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 3
‘보여주기’ 의 힘은 상당히 세다
“엄마, 할머니 아프니까 엄마가 설거지 좀 해. 엄마가 할머니보다 더 젊으니깐 해도 괜찮
지?”
현관문을 열고 막 신발을 벗으려는데 큰아이가 내 앞에 서서 대뜸 이렇게 말한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아이 참 할머니 감기 걸렸단 말야. 엄마가 설거지 해!”
이 아이가 우리 경모 맞던가? 불과 어제만 하더라도 밥을 안 먹겠다고 할머니 진땀을 쏙
빼놓던 녀석이.
평소와는 다른 경모의 모습을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옆에 있던 보모 할머니가 슬그머니
내 손을 잡아 끈다. 아이 눈에 띄지 않게 부엌으로 가서 입을 여시는 할머니.
감기 기운이 있어서 쉬고 있는데 경모가 오더니 할머니 손을 잡고 장롱으로 가더란다. 그
리곤 상비약을 담아 두었던 약 상자를 꺼내 “할머니, 이건 열 내리는 약이고 이건 기침 멎
게 하는 약이야” 하며 일일이 챙겨주더 라는 것이다. 그러더니만 웬 종일 할머니 뒤를 쫓
아다니며 일하지 말고 쉬라고 성화였다고 했다. 처음엔 이 녀석이 또 무슨 장난을 치려나
했는데, 아이 표정이 너무나 간절해 나중엔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는 거였다.
내가 경모의 행동을 의아해 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낮 동안은 할머니 보
살핌을 받아온 경모는 유독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투정이 심했다. 다행히 그분이 워낙 자상
하고 경험이 많은 분이셨기에 그런 경모의 행동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런데 녀석이
유치원을 다니던 무렵이었다.
그날 따라 유달리 밥 투정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목이 마르다며 물을 찾았다.
“물은 냉장고 안에 있으니까 꺼내서 마시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을 시켰건만 아이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싫어! 그걸 왜 내가 해! 할머니가 하면 되잖아. 그런 거 하려고 할머니가 우리집에 있는
거 아니야?”
다섯 살짜리 입에서, 그것도 다름아닌 내 자식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다니.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 동안 내가 아이를 잘 못 기른 것은 아닐까. 아이 마음에 상처를 입혀선 안 된다는 생
각에 아이 뜻대로 맞쳐 준 것이 결국 저만 아는 ‘나쁜 아이’ 로 만든 건 아닐까.’
아이가 저토록 부정적인 편견에 사로잡힌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엄마의 태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지나간 날들이 후회스러웠다.
‘이제라도 바로잡아 줘야겠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널 돌봐주시는 분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너는 할머니가 힘들게 일하면 도
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몰라!”
들은 척도 안 하는 아이를 보며 초조감에 사로잡혔다. 그 나이면 벌써 성격 형성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자기 틀을 잡아갈 나이가 아닌가. 혹시 바로잡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야단을 치고 설명을 해도 아이의 행동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과 상
의를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고 그럴수록 경모를 친 손자처럼 아끼는 할머니에게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다그치는 한편 할머니에게 더욱 신경을 쓰고 잘 해드리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애태운 것이 2년. 그러니 하루 아침에 경모의 행동이 달라진 걸 보고 내가 놀란 것은 당연
했다.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쾌속정을 탄 듯 너무나 빠르게 변
해간다. 그것이 바로 아이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 눈엔 변덕이 죽 끓
는 듯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성장 과정인데도 말이다. 말 잘 듣던 아이가
갑자기 떼를 쓰는 것도, 그리고 저만 위하는 것처럼 행동을 하는 것도 세상에서 자기 존재
를 인식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발달 과정에서 보이는 행동을 억지로 부모가
바로잡을 수도 없고, 아이 역시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모 입장에서는 그것을 곧이곧대로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서 애를 태우는 엄마들에게 나는 그런다.
“아이의 모델로 서라.”
무언가 고쳐주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 당장 뜯어고치려 들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행동
으로 보여주라는 거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배울 수 있게끔 말이다.
많은 엄마들은 “할머니에게 버릇 없이 굴면 못써”라고 말하면서 본인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친구와 싸우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도, 전화통을 붙들고 이웃과 소리소리 지르며
싸운다.
우리 집 아이가 갑자기 할머니를 끔찍히 위하게 된 것은, 아이가 어느 정도 성숙한 사고를
갖게 된 탓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모델로서 본을 보인 것도 크게 작용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아이의 태도가 나빠진 후부터는 더욱 그분에게 잘 해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프면
약을 챙겨 드리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아이 보는 앞에서 항상 먼저 드렸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 변하지 않는 진실은, 아이는 부모가 하는 것을 그대로 보
고 배운다는 것이다. “~해라” 하는 말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는 엄마의 모습과 말투, 행동
하나하나를 보며 표본으로 삼는다는 거다.
아이를 억지로 컨트롤하려고 들지 말자. 그리고 아이가 갖는 본성인 변화 자체를 인정하
고, 그것이 곧 성숙에 이르는 과정이라 생각하자. 그러면서 생각할 것이 ‘나는 오늘 아이
의 모델로서 제대로 살았는가’이다. 아이는 지금 이 시간에도 엄마의 모습을 예의 주시하
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보여주기’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평행선의 미덕을 배워라
소아 정신과 의사로서 그 동안 많은 아이들을 만나왔지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
이들을 보면 매번 새롭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오늘은 또 어떤 아이들이 나를 찾을까 궁
금해진다. 오늘 찾아오는 아이들은 제발 많이 아프지 않은 아이들이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
께….
월요일 아침에 나를 찾은 첫 손님은 세 살배기 꼬마 신사였다. 얼굴 하나 가득 장난기를
담은 꼬마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진료실을 휘휘 둘러보더니 이내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
을 했는지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가만 못 있어!”
아이 손을 낚아채는 엄마의 목소리. 그래도 아이는 성이 안 풀렸는지 의자에 앉은 채 연신
손과 발을 꼼지락거린다.
“아휴, 선생님 얘가 이래요. 한번도 엄마 말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어요.”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하라는 건 절대 안 하고, 시키지도 않은 일만 골라 하고, 잠시 눈을
뗐다 싶으면 꼭 말썽을 부리는 일명 ‘청개구리’ 아이다. 성격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지 않
고서야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하소연하는 엄마.
일단 나는 엄마와 아이를 놀이방에 들여 보냈다. 들어서자마자 아이가 총을 하나 집어 들
더니만 바닥에 내리치기 시작한다.
“너 그만두지 못하겠니?”
놀이방 밖에서 지켜본 광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아이보다
엄마가 더 흥분을 한다. 아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미안한 말이지만
양을 몰아가는 양치기 개처럼 보인다.
놀이방 밖으로 나온 모자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엄마는 마치 등산이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머리에 구슬땀이 맺혀 있었고, 아이는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생생하니 살아 있었
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린 내 처방은 이랬다.
“엄마가 생활 태도를 조금 바꾸셔야 겠네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갑자기 눈에 힘을 주더니 “아이한테 문제가 있어서 왔는데 저보고
고치라니요?”하며 따진다.
‘또 시작이구나.’
흥분한 엄마를 진정시킨 다음 “아이는 크게 문제가 없고 엄마가 조금만 마음을 달리 먹으
면 된다”고 달래보았지만 막무가내다.
결국 그 엄마는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다며 아이 손을 붙잡고 휑하니 나가 버렸다.
아이와 갈등이 생길 때를 한번 생각해 보자. 왜 아이 때문에 힘이 들까. 솔직히 말해 그것
은 아이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서 라기보다는
부모의 기대에 아이가 맞춰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 부모들은 소위 말해 ‘미친다’. 아이의 정신적 발달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는 나도 그랬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머리가 좀 컸다고 말을 듣지 않을 땐 정말 속에
서 불이 나는 심정이었다. 어떻게 든 내 뜻에 맞추어보려고 아이를 달래도 보고 야단도 쳐
보았다. 그런데 그래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탈 대로 타버린 어미 속만 남을
뿐이다.
매번 같은 실수가 반복될 때는 내가 모르는 다른 요인이 있는 건 아닌지 전체 상황을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무슨 방법을 써도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아이가 나빠서가 아
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란 도대체 뭘까.
소아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아이는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
르는 럭비공 같은 존재’ 라는 것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엄마가 아무리 신경을 써도 자주 아프다. 감기에도 자주 걸리고 여기저
기 넘어져 다치는 것도 다반사이다. 왜 그럴까. 아직 면역 기관이 신체의 여러 기능이 완성
되지 않아 저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서상의 발육도 마찬가지이다. 자아감이 발달해가는 유아기에는 아무리 부모 마음대로 하
려고 해도 아이는 절대 그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 세상과 부딪치며 이것저것 경험하는 것이
그 시기 아이들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때론 그것이 부모 눈에는 엉뚱하게 비치고 그래서 제
재를 가하게 되지만, 본능 차원의 그런 행동들은 그렇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있기까지 나 역시 감정적인 갈등을 겪었다. 잠자고 있는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왠지 이 아이가 내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할 것 같다는 환상에
사로 잡히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도 아이 입에서 “싫어”라는 한마디가 나오면 ‘도로 뱃속
에 집어넣고 싶은’ 심정이 됐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수년. 오죽하면 아이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을 인고의 세월이라고 하겠는가.
이 마음은 끝까지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됨과 동시에, 때론 아이와 엄마 자신을 망치
는 독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독으로 변질되지 않고 ‘힘’ 자체로 남기 위해선 먼저 나와 아이가 공생 관계에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원격조정 장치로 움직이는 장난감 자동차가
아니라는 것 역시 이성이 아닌 가슴으로 깨달아야 한다.
먼저 아이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자. 아이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다는 것,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그 나이에 당연하다는 걸 곰곰이 곱씹어보는 거다. 그러나 생각만큼 그 일이
쉽지는 않다.
어릴 때부터 유독 짜증이 많았던 큰애는 유독 제 엄마가 쉬는 주말만 되면 엄마를 보채곤
했다. 엄마 생각은 조금도 않고 울며 떼를 쓰는 아이를 보며 화가 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
니다. 뿐만인가. 학교에서 숙제라고 받아 오면 엄마 말은 한 귀로 흘리고 차일피일 미루는
녀석을 보면 ‘밉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그러나 일단 집을 떠나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그런 감정이
어느 정도 수그러든다. 이미 통제선 밖으로 넘어선 나의 의지를 주변 상황이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들에게 자신만의 정신적인 공간, 아이에게로 행한 지나친 집착을 완화시
킬 다른 세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결코 아이를 멀리 하라는 뜻이 아니다. 육아 자체를 피하는 방편이 아니라는 말이다.
순간의 해방감을 위한 단편적인 방편이 아닌 ‘아이’라는 우물에 갇혀 있는 자신을 계속
흐르게 만들어 줄 활력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가 될 수도 있고, 자원봉사 활동
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든 자신에게 맞는 활력소를 찾을 때 비로서 아이로 인한 갈등을 희
석시킬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는 힘을 얻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엄마의 예를 들어보자. 집안 사정으로 인해 전문대를 어렵게 졸업한 그 엄마
는 흔히 말하는 약간 기우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일류대 출신으로 대기업에서 인정
받으며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시부모 역시 사회에서 젊은 사람 못지 않게 능력을 발휘
하고 있었다. 시댁의 반대를 무릎 쓰고 어렵게 결혼한 그녀. 결혼 후 그녀는 그나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집안에 들어 앉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들을 낳았다. 스스로를 ‘가진 것
없는 여자’라 생각한 그녀가 얼마나 아이에게 집착을 했겠는가.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 잡혀 그녀는 매사 아이를 들볶기 시작했다. 엄
마의 그런 강압에 못 이긴 아이는 지갑에 있는 돈을 훔치는 등 도벽 증상을 보였다.
