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해드림출판사 순천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이다.
어머니가 점심을 잘 챙겨드셨나 싶어 전화를 드렸는데, 텃밭에서 무얼 하시는지 전화를 안 받는다. 내 느낌인지 몰라도 하루가 다르게 어머니 거동에는 힘이 떨어져 보인다. 어머니와 살아보면서 알았다. 세상을 90년쯤 살다보면 스스로 밥 한 끼 챙기는 일도 버거울 수 있다는 것을…. 반찬이 걸든, 쥐코밥상이든 누군가 곁에서 한 끼 챙겨주는 일도 달가운 일이지 싶었다. 어머니가 그랬다. 싱겁고 짜고 맵고, 도무지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음식 솜씨로도 세 끼 밥상을 차려드리니 편안해 하시는 걸 느꼈다. 올여름 형수가 내려왔을 때, ‘가만 앉아서 밥을 받아먹으니 만고에 신간 편하다’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는 그동안 혼자 지내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밥상을 차려놓았는데 입맛이 없다며 숟갈을 안 들 때면 기운이 쭉 빠진다. 시무룩하게 혼자 꾸역꾸역 밥숟갈을 들 때가 종종 있다. 때론 어머니가 무심하기도 하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기간이면, 지난 두어 달 동안은 시골집에서 재택근무를 한 셈이다. 어머니 삼시 세끼를 챙겨가며 일을 하다 보니 일하는데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낮에는 순천 사무실로 나와 일을 하게 되었는데, 막상 시내 사무실로 나와 일하다 보니 어머니께 자꾸 죄송한 마음이 든다. 아침과 저녁상을 내가 챙긴다고는 해도, 순천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도 일인지라, 퇴근이 늦을 때가 있다. 어머니 혼자 점심과 저녁조차 챙겨야 하는 날이 더러 생긴다는 것이다. 퇴근이 늦은 날에도 어머니는 불을 환하게 켜 놓은 채 자식을 기다린다.
어머니를 위해 일하는 장소를 둘로 나누었다고는 하나, 이런 상황이라면 서울에서 상주하며 날마다 어머니를 향해 까치발만 세우던 때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아닌가. 물론 시골집과 순천 사무실이 시내버스로 20분 거리의 ‘안심 거리’이고,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기색을 살필 수 있는 여건만 해도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워낙 고령이다 보니 스물네 시간 어머니 곁을 붙든 채 생활해도 마음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이다.
어머니도 시골집에서 출근하는 아들을 보게 될 줄은 생각지 못하였다. 출근 가방을 메고 어머니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며 집을 나서는 일이 아직은 어색하다. 아침을 챙기다 보면 버스 시간 맞추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버스가 조금 늦기도 하고, 생각한 시간보다 빨리 와 지나쳐 버리기도 한다. 그나마 스마트폰에서 88번 시내버스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한 부분이 있다.
한적한 시골버스를 타고 차창 밖의 시골 풍경을 감상하며 출퇴근하는 일이 여유롭긴 하다. 20분 거리라 책을 들여다보며 가기에는 짧다.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무실이요, 마을 앞이다. 지금은 해가 있는 퇴근길이지만 조금 있으면 버스는 가로등 없는 캄캄한 시골 도로를 달리게 될 것이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데 아무런 근심만 없다면, 시골 생활은 행복 덩어리다. 이곳에서 가장 고무적인 일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침마다 땀 흘려 달리는 일이다. 사방으로 벼들이 조금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기다란 농로와 굽이쳐 흐르는 개펄 강둑을 달리다 보면, 서울 생각은 전혀 안 난다. 서울 사람들도, 해드림출판사조차도 안 떠오른다. 농사일하느라 시골 사람들은 별도로 운동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보석 같은 길을 혼자 차지해 달리는 것이다. 때로는 아침노을을 만나고, 물때 따라 때론 벙벙하게 차오른 밀물과 만나기도 한다. 펄펄 살아 있는 개펄이 주는 아침 분위기로 푹 빠져들기도 한다. 사방이 자연의 기운으로 충만한 마을 앞은 아침마다 나를 행복케 하는 곳이다.
일하는 데 집중력이 떨어져도 삶이 좀 여유가 있다면 온종일 시골집 어머니 곁에서 일해도 문제될 일은 아니지만, 이 나이 되도록 아등바등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그 아등바등이 나를 긴장케 하고, 그 긴장이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