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그나가의 미망사학파 지각론 비판
박대용(동광)
(사)한국불교학회 법인이사
Ⅰ. 들어가는 말
Ⅱ. 미망사학파에서 말하는 지각이란?
Ⅲ. 디그나가의 미망사학파 비판
Ⅳ. 나오는 말
<한글요약>
이 연구 목적은 디그나가(Dignāga, 480-540)의 대표적 논서 쁘라마나삼웃짜야(브릿띠)(Pramāṇasamuccaya(vṛtti), 이하 PS(V)) 1장 「현량장」 34-44게송에 나타난 미망사학파(Mīmāṃsaka)의 지각론에 대한 그의 비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위함이다.
디그나가는 PS(V) 1장 전반부 1-12게송에서 바른 인식수단(pramāṇa, 量)에는 지각(pratyakṣa, 現量)과 추리(anumāna, 比量) 두 가지 뿐이라고 말하고, 전자는 개념적 구상인 분별(vikalpa)이 배제된 무분별현량(즉, 무매개적 직접인식)이고 후자는 유분별현량(즉, 매개적 간접인식)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의 결론에 해당하는 10-12게송에서는 현존하는 대상이 인식대상이라 말하면서, 인식대상 · 인식수단 · 인식결과 이 세 가지는 모두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결론(즉, 비별체설)을 내린다.
그는 이어지는 게송과 자주를 통해서 논궤 ⇨ 니야야학파 ⇨ 바이쉐시까학파 ⇨ 상캬학파 ⇨ 미망사학파 순으로 그들의 지각 정의를 분석하고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특히 1장의 종반부 34-44게송에서 미망사학파의 미망사수뜨라(Mīmāṃsāsūtra, 이하 MS) 1.1.4에 나타난 지각 정의(“현존 대상(sat)과 인간의 감관 접촉이 있을 때 발생하는 인식, 그것(tat)은 지각이다. [그것은 다르마 인식의] 원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것[만]을 인식하기 때문이다”)와 베다 · 아뜨만의 상주성(常住性) 주장의 모순점을 지적함으로써 결론적으로 이들의 주장은 그릇된 견해(mityādṛṣṭi)라고 힐난하고 매듭 짓는다.
디그나가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망사의 꾸마릴라(Kumārila, 600-650)의 쉬로까바릇띠까(Ślokavārttika)에서 디그나가가 PS(V)에서 행한 미망사 비판에 대한 반론이 진행되었다. 이 논쟁은 이후 디그나가 사상의 계승자 다르마끼르띠(Dharmakīrti, 600-660)나 문법학자 지넨드라붓디(Jinendrabuddhi, 725-785) 등에 이르러 광범위한 후속 반론이 진행되었지만, 이러한 내용은 차후 연구 과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이에 본 연구는 디그나가가 고전인도 브라만전통의 대표적인 학파로서 그의 주된 비판의 상대로 여겼던 미망사학파의 MS에 나타난 지각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 우선 검토하고, 이어서 PS(V) 1.34-44에 나타난 디그나가의 비판을 순차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주제어:디그나가, 미망사학파, 꾸마릴라, 쁘라마나삼웃짜야(브릿띠), 미망사수뜨라, 지각[현량], 내속 |
Ⅰ. 들어가는 말
고전인도의 다양한 학파에서 주장되었던 여러 견해(darśana, 見)들 가운데 “고유한 신체(le corps propre)에 결부된 지각(pratyakṣa, 現量)”을 어떻게 정의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목표―즉 범아일여가 되었든지 아니면 윤회로부터의 해탈이 되었든지 간에―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효과적 바른 인식수단(=쁘라마나)의 확정이 선결 과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지각은 모든 학파에서 공통적으로 수용하는 첫 번째 인식수단이어서,따라서 그들의 대부분의 논서 첫 장은 <지각장>(Pratyakṣapariccheda)으로부터 통상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불교인식론의 창시자인 디그나가(Dignāga, 陳那, 480-540)가 자신의 대표적 논서 쁘라마나삼웃짜야(브릿띠)(Pramāṇasamuccaya(vṛtti), 集量(註), 이하 PS(V)) 제1 「現量章」후반부 게송과 자주를 통해 주장했던 미망사학파(Mīmāṃsaka)의 지각론에 대한 비판을 검토하기 위함이다. 주지하듯이 그는 당시 브라만 전통의 타 학파 논사들과 격렬한 논쟁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고 ‘토론의 황소(tarka-puṅgava)’라는 별칭도 얻었다. 그가 만년에 쓴 방대한 PS(V)는 이전에 자신이 저술했던 논서들을 한데 모은 한 권의 총서이다. PS(V)는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 제1장은 총 44개 게송과 자주로 되어 있다.
