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금된 천재 화가 *
충무팀의 망년회를 마치고 난 이후 연말을 나는 어느 곳에도 출근 하지 않았다. 신정 연휴까지 모든 일정을 수지와 함께 보냈다. 처음으로 수지를 데리고 대전에 계시는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결혼할거라는 의향을 어머님께 알렸고 즐거워하시는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큰절을 받는 어머니는 나보다 오히려 수지를 친딸처럼 더 다독거리고 함께 하지 못한 당신의 부족함을 수지에게 부탁하는 정성을 보이셨다. 그러나 수지의 집에서 동거 한다는 이야기는 끝내 하지 못했고 연말에 결혼 할 거라는 약속만 드리는 걸로 고향집을 떠나서 수지와 함께 강원도와 그리고 설악산의 절경을 구경하는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신정 연휴가 끝나고 충무 팀의 시무식조차 나는 쌍식이 형님께 미루었다. 모든 걸 수용한 쌍식이 형님은 영업을 위한 새로운 직원을 뽑는 것만은 내가 해 주어야 한다는 부탁을 하였고 나는 사무실 직원에게 영업 사원의 구직 공모를 하도록 지시 했다. 이력서가 쌓여 있을 것 같은 1월의 중순에 나는 처음으로 충무팀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역시 쌍식이 형님은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아따.... 니 얼굴 보기가 뭔 대통령 보기보다 더 힘들다이. 그래도 노태우는 T.V 보믄 얼굴이라도 본디... 니는 어찌께 된것이 그라고 잠수를 타브냐?”
“예. 형님 저도 긴장감이 풀리니까..... 좀 푹- 쉬었습니다. 고향에 어머님도 좀 뵙고....”
“그래 잘 했다. 사람이 쉴 때는 쉬어야제. 지금 이력서가 무쟈게 쌓여 있다. 한번 훑어보고 영업 사원은 아무래도 니가 심사를 좀 해 줘야 쓰겄다.”
“예. 형님 이것 까지는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쉬면서 생각 해 봤는데..... 형님 충무팀 현장 직원을 더 뽑아야 할 것 같아요.”
“뭐할라고? 지금이 딱 좋다.”
“그렇긴 한데.... 현장 여직원이 없잖아요. 여자 연예인들이나 여성 고객을 위해서 필요 할것 같아서요. 무술 유단자 출신 여자들이 있는지 어떤지는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그렇다이... 근디.... 여성 경호..... 이것이 가능 하까? 그란디 운동 하는 가수나들이 없는건 아니다. 많이 있긴 있다..... 유도대학 가본께..... 있긴 있는디...... 그것들이 대가리가 훈련 시키믄 적응을 할랑가 모르겄네... 전번에 이야기 안하데? 칼 아니고 각목이나 파이프는 피하지 말고 몸으로 막아야 하고 칼이라도 얼굴만 아니믄 몸으로 막을 때는 몸으로 막아야 한디..... 그랑께 훈련 할때는 온몸이 멍들고 그라는디... 대가리가 아그들 반 죽여븐다. 여그서 월급주고 멕여주고 숙소 제공 하고 한께.... 아그들이 기(氣)가 안죽고 훈련을 해서 그라제... 그란디 가수나들이 버틸랑가 모르겄네. 일단 알았다. 그것은 내가 몇 명 채용을 할란다.”
“예. 형님 꼭 뽑으셔야 합니다. 그건 형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고....”
“제가 영업 사원은 괜찮은 애들로 뽑아 보겠습니다. 일단 서류심사부터 하고 오늘 통보해서 낼 부터라도 면접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직원이 뽑히면 일주일 정도 제가 교육을 직접 시키고 그리고 완전한 영업팀이 구성 되면 그때부터 내 일을 시작 하겠습니다.”
“그래 주라. 그것 까지만 니가 해주믄..... 그 담 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란다. 그라고 왔응께 제주도 땅 이야기도 마무리 해블자.”
“아- 형님 좋은 땅이 있습니까?”
“대가리 친구가 거그서 부동산을 하는디..... 서울놈들 한티 넘어 갈라는 것을 지금 하나 잡아 놨다. 서귀포쪽인디...... 지금은 개발이 안되어 있는디..... 무조건 사야 쓰것드라. 지금은 제주 사람들이 어리숙 해가꼬 그동네는 돈이 안될것 같아 보인다는디..... 거그는 내가 본께 사가꼬 개발을 안해블믄 돈 되겄드라. 어차피 투기 목적이 아니고 거서 살것 같으믄 뭐할라고 개발 한데? 그 좋은 경관 그대로 두고 살믄 되제.”
“바닷가 입니까?”
“그라제..... 바로 갯가드라. 맘 묵어블믄 쪽배 하나 달아 놨다가 아침에 나가서 하루 종일 낚시해도 쓰겄드라...... 근디.... 우상아이...... 그것이 좀 평수가 넓은 것이 흠이드라.”
“몇 평인데요.
“만 칠천 평”
“그 부동산 업자 서울로 불러 올릴수 있습니까? 자료도 좀 가져 오고.....”
“내가 부르믄 오기는 올것인디...... 그래도 땅은 한번 봐야제..... 안보고 살래?”
“그런 평수 잡기도 쉽지 않을 건데...... 그리고 형님이 좋다고 하셨으니까 가격만 적당 하면 매입을 하겠습니다.”
“내가 땅을 보고 나서.... 부동산 업자 한티 그랬다. ‘느그들 받을 가격만 받아라. 괜히 나랑 대가리 눈텡이 볼라 그라믄 느그는 모가지를 내놓고 하는것이 좋을것이다’ 그랬드만..... 그놈들 하는 소리가.....‘말 잘못 해가꼬 혓바닥 뺀찌로 물릴일 있소?’ 그라드라. 그놈들도 내 소문은 들어서 아는 갑드라. 그랑께 사도 그렇게 속고 사지는 않을 것이다. 그라고 만약에 장난 했다 그라믄 나보다 대가리가 그놈들 죽여 블것이다. 대가리가 요새 우상이 니를 나보다 더 좋아라 한디...... 그놈은 예전부터 일편단심 아니냐..... 지가 좋아 하믄 죽을때 까지 가는놈인께......”
“계약 하겠다고 그 친구들 서울로 좀 불러 주세요. 아무래도 형님과 같이 계약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알았다. 내가 눈치를 본께 니가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도 그렇게 많지 않을것 같고 한께 영업 사원 면접 보면서 사람 뽑을 때 왔다 가라고 그래야 할랑갑다.”
“예. 그렇게 해 주세요.”
나는 그날 오후를 영업사원을 뽑기 위한 서류 심사로 다 보냈다. 그리고 4명을 뽑는 영업사원의 면접을 20명으로 확정 하여 당사자들에게 통보토록 하였다. 1988년의 중요한 일정 때문에 마음이 급한 탓 인지 모든걸 일사천리로 진행 시켰다. 나는 700호실로 복귀하는 게 급선무 였다. 일을 할 때도 몽유도원도의 비디오테이프가 눈앞에 어른거리곤 했다. 나는 영업사원의 교육까지 그해 1월에 모든걸 마무리 했고, 제주도의 땅은 수지 이름으로 계약을 했고 최종 등기까지 수지 앞으로 해 두었다. 그리고 충무팀이 운영 할 수 있는 자금을 제외하고 모든 자금을 별도로 빼서 전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땅도 그렇고 자금 역시 언제든지 기삼이가 필요 하면 돌려 줄 수 있게 차명으로 관리 했다. 영업사원을 체용한 회사의 방침은 주효 했다. 의외로 대기업의 회장들의 경호를 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숙식까지 대기업의 사주와 같이 하는 경우가 발생 했고 사무실은 그들을 위해 또 다른 업무를 지원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그러나 그런 일체의 일에 나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았고 더러 식사를 함께 하는 쌍식이 형님도 더 이상 나에게 부탁을 하거나 부담을 주는 경우는 없었다. 쌍식이 형님은 그만의 특별한 노하우로 직원과 회사를 잘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사장으로서의 대우를 잊지 않았고 쌍식이 형님은 항상 든든한 나의 동반자 였다. 2월의 첫날부터 나는 700호실에 출근을 시작 했다. 출근 하는 첫날부터 나는 하루 종일 몽유도원도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걸로 소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디오를 보며 방법을 연구 했고, 그전에 모아 두었던 몽유도원도의 자료를 수없이 반복해서 읽어 보았다. 그러던 2월의 중순에 일본의 덴리대학 박물관 관장으로부터 한통의 편지가 왔다. 나는 한 중사를 시켜 그 편지를 번역 하도록 지시 했다. 그 내용은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반가운 소식 이였다.
