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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 憬. 婉. 獨島 茶禮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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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중국차문화 스크랩 계곡에 술잔 띄워 마시는 `곡수유상` . 포석정 / 박경자의 한중일 정원 삼국지
오심/이길선 추천 0 조회 101 15.12.10 00: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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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의 한중일 정원 삼국지

 

왕희지도 즐겼던 계곡에 술잔 띄워 마시는 '곡수유상'

 

하루종일 세속의 잡무에 시달리던 고대 지식인들은 늘 자연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입세(入世)와 출세(出世) 사이에서 고뇌하며 마음속 응어리를 쏟아냈다. 입세는 나라를 다스려 세상을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 천하를 선하게 하는 것이고, 출세는 자연 속에 은둔하며 자연을 즐기는 삶을 추구해 홀로 자신만을 선하게 하는 것이다.

 

춥고 긴 겨울이 지나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겨우내 집안에 움츠렸던 사람들은 교외로 나아가 봄의 기운을 느끼고, 봄의 푸름을 감상하며, 봄바람을 쐬고, 목욕재계를 한다.

상고시대 사람들은 무속 의식을 통해 겨우내 가졌던 스트레스와 답답함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한 해 동안의 각종 재해, 질병, 불운 등을 떨쳐내고자 했는데, 이것을 불계(??) 또는 수계(修?)라고 했다.

 

목욕으로 재액을 떨쳐버리는 무속 행위는 주(周)나라 때 시작됐다. 그때는 늦봄 음력 3월 3일 상사일이며, 상사절은 제사의례였을 뿐만 아니라 관민이 모두 참여하는 성대한 명절이었다. 상사절은 한나라 때에 매년 음력 3월 3일로 고정한다고 기록돼 있다.

 

 

중국 시아오싱 난정에서 곡수유상하는 사람들.

 

 

속세를 떠나 세상에 얽매이지 않았던 지식인과 문인들은 시와 술에 도취하고 자연을 추구하는 ‘곡수유상’을 즐겼다. 곡수는 굽은 계곡이나 강물을 말하는데, 굽이굽이 흐르기 때문에 흥미를 더해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다. 유상은 떠다니는 술잔이다.

 

상(?)은 술잔인데 고대에는 술을 따르는 도구였다. 주로 나무나 토기로 만들며, 나무 잔은 물에 잘 뜨도록 밑에 받침을 만든다. 토기 잔은 2개의 손잡이가 달렸고 새 깃털과 비슷해서 ‘우상(羽?)’이라고 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운 다음 술잔이 누군가의 앞에 오면 바로 시 한 수를 짓고 그렇지 않으면 벌주를 마신다. 술잔은 떠다니는 잔 받이 위에 놓아서 흘러 내려가도록 했다.

 

곡수유상이 중국 정원에서 중요시된 때는, 동진(東晉) 시대다. 동진 목제(穆帝) 영화(永和) 9년(353년) 3월 3일에 절강 산음(山陰, 현 소흥)의 난정(蘭亭)에서 서예가 왕희지는 문인과 선비를 불러모아 수계 의례를 행하고 곡수유상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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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 중에서

 

영화(永和) 9년 계축 늦봄 초에 회계산음(會稽山陰) 난정(蘭亭)에 모여 수계를 했다. 여러 현사(賢士)들과 젊은이, 어른들이 모두 모였다. 이곳은 높은 산과 가파른 고개가 있고,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다.

또 맑은 물과 요동치는 여울이 좌우로 비추고 있다. 물을 끌어다가 곡수에 술잔을 띄우고 차례대로 앉았다. 비록 관악과 현악의 음악 소리는 없지만 술 한 잔과 시 한 수가 있으니, 그윽한 심정을 마음껏 펼 수 있었다.

비록 취하고 버리는 것이 만 가지로 다르고 고요하고 급함이 같지 않으나, 저마다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면 즐겁고 만족해서 늙음이 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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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진(晉)시대 난정 수계도.

 

 

난정에서 벌인 곡수연 그림.난정의 곡수유상 행사는 난정수계도에 나타나 있다. 1300년 전 난정에서의 곡수유상에 참여했던 사람은 41명으로 그 중 26명은 시구를 지었고, 나머지 15명은 시구를 짓지 못하여 벌주 3잔을 마셨다.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속에서 지식인들은 현실 정치에서 물러나 매일 세상에 물들지 않은 맑은 이야기(청담, 淸談)만을 숭상하거나 현실을 떠나 자연에 은거했다.