•PS(V) 1.1 - 1.12 : 디그나가 자신의 지각론(현량)
•PS(V) 1.13-1.16 : 논궤에 나타난 지각 정의 비판
•PS(V) 1.17-1.20 : 니야야학파의 지각론 비판
•PS(V) 1.21-1.24 : 바이쉐시까학파의 지각론 비판
•PS(V) 1.25-1.33 : 상키야학파의 지각론 비판
•PS(V) 1.34-1.44 : 미망사학파의 지각론 비판
이상에서 보듯 디그나가는 PS 1장 13게송부터 마지막 44게송까지 당시 불교와 극렬한 논쟁을 펼쳤던 타 학파의 지각 이론을 각개격파로 상대했다.여기서 그는 베다(Veda)의 제식(yajña) 전통을 중시한 미망사학파를 비판하기 위해 11게송이나 할애했음을 볼 수 있다. 디그나가는 미망사의 소의경전인 미망사수뜨라(Mīmāṃsāsūtra, 이하 MS) 1.1.4 게송에 드러난 지각 정의를 소개하고서, 이 수뜨라의 모순점을 조목조목 지적함으로써 결론적으로 이들이 주장했던 상주성(常住性)을 무상성(無常性)의 이치로 조롱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현량장」을 마무리한다.
그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망사학파의 꾸마릴라(Kumārila, 600-650) 논사는 자신의 대표적 주석서 쉬로까바릇띠까(Ślokavārttika, 이하 ŚV)에서 인식의 타당성(prāmāṇya)을 베다의 무시원성(anāditva)과 무저자성(apauruṣeyatva), 그리고 자기 본유적 타당성(svataḥprāmāṇya)에서 찾는다는 반론(khaṇḍana)을 전개하였다.이 논쟁 이후, 디그나가 사상의 계승자로 자처하는 다르마끼르띠(Dharmakīrti, 600-660)나 문법학자 지넨드라붓디(Jinendrabuddhi, 725-785) 등이 후속 반론(uttarapakṣa)을 전개했지만, 이 내용은 여기서 다루지 않을 것이다.
주요 선행 연구로는 핫토리 마사아키(服部正明 )의 Dignāga, On Perception(1968)에서 PS(V) 「현량량」의 해당 게송과 자주는 63-70쪽에, 이에 대한 미주(endnotes) 형식의 해설은 161-172쪽에, 그리고 해당 티벳역 PS(V)V과 PS(V)K은 226-237쪽에 소개되어 있다.불교인식론·논리학의 종합해설서인 講座 仏敎思想 第二卷 認識論 論理学(1974) 116-130쪽에서 디그나가의 미망사학파 비판을 설명하고 있다. 2005년 존 타버(J. Taber)는 디그나가의 불교인식론에 대한 힌두 비판을 대표하는 미망사학파 꾸마릴라의 Ślokavārttika<지각장>의 총 254게송들을 낱낱이 분석 소개했다.국내의 주요 논문으로는 미망사학파의 대강을 소개한 이지수의 「다르마와 베다에 대한 초기 미망사학파의 견해 」(인도철학 5집, 1995)와 최근 함형석의 「악인의 저작에서 암흑의 텍스트로」(불교학연구 65호, 2020)논문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본 연구의 저본으로 삼은 것은 PS(V) 1 Dignāga’s Pramāṇasamuccaya(vṛtti). P.5072, Ce93b4-109a1과 2005년 에른스트 슈타인켈너(E. Steinkellner)의 산스끄리뜨 복원본, 그리고 2005년 존 타버의 책 부록에 실린 Ślokavārttika제4 지각장 산스끄리뜨 교정본이다.또한 각주의 보충 설명으로 핫토리(1968)의 미주 내용도 일부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이어지는 Ⅱ장에서 미망사학파의 MS 1.1.4에 나타난 지각과 관련한 내용을 선행 검토하고, Ⅲ장에서는 PS(V) 1.34-44에 나타난 디그나가의 비판을 순차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Ⅱ. 미망사학파에서 말하는 지각이란?
