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회... 그리고 이별... 그리고... 기다림...
Nocturne story op. 59
아침부터 이상하게 서둘러대는 분타의 행동에..
키리하라와 지로는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며칠전에 문득 분타가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가자며..
말을 꺼내긴 했지만.. 지금생각해 봐도.. 그때 이후로 분타의 행동이 이상해지긴 했다.
뭔가 멍한듯 한 표정이나.. 키쿠마루를 바라보며 울고있는것 같기도 하고..
몇번씩 말해도 못알아 듣는 거하며 가끔씩 입술을 꽉깨물며 중얼거리기도 한다..
가끔씩 키리하라와 지로가 그의 행동이 너무 이상해서..
어깨를 툭 치며 우스갯 소리로 묻곤 했지만..
분타는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 심각해져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이리저리 정신없는 그의 행동에..
키리하라와 지로뿐아닌.. 미즈키도 조금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분타군..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나요?"
뜬금없는 미즈키의 말에 순식간에 분타의 행동이 멈추고..
뒤돌아선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럴리 없지 않냐며...
미즈키에게 변명아닌 변명을 해대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 어색했다..
이상하게도 조용한 키쿠마루 까지.. 무슨일인지 일어날것만 같은 아침이었다.
"..그럼 출발해 볼까.."
미리 빌려다 놓은 렌트카 운전석에 턱하니 앉아 크렉션을 눌러대는..
지로의 행동에 키리하라가 시끄럽다며 그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여전히 조용히 웃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미즈키나...
너무나 조용하게 조금은 흔들리는 눈빛을 한 키쿠마루..
그리고... 너무나 불안한 눈빛을 한 분타...
그렇게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무카히 가쿠토..?"
- 잘들어 분타.. 며칠안으로 오시타리가 찾아갈꺼야.. 오늘 당장 출발한다고 해도..
아직 며칠동안의 여유가 있으니까... 당장 그를 데리고 LA를 떠나..
다른 나라라면 더 좋지만.. 무조건 LA는 벗어나는게 좋아..
니가 정말 키쿠마루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넉놓고 오시타리에게 뺏기지는 않겠지..
뜻밖의 전화에 분타는 온몸이 사시나무같이 떨리는걸 느꼈다..
그가 드디어 키쿠마루를 찾은건가... 오시타리 유시가..
오시타리는.. 결국 키쿠마루를 찾으러 올것인가..
이빨이 딱딱 부딪쳐 오고 알수없는 한기에 몸이 싸늘해졌다..
보낼수 없어... 보낼수 없어.. 에이지....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꾹꾹 참으며 그의 얘기를 마저 들었다..
"..키쿠마루를 오시타리에게 보내면.. 내가 그를 죽일꺼야.. 마루이.."
그 역시 눈물 가득한 목소리...
분타는 아무런 말도 할수가 없었다..
독기에 가득찬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하는 가쿠토가 전화를 끊어버릴때까지..
분타는 단 한마디도 그에게 어떤 대답을 해줄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심장 구석에서 부터 차고 올라오며... 아프게 내리누르는데도..
그는 끊어진 전화를 붙잡고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멍하니 서있는 분타에게 키리하라가 다가와서 어깨를 두드릴때까지..
입술을 깨문채 입을 막고 있는 분타는...
결국 생각해낸 방법이라고는 키쿠마루를 데리고 도망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난......... 지금 널.. 보낼수가 없어...에이지..
도저히.. 지금... 보낼수가 없어....
굳게 결심한 분타의 눈이 떨려왔다..
자꾸만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참아.. 억지로 입술을 깨물고..
힘이 빠져 나간 주먹을 간신히 꼭 쥐었다..
이미 LA국제 공항에 도착한 오시타리 일행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이미 주소에 적힌 산타모니카 해안으로 출발한 후였다..
뒷자석에 앉은채 LA의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만 피워대는 오시타리의 눈에는..
알수없는 떨림과 함께... 긴장감이 드러났다....
오시타리가 이미 일본에서 부터 들고온 키쿠마루의 바이올린을..
그는 무릎위에 놓은채 담배를 피우지 않는 다른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그 옆좌석에 앉은채 손톱만 물어뜯는 가쿠토에게도 불안함이 옅보였다..
보조석에 앉은채 백미러로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오시타리 역시 표정이 별로 좋진 않았다..
며칠전 분타에게 전화를 했던 가쿠토의 일은 결국 오시타리에게 전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미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겼을수도 있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오시타리 역시 가쿠토와는 다른 불안함을 느꼈다..
결국 공항에서 산타모니카 해안까지 가는내내 그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원스러운 바다가 펼쳐진 해안도로를 따라..
해안의 조금 외각쪽에 드디어 오시타리를 실은 고급 승용차가 멈춰서고..
먼저 쵸타로가 보조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해안 절벽에 위치한 별장과 같은 그림같이 예쁜 집이 눈앞에 보이고..
앞으로 뻥뚫린 것 같은 푸른 바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쵸타로는 걸음을 옮겨 현관쪽으로 걸어갔다..
너무나 조용해 파도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집이었지만..
분명... 안에는 아무도 없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방금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이 너무나 역력했다..
쵸타로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현관의 문을 살짝 밀어 보았다..
역시나 잠겨있는 문은 열릴 생각도 하지않고...
또다시 절망감이 머리속에 멤돌았다..
"..아무도 없는것 같습니다.."
쵸타로가 전해온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말에 오시타리는
잡고 있던 바이올린을 더욱 세게 쥐었다..
너무도 상반된 오시타리와 가쿠토의 표정..
쵸타로는 힐끔 곁눈질로 가쿠토를 보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그 어떤 말을 하겠느냐만은..
절망감 가득한 오시타리를 보면.. 또다시 그를 찾아 헤멜.. 오시타리를 생각하면..
그에게 또다시 무슨 짓을 한건지.. 가쿠토는 절대 알수 없을 것이다..
"....저녁때 돌아올지도 몰라.. 기다리겠다.."
이미 분타가 데리고 가버린 키쿠마루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쵸타로는 오시타리의 너무도 당연한 대답에..
깊숙히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분타.. 나 돌아갈래.."
오늘 아침 한마디도 하지 않던 키쿠마루가 갑작스럽게 꺼낸말은..
여행을 위해 출발한지 얼마안된후에 돌아가겠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분타의 얼굴이 더 사색이 되어 질려가고 있었고..
키쿠마루를 달래는 미즈키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돌아갈래.. 지로.. 차 돌려.."
"..안돼.. 돌아갈수 없어.. 에이지.. 지로.. 그냥가..."
울듯한 키쿠마루와는 달리 하얗게 질린 얼굴로 너무도 완고히 말하는
분타의 모습에 키리하라와 지로는 당황했다..
알고있는거야? 에이지? 그가 오는걸 알고있는거야?
그래도.. 안돼.. 돌아갈수 없어...
"...분타.. 돌아갈래.."
"..에이지.. 무슨 일 있나요? 갑자기 왜그래요.."
"..미즈키.. 돌아가자.. 에이지.. 돌아갈래.."
하지만 아무말 없이 입술을 깨문 그의 표정이 상당히 많이 불안해 보였다..
할수없이 눈치를 살피던 지로가 차를 돌리려고 급커프를 돌릴때였다..
"...돌아갈수없어!! 그냥 가!! 지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분타의 행동에 지로는 깜짝놀라 그대로 급브레이크를 밟고 말았다..
"..무슨 짓이야? 분타!! 지금 사고가 날뻔 했잖아.."
화가난 키리하라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쳤다..
말 그대로 정말 사고가 날뻔한 위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분타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흥분한듯 숨을 내쉬고 있었다..
"...분타..?"
"..아카야.. 제발.. 아무것도 묻지말고.. 그냥가.. 제발.."
멍한 시선으로 말을 내뱉는 분타의 모습을 보며.. 키리하라는..
그 옆에 앉은 키쿠마루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많이 불안한 그 시선은 키쿠마루도 마찬가지였다..
"..지로.. 그냥 출발해.."
하지만 키리하라는 분타를 믿어보기로 했다..
다시금 그들을 실은 차는 출발하고.. 더 불안한 시선이 되는 키쿠마루는..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에이지?"
"..돌아가.. 돌아가 분타.."
"..에이지?"
미즈키가 당황한듯 서둘러 키쿠마루를 달래주었으나..
마구 떨어져 키쿠마루의 얼굴을 적시는 눈물은 멈출생각을 하지 않는다..
분타역시 울고 싶은 마음에 입술을 더 세게 깨물었다..
어떻게 알수가 있어... 에이지..
그가 오는걸 어떻게 알수가 있어..
왜.. 내가 아니고... 그야?
내가 더 먼저 사랑했는데...
왜... 내가 아니고.. 그야?
"..돌..아..갈..수 없어... 에이지.."
분타도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목을 타고 넘고 올라오는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지고 있었고..
눈앞을 뿌옇게 흐리는 눈물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키쿠마루는 매정하게도 몸을 돌려 분타의 여린몸을 마구 흔들었다..
"..제발... 제발.. 돌아가.. 분타.."
"..돌아갈수 없어.. 에이지.."
"..흑흑.. 돌아가 분타.."
"..안돼.. 절대..가지 않아.."
울고 불고 분타의 몸을 흔들어 대는 키쿠마루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를 악문채 참아내는 분타..
한참을 마구 울며 매달리던 키쿠마루가 스르륵 손을 놓으며 하는 말은..
