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건 시대부터 제조되어 내려온 함경도지방의 민속토속주로서 원료는 조, 수수, 밀 등으로 발효하여 구식증류기(일반가정의 가마솥 뚜꺼을 뒤집어서)로 증류하여 공급되었던 것이다. 문배주 기능보유자 이기춘 씨는 증조모 박씨, 조부 이병인 옹, 부친 이경찬 옹에 이어 4대째 문배주의 맥을 잇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대동강변의 주암산 샘물로 빚어 임금님께 진상하던 이 술은 이경찬 옹이 6.25사변 직후 월남하면서 서울술이 되었다.
문배주는 곡류로 빚은 증류수지만 소주나 일반 증류주와는 달리 상당히 부드러운 술이다.
백세주
옛날 한 선비가 길을 가다가 청년이 한 노인을 매질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선비가 이 청년을 심히 꾸짖자 청년은 이 아이는 내 자식인데 내가 주는 술을 먹지않아 이렇게 되었소.?라고 했다. 선비는 청년에게 크게 절하며 그 술의 이름을 물었는데 바로 이 술이 백세주였다.
백세주의 원료는 찹쌀, 구기자, 황정, 하수오, 숙지황 등이 주재료이다. 한약재의 특유한 향을 갖는 백세주는 간과 위를 보호해 주는 건강주로 보약주라고도 한다. 특히 노화를 방지하고 회춘을 시켜준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 송절주
이 술이 정확히 언제부터 빚어지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조선 말기 실학자 서유구의 형수 빙허각 이씨가 지은 부녀자 생활지침서인 <규합총서>등에 소개된 것으로 미루어 조선 중엽 이전부터 빚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의 이씨 집안의 가양주로 그 기능이 전수되어 온 이 술은 조선 선조 때의 충경공 이정란 장군의 14대손 필승의 부인 허성산을 통해 그의 며느리 박아지에게 전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일반인들은 송절주를 마실 수 없다. 알코올 농도 16도의 순한 술인 송절주는 유통과정에 변질되기 쉬워 송절주 만이 가진 특유한 맛을 소비자에게 전할수 없어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조흑주
전통 백하주의 생쌀담금법을 되살린 술이다. 옛 문헌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백하주를 되살려 내어 전통 백하주의 지나친 누룩맛을 줄이고 현대인의 기호에 맞게 빚은 전통약주이다. "흑주"라는 이름은 전통누룩에 가장 많은 신비하고 유익한 곰팡이(라이조프스)의 빛깔이 일본식 누룩과 달리 검은 빛을 띠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조흑주는 연한 담황색 빛깔에 전통약주만이 갖는 과실향이 일품으로 마신 후 두통과 숙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또 감초의 해독작용, 건강에 좋은 알칼리성, 저온살균법을 사용해 보존기한이 6개월 이상이라는 점도 이 술의 특징이다.
포천 이동막걸리
포천 막걸리로 알려진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한일탁주합동주조장 하유천씨는 일제의 한국 전통막걸리 고사작업이 한창이던 1944년 서울 마포에서 처음 막걸리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하씨가 "포천 이동막걸리"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63년 마포에서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로 옮겨 3백평 규모의 한일탁주합동주조장을 세우면서부터이다.
막걸리는 서민들과 더불어 온갖 애환을 함께한 술이라 선호도가 높다. 곡주로 만든 막걸리는 텁텁하면서도 은은한 취기를 내는 고유한 맛을 가지고 있어 손님 접대용이나 농촌의 일터에서 꾸준히 애용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유통지연에 따른 막걸리 발효, 막걸리는 포장을 해도 발효가 일어나 저장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하다.
경기 옥로주
경기 옥로주는 민속주의 하나로 증류식 소주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주가 제조되기 시작한 연대에 대해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성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옥로주는 유씨 가문에서 만든 가양주로 그 연대는 1880년경부터로 보고 있다. 그 후 1947년 초에 전통 가양주인 알코올농도 30도 소주를 생산하면서 ‘옥로주’라는 상표를 붙였다. 옥로주라 이름하게 된 것은 옥로주를 증류할 때 증기가 액화되어 마치 옥구슬 같은 이슬방울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옥로주는 그 맛이 부드럽고 담백하여 온화하고 율무에서 나오는 독특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술이 독하여 빨리 취하나 숙취 없이 깨끗하게 깨는데, 코익세라노라는 약용성분이 있어 강장제와 함께 일반적인 종양 제거작용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명주
계명주는 여름철 황혼녘에 술을 빚어 밤을 재운 뒤에 새벽닭이 울면 마실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계명주는 원래 평양, 평안남도 지방에 고구려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서민들의 술이다.
계명주는 결성 장씨 집안의 종부인 최옥진씨가 11대째 집안에서 전수되어 오다가 술빚는 비법을 공인받아 1987년 3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면서 경기지방의 민속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계명주는 연한 담황색 빛깔에 솔잎향이 나며 마신 후에 혀끝에 단맛이 감도는 게 특색인 이 술은 한번 마셔 본 사람이면 반드시 다시 찾게 되는 명주로 애주가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다. 이 술은 은근히 취하게 하면서도 빨리 깨는 것이 특징이며 피로회복, 양기회복, 혈액순환 촉진은 물론 폐의 보호 그리고 소화작용 등을 돕는 ‘약주’로도 알려져 있다.
삼해주
삼해주는 시양주의 하나인 삼양주이다. 정월 첫 돼지일에 밑술을 담가 세 번 덧술을 쳐, 저온에서 발효되는 삼해주는 예로부터 서울, 경기지역의 전통주로 유명하다. 가장 추운 정월에 담가 버들가지에 물이 차오를 때 마신다는 삼해주는 곡주 특유의 미황색을 띤 채 차가운 기운을 품고 있어 30여 종의 고문헌에 오르내리는 민속명주이다.
