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장,
기석은 지우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 자신이 있는 곳을 알린다.
지우는 기석을 보고 그 자리로 간다.
“일찍 나오셨네요.”
“그럼요!
형수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요.“
“동서는 어때요?”
지우는 기석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순임에 대해서 묻는다.
“아무런 일도 없습니다.
그 사람 술을 마시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종업원이 와서 메뉴판을 내 놓으며 주문을 한다.
“뭘 드시겠어요?
이 집 음식이 맛이 좋습니다.
비싸고 맛있는 것으로 주문을 하세요.“
“서방님!
오늘은 대충 아무것이나 간단한 것으로 주문을 했으면 합니다.“
“왜요?
형수님이 이렇게 저를 만나러 나오시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러시지 말고 맛있는 것으로 주문을 하세요.“
그러나 지우는 간단한 스파게티로 주문을 한다.
“오늘은 음식을 먹어도 별 맛도 모를 겁니다.
다음에 동서와 함께 나올 테니 그때 맛있는 것으로 사줘요.“
기석은 같은 것으로 주문을 한다.
“서방님!
난 지금까지 서방님께서 참으로 인정도 많으시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어요.
헌데, 어제 동서를 보니까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서방님하고는 너무나 달라요.“
“.................”
“이유가 뭔지 묻고 싶은데 대답해 주실 수 있으세요?”
“..................”
기석은 말없이 지우를 응시한다.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형수님!
우선 식사를 하고 나서 이야기 하죠.“
“네!”
지우 또한 선선히 대답을 하고 음식을 먹는다.
그들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디저트는 뭐로 할까요?”
기석이 지우의 의향을 묻는다.
“커피 마실래요.”
“커피 두잔!”
다시 두 잔의 커피가 나올 때 까지 아무런 말도 없다.
“서방님!
서방님은 동서가 왜 그러는지 알고 계지죠?“
“네!
모든 것이 다 제 잘못입니다.
그 사람은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누구 잘잘못을 알고 싶어서 이렇게 나온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도 동서에게 아무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서방님께서 동서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래요!
허지만 나도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것을 어쩝니까?
그 사람과 결혼한 것부터가 내 잘못이었습니다.“
기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가정이란 애틋한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동서를 사랑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사랑해 보려고 아니, 사랑하지는 못한다하더라도 그 사람을 좋아해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었지요.
그러나 그것이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결혼을 결심한 것도 서방님이 아니었던가요?”
“그렇지요!
그 사람 정도면 무난히 평생을 살아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만 같아서였지요.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난 직후였어요.
난 평생을 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요?
결혼이 어디 장난으로 심심해서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상대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도 있지 않나요?“
“그래요!
책임과 의무만으로 살기에는 너무 힘이 듭니다.
또한 그 사람이 감당해야할 희생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고 내 곁에서 떠나 줄 것을 말을 했지요.
그때부터 그 사람이 상처를 받은 모양입니다.“
“뭐라고요?
그럼 이혼을 요구했다는 말인가요?“
“요구했다기보다 언제든지 내 곁을 떠나라고 했지요.”
“그 말이 그 말 아니에요?
서방님!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그럼 용희는 어쩌시려고요?“
“........사실 용희도 제가 원하던 아이가 아니었지요.
허나, 지금은 용희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달라져 있지만.......“
“동서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만 같은데요?”
“...........”
“혹시 사랑에 실패를 해서 아직도 그 여인을 잊지 못하고 계시는 겁니까?”
기석은 지우를 망연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 여인은 자신의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아마 꿈속에서 조차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사랑에 실패를 했다기보다 그저 저 혼자서 짝사랑했었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그 여인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왜 서방님이 짝사랑을 해야 했어요?
차라리 그 여인에게 서방님의 마음을 털어 놓지 그랬어요?“
“그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지요.”
“그럼 유부녀?”
“비슷했어요.
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
지우는 시동생인 기석을 한참을 응시한다.
언제나 밝고 명랑한 성품이었다.
그런 시동생의 마음에 그토록 아픈 상처를 안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어제 집사람의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내가 과연 그렇게 심한 고통을 주어도 되는 것인가 하고........“
“서방님!
동서가 얼마나 서방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죠?
물론 서방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서에게 그렇게 커다란 상처를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요즘 세상에 동서 같은 사람이 많은 줄 아세요?
말없이 남편의 뜻을 따르고 시어머님을 지극하게 모시고 사는 여자들이 그리 흔한 세상이 아닙니다.
큰 형수님이나 제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알뜰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 심성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용희 엄마가 얼마나 좋은 여자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해야 한다고 마음대로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요.
저도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집 사람을 사랑하고 용희에게도 자상하고 인자한 아빠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집 사람을 안아주고 따뜻한 말로 그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요.
허나, 그것은 그저 마음뿐입니다.“
“서방님!
만일 동서가 서방님의 말을 그대로 따라 이혼을 요구하게 되면 어떻게 하실래요?
이혼을 하고 나서의 집안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어요?
작은 형님과 제 마음이 어떨 것 같아요?“
“.................”
“작은 형님이 서방님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 잘 아시죠?
저 또한 서방님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도 잘 아시죠?
만일 서방님 가정이 파탄이 된다면 우리 집안 모두 심한 고통에 빠져 들 겁니다.
또 어머님의 심정은 어떠시겠어요?
누구보다 동서를 좋아하시고 사랑하시는 어머님은 큰 충격에 빠져드실 겁니다.
당신 아들들보다 지금은 셋째 며느리를 얼마나 믿으시고 좋아하시는지 잘 아시잖아요?“
“..............”
