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뿌려라 - 대만 불광산사 성운대사의 미혹됨을 깨달음으로 바꿔주는 에세이
성운대사 지음 | 46판 | 284쪽 | 7,500원 | 2009년 8월 31일 초판 | ISBN 978-78-8023-153-9 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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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인가
일상의 삶에서, 인간에게서 지혜를 찾는다!
전 세계 1천여 ‘인간불교독서회’의 지정교재!
☼ 누가 썼는가!
인간불교라는 이상 아래 세계 인류의 평화와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세계 200여 개 사찰에서 불광(佛光)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대만의 성운대사!
스님은 평소 ‘사람들에게 신심을, 기쁨을, 편리함을, 봉사를’이라는 원칙 아래 스님들을 지도하신다.
▶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작은 것에서 지혜를 찾는다!
성운대사의 글쓰기는 수행과 둘이 아니다. 고담준론도 아니다. 그냥 읽다 보면 왜 어리석음에 돌고 돌게 되는지를 알게 한다. 이 책은 ‘제1부 아름다운 창의’, ‘제2부 생활의 멋’, ‘제3부 가장 좋은 선택’, ‘제4부 가슴을 넓혀라’의 4부 80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머리말에서 스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듯이 이 글을 쓰는 것은 주야가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전 세계 홍법의 과정이며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자 전가할 수 없는 사명감에서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반은 깨어 있고 반은 미혹된 세계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깨침의 세계로 넘어가도록 단 몇 분의 짧은 시간에 몇 줄의 글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현실을 짚어내서 독자로 하여금 마음 쓰는 법을 알게 하고, 도리를 깨닫고 즐거움을 나눠 주는 삶을 살게 한다.
그럼 여기서 몇 구절이나마 성운대사를 만나 보자.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생활의 터전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생활 터전은 어디입니까?
날마다 바깥에서 분주하게 지내다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감은 집이 우리네 삶의 터전이요, 날마다 밖으로 나와 출근하고 일을 함도 출근하는 곳이 바로 우리네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14쪽 터전)
진정으로 능숙한 것이 아니면 오히려 서툰 것이 좋습니다. 서툰 것은 곧 진실되며, 성실하고, 분수를 지키는 것이며, 일을 순서대로 하나하나 진행하여 서툰 것을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15쪽, 서툰 것을 열심히 한다)
‘나로부터의 출발’을 하지 않고, 외부의 힘만을 얻으려 한다면 권세를 가진 친척이 있다 하더라도 일시적인 도움만 줄 수 있을 따름입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제갈량 같은 귀인이 옆에서 보좌한다고 해도 아무 쓸모없는 무능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44~45쪽, ‘나’로부터의 출발)
우리 사회에도 아름답고 창의적인 것이 많이 있습니다. 창의가 있었기에 오늘날 대만이 전 세계에서 괄목할만한 ‘경제의 기적’을 이룩한 것이며, 창의가 있었기에 세계에서 전자공학 분야를 선도하게 된 것입니다. 창의가 있었기에 자유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으며, 창의가 있었기에 각종 학파들이 자유롭게 논쟁할 수 있는 분위기와 갖가지 학문 예술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의는 사업을 발전시키며, 인생을 부유하게 바꿔주고, 사람을 화목하게 하고, 결국 사회를 더 아름답게 합니다. (56쪽, 아름다운 창의)
동(動)적이고 정(靜)적이지 못한 사람은 조용하기만 하면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매일을 움직임 속에 자신을 두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등산이나 수영한 뒤에 다시 운동을 하고, 또 대화를 나눌 친구들을 연락합니다.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빼면, 그는 도무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합니다. 생활 속의 평온을 누리지 못하니 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요!
