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벗어난 백두대간은 한참의 내리막길을 만들며 허리를 낮춘다.
그리고는 다시 고리봉(1,304.5m)을 향해 허리를 곧추세우기 전에
잠시 다리쉬임을 한다.
그 틈에 고개 하나가 대간을 가로지르니, 그곳이 바로 정령치(鄭嶺峙, 1,172m)이다.
남원과 지리산의 심원마을을 잇는 고개로,
기원전 84년 마한의 왕이 진한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정氏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고개를 지키게 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반야봉에서 흘러내린 능선과 그 아래로 달궁계곡이 소박하게 자리하였다.
정령치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해서 차에다 다~두고 내렸는데
눈 때문에 차를 통제 하는 바람에 고기리까지 가서 식사를
해야했다 배도 고프고 춥기도하고... 바람까지 잉잉대고 달려와
빈 나무가지 끝에서 목을 메고 있다.
정령치에서 고리봉 급경사 오름길의 거친 숨소리 끝에 지리 주능선이 따라 흐르고
숨가픈 오름짓...가파른 내림길을 50여분 1304m의 큰 고리봉에 닿는다
큰고리봉(1304m)
직진하면 덕두산 바래봉으로 이어지고(대간길에서 알바하기 쉬운 곳이라 한다)
대간은 왼쪽으로 90도 각도를 틀어 급경사의 내리막길 고기리로 내려 꽃힌다
한 시간여의 여의 급한 내리막길이 눈 길에 얼어 있어서
이번 구간중에 제일 힘들었던 곳이 아니었나 싶다.
큰고리봉의 가파른 내림길에서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양탄자 깔아놓은 푹신한 산길이 새벽 여섯시간의 지친 산객을 포근하게
달래준다....어쩜 산 길은 우리네 인생 길 하고도 많이 닮아있다
힘든 오르막이 있으면 편안한 쉬임도 있는 우리에 삶처럼...
그래서 우리는 산 을 찿는지도 모르겠다...거기엔...
길이 아니면 갈 수없는 인내와 희망도있고 마음이 어우러지는
따뜻한 사랑도 누워있었다.
사람이 그리운 걸까?
고리봉을 넘어선 백두대간은 도무지 대간의 등마루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평지로 몸을 바꾼다.
고촌...주촌...가재로 이어지는고기리 이다 (10시)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으로 마을이 완전히 불타버린 아픔이 있는
이 마을은
백두대간 마루금이 잠시 궁금한 세속으로 내려와서
작은마을 사람사는 이야기를 들어 주다가 다시 산으로 오르는
대문격인 마을이다
대간이 통과하는 동쪽은 운봉읍...서쪽은 주천면에 속해 한 마을이
두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마을이다.
* 운봉리로 넘어가는 다리에서 *
몇년전 역사탐방으로
유치마을에서...여원재...수정봉을거쳐 고기리까지 5시간을 대간길을 따라 내려와
이 마을에서 하루를 묵은적이 있었다
그때 묵었던 할머니댁을 찿아보고 싶어서 길가의 상가에 물으니...잘 모르겠단다
몇년사이에 변해 버린 동네가 많이도 낯설다.
고기리에서 아침겸 점심식사를 하고 1시간의 여유를 부리며 쉬어간다
나는 작년에 넘어온 수정봉 오름길을 포기하고 여원재마을에 들러
찿아볼 이야기가 있어서 운봉마을을 지나 여원재로 넘어갑니다.(11시출발)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3.blog.daum.net%2Fupload_control%2Fdownload.blog%3Ffhandle%3DMDQ2d0RAZnMz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NzEuanBnLnRodW1i%26filename%3D71.jpg)
*노치샘*
마을 뒷산에는 삼국시대에 축성된 노치산성이 있고
전국에서 물 맛이 가장 좋다는
노치샘이
대간길에 지친 산객들의 목을 추겨주며 잠시 발걸음 거두워주는 따뜻함도 있다.
* 주촌면...운봉리 갈림길 *
마을을 지나며 이집 저집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게 하는 마당엔
새깨줄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시래기 한 다발이 춤을 추고 있었다.
가제 마을에서부터 백두대간은 다시 산을 오른다.
그러나 냉큼 산을 오르지 못하게 하고 잠시 쉬어 가라며 산객의 발 길을 붙잡아 두는
아직은 이른봄의 ...솔향 가득한 아름들이 소나무 숲이 있다
범접하기 힘든 위엄을 갖춘 우람한 소나무 사이로 산신을 모셔둔(비석) 곳이다.
* 수정봉에서 백두대간 무사 안전기원제 *
지리산 청왕봉을 시작으로 장장 680km의 우리의 등줄기를 밟아 내려와
진부령의 마지막 날머리에 설때 까지
대장님과 함께하시는 님들 모두에게 희망의 날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화~이~팅~~~입니다....!!!
가재마을에서 수정봉(804.7)을 지나 고남산(846.4)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오른쪽으로는
크고 작은 마을들이 펼쳐져 있다.
운봉(雲峰)!
이름만 들어도 한 무리의 구름이 눈에 어른거리는 듯한 바로 그 고을이다.
