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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의 야경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건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의 야경을 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추픽추 관광을 마치고 내려오는 밤기차 안에서 내려다본 쿠스코는 마치 거대한 조명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다. 마추픽추에서 쿠스코로 가는 기차는 고산을 넘어서 내려오기 때문에 쿠스코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르마스 광장의 대성당과 라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 산토도밍고 교회, 산프란시스코 수도원 등 쿠스코의 유적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현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언덕 위에 들어선 인디오의 집들이 뿜어내는 불빛들은 마치 하늘의 별들이 내려 앉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쿠스코는 인디오들의 슬픈 역사를 가득 안은 도시다. 금으로 채워졌던 그들의 신전은 스페인 병사들에 의해 약탈됐다. 잉카인들의 성지였던 ‘태양의 신전(코리칸차)’이 무너지고 그 위에 산토도밍고 교회가 들어섰다. ‘태양의 처녀관’ 자리엔 산타카탈리나 수도원, 우아이나 카파크 궁전 자리엔 라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가 들어섰다.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의 신전과 궁전들을 철저하게 파괴한 뒤 자신들의 성당과 수도원, 관청 등을 지었다. 그러나 석재 건축물들이 워낙 튼튼해 그 위에 건축물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쿠스코의 독특한 매력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종이 한 장 끼워 넣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쌓아 올린 잉카의 석조물과 그 위에 지어진 빨간 지붕의 스페인 건축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에콰도르와 페루·볼리비아·칠레를 호령하던 잉카제국이 불과 180명밖에 안 되는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스페인군에게 무력하게 멸망한 이유는 뭘까.
잉카의 주신(主神)은 비라코차였다. 진흙으로 최초의 인간을 빚었고, 티티카카호에서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최고의 신인 비라코차는 세상을 창조한 뒤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을 남긴 채 서쪽으로 떠나갔다. 1532년 9월, 잉카인들은 비라코차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빛나는 금발에 긴 턱수염, 번쩍이는 투구와 갑옷…. 그는 눈부신 갈기를 지닌 짐승 위에 앉아 나는 듯 달렸다. 천둥 벼락 같은 소리를 내며 불길을 내뿜는 무서운 물건도 지니고 있었다.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와 그 병사들의 출현은 인디오들에겐 바로 ‘비라코차의 귀환’이었다. 인디오들은 커다란 방에 사람 키만큼 가득 채운 황금을 바치면서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죽천<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