내게 찾아 왔을 때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아이가 아닌 엄마였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아이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았다.
아이 기르는데 있어 정작 문제의 원인은 아이에게 있다기보다 엄마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아이 입장에선 당연히 행동이 엄마의 집착 어린 시각에서 뭔가 바로 잡아 줘야
하고, 고쳐줘야 할 것으로 느껴진다.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엄마 자신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아이와 평행선 관
계에 서자. 아이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을 때 가까이에서 볼 수 없었던 아이의 마음이 하나
둘씩 느껴질 것이다. 결국은 그것이야말로 아이를 느리게 키우기 위해 엄마가 지녀야 할 기
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이럴 땐 이렇게
1. 아이가 산만해요
어린 아이들은 아직 신경계가 미성숙하기 때문에 어른에 비해 활동량이 많고 집중 시간이
짧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아이의 행동이 정상 발달 과정에서의 산만함인지, 병적인 산만함인
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특히 만 5세 미만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한데 병적인 산만함의 원
인은 다음과 같다.
먼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들 수 있는데 이 증상이 있는 아이는 체질적으로
다른 아이보다 집중력이 짧고 충동적이며 활동량이 많다. 만약 아이가 별다른 환경적인 문
제가 없이 아주 어릴 때부터 정신없이 나대고, 말이 많고, 참을성이 없고, 쉴새없이 움직인
다면 ADHD일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땐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만일 그대로 두면 학습
능력이 저하됨은 물론 사회성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부모와 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또한 나중에 커서 비행 청소년이 될 확률이 높다.
이는 전문적인 평가에 의해 진단이 가능한데 요즘은 컴퓨터화 된 집중력 검사도 있으며,
약물 치료도 70퍼센트 이상 효과를 본다. 이 약들은 식욕 저하 외엔 큰 부작용이 없고 중독
성도 없어 장기 복용을 해도 안전하다. 그 외 사회성 집단 치료, 부모 교육, 사고력 훈련 등
도 도움이 된다.
다음으로 정서불안장애를 들 수 있다. 즉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우울하녀 오랫동안 집
중을 못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는 우선 마음이 편해져야 한다. 안절부절 못하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다거나 잠시
도 가만히 못 있고 손장난을 하는 게 특징이다. 이는 앞서 말한 ADHD와 증상이 비슷해 전
문가들이 봐야 구별이 가능하다. 어떤 경우 정서불안장애와 ADHD가 함께 나타나기도 한
다. 이렇게 병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다음과 같은 지침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1) 공부할 때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주변 환경을 정리한 다음 시키자. 이때 처음에는 짧
은 시간 공부하고 10분 쉬는 식으로 해서 점점 공부 시간을 늘리도록 한다. 아이가 습관이
될 때까지 엄마가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
2)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주문하자. 이것저것 한꺼번에 시키면 제대로 정리도 못 하고 실수
를 하게 된다. 또한 지시는 간단 명료하게 한다.
3) 가급적 야단을 치는 양을 줄이자. 어차피 야단칠 기회가 많은 아이이므로 칭찬의 양과
야단치는 양의 밸런스가 맞게 자주 칭찬하라. 사소한 잘못은 그냥 나두고 큰 잘못만 야단치
자. 그래야 부모와의 사이가 좋아진다.
4) 야단만 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자.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는 생각을 깊이 하지 않으
려 하므로, 실수한 후 생각 할 기회를 주고 더 낳은 방법을 제시하자.
5) 아이의 행동이 고의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다른 아이와 너무 비교하지 말자. 나이
가 들면 좋아지므로 아이에게 긍정적 기대를 갖고 차분히 그때그때 슬기롭게 해결하자.
2. 놀이방에 보낼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나요?
요즘 일하는 엄마가 늘면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놀이방에 보낸다. 집에 있는 엄마라도 동
네 친구가 부족하므로 사회성 향상을 위해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준비되지 않은 상
태에서 무리하게 보내면 득보다 실이 더 많다. 아이를 놀이방에 보낼 때는 아이의 상태와
그 놀이방이 어떤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아이에 대한 고려
1) 아이의 정신적 성숙도가 엄마와 떨어져서 견딜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두 돌 전
의 아이는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진다고 오해하고 몹시 불안해 한다. 보통
아이라면 만 3세 전후가 되어야 안정적으로 ‘어머니와 떨어져도 다시 만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개인차가 큰데 여자 아이들은 좀 더 빠른 편이다. 빨리 성숙하는 아이는 두 돌
전후에 보내도 적응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가급적 두 돌 전에는 보내지 말자.
2) 의사소통 능력이 웬만큼 있어야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3) 친구들과 어느 정도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 도무지 자신의 물건에 손을 못 대게 하거
나 선생님을 독점하려는 아이는 아직 놀이방에 보내기가 이르다.
4) 대소변 가리기가 가능하고, 잘 먹으며,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성장기의 아이는 아
직 면역체계가 덜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자주 아프게 된
다. 그러므로 너무 몸이 약한 아이는 더 자란 후에 보내는 것이 좋다.
놀이방에 대한 고려
1) 가급적 선생님이 많은 것이 좋다. 3세 미만의 아이는 적어도 아이 3~4명당 선생님 1
인, 3~5세 아이는 아이 7~8명당 선생님 1인이 있는 것이 좋다.
2) 유아교육을 전공한 선생님이면 더 좋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좋아하고 마음이 따뜻한
선생님이어야 한다. 학습이나 버릇 가르치기를 중요시 하는 경우는 별로다.
3) 환기가 잘 되고, 가급적 넓은 공간이 좋다.
이런 조건이 만족되지 못해도 그냥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갑자기 장 시간 보내지 말고 처음 며칠간은 엄마와 함께 놀이방엘 다니다가 차츰 1~2
시간씩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식으로 해서 아이가 덜 불안하도록 적응시켜라. 이 때 선생님
역시 아이를 안아서 곁에 두고 친해지도록 특별히 배려해야 한다. 아이가 잘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기 싫어할 때 원인을 살핀 후 다시 보내야 한다. 버릇 든다는 생각에 계속 가
라고 강요하다 보면 아예 유치원 가는 것을 거부 할 수도 있다.
원인은 반드시 있다. 설혹 그것이 뭔지 잘 모르겠더라도 인내를 갖고 며칠 쉬게 한 뒤 보
내라.
3. 말이 늦은 것 같아요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이 늦다고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 어떤 엄마는 ‘크면 좋아
지겠지’ ‘애 아빠가 어릴 때 말이 늦었다는데, 아빠 닮았나보다’ 심지어 ‘늦되는 아이
가 더 잘 된다’ 등의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사실 아이의 언어 발달이 늦을 때, 너무
불안해 하는 것도, 너무 안이하게 대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냥 놔둬도 되는가에 대한 대략
적인 판단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언어적 의사 소통은 괜찮은가
눈맞춤, 모방 행동,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면 일단은 너무 큰 걱정을 할 필
요가 없다. 하지만 비언어적 의사 소통에도 문제를 보인다면 소아가 자폐증과 같은 발달 장
애를 의심할 수 있으므로 꼭 전문기관을 찾아가 보는 것이 좋다.
2) 인지 발달이 정상적인가
언어 발달도 인지 발달을 반영하므로,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는 말도 늦게 트인다. 이 경우
전반적으로 운동 발달이 정상적이었는지, 놀이 수준이 다른 아이와 비슷한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특히 언어 표현이 부족한 아이들은 놀이 수준을 보면 현재 인지 발달의 정도를 추정
할 수 있는데, 인형 놀이와 같은 상상 놀이를 못하고 레고나 블록 놀이, 신체 놀이, 감각 놀
이에만 몰입한다면 문제가 있을 수가 있다. 즉 지능이 발달해야 언어도 발달해야 한다는 얘
기다. 나는 언어 발달 장애 아이가 오면 꼭 지능을 체크한다. 만일 지능 저하가 있다고 한
다면 언어 치료를 해도 좋아지지 않는다.
3) 정서적인 문제는 없는가
언어 발달은 아이의 기분 상태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아이가 불안이 심하거나 우울한 경
우 좀체 입을 열지 않고, 자기 표현을 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은 대개 알아듣는 말은 많
은데 표현은 거의 하지 안 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기분 상태에 따라 언어 표현의 차이
가 심하다.
나는 평소에 소심했던 다섯 살 먹은 남자 아이가 유아원에 간 뒤부터 갑자기 하던 발도 안
하게 된 경우를 치료한 적이 있다. 병원에 올 당시 아이는 심하게 위축되어 있어 눈치를 살
피고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엄마 옆에 꼭 붙어서 놀이 조차 제대로 못
했다. 아이는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엄마와 분리된 채 유아원에 다니게 되었고, 친구
들에게 혼이 나면서 많이 불안해진 상태였다.
이 아이는 놀이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유아원을 끊고 어머니의 부드러운 보살핌을 받았다.
그러자 얼마 안 가 회복되어 지금은 모든 면에서 정상 발달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정서적 원인으로 말이 늦는 경우도 전문가를 찾아가 보는 것이 좋다.
4) 사회성 발달에 문제는 없는가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으면 언어 발달도 활
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양육자와의 관계
다. 즉 엄마와의 관계가 어려서부터 원만하지 못하거나,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아이를 돌보
는 경우, 아이는 타인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게 된다.
나는 엄마가 산후 우울증을 심하게 앓거나, 아이 출산 후 디스크에 걸리거나, 집안에 큰
문제가 생겨 아이에게 활발한 상호 작용을 못 해준 경우 아이가 언어 발달,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오는 경우를 흔히 경험한다. 애착장애, 유사자폐증 등으로 불리는 경우
인데, 조기에 발견되어 치료를 하는 경우는 거의 정상 발달로 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
이의 뇌 발달이 이미 많이 이루어진 만 4~5세 이후에 오면, 후천적인 원인으로 생긴 문제
지만 후유증을 남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발달에 문제가 생기면 언어 치료, 인지 교육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사회성을 발달
시킬 수 있는 심리 치료와 엄마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집안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경
우 남편과 시댁의 협조 등도 중요하며, 집안 식구들 모두 엄마를 도와 아이를 제대로 키우
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사회성이 좋아지면서 저절로 언어가 많이 증가하고 정
서적으로 편안하게 된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언어 발달 지연의 원인을 살펴본 후 뚜렷한 원인도 없이 언어 발달만
지연된 것으로 판명되면, 발달성 언어 장애로 진단하고 언어 치료에 들어가게 된다. 만일
아이가 중이염을 자주 앓거나 감기에 자주 걸린다면 작은 소리를 잘 못 들을 수도 있으므로
이비인후과에서 청력 검사와 구강검사를 받아 보도록 한다.
하지만 아이가 만 2세 정도로 너무 어리다거나, 곧 언어가 트일 것 같다고 느껴지면 굳이
전문 기관을 찾지 않고 엄마가 언어적 자극을 적절히 주면 된다. 이때 아이에게 억지로 말
을 따라 하게 하면 오히려 더욱 입을 다물게 만들 우려가 있다.