우선, 미망사(mīmāṃsā)의 어원은 √man(생각하다)의 어간에 어근을 중복하고 –sa–를 첨가한 1종 활용의 의욕형태로서‘탐구’, ‘비판적 검토’, ‘심찰(審察)’을 뜻하며, 다르마에 대해 바른 인식을 구하고자 인식의 원천인 베다 문헌을 주의 깊게 고찰하는 학문이다.거듭 말하자면, 미망사들에게 베다는 시원 없는 ‘성언량의 상주성(śabda-nityatva, 聲常住性)’을 지닌 보편(ākṛti/sāmānya)이며, 어느 특정 인간의 저작도 아니어서 인간이범할 수 있는 오류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의미에서 ‘베다의 저자 부재설(vdeāpauruṣeyatva)’을 확립했으며, 마지막으로 베다의 목적이 모든 지식의 타당성이 자명함을 보여주는 데 있다는 ‘자립타당설(自立妥當說, svataḥprāmāṇya)’을 내세웠다.따라서 베다가 인간에게 명령(vidhi)하는 제식(yajña)은 언제나 정의로운 다르마(dharma)이고 어떠한 과보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베다가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갖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지수는 이 미망사 체계가 베다의 권위를 바탕으로 한 단순한 제식주의로 한정한 한갓 보조학이 아니라 니야야 · 바이쉐시까사상에서 상당수 차용해 온 다르샤나를 지닌 독자적 학문체계(prasthāna)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앞서 각주 3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쁘라브하까라[구르]-미망사(Prabhākara-Mīmāṃsā)는지각(pratyakṣa)· 추리(anumāna)· 성언량(śabda)· 유추(upamāna)· 상정(arthāpatti)의 5가지 인식수단을 인정하고, 이후 꾸마릴라 밧타-미망사(Bhāṭṭa-M⁰)는 이 다섯 가지에 비존재(abhāva) 혹은 비인식(anupalabdhi)을 추가해 6가지 인식수단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디그나가는 PS(V)1장 전반부 1-12게송에서 바른 인식수단(pramāṇa, 量)으로 지각과 추리, 오직 두 가지만을 인정한다. 전자는 개념적 구상인 분별(vikalpa)이 배제된 무분별현량(즉, 무매개적 직접인식)이고, 후자는 유분별현량(즉, 매개적 간접인식)이다. 그의 최종적 결론에 해당하는 PS(V) 1.10-12게송에서 현존[하는] 대상이 인식대상이며, 인식대상 · 인식수단 · 인식결과 이 세 가지는 모두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비별체설(非別體說)을 주장한다. 또한 그는 성언량 등을 독립적인 인식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한 인식수단 등은 ‘타자의 배제(anyāpoha)’를 통해 그 자신의 대상을 가리키고, 이 타자의 배제 과정은 추리 기능이라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망사학파의 독창적인 지각 이론을 살펴보자. 그들이 말하는 지각의 정의는 MS 1.1.4에서 꽤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MS 1.1.4, “satsamprayoge puruṣasyendriyāṇāṃ buddhijanna tatpratyakṣam∣animittaṃ vidyamānōpalambhanatvāt∥”(현존 대상(sat)과 인간의 감관 접촉이 있을 때 발생하는 인식, 그것(tat)은 지각이다. [그것은 다르마 인식의] 원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것[만]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기원후 5세기 샤바라스와민(Śabarasvāmin)은 MS에 대한 대표적 주석서 샤바라브하샤(Śābarabhāṣya, 이하 ŚBh) 6.15-22에서 이 MS 1.1.4 게송을 지각의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는 지각은 “현존(現存)대상과 감관의 접촉”이 있을 때만 발생하는 것이어서 다르마 탐구의 인식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브하바다사(Bhavadāsa) 역시 이 수뜨라의 전반부만을 지각의 정의라고 생각하는데,그의 견해는 ŚVK 1.204. 10에서 “vṛttyantare … ”로 언급되어 있다. 꾸마릴라는 전자의 주석을 따라 상세한 논의를 발전시키지만 후자의 견해는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존 대상과 감관의 접촉 이후에 발생한 인식을 지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비실재의 유사지각(pratyakṣābhāsa; 似現量)또한 현존 대상과 감관의 접촉에서 발생한 인식이라는 착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하에서 보겠지만, 그 실례에서 감관과 대상의 접촉 없이 일어나는 꿈속의 지각은 배제되고, 그러나 눈앞에 있는 흰 소라 껍데기를 보고 은(銀)이나 은화로 착각하는 오류지(誤謬知)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따라서 꾸마릴라는 이 수뜨라에서 인간의 감관이 “현존[하는] 대상을 인식하는 것(vidyamānōpalambhana)”을 지각의 정의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다르마를 아는 인식수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Ⅲ. 디그나가의 미망사학파 비판
앞서 봤듯이 미망사학파는 MS 1.1.4에서 “인간의 감관이 현존 대상과 접촉하고 있을 때 거기서 발생한 지(知), 그것이 지각이다.”라고 표현한다. 디그나가는 이 미망사의 지각 정의를 주된 비판 근거로 삼아 자신의 PSV ad PS 1.34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디그나가의 첫 비판은 미망사학파가 ‘asat(비존재)’와 감관 간의 접촉을 부정하기 위해 ‘sat(존재)’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하는 데서 시작한다.