시와 술, 거문고를 즐겼던 고려시대의 문장가 이규보는 저서 <동국이상국집>에서 ‘적막한 집을 찾은 군후재상과 더불어 정을 나누는 술’로 일컫고 있어 이 술의 기원은 이미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전통주 중 고급이라 할 수 있는 경주법주와 한산 소국주가 두 번 덧친 술임을 고려한다면 삼해주 주조에 들이는 정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방부제와 향료를 전혀 첨가하지 않고 오로지 장기저온 발효 속에서 곡주 특유의 맛을 자아내는 삼해주는 알코올도수 12도의 약주로 차가운 기운을 지니고 있어 무더운 여름철에 좋은 건강주로 통하고 있다.
옥미주
옥미주는 100여 년 동안 충북 제천지방에서 살아온 평남 문씨 가문 맏며느리에게만 전수되어 왔다. 옥미주는 잘 여문 옥수수와 현미, 엿기름, 고구마 등이 어루러져 빚어내는 독특한 향과 감칠맛이 자랑이다. 4대째 가문의 맥을 이어온 옥미주 제조기능 보유자 임송죽씨는 ‘순수한 진품만으로 친절하고 성실하게 손님들을 접대해 한번 찾은 손님들은 또다시 찾는다.’며 독특한 제조법만큼이나 정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국세청으로부터 전통민속주 제조허가를 받아 만들어지는 옥미주는 알코올도수가 11도로 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는 등, 뒤끝이 깨끗해 여성들에게도 꽤 인기가 높다. 더욱이 독특한 성분으로 인해 동맥경화 예방에도 좋은 약술로 알려져 애주가들이 많이 찾고 있다.
칠선주
칠선주는 고문헌등에 그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1777년 조선조 22대 정조 원년에 빚어진 기록으로 보아 2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술이다.
오늘날의 칠선주는 인주(인천의 옛이름) 지역 궁중 진상품이었던 칠선주로서 인삼, 당귀, 구기자 등 한약재를 넣어 두통, 구토 등 숙취를 없애 건강약주에 대한 조상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일제 때 쌀 공출령으로 맥이 끊긴 뒤 애주가 이종희씨가 옛문헌 고증 등 10여 년의 연구 끝에 1980년 그 맛의 효능을 재현하는데 성공하였다. 1990년 칠선주 제조비법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으면서 시판용으로 제조되기 시작했으나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칠선주는 일곱가지의 한약재를 첨가한 데서 명명된 것이다. 두통, 구토 등에 효과가 탁월하여 궁중에 진상되던 술로 유명하다. 또한 칠선주는 마실 때 은은한 누루향과 부드러운 맛이 장점이다.
* 강 원 도 *
강원 옥로주
강원도는 산간지역이어서 오래 전부터 벼농사보다는 밭이나 산을 개간하여 생산하여 옥수수, 감자 등이 농작물의 근간을 이룬 것이 술문화에 있어서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맛에 있어 고소한 향취가 빼어난 옥수수로 만든 술인 일명 옥로주는 재래 옥수수와 찹쌀을 주원료로 만드는데 다른 어떤 술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유의 담백한 맛으로 지역 주민에게는 농주와 제주로, 내방객에게는 접대용으로 제공돼 오고 있다. 지금은 춘천군 산북면 김형철씨가 전래의 향과 맛을 내는 옥수수술 제조에 성공하여 국세청으로부터 양조 제조허가를 받아 대중화에 주력하고 있다.
옥로주는 다른 민속주와는 달리 겉보기에 기름기가 돌며 옥수수 특유의 고소한 향이 나는데다 입에 넣으면 담백한 맛이 나 웬만한 애주가라면 금방 향과 맛에 반한다. 옥로주는 성분과 효능을 분석한 결과 알콜 농도가 11도로 순한 데다 옥수수와 찹쌀의 성분이 잘 보존돼 있다는 우량 약주의 판정을 받았으며 예부터 속을 편하게 하고 위의 기능을 돕는다고 전해지고 있어 신장염, 당뇨, 고혈압, 토혈, 방광, 결석 등에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창 감자술
예부터 평창지역에서는 감자를 원료로 한 메뉴가 감자부침에서 감자떡까지 10여종에 이르는 식품들이 개발되었으며 특히 감자술이 문헌상에 기록된 내용은 없으나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대를 이어 전해왔다. 그러나 감자술은 일제 때 밀주단속으로 반세기 동안 단절되어 오다가 최근 평창군 진부면 홍성일 씨의 집념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대관령 감자로 빚은 건강주로서 산성체질을 알칼리성의 체질로 바꿔주는 효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밥 소주
이 술은 시베리아, 중국의 연안지방에서 많이 만들어 마셨다는 것으로보아, 추운지방의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이술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조선시대 말경으로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지역적으로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빚어 마셨다고 한다.
향이 자극적이어서 독한 술을 좋아하는 소련이나 중국의 연안지방에서 인기가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천 옥선주
괴질을 앓는 어버이를 모시던 선비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와 허벅지 살을 베어 봉양하여 장수하시니, 나라님께서 이를 아시고 효자표창과 정3품의 벼슬을 봉칙하였다. 선비 이용필은 임금님께 가주인 옥촉서약소주를 진상하고, 부인의 함자를 따서 옥선주라 불리게 되었다.
뒷맛이 깨끗하고 숙취가 없고, 여린 연갈색 빛깔과 화사한 미각, 청량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 충 청 도 *
금산 인삼주
역사적으로 개성이 고구려인삼, 풍기가 신라인삼, 금산이 백제인삼의 특성을 각각 이어오고 있으며, 그 중 백제 삼이 금산인삼을 대표하는 인삼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백제 인삼을 원료로 빚은 금산 인삼백주는 삼남지방에 널리 알려진 명주로, 주질에 있어서 어느 민속주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전통과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금산의 인삼백주는 삼국시대 백제 때부터 제조됐던 것으로 구전되고 있으나, 기록에는 1399년 도승지와 이조판서를 지낸 김문기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것을 18대손인 김창수 씨가 조모와 모친에 의해 전승되어 계승되어 오고 있다.