안 우상씨 귀하.
먼저 귀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전번에 고 미술전 전시회를 관람하러온 귀하의 친구를 통하여 전달 받은 한 폭의 산수화는 잘 받았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 그림을 그리신 분이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그 그림을 그리신 분이 나이가 40대 라면 그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귀한 분 일 걸로 생각 합니다. 이번에 준 그림과 전번에 받은 그림은 제가 감당하기 힘든 작품 이므로 저희 대학의 현대미술전이 열릴 때 한국인의 이름으로 전시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디 그분의 고명한 존함을 알려 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희 대학에 소장 되어 있는 모든 한국 고미술품 일부가 올해 8월에 모두 한국에서 전시되는 일정이 잡혀져 있어 귀하께 알려 드립니다. 한국 중앙 박물관의 요청에 의거, 9일 동안 전시회를 가지게 됩니다. 제가 듣기로는 프랑스와 영국에 소장된 일부 미술품과 함께 저희가 소장한 한국의 고미술품이 함께 전시 된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귀하가 관심을 가졌던 ‘朝鮮/夢遊桃園圖/1447年’을 포함한 모든 한국 고 미술품 과 다른 작품이 함께 전시가 될 것 입니다. 부디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신 2점의 산수화를 그렸던 분의 존함을 꼭 알려 주시기를 소원 합니다. 특별히 그분이 일본에 오는 기회가 된다면 일본 어디든지 제가 뵐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저 개인으로는 큰 영광 이라 하겠습니다. 그분께 저의 이런 관심을 꼭 전달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건강 하시고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께오 가쓰오 드림.
글 자체는 나에 대한 친절을 이야기 하는듯 하였지만 역시 우석이의 작품성과 그리고 우석이를 만나고 싶은 박물관장 다께오 가쓰오의 내면적 욕심이 보이는 글 같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8월에 무려 9일 동안 한국에서 몽유도원도가 전시 된다는 정보 였다. 이제 그림이 한국으로 온다는 사실 자체는 확실해 진것 같았다. 나는 이제 이 모든 사실을 두고 세부적인 계획을 짜야만 했다. 마음이 급해 지기 시작 했다. 머릿속은 둔기로 얻어맞은 듯 하얗게 몽롱하기만 했다. 과연 무얼 준비 하고 무얼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과연 이럴 때 기삼이 같으면 어떻게 대체를 할까. 나는 다시 한 번 비디오테이프를 처음부터 돌려서 다시 보기 시작 했다. 볼수록 몽유도원도의 그림은 수려했다. 마치 천상에도 비가 내리는 듯 비단결을 최대한 살린 그림이다. 마치 그림 위에 전체적으로 니스를 발라 놓은듯한 그림에 짙지 않는 복숭아나무의 표현은 돋보기로 확대해서 본다면 그 숲속에 들어간 느낌을 받을 것 같았다. 기암괴석을 그린 윗부분도 그게 벼랑 끝을 묘사한 것인지 아니면 구름을 표현한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현란하게 그려져 있었다. 기암괴석을 가까이서 보면 하나같이 동물의 형상들이기도 했고 사람의 얼굴 같기도 했다. 몽유도원도는 가까이서 봤을 때와 좀 떨어져서 봤을 때의 느낌부터가 달랐다. 가까이서 볼 때면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각기 그들의 앞발을 들어 앞에 있는 다른 종류의 짐승의 등에 올려놓은 듯한 형상이기도 했고 시야를 좀 멀리 두면 아름다운 절벽과 그리고 일반 산들과 다른 형태의 깊은 산중의 원초적 기괴함이 있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있지만 그런 고민은 그림을 볼때 마다 그 그림 속으로 빠져드는 감상에 젖을 뿐 이였다.
나는 담배를 하나 물고 한 중사를 시켜 기삼이를 전화로 연결하게 했다. 잠시 후 돌아온 한 중사는 기삼이가 직접 사무실로 오겠다는 말만 하고 다른 말이 없었다고 한다. 나와 똑같은 고민을 그는 하고 있는지 몰랐다. 내가 봐온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비디오테이프를 보는데 시간을 투자 하고, 연구 하고 그리고 그는 어떤 결론을 들고 오는지도 몰랐다. 그가 사무실에 도착하여 내 방에 들어 온 것은 내가 비디오테이프를 한 번 더 되돌려서 보고 있을 때였다.
“어때? 그림 좋지?”
“그래. 앉아라. 수십 번을 봤지만.... 그래도 자꾸 봐지는 그림이다.”
한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소파로 다가와 소파가 꺼지도록 덥석 주저앉았다.
“당연하지. 저 그림이 동양화의 기초가 된 그림 이라고 하니까..... 뭐 좀 건진 건 있냐?”
“그림에서 건진 건 없고 일본에서 연락이 왔는데 올림픽 개막 전인 8월에 9일 동안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할 거라고 연락이 왔다. 9일 동안만.”
“9일 이든 10일 이든 단 하루만 있다 해고 그건 상관없다. 이 땅에 왔으면 된 거다.”
“우석이는 어떻게 됐냐? 아직도 잡혀 있는 거야?”
“그 새끼... 감금은 시켰지만 감방이 아니고 호텔에 있다. 오늘부터......”
“호텔?”
“그래.... 지금 부터는 오히려 우리가 그놈한테 사정을 해야 할 판이다. 몇 달 고생한 만큼 푹 쉬면서 그림만 그릴 수 있게 좋은 호텔에서 대기 하도록 했다. 개새끼.... 만약 그림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죽여 버릴 거다. 그 호텔방에 출입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와 나 뿐이다. 수시로 들러서 그림이 완성 되는 상황을 확인해라. 우상이 너 아니면 감시할 사람도 없다. 그리고 충무 팀에서 2인1조로 4명만 차출(差出)해서 24시간 감시 하게 해라. 그놈이 필요하다는 건 뭐든지 지원해 주고. 물론 이런 사실은 비밀로 해야 한다.”
평소와 다르게 비장감이 보였다. 그의 눈빛은 사냥감을 위해 활시위를 당기고 목표물이 목의 급소를 보이여 돌아서기를 기다리는 포획자의 눈빛, 그 자체 였다.
“....... 도망 갈수 있는 여지도 있나?”
“....... 있지. 죽기를 각오 한다면... 그러나 성공 했을 때 그에게 돌아가는 인센티브를 생각 한다면 쉽게 도망가지는 않을 거다. 미국에 보내 주는 것과 그리고 미국에서 생활 할 수 있는 정착금 까지 준다고 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심리는 알수 없으니까 돌발 상황이 발생 했을 때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충무 팀을 붙이라는 거야. 그래도 어떤 사고가 난다면 그건 죽음 밖에 없다. 또 그래서 네 역할이 크다. 오늘밤부터 한번 만나 봐라.”
“테이프는 우석이가 봤냐?”
“아직 안보여 주었다. 그림이나 음악을 하는 그런 놈 들은 작품과 연관 지어 심리적인 다른 관념을 떠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보여 주지 않았다. 만약 성공할 것을 전제로 다른 요구 사항을 이야기 하거든 나에게 보고해라. 다시 감방에 두 달 정도 쳐 넣어 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여기 있는 테이프를 가져다 줘라. 그리고 우리 집안의 내력을 빼고는 모든 걸 문화유산의 회수에 목적이 있다고 설명하고 국가적으로 얼마나 이 그림이 필요한지를 좀 장황하게 설명 하고 그래서 성공 했을 경우 그에 대한 보답이 있을 거라고만 설명해라. 잊지 말고 꼭 전해야 할 말은...... 만약 모작을 만들어 내는 자체가 실패 한다면 미국이고 나발이고 없다고 전해라. 그럴 경우가 생기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꼭..... ”
“알았다. 오늘밤에 만나보고 꼭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게 해 보마.”
“그리고 특별히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는데.....”
“특별한 일?”
“그래. 우석이 그놈을 보름 단위로 호텔을 옮겨야 한다. 한곳에 몇 달을 틀어 박혀 그림만 그린다는 것도 너무 튀는 행동이니까...... 그리고 절대 싸구려 여관 같은데 재워서도 안 되고.... 충무팀에서 감시 하는 친구들 역시 우석이 옆방에 투숙하게 하고 호텔경비나 우석이가 필요한 모든 경비를 우상이 네가 직접 지불해라. 주의할 점은 절대 수표나 카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영수증도 필요 없고...... 항상 현금으로 결제를 해라.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계속 방안에만 가둬 둬야 하냐?”
