에게 미안해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라고 나를 위해 뭐 특별히 해 줄 건 없을 것이었고, 자기네 손님이기도 한 그들을 홀대할 수는 없을 터라, 그저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
*
어젯밤 10시, 나는 역시 그들을 피해 낭떠러지 언덕에 서 있었다.
그 시각이 되자 집주인 초조가 테라스로 올라가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무리에게 뭐라고 말을 하더니, 벽에 있던 스위치를 누르면서 테라스가 어두워지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왔고, 나머지도 핸드폰 불빛을 내면서 움직이는 것 같더니 잠잠해지기에,
그래도 한참을 서 있다가, 내 방으로 돌아왔다.
11시가 넘어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옆방 사람들이 오는 것과 거의 때를 같이 해서 이 바닷가 마을에도 변화가 일어났는데,
먼 바다(대서양)에서부터 엄청나게 떠내려오는 '모자반'이 이 마을 해변을 덮친 상태고, 이집 주인인 초초에 의하면 그 모자반과 함께 날아온 벌레(검은색 조그만 곤충)가 밤마다 기승을 부리고도 있었다.
물론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온 것과 옆방 사람들이 와서 내가 힘들어진 것이 거의 동시에 벌어졌다는 얘기다.
그러던 모자반이 오늘은 이 마을 해안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사람들이 물놀이 하던 바다가 사라진 꼴은 물론, 그 모자반이 썩는 냄새가 머리를 지끈거리게까지 하는 중이다.
그래서 물어보니, 해마다 여름에 모자반이 밀려오는 일은 발생하지만, 올해는 왜 이리 빨리 찾아온 건지는 이들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갈색 모자반이 아름답던 바다를 덮어,
마을이 흉흉해진 느낌이다.
내가 영감님 집에서 돌아오니 그들은 뭔가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그저껜가는 테라스에서 뭔가 강습도 했다.),
그러면 사전에 그런 양해 정도는 구할 법도 한데(그러면 내가 못하게 하겠는가?), 그들은 그런 걸 아예 염두에조차 두고 있지 않은 사람들 같다.
그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뭐든 염치도 체면도 없이 테라스를 다 차지한 채 하는 사람들......
내 '도덕의 잣대'로 그들을 다 뚜드려 맞출 수는 없겠지만, 해도 너무해...
나도 외국을 얼마나 다닌 사람인데, 그런 '후안무치'들은 여태껏 보지를 못했는데......
5 . 4
'이 즈음의 일기가 상당히 흐트러진 느낌이다. 그만큼 정신집중이 안 됐다는 반증이긴 한데......' 하면서 내 자신도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부분의 특징은, 이 5월 4일의 짧은 글 뒤로 그들이 돌아가기까지의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밤에 잠도 잘 못자고(그들과 모기 때문에) 마치 노이로제에 걸린 환자처럼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그들을 피해 도망다니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일기고 기록이고 제대로 남길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인데,
그 전까지 '까보 끄루스'에서의 좋았던 기억이 그 며칠로 인해 다 날아간 것처럼, 나는 정말 마치 신경과민 환자처럼, 극도로 긴장하고 초조한 상태로 그러면서도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당장 그 마을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이성을 조절하지 못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 며칠은 이따금 충동적으로 문을 치거나 고함을 지르는 등 정신분열증 적인 행동도 하게 되었던 것 같은데,
끝내 그들은 달라지지 않았고, 나는 그들에게 지고 말았던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