 

곡수유상은 후대로 이어졌다. 특히 당 장안성에서는 3월 상사일에 성 동남쪽의 곡강(曲江) 부용원(芙蓉苑)에서 봄놀이를 즐겼는데, 이날 많은 사람이 곡강 일대에 모여 장안성의 절반이 텅 빌 정도였다고 한다.

 

명대 황중소(黃仲昭)의 시에는 ‘물은 샘에서 흘러나와 쉽게 가득 차고, 잔은 굽은 물길을 따라 느리게 흐른다.’고 했다.

 

중국 항조우(杭州)에서 1시간 거리의 시아오싱(紹興) 난정은 현재 중국에서 곡수유상 행사가 가장 활발한 곳이다. 이곳은 원래 위치에서 평지로 내려와 청대에 복원됐다. 난정의 건물과 왕희지의 글씨, 진(晉)시대에 곡수유상연을 했던 계류, 주변의 정각(亭閣) 건물 등 주변환경이 잘 복원돼 있다.

 

 

일본 모쓰지에서 곡수연하는 모습.

 

현재 일본에서 옛 곡수연을 부활시킨 곳은 여러 곳 있지만 모쓰지(毛越寺) 곡수연은 그 중 인상적이다.

모쓰지는 이와테현 히라이즈미에 있는 헤이안 시대 후기의 정원이다. 모쓰지 정원은 복원정비를 목적으로 20세기 말 발굴조사를 했고 곡수도랑은 전체 길이 80m로 일본 최대 규모다.

 

일본에서 곡수연은 나라, 헤이안시대에 성행했다. 모쓰지의 곡수연은 매년 5월 4번째 일요일에 열리며 남성, 여성이 헤이안 귀족의 의관을 갖추고 잔을 띄우고 곡수 가에서 가인들이 노래 제목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술잔을 기울인다. 수백명의 관람객이 참석해서 즐기고 있다.

 

 

현재 포석정 풍경사진.

 

석구만 홀로 남아있다.포석정은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 곡수유상, 우리 기록은 유상곡수 유적이다. 포석정은 현재 석구만이 남아있어서 황량하기 그지없다. 그동안의 연구들을 종합하고 중국의 곡수유상, 일본의 곡수연을 사례로 삼아서 경주시는 앞으로 유상곡수연을 복원할 계획이고 현재 준비 중이다.

 

 

 

 

 

박경자의 한중일 정원 삼국지

 

포석정은 신라 경애왕이 술 마시며 놀다가 죽은 장소가 아니다

 

포석정은 경주 금오산의 서쪽 기슭에 있다. 돌을 다듬어 거북(鮑魚) 모양으로 만든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유적이다. 포석정 일대는 월성 남쪽의 이궁터(離宮址) 즉, 임금이 행차하였을 때 머물던 별궁(別宮) 터다.

 

포석정은 삼국유사에  '왕(憲康王)이 포석정에 갔을 때, 왕 앞에서 남산신(神)이 나타나 춤을 추었다...왕도 따라서 춤을 추었다...신라인들은 이 춤을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 한다' 는 기록이 있다.

 

신라 멸망과 관련해서 경애왕이 잔치하고 놀다가 후백제 견훤에게 항복한 곳이었다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고려 일연이 지은 것으로 고려 건국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적의 침입도 모르고 잔치를 벌였다 하여 신라를 타락한 국가로 비하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베이징, 심추청(沁秋亭)에서 곡수유상을 하는 구불구불한 도랑인 곡수거.

 

 

고고학 해석에 따르면 포석정은 제사를 지내던 사당, 나정에서 시조묘 제사 후에 연회를 하던 장소였다.

 

중국 진(晉)시대에 시작된 곡수유상연은 일본에서는 8세기때 최초로 곡수연을 했다는 ‘니혼쇼키(日本書紀)’ 기록이 있다. 곡수연(曲水宴) 그림도 현재 쿄토고소에 남아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뛰어난 시가(詩歌)집 ‘만요슈(万葉集)’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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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에 봄의 풍경은 아름답고, 상사(上巳)의 부드러운 바람은 살랑거려서 경쾌하게 불고, 찾아온 제비는 진흙을 입에 물면서 집에 축하하러 들어오고, 돌아가는 기러기는 갈대를 뽑아 멀리 바다 쪽으로 간다. 당신이 벗을 불러 곡수연을 새롭게 열고, 부지런히 잔을 강의 맑은 물에 띄웠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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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고서(京都御所) 常御殿에서 곡수연하는 그림.

