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요한계시록 11장 1절~14절
'순교자의 피와 두 증인'
성전과 증인이라는 상호 보완적인 환상은 여섯째 인과 일곱째인 사이의 십사만 사천과 다민족적인 큰 무리의 환상(7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재차 보증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영적 보호라는 주제는 요한에게 전달된 씁쓸하면서 달콤한 메시지와 일치하게 육체적 고난이라는 더 어두운 맥락과 함께 얽혀 있습니다.
1절~14절
요 11: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1~3절에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요한은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고 '하나님의 성전을 측량'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다수의 세대주의자들은 이를 큰 환난 기간에 유대인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재건되고 거기에 유대인 예배가 재도입되며 바로 거기서 환난 중간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들은 '거룩한 성'에 대한 언급을 말 그대로 지상의 예루살렘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구약에서 에스겔은 환상 중의 한 천사가 성전에 측량한 것을 보았지만 요한은 성소와 그 제단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경비하는 자들도 측량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측량"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소유권을 함께 보여주며 성전 그 자체가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 단언하듯이 성도를 상징함을 암시합니다.
요한은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아야합니다. "거룩한 성"이 짓밟힘을 당하도록 '이방인에게' 넘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요한계시록이 주후 70년 이전에 기록되었고 예루살렘의 재앙을 예언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거룩한 성"이 지상의 예루살렘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거룩한 성을 참된 교회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합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거부한 지상의 예루살렘은 이제 소돔이나 애굽과 더불어 "큰 성"에 속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주장합니다.
'마흔두 달'은 (30일을 한 달로 치면) "1260일"이나 안식년 주기의 절반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동일하며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만 지속되는 교회의 짧은 고난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시간 계산은 다니엘 7장25절, 12장7절을 상기시키며 전천년설 옹호자들은 이를 적그리스도가 성도들과 싸우게 될 마지막 "큰 환난"기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은 두 명의 증인이 증언을 확정하기를 요구합니다. 여기서 '두 증인'은 계시록 17장7절과 13장 7절의 평행 관계가 암시하듯이 성도들을 상징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메시지를 상징하기 위해 회개의 '굵은 베옷'을 입고 있는 두 증인은 거룩한 성이 짓밟힘을 당하고(계 11:2) 말세 사명자를 임신한 여자가(교회)가 광야에서 양육받고(12:6, 14) 짐승이 그 권세를 휘두르는 동안(13:5) 예언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들이 역사의 끝에 나타난 실제 두 인물이라고 믿습니다.
증인을 상징적으로 해석할 때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성도’와 메시아적 공동체를 의미하는 ‘교회’로 보는 것이 대다수의 견해입니다.
이는 계시록 1장 20절의 일곱 촛대가 일곱 교회로 자증되는 명백한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징은 문자적인 이중성의 개념이 적용될 때 ‘일곱 교회’ 중 책망이 없는 ‘두 교회(서머나, 빌라델비아)’가 ‘둘’이라는 ‘두 증인’의 숫자와 맞아 떨어집니다.
두 증인은 만국교회 중에 책망이 없는 불특정 소수의 교회라는 의미가 산출됩니다. 정리하면, 두 증인은(두 촛대[11:4]-일곱 촛대[1:20]-일곱 교회[1:20]) 지상의 교회 공동체로 문자적 수(다섯 교회 책망, 두 교회 칭찬)를 근거로, 다시금 상징적인 의미(만국교회 중 소수의 책망 없는 교회)로 확장시키게 됩니다.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계 11:4)’로도 묘사됐는데, 두 감람나무에도 동일한 방법론을 적용해야 합니다. 이때 두 증인은 두 촛대의 해석을 두 감람나무와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두 증인은 ‘권세’, ‘1,260일 예언’, ‘굵은 베옷’,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와 같은 주요 문구가 있습니다. 여기서 두 증인은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들로 그리스도의 권세를 직접 수여받습니다. 권세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거룩한 성을 짓밟는 박해자들에게 영적 선고를 예언하는 두 증인의 권한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인에게 넘겨져서 고통을 받지만, 그 가운데 두 증인의 지속적인 예언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수립하십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내에서 알곡과 같이 준비된 충성되고 신실한 자들이 악조건에서 복음 전파를 감당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두 증인이 예언 활동을 할 때 삼 년 반과 마흔두 달의 또 다른 표현인 1,260일의 예언이 등장합니다. 두 증인의 특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베옷은 애도, 속죄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교회 공동체 내에서 알곡과 같이 준비된 무리가 내부적으로 교회의 각종 문제와(계 2-3장) 외부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교회의 규탄에 앞장서서 애도하고 엎드립니다.
