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14 윗갈치고개 - 강실고개
<<윗갈치 - 비룡산 - 금강산 - 수량재 - 굴포운하 - 붉은재 - 오석산 - 강실고개>>
◙ 일시 : 2007. 10.07(일) 09:20 - 15:50 (6시간30분)
◙ 날씨 : 비예보가 있었으나 맑고 더웠음
◙ 참가인원 : 마루금 회원 25명(백우산악회 김원수,우영자,이의부 등 3명)
◙ 거리 :17.5km
◙ 소요경비 : 35,000원
◙ 산 행: 서산시 팔봉면과 태안군 태안읍을 잇는 산줄기, 최고봉 금강산, 굴포운하지를 건너는 정맥길
오늘구간 비룡산(292)과 금강산(316) 장군산(200)등 이름은 그럴듯한 산이있지만 모두 동네 야산에 불과 하며 특히 최고봉 금강산은 삼각점만 달랑 하나있는 흙산입니다.
그러나 산이 귀한 서해의 태안군민들은 이렇게나마 산이름을 붙여서 산을 귀하게 여겼을 것 같습니다
오늘구간 역사적의미를 담고있는 <굴포운하지>를 지납니다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이운하지는 가로림만 상류와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홍인천 약 3Km 굴착하여 수로를 연결한 곳입니다.
이 운하는 고려 인조12년 굴포를 개척하여 조선중기 암진왜란직전까지 400년간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운하공사를 계속하였으나 암반과 조수에 밀리는 토사등으로 인해 중단 실패하였고 현재 남아있는 흔적은 약 1Km 정도라는 설명의 입간판이 서있습니다
구간의 종착지는 오석산 아래 강실고개입니다. 태안읍 산후리 강실마을과 상옥리 제나리마을을 넘는 고개로 모처럼 차도에서 끊지 못하고 마을로 이탈하는 고개가 되겠습니다.
야산과 산간마을 오가는 금북정맥 길, 이제 그 끝을 향한 막바지 구간을 가고 있습니다.
태안군은 동쪽을 제외하고는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로써 국내 유일한 해안국립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해안선의 길이가 530.8km이며 곳곳마다 절경을 이루고 있고, 또한 120개의 크고작은 섬들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
그리고 군청소재지인 태안읍으로부터 남쪽으로는 해안선의 풍광이 뛰어난 해안관광지를 지나 서산간척지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 있으며, 서쪽으로는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만리포,천리포등이 있는곳입니다.
# 윗갈치고개에 있는 서운정 표지석 앞입니다
09:20 윗갈치(0km) 29번과 77번 국도
오늘의 산행들머리가 되는 윗갈치도로 건너편 동네로 들어가는 포장길 우측에 서령정이라고 쓴 돌비석이 서있습니다. 그 옆을 지나 사면으로 오르면 의성김씨 산소 두기가 있고, 철죽과 키 작은 잡목이 울창한 희미한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국도에서 연결된 아스팔트도로로 내려서서 서산시 사격장인 서령정앞 주차장을 통과하여(09:30) 소나무숲으로 들어갑니다. 숲으로 들어가자마자 만나는 두 갈래길에서 우측으로 갑니다.
# 서산사격장(서운정)입니다
서령정의 대표는 射頭(사두)라고 하는 듯 윗갈치 비석에는 사두 000라고 쓰여 있고 서령정앞 비석에는 副射頭 000, 000 라고 쓰여 있습니다. 고갯길을 지나 완만한 능선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밋밋한 능선에 잡목만 울창합니다.
키작은 활엽수 잡목들이 너무 빽빽해서 등산로외에는 전혀 시야가 없어 답답합니다.
계속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다가 제법 큰바위봉을 지납니다.