 

 

헤이안시대 한시문집 ‘간케분소(菅家文草)’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3월 3일, 주작원(朱雀院)의 연못 옆에서 곡수연을 열었다. 중국 한 무제의 백량대(柏梁台)를 본 따서 노송나무로 난정백량전(蘭亭柏梁殿)을 만들고

...이것은 모두 유유자적, 조용하게 해와 달을 즐기고, 무위자연을 즐기고, 풍월을 시로 짓고, 시절을 중요시하는 뜻이다

...가는 봄을 아껴서 어떻게 중국 당 장안의 곡강지(曲江池) 근처로 갈 수 있는가. 날개장식이 붙은 술잔을 물결 위에 띄운 중국 진나라 난정의 모습을 멀리 생각할 뿐이다.'

 

포석정의 유상곡수연은 후대로 이어졌다.

 

고려시대 시문에는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 내용이 많다. 고려시대의 문신 이규보(李奎報)가 쓴 '계연(?宴)에 초청받은 것을 사례하는' 글도 있다.

 

조선시대 중종, 정조 때 창덕궁 옥류천에서 유상곡수연을 연 기록이 있다.

 

"중종 11년(1516) 9월 8일 ‘대비전의 곡연(曲宴), 궁중 후원에서 베푸는 잔치에서 백관이 곡수(曲水)가에 앉았다가, 위쪽에서 띄운 술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고 잔을 들어 마셨다. 곡수연(曲水宴)은 한 나라에서 봉양하는 것이라 풍악을 써도 가하지만...'"

 

지방 각지에서도 유상곡수연을 즐겼다.

 

황해도(黃海道) 황주목(黃州牧) 이행(李荇)의 글에는 " '가는 비 분분하게 옥루(玉樓)에 뿌리는데...난초를 쥐고 수계(修?)하며 새 즐거움 맞이하는데, 곡수유상(曲水流觴) 좋은 놀이 모였구나...' "

 

 

일본 교토 죠난구(성남궁)에서 곡수연하는 모습.

 

 

조선 문종, 세조, 성종 때의 조선 최고의 문장가요 학자인 서거정(徐居正)은 유상곡수연의 흥겨움을 시문으로 표현했다.

 

서거정(徐居正)의 사가집(四佳集), 3월 3일에

 

삼월 삼짇날 좋은 명절을 만나서/ 三三逢令節

...

곡수연은 도화수 물결에 베풀고/ 曲水桃花浪

깊은 술잔은 죽엽춘을 마셨는데/ 深杯竹葉春

시는 두자미의 절묘함이 가련하고/ 詩憐工部妙

글씨는 왕희지의 진서가 사랑스럽네/ 筆愛右軍眞

 

 

서거정(徐居正)의 사가집, 노찬성(盧贊成)의 효사정(孝思亭)

 

"...시냇물을 끌어다 술잔 띄울 곡수를 만들고, 차례로 벌려 앉으니, 비록 관현악의 성대함은 없으나, 술 한 잔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는 것이 또한 그윽한 정을 펴기에 충분하다. "

 

조선시대 18세기말 박창규가 그린 인두로 그린 그림(烙畵)에 유상곡수도가 있다. 이 그림에서는 포석정 도랑 내부에서 유상곡수연을 벌이고 있다.

 

 

박창규(朴昌珪)는 정조 이후 인물로, 인두로 그린 포석정에서 하는 유상곡수연을 그렸다.

 

 

중국에서 명청대에는 구불구불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는 유배지(流杯池)와 유배정(流杯亭)이란 정자를 짓고 정자 안에서 구불구불한 물 흐르는 도랑인 곡수거를 설치해서 곡수유상을 즐기기도 했다.

 

일본에서 10세기 후반 이후 여러 기록에 나온 곡수연 행사는 9시~11시 사이에 집사들에 의해 고위고관ㆍ왕과 자리를 함께하는 사람(殿上人)?문인의 자리가 정해지고, 그 후에 다음 순서로 곡수연이 진행됐다.

