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손을 잡고/ 당신의 귀가를/ 기다렸던 역/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죠/ 셋이서 돌아오는 골목길에는/ 물푸레나무의 달콤한 향기/ 어느 집에선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노래// 그 역의 그 골목길은/ 지금도/ 잘 있을까’
‘추억Ⅱ’라는 시다. 시인은 시바타 도요. 나이가 무려 99세다. 도요씨는 지난 3월 생애 첫 시집 ‘약해지지 마’(아스카신서)를 냈다. 이 시집은 지금까지 70만부가 넘게 팔렸다. 일본에서 시집으로 이만한 판매량을 기록한 것은 지난 몇십 년 사이에 처음이라고 한다. 더구나 도요씨는 아마추어 시인이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 평생 여관 보조나 재봉 일을 해온 가난한 여성이었다. 90세가 넘어서야 시를 쓰기 시작했다.
도요씨를 만나기 위해 도쿄역에서 신칸센을 탔다. 북쪽으로 1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도치기현 우쓰노미야시. 외아들 겐이치(64)씨가 맞아줬다. 작고 낡은 단층주택, 서너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손바닥만한 거실에 도요씨가 앉아 있었다. 고령이라 언론 인터뷰를 삼가고 있다는데 한국에서 왔다니까 특별히 시간을 내줬다. 도요씨는 테이블 너머에서 눈으로 인사를 건넸다.
“시집이 이번 주 한국에서 출간됐습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다행히 질문을 알아듣는 기색이다.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내 시를 읽히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이뤄져서 기뻐요.”
목소리는 작았다. 대답은 길지 않았다. 허리는 기역자로 굽었고, 볼 주름은 입까지 늘어졌다. 그런데도 얼굴빛이 환하다. 입술엔 립스틱까지 엷게 칠해져 있다.
“화장은 오늘 특별히 하신 건가요?”
“아니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을 해요.”
도요씨가 한두 마디 간신히 말하면, 겐이치씨가 이어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젊을 땐 화장을 거의 안 하셨대요. 나이가 들면 남 보기에 미운 얼굴이 되니까 더 열심히 화장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아들 얘기를 들으며 도요씨는 가끔씩 고개를 끄덕였다.
도요씨는 주로 밤에 침대에서 시를 쓴다. 낮에는 자신을 돌봐주는 도우미가 오기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한다. 매주 토요일이면 아들이 건강을 살피러 집으로 찾아온다. 도요씨는 1992년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살아 왔다. 아들이 오면 쓴 시를 보여주고 낭독도 한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시를 다듬는다. 어머니와 아들은 간혹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고 했다.
“‘화장’이란 시가 있는데, 어머니는 ‘화장’을 ‘만들기’라고 쓰셨어요. ‘만들기’라고 하면 교토에서는 음식 만들기를 뜻하는데, 어머니는 화장의 의미로 쓰신 거예요. 어머니 세대가 쓰는 옛말인 셈이죠. 그래서 고쳐야 된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그냥 두라고 고집을 부리시더라고요. 결국 어머니의 표현을 그대로 썼죠.”
아들 겐이치씨는 말하자면 어머니의 시 선생인 셈이다. 겐이치씨는 10대 때부터 시를 써온 아마추어 시인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쇠약해져 취미로 하던 일본무용을 못하게 되자 시를 써보라고 권한 것도 그다. 겐이치씨는 “일본에서는 쉬운 말로 시를 쓰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어머니의 시는 우리가 알기 쉬운 말로 우리 마음을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시집에는 42편의 시가 실렸다. 시는 길지 않다. 어린아이들이 쓰는 동시처럼 단순하다. 가족이나 일상생활, 과거의 추억 등이 주된 소재로 사용됐다. 죽은 남편이나 친정어머니를 떠올리며 쓴 시도 있다. ‘아들에게Ⅰ’은 도요씨가 가장 아끼는 시.
‘뭔가/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를 떠올리렴// 누군가와/ 맞서면 안 돼/ 나중에 네 자신이/ 싫어지게 된단다// 자, 보렴/ 창가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해/ 새가 울고 있어// 힘을 내, 힘을 내/ 새가 울고 있어/ 들리니 겐이치’
도요씨는 “아들이 젊은 시절 회사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녔어요. 세상에 불평불만도 많았고. 그때 내가 아들에게 해준 말을 시로 쓴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도요씨는 시를 쓴 지 2년이 지난 후부터 여기저기 투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산케이신문 1면 최상단에 위치한 ‘아침의 시’ 코너의 주목을 받게 됐다. 아마추어들의 시를 선정해 소개하는 이 코너의 담당자는 솔직하고 따스한 그의 시에 반해버렸다. 그는 시집 출판을 적극 권했고, 시집이 나오자 서문을 맡아 쓰기도 했다.
아들은 시집 출간을 반대했다. 시집에 대한 독자의 무관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간비용도 문제였다. 도요씨는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준비해놓았던 100만엔을 아들 앞에 꺼내놓았다. 그리고 이 돈으로 시집을 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편지봉투 크기의, 표지도 제본도 없는 시집을 만들었다.
