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은 열린전북 9월호에 실린 기고문 입니다.
지역의 관점에서 농업・농촌을 말하다
- 지역농업과 농촌사회 활성화를 열어가는 소중한 사례 -
황영모 / hymlsm@rari.or.kr
지역농업연구원 정책기획실장
‘농업비중의 감소’와 ‘농업・농촌의 어려움’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지금 겪고 있는 농업・농촌의 어려움은 농업・농촌의 희생을 전제로 한 국가정책의 결과이다. 우리는 이미 UR협상과 WTO협상의 과정에서 ‘국가이익’을 위한 농업・농촌의 선의(?)의 희생을 강요당해 왔다. 또 한・미FTA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도 이와 같은 일방적 피해를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떡’으로부터 소외되고 ‘떡 고물’의 시혜를 감지덕지(?)하게 받으라는 폭력에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급속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속페달을 밟는 정부정책의 기조에서 농업・농촌의 활로를 찾는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새삼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강조하고 식품안전을 환기시킨다 해도 정책기조가 쉽게 바뀔 태세는 아니다.
바로 이점이 ‘지역’의 관점에서 농업・농촌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주체적 입장에서 활로를 열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 주체적 관점의 지역, 그리고 농업・농촌
더 이상의 중앙과 자본의 관점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관점에서 지역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지역은 중앙정부나 외부자본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지역주민이 일체감을 갖고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삶과 일의 터전이다. 이를 위해 국민경제, 세계경제로부터 지역경제로의 사고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지역’의 이해를 바탕으로 ‘농업・농촌’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자. 지역의 경제활동은 그 자체로 자생・자립력을 가질 때 외부 자본의 공세로부터 이겨낼 수 있다. 산업으로서의 농업과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그 자체로 ‘생산~유통~소비’ 등이 이루어지는 지역경제이다. 또 지역 내 수요를 중심으로 한 지역경제를 축으로 해서 지역 외의 수요에 대응・연계해 나가는 기본단위이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농업 조직화, 지역특화산업육성, 도농교류, 마을만들기, 농촌교육, 농촌여성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지역농업 조직화로 농업의 활로를 열어가는 사례
완주의 ‘땅기운 유기농 생산자회(반장 김영만)’는 1991년부터 친환경 농업의 철학을 바탕으로 정부의 광역 친환경 농업단지까지 지역농업 활성화를 실천하는 사례이다. 초기 10여농가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5개마을 40여농가가 친환경 농업(경종+축산)으로 조직화해 시장대응력을 높여 나가고 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농촌교육, 노인복지 등의 영역까지 활동을 넓혀가고 있다.
순창의 ‘전통고추장원료계약재배사업단(단장 이선형)’은 행정과 농협이 담보하지 못했던 계약재배 사업을 농민 스스로 전통고추장업체와 연계해 지역경제를 이끌어가는 사례이다. ‘청청원’이라는 대기업에 맞서 610여농가와 28개의 업체가 연계해 장류산업이라는 지역특화산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고창의 ‘농협 연합사업단’은 지역농협 간 출혈경쟁을 막아보자는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했다. 7개 지역농협이 역할분담을 통해 규모화와 전문화를 통해 시장 교섭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지금은 고창 관내 10% 가량의 물량을 취급하고 있지만 품질을 바탕으로 가격협상을 하다 보니 나머지 농산물의 가격을 지지하는 연계효과까지 낳고 있다.
#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어가는 사례
임실의 ‘치즈마을(위원장 이진하)’은 20여년에 걸친 친환경 농업 철학을 바탕으로 주민주도 마을가꾸기의 성공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연간 3만여명이 체험・숙박하는 이 마을의 힘은 숱한 역량강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지역기업과 연계하는 상승작용도 이끌어 내고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마을’은 치즈마을의 지향과 정신을 보여준다.
진안의 ‘와룡마을(위원장 강주헌)’은 수몰민 이주마을이라는 절박함을 딛고 주민공동의 생산~가공~판매~체험・관광이라는 농업・농촌의 다각화를 이뤄낸 대표적 사례이다. 마을에서 생산된 농산물(15개 품목)은 전량 가공해서 판매한다는 ‘지산지공(地産地工)’의 공동체 사업을 벌여나가고 있다. 이렇게 공동사업으로 거둬들인 수익은 주민에게 분배하고 일정부분은 재투자하고 있다.
# 활력있는 농촌사회를 열어가는 사례
익산의 ‘성당초등학교(교사 허인석)’는 작은 학교 활성화를 위해 교사를 중심으로 학부모, 지역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 공동체 모델이다. 초기 농촌교육에 뜻있는 교사 2인이 작은 학교가 가지는 좋은 교육적 장점을 적극 살려 다양한 체험활동과 체험학습 등 지역에 맞는 교과과정을 만들어 실천했다. 아이들의 변화는 학부모의 변화까지 이어졌고 교사와의 신뢰도 쌓였다. 지금은 주민과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성당교육지원단이 발족해 전문성을 지원하는 지원체계를 갖추었다.
고창의 ‘여성농업인센터(소장 김영숙)’은 여성농민의 생활과 생산의 어려움을 스스로 풀어가는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 여성농민 활동가가 중심이 되어 어린이집, 공부방, 상담사업, 여성농민학교, 부부교실 등 여성농민의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여성농민의 자발적 참여로 작지만 알차게 운영되는 여성농업인센터는 보육시설로, 쉼터로, 교육기관으로 농촌사회를 유지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수입개방과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농산물 가격, 침체된 농촌사회. 지역농업과 농촌사회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노력은 이러한 절박함에서 시작했다. 모두가 우리 ‘전라북도’내의 소중하고 의미 있는 노력이다.
이제 지역은 더 이상 중앙에 종속되거나 도시의 나머지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응해 우리 스스로의 자립적 발전을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터전이자 진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는 농업・농촌의 어려움을 주체적 입장에서 극복해 지역농업과 농촌사회 활성화를 열어가는 소중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