 

① 13시~15시, 고위 고관들 참석 → 15시~17시, 귀빈 도착과 주최자의 아버지 섭정(攝政)이 영접, 그들 자리를 지정 → 귀빈과 주최자가 손을 모아 절하고 착석 → 고위고관 이하가 정원의 자리에 착석

 

②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움 → 귀빈에게 시제목 받침, 주최자와 섭정에게 시제목 보게 함, 귀빈이 하는 사회자의 말씀 → 고위고관ㆍ왕과 자리를 함께하는 사람이 연주하는 관현과 배(船)음악

 

③ 일몰쯤, 귀빈과 주최자, 왕과 자리를 함께하는 잔치 자리로 이동 → 술잔 세 번 올리고 관현악

 

④ 문인 시를 지어 받침, 사회자가 순서를 받침 → 강사 착석 → 시 낭독

 

⑤ 답례품

 

⑥ 한밤중, 고위 고관들 퇴출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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羽觴

 

羽觴(觴讀若「商」,指酒杯),又稱羽杯、耳杯,是中國古代的一種盛酒器具,器具外形?圓、淺腹、平底,兩側有半月形雙耳,有時也有?形足或高足。因其形狀像爵,兩側有耳,就像鳥的雙翼,故名「羽觴」。

 

羽觴出現於戰國時期,一直延續使用至魏晉,名稱逐漸通俗化?「耳杯」,其後逐漸消失。

 

在中國各地的考古發現中多有羽觴出土,材質有漆、銅、金、銀、玉、陶等。漆、銅、金羽觴多是實用的器物,而陶羽觴是一種隨葬用的冥器。漆羽觴出土數量?多,湖南長沙楊家灣六號墓曾一次就出土20件。

 

唐代的?金蔓草????羽?,1970年?西西安何家村出土

 

 

 

??

??,古代漢族民俗,每年于春季上巳日在水邊?行祭禮,洗濯去垢,消除不祥,叫??。

源于古代“除惡之祭”。或濯于水濱(薛君《韓詩章句》),或秉火求福(杜?《?(f?)?(x?)賦》)。

三國 魏 以前多在三月上巳, 魏 以後但在三月三日。然亦有延至秋季者(劉?《魯都賦》)。

 

?:古代爲除災求福而?行的一種儀式,

?:古代春秋兩季在水邊?行的?除不祥的祭祀。

 

 

?? 불계

삼월(三月) 삼일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서 묵은 때를 씻어 마음과 몸을 정결히 하던 일종(一種)의 종교적(宗敎的) 의식(儀式)

 

? 푸닥거리할 불,나라 이름 폐. . 1.푸닥거리하다, 굿하다 2. (부정을)없애다, 제거하다(除去--) 3. 떨다 4. 씻다, 깨끗하게 하다 5. 푸닥거리, 굿 a. 나라 이름 (폐)

? 계제사 계 .1. 계제사(?祭祀: 액운을 떨어 버리기 위하여 물가에서 지내는 제사) 2. 계제사(?祭祀)를 지내다 3. (목욕)재계하다(齋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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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亭集序

蘭亭集序,又名《蘭亭序》、《?帖》、《臨河序》、《蘭亭宴集序》。書法家王羲之所作,有「天下第一行書」之稱,是中國晉代書法成就的代表。

 

加標點後的原文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會於會稽山陰之蘭亭,脩?(?)事也。?賢畢至,少長咸集。此地有崇山峻領(嶺),茂林脩竹;又有?流激湍,映帶左右,引以?流觴曲水,列坐其次。雖無絲竹管弦之盛,一觴一詠,亦足以暢?幽情。

 

是日也,天朗氣?,惠風和暢。仰觀宇宙之大,俯察品類之盛。所以遊目騁懷,足以極視聽之娛,信可樂也。

 

夫人之相與,俯仰一世,或取諸懷抱,悟言一室之內;或因寄所託,放浪形骸之外。

雖趣(取/趨)舍萬殊,靜躁不同,當其欣於所遇,暫得於己,怏然自足,不知老之將至;

及其所之?倦,情隨事遷,感慨係之矣。向之所欣,俯仰之間,已?陳跡,猶不能不以之興懷;

況脩短隨化,終期於盡。古人云:「死生亦大矣。」豈不痛哉!