두 촛대는 빛을 발하는 이미지 언어로 두 감람나무는 등잔과 빛에 쓰이는 감람유의 근원으로 두 촛대와의 관계 속에서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등유가 있을 때 촛대의 불이 꺼지지 않는 것처럼 교회 공동체의 준비 된 자들이 항상 성령과 교제하고 동행하므로 이 세상 흑암 권세 속에 빛을 잃지 않게 될 것을 함의합니다. 이에 따라 두 증인은 지속적인 복음 전파 사역에 매진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상의 모든 교회와 성도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참 백성은 구약 때부터 항상 소수의 남은 자로 존재했습니다.
또한, 열 처녀의 비유(마 25장)처럼 감람나무와 촛대의 관계 속에서 ‘기름’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는 우상 숭배를 멀리하는 순결한 자로 어디에서든지 천국 복음과 회개를 촉구하는 복음 전파의 자격이 있는 자들입니다.
동시에 이들은 순교까지 불사하는 각오를 지닌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지상의 환난은 잠시요 천국을 소망하는 위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4절에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서있는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스가랴의 환상에서 "두 감람 나무"는 "기름부음 받은자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할 왕족 출신의 지도자와 성전 안에서 예배를 인도할 대제사장(슥 3:1~6)을 상징했습니다(슥 4:11, 14).
따라서 계시록 11장3절의 두 증인은 제사장으로 섬기고 '왕'으로 다스릴 어린 양이 구속하신 모든 이들을 적절히 대표합니다.
5~6절에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이 증인들은 특별히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의 심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쏟아내고 엘리야처럼 가뭄을 예고하고 모세처럼 물을 피로 변하게 하며 교회의 선지자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두 증인은 '그 증언을 마칠'때까지는 천하무적이지만 그 사명이 성취되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영적인 유혹을 통해서가 아니라 순교를 통해 그들을 이길 것입니다.
8절에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큰 성'은 상징적으로 로마를 뜻하는 완곡한 표현인 바벨론과 동일시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이 상징은 명백히 두 순교자가 죽임을 당하고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큰 성의 상징은 요한의 시대에는 넓은 의미를 가졌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적인 영광을 움켜쥐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괴롭히는 모든 제국에 대한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사흘 반', 박해로 인한 교회의 외견상의 붕괴에 대한 반역자들의 축하는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11~12절에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두 증인이 교회를 상징한다면 이 구절들은 증언하는 주님의 교회가 부활과 하늘의 보좌에 앉으므로 그 정당성이 입증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들이 실제 두 인물이라면 그들은 이 시점에서 기적적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그들을 실제 인물로 받아들이더라도 그들의 부활은 여전히 "큰 환난" 기간의 중간이나 끝에 있을 성도들의 부활을 상징할 수 있을것입니다.
구약의 몇몇 구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구름"은 신비로운 하나님의 적극적 임재를 상징합니다. 이 사건은 살아 있는 자들의 마음에 '공포를' 일으키는 '큰 지진을' 동반한 것입니다. '셋째 화', 즉 일곱째 마지막 나팔은 속히 이릅니다.
두 감람 나무와 기름부음 받은 자들
슥 4:11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13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14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등잔대는 거의 언제나 제의용 물건으로 특별히 금으로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성막에는 단 하나의 순금 등잔대가 있었고(출 25:31~40) 솔로몬 성전에는 열 개의 등잔대가 있었습니다(대하 4:7, 20). 등잔대는 그릇을 떠받쳤고 그릇은 기름을 담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릇 주위에는 '일곱 등잔'이 배치되었고 각 등잔에는 '일곱 관'(즉, "가지")이 있었습니다.
등잔대 위에 있는 '일곱' 등잔은 하나님이 '온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시며 알고 계심을 상징하는 '여호와의 눈'입니다. 이러한 지켜보심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에게 복을 가져옵니다.
가지들과 금으로 된 관들의 정확한 성격이 무엇이건 그 역할은 감람유를 두 감람나무의 무궁무진한 원천에서 등잔대의 그릇으로 전달하여 등불이 결코 꺼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두 감람나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히, '베네 하이츠하르', '새 기름의 아들들')입니다. '이츠하르'는 하나님의 복에서 흘러나오는 풍요의 표시 중 하나인 "새 기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나무들은 끝없는 풍요로 특정 지어지고 이는 등잔대에 쓸 무한한 양의 기름을 의미하며 이들은 천상의 궁정의 일원으로서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