정적이고 동적이지 못한 사람은 항상 자신을 가두고, 홀로 앉아 명상(瞑想)에 빠져듭니다. 책과 신문을 많이 보고, 음악을 많이 들으며,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말라죽은 나무와 같으니 생기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60쪽, 동적이고 정적일 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바로 ‘남이 잘 되는 꼴은 못 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버릇입니다. 누군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즐겁게 하하 웃는 것은 ‘남의 불행이 곧 나의 기쁨’이라는 심리적 표현이고, 남이 출세하고 부자가 되는 것을 보고 속이 쓰라린 것은 타인이 잘 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105쪽, 남 잘 되는 꼴은 못봐)
가령 밥을 먹는 것이 식량 낭비라 한다면, 우리는 밥을 먹지 말아야 합니까? 잠자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한다면, 사람은 잠을 자지 말아야 합니까? 자녀가 온갖 나쁜 짓을 하고 가산을 탕진한다면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필요 없단 말씀인가요? 그렇기 때문에, 일이 발생했을 때 반대나 찬성의 의견을 계속 고집하는 것에는 이유야 많지만 시비와 좋고 그름은 이성(理性)을 거치지 않은 것입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관계없이 모두 순응할 가치가 없습니다. (137쪽, 찬성과 반대)
비행기라도 너무 오래 날면 그 금속이 피로해지고, 자동차를 오래 운행하면 열을 식혀 주기 위한 냉각수가 필요한 이치입니다. ~ 해와 달과 별, 산과 강, 대지 모두 휴식이 필요합니다. 곤충은 겨울잠을 자야하고, 꿩은 일찍 자야합니다. 부지런한 개미도 둥지를 틀고 휴식을 취해야 하며, 분주한 꿀벌도 꿀을 만든 후에 한동안 휴식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161쪽, 휴식의 의미)
세상에는 혼자의 힘으로 완성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공동으로 만들고 많은 인연으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일도 1년을 사는 생명이 모든 것을 해낼 수는 없으며 반드시 대를 이어 전수해야 합니다. 전수와 계승이 있는 사업만이 영원하고, 전수와 계승이 없는 사업은 늘 우담화(優曇華)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져 버립니다. 끊임없이 바통터치를 하고, 부단히 바통을 이어받을 때 비로소 무한한 희망이 있습니다. (190~191쪽, 사업은 바통터치가 중요하다)
▶ 교리와 역사, 문예미가 있다!
스님의 글쓰기는 그 폭이 굉장히 넓다. 불교 교학은 물론 정치 경제 역사 등에서 다양한 소재를 현실의 우리 삶으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결코 짧은 에세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없음을 책장을 넘기면서 알게 된다.
근세의 사상가였던 호적 선생은 일찍이 “대담하게 가설하고 조심스럽게 증명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가설(假說)이 곧 생각이고, 그 가설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실천입니다. 대만이 수년간 농업, 공업, 상업, 그리고 과학기술 등의 다방면에서 고른 성장을 이룩한 것은 모두 생각의 결과입니다. 이제 부유해지고 물질과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 국가는 앞으로 생각이나 견식 있는 사람을 좀 더 배출하여 사회 화합 창조와 중국본토와 대만 관계의 평화적 촉진, 더 나아가 오천년 동안 부끄러운 대립투쟁의 역사, 그리고 부조리 척결 등의 문제에 더욱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40~41쪽, 사유의 묘처)
모택동(毛澤東)을 ‘당신은 우리의 강철이요, 영원한 태양’이라 찬미하였으며, 장개석(蔣介石)을 ‘민족의 은인이요, 영원한 지도자’라 찬미하였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지나치게 희망을 찬미하는 것도, 예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찬미에도 예술성이 있어야 하고, 모두 기뻐하는 실질적인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태종(唐太宗)을 근정애민(勤政愛民)한 황제라 평가하고,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사람을 가려 쓰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평가하며, 강희제(康熙帝)는 종족 간 화합을 잘 이끌었다고 평가합니다.
(53쪽, 찬미는 예술)
사람이라면 인연을 따르는 성품도 필요하지만, 변치 않는 지조를 지키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수연불변 불변수연(隨緣不變 不變隨緣)’하는 것이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좋은 방책인 것입니다. 당나라 문성공주(文成公主, 625?~680)는 당나라와 티베트 양국의 화합을 위하여 인연을 따라 평화의 사자가 되어, 먼 티베트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녀는 불교를 티베트에 전파했을 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문화까지 이역에 전파하여, 오늘까지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칭송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북송(北宋)의 명재상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은 내직을 맞고 있을 때 적극적으로 신법(新法)을 추진하여 부국강병을 꾀하고자 하였으나, 도리어 송나라 신종(神宗, 1048~1085)의 불신임과 보수파의 방해로 인하여 성공을 눈앞에 두고 아깝게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북송은 이민족에게 멸망을 당하였으며, 황제마저도 포로의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64쪽, 인연을 따르는 성품)
당나라 때 대매산(大梅山)의 법상선사(法常禪師)는 풀잎으로 옷을 짓고 나무껍질을 먹으며 소박한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기품이 고아한 은둔자적 ‘생활의 멋’을 이룩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작가는 자신이 쓴 저서 구주풍광(欧洲风光)에서 ‘룩셈부르크에서 일하는 것이 제일 좋고(임금이 가장 높음), 독일산 자동차를 운전하고, 영국에 집을 사놓고(시설설비가 가장 완벽함), 포르투갈에 살며(기후가 제일 좋음), 프랑스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이야말로(평균수명이 가장 길다) 인생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102쪽, 생활의 멋)
유식(唯識)에서는 우주 자연은 ‘오직 식(識)이 나타난 것이요, 마음이 변하여 나타나는 것이다[唯識所現, 唯心所變]’고 하였습니다. ‘동일한 사물도 보는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一水四見]’의 논점은 하나의 증거로 삼을 만합니다. 물은 모든 중생이 함께 봅니다. 바다와 강, 계곡에 관계없이 인류가 보기에 그것은 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천인(天人)이 보면 물은 유리가 되고, 아귀가 보면 바로 진한 피가 되며, 어류에게는 집이 있는 낙원과 같습니다. 왜 인류가 보는 물을 천인(天人)이 볼 땐 유리가 되고, 아귀(餓鬼)가 볼 땐 농혈이 되고, 어류(魚類)에겐 또 삶의 낙원이 될까요? 이것은 바로 중생 각자의 업감(業感)이 달라, 인과응보에 수많은 차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180쪽, 일수사견)
생과 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부처님께서도 ‘인연이 있으면 부처님으로 세상에 나고, 인연이 없으면 부처님처럼 열반에 든다. 중생을 위해 오셨다가 중생을 위해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인생도 세상 연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가고, 중중무진(重重無盡)한 미래 역시 인연을 따라 옵니다.