 

每攬(覽)昔人興感之由,若合一契,未嘗不臨文嗟悼,不能?之於懷。固知一死生?虛誕,齊彭??妄作。後之視今,亦由(猶)今之視昔,悲夫!

故列?時人,錄其所述,雖世殊事異,所以興懷,其致一也。後之攬(覽)者,亦將有感於斯文。

 

註:加標點原文使用現代通用字體。異體字徑改,通假字或避諱字的本字附於括號中。

 

 

영화(永和) 9년 계축년 늦은 봄 초(3월 3일)에 회계산(會稽山) 북쪽 난정(蘭亭) 에 모였는데, 계제사(?祭祀)를 지내기 위해서이다. 많은 현인들과 젊은이 늙은이들이 모두 모였구나. 이 곳은 높은 산과 가파른 고개가 있고,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도다. 또 맑은 시냇물과 격동치는 여울이 좌우를 둘러싸서 비추고 있구나. 굽이치는 물을 끌고 와 잔을 흘려 보낼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차례대로 둘러앉으니, 비록 거문고와 피리는 없지만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 수를 읊으니, 그윽한 감정을 활짝 펴기에 충분하구나.

 

이날 하늘은 깨끗하고 공기는 맑으니 은혜로운 봄바람은 따스하고 부드럽구나. 우주의 넓음을 우러러 살피고 만물의 풍성함을 굽어 살피며, 눈을 돌려 회포를 달리니, 보고 듣는 즐거움이 충분하여 진실로 즐길 만하구나.

 

사람이 태어나 하늘을 우러러 보고 땅을 굽어보며 한 세상을 서로 더불어 살아감에, 혹 어떤 이는 마음에 품은 생각을 서로 만나 한 방에서 기쁘게 이야기하고, 혹 어떤 이는 마음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마음대로 몸 밖에서 노닐게 하는구나.

이와 같이 사람들은 생각이 만 가지로 다르고 고요하고 성급함이 비록 같지 않으나, 저마다 자신이 처한 경우가 기쁘게 느껴지는 때에는 잠시나마 자기 뜻을 얻어 유쾌하게 스스로 만족하여, 늙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그러나 그가 즐기는 일에 권태를 느끼거나 또 자신의 감정이 그 일에 따라 옮겨가서 변하게 되면, 여러 가지 감회가 이어서 나온다. 이전의 즐거웠던 일이 잠깐 사이에 옛 일이 되어 버리니, 그 것 때문에 감회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목숨의 길고 짧음이 자연의 조화를 따라 마침내는 죽음에 다다르는 것이니, 옛 사람이 말하기를 "살고 죽는 것이 또한 큰 일이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옛 사람이 가졌던 감회를 매번 볼 때마다 내 생각과 합치되는 듯하다. 아닌게 아니라 글을 보고 애도하지만, 마음속에서 그것을 깨우칠 수 없었으니, 죽고 사는 일이 같다는 것이 허황하다는 것을 참으로 알 것 같다. (800세까지 오래 산) 팽조 같다는 것도 망령된 일이다. 뒷날 지금을 보는 것이 또한 지금 우리가 옛 사람을 보는 것과 같을 터이니, 슬픈 일이로구나.

그래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순서대로 적고, 그 지은 바를 기록하니,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세태도 변하겠지만 회포를 일으키는 까닭은 그 이치가 하나이다. 후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이 글에 대해 감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現代漢語譯文

 

永和九年,時在癸丑之年,三月初,?了脩?[注 1]在會稽郡山陰縣的蘭亭?辦了聚會。許多有聲望有才氣的人都來了,有年輕的,也有年長的。這裏有高大的山峰和險峻的山嶺,有茂密的樹林和修長的竹子,又有?水急流在亭的左右輝映環繞。把水引到亭中的環形水渠裏來讓酒杯飄流水上,人們在曲水旁邊排列而坐。雖然沒有管弦齊奏的盛況,一邊?酒一邊賦詩,也足以痛快地表達各自幽雅的情懷。

 

這一天,天氣晴朗,和風輕輕吹來。向上看,天空廣大無邊,向下看,地上事物如此繁多,這樣縱展眼力,開闊胸懷,窮盡視和聽的享受,實在快樂?!