예로부터 인삼은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특히 위 기능이 약한 자,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은 자, 저항력이 약한 자, 아편 해독 등에 으뜸이라고 한다. 이같은 효능을 가진 인삼으로 빚은 금산 인삼백주는 누룩을 만들 때부터 인삼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약용주, 건강주의 대명사로 이름이 나 있다.
면천 두견주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전,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이 이름 모를 병을 앓게 되어 백약이 무효라 복지겸은 생사를 가늠할수 없게 되었다. 복지겸에게는 15살 난 딸 영랑이 있었는데, 영랑은 매일 아미산에 올라 부친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100일 기도 마지막날 밤 꿈에 영랑은 부친의 병이 나으려면 아미산에 만개한 두견화 꽃잎과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의 물로 빚어 백일이 지난 다음 부친이 이를 마시고 난 다음 뜰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고 정성을 드리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계시를 받았다. 영랑은 즉시 이를 실행에 옮겨 부친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이로부터 아미산의 진달래와 안샘에서 솟아오르는 물로 빚은 두견주는 명약으로 칭송되게 되었다. 영랑이 심었다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오늘날에도 현존해 있으며 안샘 또한 그 수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전설과 함께 면천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두견주는 후에 김윤식의 <운양집>에 면천사람이 처음으로 빚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면천 두견주는 마신 후 뒤끝이 깨끗할 뿐만 아니라 진해작용을 도와주고 피로회복 및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산 연엽주
연엽주는 "술을 담근 후 다른 좋은 술을 부어도 향내와 맛이 여전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충남 아산군 송악면 외암리 민속마을 내 "이참판댁 가양주"로 더 잘 알려진 충청 무형문화재인 연엽주는 원래 대궐에서만 사용되던 술과 차의 성격을 함께 지닌 궁중음식이었다. 연엽주 기능 보유자인 최황규 씨의 시댁인 예안 이씨 5대 선조 이원집이 쓴 <치농>이란 책에는, 이 술이 조선 영조 때 임금과 대신이 궁중회의를 할때 경직되기 쉬운 분위기를 풀고 원활한 토론을 유도하기 위해 차와 달리 술보다는 도수가 낮은 적당한 음료가 없을까 하고 여러 대신들이 궁리 끝에 개발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엽주는 알콜농도가 10∼15도로 순하며 특유의 쌉쌀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칠맛이 짙게 배어 있다. 연엽주는 장기간 복용할 경우 피를 맑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는 양기를 북돋워 주고 여성에게는 산후 하혈을 방지해 주는 약효가 있는 것을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연엽주는 다른 술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만큼 1990년 12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 11호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량 생산할수 없어 연엽주 맛을 보기 위해서는 외암리 민속마을 "이참판댁"까지 직접 찾아가야만 한다.
중원 청명주
남한강과 달천강이 합류하는 충북 중원군 가금면 창동리에는 청명주가 은은한 향과 함께 충청도 인심처럼 익고 있다. 찹쌀과 누룩 밀가루를 주원료로 빚는 청명주는 오래 둘수록 맛이 달콤하고 진하며 향이 독특해 오랫동안 이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조선시대 뱃길 화물운송의 중심지였던 창동리의 김해김씨 가문에서 비방으로 만들어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하던 가양주인 청명주는 맛이 뛰어나 궁중의 진상주로 뽑히기도 했다.
예부터 술의 맛은 물맛이라고 하고 음식맛은 손맛이라고 한다. 청명주에 쓰는 물은 수살매기란 물을 사용하는데 달천강물과 창도의 산골짜기 물이 합류된 곳에서 솟아 나오는 강물이 수살매기물이다. 물이 좋아 장수하는 노인이 많다고 하는 이 지역의 좋은 물을 사용한 청명주는 조선시대에 궁중에 진상될 정도로 좋은 술이었다. 좋은 물로 만들어진 술이기 때문에 뒤탈이 없고 깨끗한 것이 이 술의 특징이다.
가야곡 왕주
궁중술이라 불리는 왕주는 가야곡 청정지역의 맑은 물을 사용하여 땅의 기운에 의해 백일 동안 정성스럽게 익힌 짜릿하고 새콤달콤하며 은은하게 약초 내음이 나는 술이다. 구전에 의하면 왕주는 백제시대부터 내려온 가양주로 백제인의 얼과 한이 서려있는 전통의 술이다. 오천년 유구한 음식문화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왕주와 같이 많은 술과 음식이 전통방식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며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백제시대에도 많은 집안에서 곡주를 빚어 마셨는데 조선시대 초까지 명맥을 유지하다가 조선시대 중엽 금주령이 내려진 이후 곡류류의 술담금이 엄격히 규제되자 산에서 채취한 약초를 가지고 술을 담그기도 했다. 조선시대 말 곡주의 규제가 완화되자 민씨 집안(명성왕후의 친정)에서는 곡주와 조선시대 중엽 성행했던 약술을 접목시켜 이를 빚어 왕실에 진상하였다고 한다.
왕주의 주재료는 찹쌀, 야생국화(일명 구절초), 구기자, 솔잎이다. 찹쌀은 술의 냉한 성질을 보완한다. 야생국화는 숙취, 두통, 어깨결림, 혈압상승을 예방할 수 있고 혈액정화에 강한 역할을 한다. 여드름이 나지 않게 하고 미용효과도 뛰어나서 국화차나 술을 마시는 가정엔 미인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불로초로 널리 알려진 구기자는 위장, 신장, 간장, 심장을 보호하고 눈을 밝게 한다. 머리와 눈이 어지럽고 식은땀이 날 때 쓴다. 솔잎은 불로 장수의 약용 식물이다. 매일 먹으면 중풍을 예방하고 동맥경화증, 당뇨병 등에 효과가 있으며 옥시파프티민산의 작용으로 노화를 방지한다고 한다.