생사(生死)가 일여(一如)하다 여기면, 태어남이 기쁠 것도 죽음이 슬플 것도 없을 것입니다. (226쪽, 생사일여)
‘유는 곧 공이다’란, 집은 ‘유’이지만 무너질 수 있습니다. 무너지면 ‘공’이 아닌가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은 ‘유’이지만 텔레비전을 끄면 ‘공’이 아닌가요? 그러기에 불교에서 ‘공, 유는 둘이 아니다[空有不二]’고 설하는 것입니다. (228쪽, 공의 진리)
테레사 수녀는 ‘빈궁을 지닌 것은 나의 최대의 자랑거리다’고 말하였습니다. ‘청빈사상’은 반드시 ‘하나도 소유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무(無)’ 속에서야 말로 ‘유(有)’가 생길 수 있으며, ‘무’야말로 한량없고 다함이 없습니다. (249쪽, 청빈사상)
▶ 말과 삶의 일치!
스님에 대한 회고 한 토막. “어느 해던가. 필자가 불광산사에 며칠 머물면서 스님 제자들에게 성운대사를 존경하느냐고 어리석게 물었다. 그때 ‘무척 존경한다.’고 하는 대답이 귀에 쟁쟁하다. 왜 존경하느냐고 물었다. 말씀과 행동이 일치한다고 하였다.”(성우스님, 마음의 비밀 2)
스님의 글이 힘 있는 이유이리라. 결코 길지 않은 시간에 대만 불광산사를 비롯하여 각 국에 200여 개의 사찰을 세워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된 소리를 전하여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언행의 일치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의 행간 행간에서 오는 계정혜의 향기를 맛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본인 ‘미오지간’(현재 12권 발행되었고 이 책은 그 중 다섯 번째인 산파쾌락의 온전한 번역임)은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 본토 등 여러 언어로 번역돼 보급되고 있습니다.
☼ 저자 소개 성운(星雲)대사는
1927년 중국 강소성 강도(江都)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남경 의흥(宜興) 서하산 대각사(棲霞山大覺寺)에서 지개상인(志開上人)을 은사로 출가했다. 일찍이 서하율학원(棲霞律學院)에서 공부하고 임제종 48대의 법맥을 이어 받았다. 그 뒤 젊은 나이에 백탑(白塔)초등학교 교장, 노도월간(怒濤月刊) 주간, 남경 화장사(華藏寺) 주지 등을 역임했다.
1949년 대만에 와서 인생잡지(人生雜誌), 금일불교(今日佛敎), 각세(覺世) 등의 정기간행물을 주간하고 1952년에는 의란 뇌음사(宜蘭雷音寺)에서 염불회, 청년회, 아동주말학교(兒童星期학교), 홍법단(弘法團) 등을 조직하면서 뒷날 홍법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1967년에는 대만 고웅현 대수향(高雄縣 大樹鄕)에 불광산사를 창건하여 불교교육과 문화, 자선, 홍법사업에 매진했다. 그동안 세계 각지에 200여 개의 사원을 건립했으며, 100여 개의 국제불광협회를 통해 ‘인간불교’의 이상을 실천하고 있다.
대만불광산사 www.fgs.org.tw 서울불광산사 www.fgs.or.kr ∣Tel. 02-2276-0993
공역자 의은스님 1976년 성운대사를 은사로 출가, 1988년 서울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1990년 동국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과정 졸업, 2009년 현재 한국 서울 불광산사 주지 (011-443-1921)
한순진: 2001년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졸업, 이현지: 2007년 숙명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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