분타를 무너지게 하는.... 단하나의 이름....
"...흑흑..그가와.. 분타.. 에이지의 바이올린을 가지고.. 그가.. 와... 흑흑.."
"...에..이지..?"
"..흑흑.. 보게해줘.. 한번만 그를 보게 해줘.. 보고싶어.. 너무 보고싶어.. 흑흑.."
끼이익~~~
키쿠마루의 말에 달리던 차가 급브레이크로 정차했다..
이미 지로와 키리하라의 눈도 커진채 분타와 키쿠마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영문을 모르는 미즈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할 뿐이다..
"..그라니... 그라니? 도데체 무슨 소리야? 분타.."
키리하라가 분타에게 닥달해 보지만 여전히 아무말 없는 분타는
결국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통곡을 했다..
"..그라니.. 그가 온다니.."
그제서야.. 며칠간의 분타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도망치듯 집을 나온것도 설명이 된다...
분타는 이미 그가 올걸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런데.. 키쿠마루는 어떻게 알게 된거지...
혹시... 예감이란 건가....
한사람이 행복하면.. 또다른 사람은 불행해 질수 밖에 없다..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공식같은 것인데도..
결국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버린다..
후회해도.. 이미 모든건 늦어버린 후고..
빠져 나올수 없다고 느꼈을때.. 더 깊이 빠져버리는건..
너무도 깊은 회한으로 남는다...
사랑한다... 너무나 사랑해서... 미칠것 같다..
하지만.. 나에겐 언제나 기회조차도 주지않고..
떠나가 버린다......
이것이... 나.. 마루이 분타의 사랑....
한참을 고개를 숙이며 울던 분타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고..
그는.. 너무나 쉰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말했다..
"...오시타리.. 유시.."
라고..............
Nocturne story op. 60
발악같이 울먹이는 소리에.. 돌아갈수 밖에 없었다..
이번엔 차를 돌리는데도 분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멍한 시선끝으로 풀린 동공으로 창밖만 바라보는 분타의 눈치를 보는..
키리하라나 지로도 어쩔수 없는 키쿠마루의 선택에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그래.... 우리 자린 여기였지..
우린.. 어쩌면.. 아주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을지도....
미즈키에 기댄 키쿠마루의 몸도 떨려오고..
미즈키도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힐수가 없었다..
에이지.. 당신은 도데체.. 어떻게 살아온건가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으로....
이런 사창가에서 뒹굴며 죽을뻔한 일도 있고..
조직의 보스와 얽혀있는 그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건가요....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모든게 다 감춰져 있는 느낌입니다...
항상 이야기하는 후지와 사에키라는 사람도 그렇고..
어느 하나.. 당신주위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하나도 연관이 되지 않는데도..
묘하게.. 눈물속에 얽힌 그 현실이 어울리는 사람..
당신이란 사람은.. 도데체.. 어떻게 살아온건가요...
키쿠마루.. 에이지...
큰눈속에 슬픔을 담고.. 산타모니카 해안도로가 가까워질수록..
키쿠마루 에이지의 떨림은 더해져만 갔다..
답답한듯 키리하라가 열어놓은 앞좌석의 창문을 통해..
매일같이 맡아오던 짭짤한 바다내음이 맡아졌다..
산타모니카.... 우리들의 꿈을 담은 바닷가...
이젠.. 이별을 할 장소인가....
끼이익~
너무도 익숙한 해안가 자신들의 집앞에 차를 주차하는 지로의 손이 떨렸다..
눈앞에 보이는 고급 승용차의 앞에 서서 들어오는 차를 바라보는 쵸타로의 모습이..
너무도 커다랗게 눈의 망막에 맺혀만 간다..
어쩌면 돌아오는 내내... 거짓말이기를.. 바라고 또 바랬을지도 모른다..
키쿠마루의 예감이 틀린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너무도 당연히 집앞에 서있는 그의 모습과..
저 고급 승용차 안에 타고 있을 오시타리의 모습은..
모든걸 현실속으로 돌려놓는다...
지독한.... 인연이군.. 이젠 넌더리가 날 정도다...
지로의 손이 핸드브레이크를 내리자 끼이익 하면서 완전히 차가 정차했다.
먼저 차에서 내린건 초조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던 키리하라 였다..
그의 눈초리가 조금은 싸늘하게 바뀌어져 있었다.
키리하라 아카야.. 언제나 개구진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역시 뒷세계에서는 알아주는 존재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눈빛만 봐도 그렇다..
바로... 지금처럼...
"...쵸타로.."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키리하라에게 살짝 목례를 하는 쵸타로는
그를 오시타리가 탄 쪽의 승용차 쪽으로 안내했다..
키리하라가 다가오자 마자 내려지는 창문으로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오시타리의 옆 얼굴이 들어나고
그의 옆얼굴을 보자 마자 키리하라는 인상부터 찡그리고 말았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야... 오시타리 유시... 넌... 말이지.."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이를 악물고 있는 가쿠토의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에 키리하라는 입꼬리를 말아올려 살짝 비웃었다..
그 비웃음이 싸늘히 빛나는 눈초리에 더욱 차가운 인상을 심어준다..
다 니생각처럼 되지 않겠지.. 가쿠토..
처음 니가 키루마루를 미국으로 보냈을때처럼..
그렇게 되지 않아서 화가 나겠지..
분타에게 연락을 미리 해놓으면 분타가 그를 데리고 도망칠꺼라고..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분타는...
울며 매달리는 키쿠마루의 존재를 무시할정도로..
독하지가 않아서 말이지...
차라리.. 데리고 도망이라도 쳤으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분타는.. 그 앞에서는 모든지 희생해 버리는 바보야..
그걸.. 모른거야... 넌..
바보같은 사랑을 하는 분타를...
가쿠토.. 넌 절대 알지 못해....
달각..
어느새 열어버린 지퍼라이터의 끝으로 붉은 불꽃이 올라오고..
지이익 소리와 함께.. 입술끝에 문 담배에 불이 붙여졌다..
곧 매케한 담배연기가 키리하라의 후각을 자극시키며 맡아진다..
"...두말하진 않겠다.. 그는 어디 있는가.. 키리하라 아카야.."
살짝 내리깐 눈썹에 비치는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
안경속에 감춰져야 할 그 시선은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키리하라에겐..
절대 감출수가 없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키리하라의 눈빛도 떨려왔다..
"...조건이 있어.. 오시타리.."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어울리지 않는 쇳소리에 키리하라가 깜짝 놀라버렸다..
자신답지 않게 긴장한다고 생각했다...
"...뭔가..?.."
담배연기를 내뱉는 그의 눈은 여전히 살짝 내리깔고 있었으며...
여전히 시선의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키리하라는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친구인 분타가 있을
그리고 오시타리가 애타게 찾는 키쿠마루가 있을..
그 자동차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선택은... 그가 했으면 좋겠어... 키쿠마루 에이지가.."
비집고 나온말에... 키리하라 자신도 놀라 버렸다..
잠시 담배를 잡은 손을 멈춘 오시타리도 ...
멍한 눈빛의 가쿠토도....
지켜보고 있는 지로와 미즈키도...
입술만 깨물고 있는 분타도...
눈물만 뚝뚝 떨구는 키쿠마루도...
한순간의 시선이 키리하라에게 와 닿았다...
이미 결정은 난 거야.... 아카야...
돌아왔을때... 모든 결정은 나 버린거야..
너도 잘 알잖아...
알아.. 알지만....
이대로 보낼순 없잖아...
너.. 키쿠마루 보내고 살수 없잖아..
아니야? 이 병신같은 자식아?
분타.. 이 바보같은 놈아...
한참동안 공중에서 멈춘 시선들은 달각 소리와 함께..
차문이 열리며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오시타리 때문에..
한순간에 흩어져 버렸다..
깔끔한 회색 정장위로 약간 긴듯한 머리가 휘날리며...
묘한 어울림을 내고 있었다...
입술끝에 여전히 물려 있는 흰 담배와...
그의 한손에 들려진... 키쿠마루 에이지라고 쓰여있는..
그의.... 바이올린.....
오시타리의 모습에 분타는 더욱 세게 입술을 꽉 깨물뿐이다..
옆으로 닿은 몸에서 느껴지는 키쿠마루의 심한 떨림에...
자꾸만 눈물이 날것 같았다..
멋있는 사람이야... 오시타리...
어릴때 부터 봐왔지만..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훗... 처음부터... 승패는 난걸지도 몰라...
난 이미 자격조차 없었는걸...
"...그..렇지.. 에이지..?"
조금은 희미하게 웃는 분타에게서 슬픈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키쿠마루는 오시타리의 손에 들린 바이올린을 보자마자..
이젠 꾹꾹... 소리까지 내며.. 울고 있었다...
"...에이지..괜찮나요?"
아무래도 걱정스러운듯 키쿠마루의 얼굴 이곳저곳을 만져보는
미즈키의 얼굴색도 상당히 좋질 않았다..
열이 난다.... 아주 많이....
이미 달아오른 키쿠마루의 흰 얼굴은...
아주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키쿠마루는 가까스로 눈물을 닦으며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있는 분타에게.. 손을 뻗었다..
키쿠마루의 손에 의해 분타의 붉은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두손에 가득 잡힌 분타의 얼굴이 키쿠마루를 향했다..
"...날봐... 분타.."