PS 1.34“sad ity asadvyudāsāya na niyogāt sa gaṃsyate∣samprayogo hi niyamāt sata evopapadyate∥34∥”([MS 1.1.4에서] ‘sat(존재)’라는 [단어가] ‘asat(비존재)’를 배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순서상 맞지 않다. 왜냐하면 접촉에서 [후자는] 제한되고 오직 ‘sat(존재)’만이 [접촉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샤바라스와민은 “sat-samprayoge”의 의미를 “sati samprayoge=satīndriyārtha-sambandhe(대상과 감관의 접촉이 있을 때)”로 해석하고 “satā samprayogaḥ(현존하는 것과 감관의 접촉)”로 해석하지 않는다.반면 꾸마릴라는 ‘sat’가 요가행자의 증지(yogipratyakṣa)와 관련된 삿된 견해를 제거하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샤바라스와민의 해석을 거부한다.요가수행자들과 해탈한 이들은 과거·미래의 대상, 혹은 심지어 감지하기 어려운 것, 혹은 덥혀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꾸마릴라는 요가행자의 증지 역시 지각이라는 측면에서 “현존 대상을 인식하는 것(vidyamānōpalambhana)”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거·미래의 대상 인식 또한 지각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고, 욕구(abhilāṣa)나 기억(smṛti)과 같은 인식도 지각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꾸마릴라는 그 수뜨라를 주석한 이가 감관의 결합이 현재에 발생한다는 점을 명확하기 위해 통상 무언가를 함의하는 ‘sat(존재)’라는 단어를 넣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PS 1.35 “pratiyogy atha nirdiṣṭo viśiṣṭo ’kṣasya kathyatām sad∣sanmātraṃ sanni-karṣe nākalpyaṃ yata udāhṛtam∥”(즉 ‘sat(존재)’가 [감관의] 상대(pratiyogin)를 지시할 목적으로 [그들의 수뜨라에서 말했다면], 감관의 특정[대상]을 언급하기 위해서이다. 아뜨만과 접촉에 대한 [다른 인식 요소들]은 오직 ‘sat’와 [접촉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이상에서 디그나가는 색, 맛 등에 상응하는 감관의 특정 상대는 감관의 대상으로 적합하다고 말한다. MS에서는 감관 이외의 접촉 요소들에 대한 명시적 표현은 없지만,꾸마릴라는 인식수단을 ⑴ 감관, ⑵ 감관과 대상의 접촉, ⑶ 마나스와 감관의 접촉, ⑷ 마나스와 아뜨만의 접촉, ⑸ 이 모든 요소들의 접촉이라고 말한다.그들의 수뜨라에서 ‘감관들’은 부분(avayava)을 가진 전체(avayavin)를 의미하는 제유(提喩, upalakṣaṇa)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이에 따라 MS 주석가는 감관대상처럼 아뜨만 · 마나스의 접촉 또한 ‘sat(존재)’를 함의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미망사의 입장에 대해서 디그나가는 PS 1.35 후반부 게송에서 비판을 제기한다. 즉 아뜨만 · 마나스 · 감관은 오직 ‘sat(존재)’만을 접촉한다는 점은 이미 증명되었으니 ‘asat(비존재)’에 대해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망사학파는 ‘비존재’와 감관의 접촉 사례를 거론하고, 그 예로 사막을 건너는 이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오아시스 신기루(mṛgatṛṣṇā)를 보는 데서 찾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아뜨만 · 마나스 · 감관이 오직 ‘sat(존재)’에 대해서만 작동한다는 불교의 입장에 반해 실재론 입장에 서있는 것이다. 샤바라스와민이 인용한 주석가(vṛttikāra)는 지각을 현존 대상과 감관의 접촉에 의해 조건화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실재의 흰 소라껍데기를 은 또는 은화로 착각하는 것은 유효한 지각작용이 아니고 실재와 비실재를 혼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석가는 MS 1.1.4에 있는 이러한 생각을 인정하는 대신 “tat-samprayoge … sat-pratyakṣam”으로 독해하도록 단어의 위치를 바꾼다.하지만 꾸마릴라는 ŚV 4.12-13에서 샤바라스와민이 오류지(誤謬知, bhrānti)를 배제하려고 MS 1.1.4와 달리 sat와 tat의 위치를 교환하여 위 주석 독해를바꿨다는 설명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인식대상으로는 나타나지만, 다시 말해 개념으로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지만, 그러나 실재가 아닌 신기루 등의 대상은 접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해서, 신기루의 지각은 사막이란 특정 장소가 태양의 열기로 인해 특정 시간의 특정 조건 하에서 그 신기루가 있게 된다. 이 장소가 우리의 시신경과 접촉할 때, 글자그대로 눈의 지각(cakṣur-buddhi, 眼知覺)이 있을 때 실재 대상은 없지만 표현할 수 없는 인식(avyapadeśya)과 착란 의식이 이후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우선 감관지는 표현할 수 없는 개별상(svalakṣaṇa)을 비매개적으로 인식하고, 바로 그 때 이 개별상의 특이성을 무시하고 개념적으로 “물”로 파악되는 것과 유사한 무언가로 수용하는 의지각이 일어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그 지점의 개별상은 “물웅덩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신기루의 사례처럼 시각과 비실재(asat)의 접촉은 일어나지 않으므로 이러한 종류의 비실재와의 접촉을 배제하기 위해 ‘sat’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PS 1.36 “atha indriye sīdati yo yasya vā syāt praśastatā∣tat sīdaty anyad apy atr-āñjanādeś ca praśastatā∥”(즉 그것[sat]은 감관이 [대상에] 속해 있다거나(śliṣṭa) 혹은 [대상에] 특질(praśastatā)을 지니고 있다면, 이 문제에서 다른 사물들 역시 [감관에] 속해 있다. 특별한 소질은 안연고(añjana) 등과 같은 것에도 역시 있다.)