“아냐. 그럴 필요는 없다. 호텔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 정도는 괜찮다. 그리고 만약에 필요한 재료 같은걸 사야 할 때는 네가 함께 가면 된다. 호텔 안에서 돌아다닐 때는 충무팀 애들한테 맡기면 되고 만약 혼자 밖으로 나갈 때는 너에게 즉시 보고 되게 해야 한다. 아마 한번 정도 실수는 할 건데……. 그때는 내가 알아서 하마.”
“현금도 어느 정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도 호텔 안에서 라도....”
“그럴 필요 없다. 호텔을 예약 하면 카드를 달라고 할 거다. 그리고 미리 액수를 제외한 빈 용지를 만들어 두고 나갈 때 한꺼번에 계산 한다. 그러니까 호텔 내에서 이용하는 건 식당이든 다른 어떤 시설물을 이용하든 방 번호만 적고 싸인 하면 된다. 그리고 호텔비 계산 하는 마지막 날 현금으로 계산 하고 그 카드 용지는 회수 하면 된다. 필요해서 달라고 그러면 용도를 물어 보고 네가 결정해라. 그래도 많이 주는 건 금물이다.”
“알았다. 오늘부터 당장 충무팀을 붙여서 감시 하도록 지시 하마.”
“아- 그리고.... 충무팀 애들... 이번에는 사복으로 근무 하게 해라. 검은 양복... 그거 입혀서 보내면... 눈치 챌 수 있으니까. 지금 충무팀 애들 일 할수 있게 김우석이 옆방을 잡아 뒀다. 오늘 당장 애들 차출 되면 그곳에서 생활 할수 있게 해라. ”
“그래 알았다. 다른 일은 없고 그것 때문에 왔지?”
“네놈 얼굴도 보고 싶었고.....ㅎㅎㅎ”
할 말이 끝났는지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들고 왔던 서류 봉투를 나에게 주었다.
“이건.... 차량 설계 도면이다. 쌍식이 한테 이야기해서 탑차 몇대 구입 하라고 그래라... 그리고 이 도면처럼 개조를 시켜서 대기 하라고 지시 해 놔라. 실제로 충무팀은 사람만 경호 하는 게 아니고 공항으로 들어오는 귀중한 보물들을 경호해야 할지 모르니까......”
나는 서류를 받아서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러나 기삼이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지금 볼거 없다. 그렇게 중요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쌍식이 한테 꼭 그렇게 개조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
“그래 알았다.”
“그차..... 많이 필요 할거다. 외국에서 온 아티스트들..... 그런 애들 악기는 하나같이 고가(高價)거든.... 그런걸 수송 할 때라든지, 아니면 지금 다른 귀중한 물품들 호송 할 때 꼭 필요 할 테니까.....”
“기삼아. 이제..... 널 보면 무섭다.”
“왜?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한데?”
“그건 아니지만..... 난 몇날 몇일을 고민하는걸...... 넌 한순간에 해결을 해 주곤 하니까...널 보면 무력감도 생기고.....”
“ㅎㅎㅎ 사람이 인복(人福)이 있어야 한다 잖아..... 넌 인복이 있거든.... 날 만나서..... 근데.... 나도 널 만나서 인복이 있다고 봐야지..... 너하고 나는 상생우복(相生友福) 이라고 했잖아.....우리 스승님 불명각 께서.... 내가 이런 일을 누구한테 함부로 이야기 하겠냐. 너나 되니까 이렇게 이야기 하지......”
“오늘도 여전히 바쁘냐?”
“그래..... 올림픽 끝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오랜만에 왔는데...... 같이 식사나 하자.”
“그것도 올림픽 끝나면..... ㅎㅎㅎ ”
기삼이는 필생의 목표를 몽유도원도의 회수에 두고 있는듯 했다. 식사마저도 올림픽이 끝나면 하자고 농담처럼 이야기 했다. 그는 이미 어떤 일에 대한 큰 모자이크 도면을 완성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걸 절묘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한조각씩 끼워 넣고 그리고 그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몇 년을 두고 세운 그런 계획에 나는 그의 천재성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항상 그렇듯 그는 나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졌다. 나는 기삼이가 주었던 서류 봉투와 그리고 비디오에 꼽혀 있던 테이프를 빼서 또 다른 봉투에 넣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쌍식이 형님이 있는 충무팀 사무실로 갔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따... 우상아이.... 뭔일이냐?”
“형님이 보고 싶어서.ㅎㅎㅎ....”
“뭣이여?.... 내가 보고 싶었다고? 나는 말이여.... 니만 보믄 낮술이 생각 나브러.... 안 그래도 체질에도 안 맞는 서류들 쳐다보고 있을랑께 눈깔이 다 튀어 나올락 한다. 나가자 가서 한잔함서 이야기 하자.”
“뭘 사주실 랍니까?”
“뭐가 묵고 잡냐? 나도 인자 이 동네 있음서 식당 개발(開發)을 많이 해 놨다. 입맛 땡긴 데로 암거나 이야기 해 브러라이.”
“근처에 홍어 파는데도 있어요? 형님 보니까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나네요.”
“있제.... 전라도 사람이 하는 쌍과부집 이라고 있다....... 여그서 쫌만 가믄 좋은데 있다...... 거그 가블믄 또 내가 그 식당 유지 아니냐. 언니하고 동생하고 둘이서 장사를 하고 있는디 교통사고가 나가꼬 즈그 형부 하고 남편이 같이 가브렀다. 그랑께 제삿날이 한날이제..... 그 보상금 받아 가꼬 장사를 한다는디...... 심없는 여자 둘이 장사를 한께 양아치 새끼들이 많이 성가시게 한다고 그래서 내가 한날 대가리 보내가꼬 정리를 해 줘브렀다. 거지새끼들이 대가리가 웃짱 벗어븐께 문신만 보고 다 토껴브렀다 그라드라. 그래가꼬 내가 가믄 전라도 큰오빠 왔다고 아조 죽고 못 산다. 거그 가자.”
“김 부장이 이 동네 교통정리도 하고 다닙니까?”
“같은 유제(이웃에) 산께.... 좀 도와주고 그라제. 그라고 니 알다시피 내가 워낙에 그런 양아치 새끼들을 싫어 하잖냐. 내가 젤로 싫어 하는게 힘없는 영감이나 여자들 패는거 아니냐. 인자 그 집은 언놈이 삥 뜯으러 오고 그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라고 대가리도 글코 나도 글코 가끔 시발낙지 먹고 싶고 하믄 한 번씩 가주고 한께....”
쌍식이 형님과 걸어서 쌍과부집 이라는 홍어와 낙지를 파는 집으로 갔다. 입구에서부터 쌍식이 형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항상 그렇듯 술집 같은 곳에 쌍식이 형님과 다닐 때는 언제나 남들보다 좀 특별한 대우를 받았지만 식당에서 이렇듯 쌍식이 형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엄마야... 큰 오빠 왔소? 으째 전화도 안하고 그냥 와브요? 낮에는 홍어 손볼라믄 시간이 좀 걸린디....돼지고기 수육을 삶아야 한께 그라요... 음마 우째사 쓰끄나이....”
“천천히 해라. 바쁠것도 없는디.”
“그라믄 앉아 있어 보쇼이. 내가 일단 낙지 몇 마리 짤라가꼬 오께..... 오빠 연포 끼리까?”
“아- 끼려야제. 서울 천지에 연포탕 해주는 집구석이 여그말고 어디가 있겄냐.”
“오빠가 몰라서 그란디.... 인자 서울 사람들도 연포탕을 몇 번 묵어보드만 소문 듣고 많이들 오요. 소주는 냉장고에 있응께 큰 오빠 알아서 갇다 묵으쇼이.”
“소주 네 병만 갇다 주고 가그라.... 그라고 인자 성가시게 한 놈들은 없냐?”
“인자 없제.... 한번은 뭔 머시마들이 몇 명 와가꼬 홍어를 묵음서 대가리 오빠 하고 우쭈꼬 되는 사이인가 물어 봅디다. 그래서 내가 대가리인지 마빡인지는 모르겄고 쌍식이 오빠가 사촌오빠라 그랑께..... 그라냐고 그람서 다 묵고 술값 계산 하고 걍 가븝디다. 내가 본께.... 이왕에 팔아먹을라믄 큰 오빠를 팔아 묵어야 뒤탈이 없을 것 같애가꼬 그라고 이야기 해브렀소.”