콘크리트 2차선도로를 지나는데이 길이 인지면 성리에서 팔봉면 금학리로 넘어가는 길입니다. 임도따라 고개마루로 오르면 거대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있습니다.(10:30) 시원한 곳을 골라 앉아 가져 온 간식들을 먹습니다. 이제 느티나무에도 단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 느티나무밑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한성대장. 금요일과 토요일 대간을 다녀왔다 다시 금북에 합류하여 매우 피곤해 보입니다
다시 산판도로를 따르다가 우측사면으로 약간의 급경사를 오르면, 이런 야산에서 어울리지 않게 이름도 거창한 금강산입니다(11:23). 함께한 회원들이 “야, 돈 35,000원에 금강산 구경도 하고”하면서 농담도 합니다.
# 금강산입니다. 잡목속에 삼각점만 하나 있는 평범한 산입니다
11:23 금강산(316m) 삼각점 5.5km
금강산은 잡목숲에 삼각점만 하나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 능선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잡목으로 둘러쌓인 삼각점봉우리를 지납니다.
다시 좌측사면으로 내려갑니다. 서쪽으로 가던 능선이 남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틉니다.
금강산과 장군산능선에는 북쪽으로 팔봉산(361.5m)이 잘 보입니다. 모두 8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왼쪽 바위봉 2개가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 비록 정맥에서는 벗어나 있으나 아주 멌있는 산입니다.
11:50 장군산(203.5km)
작은바위가 여기저기 솟아있는 장군산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물과 간식을 먹고 좌측(남쪽)으로 급경사 사면을 내려갑니다. 포장도에 내려서서 길따라 우측으로 조금가면 포장도 삼거리. 전면에 정비공장이 보이고 그 뒤로 4차선도로가 지나갑니다.
12:08 차리고개(수량재) 32번, 77번 국도 7.3km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돌공장옆을 지나, 지하차도를 건너 우측 고갯마루로 올라 좌측 임도로 들어서면 길옆에 키큰 활엽수들이 즐비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 점심 : 20분(후미팀만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다음부터 길이 희미한 잡목숲을 지나 표고버섯 재배장을 지납니다.
12:57 물래산(150m)
잡목숲속을 오르다가 물래산을 지납니다.작은 스테인레스 철판에다 물래산이라고 써서 나무에 매달아놨습니다.
물래산에서 우측으로 꺾여 마루금은 멀리 보이는 32번국도와 나란히 갑니다
울창한 잡목숲. 나무들이 키는 작아도 거의 활엽수들이라 가는데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그늘이 아주 시원합니다.
능선상에 있는 큰 바위에서 우측으로 내려섭니다.
하산로를 조금 내려가면 국도옆 넓은 분지에 닿고, 바로 눈앞에 32번과 77번 국도입니다.(13:33 맛바위치, 32국도, 77국도, 지하차도) 국도옆에는 고구마, 마늘 등을 파는 아주머니께 도로 횡단방법을 물으니 “모두 무단횡단합디다, 그냥 무단횡단하세요”라고 대답합니다.
무단횡단하여 시멘트길을 따라 팔봉중학교로 갑니다(13:43 팔봉중학교). 학교앞에 은행나무밑 침상에 앉아 하드와 맥주 등을 사먹고 마루금인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옵니다. 사립학교인 팔봉중학교에는 김현욱 전서울시장이 이 학교출신이라는 표판이 있습니다.
# 금북 마루금인 팔봉중학교 정문입니다
이 근처에서보는 팔봉산의 모습이 뚜렷합니다.
학교후문부터는 계속 마을 콘크리트도로를 따라갑니다. 가다가 과수원(배+사과)을 지나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큰 배를 1개씩 주어 굴포운하지까지 가면서 잘 먹었습니다(14:05). 굴포운하지에서 사진을 찍고 삼거리에서 (주)삼원조경 방향으로 들어서고 도내1리 버스정류장 사거리에 닿습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마루금은 우리가 지금 가고있는 마을도로에서 우측편에 있는 것 같은데 일대가 전부 완만한 구릉지 인데다가 밭이라 어디가 정맥능선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젖소를 키우는 삼풍목장옆을 지나 도내1리 소안말 버스주차장에 닿고 길 좌측으로 은혜감리교회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직진해서 북창네거리 버스정류장. 아담한 정류장건물 옆에서 한 농부가 들깨을 털고 있습니다.
