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이 글 재밌게 읽는다. 고맙다. 지내온 속내를 이렇게 소상하게 내놓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그리 길지 않지만, 삶의 편린들을 서로 나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림처럼 장승포의 자췻방이 그려진다. 그 동해리 앞을 바로 어제도 지나면서 이름이 기억에 남는데, 남는데...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내동, 동해리 다 그런 이름들 익숙한 곳들이지 뭐. 어젠 광주에서, 그젠 서울에서 모임을 가졌겠구나. 나는 길이 멀어서 좀...
그제는 서울에서 찾아온 이가 있었는데, 다산초당엘 들렀다 어제 아침 우리집에 차를 두고 제주도로 들어갔다 오늘밤 돌아올 예정이다. 어제 아침에 그들을 데려다주러 가는 길에 그곳을 지나쳤다. 오늘도 갈거구. 또 어제 오후에도 삼산면 봉학리의 김남주생가에 가는 길에 그곳을 지나쳤다. 나는 이곳보다 조금 외빠진 그곳이 너무 좋더라. 참, 어젠 관식이가 약천에 새로 집을 지어서 신전 사는 주유소 경식이랑 같이 거길 다녀 왔다.
두륜중학교에서 오심재로 조금 올라가다 '설아다원'이라는 다원 겸 민박집이 있는데, 주인과 안면이 있어서 종종 들른다. 그곳 차밭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참 좋더라. 사초리 방조제도 바로 내려보이고 말이야. 경치라면, 새로 지은 관식이 집 그러니까 약천도 너무 좋더라. 안으로 쏘옥 들어온 바다가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경치만으론 살수가 없으니 먹고 살 방도가 문제지 뭐.
난 두륜중학교 앞을 지날때면 왜 마음이 어슴푸레 해지는지 모르겠다. 1년밖에 안다녔지만,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절반이 그곳엘 다녔는데도 나는 중학교 때 친구들이 그곳에 다닌다는 생각을 별로 못했다. 집안형편이 좋지 못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수가 없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나중에 누군가에게 들으니 도암중학교에 다니던 누군가가 친구들을 만나러 그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는 얘길 들었을때는 무언가 가슴이 찡한 게 느껴졌다. 훨씬 나이가 들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해봤으니까 말이야.
뭐 그렁저렁 키 큰 용우는 고둥학교 때 또 만났지만, 고등학교 때 역시 난 늘 마음의 여유가 없이 지내서 살갑게 지내지 못했지. 뭐가뭔지도 모르면서도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으니까 말이다... 축구를 잘했던 용정마을 장열이, 어관리 정석이, 음- 늘 단정하게 투피스를 차려입곤 했던 김선, 향숙이 그리고... 백화 애들도 그곳엘 다녔을까?
얼굴들을 생각해보며 오심재에서나 떠올릴 법 한 '꼬질꼬질 한' 시 한편 붙여본다. 좋은 시간들 보내길 빈다.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 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 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서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 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 속 주머니에 넣어 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 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 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같은 시를 그리워 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 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 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설모임에서 이장 김장 이옥희( 쎔 애칭 )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만큼 단짝인가보다 ..서로같은일 하고있다는 소식들었어 기름사장하믄서 아주 잘나간다고 하더라구 넘기분이좋더라 잘됐다고 하니까 글구 정성규소식 궁금해해서 정현이가 들려준대로 리조트 사업하느라 와화벌이 한댔더니 애국자라해서 우리모두웃었다....설칭구들은 나름 잘살고있더라고.....
어렸을적에 물위에뜬 기름처럼 "물아래"아그들하고는 친하질 못했어.우린그때 내동,원동 용산 ,신방 이쪽 을 "물아래"라고 했고 흥촌,장수리,이쪽을" 물우게" 라고 하면서 그나마도 우린 물우게도,물아래도 아닌 제3의지역이었으니까,,,우리만의세계를 세울려고 하진 않았을까. 비온날이나 그런때 아침 강진가는버스엔 도암중친구들이,완도행버스에는 두륜중애들이,,,,
'차령 이남'은 다 물 아래 아닐까? 우린 모두 '물아랫것들'일거야. 성균 오래 전에 그 일 한다더니 요 몇년간은 통 소식이 없다. 어디서 또 무슨 '사고'를 치고있는지... 아직 태국에 있다면, 놀러오란 말 유효할거다.
정현이는 자연속에 마음을 담고 사는구나...니 글을 읽노라면 사람사는 모습을 그리게 된다...
고마워 좋게 봐줘서... 난 널 생각할 때마다 죽은 철규가 생각나. 알지? 늘 잊지 말고 생각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