감관이 소여대상에 속해(śliṣṭa)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무릇 다른 대상에 대해서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sat-samprayoga’ 표현이 갖는 함의는 감관과의 접촉이 그것과 묶여 있는 대상과 함께 공존(coexistence)한다는 뜻이다. 감관 기능이 소여대상에 대한 특질(praśastatā)을 가질 때, 그 소여대상이 감관과 양립성(yogyatā)을 갖기 때문에 ‘적합하다(samyak)’고 하는 것이다. 위 “이 문제에서”라는 말은 미망사의 주장을 말하는 것이다. 즉 감관 대상에 대해서 ‘sat(존재)’라는 단어를 적용할 수 없는데, 감관대상과 더불어 감관을 구성하는 극미(極微)와 같은 물질 역시 감관에 공속(共屬)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sat’ 단어가 특정 대상의 감관 특질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안연고(añjana)와 발연고(padābhyaṅga) 등도 이러한 성질을 갖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미망사학파는 “가기 때문에 소라는(gacchatīti gauḥ)” 표현에서 가는 다른 것들 역시 소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마찬가지로 ‘sat’가 감관에 속해서 그저 감관대상일 뿐이지 감관에 속한 다른 것은 아니고, 특질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망사학파의 억측은 디그나가의 PS 1.37게송을 통해 곧바로 비판된다.
PS 1.37-38ab“rūḍhāv evaṃvikalpe ’pi śabdo ’kṣaviṣaye na saḥ∣sarvārthasamprayoge ca yad dṛṣṭaṃ rūpaśabdayoḥ∥37∥vicchinnapṛthuvijñānaṃ tan nairantaryabādhakam∣”(만약 그들[미망사]이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례로 이와 같이 추리한다면, [sat]란 단어는 감관대상으로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만약 감관이 대상과 전면적으로 직접 접촉하는 경우, [감관과 대상의] 간격이 없음을 고려할 때 [감관의 크기를 초월한] 대상 또는 멀리 떨어진 색과 소리에 대한 인식은 우리는 결코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가는 중(going, gamana)’이라는 특성화된 어떤 다른 것이 있더라도, ‘go(소)’라는 단어는 소가 ‘가는 중’이라는 까닭으로 소에게만 적용됨은 통상 인정된다(prasiddha). 그러나 ‘sat’ 단어가 감관에 ‘속한’ 존재라는 이유라거나 감관대상의 특질이어서 감관대상에게만 적용된다 함은 보편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따라서 디그나가는 미망사학파의 지각 정의에서 ‘sat’ 단어 사용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PS 1.37cd-38ab게송에서 디그나가는 감관과 대상의 직접 접촉(saṃprayoga)만을 유효한 지각작용(vyāpāra)으로 보는 단순한 미망사의 입장과는 달리, 멀리 떨어진 색과 소리 혹은 감관의 크기를 초월하는 대상 또한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후대의 꾸라밀라는 ŚV 4.38에서 바람에 실려 온 냄새(gandha)와 같이 감관과 멀리 떨어진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꼭 “부적절한 적용(duṣproyoga)”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PS 1.38cd-39a1 “buddhikāraṇasāmagrīm uktāṃ muktvā pramāṇataḥ∥38∥yataḥ sā”
([미망사에서 반문한다고 가정해보자] “앞서 말한 것처럼지(知)의 원인들의 집합체를 제외하고서 어떤 인식수단으로부터 그것(知)은 발생한단 말인가?”).
디그나가는 이 연합 게송의 자주에서 인식결과와 인식수단의 별체를 옹호하는 MS 주석가(Vṛttikāra, ’grel pa byed pa)의 입장에서는 인식결과와 동일한 ‘지(知)의 발생(buddhijanman)’이 일어나기에 지(知)가 발생한 것으로부터 인식수단, 즉 지각으로 간주한다고 봤다. 이 문제는 앞서 말한 아뜨만· 마나스· 감관· 대상의 접촉과 분리된 지각이라 보며, 잠재인상으로 촉발된 지(知)의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견해 역시 디그나가는 인정하지 않는다.