처음에는 아이가 말을 하면 엄마가 나중에 따라 하면서, 조금씩 교정을 해주자. 그리고 너
무 긴 설명을 피하고 아이가 간단하게 따라 할 수 있는 단어를 반복해서 말해주자. 아이는
즐거워야 많이 떠든다는 것을 명심하고, 흥미를 느끼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 기분이 좋을
때 짧고 반복적인 언어 자극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장난감 자동차에 많은 흥미
를 보인다면 ‘빠방’ ‘차’ ‘띠띠빵빵’ 처럼 단순한 언어를 자주 들려주면 어느 새 아
이가 따라 할 것이다.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엄마가 평소 말하는 단어의 숫자와 아이의 발화량이 비례한
다고 한다. 정상적인 뇌 발달을 하는 아이라면 주변 환경에 따라 언어 발달이 어느 정도 촉
진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언어 능력이 발달하고 머리가 좋아진다고 해서 아주 어릴 때부터 책
을 읽어준다. 하지만 언어 발달은 사회적 상황에서 사용된 언어를 통해 발전을 이루는 것이
다. 마치 우리가 책을 통해 영어를 배우면 읽을 수는 있으나 외국인과의 대화가 거의 불가
능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이들도 실제 상황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만이 의사소통에 필요한
제대로 된 언어를 습득하게 한다.
4. 식사 습관이 나빠요
먹는 문제는 아이와 엄마 모두에게 중요한 사안이다. 태어나서 모유든 우유든 아무거나 잘
먹고 잘 자라는 아이들은 엄마에게 크나큰 축복이다. 하지만 일부 아이들은 잘 안 먹고 보
채고 토해내길 반복해 엄마를 걱정시킨다. 아이가 별다른 신체적 문제가 없다면 이렇게 애
를 먹여도 성장하는 데 그런대로 무리가 없다.
본격적으로 먹는 것 때문에 고생할 때는 이유식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색다른 맛이나 촉감,
냄새에 유난히 예민하여 쉽게 이유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 게워내는 아이들도 흔하다.
이렇게 되면 영양 결핍에 걸릴까 봐 억지로 먹이려는 엄마와 한사코 음식을 거부하는 아이
사이에서 전쟁이 시작된다.
나는 어린 시절 먹는 것을 몹시 싫어해서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다. 동생은 생선을 비롯한
갖가지 반찬을 잘 먹는다고 칭찬 듣는데, 나는 생선 비린내가 싫다고 코를 막고 구역질하며
밥숟가락을 입에 물고 있다가 기회만 되면 밥을 피해 도망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초등학교 다닐 때도 왜 사람들은 이렇게 냄새 나고 맛도 없는 것만 먹고 사는지 불만이 많
았다. 그 결과 너무 허약하여 보약을 늘 끼고 살아야 했다. 내가 어느 정도 음식 맛에 익숙
해진 것은 사춘기가 지나서 였던 것 같다.
이렇듯 선천적으로 음식 맛에 길들여지는 데 어려움이 많은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뭔가 억지로 먹이면, 부모와 아이의 사이만 더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심하면 아이는
먹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부모를 조절하려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엄마를 제일 화나게 하
는 방법이 안 먹고 버티는 것임을 쉽게 알아채기 때문이다.
일단 아이가 까다로운 입맛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면 영양을 위해 먹이려는 노력이 아이
와의 사이를 나쁘게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려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큰 아이 경모는 나를 닮았는지 음식에 대해 무척 까다로운 아이였다. 서너 살까지 밥 먹기
를 싫어해 식사 때마다 음식 먹이느라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먹이
기 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쪽으로 조리법을 바꾸어가며 먹이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경모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것저것 가리는 것이 줄어들고 잘 먹어 이제는 제법 통통해졌다.
이렇듯 아이들은 먹는 것 하나까지도 개성이 다르고 나이가 들어 익숙할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에 맞춰 식사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숟가락질을 시키고 규칙적으로
앉아서 먹게 해도 잘 따라오는 아이가 있는 반면,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다. 가정이나 유아
원에서 버릇 들인다고 먹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
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5. 아이가 낯가림이 너무 심해요
보통 아이들은 생후6~8개월 정도가 되면 엄마와 타인을 구분한다. 그래서 타인이 접근하
면 싫은 내색을 보이며 엄마에게만 매달린다. 이를 ‘낯가림’이라고 하는데 정상적인 발
달 과정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너무 없으면 염려
스러울 수가 있다.
하지만 일부 아이들은 낯가림이 너무 심해 엄마 이외에 아무도 자기 몸에 손을 못 대게 하
고 낯선 곳에 가면 거부하고 울어대 집 밖에 데리고 나가기가 두려운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환경상에 큰 문제가 없다면 타고난 기질적 까다로움에서 비롯된 문제일 확률이 높
기 때문에, 서서히 적응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뭐든지 서서히 익숙해질 때까지 기
다려주고, 아이가 거부하면 일단 피했다가 다시 기분이 좋을 때 다시 시도해봐야 한다. 또
한 나이가 들면 조금씩 나아지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런 기질을 가진 아이들은 나중에 불안 장애와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가질 확률이
높아 스트레스 상황에서 혼자 대처를 못하면 도와줘야 한다. 예를 들어 너무 사나운 친구가
이런 아이를 건드리면 큰 스트레스를 받고 다시는 그 친구 곁에도 가지 않으려고 할 수 있
으므로 미리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까다로운 아이가 섬세하고 부드러운 부모를 만나면 큰 무리가 없이 성장 가능하나,
부모가 너무 목소리가 크고 성격이 급해 아이를 자꾸 놀라게 하면 불안 장애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아이를 둔 부모는 각별히 자신의 성격을 알고 아이에게 맞추는 노
력이 필요하다.
6.아이가 고집을 피워요
큰아이가 돌이 좀 지나서 몇 가지 단어를 배우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안먹(어)”이라며
음식 앞에서 고개를 내젓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큰아이는 어려서부터 우유, 이유식 등
먹는 것을 싫어해 강제로 달래 가며 먹인 적이 많았다. 처음 말을 배우며 “안먹(어)” 이
라는 말부터 하는 것을 보며 그 동안 강제로 먹인 것이 얼마나 싫었을지 이해가 갔다. 하지
만 그 후 음식만 보면 “안먹(어)”하고 도망 다니는 큰아이를 보며, 차라리 말 못하며 받
아먹던 예전이 더 키우기가 편했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렇게 아이가 자기 주장이 강해질수록 부모 입장에서는 기특하면서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
다. 흔히 부모들은 아이들이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울 때
“고집이 세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고집은 대부분 그 결과가 아이 자신에게도 이롭지 못
하기 때문에, 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제재가 궁극적으로 옳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유치원 갈 시간은 촉박한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옷을 입혀주지 않았다거나 볶
음밥에 케첩으로 이름을 써주지 않았다고 고집을 부리면, 엄마들은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고집이 세냐”며 인상을 쓸 것이다.
하지만 부모 입장이 아닌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 고집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꼭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고집 때문에 속상해 하면서도 그 고집 뒤에 숨은
동기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은 항상 상대적이다. 엄마가 불편하면 아이도 불편하다. 아이보다는 훨씬 현명
한 부모가 먼저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아이의 고집을 제대로 다루는 첫걸음이다.
돌이 지나면서 아이는 자신이 엄마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된다. 몇몇
아동발달 연구결과에 의하면 자아 개념은 생후 약 15~18개월 사이에 형성된다. 나는 진료
실에서 아이가 싫다는 의사표시를 어떻게 하는지 부모에게 꼭 물어본다. 아이가 자아 개념
을 어느 정도나 획득했는지 추측하기 위해서다.
어렴풋이나마 자아 개념을 형성한 아이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자신의 의도가 상대방
과 다르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자아 개념이 미분화된 아이들은 소리를 지
르거나 머리를 바닥에 박는 등의 과격한 행동으로 표현한다.
좀더 발달한 아이들은 “싫어”, “안돼” 등의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아이들은 뭐든지 일방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것이 심해져’미운 세 살’이라
는 별명을 갖게 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비록 자신의 뜻을 주장할 능력은 있으나 현명한
판단력은 없기 때문에 어른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고집불통으로 보인다. 즉 아이가 새롭게
획득한 자아를 통해 처음으로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이 부모의 눈에는 고집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이들은 미숙한 자기 주장을 계속 하는 가운데 자
기 절제,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점진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제대로 주어
지지 않는다면 아이는 영원히 자기 주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이들 고집은 처음부터 확실히 꺾어야 한다”는 몇몇 어른들의 주
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아이의 주장이 엉뚱하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제재를
하면 자율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펴는 능력이 제대로 길러질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데 대한 분노가 마음속에 가득히 쌓이게 된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기 주장을 못 펴고 부모의 뜻대로 하다가 사춘기가 되어 갑자기 문제아
로 돌변하는 청소년들을 종종 접한다. 이 아이들은 사춘기 무렵 자기 정체성이 대두될 때
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그 고집이 너무 위험하거나 상식을 많이 뛰어넘는 경우 제재를 하고 달래는 것도 필
요하긴 하다. 하지만 너무 사소한 것까지 사사건건 제재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7.아이가 난폭하게 굴어요
많은 부모가 “아이가 친구를 밀쳐 버리거나 마음대로 안 되면 물건을 던져 버린다”고 호
소한다. 특히 남자 아이인 경우에 더 심하다.
왜 어린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할까? 이것에 대해 학자들은 “인간은 원래 성적인 본능과
공격성을 타고난다”고 말한다. 즉, 우리 인류가 오랜 기간 동안 진화해오면서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 남기 위해 가지게 된 본능이 공격성으로 잠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
다. 따라서 공격적 본능은 꼭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힘이다.
이러한 공격적 본능은 스스로 걷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돌 이후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다. 처음에는 뜻대로 안 되면 물건을 던지고 깨물고 발로 차는 행동으로 나타나며, 더 자라
서는 의도적으로 부모의 말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청개구리가 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으로만 보고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할까? 사실 너무
위험한 행동만 아니면 그대로 두어도 나이가 들면서 점차 나아진다. 따라서 적당히 풀어주
되 너무 심하다 싶은 것들에 한해 통제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의 타고난 본능을 일방적으로
억누를 것이 아니라 우리의 풍습과 사회 질서에 맞게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부
모의 부단한 노력들을 ‘훈육’, ‘가정교육’ 이라고 일컫는다.
아이들의 공격적인 행동을 얼마만큼 허용하고 통제하느냐는 그 집안의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 통제와 자율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부모가 아이의 공격적인 행동에 대해 타협보다는 신체적 처벌이나 호통으로 일관한다
면 아이 역시 부모의 이런 행동을 모방하게 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동생
이나 친구들과 의견 다툼이 있을 때, 부모들이 자신을 통제했던 방법을 쓰게 된다. 또 잘못
된 행동을 폭력으로 다스려야만 하는 아이로 자랄 확률이 높다.
특히 공격성을 적절히 처리하는 기술을 배워야 할 두세 돌 경의 아이를 가진 부모는 ‘부
모의 행동은 아이들의 거울이다’ 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공격성 발달에 문제가 생겨 난폭하고 반항적인 아이로 자란 아이들을 흔히 접한다.
아이들의 버릇은 조기에 잡아야 한다는 부모의 생각 때문에 공격적인 행동을 사사건건 강하
게 통제 받는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어 학교 선생님께 반항하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형이 터울이 짧은 동생을 괴롭힐 때 이를 너무 심하게 제재하면 반항
적인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조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
의 응석을 무조건 받아 주고 부모는 이에 맞서 더욱 강하게 통제하게 되면 아이는 일관된
통제를 받지 못해 버릇없고 반항적인 경향을 갖기 쉽다.