정식 출판된 책이 아니어서 서점에 진열되지도 못했다. 주문이 오면 한 권에 500엔씩 받고 우편으로 부쳐줬다. 초판 3000권은 1주일 만에 다 나갔다. 산케이신문 직원들도 이 시집을 구하느라 난리였다고 한다. 그렇게 팔린 게 1만부나 된다. 올 1월 마침내 도쿄에 있는 출판사로부터 출판 제의를 받았다.
아스카신서 편집자인 이가라시 아사코(46)씨는 “처음 1만부를 찍었는데, 1주일 뒤에 1만부를 더 찍었다. 지금까지 70만부를 찍었다”며 “올해 우리 출판사 최고의 히트작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집 판매량으로 보면 이전까지 일본 최고 기록이 30만부 정도일 것”이라며 “전후 최고인지는 모르겠으나 근래 20년간 이만큼 많이 팔린 시집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인기는 서점에서도 확인된다. 도쿄역 근처 4층짜리 대형서점 야에스북센터의 판매과장 우치다 도시아키씨는 “도요씨 책은 한 달 이상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유지했다”며 “이 서점에서 20년간 근무했는데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현재는 픽션분야 6위.
독자층은 대부분 60대 이상 여성이라고 한다. 이들은 남편과 사별하거나 자녀들 출가시키고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 도요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실의에 빠진 노부모께 이 책을 선물하는 자녀도 적지 않다. 이가라시씨는 “도요씨의 시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위로”라고 말했다.
“99세 노인이 혼자 사는 생활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고 용기 내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는다. 시가 주는 감동과 함께 독자들은 나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얻는다고 한다. 도요씨는 90세가 넘어 시작했는데 나는 이제 겨우 60세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도요씨의 글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가족처럼 옆에서 속삭여주는 느낌으로 읽힌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찾아 읽게 된다고 한다.”
‘…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표제작 ‘약해지지 마’는 시집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쉽고 다정한 말투로 두 가지 얘기를 전한다. 살아 있어서 좋았다는 고백과 약해지지 말라는 격려. 이 단순한 얘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순전히 작가 때문이다. 배운 것도 없고 가난했던 일생, 결혼에 한 번 실패했고 두번째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사는 여성,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는 노인, 누구나 겪었을 법한 질곡을 건너며 99세까지 살아온 인생의 대선배가 유언처럼 들려주는 얘기가 아니라면 그 말들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도요씨는 이 시를 꼭 제목으로 써 달라고 출판사에 부탁했다고 한다.
“사는 게 힘들어요. 이 나이가 되면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일조차 쉽지 않아요. 그래도 나도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 여러분도 죽지 말고 살아라, 이 얘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어요.”
겐이치씨에 따르면 도요씨도 다른 노인들처럼 “빨리 죽어야 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시를 쓰고 나서부터 그 말이 싹 사라졌다. ‘비밀’이라는 작품은 시 쓰기 이후 달라지는 마음의 풍경을 그려낸 것이다.
‘나 말야,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는 하지 않아// 98세라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꿔/ 구름도 타고 싶은걸’
도요씨는 “한 노인의 중얼거림이나 혼잣말 같은 것인데, 이게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니 놀랍고 고맙다”며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보내오는 편지와 엽서를 읽는 게 요즘 도요씨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동안 TV 출연도 여러 번 했다. 특히 지난 5월 후지TV에 시를 낭송하는 모습이 방송된 후 시집 판매가 부쩍 늘었다. 그의 시는 낫또 광고에도 나오고, 노인 상대 피싱사기 예방 포스터에도 쓰인다. 시를 달라고 조르는 잡지들도 줄 서 있다. 아사히신문사 계열 시사주간지 ‘아에라’의 노무라 쇼도 기자는 “90세가 넘어 창작활동을 하는 경우는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도 극히 드물다”며 “점점 더 많은 미디어가 도요씨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스카신서는 내년 도요씨의 100세 기념으로 두 번째 시집을 내자는 제안을 해놓고 있다. 겐이치씨는 “어머니가 새로 쓴 시가 30편 정도 된다”며 “앞으로 10여 편만 더 쓰면 시집 한 권을 또 엮어낼 수 있을 텐데, 내년까지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도요씨는 요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몸을 단장하고 집안 정리를 한다. 7시30분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공과금 납부나 장보기, 병원 진료 등 그날의 일을 챙긴다. 바퀴 달린 보조기구에 의지해서 이동한다. 도요씨는 시집 후기에 “혼자 산 지 20년.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씩씩하게 썼다.
그렇다고 해도 하루하루 육체가 쇠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도요씨는 인터뷰 중간에 잠깐씩 졸았다. 겐이치씨는 “글씨를 쓰는 것도 점차 힘겨워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손으로 시를 적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시간가량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도요씨가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푸른 혈관이 다 비치는 앙상한 손. 그 손으로 써낸 기적 같은 이야기가 지금 고령사회의 공포에 짓눌린 일본인들을 위로하고 있다.
우쓰노미야(도치기현)=글·사진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첫댓글 지진과 스나미로 힘들어 하는 일본, 99세 할머니 시인의 시를 통해 위로 받고 속히 어려운 시련을 극복하길 기원합니다.
예뿐 할매네.
참 고운 시네요.
쉬우면서도 가슴에 와 닿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