마구 흔들리는 키쿠마루의 시선이 분타의 시선과 마주하자..
분타는.. 가슴이 메어질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보내고 싶지 않아... 보내고 싶지 않아..에이지..
하지만 분타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들어...
키쿠마루의 얼굴위로 쉴새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뿐이었다..
"...울지마... 바보야... "
"....흑흑.. 미안해......분...타.."
또르륵......
미안하단 한마디로.. 날 이렇게 까지.. 밀어낼수 있을까..
그렇게 꾸욱 참았던 눈물이 흘러버리자..
분타는 그만 두눈을 감아버렸다...
이젠...... 보낼수 밖에... 없는거지...?
"...흑흑... 정말.. 미안..해.. 흑흑.. 미안해.. 분타.."
"울지마.. 바보야.. 울지마.. 니가 울면 난.. 널 보낼수 조차 없잖아.."
"..흑흑.. 분타.. "
"...정말.. 정말로.. 처음봤을때부터.... 지금까지... 사랑했어...
널 안은 그날도..... 난..... 그 마음만 가지고.... 널 안았어.."
"....흑흑... 분타....흑흑.."
"...잊지마.. 에이지... 절대...잊지마.."
"...흑흑... 응... 응.. 잊지않아.. 에이지.. 흑흑.. 잊지 않을께.."
".....사랑해.... 정말 너무.. 사랑해..옛날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꺼야.. 그거.. 잊지마.. 잊으면 안돼..."
"...흑흑... 흑흑.."
"....사랑해...에이지...."
"..미안해.. 분타... 흑흑.. 정말.. 미안해.."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하는 고백이다..
왜 처음부터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정말.. 지독한 겁쟁인 나였는지도...모른다..
분타는 미안하다고 우는 키쿠마루를 도저히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대로 키쿠마루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서 도망치듯 내려버렸다..
내리자 마자 가장 먼저 보인건.. 키쿠마루의 바이올린을 들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오시타리...
그 역시 안타까운 눈을 하고 있지만...
분타는 그 모습조차.. 슬퍼보일뿐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오시타리에게 다가가는 듯한 분타의 얼굴에..
쉴새없이 눈물이 떨어져 내리고...
오시타리의 앞에 선 분타는 그 앞에서 아주 힘없이 웃고 말았다..
"...미안하다.. 마루이 분타.."
오시타리의 입을 통해 나온.. 에이지와 같은말..
난... 졌어... 난 진건데.. 왜 나한테 다들 미안하다고 그러는거야...
그런말... 듣기 싫어.... 듣기 싫어...
휙 하고 오시타리를 지나친 분타의 행동에 오시타리의 눈이 커지면서 뒤를 돌았다..
이미 자신이 타고 왔던 차앞에 서있는 분타는.. 그대로 뒷자석의 문을 열어버리고는..
그 안에 앉아있는 다른 한 사람의 멱살을 잡아 끌어냈다..
"...가쿠토님.."
"...분타.."
놀란 쵸타로와 키리하라가 당황해서 분타에게 재빨리 다가갔지만..
눈물을 머금은 분타의 말이 더 빨랐다..
"..에이지를 죽이면.. 난.. 널 죽일꺼야.. 무카히 가쿠토.."
커진 가쿠토의 눈속에 보이는 눈물을 머금은 분타의 눈동자..
자신과 같은 눈동자... 자신과 같은 영혼...
넌 비겁자야 마루이 분타.....
사랑한다면... 보내지 말았어야 해..
그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길이었어..
넌.. 지독한 비겁자야...
스르륵 팔을 놓자 가쿠토의 몸이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재빨리 다가간 쵸타로가 쓰러진 가쿠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윽고... 지로가 운적석에서 내려...자신의 뒷자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한발 발을 내딪으며 미즈키가 차에서 내렸고..
미즈키가 뻗은 손을 잡고... 붉은 머리의.. 키쿠마루 에이지가..
온통 흔들리는 눈빛을 한채.. 차밖으로 모습을 들어냈다..
조금 길어진 붉은 머리를 얼굴위로 늘어뜨린...
곱게 세팅된 예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많이 마른듯한 여린몸... 언제나 눈안에 가득담던.. 그 슬픔은..
널 보내던 그때와 전혀 다르지 않아...
하지만... 미즈키의 품에 안긴 그는...옛날처럼...
여전히 .... 빛이난다..........
고개를 돌려버린 분타는 눈을 감아 버렸다..
내 살아가는 목숨같은..... 단 하나의 이유였어.. 넌...
내가 널 보내는건.. 니가 죽으면 나역시 살수없기 때문이야..
바보같이 사랑하는 날...... 용서해.. 에이지...
"..에이지.."
오시타리의 입술에서도 이젠.. 울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안경너머의 눈이 뿌옇게 차오르고..
목숨같은 붉은 머리의 환영에...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것을 느꼈다..
이렇게 심장이 아픈건... 단지 느낌이 아니라.. 정말 아프기 때문이다..
미칠듯한 감정속에 눈물만 가득한 이 재회를 난 어찌하면 좋으냐..
노을속에 절규하듯 너에게 고백한 그 날이후...
난 매일을 너라는 꿈속에 살았는데...
보내주기로 약속해 놓고... 지킬수 없는 나를...
이토록 너의 모습에 목마른 나를...
어떡하면 좋으냐....... 에이지.......
"....놔.. 미즈키.."
거칠게 미즈키의 손을 뿌리친 키쿠마루가 한걸음 한걸음.. 내딪는다..
그가 걸음을 내딪을수록... 분타와 오시타리와 가쿠토의 머리속은 엉켜왔다..
비틀비틀.. 그러나 한걸음도 어긋나지 않게.. 그는 오시타리를 향해서 간다..
그 모습이 너무도 숨막힐듯 위태로워 보여...
지켜보는 쵸타로와 키리하라와 지로와 미즈키는 한마디도 할수가 없었다..
얼마나 돌아온 만남인가.....
얼마나 슬퍼한 사랑인가.....
어느새 눈을 크게 부릅뜬 키쿠마루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힘없는 눈동자가 아닌... 예전과 같은 빛을 머금은 눈동자로..
입술끝에 걸린..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예전처럼.. 당당한 그 예쁜 미소로...
언제나 슬퍼서 울기만 했던.. 키쿠마루 에이지가 아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그 빛이 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에이지.."
오시타리의 앞에 멈춰선 키쿠마루는 아주 살짝 웃는다...
오시타리는 천천히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키쿠마루에게 건내자..
그는... 아주 당연한듯 바이올린을 건내 받았다..
키쿠마루 에이지라고 예쁘게 글씨가 써있는 바이올린 케이스..
살며시 케이스 안으로 모습을 들어내는.. 키쿠마루의 전부....
키쿠마루는 바이올린을 자신의 어깨위에 올려놓으며..
한손으로 활을 꼬옥 집었다...
눈앞에 뒤돌아선 분타가 보이고....
이를 악물고 선 가쿠토가 보이고...
뒤로는.. 미즈키와 지로가 있고...
"..분타...이번엔 널 위해서야.."
어느새 후지를 닮아버린 자신을 알기나 하는지...
뒤돌아선 분타를 돌려 세워 버렸다..
분타의 두눈에 키쿠마루가 잡은 활이 슬로모션처럼.. 아주 느리게..
바이올린에 닿으며.. 키쿠마루는 살며시 활을 내리그으며...
찢어질듯한 애절한 바이올린의 현의 음이 연주된다...
chopin Nocturne in C sharp minor op. post
밤의 노래... 밤의 기도...
.....쇼팽의 녹턴...
분타를 위한.. 녹턴이야....
미안해.... 분타....
돌아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키쿠마루를 바라보는 분타의 두눈에 눈물이 떨어졌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동경해왔을지도 모르는 모습..
공연홀에서 두눈 동그란채 자신이 부는 풍선껌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정말 천사일지도 모른다는 그 때의 모습이 겹쳐지며...
어쩌면 빛을 닮을수 있다고.. 동경했던 그때의 모든것이..
그림처럼... 눈앞을 지나가버린다...
클럽에서 울음가득한 눈으로 날 올려다 보며.. 귀여운 미소를 짓고..
매일 찾아가는 너의 집앞에서 새침한 눈을 하며 도망쳐버리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그런 모습들을 다 감춰버린채..
세상에서 가장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너에게 첫 키스를 하자 놀란 토끼눈을 한채 날 바라보고..
난.... 그 키스에 미친듯이 행복해 했고...
너에게 씻을수 없는 죄를 짓던 그날..
벌벌 떨며 울기만 했던 그 모습까지....
내 머리속에 남아... 하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만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며 다시 돌아온 일본에서..
온통 망가져 버린 널 다시 만났어도.. 난.. 행복했고....
스쳐지나가듯 지나쳐버린 그 바다를 헤메고 다녔어도...
다시 널 잃고 널 찾기까지 1년을 눈물로 보냈어도..
너의 그 미소를 다시 보게되서 난 모든것을 보상받을수 있었어..
내 눈앞의 너는 환상이 아닌... 정말.. 태양이었어..
널 보내지만.. 여전히 넌... 내가 살아가는 이유고..
여전히... 넌... 나의.. 빛이야...
사...랑...해....
나의.... 천사....
눈물은 끝없는 미련을 만든다....
이젠 정말 보내야 할때인데도..
지랄맞은 눈물은 왜 멈추질 않는지..
다시 돌아온것 뿐인데...