고원에 자리잡은데다 세걸산, 바래봉, 덕두산의 줄기를 병풍처럼
두른 탓이어선지
구름을 하늘 삼아 판소리 한마당이 걸찍하게 퍼져 나올것 같은
동편제의 탯줄이다
발성이 가볍고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는 서편제와는 달리
무거운 발성에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는 씩씩하고도 호쾌한 소리가
바로 동편제이며
조선 순조 때의 명창인 송홍록 송광록 형제로 이어지는 동편제가
이곳 운봉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명창 박초월의 생가가 남아
변함없이 소리를 찿는 이들의 끈이 되어주고 있는고을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에선 사람도 한 그루의 나무이더이다.
나이가 들어 갈 수록 자연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기때문이라고....
다시 눈을 돌리면
운봉읍의 머리쯤 되는 곳에 자리잡은 황산(黃山)을 만나게 된다.
이성계를 조선의 태조가 될 기반을 마련해 준
황산대첩(계백 장군과 관계 있는 황산벌은 논산에 있다)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고려 말기인 우왕 6년(1380) 침입한 왜구는 충청, 전라, 경상 3도 연안을 유린하기 시작했는데
잔혹한 만행을 저지르면서 북상하여 9월에는 운봉에까지 이르게 된다.
적장의 나이 겨우 15세인 아지발도...
당연히 아지발도를 우두머리로 한 왜구는 섬멸되었고,
아지발도가 죽은 자리는 지금도 붉은 빛이 선연하여 피바위로 불리고 있다.
지금도 운봉의 토박이 열가운데 아홉은 할아버지 이름은 몰라도 아지발도는 다 안다
거의 "아스팔트" 로 불리우는 어린 왜장의 이름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라 아예
귀에 박혀 버린 탓이려니...
여원재 내림길의 풍경들...
수정봉을 내려선 백두대간은 "운성대장군"의 환영을 받으며
또 한번 자신의 허리를 밟고 지나는 포장도로를 만나게 된다.
남원에서 함양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
백두대간을 넘는 고갯마루인 여원치(女院峙)가 거기에 있다.
여기에 참으로 비극적인 전설이 어려 있으니....
왜구가 노략질을 일삼던 오랜 옛날, 꽃같이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주막을 열고 있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왜구 몇놈이 주모에게 달려드니, 차마 왜구의 노리개가 될 수 없었던
주모는
그만 자신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말았단다.
비록 저녁마다 사립에 붉은 등을 내다 거는 몸일망정 어찌 왜구의
노리개가 되랴고
벼린 칼로 스스로 제 가슴을 도려내어 죽었으니...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6.blog.daum.net%2Fupload_control%2Fdownload.blog%3Ffhandle%3DMDQ2d0RAZnM2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ExLmpwZy50aHVtYg%3D%3D%26filename%3D111.jpg)
그녀의 상여가 넘어 가던 고갯마루 길섶에 돋을 새김으로 미륵이 되어버린 여인...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7.blog.daum.net%2Fupload_control%2Fdownload.blog%3Ffhandle%3DMDQ2d0RAZnM3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E4LmpwZy50aHVtYg%3D%3D%26filename%3D118.jpg)
*길을 안내 해준 할머니의 손녀딸과 함께*
이 석상을 찿으려고 마을을 돌아 다녔으나 찿질 못하고
구도인님이 마을 할머니댁을 찿아가 겨우 물어본 뒤에야
할머니의 안내로
길 숲에 숨어 있었던 석상을 찿을 수가 있었다.
할머니 얘기로는
그 여인의 성이 박씨(朴氏) 였으며 가슴이 아니고 팔을 잘랐다고 하더라는 얘기도...
아무튼 어떠리....지금처럼 가벼운 세상에
그 여인이 지조 굳은 우리의 선조 였씀이 가슴 뿌뜻할 뿐.................*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6.blog.daum.net%2Fupload_control%2Fdownload.blog%3Ffhandle%3DMDQ2d0RAZnM2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EyLmpwZy50aHVtYg%3D%3D%26filename%3D112.jpg)
* 이성계의 꿈속에 나타나 전승의 날짜와 전략의 계시를 내려 주었다던 여인석상...*
후에 이성계는 이노인이 필시 산신령이라 여기어 노파를 만났던 고개마루 석벽에
여상(女像)을 새기고
그위에 산신각을 지어 보존케 했다는데
도로가 뚫리면서 산신각은 없어지고 석벽에 조각상만
세월의 바람따라 흐르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무디어져 가고 있었다.
이 석상의 여인 조각은 할머니 말씀대로 한쪽 팔이 잘려나간 형태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5.blog.daum.net%2Fupload_control%2Fdownload.blog%3Ffhandle%3DMDQ2d0RAZnM1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NTUuanBnLnRodW1i%26filename%3D55.jpg)
주지사 전망대의 바위 꼭대기에 하얀 십자가 가 보인다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성계가 그 여인을 위해서 하사한 것이라고 그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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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후기 올리신 이분은 닉이 샤모니님 나이60새(여) 북이면 사거리에서 태어나시여 현재우리산악회 고문이십니다~
나이60에 어쩜 이렇게 멋진글을...정말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