직진해서 좌우가 넓은 밀밭인 동네 아스팔트도로를 따라갑니다. 조금은 지겹도록 가면 붉은재입니다. 왼쪽 오석산 오름길로 시그날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붉은재에서 함께 모여 휴식을 했습니다.
모두들 오늘 넘은 산들 이름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비룡산, 금강산, 장군산, 물래산, 오석산 등 이름이 다양합니다.
# 붉은재입니다.(옆은 항상 수고 많이 하시는 이창현 선봉대장입니다)
14:43 붉은재(포장도로) 15.8km
붉은재입니다. 붉은재는 과거 붉은 색의 흙이 이곳에 많아 그 이름이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마을길을 버리고 좌측의 넓은 개간지로 들어섭니다. 누가 개간하려다가 그만 두었는지 산만 파헤쳐놓고 여기저기 작은 소나무 묘목을 꼽아놨습니다.
# 오석산입니다. 서해바다가 잘 보이는 곳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습니다
15:12 오석산(168.7m) 삼각점, 산불감시초소 16.8km
개간지를 벗어나 잡목숲을 약간 숨차게 오르면 오석산에 닿습니다. 오석산에 오르다 오늘 처음으로 오석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 부부를 만났습니다. 정상엔 삼각점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 쓰레기가 쌓인 산불감시초소가 있습니다 만(彎)이 육지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어서, 능선 우측 으로 바다가 아주 가깝게 보입니다.
이번 구간은 산높이는 얼마되지 않아도 만만하게 보면 안됩니다. 오르내림이 제법 가파릅니다.
오석산을 지나 거대한 수원백씨 묘를 통과하여 작은 구릉을 3번정도 넘어 내려가면 태안읍 산후리에서 상옥리로 넘어가는 시멘트도로인 <강실고개>입니다.
#오늘의 마지막인 시멘트포장도인 강실고개입니다
15:40 강실고개(시멘트포장도로) 17.5km
강실고개에 도착하여 마루금을 마무리하고 왼쪽으로 약10분내려와 버스에 승차했습니다. 이 지방은 마늘과 생강 농사를 많이 짓는 것 같습니다(15:50 쑥말, 상옥2리).
* 굴포운하지
# 굴포운하 설명 표지판입니다
굴포(掘浦) 의 유래(由來)
굴포(掘浦)란 판개 를 말하는 것으로 운하(運河)란 뜻이다. 그러나 굴포란 판개 라거나 운하란
뜻보다는 지명이 되었으므로 굴포운하(掘浦運河)라 한다.
이 굴포운하의 개착의 필요성은 고려 재정의 기본이 되는 전채 세곡미 40만석중 개경으로 보내져야 한
는 약 30만석이 충청.전라.경상도등 삼남에서 올라오는 안흥량 관장목의 암초(800m)로 조운선이 난파
되는 절체절명의 어려움이 있어으므로 고려 제 17대 인종 12년(1134) 내시 정습명을 보내어 군정 수천
명을 동원 약 17리(7km) 정도의 인공수로를 만들어 조운에 안전을 기하려 운하의 개착공사가 시작되었
던 것이다.
그 후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공양왕 3년(1391)에 당시 실권자였던 이성계는 조운의 중요성을
인식 종실 왕강으로 당시 개착공사을 시작하였으나 다시 실패하였다.
고려조 고려말의 충정왕으로부터 공양왕까지 약 40여년간으 조운로 개착의 실패와 함깨 왜구의
약조선으로 인한 세곡미 운송 부진으로 조정의 관리들에게 녹봉은 고사하고 왕이 하루에 한끼로 때우는
결과가 되어 시회질서가 문란해지고 흉흉해지면서 나라가 쇠망했던 것이다.
조선조가 개국되면서 태조 이성계는 다시 최유경,남은 등을 파견 타당성을 조사하였다. 제 3대 태종 12
년(1412) 하륜의 발의로 개착공사는 다시 시작된다. 이는 태종 3년(1403) 34척, 태종 14년(1414)에 66척의 조운선이 안흥량에서 암초에 대파되는 일이 있었으므로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 같다.