그 기다림으로 다시 돌아온것 뿐인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건지..
녹턴을 연주하는 선의 음율이 멈추자.. 주위가 온통 조용해졌다..
바이올린을 어깨에서 내리며... 키쿠마루도 또다시 울어버렸다..
이미 뒤돌아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분타와...
그 뒤를 따라 들어가는 키리하라...
놀라움 가득한 눈으로 키쿠마루를 바라보는 미즈키와 지로..
한걸음 다가가 키쿠마루를 끌어안은 오시타리..
재회는....... 너무나 슬픈 이별......그리고... 기다림..
어느새... 키쿠마루를 태운 오시타리의 승용차는..
기약도 없는 먼 이별속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떠나버린 사람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가 버리지만..
남아버린 사람은... 피를 토하는 울음속에... 여전히 기다릴 뿐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LA의 산타모니카 해안으로...
스쳐지나쳤던... 분타와 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다시는 돌아올수 없겠지......
어느새 키쿠마루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쪽으로 기대게한 오시타리의 배려에..
키쿠마루는 오시타리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채.. 엉엉 울어 버렸다..
이젠.......... 나도..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미안해.... 분타...... 그리고.. 고마워.......
미안해...................
Nocturne story op. 61
헨델의 아리아... lascia_ch'io_pianga 의 애절한 노래소리가..
방안을 가득메우며 기분을 우울하게 만든다..
나를 울게 하소서...
제목만큼이나 슬픈 멜로디는....
눈을 감고 명상에 빠진 후지의 가슴속에서..
절규하듯.. 메아리 친다...
lascia_ch'io_pianga ...
lascia_ch'io_pianga ...
절정에 다다른 소프라노의 고음은...
함께 절정에 다은듯 후지의 인상도 ..찌푸러 들었다..
달각..
누군가가 문을 여는 소리에도 여전히 미동없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후지의 앞으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탁 소리와 함게 절규하는 소프라노의 목소리도 멈췄다..
"...무슨 짓이야.. 데즈카.."
감은 눈이 열리면서 푸른 사파이어 빛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짜증을 담은 눈동자....
싸늘히 식어버린.. 정이 없는 눈동자...
데즈카는 오디오에서 손을 떼며.. 미동없이 창가에 앉아있는 그에게 다가간다..
"...료마의 얘기를 듣지 못한거냐? 내려오라고 하지 않았나.."
"...밥먹기 싫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그.에.게!!"
한자한자.. 강조를 해서 말하는 후지의 말투는..
더이상 얘기하기 싫다는 경고...
하지만 데즈카는 무시한채.. 후지의 침대위에 덜썩 앉았다.
"...나.. 음악듣던 중이였어.. 나가줘.."
"...그건.. 내가 있어도 들을수 있다.. 슈스케.."
"..도데체.. 왜이래!! 니 말대로 했잖아.. 니말대로 내가 여기 있잖아..
그에게 에이지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있었어? "
결국 이거였나.. 며칠내내 신경질 내며 툴툴거린 이유가.. 바로 이거였던가..
"...절실한건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 슈스케 넌 죽어도 모르겠지.."
"..그건.. 유치한 변명에 불과해.. 데즈카.."
"...훗.. 그런가... 어쩌면.. 그럴지도..."
"..도데체...무슨말이 하고 싶은거야?"
"...너에게 좋은 소식을 하나 알려주도록 하지.. 원한다면 만나게 해줄수도 있다.."
"...무슨..?"
"..키쿠마루 에이지가 일본에 돌아왔다.. 오시타리와 함께..."
"..뭐라구?"
후지의 몸이 벌떡 일어서며 데즈카를 향해 놀라운 눈으로 돌아본다..
왜.. 여기있어.. 에이지...
지금은 분타와 행복해야 하잖아...
왜.. 돌아온거야.....
"...하나더 알려준다면... 선택은.. 키쿠마루.. 그가 했다는군..."
뭐? 그럼... 분타는.........
"...만나겠다면.. 만나게 해주겠다..."
"...아니.. 만나지 않을래....아직은 만나고 싶지 않아...."
"..뭐.. 그렇다면 할수 없겠지.."
"...그보다.. 부탁이있어...데즈카... 피아노를 다시 할수 있게 해줘.."
아직은 만나지 않겠다.....
행복해지면.. 그때 만나도 늦지 않아..
우리가 지금 만나면... 그 시절의 기억으로..
더 힘들어 질지도 몰라...
너나..... 나나.... 같을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고...
행복해지면.... 그때 만나자....
어느날과 다름없는 산타 모니카의 해변...
저녁노을이 수평선에 걸리며 붉게 물들어 가고...
남은 이들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분타나.. 지로나... 그날이후 더이상 우울해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둘에게 다 첫사랑이었을... 그 아픈 사랑은..
조용히 해변을 따라 흘러버렸는지도...
하지만... 또한번의 소용돌이칠 재회는 아직 남아있었다..
지독한 외사랑은 이들만이 아니었으므로.....
똑..똑...똑..
뉘엇뉘엇 넘어가는 노을을 보며... 미즈키는 저녁식사준비에 열중이었다..
유난히 밝아 보이는 분타를 보면...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그냥... 보이는 데로.. 넘겨버리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이 아픔을 묻고 사는 그 집은... 며칠동안 변한것이 없었다..
나가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진정되질 않았다..
미즈키는 그건 항상 옆에 있던 키쿠마루가 없기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렸다..
이젠... 행복할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미즈키의 옆에 있던..
키리하라가 제일 먼저 반응을 보였다..
쇼파위에서 자고 있는 지로나..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 분타는
아마도 듣지 못한듯 했다..
키리하라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서둘러.. 현관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열자..보이는 처음 보는 사람의 모습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사장님께서 잠깐 뵙길 원하십니다.."
이젠 이런 말은 듣는것도 싫다..
누군가가 찾아오는것도... 이젠 싫어져 버렸다..
이번엔 또 누구야?
"...저를 말입니까?"
"..네..."
"...그가 누구입니까...?"
"..그건 만나보시면 아실 껍니다."
이렇게 그가 가르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등돌리고 선 한 남자가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도 많이 본 모습이라.. 더 불안해 졌다..
키리하라는 한걸음씩 발을 옮기며 그에게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익숙한 잿빛 머리카락...
설마.. 그가 여길.... 찾아올리는 없겠지...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더 가까이 다가갔다..
"...넌 누구야?"
이미... 인정하고 있었음을.....
이미... 누군지.... 알고 있으면서...
천천히 키리하라를 향해 돌아서는.. 그 도도한 눈빛과...
살짝 말아올린 그 비웃는 듯한 미소는..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는...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하하.... 너도 안거냐?
지로가 있는곳을..?
"...이게.. 누구신가? 여기까지 왠일이야?"
"..난.. 니녀석들이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어.."
하나도 변한것이 없네... 이 아토베 케이고라는 사람은...
여전히 저 오만한 자존심과 당당함을 가진.. 여유로운 미소를 지닌..
그러나... 그것마저도.. 아름다운.. 사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아토베.."
키리하라도 조소를 띄워본다....
허탈하다....
우리들은 도데체.. 누굴 피하려고 숨은건가....
"...두번 묻지 않겠어... 지로는 어디있어..?"
"..알고 온거 아니야?"
"...농담하지마.. 난 그와 거래를 하려고 할 뿐이야.."
"...뭐.. 어쨌든... 그는 집에서 자고 있다.. 니가 온 것도 모른채.."
키리하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토베의 몸은 이미 현관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갑작스런 아토베의 등장에 저녁을 준비하던 미즈키의 손이 멈췄다..
하지만 뒤이어 들어온 키리하라는 미즈키에게 괜찮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하자..
미즈키가 아토베를 바라보며 키리하라에게 다가왔다..
"....미즈키..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어야 겠어.."
"..준비 다 했는데..."
"..밖에 나가있을테니까.. 분타녀석 불러서 나와.."
지로의 맞은편 쇼파위에 앉는 아토베를 보며 미즈키는 분타가 있는 방으로 갔다..
그리고 곧 방밖으로 분타와 미즈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역시나... 분타도... 아토베를 보고 놀란눈을 한채 자리에 멈춰서 버렸다..
"...아..아토베?"
"...오랜만이야... 마루이 분타.."
"..여길.. 어떻게...."
하긴 이상할것도 없다... 오시타리도 찾아왔었지....
그들에게는 불가능 따윈 없을지도...
분타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는 지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젠... 저 녀석도 돌아갈 차렌가...
이렇게 하나둘.... 돌아가는가....
쾅...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치고.. 적막이 찾아왔다..
집안엔 온통 새근새근... 잠든 지로가 숨쉬는 소리만 들려왔다..
"...지로.."
어느새 지로의 앞에 주저앉은 아토베는 지로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얼굴....여전히 멋있어...
손을 뻗어... 지로의 얼굴을 만저보았다..
아토베의 손이 닿을때마다 간지러운지 지로가 얼굴을 찡그린다..
문득 아토베는 어렸을때의 일이 생각났다..
처음 지로를 데려왔을때.. 내방 침대에서 정신없이 자던.. 모습..
그 모습과.. 지금 모습이 겹쳐져 떠올라.. 웃음이 난다..
그때로... 돌아갈수 있었으면 좋겠어... 지로..
지로의 얼굴을 멤돌던 아토베의 손이 입술에 닿았고..