PS 1.39a2 “atheyam eveti buddhijanmeti kiṃ punaḥ∣”(만약 그것[지각]이 이것과 다름없다고 한다면, [수뜨라에서] 무엇을 지(知)의 발생(buddhijanman)[단어]의 사용이 될 것인가?)
만약 지(知)의 원인인 집합체가 지각이라고 한다면, 그 경우 “현존하는 무언가와 접촉이 있는 사람의 감관· 마나스· 아뜨만은 지각이다”라고 주석가는 말했을 것이다. 디그나가는 “지(知)의 원인인 집합체가 지(知)를 발생하는 것이 됨은 취하기에 수뜨라의 정의에서 무엇이 ‘지(知)의 발생’ 단어 용례가 될까?” 하고 고민했다. 미망사학파는 ‘지(知)의 발생’이란 단어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감관과 대상의 접촉을 배제하기 위해 언급되어야 하지만, 감관과 대상의 접촉이 감관지를 발생하는 데 실패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고려사항은 불필요하다.
PS 1.39cd-40ab “arthendriyamanaḥpuṃssaṃyogaḥ saṃskāravān yadā∥39∥budd-hyutpādakasāmagry uktā pratyakṣeṇa tat katham∣”(대상 · 감관 · 마나스 · 아뜨만의 접촉이 유위행상처럼 지(知)를 발생하는 것이라면, 왜 [감관만을 취하는] ‘지각’ 표현을 [이 모든 요소의] 집합체에 적용해야 하는가?)
이에 디그나가는 오직 감관만이 지각의 불공인(不共因, asādhāraṇakāraṇa)이어서 감관과 대상 간의 접촉을 ‘지각’이라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고 주장한다.예를 들어 “이것은 소이다!”, “이것은 말이다!”라는 대상 확정(niścaya)을 갖게 하는 ‘이것임(thisness)’과 관련한 수단을 지각이라는 것이다. 앞서 주석가는 인식수단을 “지(知)가 발생하는, 그것이 지각이다(yasmād buddhir jāyate tat pratyakṣam)”라는 견해를 제시했는데, 꾸마릴라는 지각으로부터 발생한 한정자(viśeṣaṇa)의 지(知)에 의해서 피한정자(viśeṣya)의 지(知)를 확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그렇지만 움베까(Umbeka)는 이 견해를 니야야의 입장이라고 보고 있다.
PS 1.40cd-41ab “gotvādiyogāc cārtho gotvāditvena pramīyate∥40∥na cendriyadhiyaḥ sāmarthyam asty artheṣu yojane∣”(사람은 그것[대상]이 소인 것과 기타 그러한 [한정자]와 연관되어 있을 때 그 대상을 소 혹은 그 유사한 것으로 인지한다. [그러나] 감관지(akṣabuddhi)가 대상과 [한정자]의 연관을 이끌어 낼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감관지는 대상 확정의 결과를 산출할 수 없다].)
미망사에 따르면, 감관지는 소성[牛性]인 보편과 그 소성의 토대인 개별을 동시에 인식할 수 없을 뿐더러 함께 묶을 수도 없다고 말한다.그것들을 묶지 못한다는 것은 감관지(지각)에 의한 소의 대상 확정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피한정자(viśeṣya)와 한정자(viśeṣaṇa) 혹은 표현대상(abhidheya)과 명칭(abhidhāna)의 관계를 갖는 모든 사례들은 의지각(意知覺, manasa pratyakṣa)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게송은 선행하는 PS 1.5cd게송(“왜냐하면 감관의 인식대상은 스스로 인식되고 [언어로] 지시되지 않는 형상이다.”)과 정확히 일치한다. 감관 대상은 다수의 특징을 지닌 담지자로서 개념적 구상을 통해 사유되지만, 그것은 불공인(asādhāraṇa)이므로 감관에 표상된다. 그러므로 대상은 개별의 형상을 갖는 지(知)가 발생하는 원인이다. 이 감관 대상은 있는 그대로 지(知) 자신의 일부여서 자기의식(svasaṃvedanā)이 될 수밖에 없다. 디그나가는 자신의 인식론을 유식 사상에 기반을 두고서 지각 대상을 형성하는 것은 오직 지(知) 자신의 대상현현(viṣayābhāsa)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리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보편을 지닌 것이기에 이것이 이러이러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PS 1.41cd“sarvathā nārthavijñāne sthitā pratyakṣadhīr bhavet∥”(만약 그것[감관지]이 전면적인 대상인식으로 성립한다면, 그것은 지각이라고 불릴 수 없게 된다.)