“ㅎㅎㅎ 아그야.... 쌍식이~ 쌍식이~ 하지 마라이.... 걍 오빠 그라믄 되제.... 왜 니 까지 쌍식이~ 쌍식이~ 해 쌌냐?”
“발음이 존께 그라제....”
“니미 씨벌..... 발음이 좋아서 그렇게 부른단 소리는 또 첨이네...ㅎㅎㅎ 소주하고 그라고 스끼다시나 먼저 내 온나.”
“낙지랑 같이 짤라가꼬 오께.... 쫌만 기다리고 있으쇼이.”
식당 주인은 수더분하고 착하게 생겼었다. 쌍과부집 이라는 간판과 어울리게 비슷하게 생긴 다른 여자는 주방에서 우리를 쳐다보며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 주방에 있는 여자는 분명 동생 이거나 언니가 분명 했다. 밑반찬이 나오게 전에 나는 기삼이 에게 받은 봉투를 건네주었다.
“이것이 뭣이여?”
“차량 설계 도면인데.... 충무팀에 필요 할것 같아서 준비 하시라고 드립니다.”
“우리가 뭔 탑차가 필요 하겄냐? 인원이 늘어서 승합차는 필요한디....”
“경호 업무가 꼭 사람만 하는건 아니거든요. 공항에서 금괴를 한국은행에 가져다 줄때도 이런 차가 필요 하고, 그리고 연예인들 비싼 악기 같은 거는 소홀히 할 수 없으니까 그런걸 운발할 때 사용 할수 있게 미리 준비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뭔 그런 일거리도 생기겄냐?”
“영업 직원들 교육을 시키면 못 할 것도 없죠. 은행에서 은행으로 옮기는 현금 수송도 이런 차에 해야 하고 두루두루 쓸 일이 생길 겁니다. 가능한 빨리 제작해서 준비 시켜 주었으면 합니다.”
“그라믄 그라제..... 니가 여그까지 올때는 뻘로 그냥 올놈이 아니제. 참말로 존경 시럽다. 니가 이라고 도와준께 사업이 되제..... 멍청하게 담배나 핌서 서류만 보라코 있으믄 뭔 장사가 되겄냐? 근디.... 그런 일거리를 벌써 잡아 놓고 그란거 아니냐? 니 하는 폼이 그란거 같다.”
“예. 그런 일이 생길 것 같네요. 형님도 낼 영업직원들 불러서 그런 방향의 경호 업무도 가능 하다고 영업을 하도록 지시를 하십시오. 아마 틀림없이 좋은 일거리가 생길 겁니다.”
“알았다이.... 내가 잘 설명을 해가꼬.... 진짜로 서울시내 은행에 돈 관리 하는 일을 다 잡아 묵어브러야 쓰겄다..... 우상이 니도 천재여이..... 어찌께 그런 멋진 생각을 해브렀냐?”
나에 대한 칭찬은 결국 기삼이의 칭찬과 같았다. 내가 천재가 아니고 그놈이 천재임이 틀림없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현금이송 업무를 독식 할 수 있는 사업 구상 이였다. 은행에서 현금 수송만을 전담하는 부서를 둘 수는 없었다. 영업사원들의 영업 역량에 따라서 충무팀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모든 현금 수송이나 귀중품을 옮기는 업무를 독식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러는 사이 식당 여주인은 큰 쟁반에 여러 가지 음식을 들고 우리가 앉아 있는 상위에 펼쳐 두면서 이야기 했다.
“오빠.... 이것이 뭔지 아요? 감태여. 감태. 서울 사람들은 구경도 못하는 감태랑께.”
“와따..... 이 귀한 감태를 어서 났냐? 우상아이 이거 한번 묵어 봐라이. 이것이 파래나 미역 종류인디 매생이나 감태는 전라도 아니믄 구경도 못하는 것이다. 아야... 이것은 참기름 하고 마늘을 사정없이 넣어 브러야 맛이 나는디. 이것을 술안주로 묵기는 아깝다이. 나중에 밥 먹을때 묵어야 쓴디...”
“엊그제 고향 갔다 옴서 사가꼬 왔소. 참기름 하고 마늘 많이 넣었응께 묵을만 할것이요. 이것은 내 놔서 묵겄다 싶은 사람들은 내가 쪼끔씩 내놓는디 서울 사람들은 줘도 안먹은께 주도 안하요. 이것도 묵어 본 사람들이 묵제... 오빠 같은 사람은 착 보믄 환장 한께 내가 내 놓제. 좀 있다 식사 한다 그라믄 또 줄랑께 많이 먹으쇼. 여수에서 갓김치도 왔는디..... 그것이 아직 덜 삭아가꼬 아직 상에 안올리요. 그래도 오빠가 묵겄다 그라믄 한포기 썰어블고.”
“아야.... 가꼬 와야제. 칼질 하지 말고 그냥 대가리만 끊어 내고 가꼬 온나.”
“그라믄 연포 끼려가꼬 옴서 같이 가꼬 오께라이. 그란디 아직 덜 삭었느디....”
남도의 음식은 다른 지방과 다른 각별한 맛이 있었다. 기후의 특성이 다른 까닭도 있겠지만 그쪽 지방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정성이 있었다. 여수에서 왔다는 갓김치만 해도 그렇다. 김치가 익기 전에는 상에 올리지 않았고, 다른 지방에서 나지 않는 감태라는 특산물도 맛이야 어떻든 그들만의 음식으로 정착 시켜 즐겨 먹고 있는 것 이였다. 감태라는 반찬은 지나치게 참기름과 마늘을 많이 넣은 것 같았지만 치아가 없는 사람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묘한 맛이 있었다.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점심 한 끼 정도는 살아가기 위한 어떤 요식 행위요 허기를 달래는 정도의 본능이지만 남도 사람에게 있어 점심, 그리고 여타의 식생활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들만의 즐거움이요 여유로움 이였다.
“한잔 하자이. 안 그래도 요새는 밤에 대가리하고 둘이서 한잔씩 한다. 가끔씩 후배들이 찿아 오기는 한디.... 그냥 식사함서 한잔씩 하고 많이는 안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평일, 일요일이 없어 논께 ...... ”
나는 내 앞에 있는 소주병을 따서 내가 내 잔에 술을 부어 잔을 공중에 들어서 건배의 흉내만을 내고 한잔 모두를 입에 털어 넣고 마셨다. 그리고 술을 마시기 전에 업무적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석이의 경호 문제 였다. 경호가 아닌 일종의 감시 업무 였다.
“형님. 낼부터 몇 달 동안 충무팀 직원 4명을 쓸 일이 생겼습니다.”
“손님이 누군디?”
“형님 잘 아는 사람.”
“누군디?”
“김. 우. 석!”
“환쟁이 우석이 말이냐?”
“예. 그 사람 맞습니다.”
“허허....그놈도 경호가 필요 하냐? 뭔 소린가 모르겄네....”
“김우석이가 안기부 끌려가서 몇 달 고생하고 나왔습니다. 그림과 관련해서 모작을 부탁 했는데.... 혹시 도망갈지 몰라서.... 경호가 아닌 감시가 필요해서요.”
“전번에 말한 그 안평대군 그림..... 그걸 찍어 낼라고 그라냐?”
“맞습니다. 근데.... 우석이가 입이 가벼워서 어디 가서 함부로 씨부리고 다닐지 몰라서 그곳에 끌려가서 교육을 좀 받고 나왔는데.... 그것조차도 불안해서 행동반경을 호텔로 한정 시켜 두었습니다. 작업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감시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2인1조로 4명 정도가 교대로 하면 좋겠는데..... 이건 회사 차원이 아니고 제 개인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 일을 니한테 물어 보지는 않았는디..... 나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뭘 도와주기는 해야 겄는디..... 뭘 어째야 할지 몰라서 니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인자 시동이 걸렸는 모양인디.... 내가 키 작은놈 네놈 골라서 내가 직접 교육 시켜가꼬 보내 주께.”
