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시대에 소위 새로운 요리학을 하고 생활개선을 창도한 사람들이 덮어놓고 한국의 식생활을 봉건적이니 비현대적이니 비위생적이니 하고 그 문화적 본질을 찾아가며 올바르게 개혁을 꾀하지 못하고 세수대야(양재기)같은 데다 밥을 담아 공기밥을 먹어야 신생활인 줄 알고 왜식을 본딴 얼치기 문화를 주방에까지 도입시켰고, 해방 후 양식을 흉내내거나 미제 조미료를 사용하는 것이 음식문화의 현대화로 알거나, 현실에 맞지도 않는 영양분석이니 식품분석이니 과학적 연구니 하고 극히 비현실적인 메뉴를 제시하거나 한국인은 일찍 먹어본 일도 구경한 일도 없는 음식을 진열해 놓고 한국 음식 전시회를 하기가 일쑤다. 원래 과학적 연구란 하나의 체계있는 연구를 말함이요, 현실 분석과 원인 탐구에서 오는 하나의 법칙의 발견을 의미하는 것이다. 학생 실험실식 부분적 공식작업(學生 實驗室式 部分的 公式作業)이란 문장가가 말하는 이른바 스쿨그라마식 졸렬(拙劣)의 역(域)을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근자에 와서 갑자기 민족문화니 우리의 전통이니 고전미니 하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자, 음식에 있어서도 “구절판”이니 “신설로”니 하고 해묵은 음식을 자랑하려는 풍조를 보이고 있다. 그 나라 음식에 나타난 민족문화의 특색은 그런 진귀한 일품 요리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들 생활 양식의 구상의 표현인 정식의 구조에서 뚜렷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미(美)는 반드시 경주(慶州)의 금관(金冠)이나 경복궁의 용상(龍床)의 회문(繪紋)에서만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조(李朝)의 서민계급(庶民階級)이 사용하던 값싼 상다리나 뒤주 위의 백자(白磁) 항아리에서 더 뚜렷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한국 음식의 구수한 맛을 알려거든 뚝배기에서 끓는 된장찌개를 먹어 보고, 한국 주부의 요리 솜씨를 알려거든 가난한 주부가 파찬국 한 그릇을 대접과 보시기에 나누어 놓고, 하나는 탕국 하나는 침채에 대용시키는 구상의 솜씨와, 파다갱이(총백,葱白)를 다져서 실백잣의 대용품을 삼아 그것이 간장이 아니요 초장인 것을 알리는 그 안목을 알아야 한다.
한국 사람은 일찍 듣도 보도 못하던 사당패 옷 같은 소위 아리랑 저고리를 만들어 입고 창피하게도 외국까지 가서 한국의 의복이 칭찬을 받았다는 따위의 자기 모독을 각 방면에서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음식을 연구하려는 이도 우선 반상기 구조와 일상적인 메뉴에서부터 그 기본 원리와 특색을 살리고 한국문화의 공통 요소를 찾아 시대에 맞는 혁신을 꾀할 것이요, 해묵은 옛 음식의 한두 가지를 만들어 보이는 반빚아치 숙수의 솜씨를 자랑하는 데 그치거나 무비판적으로 외국 요리법을 본떠 얼치기 메뉴를 보일 것이 아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우선 옛 것을 알아야 하고 흘러간 생활을 한 번쯤 더듬어 보는 것도 결코 부질없는 회상만은 아닐 것이다. 굴뚝의 높이는 단순한 굴뚝을 위한 높이가 아니고, 온돌의 구조와 고래의 장광(長廣)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에 생활문화의 일환성(一環性)이 있는 것이다. 김치 한 그릇, 간장 한 종지의 크기와 놓이는 자리가 그 민족 전체 생활과 분리할 수 없는 일환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 비로소 우리 문화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또 아름다운 전통을 살리고 과감한 개혁을 꾀해 나갈 수 있지 아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