 

人們彼此相處,一生?快就度過。有的人喜歡在室內談論志趣抱負;有的人寄託情懷在愛好的事物,不受任何約束,放縱地生活。?管人們的志趣千差萬別,好靜,好動也不相同,只要當他們喜於所接觸的事物時,一時間自得其樂,快樂而滿足,渾然忘了衰老?將到來;待到對喜愛的事物厭倦,心情也隨着改變,感慨油然而生。以前感到歡快的事頃刻之間變?陳跡了,?且不能不因此感慨不已,何況人壽的長短隨着造化而定,最後一切都化?烏有。古人說:「死和生也是件大事?!」?能不悲痛??

 

每當看到前人發生感慨的緣由,與我所感慨的如符契般吻合,總是對着文章嗟嘆感傷,心裏又不明白?什?會如此。雖然一直都知道把生和死同等看待是荒誕的,把長壽和短命同等看待是妄造的,然而以後的人看待今天,不過也就像今天的人看待從前一樣罷了,可悲?!因此我一一記下參加這次聚會的人,抄錄了他們的詩作。?管時代不同情況不同,但人們的情致?是一樣的,後代的讀者也將對這些詩文有所感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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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집(四佳集) > 사가시집 제44권 > 시류(詩類) >

 

3월 3일에

 

삼월 삼짇날 좋은 명절을 만나서 / 三三逢令節

하나하나 예전 사람을 조사해 보니 / 一一劾前人

곡수연은 도화수 물결에 베풀고 / 曲水桃花浪

깊은 술잔은 죽엽춘을 마셨는데 / 深杯竹葉春

시는 공부의 절묘함이 가련하고 / 詩憐工部妙   001]

글씨는 우군의 진서가 사랑스럽네 / 筆愛右軍眞   002]

지난 일은 다 묵은 자취이거니와 / 往事皆陳跡

늙고 병든 몸이 가장 부끄럽구나 / 多慙老病身

 

[주D-001]시(詩)는 …… 가련하고 : 공부(工部)는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가 당 현종(唐玄宗) 천보(天寶) 14년(754) 3월 3일에 곡강(曲江) 가에서 봄놀이하는 귀족들의 화려한 놀이를 묘사하여 여인행(麗人行)을 지었는바, 그 내용은 대략 귀족들의 음란과 사치 등을 풍자한 것이다.

[주D-002]글씨는 …… 사랑스럽네 : 우군(右軍)은 우군 장군(右軍將軍)을 지낸 명필(名筆)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진 목제 영화 9년 3월 3일, 즉 상사일(上巳日)에 왕희지를 비롯하여 사안(謝安), 손작(孫綽) 등 당대의 명사 40여 인이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 모여서 계사(?事)를 행하고, 이어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면서 성대한 풍류 놀이를 했다. 이때 난정기(蘭亭記)는 왕희지가 직접 짓고 쓰고 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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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집(四佳集) > 四佳詩集卷之二十二○第十五 > 詩類

 

盧贊成孝思亭。次河東鄭。

 

孝思亭在露梁頭。風樹▣▣▣▣休。▣▣▣▣▣010_473b露感。鄕成桑梓歲時流。

鑑湖▣▣▣▣▣。▣▣▣家地自幽。退食歸來多暇日。

倚欄▣▣▣▣浮。靑?別墅碧江頭。雅興登臨未罷休。

綠野▣▣▣事業。東山不獨擅風流。某丘某樹曾追感。

一詠一觴足暢幽。出郭更知塵事少。飛來白鳥對沈浮。

妙手須煩顧虎頭。此間形勝?難休。山曾北向鰲頭聳。水自分西燕尾流。

赤壁風烟長護惜。輞川雲物更淸幽。濠梁赴召今猶記。復擬蘭舟月下浮

 

 

사가집(四佳集) > 사가시집 제22권 > 시류(詩類) >

시류(詩類)

 

노 찬성(盧贊成)의 효사정(孝思亭)에 대하여 하동 정(河東鄭)의 시운에 차하다

 

효사정이 노량나루의 머리에 있으니 / 孝思亭在露梁頭

풍수의 정회가 어느 날에나 그칠는고 / 風樹情懷幾日休  001]

송추 어우러진 무덤엔 상로를 느끼게 되고 / 壟合松楸霜露感  002]

상재 무성한 고향은 오랜 세월이 흘렀도다 / 鄕成桑梓歲時流  003]

감호의 주인이 되어 사람은 영원히 있고 / 鑑湖作主人長在   004]

반곡을 대대로 전해 땅은 절로 그윽하네 / 盤谷傳家地自幽   005]