계룡 백일주
계룡 백일주는 조선 인조 때의 정사공신 연평부원군 이귀의 부인인 안동 장씨가 왕실에서 양조비법을 배워와서 이씨댁에서 빚어 왕실에 진상했던 술이라 하는데 이때부터 연안 이씨 가문에서 대대로 비법이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당시 이귀의 부인 안동 장씨에게 전수된 이후 14대손의 부인에게까지 전해진 이 술은 양조 기간이 1백일이 걸린다하여 백일주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술은 경관이 수려한 공산성의 누각에 앉아 짙푸른 금상을 내려다보며 잔을 기울이면 신선이 된 듯하다 하여 오래 전부터 삼남지방의 애주가들에게는 더 잘 알려져 있다.
계룡 백일주는 알코올 농도가 18도로 부드럽고 감칠맛이 돌며 각종 유기산, 당질,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식욕증진, 혈액순환 촉진 등에도 효능이 있다.
옥천 한주
옥천 한주는 땀을 내듯 증류시킨다는 뜻의 한주, 이슬 같이 받아낸다는 의미의 로주라고 불리던 조선시대 전통 증류주로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호 송절주의 기능보유자 이성자 선생에 의해 그 명맥이 유지되어 왔다. 현재 한국 문화재보호재단의 전용민속주로 선정되어 있으며 북유럽 및 아시아에 수출하여 가장 한국적인 전통의 맛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알코올 도수 35도와 45도인 한주는 멥쌀과 찹쌀, 솔잎에 띄운 누룩과 충북 옥천의 청정석간수로 섭씨 18도 이하의 저온에서 50일간 발효시킨 다음 이를 증류한 후 다시 2백일간 숙성시킨 부드러운 맛과 함께 그윽한 향을 낸다. 또 장기저온 발효과정을 거쳐 마친 후 뒤끝이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곡자향, 목젖을 자극하는 화끈한 맛, 마신 후의 여운으로 남는 부드러운 뒷맛은 가히 전통 증류주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청양 구기자주
구기자는 예로부터 불로장생과 관련된 사연이 많은 식물이다. 영생을 꿈꾸었던 중국의 진시황이 동방에서 찾았다는 불로초가 바로 구기자라는 설도 있고 또 옛날 청양땅에 대대로 장수하는 가문이 있어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그 집 우물가에 있는 큰 구기자나무의 뿌리가 우물 속으로 뻗어 물을 약수로 만들고 있었다는 속설이 전해질 정도로 구기자는 약효가 탁월한 식물로 유명하다. 구기자 술은 오래 전부터 청양지방 사람들이 빚어 마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고증할 만한 문헌이나 자료가 없어 아직 민속주로 지정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구기자주가 전통식품 명인 제11호로 지정된 것은 1996년 4월의 일이다. 청양군청 및 충남도청을 중심으로 구기자주의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특산품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구기자술은 약간 새콤한 맛이 도는 알코올 20도의 술로 뒤끝이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동의보감>과 <의학입문> 등 전통 한의서에서 구기자는 독이 없고 뼈와 근육을 튼튼히 하며 피로회복과 정력증진에 효과가 있고 위장, 신장, 간장, 심장 등 주요기관의 병을 치료하는데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청원 신선주
예로부터 물 좋기로 이름난 미원지역에서 생산하는 신선주는 함양박씨 집안에 18대째 약 400여 년 동안 전승되고 있는 가양주로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충청도 도사 박숭상이 이 마을로 낙향한 후 이 술을 빚는 비법이 전해졌다고 하며, 신선주라 함은 일찍이 신라시대에 최치원이 이 마을 앞의 신선봉에 정자를 짓고 이 술을 즐겨 마신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선주 제조는 보신강장용 생약제를 찹쌀 누룩 등과 함께 발효시켜 청주 또는 증류주로 만드는데 복용하면 능변 백발 연년익수 등에 효능이 있다하며 독특한 향이 있고 후유증이 없다. 또한 마신 후에 숙취되지 않고 머리가 맑아져 마시기에 매우 좋다.
청주 대추주
충북 청주시 산성동 상당산서의 한옥마을에서 대대로 빚어오던 대추술은 1991년 10월 국세청의 제조 승인으로 본격 시판에 임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공동출자로 양조장이 건립된 이후 청주시는 물론 충남북 대전지역으로 판매량을 확대, 충청인의 토속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마을 주민을 대표해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서정만 씨는 ‘예부터 마을에 대추나무가 많아 집집마다 대추술을 빚어 오면서 마을 어른들꼐서 위장이 약해지거나 특히 여름철에 원기가 부족해지면 이를 약술로 마셔 효험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대추술은 작은 마을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온 약주로 오랜 세월 명성을 이어왔던 것이다.
명주 중의 명주인 ‘청주 대추술’은 예로부터 체력감퇴를 막고 근력을 강화시키는 약용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강장, 내장 및 제기관의 강화, 제기관의 긴장에 의한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탁월한 약효를 지니고 있다. 또한 과민증을 치료하고 이뇨제로도 쓰이며 대추 고유의 성분인 비타민 등의 영향으로 모세혈관을 강화하여 뇌출혈, 뇌졸중, 방사선 장애에 효과가 크다.
한산 소국주
백제의 숨결이 짙게 배어 있는 충남지방, 그 중 서천군 한산면에 백제인들이 즐겨 마신 것으로 전해지는 소국주가 옛 맛을 간직한 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한산 소국주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된 후 백제 유민들이 지금의 한산땅인 주류성에서 마지막 항거를 하며 나라 잃은 슬픔과 한을 달래기 위해 빚어 마셨다는 일화와 함께 한번 앉아서 마시다 보면 그 맛에 취해 일어날 줄 모른다하여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한산 소국주는 개나리꽃과 같은 노란색을 띠며 향긋하고 은은한 향과 혀끝을 감아도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또 화학첨가물이 전혀 함유되지 않은 순수한 찹쌀로 빚은 술이기 때문에 맛이 순하고 부드러우며 뒤끝이 깨끗하다.