태종 16년(1416) 2월에는 태종이 세자 충령대군(뒤에 세종)과 같이 태안에 강무장을 설치 이곳을 방문
하는데 굴포운하 공사를 직접 살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도 암반의 어려움이 있자 하륜의 건의로 5개의 저수를 만들어 일반은 개통시켰다. 그러나 옮기고
옮겨 싣는 어려움 때문에 오래기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세조 7년(1461) 신숙주의 건의로 굴착공사가 추진되어 3년간 계속된 일이 있고 제 11대 중종 16년
(1521)에 다시 타당성을 검토한 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중지되었고 제 18대 현종(1660 ~ 1674) 때에도 굴포개착이 건의된 일이 있었다.
이때 설창안이 채택되어 남쪽 태안읍 편천쪽와 북편 태안읍 도내리에 각각 20평씩 40평의 창고를 시설
안면창이라 하고 삼남에서 올라오는 세곡을 일단 남쪽 창에 내려서 육로로 북창에 옮기며 그곳에서
서울로 조운하는 방법을 택하였으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현재 뚜렷이 남아 있는 운하지는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와 태안군 인평리 경계지점에 남아 있는 약 1km정도의 옛 저수지식(갑문식) 운하지인데 이는 수에즈운하(1669)와 파나마운하(1914)보다는 약 500년이
앞서는 것이며 우리나라 거대토목공사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적지이다.
굴포운하지와 접한 팔봉면 진장리에 1416년대 굴포운하개착 당시 태안군 관아지 였던 순성지가 있다.
아래 글은 최근에 다시 운하개착을 검토하는 태안군의 발표내용을 담은 뉴스이다.
태안반도의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굴포운하 굴착공사가 500여 년만에 재개될 전망입니다. 이 운하는 고려와 조선 두 왕조에 걸쳐 공사가 진행됐지만 전체 6.8km 구간 가운데 2km를 뚫지 못해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서산방송본부에서 이인범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충남 서산과 태안의 경계를 이루는 하천입니다.
자연발생적인 하천처럼 보이지만 고려와 조선 두 왕조에 걸쳐 만들어진 굴포운하 수로의 일부입니다.
천수만과 가로림만 6.8KM를 연결하는 굴포운하는 고려 인종 때 공사를 시작해 4KM를 완성했으나 나머지 2.8KM를 뚫지 못한채 조선 세조때 중단됐습니다. 무려 330년 동안 진행된 대역사입니다.
이 운하를 파게 된 동기는 3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수송하는 세곡미 운반선이 서해바다의 높은 파도로 번번이 전복되는 사고를 막기위해서였습니다.
안면도도 원래는 육지였으나 굴포운하 수로를 내면서 떨어져 나가 섬이 됐습니다.
굴포운하가 중단된지 500여 년만에 태안군이 복원을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장경희/태안군청 문화예술담당 : 개통하지 못했던 구간을 완공함으로써 선조들이 못다 이룬 한을 풀어주고 태안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 활용 가치가 매우 크다고 봅니다.]
천수만 방조제를 허물고 배가 통행할 수 있도록 수로를 정비하는데만 2500억 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충남발전연구원이 타당성 용역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굴포운하가 완성될 경우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태안군은 제주도에 이어 한반도 내륙의 최대 섬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태안읍내로 이동하여 팔팔회수산에서 대충 씻고 회와 소주로 단합대회겸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 팔팔 회수산 :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286. (조석시장내)
김 명 숙 (673-8866. 016-685 - 2921)
회식을 마치고 고속도로를 부지런히 달려 밤 10시경 대구에 왔습니다.
비가 오고 있습니다.
<< 드디어 서해바다가 보입니다. 남은 두 구간은 넓은 바다를 보면서 그 간의 여정을 생각하며 여유있게 산행할 생각입니다>>
금북정맥에서 만난 꽃과 열매들
# 꽃 뒤로 우리가 가야 할 오석산(198m)이 보입니다. 산넘아가 서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