이런 극단적인 사태를 막고 아이가 적절히 자신의 공격성을 표현하면서도 절제도 할 수 있
게 키우려면 부모가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아이가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하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자세로 부모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혀 아이의 페이스에 감정적으로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부드럽게 제재를 하고 아
이가 이에 따르지 않아도 적당히 봐주는 여유를 가지되,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이나
행동으로 계속 표현해야 한다.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이 정도로 제재를 하면 그런 대로 수긍을 하지만 기질이 억센 남자
아이들은 계속 공격성을 보일 수 있다. 이럴 때는 부모 역시 조금 강하게 나가야 하며, 서
너살 정도가 되면 ‘생각하는 의자’를 방 구석에 두고 너무 난폭하게 굴 때마다1~2분 정
도 그 의자에 앉혀 반성하게 한다. 이때 방문을 닫아 버리거나 방이 어두울 경우 지나치게
공포심을 자극하여 아이가 반성할 여유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제재를 가하기 전에 아이가 왜 화가 났는지 이유를 살펴본다. 혹시 주변 환경
의 문제나 부모의 실수 때문이라면 아이에게 벌을 줘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는 사실 화가
날수 있는 상황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 아이가 난폭한 행동을 할 때 제재를 가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8.아이가 너무 마음이 약해요
아이가 마음이 약한 나머지 자신보다 강한 아이가 오면 무엇이든 양보해 버리고 자기 주장
을 펼치지 못할 때 부모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선다. 예전에는 오히려 순하고 얌전하다며 칭
찬 받을 이런 아이들이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요즘 와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유
아원을 일찍 보내는 추세이기 때문에 마음이 심약한 아이들은 많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들이 심약한 특성을 지니게 될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
다.
첫째, 체질적으로 예민하고 쉽게 불안해지는 아이의 경우다. 이런 아이는 갓난아기 때부터
잘 놀라고 잘 울고 낯가림이 심하고 낯선 곳에서 심하게 위축되는 경향을 보인다.
초기 아동발달 연구에서는 기질(Temperament)이 아동마다 다르고 부모는 이를 고려하여
양육해야 한다는 결과들을 많이 보고하고 있다. 그 결과에 의하면 일부 아이들 중에는 새로
운 상황에서 유난히 위축되고, 쉽게 수줍어하며, 불안해하는 그룹이 있는데, 이들은 어려서
부터 조금만 놀라도 심장동이 보통 아이보다 많이 빨라지고 자율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
된다고 한다. 또한 자라서도 이런 성향이 지속되어 성인이 되면 불안장애, 우울증, 대인공포
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 그룹에 속하는 아이는 부모 역시 그런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유전적인 경향을 가
진다. 이때 부모는 이를 인정하고 아이가 적응을 할 수 있는 환경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것
이 중요하다. 즉 아이가 잘 울고 잘 놀랄 때 나무라거나 짜증을 내지 말고 우선 아이를 보
호하여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
새로운 장소에는 서서히 익숙해지도록 배려하며 너무 싫어하는 곳은 데려가지 말자. 물론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무조건 피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가 익숙해지기를 기다리거
나,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무엇인가를 제공하여 두려움을 잊게 할 수 있으면 새로운 곳에도
적응이 가능할 것이다. 만일 억지로 적응을 시키려고 욕심을 내다보면 아이가 다시는 새로
운 곳을 가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아이들일수록 친구관계에서 소극적이기 때문에 사회성을 기른다는 명목으로 어린 나
이에 단체 생활을 시키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는 아이를 더욱 힘들게 하여 정상적인
적응력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 억지로 유아원이나 학원 등에 보낼 경우 아예 불안 장
애로 발전하여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도 흔히 본다. 마치 용수철을 너무 심하게 잡아당기면
그 탄력성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둘째, 어려서부터 아이의 긍정적인 자아상을 심어주지 못했을 경우다. 예를 들어 형제들
중 다른 아이만 편애하거나, 아이 보는 앞에서 부부싸움을 많이 하여 아이가 불안해하고 주
눅들게 하거나, 어려서 오랜 기간 부모와 떨어져 지내거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하는 장
면을 자주 목격하는 등 여러 가지 환경적 문제들이 그 흔한 원인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
면 아이들은 ‘나는 별 볼일 없는 아이, 불행한 아이, 야단만 맞는 아이’라 생각하여 떳떳
한 자신감을 키우지 못하게 된다. 요즘은 너무 어려서부터 학습을 시키느라 엄마가 아이를
야단치고 다그친 경우도 아이의 자신감을 조기에 박탈하는 부분적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왜 자신감이 없냐고 나무란다거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활달한 운동을 시
키는 등의 방법은 오히려 아이를 위축시킨다. 이때는 먼저 야단을 치지 않으면 아이는 서서
히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아이가 자신감을 조금씩 되찾게 되면 간혹 지나칠 만큼 일방적인 자기 주장을 펴고 고집을
부리고 부모에게 반항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가 호전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즉 평생 억눌려서 자기 주장을 못하다가 처음으로 자기 표현을 하게 되
니까 방법이 미숙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그 동안 쌓인 감정을 한꺼번에 분출하는 데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잘 받아 주다 보면 아이 스스로 자제할 것이다. 간혹
부모들은 이대로 가다가 아이가 너무 버릇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데 예의범절은 자
신감을 찾은 다음에야 가르칠 수 있는 덕목이다.
9.발달이 늦는 것 같아요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발달이 빠른지 느린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관심
을 갖는다. 그래서인지 “말이 늦어요”, “인지 발달이 느려요”라는 것이 진료실에서 가
장 흔히 접하는 부모들의 호소다.
사실 내가 아동의 정신적 발달에 대해 전문적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빠른 성장 중에 있는
아이들이 향후 어떻게 발달할 것인지는 확실히 장담할 수 없다. 단지 아이가 발달 장애가
있는지, 특별한 도움이 없이는 정상 발달을 하기 어려운지 진단하고 평가한 후 전문적 도움
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정상적인 아동의 경우도 개인에 따라 발달 속도가 판이하고, 개성도
각기 다 다르다. 따라서 특정 발달 검사의 수치만으로 아이의 발달 정도를 단언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병원에 오기 전에 벌써 다른 전문 기관을 들러 발달평가, 언어평가,
지능평가를 받고 심각하다는 말을 듣고 온다. 그리고 부모들은 ‘다른 아이보다 언어 발달
이 1년 이상 지체된다’ ‘인지 발달이 6개월 지체된다’ 등의 평가 결과에 걱정한다.
물론 객관적으로 다른 아이보다 각각의 발달 영역에서 어느 정도 성취했는지 고려하는 것
은 중요하지만, 어린 아이일수록 그 점수 자체가 평생 지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
나 큰 오산이다. 발달지연의 원인에 따라 예후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크게 아이가 타고난 바탕과 주변환경 두 가지로 생
각된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임신 때부터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즉, 생후 4~5세까지는 뇌의 구조와 기능이 빠르게 발달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나쁜 환경에
서 자라는 아이는 뇌의 발달이 정상적일 수가 없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뇌의 발달에 문제가 심각한 경우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다. 따라서 아동에게 발달의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두 요인이 각각 어
느 정도 문제가 되는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소아기 자폐증’이란 병명은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귀에 익은 발달 장애 중 하나다. 이
질환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뇌의 발달에 있어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엄마가 잘 키우더
라고 사회성 발달과 언어 발달에 장애가 발생한다. 하지만 아이가 불안이 심해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 뇌의 기질적 무제가 심각하지 않아도 언어 발달의 지연이 올 수
있으며, 이 경우는 불안을 빨리 소실시켜주면 정상적 언어 발달을 되찾을 수 있다.
따라서 아동의 발달이 한두 영역에서 다소 늦거나 빠른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고 오
히려 전반적으로 발달이 적당히 이루어지는가, 정상적으로 적응을 하는가를 볼 수 있는 지
혜가 필요하다.
10.유난히 성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자위행위를 해요
인간의 성 본능은 우리 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아기는 처음 태어나서 온통 먹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데 이 역시 본능적 행동이다. 하
지만 성장하면서 점차 성기에서 쾌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젖을 먹으면 포만감을 느끼
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심지어 기저귀 갈아줄 때 엄마의 손길이 성기에 닿아도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대체로 아이들은 돌이 지나면서 성기를 손으로 만지며 장난 하기 시작한다. 이때도 다른
신체 부위를 만지는 것보다 짜릿한 쾌감이 오는 것을 느끼며, 심지어 남자아이들은 성기를
갖고 놀다가 발기가 되기도 한다. 이때는 당황하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기다리면 괜찮아
진다.”고 아이를 안심시켜야 한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이렇게 신체적으로 성적 쾌감을 느끼는 것 이외에 정신적 성 발달도 함
께 일어난다. 자세히 보면, 내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를 확실히 아는 성 정체감(Gender
Identity), 여성과 남성으로서의 역할을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성 역할(Gender Role), 성
적인 흥분을 느끼는 대상이 결정되는 성적 취향(Sexual Orientation) 등이 정상적인 정신적
성 발달을 위해 필수적이다.
성 정체감은 18개월경부터 발달하는데 2~3세 정도 되면 자신이 남성군에 속했는지, 여성
군에 속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여성의 역할, 남성의 역할을 모방하여 배
운다. 어린 아이들의 소꿉놀이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러한 발달들은 무의식적인
학습 과정과 생물학적 부모도 모르는 사이 일어난다.
따라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성적인 면에 관심이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를 지
나치게 억누르면 정상적인 성 발달에 문제가 된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문화가 아직은 성적 본능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하기 때문에 대
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성적인 놀이를 할 때 걱정을 많이 한다. 이때는 걱정할 것이 아
니라 오히려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아이들의 건전한 성 발달을 이루게끔 하는 올바른
교육을 장으로 이용하자.
다만 아이들이 성기를 가지고 심하게 장난할 때는 아이에게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범
위 내에서 적절히 제재를 해야 한다. 아이들도 언젠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되므로 어느
정도 성적인 본능을 억제하며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그냥 부드럽게 다른 것에 관심을 유도하거나 “고추를 너무 많이 만지면 아플 수
있어” 하며 가볍게 억제해도 보통의 아이들은 곧 그만두고 다른 것으로 관심을 바꾼다.
하지만 아이에게 뭔가 심리적 문제가 있거나 환경이 나쁜 경우, 성기로 장난하는 것 이외
의 흥미 거리를 주변으로부터 찾을 수 없어 자꾸 성기 장난에만 매달리게 되고 때론 심한
자위행위로 발전한다.
나는 외래에서 이런 아이를 자주 접하는데 자위행위 이외에는 사는 게 별로 재미가 없는
아이들이 참으로 불쌍하게 여겨진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매사에 호기심과 흥미
가 많은데 이 아이들은 여기에 얽매일까’ 하는 마음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부모가 관심을 갖고 아이를 자세히 관찰하면 동생을 보거나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 댁에 지
내는 등 엄마로부터의 사랑에 이상이 있을 때 일시적으로 자위행위를 많이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환경이 좋아지면 다시 예전대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아아에게 정신적 문제가 심각한 경우, 치료 과정이 개입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으므로 전문가를 찾는 게 좋다. 아이들이 일시적으로 자위행위를 할 때는 밖으로 데리고
나가거나, 아이가 몹시 좋아하는 다른 활동으로 주의를 끄는 방법이 좋다. 만일 혼자서 방
에 들어가려 한다면 항상 문을 열어놓아 그럴 기회를 막아 주자. 아이를 너무 혼내고, 윽박
지른다거나, 억지로 못하게 하면 불안한 마음에 오히려 더 많이 하게 되므로 주의하자.