* 영 남 지 역 *
경주 교동법주
안동 소주법주란 일정한 규격에 따라 빚는 술이란 뜻으로 오늘날 신라의 비주라 일컬어지는 "경주법주"란 경주의 최씨 문중 비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술은 마실때마다 착 감기는 맛과 은은하고 독특한 향기를 뿜어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즐겨 마셔온 경북 경주의 교동법주이다. 일제시대에도 총독들이 이 술을 좋아해 술 제조를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초 초대 주한미국대사는 한국에 부임한 후, 당시 이시영 부통령과 함게 일부러 경주까지 내려와 부임 기념 만찬회를 개최했을 정도로 뛰어난 술맛을 즐기기도 했다는 일화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NHK 방송국에서 5회에 걸쳐 교동법주를 빚는 과정과 각계 인사들의 평가 등을 전국 방송망을 통해 방영하기도 했다. 이 술은 조선조 숙종 때 궁중음식을 감독하는 사응원의 참봉으로 있던 최국준 참봉이 숙종이 평소 즐겨 마시던 술의 제조비법을 터득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경주 최씨 가문의 비주로 전승시켜 내려오다 1986년 11월 정부의 민속주 발전시책에 따라 최국준의 8대손과 결혼한 배할머니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음으로써 빛을 보게 되었다.
교동법주는 100일동안의 정성으로 담그는데 곡주 특유의 감미로움과 주향이 좋은 것이 특징이며 제조량이 워낙 적어 열흘 단위로 술이 빚어지는 날이면 경주시 교동 최부자집은 이 술을 구하기 위한 애주가들이 장사진을 이루지만 구하기 힘들어 웬만한 정성으로는 술맛을 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최씨 가문에서는 교동법주의 주조법을 가문의 전통으로 잇기 위해 출가하는 딸들에게 비법을 가르치지 않고 300여년 동안 철저히 맏며느리에게만 비법을 전수해 지금도 장남 최경씨와 맏며느리 성정애씨 부부에 의해 제조법이 전수되고 있다.
금정산정 토산주
부산의 산성막걸리는 우리나라 막걸리로는 유일하게 향토 민속주로 지정되어 있다. 산성 막걸리는 그 유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조선 초기부터 이곳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누룩을 빚기 시작한 데서 유래하였다. 숙종 32년 왜구의 침략에 대비키 위해 금정산성을 축성하면서 외지인들의 유입이 늘어나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전하고 있다. 이때 성을 쌓기 위해 각 지역에서 징발된 인부들은 막걸리 맛에 반해 축성공사가 끝난 후, 고향에 돌아가서도 그 맛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 후 산성 막걸리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널리 보급됐고, 일제시대에는 널리 만주와 일본까지 건너갈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이 시절에는 산성에서 만드는 누룩의 양이 많고 적음에 따라 부산-경남 일대의 곡물값이 오르내릴 정도 였다고 한다. 전통민속주 제도가 생기면서 민속주 제 1호로 지정받았다.
안동소주
안동의 명물인 안동소주는 순곡주로 은은한 향취와 감칠맛이 있어 인기가 대단하여 한때는 일본과 만주까지 판로가 뻗어 인기를 독차지했다. 안동소주의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지만 고려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져 안동지방의 특유한 물로 쌀을 쪄서 술밑을 빚어 증류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안동소주는 원래 30∼45도까지 4종류가 있으나 현재는 45도짜리만 생산되며 술을 담근 후 오랫동안 숙성했기 때문에 알콜 도수가 높은데도 은은하고 감칠맛이 있는데가 과음해도 뒤끝이 깨끗해 애주가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은은한 맛 때문에 안동소주는 공급량이 수요를 못따라 주당들의 불만이 있다.
가지산 송엽주
송엽주는 동래 정씨 집안의 가양주로 전승되어 소량씩 제조하여 오던 중 병조좌랑공 할아버님께서 무과에 급제하시고 당시 오시는 손님에게 접대주로 송엽주를 권하였더니 많은 분이 맛보고, 그 후 송엽주를 찾는 분이 많아 이때부터 송엽주를 많이 담그고 또한 그 제조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가문대대로 전승되어 오늘날에 전해지게 되었다.
알코올 농도 25도와 35도의 두 종류가 있는데 음주 후에도 뒷맛이 깨끗하여 숙취가 없는 반만년 역사의 한국 전통명주이다. 송엽주는 전래비법과 고감도 신기술로 장기간 숙성을 통하여 부드럽게 조화시킨 증류주로서 마신 후에도 거부감이 없이 누구나 즐겨 마실 수 있으며, 소나무 잎으로 만들어 결혼, 회갑, 제례의 예주로 널리 쓰여지고 있다. 또한 영구보존이 가능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과 향이 더욱 좋아진다.
경주 황금주
법주가 한 가문의 비주라고 한다면 황금주는 경주인이 널리 애음해 온 토속주이다. 한 가문의 술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헌상으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신라 헌강왕 때 경주 남산 임씨 문중에서 처음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신라시대부터 경주지방의 토속주로 사랑받아온 황금주는 일명 국화주라고도 한다. 현재까지도 경주지방에서는 찹쌀로 국화주를 빚어 마시는 전통이 내려오고 있는데 이 술은 만들기가 간단하고 쉬운 편이어서 일반 가정집에서 부담 없이 빚을 수 있다. 또한 다른 술에 비해 맛이 부드럽고 향기가 독특하여 애주가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아 왔는데 특히 평민층에서 시작되어 경주 전역에 퍼진 평범한 술이 바로 황금주이다. 술빛이 누런 황금빛이라 황금주라고 한 것이며, 노란 국화는 황금이라고 불릴 만큼 예부터 불로장수의 영초라고 하여 민간에서 약용과 식용으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김천 과하주
조선시대의 옛 문헌에 과하주가 많이 나오지만 이것은 김천 과하주와는 내용상으로 아주 다른 것이다. 김천 과하주는 약주의 하나로서 지방문화재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경북 김천의 향토사에 의하면 옛날 금릉(김천의 옛지명)지방에 신기한 과하천이랑 우물이 있어서 이 물로 빚은 술을 과하주라 했다는 것이다. 또 이 술의 명성이 자자해 돈을 크게 벌었으니 금이 솟아 나온다는 샘이란 뜻으로 김천이란 지명이 생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과하주는 마실 때 달작지근하고 곡주 특유의 향기와 맛이 일품이며 숙취가 없어 애주가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데 임금에게 진상되는 전국의 72가지 술 중에서도 상품으로 꼽혔다. 이 술의 독특한 맛과 향기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하천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맛에서 타지역에서는 모방이 불가능하다.
