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 환경은 그 지역의 의·식·주는 물론 문화와 예술에 까지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한옥 역시 지리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추운지방에서는 두꺼운 옷을 입듯이 한옥 역시 추운곳에서는 벽체를 두껍게하고 문도 가급적 작게 만든다. 비나 눈이 많이 오는 지방에서는 지붕의 물매를 급하게 하여 물기가 지붕에서 오래 머물지 않게 한다.
한반도의 서남쪽 끝에 위치한 전남은 비교적 온화한 지역이다.
연평균기온이 13℃내외이고 가장 추운 1월도 0℃~2℃정도이다. 연평균 강수량도 1,100 ~ 1,500mm로 대체로 많은 편이다.
이러한 기후조건은 벼재배 등이 아주 유리하여 아주 옛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이러한 온화한 기후조건은 살림집의 구조에도 영향을 주어 개방형인 'ㅡ' 자형 홑집이 다른지방보다 일찍 정착했다.
전남은 대체적으로 동북부는 산지가 많고 서남부는 평지와 구릉성산지로 되어있다. 서남부중심에는 호남의 대표적 큰 강인 영산강이 있다.
영산강 주변으로는 일찍부터 부족사회가 발달했었고 특히 조선조에 있어서는 나주가 영산강의 핵심도시로 자리하였다.
영광, 함평, 무안, 해남, 강진 지역등은 영산강의 내륙문화권에 속해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바다와도 접해있어 해양문화권에도 속해있는 지역이다. 특히 이 지역 일부 주민들은 임란이후 도서지방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섬 문화를 일구어 냈다.
전남의 동·남부지역인 순천권쪽은 동쪽으로는 섬진강을 경계로 하여 경상남도와 구분되며 서쪽으로는 보성강이 있어 전남의 서부 내륙쪽과 구분된다. 북쪽으로는 고산지인 소백산맥(지리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고흥반도, 여수반도 등 바다와 면하고 있다.
이 지역은 소백산맥의 지맥이 내려오면서 산지가 있는 곳도 있으나 순천만 등 해역 가까이로는 넓은 평야를 형성한 곳도 있다.
구례,화순, 그리고 장흥의 일부지역(유치면 등)은 전남의 대표적 산간지역이다. 특히 구례군은 한반도의 남부를 북동-남서 방향으로 관통하는 소백산맥의 본줄기 상에 위치하여 해발고도가 높은 산악지대가 많다.
전국도서의 60% 가까이가 전남에 위치하고 있다. 섬으로만 구성된 군도가 3곳이나 있다. 신안군,완도군,진도군이 이에 속하는데 이지역의 민가는 도서만이 갖고있는 독특한 형식이 있어 주목된다.
전남한옥의 특징을 간단히 요약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옥의 형성과 발달에는 기술적인 문제 뿐만아니라 인문사회적인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남의 한옥은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19~20세기초 사이에 건립된 것만이 현존하기 때문에 건축사적 흐름을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전남에는 어느 지역 못지않게 많은 한옥은 물론 한옥을 감싸고 있는 담장과 전통마을이 있다.
타 지역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한옥의 모습은 홑집형식으로 된 'ㅡ' 자형 건축이다. 반가의 경우는 몇몇 개별성이 있는 한옥(구례 운조루, 해남의 해남윤씨 가옥, 장흥 방촌의 장흥 위씨 종가 구 안채 등)도 있으나 민가의 경우는 예외가 거의 없다.
