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마녀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이야기가 계속 나온 김에 마지막으로 고대 기독교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이런 건 교회에서 가르쳐줘야 하는 것인데, 한국 교회들 대부분이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십일조"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 비극적인 현실인 것이겠죠.
기독교의 종파 분열을 시대순으로 도표화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도표를 잘 보시면 기독교의 아주 큰 흐름은 고대에 동-서로 분리되고, 이어서 16세기의 종교개혁으로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분리된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가 카톨릭으로부터 분리된 것은 세계사 등을 통해 비교적 자세히 배우는데요. 동-서의 분열에 대해서는 잘 배우지 않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역사가 결국은 승리자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세를 통해 오랜 기간 종교적 암흑기를 거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교리의 통합이 필요해지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입니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인데,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를 도대체 어떻게 볼 것이며 그와 하나님의 관계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도대체 그가 고통을 받고 죽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이고 예수를 섬겨야 한다면 그걸 유일신 신앙으로 볼 수 있느냐?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인간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을 받아 신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동태론(dynamism)'입니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의 한 분파였던 영지주의(그노시즘)의 영향을 받은 해석이었는데, 이렇게 해석해버리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도 신도 아닌 '반신'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동태론의 해석에는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여기에 새로운 해석이 등장합니다. 태양은 눈에 보이는 태양이라는 존재와 거기서 발생하는 열기라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갖고 있지만 동일한 하나의 존재이니 성부와 성자도 이와 동일한 양태적 특징을 가진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양태론(modalism)'이라고 불리는 학설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성부와 성자는 동일하지 않지만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동일체론'입니다. 이것이 발전한 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론(Trinitas)'입니다. 성부(Pater)와 성자(Filius)와 성령(Spiritus Sanctus)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지만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론이 정통 교리로 인정되어 다른 교리를 주장하던 종파들은 모두 이단으로 판정되어 파문됩니다. 이것을 놓고 기독교란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이 채택되어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건 기독교의 본질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론이 채택된 것은 삼위일체론이 복음서의 내용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설명하는데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었기에 학문적으로 승리한 것이지 인위적으로 선택되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흔히들 말하는 "이슬람과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 똑같은 신을 섬긴다."라고 하는 주장에 대한 답입니다. TV에 자주 나오던 통일교계 학자가 이런 주장을 하면서 마치 3개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무지해서 서로 싸우고 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 '이슬람-유대교-기독교' 동일신론이 널리 퍼졌는데요. 이것이야말로 종교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주장입니다.
삼위일체론 뿐만이 아니라 동태론이건 양태론이건 단성론이건 그 해석은 달라도 신앙의 뿌리는 같습니다. 그건 성부와 성자, 즉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라는 믿음이고 삼위일체론이 성립되기까지 나온 수많은 학설들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학문적 방법론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나누어집니다.
기독교는 '성부-성자-성령'의 '성 삼위일체'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이슬람은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종교이며 강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종교가 똑같은 이름의 신(같은 어원을 가진 신)을 섬긴다고 해서 같은 신을 섬긴다고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무지의 소산인 것이죠.
그런데 동로마의 아데사 지방과 안티오크, 에베소스 등의 지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 지역에 존재하던 여신 숭배 사상과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가 결합되어 사람들은 이미 성모 마리아를 신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신학자들은 이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성모 마리아를 놓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크 학파가 서로 대립합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거두가 키릴루스였고, 안티오크 학파의 거두가 네스토리우스였습니다. 그런데 학문적으로는 신비주의적인 관점을 중시하던 알렉산드리아 학파보다는 현실주의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을 중시했던 안티오크 학파가 더 앞서 있었습니다. 이 두 학파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런 겁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모 마리아가 낳은 것은 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이니 성모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가 맞고, 그녀의 신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학문적으로 보았을 때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이 훨씬 더 타당하며, 지금의 기독교 교리로 보았을 때도 훨씬 더 발전된 생각입니다. 문제는 키릴루스는 당시 서로마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고, 네스토리우스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약했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교부였다는 것입니다. 학문적으로는 네스토리우스와 그를 지지하던 안티오크의 주교 요하네스가 더 앞서 있었지만 정치적인 영향력은 키릴루스가 더 강했기 때문에 결국 이 논쟁에서 키릴루스가 승리하고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낙인찍혀 파문당합니다.
