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나 스타되었어!"

[달팽이]

▲ 6월 햇살이 따가운 물골 노부부의 집, 마실을 나가셨는지 아무도 없다.

ⓒ 김민수

물골에서 쓰는 편지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 계절에 10편을 생각하고는 사계절 돌고나면 40편 정도를 쓸 예정이었는데 어느새 여름이 되어 돌아보니 봄편지 네 장을 달랑 썼을 뿐입니다. 그만큼 바쁘게 살았다는 이야기기도 하지만, 지난 봄 이런저런 씨앗들을 뿌리고 묘목을 심은 뒤에 거의 방치해 두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겠지요.

봄의 길목을 분주하게 보내고 완연한 여름, 6월의 햇살이 따가운 물골을 찾았을 때 이미 숲은 그들만의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숲가로 난 길을 따라 걷는 것은 허해도 숲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은 허하지 못하겠다는 듯 우거진 숲,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도 너무 우거져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밭을 돌아보니 봄에 심은 토란이며 고추와 고구마 옥수수가 이파리를 내었고, 당귀는 연한 순을 따서 쌈으로 먹을 기회도 주지않고 벌써 꽃을 피웠습니다. 돼지감자도 부지런히 싹을 올렸고, 해바라기도 심을 때보다 수십 배의 크기로 자라있습니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흙을 만나면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피어내는 자연을 봅니다.

물골 노부부의 집은 비어 있었습니다. 몇 주전에 모방송국에서 촬영을 하고 돌아갔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방송 날짜를 일러주시며 꼭 보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결국 보지는 못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뭐여? 거기에 나온 것 보고 왔다고 하데. 덕분에 스타 되어 버렸어."

▲ 밭을 돌아보고 집으로 오시는 물골할머니

ⓒ 김민수

사실 나는 물골편지를 시작하면서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조용히 사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누가되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늘 돌아올 무렵이면 '서울양반, 다음 주에도 꼭 와!" 하시며 사람을 그리워하시더니만, 손님이라면 다 반갑다고, 좋다고 하십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두 분이서 평생 사람이 그리운 곳에 사셨으니 얼마나 사람이 그리울까 싶으면서도, 사람들이 들락거릴수록 더 적적해 지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실을 나가시고, 할머니는 밭을 돌아보시고 집으로 돌아오십니다. 뙤약볕에서는 어떤 장사도 일하기가 쉽지 않지요.

물골 노부부의 밭을 돌아보니 감자꽃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옥수수도 제법 튼실하게 자랐습니다. 더덕은 지주를 타고 올라가 아이들 키만큼 올라갔고, 수수도 솎아주어야 할 정도로 촘촘하게 올라왔습니다. 마늘은 이제 쫑을 뽑아주어야 할 때가 되었고, 황량하던 논에는 가지런히 모가 심겨져 있습니다.

"올해는 벼농사 안 질거여. 그게 뼈빠지는 일이거든. 게다가 돈이 되기나 하나? 자식새끼들 나눠주고 나면 우리 먹을 것 정도 하는 게지. 거기에다가 에프티에인(FTA)지 뭔지 그냥 노는 게 버는 거지. 그 놈의 소고기 어쩌구 하는 것 때문에 소값도 떨어지게 생겼으니…."

그렇게 지난 봄에 말씀하시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볍씨를 틔워 모를 심은 것입니다. 그 부분은 우리 부모님들과 똑같습니다. "다시는 농사 안 질 거여" 하시고는 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농사질 궁리를 하시는 부모님들, 그것이 농심일 것입니다.

▲ 물골 할머니를 반갑게 맞이하는 멍멍이들

ⓒ 김민수

물골 할머니가 돌아오니 제일 먼저 반갑게 반기는 것은 멍멍이들입니다. 꼬리를 쳐대며 할머니를 반기는 멍멍이들, 그들이 있어 덜 외롭겠지요. "애비, 애비, 저리가 이 놈들아 귀찮아!" 손사래를 치며 멍멍이들을 쫓지만 그들이 있어 적적함이 덜하겠지요.

"지난 번 촬영 잘하셨어요?"
"그럼, 난 <오마이뉴스>가 뭔가했는데, 거그 기자가 서울양반이라며?"
"그냥 여기 왔다 가면 편지 한 장 썼어요."
"고마워, <오마이뉴스> 덕분에 스타됐어. 심심하지 않고 좋데. 영감은 여자 아나운서가 입에 뭐 넣어주니까 입이 함주박만히 벌어지더만. 그래도 좋았어. 그 나이에 뭘할껴?"
"할머니 자주 못 와서 죄송해요. 괜히 이 곳에 농사진다고 폐만 끼치네요."
"아녀, 덕분에 심심하지 않쟎아. 다음엔 와서 저그 냇가에 가서 물괴기도 잡아서 매운탕 끓여먹고 가. 만날 농사 짓고, 꽃만 찍으러 다니지 말고."
"그게 쉬는 거예요."
"참, 서울양반은 이상혀. 쉬는 날이면 더 고생이구먼…."

풍족하진 않지만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물골 노부부,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더는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놀면 뭐혀" 하며 다시 땅을 일구고, 소를 키운다. 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양봉도해서 천연 꿀맛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묵묵히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와중에도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신다.

"만날 다른 사람들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테레비에 나오니까 신기하데."

시골에도 밤은 찾아온다. 그 긴 밤, 물이 꺼진 물골 노부부의 방안에는 늦은 시간까지 TV화면이 바뀌는 빛이 새어나온다. TV에 비친 세상, 그것을 보며 물골 노부부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박선준]

^^*... 그럼 목사님이 한국에서는 스타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