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수필 부산문학회
성 종 화
2010년 경으로 기억한다. 내가 수필 부산문학회에 입회한 시기가.
50년 동안을 절필생활(?)을 하였다. 공무원과 현재의 직(법무사)으로 종사하면서 글 쓰는 분야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그런 어느 날 ‘시와 수필사’ 계간지 발행인인 후배가 다시 글쓰기를 권하여 2007년경 수필을 쓰게 되었고, 그 시경 등단이라는 요식 절차까지 마치게 되었다.
실은 내가 고 2년생인 1956년도에 진주에서 개천예술제 행사에 즈음하여 발행되는 파성 설창수 시인이 주관하는 ‘영문’지 시 부문에 기히 추천을 받은 바가 있다.
‘영문’지를 주관하신 파성 설창수 시인의 명성이 높고, 전체 문단에서의 영향력이 대단하여서인지 당시 중앙문단의 내노라 하는 대단한(?) 문인들의 다수 작품이 이 ‘영문’지에 게재되었고, 그 아래쪽 지면에 내 이름이 추천 완료 대우를 받은 바가 되었다.
위 사실을 알고있는 나와는 고교 동기동창인 수필가 이유식 형이 내 ‘시와 수필사’ 등단행사에 축사를하면서 “늦은 것이 이른 것이다”라 하여 그 날 격려를 받는 사정이 되었다.
수필 부산문학회 회장직을 맡아 회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고 강중구 형은 나와는 진주에서 같은 해에 진주사범 과 진주고교를 수학한 동년배다.
중구 형의 권유로 우리회에 입회 하였다. 당시 회원 중에는 나와 과거 같은 공직생활를 한 존경하는 고향 선배이신 고 이기태 변호사가 남다르게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우리 회가 비록 지방이기는 하지만 그 오랜 역사와, 회지에 계속 발표되는 우수한 작품들과, 회원들의 전체문학회 발전에 헌신적인 활동으로 기여함이 오늘 우리회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회를 이끌어 오신 면면들을 보면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분들이고 자랑스러운 회라고 감히 자부한다.
그 사이 세월이 흘러서 오늘 100호 출판의 큰 잔치를 앞두고 내 고령의 나이가 이제 머지않아 이 자리를 떠나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하니 처연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다.
이제 훌륭한 회원 선배님들은 한 분 한 분 다 떠나시고 빈자리에 이 거룩한 잔치상을 앞두게 되면서 그 동안 우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던 내 자신의 지난 날의 모습을 새삼 되돌아 보게 된다.
자랑스러운 우리 수필 부산문학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여 마지않는다. 영원하여라!! 영원하여라!! 수필 부산문학회여!!
약력 사항
출생지 : 일본국 오오사카, 1938년 생
등단지 : 1차 ‘영문’지 1956년 2차 ‘시와 수필사’ 2007년
최종학력 : 진주 고교
수필 부산문학회 입회 : 2010년 경
문학관련 활동 : 한국문인협회, 부산시인협회, 수필부산문학회
문학관련 수상 : 없음
저서 : 늦깎이가 주운 이삭들, 노을녘 뒤안길에서 외 시집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