네스토리우스파에서 발전한 이성설은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자 인간이며 인간인 예수와 신인 예수는 구별된다는 학설입니다. 이러면 성모 마리아는 인간인 예수를 낳은 어머니이지 신인 예수를 낳은 어머니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인설을 부정해버리면 그것은 곧 삼위일체론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주류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엄연한 이단적 교리가 되어버립니다. 결국 네스토리우스의 생각과는 달리 그를 추종하던 세력은 이성설을 받아들이고, 주류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북아프리카와 아랍 지역으로 도망갑니다. 이 과정에서 아데사 지방의 박해를 받던 기독교들과 결합해 네스토리우스교가 성립됩니다.
이후 네스토리우스는 중국과 몽골 지방으로 전해져 '경교'라 불렸고,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로 개종했던 많은 몽골 부족들에 의해서 원나라 때 크게 번성하다가 명나라의 건국과 함께 쇄퇴하게 됩니다.(이 네스토리우스는 무려 통일신라시대에 한반도 내에도 신도가 있었을 정도로 전세계에 널리 퍼진 기독교 종파였습니다.) 이미 그 시기가 되면 중국 경교는 도교와 불교의 사상을 혼합해 중국식의 이상한 종교로 변질되어버렸고, 정통 네스토리우스로부터도 멀어져서 거의 사교 집단화 합니다. 김용의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경교의 사교적인 행위들은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됩니다.
기독교 분리의 역사(큰 사건을 중심으로) 연도 사건 논쟁 분파 325년 니케아 공회 그리스도의 신성 논쟁.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레이오스’가 주장하던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독자적인 존재다.”는 주장을 펼치는 아리우스주의에 대해 다른 학파가 대립. 아리우스파 분리 431년 에페소스 공회 테오토고스 논쟁. 안렉산드리아의 ‘큐리로스’와 콘스탄티노플의 ‘네스토리오스’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주제로 ‘성모 마리아’에 대한 명칭에 대하여 대립. 네스토리우스파 분리 451년 칼케톤 공회 단성-양성론 논쟁. 단성론파 분리로 동방제교 성립 1054년 성상숭배 논란 성상숭배문제로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 대립 동-서 교회 분리 1517년 1차 종교개혁 교회 권력의 부정부패와 성직자의 면죄부 판매 행위들에 대한 반발. 루터파 분리 프로테스탄트 성립. 1534년 국교회수립 헨리 8세의 이혼 문제. 성공회 분리 1537년 2차 종교개혁 5sola 주의. 예정론 논쟁. 장로교 분리 16세기말 밥테스트 운동 밥테스머(세례자)와 세례의식에 대한 논쟁. 크게 3개의 파로 나뉨. - 약식세례파, 침례파, 재침례파 침례교, 재침례교 분리 1729년 청교도운동 성공회의 안수거부사건. 신대륙으로 가는 이주민을 실은 배에 탄 선교사들(청교도들)의 안수를 성공회가 거부하자 존 웨슬리 신부가 독자적으로 이들을 안수함. 감리교 분리 1867년 성령운동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 확산. 진화론과 자유주의 정신이 확산되는데 대한 강한 반발로 기독교 근본주의와 성령주의 운동이 확산. 성결교회 분리 오순절교회, 순복음교회 등으로 발전. 19세기말 재림운동 안식일 논쟁. 에렌 G. 화이트를 중심으로 성경에 기록된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며, 성경의 내용에 따라 지옥은 없다는 주장을 펼침. 안식일교회 분리 |
출처: 아까짱 블로그 원문보기 글쓴이: 김상하
첫댓글 비유적으로 보자면 옥돌이 옥돌이 되기 위해서는 아픔을 격어야 하는 것이아니겠소. 진리가 진리되기위해서는 ..뼈아픈 절치달마를 해야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