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옥 양식에 서양식 평면 결합
전북 장수읍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쪽으로 10분 남짓 달려 고갯마루를 향하다 보면 오른쪽 산기슭에 마을이 보인다. 물뿌랑구(물뿌리) 마을이라고도 하는 수분리(水分理) 마을이다. 비가 내리면 고갯마루를 경계로 빗물이 갈라져 한 줄기는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다른 한 줄기는 금강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2005년 6월 등록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된 장수본당 수분공소는 마을 앞쪽 산자락에 붉은 색 함석 슬레이트 지붕을 하고 있다. 공소 뒤뜰에 세워져 있는 대형 예수 성심상은 멀리서도 이곳이 천주교 건물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에수 성심상은 2003년 공소 신자들이 공소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세운 것이다. 공소로 들어가니 뜻밖에도 건물이 2동이다. 1920년초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가 공소를 신축할 경우 방 2개가 딸린 강당을 더 짓도록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사제 수급이 원활해지면 공소에 사제를 파견해 본당으로 승격시킬 요량으로 사제관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수분리에 언제부터 교우들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최양업 신부가 이곳까지 다녀갔고, 이춘경이라는 교우가 병인박해 이전에 이곳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병인박해 때는 수분리 북쪽 골짜기인 막골과 남쪽 골짜기인 운학동에도 교우들이 피신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분리에 공소가 지어진 것은 1913~14년 쯤이다. 당시 수분리를 관할하던 함양본당 이상화(바르톨로메오) 신부와 진안 어은동본당 김양홍(스테파노) 신부는 무주 임실, 남원 등지의 공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두 본당의 중간 지점에 쉬어가는 쉼터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 수분리에 강당과 침실을 지었다. 하지만 관리가 부실해서 허물어지게 생기자 1921년 공소 건물을 전면 개축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공소 신자들은 28km 떨어진 함양에서 흙기와를 구해 고개를 세 번이나 넘어가며 지게로 날랐고, 목재는 4km 떨어진 금천 앞산에서 육송을 구해 옮겨왔다. 이렇게 해서 보강된 공소 건물은 정면 6칸에 측면 3칸으로 된 팔작지붕의 전통 한옥 양식이다. 시멘트로 바닥을 고르게 한 후 주추를 놓고 나무 기둥을 세웠으며, 벽에는 좌우로 밀어서 여닫는 미세기 창을 냈다. 정면 가운데와 양 측면에 출입구를 냈으며 주 출입구는 왼쪽 측면으로 냈고, 제대 뒤쪽에는 고해실과 제의실을 두었다. 고해실은 창틀을 통해 무릎을 꿇고 고해를 보는 신자석과 사제가 고해를 듣는 사제석이 완전히 구별돼 있고, 사제석 윗벽에는 '기렴'이라고 쓴 나무 현판이 걸려 있다. 수분리와 송산리 두 공소 신자들이 힘을 합쳐 성당 침실을 중수한 것을 기념해 1956년 5월16일에 쓴 현판이다. 공소 내부는 마룻바닥은 물론 기둥과 벽, 제대까지 모두 처음 공소를 지었을 때 것 그대로다. 제대는 원래 벽에 붙여져 있었으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사제가 신자들을 향해 미사를 드리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떼어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면 나무 기둥들을 철근으로 고정시켜 놓은 곳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김종환(안드레아, 67) 공소회장은 "흙기와로 만든 지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기둥이 무너질 염려가 있어 조치한 것"이라고 한다. 공소 지붕을 함석 슬레이트로 바꾼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원래 흙기와였으나 1970년대에 시멘트 기와로 바꿨다가 다시 1980년대에 함석 슬레이트로 교체했다. 1920년대 공소 건물을 중수하고 네 칸짜리 사제관을 마련한 수분공소는 1926년 수분본당으로 승격한다. 초대 주임은 김필곤(바르나바) 신부. 이어 1928년 석종관(바오로)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후 수분본당은 한때 교우 수가 1300명(본당 300명, 공소 1000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1950년 6ㆍ25 전쟁으로 조상익 주임신부가 군종신부로 입대하면서 수분본당은 남원본당 공소가 됐다가 1954년 장수군 전 지역을 관할하는 본당이 장계에 신설되면서 완전히 공소가 됐다. 현재는 장수본당 관할인 수분공소에는 19가구 50여 명의 교우가 살고 있다. 수분리 마을 주민의 70% 정도가 교우로, 공소 운영은 한 달에 두 번은 공소 예절을 드리고 한 번은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한 번은 본당 신부가 공소를 방문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글 사진=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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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문화재 제189호 수분공소. 원래는 흙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의 목조단층이었으나 지금은 함석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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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출입구쪽에서 제대를 향해 바라본 공소 내부. 마룻바닥은 물론 기둥과 벽, 제대까지 처음 공소를 지었을 때 그대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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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설치했을 때 모양 그대로인 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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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석과 고해석이 완전히 구별돼 있는 제대 뒤쪽 고해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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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근으로 보강해 놓은 공소 내부 나무 기둥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