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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마당, 높은 솟대
만남, 그 뒤의 인상
2004/01/28 20:01 http://blog.naver.com/78711hong/100000687873 |
너른 마당, 높은 솟대
-주포리의 황산마을에서는 (2003. 2. 11.) 홍순천
미처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잔설이 능선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면은 금방이라도 새 잎을 피워 올릴 듯 보송보송한 바람이 가득하지만 북쪽으로 경사진 곳에는 아직도 겨울이 한창이다. 원주를 향해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를 달리는 내내 우중충한 날씨가 일행의 여정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아직 봄은 먼 것일까?
봄을 시샘하는 잔설이 잔잔한 낙엽송 가지위에 남아 지나는 이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길을 따라 차는 분주하게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문화나 풍습은 대간을 사이에 두고 모양을 달리하지만 작은 능선을 넘나드는 햇살에도 생명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생명이 어울려 이제 봄꽃을 피워 올리려 푸르게 돋아 오르는 정기가 잔설 위에 그득하다. 대간에서 뻗어 나온 정맥은 사람들의 살림을 포근하게 보듬어 안으며 마당을 형성하고 있다. 골짜기마다 둥지를 틀고 살림을 차린 마을이 정겹다.
우리의 살림집은 대개 대간과 그 지맥의 모양을 따라 형성되어있다. 그 모양을 잘 이해한 뒤에 살림집을 만들어야 모진 풍상을 견디고 더위를 이겨내기 좋은 살림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생과 순환을 위해 마련하는 ‘마당’은 나누고 교류하는 자연의 논리를 반영한 탁월한 살림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인디언이 티피(천막집)를 지을 때 원형을 고집하는 것은 그 안에 사람들이 둘러앉았을 때 자연스럽게 원형의 공동공간이 생기게 하기 위함이었다. 티피를 여러 개 배치할 때도 원형을 고집하는 것은 원형의 마당에 모여 민주적인 살림의 논의를 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마당도 그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마당의 ‘마’는 땅을 의미하는 맛 ·맏 ·묻이며, ‘당’은 장(場), 즉 장소를 말한다. 마당은 공간의 의미를 가지며 장소, 활동, 생활을 담는 기능이 있다. 마당은 외부에서 내부로 동선을 연결하는 통로, 채광이나 통풍(中庭:court), 추수기의 작업, 생산(채마밭:hortus), 공간 구분, 정서 조성(庭園:garden), 행정·의식 수행 등의 여러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살림터다. 경칩을 기다려 기지개를 켠 개구리가 모여 신명나는 한바탕 놀이를 했음직한 공간도 바로 마당이다.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의 2월 7일. 강원도 땅이라기보다 충청도에 가까운 주포리에 사물 소리가 드높다. 새농촌건설 추진단 발대식이 있는 날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살가운 미소를 받으며 스스로 풍물에 취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주포리의 발대식이 70년대의 새마을 운동과 사뭇 다른 것은 자발적이라는데 있다. 정부에서 주도하고 획일적인 대안을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마을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자리라 더없이 신명이 난다. 붉은 개량한복을 입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꽹가리를 두들겨대는 어린 상쇄의 가락에 제법 힘이 들어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한 꼼꼼한 짚공예품에 깃든 정성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꼼꼼한 손길이 느껴진다. 여간한 마음으로 다잡지 않으면 준비해 낼 수 없는 행사를 보러 온 외부인들도 감탄의 소리가 높다. 주포리 사람들은 마을 한가운데 마당을 만들었다. 그들 스스로 놀이판을 만들고 신명나는 한 판 굿을 벌이는 것은 살아있는 제 소리를 내고자 함이다. 펄펄뛰는 맥박을 따라 감도는 기운에 맞춰 생명의 춤사위를 추기 위함이다.