‘지각(pratyakṣa)’이라는 단어는 인식수단, 지(知), 대상에 적용할 수 있다.이 가운데 인식수단의 적용이 주된 것이고(mukhya), 그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이다(upacāra). 이 부수적 적용 가운데 세 번째 대상은 지각에 의해 인식되기에 제2의 감관에 있는 ‘지각’이라 불린다. 두 번째 지(知)는 “감관에 의존해 발생되기(akṣam prati vartate)” 때문에 은유적으로 ‘지각’이라 불리며 인식수단에 해당한다. 만약 지(知)를 통해 색과 보편을 파악한다면, 그때의 지(知)는 감관 대상과 상응하는 보편을 통한 발생이므로 “감관에 의존하는 지(知)”, 즉 지각이라 말해서 안 된다. 왜냐하면 감관(akṣa)은 지각의 토대(āśraya)이자 불공인(不共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사물의 다양한 측면의 감관지가 발생된다면, 색과 기타 속성, 그리고 존재의 감관지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또 다른 감관대상에 대해서 하나의 감관에 의한 지(知)가 존재하게 될 것이고, 또 다수의 감관들의 현존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PS 1.42 “buddhijanma yadīṣyeta phalam anyan na labhyate∣buddhāv eva hi jātāyāṃ tato ’nyan na phalaṃ bhavet∥”(만약 [미망사들이 지각의 정의를] 지(知)의 발생이라고 주장한다면, [인식수단과] 별개의 인식결과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知) 자체가 발생하는 한 인식결과가 아닌 그것[知]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 게송에서 디그나가는 단순히 ‘지(知)의 발생’을 지각으로 정의한 미망사 교설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즉 지(知) 자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인식결과가 아닌 지(知) 자체가 존재하는 것은 인식수단에 의한 대상이해[파악](adhigama)의 한 측면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해 그것은 지(知)일 뿐인데, 지(知) 자체가 인식수단으로 간주되면 인식수단과 별개의 인식결과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디그나가의 지적이다.
PS 1.43“buddheś ca yadi janma anyat samavāyaḥ svakāraṇe∣sa pramāṇaṃ sa tu kuto ’tha ananyatvamapārthakam∥”(만약 발생과 지(知)가 다르다면, 그 자신의 원인(즉 아뜨만)에 내속해 있을 것이고, 이 [내속이] 인식수단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인식결과]가 그러한 [내속]에서 발생할 수 있겠는가?반면 발생이 [지(buddhi)와] 다르지 않다면, 그것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망사학파는 자신들의 수뜨라에서 ‘발생(janman)’을 정의하지 않았고, 이 의미를 타 학파에서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바이쉐시까학파에서는 인식결과의 발생을 그 자신의 원인 속 결과의 내속(samavāya), 혹은 존재의 내속, 혹은 그것에 있는 일부 다른 특성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미망사들은 감관지가 내속에서 발생하므로, 내속은 지각(인식수단)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내속은 상주 불변이어서 결코 발생할 수 없으니, 그것은 둘 중 어느 하나의 대안이 되는 인식수단이 될 수 없다. 디그나가는 위 PS 1.43 후반부 게송에서 발생이 지(知, buddhi)와 다르지 않다면, 지(知) 자신이 지각이 되기 때문에 발생이라는 용어를 언급하는 자체가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PS 1.44 “buddhijanmani puṃsaś ca vikṛtir yady anityatā∣athāvikṛtir ātmāyaṃ pramāteti na yujyate∥”(만약 뿌루샤(puruṣa)가 지(知)의 발생 시 변이된다면, 아뜨만은 무상한 것이 될 것이고 인식주체(pramātṛ)라고 주장할 수 없다.)
디그나가는 이 마지막 게송을 통해서 지(知)의 발생 찰나의 뿌루샤(puruṣa)가 그 이전 양태(樣態)에서 변이한 인식주체(pramātṛ)가 된다면, 그 아뜨만은 “무상한 것”으로 인정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미망사들에게 힐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이 아뜨만의 상주성을 주장하는 미망사들에게 수용될 리 만무하다. 꾸마릴라는 의식의 본성 가운데 하나인 아뜨만이 양태 변이할지라도 그 실체[본질]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만약 아뜨만이 지(知)의 발생 찰나에서조차 불변이라면, 그 아뜨만은 비인식자(apramātṛ)였던 이전 양태와 동일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건 이미 인식주체가 아니라는 뜻이 되고 만다.
이로써 디그나가는 타 학파들의 지각과 관련한 모든 논의를 마치고, 결론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지각은 모두 효과적 바른 인식수단이 될 수 없는 그릇된 견해(mityādṛṣṭi)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PS(V) 제1 「지각장」을 마무리한다.