11.형제간의 싸움이 너무 심해요
어른들의 예상과는 달리 형제애는 단지 같은 피를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형제 사이는 부모의 한정된 사랑과 관심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
다. 특히 터울이 짧을수록 큰아이가 동생에게 관심을 빼앗기는 것을 못 견딘 나머지 정신적
상처가 깊게 남는다. 예를 들어 열등감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경우 어른이 없는 상태에서 둘만 남겨두거나, 큰아이에게 동생을 잠시 돌보게 하는
것은 금해야 한다. 큰아이는 동생에게 엄마의 사랑을 빼앗긴 분노를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동생을 심하게 해코지할 수 있다. 이때 부모는 행동의 결과만으로 큰아이
를 크게 혼내게 되는데 사실 책임은 부모에게 있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 두 부부가 함께 가
게 일을 하면서 큰아이더러 동생을 돌보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는 몹시 위험한 발상
이다. 부모가 보지 않는 상황에서 큰아이는 동생에게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여 아주 엄한 시어머니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형제간의 이런 갈등을 없애려면 기본적으로 둘 사이의 터울이 3년 정도는 돼야 한다. 요새
엄마들은 “한꺼번에 낳아 빨리 치우자(?)”는 말들을 자주 하는데 이처럼 위험한 발상은
없다. 엄마 입장에서 보더라도 큰아이를 낳은 후에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될 시간도 필요하
고, 큰아이 입장에서는 동생이 생겼을 때의 서러움을 어느 정도 감당해 낼 수 있을 만큼 정
신적 성숙이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의 경우는 이런 성숙이 좀 빠르지만 남
자 아이는 적어도 만 3세 정도가 되어야만 이 같은 상황을 참아 낼 수 있다.
이것은 둘째를 낳기 전에 고려할 점이고 만일 이미 동생이 있는 경우라면 다음과 같은 점
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큰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동생이 태어난 후 더욱 신경을 쓰도록 한다. 둘째가 태어
난 직후부터 엄마는 큰아이보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신경을 쓰게 된다. 흔히 산후 조리기간
에 큰아이를 친척집에 맡겨 놓는다거나, 아니면 집에 함께 있어도 엄마와 떨어뜨려 놓는 경
우가 많은데 이때 받은 아이의 충격은 두고두고 남게 된다. 동생은 두고 ‘엄마를 빼앗은
놈’이라는 생각이 머리 깊숙이 박혀 버리는 것이다.
이 때는 차라리 아기를 다른 사람과 함께 돌볼지언정 엄마가 큰아이에게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둘째가 태어난 후 무심코 경모가 아기 때 쓰던 이불을 다시 꺼내 쓰려고 했다. 그런
데 경모가 그걸 보고 왜 자기 것을 아기에게 주느냐며 화를 내는 거였다. 결국 한 달 가까
이 그 이불을 큰아이더러 쓰게 하고, 둘째에게 경모가 쓰던 큰 이불을 덮게 했다.
뿐만이 아니다. 둘째 백일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 그날이 경모 생일날이 아닌지 착각할 정
도다. 주인공인 둘째는 온데간데 없고 중심에는 떡 하니 경모가 포즈를 잡고 있다.
그 뒤 나는 얼마 동안 잠을 잘 때고 경모를 데리고 잤고, 동생이 태어났어도 엄마 아빠의
사랑이 없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네가 어릴
때는 훨씬 예뻤다. 네가 동생보다 훨씬 더 잘 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듯 처음 동생이 태어났을 때부터 첫 번째 단추를 잘 끼워야만 한다. 만일 이것이 잘
안 된 상태라면 큰아이를 나무랄 것이 아니라 엄마의 기본 마음가짐부터 바꿔야만 한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동생을 돌보는 일에 큰아이를 적극 참여시키는 것이다.
젖병을 들려준다든지, 기저귀를 함께 갈아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동생은 내 도움이 필요
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면 아이의 행동이 많이 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점이 동생에게 심술을 부리는 형의 마음을 늘 이
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식구가 많았던 예전과 달리 요즘 들어서는 아이에게 있어 애
정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부모로만 국한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형은 동생을 바라볼 때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목숨을 걸고 다퉈야 할 연적으로 생
각한다. 형제가 있는 집안에서 그 관계가 형, 동생, 엄마의 삼각구도를 그리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 큰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퇴행 현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엄마가 먹여주지 않으
면 밥을 안 먹으려 한다거나, 동생의 젖병을 낚아채 자기가 문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때 엄마는 절대 야단을 쳐서는 안 된다. “아이가 되고 싶니? 엄마가 어떻게 해줄까?”
하며 달래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제 스스로 불편해 곧 그만둘 것이다. 혼자 먹을 땐 이것저것 맛난 것을 골라
먹다가 엄마가 주는 것만 먹어야 하고, 맛없는 젖병을 물고 있는 것이 아이에게 썩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만일 아이를 다그치면 아이는 자신의 간절한 바람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분노에 그보다 더한 행동을 보이게 될 것이다.
엄마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그저 눈에 보이는 행동 자체에만 집착하여 아이를 다그칠 경
우, 나중에 친구관계 등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엄마의 다그침이 아이
에겐 동생과 차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 이럴 경우 친구를 사귈 때 너무 비굴해
지거나 이와 정반대로 애정을 친구로부터 얻으려 한다거나, 반대로 그에 대한 분노를 친구
에게 표출하는 것이다.
형제 사이의 갈등은 이렇듯 아이의 숨은 마음이 단적으로 표출되는 예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엄마의 육아 태도를 점검하는 일부터
선행 되어야 한다.
12.친구를 못 사귀고 사회성이 부족해요
요즘 와서는 지적 발달 못지 않게 사회성 발달도 중요하다. 사회성이란 타인과 어울리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것이 형성되는 가장 근간은 엄마와의 관계다. 아이는 엄마와의 친
밀한 관계에서 처음 세상을 배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 3세까지 엄마와 친밀하게 지내야 세상이나 타인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하게 된
다. 만일 이때 문제가 생기면 조금 자라면서부터 친구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거나, 친구를
못 살게 굴거나, 아니면 머뭇거리며 대처를 못하게 된다.
그 외에 아빠나 형제와의 관계 역시 사회성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흔히 부모들은 어린 자
녀가 사회성이 부족할 때 친구와 사귀게 하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유아원에 보낸다.
하지만 집안에서 부모나 형제들과도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운 아이를 유아원에 보내게 되
면 친구들이나 선생님으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고서 아예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아 버
릴 수 있다.
이럴 땐 먼저 집안 사람들과 관계를 잘 형성시켜 아이가 밝아지고,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
하고, 남과 타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뒤에 유아원에 보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이가
긍정적 자아상을 형성할 수 있도록 칭찬을 많이 하고 즐거운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자.
다만 이때 용감해지라며 태권도 학원, 웅변 학원 등에 보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으
므로 주의한다. 조급해하지 말고 서서히 적응시키자.
13.아이가 자꾸 거짓말을 해요
아이들은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과 달
리 세상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지 못하고, 주관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어떤 상황이 아이에게 불안을 일으켜 견딜 수 없게 되면 실제와 다른 이야기
를 꾸며서 하게 된고, 자신도 그렇게 믿어 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글 공부가 지겨운 5세 아이가 엄마가 해놓으라는 숙제를 안 하고 놀았다 치
자.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는 다 했니?”라고 물으면 “응” 하고 대답해놓고, 가지고 오
라고 하면 허둥지둥 “이제 할게”라고 말하는 상황이 흔히 벌어진다. 이때 아이는 엄마에
게 혼날까 봐 불안한 마음에 일단 “했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이는 후에 엄마에게 다시 들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만큼 논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위
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을 쉽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린 나이에 이런 종류의 거짓말을
할 때 부모는 어른의 시각으로 ‘이대로 두면 영원히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거
나 너무 엄하게 다그칠 필요가 없다. 만일 이때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야단을 친다면 아이는
더욱 불안해져 또 다른 거짓말도 하게 된다.
그러나 학령기 이후에 물건을 훔치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짓말을 할 경우,
도덕성 발달의 문제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때는 부모가 이를 교정시키기 위해 노력
해야 한다. 이때 처음에는 엄하게 야단치거나 벌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가 아무리 야단쳐도 교정이 안 될 경우 아이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는 근본적인 문제, 즉 애정 결핍, 부모의 무관심 등이 원인이 되지는 않았는지 먼저 살펴보
고 이를 교정해야 좋아 진다.
14.아이를 때리는 것이 어떤 영향을 줄까요?
때리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으나 가급적 때리지 않으면서 버릇을 가르치는 게
더 낫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첫째,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학습한다. 따라서 부모가 자주 때리면 아이 역시
친구와의 갈등이 생길 때 폭력으로 대응하게 된다.
두 번째는 매로 인해 아이가 너무 아프거나 무서우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
어진다. 즉 자신의 나쁜 행동에 대한 반성보다는 매를 맞아서 아프고, 기분이 나쁘며, 부모
가 무섭다는 기억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세 번째, 아이를 때려서 버릇을 가르치면 앞으로도 더 많이 때려야 효과가 있다. 반면 잘
타일러서 깨닫게 하면 아이는 스스로 판단하여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현상을 ‘도덕성의 내면화’ 라고 하는데 자꾸 매를 들면 외부의 힘으로만 아이를 통제하는
것이 되므로 스스로 내면화하는 과정을 방해한다.
마지막으로, 자주 맞으면 자아상이 나빠진다. 즉 ‘나는 나쁜 애니까 어차피 좋아질 수 없
다’고 생각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때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선 여러 가지
경우가 많으므로 그 판단은 부모가 직접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땐 다음과 같은 점을
주의해야 한다.
첫째, 화를 가라앉히고 나서 때린다.
둘째, “다음에 또 이러면 2대 때린다.”는 식으로 미리 경고를 하고, 가급적 같은 장소에
서 매를 미리 정해두고 때린다. 계획 없이 때리거나 손을 대는 것은 좋지 않다.
셋째, 때리고 나서는 반드시 달래준다. 그리고 아이에게 맞고 나서의 마음이 어땠는지 묻
는다.
15.버릇없는 아이로 자랄까 봐 걱정이 돼요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예의범절’이라는 개념이 머리 깊숙이 박혀 있어,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적당한 훈육과 가르침은 필요하다. 그러나 예의라는 것은 아
이 스스로 주변 사람들을 무의식으로 동일화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배운다. 부모나 주변 사
람들이 마구 소리 지르고 타인의 권리를 쉽게 침입하는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는 아무리 예
절 교육을 해도 소용이 없다.
반면 항상 자기 감정을 잘 조절하는 남에게 잘 양보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의식
적인 가르침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예의를 배우게 된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채 요즘 부모들은 예의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자율성을
침범할 정도로 쓸데없이 통제하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만 3~4세 이전의
아이들은 예의를 가르치기에는 너무 어리다. 오히려 타협을 가르쳐라.
16.부모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필요할까요?