퇴청하여 밥 먹고 한가로운 날도 많아서 / 退食歸來多暇日

난간 기대면 산수가 파랗게 둘러 있으리 / 倚欄山水碧浮浮

 

푸른 강 머리에 대대로 전해 온 별장 있으니 / 靑氈別墅碧江頭

고상한 흥취로 오르지 않을 수 없고말고 / 雅興登臨未罷休

녹야당의 옛 사업은 그대로 이었거니와 / 綠野□□□事業   006]

동산만 유독 풍류를 독차지하진 못하리 / 東山不獨擅風流  007]

아무 언덕 아무 나무로 조상을 추모하고 / 某丘某樹曾追感  008]

한 잔에 한 수 읊어 그윽한 정 펴기도 하네 / 一詠一觴足暢幽  009]

성곽 나가면 세속 일 적음을 다시 알리라 / 出郭更知塵事少  010]

떴다 잠겼다 하는 갈매기를 마주할 테니 / 飛來白鳥對沈浮

 

고 호두의 뛰어난 솜씨를 꼭 빌려야겠네 / 妙手須煩顧虎頭  011]

이곳의 좋은 경치를 안 그릴 수 없다마다 / 此間形勝?難休

산은 북쪽을 향해 자라 머리처럼 솟아 있고 / 山曾北向鼇頭聳

물은 제비 꼬리처럼 서쪽으로 갈려 흐르네 / 水自分西燕尾流

적벽의 풍광은 길이 아껴 보호하려니와 / 赤壁風煙長護惜   012]

망천의 경치는 다시 맑고도 그윽하구려 / 輞川雲物更淸幽   013]

호량의 부름 받고 간 걸 지금도 기억하거니 / 濠梁赴召今猶記  014]

다시 목란 배를 달빛 아래 띄우고 싶어라 / 復擬蘭舟月下浮

 

[주C-001]노 찬성(盧贊成)의 …… 차하다 : 이 시는 대본에 결자가 많은데 첫 수가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0 금천현(衿川縣) 조에 실려 있어 이를 근거로 보충번역하였다.

[주D-001]풍수(風樹)의 정회(情懷) : 이미 돌아가신 부모에게 효양(孝養)을 다하지 못한 것을 한탄한 말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는 고요하려 하나 바람이 멎지를 않고, 자식은 잘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송추(松楸) …… 되고 : 송추는 옛날 묘지에 심었던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합칭한 말이다.

상로(霜露)를 느낀다는 것은 《예기》 제의(祭義)에 “군자는 천도에 맞추어 봄에는 체제를 지내고 가을에는 상제를 지낸다.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거든 군자가 그것을 밟아보고 반드시 슬픈 마음이 생기나니 이는 날이 추워져서 그런 것이 아니고, 또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땅이 축축해지거든 군자가 그것을 밟아보고 반드시 섬뜩하게 두려운 마음이 생겨 마치 죽은 부모를 곧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

〔君子合諸天道 春?秋嘗 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之心 如將見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상재(桑梓) …… 흘렀도다 : 상재는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합칭한 말인데, 《시경》 소아(小雅) 소변(小弁)에 “부모가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하거든, 우러러볼 건 의당 아버지이며 의지할 건 의당 어머니임에랴.〔維桑與梓 必恭敬止 靡瞻匪父 靡依匪母〕” 한 데서 온 말로, 조상이 살았던 고향을 가리킨다.

[주D-004]감호(鑑湖)의 …… 있고 : 감호는 하지장(賀知章)이 하사받은 경호(鏡湖)를 말한다. 당 현종(唐玄宗) 때 일찍이 비서감(秘書監)을 지낸 시인 하지장(賀知章)이 만년에 도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적에 현종이 경호의 섬계(剡溪) 일곡(一曲)을 하사했던 데서 온 말이다. 《山堂肆考》 여기서는 한강(漢江)을 감호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5]반곡(盤谷)을 …… 그윽하네 : 반곡은 태항산(太行山) 남쪽에 있는 지명으로, 골짜기가 깊고 산세가 험준해서 은자가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한다. 당(唐)나라 때 문신 이원(李愿)이 일찍이 벼슬을 사직하고 물러가 이곳에 은거할 적에 한유(韓愈)가 그를 송별하는 뜻으로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를 지어 그곳의 경관과 부귀공명의 무상함 등을 자세히 설파하여 극구 칭찬했었다. 여기서는 단지 은거지의 뜻으로 쓰였다.