“예 그렇게 해 주시고 그 네 사람은 우석이와 같은 호텔의 옆방에서 파견 근무 하면서 24시간 밀착 감시를 했으면 좋겠는데......근데 키가 특별히 작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우석이가 키가 작은 편은 아닌디.....우리 직원들이 등치가 좀 큰 편이 돼서..... 눈에 띠어가꼬 감시 하는걸 티를 내믄 안될것 같은께 하는 소리다. 어깨가 좀 좁고 얇씰 한놈으로 내가 골라 봐야 쓰겄다. 근디 직원들 아조 옆방에 같이 재워 블라고 그라냐?”
“예. 그래서 4명이 돌아가면서 24시간 밀착 감시를 시킬 려고요.”
“그랄거 뭐 있데.... 그놈 방에 카메라 한 대 설치 해블믄 되제.”
“그것도 가능 합니까?”
“나도 잘은 모르는디..... 세운상가나 낙원상가에 가믄 그런것이 있다 그라드라. 우리가 인자 그런 장비도 필요하믄 있기는 있어야 쓴께..... 알아보고 있으믄 구입을 해블자. 엊그제 대가리 친구들이 와가꼬 그런 이야기 하는걸 내가 들은 것 같다. 일산(日産)이라 비싸다 그라든디....”
“한번 알아봐 주십시오.”
“그라믄 직원은 언제부터 쓸래?”
“오늘부터 바로 근무를 시킬야 할거 같습니다. 저도 아직 김우석이를 만나 보지는 않았습니다. 직원들 뽑아 지면 데리고 가겠습니다.”
“오늘 당장?”
“예.”
“알았다. 그라믄 여그서 술 한 잔하고 사무실로 올라가자.”
“그리고 검정 양복 말고 사복으로 바꿔 입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알겄다. 여가 앙거 있어 봐라이. 내가 대가리하고 통화 한번 해야 쓰겄다. 삐삐한번 치고 오께 여가 있거라이.”
쌍식이 형님은 식당의 계산대 앞으로 가서 김 부장에게 삐삐를 쳤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담배를 피우며 김 부장의 전화를 기다렸다. 쌍식이 형님의 수족답게 역시 김 부장의 연락은 빨랐다. 그걸 알고 있는 쌍식이 형님은 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쌍식이 형님은 김 부장과 오랫동안 통화를 계속 했고 쌍식이 형님이 전화를 하는 동안 식당 주인은 암모니아 냄새가 독하게 나는 홍어를 맛깔스럽게 잘라서 접시에 담아 왔다. 여전히 나는 그 냄새가 독했다. 홍어 한점을 들어 초장을 찍어서 잘 익은 김치와 그리고 돼지고기 수육위에 올려서 한입 먹어 봤다. 역시 홍어삼합은 그 나름대로의 특별한 맛이 있었다. 나는 이 홍어삼합을 막걸리와 함께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 맛을 음미 하고 있을 때 쌍식이 형님이 자리로 돌아 왔다.
“여그서 밥 먹고 사무실 올라 가믄 올 것이다. 그라고 장비는 구할 수 있다 그란께 오늘은 안되고 낼이라도 몰래 우석이 방에 설치를 해야 할랑갑다. 우리도 첨 써보는 장비가 되논께 사무실 가꼬 와가꼬 실험을 한번 해보고 그라고 설치를 해 줄랑께 그렇게 알아라이. 내가 안평대군의 그림 이야기를 언제 한번 물어 볼락 그랬는디.... 인자 시작 하는 모양 이그만....”
“예. 도움이 필요 하면 언제든지 형님께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야제..... 홍어 한점 했어?... ”
“예. 형님 근데..... 이거는 막걸리하고 마시는거 아닙니까?”
“맞어. 홍어 하고는 탁주가 어울리제. 근디..... 서울 막걸리는 ... 뭔 화공약품 냄새가 겁나게 나가꼬 못쓰것드라.... 누룩을 넣어서 막걸리를 빗어 내야 쓴디.... 그라고 낮에 마실 때는 소주하고 묵어야제.... 막걸리 먹어서 될 일이 아니다. 씨바꺼 객지에 나온께 음식도 걍 대충대충 묵고 그란다. 다른건 몰라도 음식은 구색을 갖챠가꼬 먹어야 쓴디....”
쌍식이 형님의 음식에 대한 철학은 여전했다. 그리고 암모니아 냄새가 독한 홍어를 돼지고기 수육이나 김치에 싸지 않고 초장만을 찍어서 소주와 함께 먹었다. 평생을 살면서 내가 딱히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삼이와 그리고 쌍식이 형님 이였다. 그 두 사람은 매사에 거침이 없었고 무엇이든 시원스럽게 해결하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우상이가 건네준 어려운 숙제들을 쌍식이 형님을 통해서 해결 하였고 쌍식이 형님은 그런 날 친동생처럼 잘 도와주었다. 식당 주인이 연포탕과 밥을 내 왔고 오랜만에 먹어본 연포탕은 여전히 그 맛이 좋았다. 운동하는 사람들의 식성은 참 좋았다. 홍어에 소주를 두병이나 마신 쌍식이 형님은 연포탕과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자 가보자. 아그들 기다리것다.”
“벌써 왔을까요?”
“우리 아그들이 기동력이 생명 아니냐. 와 있을 것이다.”
식당 주인은 계산하는 쌍식이 형님 에게 ‘오빠한티는 물값은 안받을라.’ 그랬다. 쌍식이 형님은 웃으며 ‘그랄래?’ 하고 말았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사무실로 걸어가면서 물어보았다.
“형님. 물값은 안 받는단 이야기가 무슨 소리 입니까?”
“전번에도 그라드만...... 같은 고향 산다고 소주 값은 안 받는다 그말인디..... 자주 오라는 소리제. 소주 값 그거 몇 푼 하겄냐? 그렇게 하고 싶다 그랑께 못 이기는 척 하고 그렇게 하는것이제. 그란디 직원들 하고 왕수로 가믄 그때는 돈 줘야제..... 직원들이 워낙 퍼묵어 븐께 그때는 물 값이 아니고 진짜 소주 값 되야블제....”
쌍식이 형님의 이야기는 맞았다.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언제 왔는지 건장한 청년 네 사람이 사복 차림으로 대기 하고 있었고 사장실 안에는 김 부장이 담배를 피우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쌍식이 형님을 향하여 한마디 했다.
“성님은 이 순간에 배신을 때려브요?”
“뭣을아?”
“사장님 오셨는디.... 나도 안 부르고 둘이 곱창 채우러 가브요?”
“미친새끼..... 밤도 아니고 낮에 뭐 할라고 부른데? 니도 바쁠것인디.”
“아무리 바빠도 사장님 오신다 그라믄 내가 총알 같이 와블제. 성님은 내가 사장님을 월메나 짝사랑 하는지 아요?”
“ㅎㅎㅎ 미친놈 지랄하고 자빠졌네. 언제부터 니가 그렇게 못쓰게 되브렀냐? 그라믄 지금 실컷 봐라. 아야 우상아이..... 니를 짝사랑 하고 있단다..... 사람 미쳐블것다 ㅎㅎㅎ”
나는 옆에서 웃기만 했다. 김 부장이 웃으면 나에게 말했다.
“웃자고 해본 소리요. 나는 사장님 만날 때 마다 사장님이 비싸고 맛있는 거를 많이 사준께.... 좋은 기회를 한번 놓쳐븐것 같애가꼬 억울해서 해본 소리요. 잘 계셨지라?”
“예. 김 부장님 요새도 바쁘시죠?”
“인자 그렇게 설치고 그라지는 안하요. 대선 때만 하겄소? 그때 보다는 훨씬 여유도 있고 나는 인자 현장 나가도 차에서 무전기 들고 대기만 하제..... 근접 경호는 젊은 아그들이 맡아서 하요. 그라고 뭔일 있다 그라믄 내가 지원 해주고 그라요. 그라고 자주 사무실 놀러 오쇼이. 살짝 와가꼬 성님만 만나고 그라지 말고..... ”
“예. 오늘은 일 때문에 왔기 때문에 부장님 생각을 못했네요.”
“그라고..... 사장님은 볼일이 있으믄 낮에 오지말고 밤에 오쇼. 그래야 되겄그만....이것도 허는 소리요이.....ㅎㅎㅎ”
옆에서 듣고 있던 쌍식이 형님이 말을 잘랐다.
“대가리.... 밖에 있는 네놈 이리 들어오라 그래라. 내가 교육좀 시켜야 쓰겄다. 그라고 우상아이 진짜 언제 시간 나믄 밤에 한번 뭉쳐보자. 니하고 술 마신지도 오래 된것 같은디.... 대가리가 진짜 니를 짝사랑 하는갑다. 오늘이라도 일이 마무리 되믄 연락해라. 그라고 무슨 호텔인지 모르겄다만 먼저 가서 우석이 하고 이야기 하고 있거라. 아그들 교육좀 시켜가꼬 바로 뒤따라가라 그라께. 어차피 먼저 가서 방 하나 더 잡아야 안되겄냐?”