부모의 권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아이와의 상호작용에서 생긴다. 따라서 부모의
권위를 인위적으로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부모 자녀간의 경계(Boundary)는 뚜렷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보다
상위의 위치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아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
끔 엄마의 권위가 타의(시어머니, 남편 등)에 의해 세워지지 않을 때, 엄마와 아이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아이는 엄마를 얕보고 엄마의 말을 따르지 않게 된다.
어떤 경우 아빠가 가장의 책무를 저버리면 아이들이 아빠를 부모의 위치로 보지 않게 되
고, 그 어떤 말도 듣지 않는다.
이렇게 부모의 권위가 흐려지면 사춘기 초에 특히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요즘 사회 문제
가 되고 있는 부모 구타 역시 어려서부터 부모의 권위가 없었던 집안에서 흔하다. 부모의
권위는 그냥 자연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올바른 부모 노릇을 할 때 아이 스스로가 자기
마음속에 품는 것이다. 그냥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권위를 세운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우선 올바른 부모로서 바로 서는 것이 먼저다. 부모로
서의 책임을 다하고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전할 때 권위는 자연적으로 따라오게 마련이
다.
17. 부모를 잃어버릴 정도로 아이가 아무나 따라다녀요
대개 부모들은 아이가 아무에게나 잘 가고, 친근하게 굴면 순하고 사회성이 좋다고 생각한
다. 하지만 아이들은 주양육자를 선별적으로 좋아하다가, 점점 자라면서 부모와 떨어져서도
지낼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되면 독립성을 갖추어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잘 지내게 된다. 이를 ‘애착 발달’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순서를 밟는다.
태어나서 6개월 정도까지는 엄마의 냄새, 목소리를 더욱 좋아하기는 하나 아직 엄마와 다
른 사람을 구분하여 애타게 엄마를 찾지는 않는다.
낯가림이 시작되는 6~7개월쯤 되면 엄마와 선별적 애착 관계를 형성하여 엄마를 통해 세
상을 안전한 것으로 인지한다. 이런 현상은 돌경에 더욱 심해져 엄마가 잠시라도 없으면 불
안해서 울고, 엄마가 있으면 조금 멀리까지도 돌아다닐 수 있다.
만약 이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놀이방에 보내거나 엄마와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는 것은
아이에게 심한 분리 불안을 일으키고 세상 밖으로 나와 활발하게 탐색하는 능력을 앗아간
다. 아이는 두 돌경이 되면 엄마가 잠시 눈에 보이지 않아도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고, 세 돌경이 되면 엄마와 분리되어도 자신의 마음속에 엄마 상을
간직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중 초기에 엄마와 선별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아이가 심하게
위축되거나, 아니면 아무에게나 안기고 안정을 추구하는 무분별한 애착을 보이게 된다.
이런 현상은 세계 2차대전 당시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자랄 때 아무나
먹을 것을 주면 쉽게 안기고, 쉽게 헤어지는 것을 관찰하여 사회성 발달의 문제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런 아이들은 자라서 친밀한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어른
이 된다고 한다.
나는 엄마가 직장 때문에 아이를 여기저기 맡기거나, 형제가 자주 입원을 하느라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경우 주양육자와의 애착 관계 형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흔히 경험한
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지 않고 혼자서 마구 앞으로 달려가다 길을 잃어버리고,
누구라도 과자를 주면 매달리는 등 무분별한 애착을 보인다. 이런 아이들은 치료를 통해 엄
마가 아이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게 하면 다시 엄마와 선별적 애착을 형성하면서 사회성이
발달한다.
18. 아이가 의존적이라 걱정이에요
우리 문화는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부모가 아이들을 많이 관섭하고 보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서구 여러 나라는 어른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극히
존중하는데 그것이 우리 눈에 볼 때는 정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런 문화적 차이는 서로
장단점이 있어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는 매사에
부모에게 의존적이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일을 책임감 있게 개척해 나가는 아이로 자라나
기를 바라게 된다.
아이들은 자립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긍정적
자아상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간혹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자립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아
이 스스로 모든 일을 하도록 하고 결과에 대해 엄하게 책임을 추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
만 아이가 너무 어리거나 아직 자신감이 발달되지 않은 경우 이러한 방식을 쓰면 아이가 주
눅이 들고 더욱, 의존적인 아이가 될 수 있다.
반면에 부모가 어려서부터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적절한 도움을 주어 ‘나는 매사에 잘 할
수 있는 좋은 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나가면서 책임도 자신이
지게 된다. 부모에게 필요할 때 편안하게 의존을 해본 아이가 오히려 더욱 용감하게 부모
곁을 떠나 세상을 헤쳐나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아이들은 실수를 해보고 스스로 깨달을 기화가 필요하다. 과잉 보호적인 부모들은 항
상 아이에게 미리 모든 일을 준비 해주기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빼앗고, 심
하면 자율성까지 침해한다. 이렇게 스스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여러 가지 실수를 하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점점 현명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 자립심이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어려서는 충분히 의존적인 욕구를 잘 받
아 주는 것이 좋으며, 스스로 일어설 힘이 있을 만큼 자라서는 실수를 하더라도 부모가 대
범하게 눈감아 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19. 한글은 언제부터 가르칠까요?
요즘 어린 나이부터 읽기, 쓰기를 비롯하여 숫자 및 계산까지 가르치는 것이 유행이다. 사
회가 경쟁적이 되고 과거보다 고도의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현실에서 어릴 때부터 지적인
능력을 길러주려는 부모들의 관심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학습 능력이나 지적인 능력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나 숫자를 계산하는 것일까? 많은 부모들이 아이로 하여금 새로운 지식을 흥미 있게 만들고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 같다.
학령기 이전의 아이들은 사고가 비논리적이지만 자신만의 공상을 잘 하는 등 창의력 면에
서는 어른을 앞지른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사물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 어
른들이 놓치고 지나치는 부분도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다. 이런 발달 시기에 있는 아이들에
게 글자를 암기시키고 숫자를 가르치는 것이 과연 무슨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나는 아이가 다섯 살일 때 유아원에서 숫자를 처음 배우며2를 뒤집어 쓴 것을 보고 바르
게 지적해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 나는 이 오리 모양이 더 좋아”라고 말
했다. 2를 오리모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제 다섯 살짜리에게는 숫자 2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
다. 오히려 얼마 전에 관찰한 오리모양을 연상하며 재미있는 상상을 하는 게 더 좋을 수 있
다는 말이다. 이런 아이에게 정확하게 숫자를 쓰고 외우게 한다면 당연히 아이는 거부할 것
이고, 그래도 혼내며 가르치면 결국 학습적인 자극을 전반적으로 싫어하게 될 수 있다.
“우리 아이는 숫자와 글자를 너무 좋아해서 억지로 안 시켜도 스스로 배운다”며 다른 엄
마들의 기를 죽이는 이야기도 흔히 듣는다. 나는 오히려 너무 어릴 때 글자에 관심이 많은
경우 자폐증 계통의 문제를 가진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조금 힘들어도 엄마가 좋아하는 학습 자극
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암기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가 신이 나서 아이가 쉽게
배운다고 생각하고 자꾸 강도를 높여갈 경우 결국 그 아이는 학습적인 자극을 보고 생각하
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서 어려운 학습 내용만 나오면 미
리 포기하는 학생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이제 2~3세밖에 안 된 아이가 한글을 줄줄 읽는 장면을 내보내는 TV
광고를 보면서 자본주의의 무자비함에 비애가 느껴진다.
물론 지능이 다소 떨어지거나 학습 장애가 있어 적당한 연령이 되어도 학습 능력이 떨어지
는 경우는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다른 발달이 큰 문제가 없는데 학습적인 자극
에 그리 관심이 없는 6세 이전의 아이를 둔 부모들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아이가 관심이 있는 부분을 함께 이야기하고 엄마 스스로도 재미있게 생각하여
아이가 자신만의 논리를 펴나갈 수 있도록 지지 해주는 것이 좋다.
학습 능력이란 글자나 숫자를 암기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고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런 측면에서 나는 아이가 학교 가기 1년 전에 한글을 가르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연스럽게 아이 스스로 익히는 경우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 아이가 매사에 관심이 많고
사고를 잘 하는 능력이 있으면 서두르지 않는 차원에서 천천히 가르쳐도 무방하다는 말이
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어야 머리가 좋아지고 공부도 잘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일찍 가
르칠 필요는 없다. 어린 나이에 가르칠수록 글을 배우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법이
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 큰아이는 학교에 들어가기 두 달 전에 한글을 배워 무사히(?)
학교에 입학했다. 어릴 때 억지로 시켰더라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히려 둘째는 유치원에서 일찍부터 한글을 가르치는 탓에 아이가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실정이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하는데 혼자 못하게 둘 수는 없고, 글자를 가르
치지 않는 유치원이 집 근처에 없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놔두고 있을 뿐이다.
만일 지금 아이에게 한글 교육을 시키고 있다면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자전거를 타보라
고 시키는 격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자.
20.아이가 갑자기 유치원에 가지 않으려고 해요
요즘은 아이를 일찍부터 유치원, 놀이방, 학원에 보내는 추세다. 그런 곳에 아이를 보내다
보면, 재미있게 잘 다니던 아이가 변덕을 부려 며칠씩 가지 않거나 처음부터 가기 싫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자의 경우 일단 아이의 뜻을 존중하여 다시 가겠다고 할 때까지 쉬게 하면서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가장 흔한 원인은 몸이 피곤하거나, 선생님께 혼이 났거나, 친구들과
싸워서 송상하거나 하는 것들이다. 또한 집안에서 부모의 관심이 동생에게 많이 쏠려 있거
나, 부부 불화로 인해 아이가 불안을 느끼는 경우에도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 둘째 역시 그 전까진 잘 다니던 유치원을 가기 싫다고 떼를 부린 적이 있었다. 일단
유치원에 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며칠 아이를 쉬게 했는데 도무지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
다. 알고 보니 얼마 전에 형이 상을 받아 아빠에게 장난감 선물을 받았는데 그게 샘이 나는
한편, 형이 학교간 상이에 그걸 갖고 놀고 싶어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쓴 것이다.
이럴 때는 먼저 원인을 제거하고, 며칠 쉬다가 다시 보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만
일 부모가 버릇 든다며 아이를 억지로 유치원에 보내면 이때는 무리가 생긴다.
아예 처음부터 적응이 힘든 경우에는 아직 아이가 부모와 분리되어 지낼 마음의 준비가 되
지 않았거나, 뭔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든 문제가 있으므로 아이가 좀더 성숙한 후에
보내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21.아이가 대소변을 지려요
아이가 두 돌경이 되면 대소변을 가리기가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는데, 아예 처음부터 이
것이 힘든 아이가 있다. 전반적으로 발달이 지체되는 경우도 있고, 배변 훈련상의 어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신체적인 이유로, 항문 괄약근의 조절이 안되거나 야뇨증 체질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처음부터 대소변 가리기가 힘든 경우는 전문가를 찾아가 원인을
밝히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어릴 때는 잘 가리다가 갑자기 소변이나 대변을 속옷에 지리는 아이도
있다. 이런 경우 아이가 대소변을 가릴 능력은 있으나, 뭔가 심리적인 이류로 퇴행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아이들은 뭔가 불안해지면 소변을 자주 보거나 지리는 증세를
보이곤 하는데, 이 경우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해줘야만 그 증세가 없어진다.
대변을 팬티에 묻히는 증세는 좀더 심각하다. 냄새가 나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
수 있고, 본인도 수치심을 많이 느끼게 된다.
