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얼마나 아는가? 대만은 독립 국가인가, 중국의 일부인가? 아니 당연한 사실을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느냐고 한다면 이는 현재 대만의 현실과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나 역시 대만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대만을 드나들면서 조금씩 대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대만을 간 것은 1995년 3월의 19일간, 1997년 4월의 12일간, 2003년 2월의 14일간 대만에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 여름에도 대만 여행을 할 계획이다. 나의 여행은 주로 자료수집이 목적이기 때문에 도서관과 서점을 찾아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만 짬을 내서 몇몇 곳을 둘러보는 것이 여행의 전부라면 전부였다. 그러나 가끔씩 만나는 대만 보통사람들이나 유학생들과의 만남, 대만 학자들과의 대담 속에서, 그리고 기숙사에 걸린 깃발을 보면서 대만의 역사와 현실을 조금씩 생각하였을 뿐이다.
내가 대만을 몇 차례 가고, 또 앞으로도 가려고 하는 것은 내가 주로 연구하는 중국 복건성과 대만이 밀접히 관련 있기 때문이다. 현재적 관점에서 볼 때 본격적인 대만의 역사는 정성공의 대만 점령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 비로소 많은 중국인, 특히 복건 남부(민남) 사람들이 대만에 와서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오늘의 대만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만 말 하면 바로 민남어를 가리킨다. 물론 중국어(보통어 또는 국어)가 주가 되고 객가어도 있지만 대만인의 80% 이상이 민남어를 쓰기 때문이다. 이 민남어는 바로 복건 남부인 천주와 장주 말이며, 천주․장주사람들이 건너와서 정착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의 말이 정착한 것이다. 그리고 청대 대만의 복건성 대만부로 행정 편재가 되었으며, 청말 성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청일전쟁의 결과 일본에 할양되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다가 1945년 해방되었다. 그리고 1949년에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중화민국 장개석 정권이 피난하여 온 것이 지금 대만의 정치적 독립의 전제였다.
그러나 현재의 대만은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과의 관련 속에서만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대만,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주완요 지음, 손준식․신미정 옮김, 서울, 신구문화사, 2003. 6. 30)는 이러한 현실을 학문적으로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최근 나온 대만역사에 관한 개설서인 <<대만의 역사>>(김영신, 서울, 지영사, 2001)는 주로 중국, 대륙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어서 혹시 비교해 보면 비교적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대만,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이다. 이 책은 지난해 2월 대만에서 원본을 구입하였는데 마침 번역이 나와서 기뻤다. 원본은 <<臺灣歷史圖說(史前至一九四五年)>>(周婉窈, 台北, 聯經, 1997)으로, 지난해 내가 산 것이 2판 14쇄니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알 수 있다. 저자도 한국어판 서문에서 말했지만 대만에서 역사책이 이렇게 많이 팔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대만의 자기 찾기가 그만큼 치열해졌으며, 그 분위기에 대하여 책의 관점과 체제가 적절했다는 말도 된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 있다. 하나는 대만인의 정체성 찾기, 대만인을 위한 대만사의 지향이 뚜렷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자료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우선 이 책의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누구의 역사인가?
제2장 선사시대의 대만
제3장 원주민과 남도어족(南島語族)
제4장 '아름다운 섬(美麗島)'의 등장
제5장 대만 한인의 본 고향과 이주개척사회
제6장 한인과 원주민의 관계
제7장 정권교체(改朝換代)
제8장 양대(兩大) 항일사건
제9장 식민지화와 근대화
제10장 전시(戰時)의 대만
여기서 제 1장 처음부터 기존의 중국인 중심의 관점에 대하여 회의를 제기하면서 대만 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원주민을 중심에 넣는 인식을 전제로 구성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각장의 제목만 보아도 명확히 알 수 있다. 둘째, 선사시대부터 漢人, 中國과 일정정도 거리를 둠으로써 사실상 대만의 독자성을 선사시대까지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종족 역시 남도어계(Austronesian langage family) 또는 말레이 폴리네시아어계(Malyayo- Polynesian langage family)와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漢人과의 거리를 두고 있다. 셋째, 많은 개설서에서 크게 다루고 있는 정성공 시기나 청대의 대만 및 대만개발 상황에 대하여는 비교적 적게 다루고 있다. 넷째, 항일 사건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역할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 독자성을 강조하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저자는 복잡한 족군(族群: Ethnicity)과 문화 및 언어를 함께 묶어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다민족․다문화 국가로서의 대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대만인의 대만사를 지향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다른 하나인 풍부한 사진 자료는 영상시대의 역사학의 지향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이 천 마디 말보다 힘을 발휘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나 역시 고민되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구체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이 책은 하나의 모범이다. 솔직히 대만에서 이 책의 원본인 <<臺灣歷史圖說(史前至一九四五年)>>을 살 때, 가장 끌렸던 것은 수많은 도판이었다. 사진과 그림, 지도를 보다보면 어느 사이에 대만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바로 漢人과 다른 대만인의 그것이었다.
이 책은 워낙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자세하지 않다. 위에서 든 <<대만의 역사>>를 참조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대만사와 관련하여 국내에서 간행된 논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대만현대정치사>>(상․하), 張星久․吳懷連 지음, 韓仁熙 옮김, 서울, 지영사, 1992.
<<중국․대만 친일파 재판사>>, 마스이 야스이치 지음, 정운현 옮김, 서울, 한울, 1995.
<<日本帝國主義의 民族同化政策 分析 : 朝鮮과 滿洲, 台灣을 중심으로>>, 保坂祏二(호사카 유우지), 서울, J&C(제이앤씨), 2002.
김성균, <조선중기의 대만관계>. <<백산학보>> 23, 1978.
閔斗基, <臺灣史의 素描 : 그 민주화 역정>, <<시간과의 경쟁 : 동아시아근현대사논집>>(閔斗基,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1)
孫準植, <일본의 대만 식민지 지배 ―통치정책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문화>> 18, 2002.
孫準植, <淸代 타이완의 開發과 淸朝의 政策>, <<근대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모>>, 서울, 혜안, 2002.
손준식, <청조의 대만 인식과 정책>, <<중국근대사연구>> 1
손준식. <淸代 臺灣의 義學 설립과 그 특색>. <<明淸史硏究>> 7, 1997.
심혜영, <대만 정체성 논의에 관하여>, <<中國學報>> 제44집
왕가영, <대만 내셔녈리즘의 발흥과 변천>, <<민족연구>> 제5호
이홍길, <청일전쟁에 있어서 대만의 할양>. <<전남대논문집>> 21. 1975.
曾健民, <대만의 민족정체성과 탈식민 문제>, <<역사비평>> 2003년 가을, 통권64호.
河世鳳, <模型의 帝國 ―1935年 臺灣博覽會에 表象된 아시아―>, <<東洋史學硏究>> 78, 2002.
河世鳳, <“우리”는 누구인가 : 대만의 역사 찾기>, <<동아시아 역사학의 생산과 유통>>, 하세봉, 서울, 아세아문화사, 2001. *
河世鳳, <대만역사에서 망각과 기억 : 중학교 교과서 <<認識臺灣>>의 認識>, <<동아시아 역사학의 생산과 유통>>, 하세봉, 서울, 아세아문화사, 2001.
<2004. 2. 5. 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