“방은 잡아 놨습니다. 그러면 내가 먼저 가서 우석이 만나고 있을 테니까 그곳으로 직원들 보내 주세요. 오래 걸립니까?”
“아니다. 이번일이 어떤 건지 자세히는 모른디... 우상이 니가 항상 고민한 문제가 되다 본께, 그라고 나도 니한티 들은게 있어 논께..... 몇 가지 주의를 줄라고 그란다. 막말로 감시를 네놈이나 붙여 놨는디..... 어디로 토껴븐다 그라믄 그것이 뭔 꼬라지냐. 그랑께 우째 보믄 이것이 경호 하는 것 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께 하는 소리다. 어차피 지금 가는 놈들은 일종의 파견 근무인디.... 아그들이 호텔에서 묵고 자고 한다 그라믄 기압 빠지기 십상인께 교육을 안 시켜서 보내믄 내가 불안해서 안되겄다.”
역시 쌍식이 형님은 분위기 파악이 빨랐다. 내가 걱정 하는 것 이상으로 사태를 빨리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호텔 이름을 쌍식이 형님께 이야기 해주고 그리고 아쉬워하는 김 부장을 뒤로 하고 김우석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갔다. 평소 같으면 밤에 만나자고 약속 했겠지만 오늘은 어떻게 일정이 변할지 알 수 없어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김우석과 술을 한잔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호텔은 생각 보다 좋았다. 기삼이 말처럼 이렇게 좋은 호텔에서 몇 달을 숙식을 시키며 투자를 했는데도 진본과 똑 같은 모작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죽이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호텔 로비의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호텔비 계산부터 다시 했다. 기삼이의 카드로 결재 하게 되어 있는 카드 용지를 회수 하고 내 카드로 결재 하게 대체 했다. 역시 카드는 긁었지만 액수는 찍히지 않는 빈 용지 였다. 기삼이는 총기 있게 두 개의 방을 잡아 놓았다. 여분의 하나는 김우석을 감시하기 위한 충무팀 직원들이 사용할 방이였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김우석이 있다는 방으로 갔다. 그리고 노크를 해 봤다. 문을 열고 나를 본 김우석은 많이 놀라는 눈치 같았다.
“안녕 하세요.”
“음마.... 기자 양반 아니요? 여그는 왠일이요?”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죠.”
“들어오쇼. 안 그래도 사람이 갑갑증 걸려 죽겄그만.....아는 사람이 온께 무쟈게 반갑소.”
방에 들어서자 나는 방의 구조를 자세히 봤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은 충분 했다. 그러나 방에 비디오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700호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 중사에게 내 방에 있는 비디오를 이곳으로 가져 오게 했다. 그리고 탁자가 있는 의자에 앉았다. 평소에도 술을 좋아 했던 그는 이미 냉장고 안에 있는 캔 맥주 몇 개를 마신 상태 였다. 쓰레기통 안에 있는 빈 깡통이 그것을 말해 주었다.
“맥주 한깡 할라? 묵을게 그거 밖에 없소. 그라고 담배 있으믄 한 까치 주쇼.”
그는 일어서서 냉장고에서 캔 맥주 두 개를 꺼내 왔다. 나는 담배를 꺼내어 탁자에 놓고 맥주를 한 개를 집어 들어 캔 뚜껑을 열었다. 우석이는 맥주 보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기자 아저씨를 본께 인자 뭔가 이해가 좀 될라 그라네......”
“뭐가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알겄다 그말이요.”
“어떤 그림 일것 같습니까?”
“몽유도원도네.....맞소?”
“맞습니다. 그 그림을 그려내야 합니다.”
“그 그림은 한국에 없는걸로 알고 있는디....”
나는 비디오테이프가 들어 있는 봉투를 그에게 주었다.
“일본에서 직접 촬영해온 비디오테이프입니다. 지금은 비디오가 없어서 볼수 없지만 조금 있으면 비디오를 가져 올 겁니다. 오늘부터 틈틈이 테이프를 감상 하시고 연구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그림 같으믄..... 그림이 문제가 아닌디....“
“무슨 소리 입니까?”
“막말로 우리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 그림 하나 뽄뜨는건 일도 아니여. 그란디 그 그림은 일반 종이에 그린 그림이 아닌께 하는 소리제.... 비단에 그린 그림이여..... 그런 재질의 천쪼가리 구하는것이 순서라 그말이여...... 나도 비단에 그림을 그려 보지는 않았응께.....”
“그것도 그림을 보면서 혼자 연구를 하셔야 합니다.”
“기자 양반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는디..... 시대가 많이 좋아져서 별 별것 다 만들어 내는디도 아직도 우리가 선조들 기술을 못 따라 가는 것들이 많이 있소. 비단이 문제가 아니고 지금 규장각 도서 같은 것은 수백 년이 흘러도 곰팡이 하나 안 끼고 그라고 퇴색이 안되는디..... 그런 종이를 만들어 낼라고 아무리 용을 써도 여작 못 만들고 있다 안하요. 근디 애초부터 그림을 오래 남길라고 비단에 그렸다 그라믄..... 그 비단은 어떤 비단인지 그것을 모르겄네......”
“........ 요새도 비단을 쓰긴 씁니까?”
“비단에 직접 그리는 경우는 없소. ......쉽게 이야기 하믄..... 제사 지낼 때 병풍을 생각하믄 되요. 병풍이 보통 보믄 그림 옆으로 천이 있지라이.... 그랑께 그 종이가 천하고 어우러짐서 오래 가고 튼튼하다 생각하믄 되요. 그랑께 병풍에 붙어 있는 천에 그린것 이라고 생각 하믄 되요..... 그런 천쪼가리가 오래간께 거그다 바로 그려 브렀다고 생각 하믄 되요.”
“.........”
“내가 그림 하나 뽄떠주는 것은 별것도 아니여. 이런 소리 저런 소리로 많이 겁도주고 꼬시고 그라든디........ 그런 약속을 지킬랑가 어짤랑가 그런 것은 모르겄고 뭔가 겁나게 중요하다고 그랑께 내가 협조는 하겄는디...... 씨벌꺼 뭣이 말이 통해야제...... ”
“...... 어떻게 하면 말이 통하게 도와 드릴수 있습니까?”
“언제 까지 그림을 뽑아내야 하는지 모르겄는디..... 일단 내일은 비디오를 한번 보고.... 그라고 천의 재료가 어떤건가 보고.... 그라고 그 비단을 구하는 것이 젤로 우선이요. 솔직히 말해서 물감하고 바탕의 물성(物性)하고 궁합이 맞아야 내 실력을 발휘 할것인디.... ”
“눈으로 보면 알 수 있습니까?”
“아니제.....국전에 출품할 작품들은 그냥 한지에 그려블믄 된디..... 장사꾼들이 고미술품을 만들 때는 과정이 좀 있제...... 예를 들어서.... 추사 김정희 그림을 만들라믄....... 종이가 퇴색되가꼬 색이 누렇게 떠가꼬 있응께.... 그런것은 우선 종이를 누렇게 만들어야 하는디...... 그것이 좀 복잡한 과정이 있어....... 첨에 흰 종이를 준비 해가꼬.......촌에 가믄 소메동이가 있소..... 오줌통 말이여..... 그 소메동이에 종이를 좀 담갔다가 빼 놓으믄 몇일 있으믄 색깔이 누렇게 뜨요...... 그란디 그것이 오줌에 담가 논께 찌린내가 많이 나요. 그랑께 그것을 물로 잘 씻어서 또 몇일 말리믄 종이가 바탕이 누렇게 되요. 그라믄 그때사 그림을 뽄떠서 위작을 만드요. 내가 말은 이라고 해도...... 겁나게 과정이 까다롭소....... 비단도 그렇게 해서 될랑가 모르겄네......“
“비단은 여러 종류의 색상이 나오니까..... 일부러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랑께 내가 말이 안 통한다 안하요. 소메동이에 담갔다 빼서 그림을 그려 놔도 우리 같은 전문가가 봐블믄 대박에 알아븐디.......비단이 오래되가꼬 때깔이 맛이 가븐거 하고 새것 하고는 질감이 벌써 틀릴것인디..... ”
역시 우석이는 전문가 이었다. 위작을 많이 만들어 본 경험이 있어서 인지 그림을 그리는 것 보다는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한 다른 조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림을 자신의 손기술 보다는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기삼이가 말한 입이 가벼운, 그리고 경거망동한 그의 행동은 걱정할 필요가 있겠지만 모작을 찍어내는 것에는 협조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도망을 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삼이가 호텔에 데려다 주고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그는 지키는 듯 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담배부터 찾는 것은 끽연가로서 참기 힘든 일 일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기삼이가 데려다 줄때 이야기 했던 주의 사항을 성실하게 지켰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란디..... 기자 양반 궁금 한것이 있소. 내가 죄를 지어 논께...... 내가 뭘 해도 이것이 죄값을 치른다 생각 하믄 된디...... 이것이 어찌께 기자 양반하고 연관이 있는지 그것이 나는 무쟈게 궁금하네. 그랑께 시방 기자 양반은 내가 어디가서 디지게 깨지고 온 것도 다 알고 왔다는 이야기 아니여?”