Ⅳ. 나오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디그나가의 쁘라마나삼웃짜야(브릿띠) 제1 「현량장」 34-44게송과 자주에 나타난 미망사학파의 지각 이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전면적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디그나가가 주된 비판으로 삼았던 것은, 기존 브라만전통의 제식주의를 대표하는 미망사의 다르마 탐구(dharma-jijñāsa)를 바라보는 그들의 인식수단(pramāṇa)을 타파하기 위함이었다.
불교 입장에서 인식주체는 각 찰나마다 상속 ·전변 · 차별하고 있어 영원한 것은 그 무엇도 없다는 무상성(無常性)을 내세우지만, 반대로 브라만전통의 타 학파들은 베다의 무시원성과 무저자성 그리고 자기 본유적 타당성의 입장에서 아뜨만의 상주성(常住性)을 내세운다. 이러한 입장차는 대상을 바라보는 견해를 현저하게 갈라놓는다. 디그나가는 개별상은 그 자체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지 언어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무언가와 접촉했을 때 그 찰나의 지각을 통해 구성하는 개념화, 언어화 이전에 존재가 개별상이다. 그는 언어 이전, 개념화 이전에 그 본질(svabhāva)로서 공통적으로 일체에 본유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상(無常)의 이치를 극명하게 이 PS(V) 1장의 후반부 타 학파들의 지각론 비판에서 드러내고 있다.
필자는 본문에서 감관과의 접촉 대상인 현존(sat)을 완전한 환원 불가능성 속에서 지향성을 갖는 현상적 의미로 이해했다. 앞서 각주 2에서 봤듯이 지각은 헐벗은 기계적 감관과 달리 봐야 하는데, 즉 무시이래로부터 (좁게는 과거에서) 이어져 온 훈습의 영향 하에서 다양한 현상에 반응하는 고유한 신체(le corps propre)의 지각작용이다. 초기불교의 대념처경(大念處經, Mahāsatipaṭṭhāna Sutta)에서의 수행도 실은 신(身, kāya) · 수(受, vedanā) · 심(心, citta) · 법(法, dharma) 순으로, 즉 신체가 닿는 느낌의 관찰에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 살아진(lived) 신체의 환원 불가능성 때문에 한갓 의식 앞에 놓인 대상이 아니라, 세계에로의 무한히 열려 있는 지평의 연장축선에서 디그나가의 지각 이론을 새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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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s>
Dignāga’s Criticism on the Theory of Perception of Mīmāṃsaka
Park, Dae-Yong (Ven. Dongkwang)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give a comprehensive examination of Dignāga’s criticism on the theory of perception (pratyakṣa) of Mīmāṃsaka as shown in the first chapter of his work, Pramāṇasamuccaya(vṛtti) (PS(V)) 1.34–44. In the first half of PS(V) Chapter 1, verses 1-12 state that there are only two types of correct means of knowledge (pramāṇa, 量): perception (pratyakṣa, 現量) and logical inference (anumāna, 比量). In addition to this it is concluded in these twelve verses that while the object in question refers to the object of perception the objects, means, and results of perception are not distinct.
Dignāga analyzes and criticizes the definitions of perception according to the following traditions, in the following order: ⑴ kk.1-12: Explication of the Theory of Perception of Dignāga, ⑵ kk.13-16: Criticism on the Definition of Perception of Vādavidhi, ⑶ kk.17-20: Criticism on the Theory of Perception of Nyāya, ⑷ kk.21-24: Criticism on the Theory of Perception of Vaiśeṣika, ⑸ kk.25-33: Criticism on the Theory of Perception of Sāṃkya, ⑹ kk.34-44: Criticism on the Theory of Perception of Mīmāṃsaka.
In particular, Dignāga considers the contradiction between the definition of perception in Mīmāṃsāsūtra (MS), especially in MS 1.1.4 (“The arising of a cognition when there is a connection of the sense of faculties of a person with an existing object ― that is perception; it is not a basis of knowledge of Dharma, because it is the apprehension of that which is present.” See Taber(2005), p.15) and the notions of the Veda which claim the permanence of self or ātman.
Shortly after Dignāga’s death, a counter argument regarding the criticisms of Mīmāṃsā of the PS(V), developed out of Kumārila’s Ślokavārttika, were established. This debate was followed by an extensive number of further counterarguments by the successors of Dignāga, namely Dharmakīrti and grammarian, Jinendrabuddhi. However, these details will be left for future research projects.
This study first examines perception and related content as seen in the MS of the school of Mīmāṃsā, which Dignāga considered a representative school of the classical Indian Brahminism. This is followed by an examination of Dignāga’s criticisms as found in the PS(V) 1.34-44.
•Keywords
Dignāga, Kumārila, Mīmāṃsaka, Pramāṇasamuccaya(vṛtti), Mīmāṃsāsūtra, pratyakṣa, samavāya.
논문접수일: 2021년 월 일, 심사완료일: 2021년 월 일, 게재확정일: 2021년 월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