사랑채의 배치도 집중형 보다는 분산형으로 시원하고 개방적이다. 민가의 경우 튼'ㄱ' 자형, 반가의 경우는 안채와 사랑채가 상당한 간격을 두고 '二' 자형으로 자리한다. 이러한 개방적 건축은 경북지방의 'ㅁ' 자형, 중부지방의 'ㄱ'자형 등과 크게 구별되는 남도의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가의 경우 상당히 지역적으로 세분된 평면구성을 볼 수 있다. 즉, 도서지역, 평야지역, 산간지역 등 지리적 환경에 맞는 고유의 민가가 발달하였는데, 특히 도서지방의 '마래' 라는 방과 내륙 평야지대에서 발달한 '정지방' 은 민속과 기능성을 강조한 우수한 건축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전후에 지어진 큰 규모의 한옥은 당시 부농층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안채 가까이에 별도의 큰 곡간채가 건립되고 안채에도 반드시 '고방' 이라고 하는 마루가 깔린 안곡간을 두었다. 평면구성에 있어서도 그 이전의 주택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는데 이른바 겹집형식으로 실이 세분화되고 후면의 퇴공간도 별도의 실로 독립되는 경향도 보인다.
그리고 대청의 규모도 줄어든다. 이러한 이유는 근대기 생활의 변화와 함께 공간의 수요를 평면의 변화로 대응한 것이다.
평야지대의 가옥 :
전남의 서남부지역은 대체로 평지와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는 호남의 대표적 큰 강인 영산강이 있다.
이 지역은 영산강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양호한 기후조건으로 아주 옛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고 이로 인해 마을도 일찍부터 큰 규모로 다양하게 발달되었다. 가옥이 자리한 대지도 비교적 넓고 농사짓기에 편리한 안마당도 잘 꾸며져 있다.
안채 이외에 행랑채 등의 부속채도 잘 발달되어 많은 식구가 함께 거주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안채와 부속채의 배치는 'ㄱ' 자형으로 되어 있어 집이 전체적으로 매우 개방적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서는 실이 4~5개인 다소 규모가 큰 'ㅡ' 자형의 가옥이 많이 보인다. 즉 정지, 안방, 마루, 작은방 순으로 실이 꾸며진다.
한편 많은 가옥에서는 정지 앞쪽으로 3번째 방인 정지방을 꾸몄다. 이 방은 아궁이 시설이 정지 안에 있어 안방과 함께 불을 지피기에 편리하다. 정지방은 전남의 동부지역 가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항아리에 곡식을 담아 놓기도 하고 하절기에 머물 수도 있는 마루는 안방과 작은 방 사이에 놓여지고 툇마루는 안방과 마루 앞쪽에 설치된다.
도서지역의 가옥 :
전남에는 전국 도서의 약 2/3에 해당하는 많은 섬이 있다.
이 섬에도 내륙지방과 마찬가지로 패총과 지석묘 등 선사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어 아주 옛 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도서 마을은 임진왜란 이후인 17,18세기에 인근 내륙지역(해남, 강진, 장흥, 무안 등)에서 입도한 새로운 이주민에 의해 조성이 되었는데 가옥 역시 이러한 마을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도서지역 가옥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마루' 다. 마루가 곡식 등을 저장하는 곡간 역할을 하는 것은 다른지역과 같으나 더 중요한 것은 이곳이 조상의 위패를 모신 제사공간의 역할을 함께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마래 옆으로는 작은방 등 어떠한 실도 꾸미지 않았는데 이는 이곳이 가옥내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매우 신성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방 다음의 두 번째 방(작은방)은 정지 앞쪽 모퉁이(모퉁이에 있다고 하여 '모방' 이라고도 함)에 두거나 아니면 측면에 둔다.
도서지역의 가옥은 바람이 많은 관계로 일반적으로 집 높이가 낮고 굴뚝도 낮게 설치된다.
굴뚝이 토방에 구멍 정도만 나 있는 경우도 있고 아에 건물 내부 정지 한쪽에 두는 집도 있다. 돌로만 쌓은 담장(강담) 또한 바람막이 역할로 높이가 매우 높다.
산간지역의 가옥 :
산간지역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지가 대체로 적고 연평균 기온도 낮기 때문에 가옥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대지가 평야지대에 비해 넓지 않고 건물도 개방적이기 보다는 다소 폐쇄적으로 지어졌다.