“......... 예.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안기부 소속이니까요.”
나는 다른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내 입에서 나오는 데로 그냥 편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나의 대답에 그는 당황한 표정 이였다. 나는 그를 안심 시키고 일에만 몰두 할 수 있게 해야 되겠다는 의무감도 생겼고 그가 안쓰러워 보이는 동정심도 생겼다. 어쩌면 역사를 이루는 첫 단초는 그가 제공해야 하고 그의 천재성을 완벽하게 발휘할수 있게 하는건 완전히 나의 몫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그를 안심시켜야 했다.
“우석이 아저씨. 좀 미안하네요. 사실 제가 아저씨를 추천 했습니다. 거기서 고생 하신 거는 혹시 일이 끝나서 소문을 내면 안되니까..... 주의를 주는 수준이여야 하는데..... 좀 심하게 다루었는 모양이네요. 어쨌든 그 방면에서는 아저씨만 한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일이 끝나면 제가 책임지고 미국으로 보내 드릴게요. 물론 미국에 가실 수 있게 도와 드리고 그곳에서 생활 하실 수 있게 정착금도 충분히 드릴 생각입니다. 그만큼 이번일은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 합니다. 국가를 위해 아저씨의 힘이 필요 합니다.”
“뭔 소리인지 당췌 모르겄는디..... 솔직히 말해서 국가를 위하는지 어쩐지 그런건 나는 모르겄고……. 또 그라고 이런 것도 뭔 애국 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 하믄 당연히 해 주기는 해 줘야제.”
“언젠가 법원에 고소당한 적이 있을 때 쌍식이 형님이 합의금 내주신적 있죠?”
“그란적이 있제. 음마.... 그것을 기자 양반이 우쭈고 알아? 내가 한번 이야기를 했었는가?”
“그때도 국가에서 돈을 주셨다고 생각 하면 됩니다. 그냥 쌍식이 형님을 통해서 전달되었을 뿐입니다. 물론 그때도 제가 쌍식이 형님을 드렸습니다만....”
“겁나는 세상이그만.....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고맙소이..... 내가 여작 삼서 누구 신세를 많이 지고 살았는디..... 이참에는 국가니 애국이니 이런걸 떠나서 내가 기자 양반을 봐서라도 제대로된 작품을 뽑아블랑께..... 너무 걱정 하지는 말아블어.... 다른건 몰라도 남의 그림 뽄떠서 만드는것은 내가 자신있응께...... ”
“앞으로 불편하신 게 있으면 저한테 이야기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아직은 몇 가지 지켜 주셔야할 일은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갇혀있다고 구속된 기분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왜 그 애들 대학교 예비고사 칠 때 되면 출제위원들이 몇 달 동안 호텔에서 문제를 출제하잖아요. 그냥 몇 달 동안 국가를 위해 잠시 좋은 환경에서 일하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비고사 치르고 나면 그 선생님들은 돈도 많이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런 것과 똑 같습니다. 출제위원들은 호텔에 몇 달 동안 머무는 자체를 감금당했다고 생각 하지 않거든요. 출제위원이라고 생각 하시고 편하게 하실 일만 하시면 됩니다. 아저씨 역시 일이 잘 마무리 되면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까요.”
그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팔자에 없는 호텔 생활 무쟈게 하게 생겼그만...... 그래도 기자 양반이 와가꼬 이라고 조근조근 설명을 해준께 내가 안심이 되요. 아따.... 저짝에 갇혀 있을때는 걍 죽겄드만..... 씨벌넘들이 설명도 안하고 물어봐도 대답도 안하고...... 그림 몇 개 찍어 냈다고 나는 거그서 영- 인생 쫑 나는 줄 알았소.”
“당장 뭐 필요한거는 없습니까?”
“당장은 속옷 좀 필요 하고..... 뭣보다 담배 좀 사다 줬으믄 젤 좋겄는디... 담배정도 살돈이 없는건 아닌디......이방을 나가믄 패 죽일 것 같이 이야기 해싸서 밥도 안쳐묵고 사람 기다리고 있었그만.... ”
나는 그가 호텔안의 어떤 식당이나 시설물도 사용해도 되지만 호텔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설명 해 주었다. 그리고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하고 지켜야할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런 설명을 하고 있을 때 삐삐연락이 왔다. 아마 그건 충무팀 직원이 왔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굳이 쌍식이 형님께 전화를 하지 않아도 밑에 있는 로비로 내려가 보면 될 일이였다. 담배를 사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밑에 잠깐 내려갔다 오겠다고 그에게 이야기 하고 그의 방을 나왔다. 역시 호텔 로비에는 쌍식이 형님이 직접 직원들 네 명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직접 왔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본께.... 이번일은 내가 직접 간여를 해야 쓰겄다. 작년 재작년부터 니가 틈 날 때 마다 이 일로 신경을 많이 쓴거 본께...... 그라고 코피리 성님이 말한 것도 생각나고..... 그래서 이 번 만큼은 대선때 영감 경호 했던것 멩키로 내가 직접 신경을 써 줄라고 그란다.”
“형님이 그래 주시믄 저야 고맙죠.”
“그라고.... 니 지금 전화 해가꼬..... 우석이 좀 잠깐 내려오라 그래라.... 그래가꼬 한 30분만 시간좀 끌어라. 우리 아그들이 그놈 전화기에 도청을 좀 해사 쓰겄다. 이새끼가 입방정이 있는 새끼가 되다본께 쓸데없이 여그저그 전화질 하믄 그것까지 니한티 보고를 해 주라고 아그들 한티 이야기 해 놨응께..... 그라고 뭔 소리라도 들려야 그놈이 나간지 자는지 알제........그랑께 불러 가꼬 한 30분만 시간을 끌어 주라. 저 장비는 아직 시험도 안 해 보고 바로 가꼬 와 브렀다. 일 끝나믄 니한티 또 삐삐를 칠것이다. 그라믄 올려 보내도 된다. 그라고 나는 그놈 얼굴 보믄 괜히 이상한께 지금 갈란다. 그래도 되제?”
“예. 그렇게 할께요. 형님 신경 써 줘서 고맙습니다.”
“뭔 소리냐...... 인자사 내가 할 일을 한것 같그만. 그라고 아그들 있을 방 열쇠도 지금 주라. 설치가 끝나믄 그 방에 또 들어가서 인자 근무를 시작해야 쓴께......”
쌍식이 형님은 내가 건네준 열쇠를 직원들에게 주면서 함께 왔던 직원들에게 뭔가를 지시 하고 그리고 손을 흔들어 보이며 호텔을 빠져 나갔다. 나는 호텔 안에 있는 매점에서 담배를 한 보루를 샀다. 그리고 우석이 에게 전화해서 로비로 내려오게 했다. 충무팀 직원들이 도청장치를 설치 할 수 있게 시간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로비로 내려온 우석이 에게 담배를 건네주면서 물었다.
“식사 하셔야죠?”
“여그 있는 아무 식당이나 가서 먹고 사인만 하믄 되는 것이여?”
“예.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 대신 방열쇠를 꼭 가지고 다니세요. 가끔 확인 한다고 그러니까.”
“소주도 파는가? 이런데도?”
“그럼요. 일식당이나 중국식당, 그리고 한식당은 다 있습니다. 돈 걱정하지 마시고 일하시다 답답하면 내려 오셔서 한잔씩 하고 그러세요. 우석이 아저씨는 지금 대학 들어갈 애들 시험 문제 출제 하러 오신 교수님들과 같다고 편하게 생각 하세요.”