손끝이 입술을 멤돌며...더 참을수 없는... 목마름을 만든다..
천천히 눈을 감은채 지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살짝 맞대었을 뿐인데도.. 그 따뜻함에... 온몸이 짜릿했고..
그 부드러운 느낌은... 죽어도 잊지 못할것 같았다..
아직도 눈을 감고 고개를 드는 아토베는 자신의 입술에 손을 데보았다..
수줍은 베이비 키스는... 그토록 달콤했다...
"...케이고..."
그때.. 잠자는 줄로만 알았던 지로의 목소리로 인해..
여전히 입술을 만지작 거리던 아토베의 눈이 번쩍 떠졌다..
쇼파에 누운채 바닥에 주저앉은 아토베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살짝 웃는다..
왜.... 아직도 웃고있어.. 넌..... 난.. 죽지 못해 살았는데..
넌.... 왜... 아직도.... 그렇게.. 환하게 웃고있어...
"...이.. 나쁜놈아..."
수줍은 도둑키스를 들켜서라기 보단.. 그의 미소에 안심이 돼버렸을까..
아토베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서럽게 울었다..
순간 당황한 지로가 벌떡 일어나 아토베를 품에 안으며..
여전히 그의 잿빛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웃는다..
아토베에게....... 모든 걸 용서받을수 있는... 단 한명의 존재..
아쿠타가와 지로는... 아토베의 전부다...
"...엉엉... 너 용서못해.. 이 나쁜놈아...."
"..그래.. 케이고.. 용서하지마.. 나.. 용서하지마.."
얼마나 한참을 울었는지... 아토베의 눈이 빨갛다..
지로는 그런 아토베에게 물컵을 건네며 그 맞은편에 털석 주저 앉는다..
여전히 환한 미소를 머금은채....
아토베는 물컵을 빼앗듯이 들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그것도.. 자신의 회복못할 자존심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지로의 얼굴엔 또다시 미소가 번졌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아토베의 얼굴은 조금 찡그려졌다..
"..넌 여전하구나.. 아토베.."
"...무슨소리야?"
"..아니.. 예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단 소리야..
근데.. 여긴 어떻게 알았어..? 설마.. 찾을거라고는 생각못했는데.."
너무도 태연히 말하는 저 녀석이 밉다...
하지만 미워지지도 않는 유일한.. 녀석...
"..내가 못올데라도 온거야?"
"...그런뜻이 아니야... 케이고.."
"..그렇게 들려..."
다시금 도도한 표정을 한 아토베는 고개를 살짝 돌려버렸다..
너의 그 싸늘한 표정때문에 다가설수 없는 사람이 많아..
하지만.. 그건 너의 여린부분을 감추기 위한걸.. 나는 알아...
지로는 살짝 웃으며 몸을 일으켜 아토베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아토베가 고개를 돌려 지로를 바라본다..
여전히 냉냉한 시선끝에 자리한 자신의 모습...
지로는 손을 뻗어.. 그런 아토베를 살짝 안아주었다..
"...키스는.. 잊어.."
자신의 품에 안긴채 살며시 새어나오는 아토베의 목소리에
지로는 안고있던 팔을 풀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꼿대높은 자존심에.. 어떻게 그런말을 한건지...
빨갛게 상기된 고개를 돌린채 시선도 맞추지 못하는 그를 보자니.. 웃음이 나왔다..
"...훗... 키스? 그걸 지금.. 키스라고 한거야?"
"...뭐... 지로.. 너..?"
울그락 불그락 해진 얼굴로 돌아보는 그 표정이 재밌어서.. 놀린건데..
아토베는 정말 울듯한 표정으로 지로를 노려본다..
지로는 그런 아토베를 또다시 품에 안았다...
"..그런데.. 너 정말.. 왜온거야?"
제법 진지하게 묻는 지로의 말투에.. 아토베는 안은 지로의 팔을 풀고
몸을 일으켜 지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한다.
"...물론..널.. 데려가려고.. 왔어.."
Nocturne story op. 62
"...물론..널.. 데려가려고.. 왔어.."
똑바로 자신을 쳐다보며 말하는 저 시선이 때로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아토베 케이고의 말은 무조건 명령이며.. 난 그걸 무조건 적으로 따르던 그런 적도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아토베의 모습에서..
지로는 순간 움찔 해버렸다...
그러나.. 곧.. 하하.. 하고 웃어버린다..
"..난.. 돌아가지 않아.. 케이고.."
"..아니 돌아가게 될꺼야.."
뭘 믿고 저러는건지.. 테이블위에 컵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은 아토베는..
예전에 가지고 있던 조금은 귀여운 모습을 다 버린것 같았다..
변하지 않았다는 말 취소할께.. 아토베... 넌.. 이젠 정말.. 어른이 된것 같아..
"...무슨 말을 해도.. 결론은 같아.. 난.. 돌아가지 않아.."
"지로....넌.. 아직도.. 내가 널 붙잡고 울며 다리를 잡아끌꺼라고 생각해?"
"..무슨소리야?"
"...4년전에 니 말에 눈물짓던 케이고는 죽었어.. 난 거래를 하기 위해 왔을 뿐이야.."
번적 빛나는 아토베의 눈이 조금 무섭다고 느낄때였다..
천천히 말아올라가는 그의 입꼬리가 슬로우모션처럼 망막안에 맺혀져 간다..
사람들이 말하는 아토베의 싸늘한 미소란.. 저런것이었던가..
한번도 지로에겐 지어주지 않았던... 묘한 미소..
효테이 총수 아토베 케이고의 오만한 자존심...
"..후지에 대한 일은 잊어줄께.. "
"...너....."
"..돌아만 온다면.. 내 옆에만 있어준다면.. 너에게 대우를 해주겠어.."
"...무슨.."
"...효테이 그룹의 기획 실장... 널 위해 비워둔 자리기도 하지.."
"..도데체 무슨 뜻이지?.."
"..후지에 대한 일은 잊어주겠다고 하잖아!!!"
아토베 케이고는 무서운 남자다..
도망칠수 없는 벽쪽에 밀어넣고 조건을 제시한다..
그의 이런 면이 효테이를 미국으로 까지 끌고온 힘이 아닐까..
4년전에 날 붙잡고 울던 아토베가 아니다..
지로의 온 신경이 그렇게 외쳐대는것 같았다..
그는... 효테이그룹의 정점에 선... 총수라는걸... 지로는.. 가끔씩 잊어버린다..
"...니가 대단한 사람이란걸 잊었어.. 케이고.."
"..지로 니가.. 만약.. 내가 질투날 만큼.. 잘 살고 있으면.. 난 찾아오지도 않았을꺼야..
이렇게 찾아온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넌 지금... 불쌍해 보여.."
".....케이고.."
"...돌아가.. 지로.. 더 큰 조건을 제시한다면.. 난 그걸 들어줄수도 있어.."
"..왜이래...너 예전에 이렇지 않았잖아.."
"..왜이러냐구? 예전에 이러지 못한걸 난 후회할 뿐이야..
돈으로써라도 널 잡을수 있었으면 그때 잡아야 했어.."
"..아토베.. 케이고!!! 너 지금.. 내 자존심 까지 빼앗을 셈이야?"
"...훗... 자존심이라고? 니 자존심이 어떤데..."
살짝 시선을 옆으로 돌리는 아토베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토베는 손등으로 눈가를 쓰윽 문지르며.. 다시 지로를 쏘아보았다.
"...내가 여기 오기까지... 내 자존심은.. 어땠을꺼 같아.."
이를 악무는 아토베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왜... 난... 알지 못했을까....
자신을 버리고 떠난... 그것도 두번씩이나 떠난..
나를 찾아오기까지.. 그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을텐데..
왜.. 난... 그런건... 전혀 알지 못했을까....
"..케이고.."
"..됐어.. 위로할 생각같은건 하지마.. 나.. 스스로 위로하는거.. 이젠.. 잘하니까.."
"...케이고.. 내말좀 들어봐.."
"..내가 너에게 들어야 할말은 돌아오겠다는 말 뿐이야...
알았으면 짐싸.. 당장 돌아갈수 있도록.."
"..케이고..."
".......나 더 비참하게 만들꺼니? 지로 넌? 그래야 돌아올꺼야?"
지로의 시선이 정면으로 아토베의 시선과 부딪쳤다..
한동안의 침묵속에서 지로는 많은 생각을 해야했다..
저 자신만만한 눈동자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아토베는... 홀로 이만큼이나.. 강해진거다..
나 따위는 상대도 할수 없을만큼.....
돌아갈수 밖에 없는 건가..... 아토베 옆으로....
처음부터... 난... 그곳밖에 갈곳이 없던 거였나...
그리고.... 지로의 마음을 결정짓는 단 한마디는...
"....평생... 날..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지로.."
깜깜한 체육관 창고에서 흐트러진 아토베를 붙잡고 울며 맹세한
지로가 아직 크지 못했을 때의 약속.....
그 수치스러운 기억까지 떠올리며 날.. 붙잡고 싶은 거야? 아토베?
떨리는 시선과 시선이 마주쳐 공중에 흩어진다..
아토베 케이고는..... 지로 없이 살수 없는 사람..
또 한명의 지독한 외사랑을 하는 사람...
"케이고.. 내가.. 정말 돌아가길 바래?"
무슨 말이 더 필요한걸까...
또르륵....
참았던 눈물을 떨어뜨리는 아토베의 눈빛에서..