전남의 산간지역으로는 소맥산맥과 노령산맥 줄기가 이어져있는 구례, 화순, 담양과 장흥의 일부지역을 들 수 있다.
산간지역에서 특히 주목되는 집으로는 사람이 거처하는 방 2개와 정지, 도장방으로 꾸며진 정면 3칸집이다.
특히 도장방과 작은방이 한쪽 측면에 위아래로 자리하는 겹집 형식은 전남의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주목되는 부분이다. '도장' 이란 호칭은 벼 도(稻)에서 나온 지푸라기가 있는 곡식들을 일컫는 것으로 주로 곡식창고란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귀중한 곡식을 두는 공간이 안채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것이다. 한편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쪽의 평야지대 가옥 앞쪽에 넓게 꾸며지는 툇마루는 이곳에서는 안방 앞으로만 좁게 들어선다. 이상과 같은 가옥은 전남지방 뿐만 아니라 태백산맥(영월지방 등)에서 소백산맥(남원,순창 등)에 이르는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데 즉, 추운지방에서 작은규모로 지혜롭게 지은 집으로 여겨진다.
지역별 평면유형 체계
유형
명칭
분포지역
평면구성 키워드
평면특성
형성요인
기타
Ⅰ
서남부 평야형
나주, 무안, 함평, 강진 등
정지방
3번째 방을 정지 앞쪽에 배치
영산강유역의 농업중심. 평야지대
다양한 평면유형 다양한 규모 (3·4·5간)
Ⅱ
서해 도서형
신안, 진도, 서남해연안 (영광, 함평, 영암, 해남 등)
마루
마루 위쪽에 어떠한 실도 배치안함. 정지쪽으로 방이 모아짐.
도서성 (보수, 격리, 해양성), 민속신앙, 마래를 신성시
평면형이 확연히 드러남
Ⅲ
남해 도서형
완도, 흑산도
마루
모방이 정지 앞이 아닌 측면에 위치
도서성 (보수, 격리, 해양성), 민속신앙, 마래를 신성시
평면형이 확연히 드러남
Ⅳ
남부연안 및 동부형
순천, 여수, 광양, 고흥, 보성, 장흥, 강진 등
-
'ㅡ' 자형 홑집 개방형
평야지대 따뜻한 기후
도서 지역만 제외하고 전남지역에 고루 분포 3실형 (정지+방+방)
Ⅴ
산간형
구례, 곡성, 화순, 담양, 장흥 일부
도장방
한쪽이 겹집화 (상·하로 실) 툇마루 발달 미비
산간지형 추운기후
(정지+안방+도장방+작은방) 평면형도 많이 보임
유형 Ⅰ∼Ⅴ는 지도상의 Ⅰ∼Ⅴ번 그림을 뜻함
전남지방도 조선 중·후기부터 특정 성씨들의 활약으로 번창한 동족마을이 형성되었고 그곳엔 어김없이 종가와 함께 큰 규모의 한옥들이 들어섰다.
이들 가옥은 관직에 있었던 사대부 가옥도 있으나 토지에 의해 부를 이룬 계층의 집도 있다.
그 중 역사적으로나 건축적으로 돋보이는 문중의 가옥을 살펴보면 해남지방을 근거로 한 해남윤씨(海南尹氏)가옥, 장흥 관산지방의 장흥위씨(長興魏氏)가옥, 나주 도래마을을 중심으로 한 풍산홍씨 가옥, 보성지방의 광주이씨(廣州李氏)가옥, 화순월곡의 제주양씨(濟州梁氏)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개별적으로 현존하고 있는 상류주택(구례 운조루 등)도 많이 있으나 문중중심으로 발달한 가옥들은 나름대로 고유의 건축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이 지방의 중요한 민속자료가 되고 있다.