“아니 긍께..... 나는..... 엊그제만 해도 금방 죽일 것 같이 사람을 감방에 쳐 여 놓고 그라드만 갑자기 뜨시게 대접을 한께...... 불안해서 하는 소리요.....”
“그것은 워낙에 저도 그렇고 아저씨도 입단속을 철저 하게 비밀로 해야 하니까...... 윗사람들이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 만큼 중요한 일이라 그렇습니다.”
“그라믄..... 간만에 소주를 한잔 했으믄 쓰겄는디..... 그라고 방에 올라갈 때 몇병 사가꼬 들어 갔으믄 좋겄는디....”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호텔 안에서는 소주는 안팝니다. 식사 후에 제가 소주 몇 병 하고, 안주거리 좀 사서 방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일단 식사 하러 가시죠. 일식집 가서 사시미에 소주 한잔 합시다.”
“그라까?”
나는 내가 들고 있던 담배 한 보루를 그에게 건네주고 그를 데리고 일식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에게 메뉴판을 주었다. 앞으로 몇 달 동안은 고급스럽게 생활 하는 방법도 배워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데 오시면 급하게 주문하시지 말고 그림을 보면서 드시고 싶은걸 천천히 골라서 이야기 하시면 됩니다. 식당 종업원들을 하인 다루듯 하시면 곤란 하지만 좀 당당할 필요는 있거든요.”
“이런데를 자주 안온께 그란디..... 나도 대학을 서울서 나왔어...... 우리가 말이 안 고쳐 져가꼬 촌스러워서 그라제..... 기본은 또 있응께.... 너무 걱정 허덜 말아 브러...”
그는 역시 소주를 시켰다. 그리고 초밥과 먹음직스러운 회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에도 그는 연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몇 달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끽연가로서의 고충을 나는 알 수 있었고 그런 줄담배에서 품어 나오는 연기는 말이 없는 나와 그와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천상 낼은 비디오테이프를 한번 보기는 봐야 할 것인디.....조명이 쪼께 문제가 있그만....”
“조명요?”
“그림 이라는 것이..... 국전에 나갈 때는 순전히 실력으로 그림을 뽑아도...... 그때는 그림이 그렇게 좋은지를 몰라...... 근디 그것이 전시를 하믄 액자 하고 표구를 함서 많이 틀려 져블제.... 거그다 조명을 잘 해가꼬....... 이렇게 훤한 형광등에 내 놓는것이 아니고 삘-간 백열등에 전시를 하제.... 그래야 그림이 좋아 보인께..... 그란디.... 몽유도원도는 이미 작품이 물이 오를 데로 오른 그림이 되놔서 갖다가 붙임서 조명발을 바로 받을 그림으로 계산을 해야 겄그만...... 근디 호텔 조명이 좀 어둠드라고?”
“그럼 조명 장치를 설치할까요?”
“아니여.... 아그들 공부 할 때 책상에 놓고 하는 스텐드 있잖여...... 그거를 전구 다마 촉수 높은걸로 끼어가꼬 하나 준비를 해줘사 쓰겄는디.....형광들 말고 백열등 끼워진걸로.”
역시 그는 달랐다. 그림을 보는 심미안이나 그리고 위작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대해 벌써 자기만의 노하우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라고... 비단도 종류가 겁나게 많제..... 우리가 보통 비단 이라고 그라믄 금(錦)이라고 그래까꼬.... 애초에 염색된 색사로 문양을 짠것이 있는디.... 이것은 두꺼운 직물이 되가꼬 여그다 그리지는 안했을 것이고, 능(綾)이라고 있는디..... 이것은 예전에 사도세자가 꿈에 용을보고 거그다 그림을 그렸다고 그란디.... 여자들 속옷감으로 많이 썼다고 그란드만....그랑께 황진이가 지 치마 벗어가꼬 거그다 글을 써 줬다는게 다 그런것이여.... 그것이 아니믄 아마..... 단(緞)이나 라(羅), 안그믄 견(絹)에다가 그렸을 것이여.”
“비디오테이프를 보면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알아 블제..... 환쟁이들 기본인께.....”
“보통 어떤 비단을 사용 합니까?”
“단(緞)은 우리가 말한 호박단을 말한디.... 거 왜 병풍의 치마감에 사용을 하제. 근디....여그다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여. 이것이 표구를 할 때 좀 차별이 있어야 한께 그것은 아닐 것이고, 내 생각에는 라(羅)가 아니믄 견(絹)이 틀림없을 것이여. 라(羅)는 풀바닥 비단 이라고 그라는디 문양에 관계가 없응께 무늬가 없는 것은 서화용으로 많이 쓰고 초상화나 불당에 가믄 탱화 같은 거는 전부 여그다 그렸다고 봐야제...... 그라고 견(絹)이 있는디.... 이것은 명주 자체로 짠게 되논께 서화용으로 젤로 많이 쓰제 이것이 성글고 얇은께....무늬도 없고....그라고 예전에는 화견(畵絹)이라고 그래가고 팔기도 팔았어. 왜정 시대 거침서 안 쓴다고 그란디.... 그것은 지금도 구할라믄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내가 말을 어렵게 해서 그란디..... 보통 뒤에 실사(絲)를 붙여 가꼬 단사(緞絲), 견사(絹絲), 나사(羅絲) 이래쌌는디... 보통 사람들이 비단 그라믄 금사(錦絲)포 를 말 허는것이고....”
기삼이가 선택한 위작의 대가다운 대단한 지식 이였다. 기삼이가 김우석을 점찍어 모작을 만들게 한 행위는 탁월한 선택처럼 보였다. 김우석은 자기의 전공 분야라고는 하지만 역시 그는 그림에 있어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외 에도 그는 비단의 종류가 아닌, 그림을 그리기 위한 소재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런 해박한 지식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설명 하는 것을 듣기만 하였고 그런 설명을 말없이 듣고 있는 동안 음식들이 나왔다. 여느 일식집과 마찬가지로 일식의 요리들은 순서대로 여러 번 나뉘어 나왔고 그는 나오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나에게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그는 내가 따라 주지 않아도 혼자서 소주를 따라서 잘 마셨고 특별한 설명이 필요 할 때는 먹는 행위 자체를 잠시 중단 하고 담배에 불을 붙여 피워 가면서 비전문가인 나에게 마치 대학 교수가 학생을 가르치듯 충분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내일은 그가 필요한 화방도구와 조명, 그리고 비단을 고르는데 시간을 보내야 할것 같았다. 그런 재료는 그가 직접 골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소품이기도 했다. 그가 음식을 먹는 동안 삐삐의 진동음이 한번 왔다. 충무팀이 도청 장치를 완료 했다는 신호 였다. 그리고 위작의 대가인 김우석이 식사를 하는 동안 식당 안으로 건장한 청년이 두 사람 들어와 나를 찾았다. 그들의 손에는 비디오 재생기가 들려 있었다. 아마 한 중사의 지시로 그들은 비디오를 가져 온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비디오 재생기를 돌려받고 그들을 말없이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비디오 재생기를 우석이 에게 주면서 말했다.
“혼자서도 설치하실 수 있겠죠? 안되면 호텔 룸서비스를 불러서 설치하라고 부탁을 하세요. 그러면 설치 해 줄 겁니다.”
“그런것이사 나도 혼자 하제..... ”
“식사 하고 계세요. 내가 밖에 나가서 소주 몇 병 하고 오징어라도 좀 사 올 테니까요.”
“맥주도 몇 깡 사주믄 쓰겄는디.... 내가 호텔 냉장고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본께..... 무쟈게 비싸든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건 부족하면 전화해서 가져다 달라고 그러세요. 대학 시험문제 출제 하는 교수님이시라니까.... 몸에 습관을 들이세요. 편하게 생활 하시는걸.....”
“그래도.... 비싼 돈 주고 마실 랑께 그라제....”
나는 호텔 밖으로 나와서 그를 위해 소주 몇 병과 그리고 안주로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를 사서 그에게 가져다주고 호텔을 나왔다. 내일은 당장 그를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 해 주어야 했다. 절대 호텔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잊지 않았고 호텔의 일식당을 나올 때 벌써 충무팀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 하나가 신문을 보면서 가볍게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런 일련의 행동을 김우석은 알지 못했다. 벌써부터 충무팀은 그를 위한 감시업무가 시작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