남해 유자주
국내에서 4번째로 큰 섬이며 국립한려해상공원의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남해는 유자,치자,비자가 성한 ‘3자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신라시대 장보고에 의해 전래되었다는 유자는 전남의 진도, 고흥, 해남, 경남의 남해와 거제도 등 남해안 일대에서 주로 재배된다. 탱자와 접목시켜 대량으로 재배하는 다른 유자와 달리 남해의 유자는 실생목으로 17년에 한 번밖에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귀하고 맛도 독특해 가격 차이도 많이 난다.
유자에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비타민, 칼슘, 구연산 등 인체에 이로운 좋은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달성 하향주
유가면 음리에서 제조되고 있는 이 술은 주향이 은은하고 향기를 실은 듯하여 하향주라 이름지어진 술인데 이 지방에서 유가토주, 음동주라고도 불린다. 20도 정도로 주도가 높은 청주인데 음지에 보관하면 해를 넘길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비슬산 중턱에 위치한 이 마을에서는 술맛 좋다는 평판이 옛날부터 전한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 술을 빚기 시작한 것은 신라시대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슬산 중턱에 위치한 현재의 도성암은 병란으로 전소되었다가 성덕왕 때 중수했는데 당시 인부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임시로 토주를 빚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 전해진다.
하향주는 숙취가 없으며 피로회복, 혈액순환 촉진에 좋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위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식사 때마다 한 잔씩 마시면 좋다고 한다.
문경 호산춘주
호산춘주는 옛날부터 신선들이 좋아했다고해서 호선주라고도 했고,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이 술맛에 취해 임무도 잊고 돌아갔다고 전해 ‘망주’라고도 했으며 술맛을 보려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 가세가 기울었다는 내력 때문에 망주라는 별칭까지 지니고 있다.
알코올 도수는 18도로 담황색 빛과 그윽한 솔잎 향이 특색인 호산춘은 일제시대에는 밀주 단속으로 1959년 이후에는 주세법 등에 묶여 제조가 금지됐으나, 1989년 정부의 전통민속주 제조 판매허가 방침에 따라 국세청과 국립보건원 주질검사를 거쳐 1990년 6월 제조면허를 받은 뒤 1991년 11월에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8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술잔을 입에 대는 순간 솔잎 향기와 함께 부드러우면서도 짜릿한 느낌이 온 몸에 전해져 이름만 들어도 애주가들의 군침을 돌게 하는 경북 문경지역의 민속주이다. 예부터 알코올도수가 높고 담백한 맛이 있는 최고급 술에만 이름에 춘자를 붙여 왔는데, 현재 전국의 민속주 중에서 이 술만이 유일하게 춘자를 사용하고 있다.
봉화 선주
봉화 선주는 일명 오가피주로 유명한데, 도천리에서 누대로 터를 닦고 사는 안동 김씨 가문의 비주로, 김의동 옹이 그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봉화 선주는 명호면 도천리에 소재하고 있는데, 면 소재지에서 김의동씨의 댁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김의동 옹의 집터는 ‘흑두재상이 셋이나 난다’고 하는 길지로, 가장 아늑하면서 옛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다.
오가피는 ‘오갈피’라고도 하는데, 오가피나무와 그 뿌리의 껍질을 말린 생약재를 가리킨다. 이 오가피는 보정, 강장, 간장보호와 해독작용 및 근육의 힘을 키우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민간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약용으로 오가피를 술에 담가 그 약효를 이용해 왔다.
선산 약주
선산 약주는 낙동강이 펼쳐놓은 넓은 옥토의 풍요로움과 순박한 민심이 어우러진 경북 선산의 자랑거리라 할 만큼 유명하다. 솔잎 냄새가 밴 은은한 향취와 감칠맛으로 입에 착 달라붙는 감미가 특징인 선산 약주는 맛에 있어서 전국 어느 약주에도 뒤지지 않는다, 선산 약주는 그 맛이 너무 좋아 한번 입에 대기만 하면 아무리 점잖은 선비들도 그 맛에 반해 끝장을 보고야 말았다하며, 방랑시인 김삿갓마저도 별 수 없이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 마침내 술주정까지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선산 약주는 원래 이 고장 청송 심씨 문중의 가주였다는 설과 일선 김씨 문중의 술이었다는 설이 맞서고 있으나 유래를 정확히 가릴 근거는 없는 듯하다. 선산 약주는 일제 때부터 대중주로 공급됐는데 양조장의 양조술에 따라 술맛도 조금씩 다른 데다 재료도 찹쌀에서 멥쌀 밀가루로 바뀌면서 옛 명주의 맛은 찾을 수 없게 된 실정이다
* 호 남 지 역 *
김제 송순주
김제 송순주는 선조 시대 김탁이라는 사람이 위장병과 신경통으로 고통을 겪고 있어 부인이 선약을 수소문하던 중, 어느 산사의 여승을 통하여 송순주의 비법을 익힘으로써 김탁은 이것을 장복하여 건강이 회복되었으니 이후 그 가문에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이 가문의 후손인 김복순 씨는 1987년 4월 송순주가 중요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면서 제조기능 보유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전통민속주 중에서 가장 맛과 향이 독특한 송순주는 한국적인 술향취가 물씬 풍기면서도 색깔과 탁도가 서양술을 능가한다. 약주로서 위장병, 신경통에는 물론 풍치예방과 강장제로서 효과가 큰 송순주는 숙취, 두통 등 후유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또 청주류가 장기보관에 취약한 반면 송순주는 오래될수록 맛과 색깔이 좋아진다.