지로는 모든 답을 벌써 들어버린 건지도...
이를 악문채 고개만 끄덕거리는 아토베에게 다가가..
지로는 떨리는 그의 어깨를 다시 살짝 끌어당겨 안았다.
힘없이 안겨오는 그 어깨가 많이 말랐다...
"...왜 이렇게 말랐어... 너..."
"...흑... 너 때문이잖아.. 바보야.."
피식 웃으며 그의 잿빛 머리카락을 엉클어 뜨리자..
눈물 가득한 그의 눈이 쏘아보듯 지로를 보았다..
하지만... 지로는 여전히 햇살 같은 환한 웃음을 웃는다..
"...그래.... 돌아갈께... 니옆으로.."
"...흑흑.. 나쁜놈... 너.. 용서못해.. 절대로.. 용서안해.."
"..그래.. 용서하지 마라.."
많이 강해졌지만... 넌.. 아직... 여려...
내가 옆에 있으면... 넌 계속 그럴꺼야...
아토베..... 그래도 괜찮아? 내가 방해가 될텐데도?
상관없어.... 니가 없는게.. 나한테 더 방해가 될뿐이야..
지로 니가 나한테 어떤 의민지는 니가 더 잘알잖아..
그때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건 너도 잘 알잖아....
달각..
현관문을 닫으며 지로는 자신이 지냈던 집을 한번 올려다 보았다.
눈물과 기쁨과 한숨으로 지낸.. 추억이 담긴 집...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아토베가 있는 자동차를 향해 걸어갔다..
산타 모니카 해변의..... 잊지 못할 추억은.... 영원히 가슴속에 그리며 살것이다..
후지 니가 떠날때 그랬고.... 키쿠마루 니가 떠날때 그랬던것처럼...
나 역시.... 그럴것이다....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던 밤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온 키리하라와 분타 미즈키는...
아무도 없는듯 깜깜한 어둠속의 집을 올려다 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지로가 없는것 같아요.."
오직 아토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미즈키만.. 현관으로 한발작 들어서며..
불을 켜는 스위츠를 찾아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말에 분타와 키리하라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웃어 넘길 뿐이다..
돌아갈줄 알았어... 지로.... 너에겐... 더할나위 없이 중요한 사람일테니..
아니라고 해도..... 아토베는... 널 두고 떠나진 않을꺼라고 생각했어..
"..지로는 떠난거야.. "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키리하라의 말에 분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셋만 남았네.."
조금은.. 아쉬움이 감도는 말...
처음에 북적거리던.. 그 해안가의 오두막집엔..
이젠... 왠지 모를 그리움만 남았다..
서로를 그리워 하며 어디도 갈곳 없는 사람들만..
이렇게 남아버렸다...
예전의 북적거림이 조금은 그리워 질지도.....
아니.... 많이.. 그리워 질지도...
아주... 많이...
"...와아.. 너무 귀여우세요...."
머리를 만지작 거리던 미용사의 말이 끝나자 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오시타리는 거울앞으로 비치는 키쿠마루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붉은 머리카락 조차도.. 너무 예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조금 짧아진채.. 예쁘게 세팅된.. 예전과 같은 모습...
"..어쩜... 사장님 안목도 높으시네.. 이 분께..너무 잘 어울리세요.."
오시타리는 미용사의 말에 싸늘한 조소를 머금었다..
내가 아니다...... 사에키 코지로겠지..
처음.. 에이지에게 이 머리 스타일을 권한건...
나보다... 모든게 먼저인 그이니까...
이렇게 에이지 니가 내 옆에 있어도... 난.. 조금 질투가 난다..
"..유시.."
짧은 회상은 뒤돌아보는 붉은 머리의 소년때문에 깨어 버린다..
동그란 눈을 깜박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그 눈동자에..
오시타리는 한발작 더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에이지... 이뻐?"
"...응.. 이뻐.."
"..근데... 에이지는... 조금.. 어색해.."
"..괜찮아... 이젠 정말 에이지 같아....."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어색해.."
입술을 동그랗게 오무리고 말하는 저 모습도 왜 이렇게 이쁜건지..
니가 없을때... 난.. 어떻게 산거냐...
이렇게 니 행동 하나하나에.. 온몸의 세포가 반응해 버리는데..
널 보지 않고... 난... 어떻게 살았나 싶다..
미용실에서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도.. 어색한지..
계속 머리를 만지작 거리는 그 행동에..
오시타리는 그 손을 빼앗듯이 잡고 자신의 손안에 꼭 쥐었다..
그러자 동그란 그 예쁜 눈은 궁금함을 머금고 오시타리를 바라본다..
"..머리 만지지마.. 에이지.. 정말...어색하지 않아.."
"...응...."
난 역시.... 너무나 깊은 낭떨어지에 떨어져 있어....
올라갈수가 없다...
아니.... 올라가기 싫은거다...
널 사랑하는게 죄악이라면... 난 그 죄를 받고...
기꺼이... 널 사랑하겠다..
내... 운명같은 사랑아......
"...바이올린 다시 시작해.. 에이지..."
순간 눈에 띄게 키쿠마루의 몸이 멈칫했다..
하지만 다시 묵묵히 걷기 시작할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내일 에이지에게 레슨해줄 선생님도 오실거야.."
"...유시.."
고개도 들지 않고 중얼중얼....
"...바이올린.. 하지 않을래... 나중에.. 나중에 할래.."
"...왜.. 하지 않겠다는 거야?"
"바이올린을 하면... 자꾸만.. 사에키가 생각나니까...
그러면.... 자꾸만 에이지는 슬퍼져버려... 지금은.. 그래서 하고싶지 않아.."
그 말에 오시타리의 표정이 눈에 띄게 창백해 졌다..
키쿠마루를 바라보던 고개를 돌린채 입술을 깨문다..
역시... 당신에게 질투가 난다.. 사에키 코지로..
당신에겐 씻을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난 당신에겐 미안해 하지 않겠다..
에이지의 많은 기억을 가져가 버렸으니까...
에이지의 사랑을 받는 존재니까..
미안해 하진 않겠다..
절대로... 미안해 하지 않겠다...
Nocturne story op. 63
혼자 남는다는건 어떤것 보다도 끔찍히 고통스러운 거라고..
누군가가 얼핏 말했던것이 생각난다..
산타모니카 해안에 남은건 우리들의 추억과
아쉬움과 눈물만 남겨둔채 하나둘씩 LA 그 혼돈의 땅을 떠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는 조용히 하루하루를 지내는
우리들에게 두려움을 더해주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남은 우리에게 걸려온 그날의 전화도 그랬다.
데즈카 쿠니미츠..
그는 생각보다 훨씬 독한 남자였다.
지로가 떠나고 하루하루를 지독한 외로움속에서 버텨내던 우리에게
니가 필요하단 한마디로... 분타와 아카야 마저 일본으로 데려가 버리고..
이렇게 혼자 남은 난 오늘도 지독한 고요함속에서
멀기만 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분타는 함께 일본으로 돌아 가자고 했지만..
별로 좋은 기억이 있는 나라는 아니기 때문에 그냥 남는 쪽을 선택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돌아오겠다며 분타와 키리하라는..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렇게 LA를 떠났다.
하나둘씩 떠나는 우리의 산타모니카 작은 오두막집에..
이젠... 하나....
나만... 남았다..
"..젠장.. 정말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
키리하라의 투덜거림에 베레모를 깊게 눌러쓴 분타는 킥킥대며 웃을 뿐이었다.
속이 후련하다는건 이럴때 하는 말일까...
기다림도 미련도 남지않은 사랑은...
더이상의 기대도 하게끔 만들지는 않았다..
어짜피 바라봐주고 지켜봐 주는 사랑을 택한 자신을..
원망하거나..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행복할수 있도록 난 언제나 그의 옆에 있을꺼니까..
다시 돌아온 일본...
조금 의외인 데즈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건..
아마도 조금은 그와 가까워 지고 싶었던 거라고..
분타는...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데즈카에게 가면 후지를 만날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섞인 말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조금은 정이 들었던 친구라는 생각...
그도.. 분타와 키리하라를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을까?
S그룹..
일본 재력을 상징하는 돌기둥이 나타나자 조금 위축되는 마음은 어쩔수가 없지만
분타는 너무도 익숙하게 주머니 속에서 풍선껌을 하나 빼어물고는
현관 로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분타..!!"
키리하라도 서두르는 분타의 뒤를 따라 그 높은 빌딩안으로 발을 옮겼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렸다는듯 일어서는 황금빛 소년의 얼굴을 보며...
분타와 키리하라는 사장실이라고 쓰여있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또다른 운명이 이끄는 그 재회속으로..
한발자국씩 다가서고 있었다..
간편한 세미 정장을 차려 입은 유타와
깔끔한 블루빛 와이셔츠에 청바지 차림을 한 사에키는..
산타모니카 해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옷이 날개라고 했던가..
매번 청바지 차림의 유타를 보다가..
이렇게 정장을 차려입은 그의모습에서..
항상 느껴지던 어린 동생의 이미지는 모두 사라진듯 했다.
제법 총수같은 면모를 갖춘 유타의 모습을 보는 사에키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유타역시 그랬다.
화려한 은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과..
파도를 바라보는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같은 남자가 바라봐도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에키가 좋아한다는 산타모니카 해안..
처음으로 와 본 곳이지만.. 정말 멋진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곳이다.