황산마을이라는 별호를 가진 주포리는 미륵산 자락을 깔고 앉아있다. 정상의 바위에 새겨진 미륵상이 굽어보는 가운데 열린 발대식에서는 독특한 그들만의 서약이 이루어졌다. 마을사람을 유기적으로 묶어내는 자치규약인 향약을 오늘의 시대정신에 맞게 고쳐 주민 스스로 다짐하는 자리였다. “남의 허물은 작게 보고, 잘하고 좋은 점은 크게 보며, 칭찬에 인색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연하의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고, 연상의 사람에게 겸손함이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노력하자.” 김주남 청장년 회장의 선창을 따라 다짐하는 마을 어르신들의 눈매가 결연하다. 주포리 구석구석에는 남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공터마다 자리 잡은 솟대와 장승이다. 솟대는 마을에 들어서는 길손을 반기고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소도구다. 마음에 기준을 세우는 버팀목인 것이다. 주포리는 요즘 열린 마당을 준비하고 있다. 외부와 문화를 나누고 살림을 나누는 자리를 펼치기 위해서다. 그 자리를 만드는데 솟대처럼 이정표를 세운 사람들이 있다. 그이들은 바로 이일표 님, 홍석률 님, 손주환 님이다.
6년 전에 이곳으로 이주한 이일표 님은 산이 깎이고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는 팔을 걷어붙였다. 원래 바지런한 그이는 먼저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마음을 다잡아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멍석을 깔고 마당에 잔치를 배설하는 것은 마을 큰어른의 몫이다. 장승을 깎고 솟대를 만들며 피폐한 농촌정서를 고양하고 삶의 의욕을 높이는 기폭제로 삼았다. 그이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오늘도 컴퓨터 앞에서 돋보기안경을 추이며 소년처럼 눈을 반짝인다.
마을의 이장을 맡으신 홍석률 님은 이 마을 태생이다. 외지에서의 몇 년을 빼고는 줄곧 주포리에서 산 그이는 오래된 농군이다. 관행으로 농사를 지었던 그간의 경험에서 그이가 깨달은 것은 새로운 살림의 논리를 찾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작년에 1,200평의 논농사를 오리농으로 전환 한 것은 그런 의지의 발현이다. 나머지 밭작물도 유기농으로 바꾸겠다는 그이의 의지는 일행에게 마을을 소개하는 내내 곳곳에서 드러났다. 농사와 마을일을 병행하며 마을살리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마을의 마당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1990년, 신학을 마치고 이 마을에 들어 온 손주완 목사는 주포리의 새마을 지도자다. 목회를 시작하는 목적이 애초에 달랐던 그이는 ’91년, 이곳에 작은예수공동체를 시작했다. 무의탁 노인들을 모시고 공동체를 시작한 것이다. 일상의 청년이 꿈꾸는 생활을 거두고 그이는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했다. 스스로 가난을 택하고 남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노인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스스로 수확한 농산물로 된장, 고추장을 만들며 큰살림을 꾸려나가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말수적은 미소로 사람을 반기는 그이의 아내가 큰 조력자임을 익히 짐작해도 그 일은 상상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5남매의 수발과 열세분의 노인을 모시는 일로도 성이 차지 않은지 그이들은 이제 마을일에 나섰다. 그간의 고난이 오히려 새로운 일에 도전장을 내게 한 힘을 만들었을까? 4년 전 시작한 어린이 풍물패와 장단을 맞추며 어깨 짓이 힘찬 그이의 아내가 어른들로부터 받는 칭찬은 대단하다. “우리 가족끼리만 살아보고 싶다”는 큰아이 ‘연합’이의 말을 전해 들으며 그이들의 속내를 짐작해본다. 솟대.
행사를 마감하는 풍물소리가 드높다. 미륵산 아래 잠들어있던 겨울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구경 나올듯하다. 마당 너른 주포리에서는 오늘 새로운 상생의 문화가 시작되었다. 긴 겨울잠을 깨고 어깨춤 넘실대며 생명의 봄을 맞이하는 마당에는 맨살을 맞댄 솟대들의 어우러짐이 도드라진다. 주포리에서 울려 퍼지는 이 소리가 생명의 잔치마당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첫새벽 수탉의 날개짓처럼 힘차게 지속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공생과 순환을 위해 마련된 이 마당에 높이 솟은 솟대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에 이정표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리라는 기대가 어긋나지 않으리라.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해 우울한 날씨가 무색하도록 머릿속이 환해진다.
[출처] 너른 마당, 높은 솟대 |작성자 홍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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