오가피주
오가피는 지리산 일대의 특용작물로서 약용식물이다. 특히 정력강장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예로부터 오가피 열매나 껍질을 삶은 물에, 쌀밥과 누룩을 섞어 빚은 전통약용주이다. 문헌에 따르면 이 술은 일명 금염이요, 일명은 문장초이다. 위로 오차성의 정기를 응했기 때문에 잎이 다섯이 나왔으니 옛 사람이 이르기를, 만일 한줌의 오가피를 얻으면 옥이 수레에 가득 한 것보다 낫다고 했다. 또 이르기를 문장초로 술을 빚으면 금을 귀하다고 이르지 못하리라 했고, 시에 이르기를 일찍이 고운 손 아끼지 않아 서로 다투어 오가피를 벤다고 했다.
오가피는 정력강화, 근육강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향과 약효를 검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주 이강주
이강주의 유래는 정확하게 문헌상으로 전하는 바가 없어 알 수 없으나 조선조 중엽에 제조가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전라도 전주, 익산과 완주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최고급에 속하는 술로서 옛날 상류사회에서 즐겨 마시는 술이다. 당시 조정에서는 황해도지방과 전북지방에만 울금을 재배토록 해 진상품으로 바치게 했다. 이 때문에 울금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넣어 만든 이강주는 명맥이 끊겼고 유일하게 전주에서만 만들어지고 있다. 전북지방 민속주로 1987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이강주는 이 고장의 명산물인 배와 생강을 넣어 빚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조 후기 세시풍속집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최고의 명주로 소개됐고 고종 때는 한미통상 과정에서 우리의 대표술로 소개되기도 한 이강주는 현재 인간문화재 조정형 씨에 의해 빚어지고 있다. 이강주는 조씨의 6대 선친 때부터 가주로 빚어 내려져오고 있는데 조씨는 모친 이종팔 씨로부터 집는 방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죽력고
소주에다 죽력(푸른 대쪽을 불을 구워서 받은 진액)을 넣고 고은 술로 약소주의 일종인데 약으로 많이 쓰여 술이라 하지 않고 고(膏)자를 붙였다. 한방에서 죽력고는 아이들이 중풍으로 갑자기 말을 못할 때 구급약으로 쓰였는데 생지황, 계심, 석창포를 가루를 내어 꿀을 섞고 여기에 죽력을 넣고 이것을 찹쌀, 누룩 등과 같이 술을 만들면 상당히 진한 액체가 된다. 이러한 액체르 만들기 위해서는 오래 두어야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고 또 많은 약재가 들어가므로 만들기 쉽지 않다.
죽력고는 조선 중엽 이후에 소개된 처방문에 의하면 "소주에다 왕대를 쪼개서 불에 구어 스며나오는 즙과 벌꿀을 알맞게 넣어 그 그릇을 끓는 물 속에 넣고 중탕한다. 혹 사람에 따라서는 생강즙을 넣기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들기가 제일 힘든 술이라 알려져 있다.
진도 홍주
증류주인 진도 홍주는 고려 때 원나라에서 들어왔다는 소주에서 그 근원을 찾을수 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삼별초를 토벌하러 온 몽고인들이 홍주를 내리는 비법을 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주장을 하지만 재료로 쓰이는 지초는 황폐한 몽고 땅에서는 재배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생약을 활용한 홍주를 전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초를 사용해 빚은 홍주는 조선시대 술로는 최고의 진상품으로 꼽혔다. 이 술이 처음 빚어진 때는 고려조라는 말이 있기도 하나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시대라는 것인데, 여기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였던 허종에게는 청주 한씨 성을 가진 현명한 부인이 있었다. 그 부인 한씨가 홍주의 비법을 알고 있어 그 비법을 후손들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9대 성종 때의 윤비를 폐출하려 할 때 어전회의가 있었다. 부인 한씨는 분명 후에 윤비 폐출로 인해 남편에게 화가 미칠 것을 알고 그날 아침 허종에게 독한 술인 홍주를 마시게 해 허종은 어전회의에 가던 중 말에서 떨어져 다시 집으로 실려 왔다고 한다. 그후 윤비의 소생인 연산군은 자신의 생모가 당한 일을 복수하였는데 그 사건이 바로 "갑자사화"였다. 갑자사화 때에 허종은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를 면해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술은 1, 3, 5, 7, 9잔으로 마셔야 주법을 제대로 안다고 할수 있는데 한잔은 고배로 어린이 술이고, 두잔 술은 단배로 단순한 술꾼들의 술이며, 석잔은 품배로 선비는 품위 있는 석잔술로 끝내야 한다고 주당들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넉잔술은 효배라 잔소리가 많아져 시끄러워지는 술이라는 것 때문에 한잔술을 마시려면 가슴이 확 트이는 진도 홍주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낙안 사삼주
사삼주는 4백여 년 전부터 순천, 낙안을 중심으로 전래되던 술로 이 지역의 더덕은 금전산 석이, 백이산 고사리, 오봉산 도라지 등과 함께 낙안 8진미로 일컬어져 왔다.
영화 태백산맥의 무대로 더욱 유명한 벌교를 안고 멀리 뽀죡산을 바라보는 이곳 낙안은 멋과 풍류를 아는 선비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각 집마다 독특한 맛의 가양주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더덕이 주 원료라고는 하지만 더덕맛이 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침전시키지 않고 처음부터 함께 발효시키기 때문이다. 찹쌀 특유의 향과 함께 은은한 풀잎향이 입 안에 여운을 남길 뿐이다.