특히 저 쪽 구석에 자리한 조그마한 통나무집은..
정말 운치있고.. 멋진 곳이다.
저런 곳에서 산다면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코지로, 우리 저곳에도 가보자.."
문득 가까이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타가 가르키는 시선 끝에 사에키의 시선도 움직였고,
둘의 시선이 닿은 작은 통나무집의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까이 가본 통나무 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듯 조용했다.
슬쩍 문을 잡아당겨보니 문도 쉽게 열리는것이..
아무도 살지 않는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헤헤.. 나 여기 들어갔다 올께.."
"..그래.."
사에키는 그냥 집앞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산타모니카 해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 같은 곳이다.
가슴이 뻥 뚫리며 시원해 지는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이런곳에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
"..아무도 없나요?"
유타는 현관문으로 보이는 사에키의 모습을 보면서
아주 조심히 집안으로 발을 들였다.
주방이며 거실이며 며칠전까지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역력했다.
누군가가 정말 살고 있다면 도둑으로 오해할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타는 그냥 도로 나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통나무집은.. 외관보다 실내의 모습이 더 예뻤기에
도저히 그냥 나갈수가 없었다.
끼이익
결국 한쪽 구석에 자리한 방문을 열고 말았다.
문을 열자 마자 보이는건 줄줄이 벽한쪽에 세워져 있는 바이올린들..
무슨 바이올린 수집가 처럼.. 바이올린을 진열해 놓은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타는 발을 조심히 들고는 그 바이올린 쪽으로 다가가 바이올린을 살펴보았다.
먼지는 쌓여있지 않지만 딱봐도 한번도 연주하지 않은 바이올린 들이었다.
조금 흥미가 생기는지 고개를 돌려 방안을 좀더 살펴보려고 뒤를 도는데..
유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역시 누군가 살고 있던건가?"
어느틈에 들어온 사에키가 유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고..
유타는 침대위에 잠들어 있는 그 집의 주인인 듯한 사람을 보았다.
침대위에 흩어진 검정 머리카락이 이토록 유혹적일수 있는지...
감겨진 긴 속눈썹과 굳게 닫힌 입술마저 아름다운 사람..
마치... 조각 인형같은 모습의 사람이었다.
날개가 없을 뿐이야... 내가 어렸을때 책에서 봤던 천사같아..
유타는 그 순간 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는 그의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사에키와 유타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사에키는 조금 멋쩍은듯 머리를 긁적였고
유타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다.
"..미안해요.. 집이 너무 예뻐서 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왔어요..
사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인줄 알았어요..정말 미안해요.."
사에키가 수습하려 잠에서 깨어난 그에게 사과를 했고..
그는 사에키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살짝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유타.. 너무 실례잖아.."
사에키는 미안한듯 한동안 멍해진 유타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눈을 뜬 그가 갑자기 유타의 다른 쪽 팔을 잡으며 말했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차라도 한잔 하고 가세요.."
너무나 돌발적인 말이었고 생각도 못했던 말에..
유타의 팔을 잡은 그는 팔을 놓으며 빨게진 얼굴을 감싸쥐었다.
사에키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알수 있었다.
이렇게 홀로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사는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 감정이 뼈속까지 느껴져서 모른척하고 나갈수가 없었다.
"근데 바이올린을 하시나요?"
그가 건네주는 차를 받으며 사에키는 너무나 궁금했던 말을 풀어놓았다
아까 저방에서 봤던 줄줄히 놓여져 있던 바이올린을 보자..
생각나는 붉은 머리의 얼굴에 ..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었다.
그러자 그는 그 방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아.. 제가 아니구요.. 제가 아는 사람이.."
"...그렇군요.."
"..혹시..바이올린을 하시나요?"
"..아니요.. 바이올린을 하는 천사를 알아요.."
사에키는 머리속에 생각나는 누군가의 모습에 살짝 미소지었다.
바이올린을 하는.... 천사... 키쿠마루 에이지..
이곳에 오니까 온통 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많이 널 닮은 곳이란 생각이 들어..
그리고.... 슈스케의 향기도 느껴지는 정말 이상한곳..
그리운 무언가가 자꾸만 빠져나오려는 느낌이야...
"..저기 코지로.."
한참을 아무말이 없던 유타가 조용히 사에키의 귓가에 뭐라고 소근댔다.
유타의 말에 사에키의 눈이 잠깐 커졌으나..
사에키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어쩌면....
"...이름이 뭔가요?"
슬쩍 유타의 물음에 그는 아주 예쁜 눈웃음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는..
"..미즈키 에요.. 미즈키 하지메요.."
인연은 같은 굴레 안에서 돌고 돈다.
사에키와 유타의 심장을 두드린 사람..
그의 인연역시...
사에키와 유타에게 필연적으로 만날수 밖에 없었던 인연이라는것을...
따지고 보면... 이 모든게 다 운명이었을 지도...
Remember...
잔잔한 피아노의 선율은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름다운 피아노 음색이 이토록이나 슬프게 들리는지..
그의 연주를 듣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를지도..
헌터스 터번..
생각해보면 정말 후지에겐 많은 추억이있는 곳이다.
사에키와 처음 만났던날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렸던 그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에이지와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연주했던 것도.. 생각나고..
우리들의 작은 호수가 집으로 가기전에 늘 들르던 곳..
일본에서의 추억을 담은 그곳...
후지는 데즈카에게 이곳에서 일할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기에
데즈카는 처음엔 거절했으나..
너무도 간절하게 부탁하는 후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수는 없었다.
결국 후지는 료마의 안내를 받으며 매일 이곳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러 왔다.
사실 데즈카는 후지 모르게 한 일이지만..
데즈카는 후지가 집을 나갈때마다 보디가드 식으로..
분타와 키리하라의 보호를 받도록 했다.
전혀 후지를 모르는 사람보다는..그렇게 비밀리에 움직일수 있는건..
아무래도 후지와 함께 지냈던 그들이 가장 나을거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통유리 안으로 보여지는 후지슈스케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건 지켜보는 료마에게도 멀리떨어져 있는 분타나 키리하라에게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후지가 이곳에 오고자 했던건...
구지 이곳에서 연주를 해야 했던 이유는..
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어쩌면 너무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그... 한사람을 위해서...
이제는.... 보내야 할지도 모를...
이제는.... 잊어야 할지도 모를...
그... 그리운 단 한사람을 위해서...
Nocturne story op. 64
3개월후...
"S그룹과 효테이 그룹의 주식을 매입하세요.
자본은 얼마든지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단, 한사람이 많은 양의 주식을 매입해서는 안되며..
당신 밑에 있는 사람들을 풀어서 개인적으로 소량씩 매입하셔야 합니다.
그 매입한 두 그룹의 주식은 제가 통보해 드린 그날..
미리 일러준 그분의 성함으로 바뀌게 될겁니다.
명심하세요.. 이 프로젝트가 새어나가면 당신이나 저나 끝장입니다."
이 비밀스러운 프로젝트의 중심에 놓여있는건..
일본에서도 상당히 비밀스러운 존재인 이누이 사다하루에게 맡겨진 문제였다.
어느 미친놈이 일본의 두 톱인 S그룹과 효테이 그룹에 손을 데겠느냐 하겠지만...
이누이는 그 프로젝트의 거대한 설명을 들은후에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일본 경제가 한꺼번에 흔들릴수도 있는 극비사항..
이 모든 프로젝트는 어제저녁 아주 비밀리에 귀국한 한 남자로 부터 전해져 왔다.
그의 이름.. 시시도 료..
모든것이 베일에 쌓여있는 신비로운 존재..
그렇게 조용히 이누이 사다하루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전 모든걸 당신에게 맡기고.. 그분을 데리러 가야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놓여있는 분이죠.."
시시도의 말에 이누이는 궁금해 졌다.
프로젝트의 중심에 놓여진 사람이라..
미국에서 급히 귀국할 그의 존재만이라도 알고 싶은 욕심..
"..제가 만나선 안되는 사람입니까?"
"..뭐.. 그런건 아닙니다.. 어짜피 뵙게 될 분이니 저랑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래도 괜찮습니까?"
"나쁠건 없습니다."
이렇게 이누이와 시시도는 LA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림판이 돌아가며 비행기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퍼지고..
출구 게이트쪽에서 초초하게 기다리던 이누이는..
곧 시시도가 반가운 얼굴을 하며 어느 한 사람의 앞에 다가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았다.
큼지막한 선글라스로 가린 얼굴에 가죽 마의를 입은 그의 모습은..
얼핏봐서는 여자로 착각할법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얼굴...
더군더나 고위층의 사람이라면 잊혀질 사람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한 이누이의 앞으로 시시도와 그 남자가 다가왔고..
시시도가 살짝 그의 귓가에 속삭이자 그가 싱긋웃으며 썬글라스를 잡아 내렸다.
정말이지... 썬글라스를 벗기전까지는 몰랐다..
이 놀라운 신분 상승이란...
"...오랜만이군요.. 이누이상.."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먹물이 뚝뚝 떨어질것만 같은 흑발..
청초한 짙은 블랙의 눈동자...
그와는 대조되는 유독 하얀 피부..
그리고 곧게벋은 콧날 밑으로 자리한 유독 붉은 입술..
처음부터 그랬던것처럼 슬쩍 짓는 미소마저 아름다운 그...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보이클럽에서 몸을 팔던 미즈키 하지메 였다.