전남지방 상류주택의 가옥구조 개념은 다소 개별성은 있으나 건물구성이나 배치에 있어 큰 차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지배층 계급이라 할 수 있는 사대부들이 유교적 예제에 우선 생활의 근거를 두었고 이에 맞추어 정주공간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가령, 별동 형식의 사랑채와 안채의 분리, 신분계급에 의한 철저한 생활영역 분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안채의 기본형태는 시기가 다소 빠를수록 'Π형' 의 외형을 갖추었다. 영남 북부지대에서 나타나는 완전한 'ㅁ형' 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Π형' 앞에 부속채가 들어서 튼'ㅁ형' 을 유지하는 경우는 있다. 'Π형' 의 대표적 예로는 지금은 훼철되고 없어진 무안의 여산 송씨(礪山宋氏) 종가(17세기 초), 장흥 방촌마을의 옛 종가(17세기)와 함께 해남 녹우당, 구례 운조루, 윤두서 가옥 등을 들 수 있다. 'Π' 형 안채 중 장흥 방촌의 위성열 가옥은 매우 근본이 가는 건물이다.
이 가옥의 안채는 현재 정면 6간의 'ㅡ' 자형이다.
그러나 이 건물은 위성렬의 4대 조부인 魏啓文(1865-1950)이 1945년 11월에 같은 자리에 있었던 튼'ㅁ' 형 가옥('Π' 형 안채 앞쪽에 'ㅡ' 형 문간채)을 헐고 새로 지은 것이다. 본래의 튼 'ㅁ' 형 가옥은 1622년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즉 300년이 훨씬 넘는 오랫동안 익숙했던 전통적인 가옥구조를 새롭게 바꾼 것이다.
실로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ㅡ' 형으로 바꾼 이유는 튼'ㅁ' 형이 어둡고 또한 집의 규모에 비해 방의 수가 적었다고 한다. 실제로 'Π' 형에서는 방이 3개인 반면 새로지은 'ㅡ' 형은 방이 5개이다. 결론적으로 이 종가는 시대의 변화를 기능적으로 기꺼이 수용한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사례가 더 많이 있다면 조선 중·후기 사이에 많은 'Π' 형 안채가 전남지방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시기가 지나면서 19∼20세기에 지어진 안채는 완전한 'ㅡ자형' 평면으로 일관된다. 이 경우 사랑채가 문간 가까이에 건립되어 전체적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일축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ㅡ자형' 안채의 평면구성은 대개 측면의 정지(부엌)로부터 안방·대청·건너방 순으로 꾸며지고 전면에는 툇마루가 놓인다.
전면이 모두 넓은 안마당 쪽으로 개방되어 있어 'Π형' 형과 큰 대조를 보인다.
한편 뒤쪽으로는 퇴칸을 다소 넓게 하여 주실과 연결한 수장공간의 마련도 이 지역 가옥구조의 특징이 된다.
사랑채는 조선후기에서도 좀 늦은 시기에 건립된 경우는 완전히 안채와 분리되어 보통 대문간 가까이에 건립되었고 그 이전에 지어진 경우는 안채와 가능한 가까이에, 또는 연결된 상태로 지어졌다.
실 구성은 다른 지방과 유사하게 누마루 형식의 개방된 대청이 있고 이에 침실공간 등이 갖추어져 있다.
중부지방의 대표적 유형인 'ㄱ' 자형 한옥도 많지는 않지만 더러 보인다.
전남지방의 경우 'ㄱ' 자형은 조선 늦은 시기부터 20C초반 무렵의 근대화 시기에 주로 보인다.
후자의 시기에는 근대도시인 목포에 까지도 'ㄱ' 자형 한옥이 건립이 됐는데 당시의 건물은 유리와 벽돌까지도 사용한 개량한옥이었다. 'ㄱ' 자형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광 신호준 가옥 안채(19세기 중반), 나주 홍기응 가옥 사랑채(1904), 강진 조홍우 가옥 안채(1926)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