이 증세로 나를 찾았던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매일 술을 마시는 아빠 때문에 늘상 부부
싸움이 끊이지 않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급기야 아이 엄마가 한 달간 집을 나가 있다 돌아
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부터 아이는 대변을 지리는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
가 아무리 혼을 내고 시간에 맞춰 대변을 보게 해도 항상 팬티에 대변을 지리곤 해 결국 병
원에 오게 된 것이다. 진단 후 아빠더러 술을 끊게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고쳐지지 않았던
아이의 증상이 금세 좋아졌다.
이렇듯 뭔가 아이에게 심한 스트레스가 가해졌을 때 일시적으로 대소변을 지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때 아이를 혼내지 말고 근본 원인을 제거한 후에 아이를 편하게 배려
해주면 한두 달 내로 증상이 호전된다. 만일 증상이 그 이상 지속되면 전문의를 찾아가보는
것이 좋다.
22.아이가 오랫동안 입원하고 있는데 정서상에 문제는 없을까요?
대학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나는 소아과, 소아외과 등에서 자문을 구하는 아이들을 많이
치료하게 된다. 만성적인 질환 즉, 소아당뇨, 만성 신장병, 천식 등의 병을 가지고 있는 아
이들이 의외로 일상 생활 및 학교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미숙아로 태어나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거나, 특히 중환자실에서 부모와 분리되어 오랫동안
생활한 경우에도 여러 가지 발달상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이 모두
정신적 문제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커가면서 잘 극복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렇다면 만성적인 신체적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흔히 보이는 정신적 문제는 무엇일까?
어린 나이에는 원하지 않는 치료나 주사 등 아픈 치료 과정 때문에 불안함을 느낄 수 있
다. 이런 아이들은 의사 가운만 봐도 울며 도망가고, 병원에서는 불안하여 안절부절못한다.
이런 현상이 좀더 심각해지면 병원뿐 아니라 다소 무섭거나 새로운 장소에만 가도 쉽게 불
안해질 수 있다. 우리 의료수가가 현실화 되고 외국에서처럼 가급적 덜 아프게 달래가며 치
료하는 것이 이런 불안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된다. 또한 엄마가 당황하지 말고 아
이에게 상황을 잘 설득 시키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어린 나이에 중환자실에서 엄마와 떨어져 오핸 기간 입원한 경우, 분리불안장애가 생길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는 일정 기간 주양육자와 선별적 애착을 형성해야 정신적 분리
가 가능하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가 엄마 대신 낯선 기계에 둘러싸여 지내야 하
는 상황은 아이에게 엄청난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갑자기 오줌을 잘 가리던 아이가 대소
변을 지리고 잠을 설치는 현상을 보이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이런 경우 엄마가 가급적 자
주 면회하고 집에서 갖고 놀던 인형을 가져다주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소아 당뇨의 경우 식이 조절과 함께 인슐린 주사를 매일 맞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겪게 된
다. 한참 자율성을 획득해야 하는 시기에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매일 주사를 맞고, 피
검사를 해야 하는 것이 아이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는 간섭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모가
이러한 점을 잘 이해하고 미리 마음을 배려한다면 비록 아이가 힘들더라도 적응해나갈 수
있다.
만일 너무 강압적인 태도로 아이에게 짜증을 내면서 간호를 하면 결국 아이가 어느 순간에
모든 도움을 거부하고 뛰쳐나가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만성 질환을 앓는 아이들은 학교를 자주 결석하게 되므로 학업이나 친구 관계에서도 어려
움을 겪을 수 있다. 그때그때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부모와 선생님이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를 위한 특별한 도움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아이와 잘 맞는 친구 한두 명에
게 아이를 도와주도록 하고, 집에서도 자주 놀러오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재 서울대학병원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위한 병원 내 학교를 마련해놓고 있으며, 신촌 세
브란스병원에서도 곧 개원할 예정이다.
23.남편이 술만 먹으면 아이를 심하게 괴롭혀요
술만 먹으면 가족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아빠에게 아이와 부인이 당신의 술버릇 때
문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이야기하면 “나는 술에 중독된 것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문제
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알코올중독은 그냥 타이른다고 낫는 병이
아니며 본인의 굳은 의지 아래 전문적 치료를 받아야만 낫기 때문에 참으로 고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가족들은 포기를 하게 되고 가정은 점점 황폐화되기 쉽다.
남편이 거의 매일 술을 먹거나, 술로 인해 경제적 손실이 큼에도 불구하고 주 3회 이상 술
을 먹는다면 일단 알코올중독 내지는 남용이 가능성이 높다. 당사자에게 직접 치료를 권유
하면 반발심에 오히려 부인을 원망할 수 있으므로 시댁 어른들이나 형제들의 도움이 필요하
다. 온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아빠가 술을 끊고 치료를 받도록 노력해야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꼭 술 문제 이외에도 아빠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엄마를 비롯해 아이들도 크나큰 아
픔을 겪게 된다.
요즘은 특히 주식투자나 컴퓨터 중독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는 아빠들이 많은 문제를 유발
시키고 있다. 그 중 주식투자는 돈을 번다는 명분으로 인해 중독이 되어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므로 가족들에게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입힌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결국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인데, 오히려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희생시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나는 주식투자 때문에 가정이 깨
지고 아이가 마음의 병을 앓는 경우를 자주 접하면서 사회적 차원에서 대국민 홍보가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주식만 아니면 행복하게 잘 살아가 수 있는 가족인데, 이렇게 처
참하게 깨지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아빠는 부인이 아무리 말려 봤자 부부싸움밖
에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 외의 사람이 아빠를 설득하는 것이 절실하다.
아빠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때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권유하는 것 또한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다. 아이 문제로 왔다가 아빠의 문제가 심각한 것을 발견하고 잘 설득하여 아이와 아빠
가 함께 치료를 받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아이의 문제는 쉽게 치료가 되고 가족 모두가 다시금 행복을 되찾게 된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보다는 아이를 위해 자신의 문제를 치료 하고자 할 때 더 열심히 치료
에 매달리는 것 같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혹시 지금 아빠의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가정이 있으면 용기를 내어 아빠를
고칠 수 있도록 시도해보자.
24.아이가 밤에 자다가 깨서 갑자기 울어요
아이들의 수면 역시 다른 기능과 마찬가지로 일련의 발달 과정을 거친다. 처음 태어나서는
24시간 중에 20시간 이상 잠을 잔다. 그러다가 3개월쯤 되면 낮보다는 밤 쪽으로 잠자는
시간이 치중되며 돌이 되면서부터 비로소 성인과 유사한 패턴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일단
은 아이의 잠자는 습관에 대해 어른과 비교하여 이해하려 들면 안 된다.
인간의 수면은 의학적 용어로 렘 수면(REM Sleep)과 논 렘 수면(NON REM Sleep)으로
나뉜다. 전자는 꿈을 꾸는 수면을 말하고, 후자는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는 수면을 말한다.
사람이 잠을 잘 때 수면 후반부로 갈수록 렘 수면이 증가하게 되면서 꿈을 꾸게 된다. 그런
데 논 렘 수면에서 렘 수면 상태로 바뀔 때 잠시 의식이 각성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성
인의 경우 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잠시 뒤척이거나 약간 깨는 듯하다가 다시 잠에 빠져드
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익숙치 않은 어린 아이들의 경우 잠을 자다가 뒤척임이 심하거나 그대로 잠
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이 중 간혹 이런 각성의 정도가 심한 아이들은 잠자다가 갑자기 울
거나 일어나 앉기도 한다.
우리 둘째가 그랬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낮에 있었던 일을 되뇌이는 것이다. 이는 반수면
상태에서 약간 각성된 상태로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 역시 잠에 취해 모르고 하
는 행동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엄마는 잠자던 아이가 갑자기 떠들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는
한편,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약간 정도가 심할 경우엔 아이가 깨서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이때 엄마는 아이에게 심각한 병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더욱 당황한
다.
그러나 이런 경우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수면 상태에서 나오는 것들은 의식이 아닌 무
의식이어서, 평소 아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도가
심하지만 않다면 어디까지나 정상에 속하며 어느 정도 자라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따라서
아이가 이런 증상을 보이면 노라거나 당황하지 말고, 그저 아이를 잘 대해서 다시 잠을 재
우면 되나.
하지만 이런 현상이 너무 잦거나, 단순히 말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고 과격
한 행동을 한다면 다른 문제가 있는지 고려해봐야 한다. 수면 뇌파가 좋지 않다거나, 불안
애가 심해 악몽을 꾼다거나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왔던 한 아이는 심한 불안 장애로 인해 그런 증상을 보였다. 아이가 불안을 일으
키는 원인을 알아보니 얼마 전에 심한 교통사고 장면을 목격한 뒤 그것이 엄청난 충격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경우는 불안 장애를 먼저 치료 해야만 한다.
만일 뇌 기능상의 문제가 있다면 소아 정신과 및 소아 신경과와 연계하여 치료를 병행할
경우도 있다.
25.아빠, 엄마의 육아 방식이 너무 달라서 부부싸움을 자주 해요
“애가 왜 이렇게 버릇이 없어? 당신 도대체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 애 하나 제대로 못
키워?”
“당신은 애한테 왜 그렇게 함부로 대해요? 애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주변에 보면 이런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는 예가 많다. 굉장히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원론적
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육아에 있어 부부가 의견 차이를 보이는 경우는 흔하다.
왜 그럴까. 이는 단순한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라 남녀의 도덕성 발달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여자들을 비도덕이라 칭했다. 옳고 그름보다는 감정에 치우치는 여
자들이 남자보다 도덕 관념이 부족하다는 거이다. 그것은 과거에는 옳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남성적 시각에서만 판단한 오류였다고 밝혀졌다.
그 예로 1960년대 미국의 한 여류 심리학자가 남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했다. 친구가 마약을 하거나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을 때 이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질
문이었다.
그 결과 남학생들은 이르겠다고 답한 쪽이 훨씬 많았다. 옳지 않은 일을 했으니 정당한 대
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비해 여자들은 ‘잘 모르겠다’ ‘안 이를 수도 있다’고 유보적으로 대답한 비율이
높았다. 이유인즉슨 그 친구에게 그럴 만한 절실한 이유가 있거나 혹은 자신이 이를 발설함
으로 인해 그 친구가 다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프로이트 말대로 이런 여자들을 과연 비도덕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아니라는 거다. 그 실험에 대한 결과는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친사회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해 ‘비도덕적’ 이라고 평가되었던 여성의 특성이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해
주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쪽으로 재평가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또 다른 도덕적 성향
임이 인정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남녀의 성향이 아이 키우는 데 그대로 반영 된다. 부모들은 실제 생활에서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남녀의 육아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예로부터 이어져온
개념이다.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단적으로 말해 아빠들은 아이를 대할 때 융통성이 없다. 아이가 무언가 잘못을 하면 그 사
건 자체만을 두고 잘잘못을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 규칙은 규칙이라는 거다.
그러나 엄마들은 사건의 진위 여부보다는 아이의 감정을 먼저 생각한다. 사건을 일으킨 아
이의 마음에 먼저 눈이 간다는 말이다.
내 남편의 경우도 아이에게 흔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가차없이 처단(?)한다. 그러나 나는
만일 아이가 피곤해서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어겼다면 그것만큼은 봐준다. 약속을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완성된 인격체로 자라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엄마에게서
는 부드러움과 상황을 융통성 있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배우고, 그러는 한편 아
빠로부터는 버릇을 확실히 익힌다.