"..날.. 놀리는건가..?"
"..그럴리가요.. 전 당신에게 부탁을 드리는것 뿐입니다."
"..어떻게 된건지 설명해 줄수는 있는가?"
"..죄송합니다. 그것역시 극비거든요.."
찡긋 한쪽눈을 살짝 감는 그의 모습에 이누이는 너털한 웃음을 웃었다.
도데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시작된 프로젝트와.. 조심스럽게 매입하는 S그룹과 효테이 그룹의 주식..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2년전쯤에 그들이 시작한 장난의 죄값을 치룰 차례였다.
남은건.. 언제쯤 그 두 그룹의 똑똑한 젊은 총수가
자신들의 회사의 주식 변동을 알아채는가 하는 거였다.
나는... 그저 미즈키와 저 똑똑한 비서인 시시도 료만 따라서 움직이면 된다는건가...
"..팀장님 사장님께서 서류 가지고 올라오시라는데요.."
비서가 전해주는 음성에 지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또야? 하는 조금 싫지만은 않은 표정..
그리곤 서둘러 서류를 챙겨 사장실을 향해 올라갔다.
"..케이고.."
비서의 안내도 필요없이 사장실을 드나들수 있는 유일한 남자..
자신의 부름에 아토베는 뒤돌려 전경을 바라보고 있던 의자를 돌렸다.
그리고 서류를 챙겨서 들어오는 지로를 보며 씨익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걸 핑계잖아.. 이미 어제 싸인 했으면서.."
"..그냥..니가 옆에 없으면 니가 또 사라져 버릴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아토베의 책상에 서류를 올려놓는 지로에게 제법 투정섞인 말도하는 지금 현실이..
아토베에게는 너무나 동경하는 꿈같기만 해서 지금도 가끔 믿기지가 않는다.
이렇게 행복하기만 한게... 조금은 불안해 지기도 하다.
"..이제 그러지 않는다고 그랬잖아.."
"..그래도 난 불안해.. 지로.."
털썩 책상앞 쇼파에 앉는 지로의 모습을 보고는 아토베도..
재빨리 일어서 지로의 옆에 앉는다..
그러자 아토베의 머리를 끌어당겨 살짝 쓰다듬어 주며..
지로는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너 맨날 이렇게 일안하구 나랑만 놀려고 하면.. 너 망할지도 몰라..헤헤.."
"그러고 싶어도.. 그럴수 없어.. 효테이는 마음먹는다고 쓰러지는 그런 기업은 아니거든.."
"..쳇.. 그럴수도 있다는거지.."
"..아니.. 우리 회사가 망할 가능성은 1%도 안될껄?
뭐 미국의 MS사 같은데서 맘먹구 덤비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걔들이 미쳤다고 일본에 있는 그룹을 타켓으로 잡고 일을 만들겠어..
그런 걱정은 마셔...."
너무도 호언 장담하는 아토베의 말에 지로는 그저 듣고있을 뿐이었다.
뭐.. 지로의 생각도 그의 생각과 마찬가지였다.
절대로.. 그런일은 없을거란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녀석 요새 일 너무 안하잖아..
"..그래도 아토베..일안하구 맨날 놀기만 하면 안돼.."
"..내가 노는것 처럼 보여도 노는거 아니야..
너 몰래 일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그래.. 잘났다.. 이 왕자병아~~"
"..뭐...이 나쁜넘아~"
"..사실 말이나 바른말이지.. 내가 더 잘났지 않았냐?
밖에 나가면 여자들이 이 멋진 지로님을 넋놓고 바라본다니까.."
"..그럼 그 여자들 골라서 사귀지 그랬냐? 이 변태야?"
"..뭐 변태?"
"..그래 이 나쁜 변태야...."
"나도 그러고 싶은데.. 어떤놈이 눈 시퍼렇게 뜨고 쳐다보니까.."
지로는 이미 말해버린 말에 조금 후회를 했다..
아무리 익숙한 친한 사이라도 이런말에 아토베의 자존심을 건드린건 아닌지..
역시나 아토베의 표정이 조금 안좋게 변해있다.
"..그 어떤놈이 혹시 나야?"
"..뭐 그렇단건 아니구.."
"..난 괜찮으니까... 사겨.. 사겨보라구.."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토베의 모습을 보며 지로는 피식 웃어버렸다.
정말 여자친구라도 만들어 버리면 저녀석 총들고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까..?
정말... 솔직하지 못한 녀석...
"..싫다.."
"..왜?"
"...아토베 케이고한테.. 맞아죽긴 싫거든.."
그러면서 슬쩍 곁눈질로 아토베의 표정을 보니까... 이녀석 삐진듯 하다..
지로는 더이상 장난치면 아토베가 정말로 화가날것 같아서 그만둬버렸다.
너란 녀석은.. 정말.. 이상해..
왜.. 이토록 바람같은 나를 사랑해서..
너만 힘들게 하는거니...
그 도도하고 자존심 센 니가...
이렇게 위태롭게 날 바라보면..
난 그런 널 붙잡고 어떻게 해야 하는건데..
가르쳐줘 케이고..
내가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예전에 평생 날 지켜준다고 했던말 기억나? 지로?"
"...응.."
"..이런 내가 부담스럽지?"
"...글쎄..."
"..그 말...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조금은 놀란눈으로 아토베를 바라보았다..
어라? 이녀석 정말 화가났나?
하지만 살짝 내리깐 그의 두눈이 거짓으로 보이진 않았다.
"..케이고.."
"..사실은 나도 알아.. 니가 나 때문에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쯤은.."
"..왜 그런생각을 해.."
"..하지만 이런 나도 조금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아토베의 모습을 지켜보며 지로는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케이고 넌 정말 희안한 녀석이야.. 이미 돌아설수 없게 만들어놓고...
그래도..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알아.. 알아서.. 더 화가나.. 진심이라는거 아니까.."
"..그래.. 알면 다행이야.."
욕심이란건.... 자신에게 다가올수록 더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려 한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기 마련이니까..
"..그럼.. 난 이만 내려갈께.. 수고해.. 케이고"
언네나 처럼 웃는 얼굴로 손까지 흔드는 그를 마냥 바라보면서
쓸때없는 감정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을 빈다.
아토베 에게 있어서 삶은 존재인 그를 욕심내지 않길
항상 옆에 두면서도.. 빌게된다..
어쩌면....
내 이런 지긋지긋한 외사랑은...
그날... 그 어렸던 그 6살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태양처럼 환한 웃음을 짓는 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지켜만 보았을때 부터..
이미.. 정해져 버렸는지도..
널 찾아서 우리집으로 데려오면서
이미.... 정해져 버린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항상 날아갈 생각을 하는 새를 사랑해 버린.... 나.....
TV속으로 행복한 미소로 웃고 있는 모습이 낯설다..
저 모습이 자신인지.. 자꾸만 그런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년전 모습일 뿐인데도.. 이렇게 달라질수가 있을까..
그때와는 생각하는것 자체가 달라져 버린것 같다...
"후지... 에이지도 찍어죠.. 예쁘게..."
화면에서 나오는 키쿠마루 에이지는 조금은 투정도 부릴중 아는 아주 예쁜 소년이었는데..
어느새... 그 눈속에 불안과 아픔을 담아 버렸다..
난........ 다시는 저렇게 웃지 못할꺼란 생각이 들었다.
"..에이지.. 괜찮아..?"
TV 브라운관을 미동없이 바라보는 키쿠마루가 조금은 걱정스러워진 오시타리 였다.
조금은 웃기 시작하는 키쿠마루 였지만.. 왠지 예전과 같은 눈빛이 아니라
전에 자신의 모습을 보면 조금은 좋아질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예전에 그가 살던 집에서 가져온 비디오를 보여주기로 했고..
그 화면을 보고 무슨 말이라도 있을 줄 알았던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다만 멍한 시선으로 화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에이지?"
오시타리는 할수없이 그의 어깨를 살짝 잡아 흔들었다.
그러자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
한참을 멍한 그 시선에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는건 시간문제다..
"...괜히 보여준것 같군.."
오시타리는 그런 판단을 하고는 서둘러 비디오로 손을 옮겼다.
아직.... 후지와 사에키를 떠올리기에는 너무 빠른건가..
그러나 그때... 비디오 캠으로 옮기던 손을 멈추게 하는 목소리..
"...그냥.. 둬... 에이지 볼래..유시.."
키쿠마루는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에키가 화면에 나타나자... 그는 목놓아 울었다.
어쩌면 정말로 그가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을수 있는건...
그의 곁이 아닐까... 하는...
아주 불안한 생각이 잠깐 머리속에 스친다....
내 옆에 있어도... 아직... 넌... 멀리 있는것 같은 기분...
너란 애는... 옆에 두어도.. 날 숨도 쉴수 없게 만든다..
날...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아...
난... 절대로 올라설수 없다..
그 낭떠러지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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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분들이 아쉬워 했던 장면이네요..
분타와 에이지의 이별장면...
그리고 거의 모든게 정리되는듯한 전개...
두명의 이별과 혼자남은 미즈키.......
사실 분타의 이별 장면은 쓸때까지 고민하게끔 했던 부분이라..
예그랑이 야상곡에서 좋아하는 또다른 한 부분이에요..
정말 쓰면서 내내 가슴이 아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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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상곡(完)
[오시키쿠]*야상곡*-----(59~64)
예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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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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