[주D-006]녹야당(綠野堂)의 …… 이었거니와 : 녹야당은 당대(唐代)의 명상(名相) 배도(裴度)의 당명(堂名)이다. 배도가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낙양(洛陽)에 은퇴하여 살면서 오교(午橋)에 별장을 지어 녹야당이라 이름하고 여생을 보냈다. 《舊唐書 卷170 裴度傳》

[주D-007]동산(東山)만 …… 못하리 : 동산(東山)은 동진(東晉)의 명신(名臣)으로 일찍이 동산(東山)에 은거했던 사안(謝安)을 가리킨다. 그가 40여 세까지 이곳에 은거했던바, 특히 당대에 풍류와 아량이 높기로 유명했고, 매양 자기 내외 자질들과 기녀들을 거느리고 동산의 별장에서 주연을 푸짐하게 베풀고 풍류를 한껏 즐기기도 했었다. 《晉書 卷79 謝安傳》

[주D-008]아무 …… 추모하고 : 한유(韓愈)의 송양거원소윤서(送楊巨源少尹序)에 “지금 그대가 고향에 돌아가서는 나무를 가리켜 말하기를, ‘아무 나무는 우리 선인께서 심은 것이요, 아무 물, 아무 언덕은 내가 어렸을 때에 낚시질하며 놀던 곳이다.〔今之歸 指其樹曰 某樹 吾先人之所種也 某水某丘 吾童子時所釣遊也〕’고 할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9]한 …… 하네 : 왕희지(王羲之)가 지은 난정기(蘭亭記)의 대략에 “영화 9년 계축 늦은 봄 초승에 회계 산음의 난정에 모였으니, 계사를 행하기 위해서이다. 뭇 현재들이 다 오고, 젊은이와 나이 많은 이가 다 모였다. 이곳에는 높은 산과 험준한 봉우리와 무성한 숲과 긴 대나무가 있고, 또 맑은 시냇물과 거센 여울이 좌우에 서로 비쳐 띠처럼 둘러 있는지라, 시냇물을 끌어다 술잔 띄울 곡수를 만들고, 차례로 벌려 앉으니, 비록 관현악의 성대함은 없으나, 술 한 잔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는 것이 또한 그윽한 정을 펴기에 충분하다.〔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會于會稽山陰之蘭亭 修?事也 ?賢畢至 少長咸集 此地有崇山峻嶺 茂林脩竹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列坐其次 雖無絲竹管絃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 하였다.

[주D-010]성곽 …… 알리라 : 두보의 복거(卜居) 시에 “성을 나서면 세속 일 적음을 잘 알거니와 다시 맑은 강 있어 나그네 시름 녹이네.〔已知出郭少塵事 更有澄江銷客愁〕”라고 한 구절에서 온 말이다.

[주D-011]고 호두(顧虎頭) : 호두는 동진(東晉) 시대의 문인 화가로 특히 인물화에 뛰어났던 고개지(顧愷之)의 호이다.

[주D-012]적벽(赤壁)의 …… 보호하려니와 : 적벽의 풍광(風光)이란 이곳 한강 주변의 풍광을 소식(蘇軾)이 놀았던 적벽강(赤壁江)에 빗대서 한 말이다.

[주D-013]망천(輞川)의 …… 그윽하구려 : 망천은 당(唐)나라 때 시인으로 산수화에도 뛰어났던 왕유(王維)의 별장이 있던 곳인데, 왕유가 일찍이 망천 20개의 승경(勝景)을 배경으로 망천도(輞川圖)를 그렸던 일이 있다. 여기서는 별장 주위 산수의 뛰어난 경치를 왕유의 망천에 비유한 것이다.

[주D-014]호량(濠梁)의 …… 걸 : 호량은 호수(濠水) 위의 다리를 말한다. 장자(莊子)와 그의 친구 혜자(惠子)가 일찍이 호수의 다리 위에서 노닐 때, 장자가 말하기를, “피라미가 나와서 조용히 노니,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일세.〔?魚出游從容 是魚樂也〕” 하자, 혜자가 말하기를,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떻게 알겠는가.〔子非魚 安知魚之樂也〕” 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단지 친구의 초청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莊子 秋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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