하지만 이럴 경우 아빠와 엄마는 의견차이로 인해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갈등을 풀어갈까?
우선 본질적인 사고방식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서로 보완 해야 한다. 원래 그렇다는 것
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대로만 맞추려 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에
맞춰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엄마 아빠가 지향하는 바가 달라서는 안 된
다는 점이다. 하나의 지향점을 갖고 두 사람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집의 경우, 아이 기르는 데 한가지 원칙을 세우면 두 사람 모두 그것만큼은
인정을 한다.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러나 방향이 같다고 해서 방법까지 같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만일 아빠가 그 문제를 두
고 혼을 낸다면 나는 오히려 달래는 방법을 쓴다.
경모가 아침마다 늦장을 부려 속이 상한 젓이 있었다. 남편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나만
그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어느 날 아이가 보지 않는 데서 남
편과 상의를 했다.
남편이 내린 처방은 매일 등교 시간을 일일이 기록하게 하는 거였다. 나 역시 이에 동의했
다. 그리고 남편은 아이가 늦게 갈 경우 매를 한 대씩 때렸다. 아빠가 그런 태도를 취하니
아이의 버릇이 몰라볼 정도로 좋아 졌다. 물론 나는 그 방법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어느 정
도 강압적으로 할 필요가 있는 문제였기에 일단은 인정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다스리는 데 있어 남편과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등교 시간을 어겼을
때 야단치기 보다는 아이가 일찍 학교에 가거나 하면 칭찬해주는 방법을 썼던 것이다. 집을
나선 시간이 이르면 아이가 좋아하는 통닭을 사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매사 삐딱하고 버릇이 없는 어린 아이의 경우 부모의 양육 방식에
서로가 차이가 있을 때 점점 더 그런 성향이 강해져 커서까지 문제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아이를 대할 때는 즉흥적인 행동할 것이 아니라 두 부부가 상의를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하나의 원칙을 세운 다음, 아이를 대할 때 그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 두 부부가 일
관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방법에 있어서는 달라도 원칙과 지향하는 바가 같다면 부부가 서로 싸울 일도 없고, 그 안
에서 아이 역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26.아이에게 정신적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있어 무엇이 정신적인 문제인지 잘 모르고, 문제를 알았다 해도
합리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사실 말을 안 듣거나, 공부를 안 하거나, 부모에게 대들거나, 친구를 때리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정신적인 문제와 연관될 수 있는데 부모들은 “저러다 낫겠지” “원래 성격이 그렇겠
지” 하며 안이하게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 둔다.
그런데 이 정도가 심해져 문제라고 인식하고 나서도 이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게 아니
라 종교를 찾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얻는 것으로 해결하려 든다. 그러나 부모가 그
러는 사이 아이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소아정신과에서 아이의 정신적인 문제를 다룰 때의 대원칙은 ‘조기에 잡아준다’는 것이
다.
아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조기에만 잡아 줬어도 좋아질 것들이다. 그런데 나를 찾
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병을 한참 키워서 온다. 앞서 말한 바 있지만 이는 사회적으
로 조성된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간에 이렇게 병을 키워서 온 경우 사실 바로잡기가 너무 힘들다. 우리
사회가 현재 청소년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사실 이런 데 적지 않은 원인이 있
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일단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좀 어렵다’, ‘뭔가 다르다’ 싶으면 이웃집
아줌마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먼저 과학적인 사실부터 확인하라고 말하고 싶다.
요새는 인터넷 등을 통해 아이의 정신적인 문제에 관한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고, 상담
기관 등을 통해서도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아동 상담소나 지역사회 복
지관 등에서 아이의 정신적 문제에 관해 상담 받을 수도 있다. 적어도 상담을 해주는 사람
들은 이 쪽 분야에 대해 엄마보다는 훨씬 낫다.
그 말을 100퍼센트 믿으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의 문제를 파악함에 있어 참고자료로
삼으라는 말이다. 만일 그렇게 알게 된 방법으로 아이가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때는 소아정
신과를 찾는 게 낫다. 그것이 언어 발달 지연이 됐건, 친구를 때리는 것이건 일단 오래 끈
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소아정신과에 찾아가기를 엄마들에게 권하는 이유는 아이가 갖고 있는 문제들이 단순
히 심리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뇌 발달과 관련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의사
들은 마음과 몸을 동시에 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원인들을 동시에 통합적으로 상담할 수 있
다. 그러나 심리학자나 각 분야의 치료사, 상담원들은 생물학적 면을 간과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아이의 언어 발달에 문제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엄마가 먼저 언어 치료사를 찾
았다. 그러면 일단 과정에 따라 언어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언어 발달상의
문제는 그 원인이 너무나 다양하다. 만일 아이가 정서상의 문제로 언어 발달에 문제를 보인
다면 이때는 먼저 그 부분부터 고쳐줘야 한다. 그래야만 언어 발달도 그 후 일반 치료를 거
쳐 정상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소아정신과에 와서 진단을 받은 후, 진단에
따라 그때부터 상담원을 찾거나 놀이 치료사를 찾아도 늦지 않다.
아이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고민을 하지 말자. 그리고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버
리자. 중학생이 돼서야 나를 찾아 오는 경우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많은데,
이때는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쉽게 말해 집안 망신이 될까 봐 아이 병을 쉬쉬 하며
숨겨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중에는 아이 때문에 창피하다고 조기에 유학을 보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아이를 다루는데 있어 ‘느림’을 강조하지만, 이는 단순히 지켜보라는 의미가 아니
다. 내가 말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을 써도 안 된다’ 싶으면 그저 나아지겠거니 기다릴
게 아니라 해결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27.아이가 TV, 비디오에 너무 몰두해요
아이가 TV나 비디오를 보는 문제에 있어서 먼저 짚고 넘어 가야 할 것은 연령대다. 이는
어릴수록 문제가 되는데, 특히 만 2세 미만의 아이가 TV나 비디오에 몰두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엄마들이 교육용 비디오 같은 상술에 속아 일부러 아이에
게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하루 종일 TV를 켜두면서 아이가 거기에 넋을 잃고 있는 걸 모
르는 경우도 생각 외로 많다. 심지어 나대는 아이를 앉혀두기 위한 방편으로 TV나 비디오
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일단 엄마들은 자기 자신이 아이를 TV광이나 비디오광으로 만들
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왜 아이들이 TV나 비디오에 그렇게 몰두할까.
일단 재미있어서다. 총천연색일 뿐만 아니라, 빨리 움직이고, 여러 가지 소리가 튀어나오는
일련의 것들이 아이들의 본능인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한마디로 아이 적성에 딱
맞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재미가 있기에 중독성이 강하다. 한번 재미를 붙이면 끊기가 어렵다는 것이
다.
그렇다고 아이가 TV나 비디오에 지나치게 몰두할 때 어떤 문제를 일으킬 것인가.
첫째, 실생활에서 경험해야 할 것을 아무런 노력 없이 수동적으로 경험하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는 학습 스타일, 종국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다. 즉 학습이
나 모든 생활에 있어서도 그러게 수동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있어서
도 이렇게 배움에 있어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 물러나 앉게 되면 다시 돌이키기가 무척
힘들다.
둘째, 이런 상태에서 만일 부모가 무 관심하기라도 한다면 아이는 여기에 더욱 매달리게
되고 이는 뇌 발달에 있어 문제를 일으킨다. 실제 상황에서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사회성
발달을 담당하는 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아이가 두 돌까지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 사회성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급속도로
발전한다. 그런데 이시기에 아이가 비디오나 TV만 보고 자랐다면, 나중에 말을 할 때도 실
생활에서 쓰이는 말이 아닌 TV나 비디오의 캐릭터들이 쓰는 말들만 따라 할 수도 있다. 또
한 우리가 문법책을 보고 읽듯 일상 생활에선 잘 쓰지 않는 언어를 무작위로 사용하기도 한
다. 또한 가상의 현실에서만 살다 보니 실생활에서의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하다. 대인관계
나 사회성은 남과 내가 각각 다른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서로 접하는 게 기쁘다는 것을
내가 깨닫게 되면서 더욱 발전한다. 그런데 TV와 비디오에 몰두 했던 아이들은 그 감을 잃
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을 의무적으로 대하는 등 사회성 발달에 많은 장애가 따른다.
뿐만인가. 학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고력마저 떨어진다. 사고력이 뭔가. 외부 자극을 내
부화시켜서 이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내는 능력이 바로 사고력이다. 그러나 외부의 자극에
대해 수동적이면서 자기 세계에만 빠져 살다 보니 이런 사고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이런 아이들은 숫자는 잘 외우는데 덧셈이나 뺄셈을 못하는 등 무언가 생각을 요하는 문제
에 부딪치면 바로 한계가 드러난다.
셋째, TV나 비디오는 너무 많은 것들을 즉흥적으로 보여준다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아
이가 글을 읽으며 무언가 상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미국의 한 실험에 의하면 중산층 가정
에서 아이가 TV를 많이 볼 경우, 언어력 가운데 읽기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
다.
아이에게 책이 좋은 것은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읽고 추론하여 상상 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나 TV나 비디오를 많이 본 아이들은 지루한 읽기 자체를 거
부하기 때문에 이런 능력역시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이런 정신적 문제뿐 아니라 ‘비만’이라는 신체적 문제까지 야기시킨다. 소아비만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원인이 바로 앉아서 TV나 비디오만 보는 생활습관에서 나온다.
결국 TV나 비디오의 폐해는 아이 발달의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렇다고 해서 아예 안 보게 할 수는 없다 또래 아이들의 화제 거리가 방송 프로와 관련한 것
이 많기 때문에 잘못하면 친구 사이에서 ‘왕따’를 당할 우려도 있다 나는 그래서 아이들
이 보는 프로는 노화를 해서라도 보여주는 편이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지도해줘야 할까.
앞서 말한 대로 우선 아이들을 위한 프로나 교육방송 위주로 보여주되 하루 1시간 반 이
상은 넘지 않는 게 좋다. 폭력적이지만 않다면 만화를 보여주는 것도 말리지 않는다. 아이
가 좋아할 것 중에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감동을 줄 만한 것 위주로 선별한다.
나는 아이와 함께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을 자주 보는 편인데, 아이와 함께 뉴스 주제에 대
해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답해주는 등 교육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아이가 TV나 비디오 없이는 못 살 정도가 되었다면 단호이 이를 제재할 필요
가 있다. 볼 기회를 애초에 막고 밖으로 아이를 내보내자.
그러나 무조건 못 보게 하기보단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즉, TV나 비디오보다 훨씬 재미
있을 만한 다른 자극을 한동안 계속 준비하라는 거다. 놀이공원에 데려간다든지, 아이가 좋
아하는 수영장엘 데려간다든지, 영화 구경을 시켜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비디오 테이프는 일단 모두 없애자. 아이가 보는 앞에서 태워 버려도
된다. 이건 네게 나쁘다고, 엄마가 다른 재미있는 걸 해 주겠다고 말해주면서 말이다.
TV도 마찬가지다. 없애기 어렵다면 고장 났다든지, 아니면 한동안 치워두어 아예 호기심
을 일으킬 빌미를 없애라는 거이다. 적어도 이런 노력을 한 달 이상 지속해야 효과가 있다.
나는 아이에게 있어서 만큼은 문명의 이기가 별로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
고 그것들로부터 아이를 떼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아이가 중독성을 일으키기
전에 이를 교육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엄마가 갖춰야 할 지혜일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