복분자술
일명 도솔산.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전북 고창의 선운산 일대에 예로부터 전해오는 3대특산물이 있는데 작설차, 풍천장어 그리고 복분자주가 그것이다. 복순자술은 이 고장에서 자생하는 산딸기과의 복분자 열매를 원료로 고창 사람들이 즐기던 전통술이다. 술 빛깔이 마치 아침에 핀 해당화처럼 맑고 붉은 술로서 일찍이 애주가들의 보양제로 각광을 받아왔다. 특히 선운산 일대에서 재배되는 복분자는 인근 서해안의 해풍을 쐬면서 적당한 염기를 흡수하기 때문에 열매질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산딸기를 뜻하는 복분자에는 재미있는 해석이 붙어다닌다. ‘뒤집힐 복, 동이 분’자를 써서 복분자를 먹으면 요강이 쓰러질 정도로 양기가 세어진다는 뜻이며, 그래서 옛날에는 이 술을 빚을 때 남성을 참여시키지 않았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넉 잔 이상 마시지 못하도록 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송죽 오곡주
송죽 오곡주는 조선조 인조 때 명승 진묵대사가 해발 800미터의 모악산 정상부근에 수왕사를 중건한 후 참선하면서 고산병을 예방하고 편식에서 오는 신체적 불균형을 보완하기 위해 빚은 술이다. 사찰 주위에서 자생하는 오미자, 산수유, 구기자, 국화 등 각종 한약재와 솔잎, 대나무잎 등을 첨가해 빚은 것으로 제조비법이 이곳 주지를 통해 400년 동안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원기회복과 스태미나 증진에 효과가 크며 신경통과 신경쇠약에 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술은 부드러우면서도 뒤끝이 깨끗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6도 이하로 차게해서 마셔야 부드러운 맛과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 매운맛의 다섯 가지 오묘한 맛을 느낄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 제 주 도 *
쉰다리
냉장고가 없을 때 찬밥이 많이 남으면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누룩가루를 넣어 빚은 저농도 알콜음료이다. 약간 상한 밥도 물에 한 두번 가볍게 헹군 후에 빚어도 된다. 이 술은 주도가 낮아 여름철 음료수용으로 이용하였고 남녀노소 구분없이 즐겨 마셨다. 술맛은 새콤하고 단맛이 있어 단술이라고도 하며 제주사람과 가장 친숙한 술이다. 주로 겨울철보다는 여름철에 만들어 마셨다. 오랫동안 저장하면서 술로 마실 수는 없지만 장기간 두었다가 식초로도 이용하였다.
오메기 소주
고소리를 이용하여 증류한 술로 알콜 농도가 30도 이상으로 높다. 이 술은 명절이나 제사는 물론 여러 모임 등에서 도 사용되었다. 쓰이는 바에 따라 축하주, 제주, 곡주, 반주, 독주, 합환주 등등 이 고장에서 함게 쓰여지는 소주의 명칭이다, 청주나 탁배기는 오래 저장할 수 없으나 이 술은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어 많이 빚었다. 무색이고 향취는 고량주보다 독하며 과일주 같은 가향주를 담글 때 기본적으로 사용하였던 술이다. 이 오메기 소주는 60년대 후반까지 중산간 부락에서 많이 제조하여 물허벅에 담아 판매하기도 했다.
제주 오메기술
제주 오메기술은 차좁쌀을 연자방아나 맷돌로 빻아 이 지역 맑은 물로 빚어낸 순곡주이다. "못 먹는 탁배기, 권하지나 맙서예, 달이 동동 밝거들랑, 날 만나러 옵서예."(못 먹는 오메기술 권하지 마시고 휘영청 달 밝거든 나를 만나러 오세요.) 이는 남제주군 지역 민요가창의 한 구절이다, 애틋한 여심의 속삭임이며 순애의 순수함을 나타낸 말이다. 이처럼 제주도 탁배기(오메기술)는 옛 선인의 생활 내면까지 엿볼 수 있으며 언어예술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흔히 청주는 맑은 술이요 탁배기(막걸리)는 청주를 뜨지 않고 그래도 마구 걸러 짜내 빛이 맑지 않고 맛이 텁텁하여 알콩 성분이 적은 술로 알고 있으나 제주도에서는 "제주 청주", "제주 탁배기"가 전혀 다른 술이다. 이 술은 품귀한 술이면서도 대중성을 지닌 농어민의 반주로 애용되어 왔다.
1990년 5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오메기술은 주로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에서 성행해 왔다. 술 제조 기능 보유자인 김을정 씨는 20세 때 장태보 씨 집안에 시집와 술을 빚는 기법을 배웠다고 한다.
우슬주
<동의보감>편에서도 우슬은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여 장기를 튼튼히 하고 신경기관 등을 편안하게 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제주의 토속어로는 ‘말마작쿨주’라고하며 주성분은 사포닌이다. 인삼의 효능과 같은 성질이 있다하여 한방에서도 귀히 여겨온 약초이다. 우슬초 뿌리를 4월이나 11월에 캐다가 솥에 넣고 푹 달인 다음 그 물로 오메기떡을 만들기도 하고 누룩과 반죽해서 양조를 할 때에도 그 물을 넣어 발효를 시킨다.
모주
제주에는 ‘탁베기와 같은 모주’란 말이 있는데 그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광해군 5년 연산 부원군 갬재남 피화시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고 부부인 노씨는 제주의 지금 대정읍에 유배되었는데 생활이 어려워 그의 시녀가 지금의 탁베기 같은 술을 팔면서 봉양하였다. 이 지방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찾아와 좋은 모주라 하면서 다투어 마시고 울지 아니한 자가 없었다. 후에 부부인 노씨는 복권되어 궁전으로 환궁하게 되는데 모주라는 이름도 이 당시부터 사용되었다 하니 고급술은 아니고 지금의 탁베기 정도의 술이라 전한다. 제주에서는 모주가 ‘국모의 술’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