지우는 기석의 마음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물론 서방님의 마음에 다른 여인을 담고 동서를 사랑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요.
허나 이제 지난 과거 때문에 자신 가족을 고통 속으로 넣어가는 서방님을 이해 할 수가 없어요.
과거는 과거 속으로 묻으세요.
그리고 가정을 지키셔야만 합니다.
만일 가정을 지키지 못하신다면 저도 더 이상 서방님을 볼 수가 없을 것만 같아요.“
“형수님!
노력을 해 볼게요.“
“네!
그리고 이렇게 주제넘게 서방님 일에 참견하는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사실 우리 용원이가 그렇게 어이없이 떠나고 난 뒤에 난 그 누구도 내 고통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자식을 잃은 어미의 심정이 어떠한지 말로만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심한 고통일 줄이야 감히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극심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남편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서방님도 잘 아시다시피 저도 형님을 사랑해서 결혼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사랑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에 그리고 서방님 같은 시동생들이 있었기에 결혼을 했던 것입니다.
제 결혼에 서방님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허나 살아가면서 비로소 남편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도 서로의 믿음과 신뢰였어요.
여자는 남편 하나만을 바라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여자의 삶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형님도 용원이를 잃고 얼마나 커다란 고통을 겪었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의 고통보다도 아내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믿을 수 있게 넓은 어깨를 내 주어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해 준 남편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순간 나도 내 남편을 위해서 더는 쓰러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편의 사랑!
그것이 여자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고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
기석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아내 순임의 고통을 모르는 기석은 아니었다.
또한 순임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기석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자신에게 얼마나 커다란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수님!
다시 한 번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형수님이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는데 내 생각만을 고집할 수가 없군요.“
“서방님!
고맙습니다.
그래도 제 말이라면 무시하지 않으시고 들어주시는 서방님의 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서방님이 행복하셔야만 저희도 마음 놓고 다시 행복을 찾을 수가 있을 것만 같아요.“
“고맙습니다.
형수님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볍습니다.
형수님이 행복하시다면 무엇이든 하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형수님을 위해서라도 다시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만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기왕에 나오셨으니 저와 쇼핑이라도 하실까요?”
“웬 쇼핑을요?”
“사실 지난번에 형수님 생신에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요.
형수님 생신을 축하해 드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그냥 지나쳐 버리기는 했지만 그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서방님!
제 생각은 이제 그만 하세요.
제 생각을 해 주시기보다는 동서 생각을 먼저 해 주세요.
기왕이면 오늘 동서 마음에 드는 선물을 사 들고 들어가셔서 동서의 마음을 풀어주시는 것이 더 좋을 것만 같네요.“
지우는 기석을 따라 백화점으로 향한다.
마침 근처에 대형 백화점이 있었던 것이다.
“우선 형수님 선물을 사드리고 난 다음에 집 사람 선물을 사도록 해요.”
“아니에요!
동서에게 변변한 핸드백이 없어 보이는데 이참에 고급 핸드백을 사다 주세요.
물론 외출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이긴 해도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도 여자는 제대로 된 핸드백이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네!
그럼 오늘 집사람하고 함께 형수님 핸드백도 사 드릴게요.“
“참, 서방님도!
그럼 그렇게 하시죠.“
지우는 핸드백 코너에서 핸드백을 고른다.
순임의 성품에 맞추어 야하지도 않고 튀지도 않은 단아하면서도 깔끔한 디자인의 핸드백을 고른다.
그리고 자신의 것도 색상만을 달리했을 뿐인 같은 디자인으로 고른다.
“어때요?
서방님 마음에 드세요?“
기석은 지우가 고른 핸드백을 유심히 살펴본다.
“기왕이면 형수님 것은 그것보다 저쪽에 있는 것이 더 좋을 것만 같아요.”
기석은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핸드백을 가져온다.
“보세요.
이것이 더 좋아 보이지 않아요?“
지우는 기석이 가지고 온 핸드백을 들어본다.
“그러네요.
역시 서방님은 보시는 눈이 남다르시다니까요.
그럼 동서 것도 이것으로 같이 할까요?“
“아니요!
집 사람에게는 그것이 더 좋아 보이네요.“
“알았어요!
그럼 이것을 결정을 해요.“
그리고 그들이 백화점을 나섰을 때는 밤이 꽤나 이슥한 시간이었다.
“형님이 돌아오셨을 겁니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서방님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기석은 지우를 대문 앞에 내려놓고 그대로 차를 출발시킨다.
지우의 말을 듣고 나서 기석은 아내를 사랑해 주기로 마음을 다진다.
물론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지우를 위해서라도 노력을 해 보기로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한결 편안한 마음이 되어간다.
자신으로 인해서 지우가 고통을 받는 것을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제 더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여인이다.
지우가 행복해 질수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감당하리라 자신에게 약속을 한다.
아직 아내는 잠들어 있지 않을 것이다.
침대에 누워 있어도 자신이 돌아오기까지 결코 잠속에 빠져 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기석이다.
기석이 집으로 들어간 시간은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순임은 마당에 나와 있었다.
소리 없이 대문을 밀도 들어서다 마당에 나와 있는 순임을 보고 기석은 놀란다.
“어?
당신이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나 순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간다.
기석은 순임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 말없이 선물을 순임에게 준다.
“뭐에요?”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오.”
“............”
순임은 의아하다는 듯이 선물 꾸러미를 풀어본다.
“내가 언제 이런 선물을 해 달라고 했던가요?”
순임은 눈물을 흘린다.
기석은 말없이 순임을 끌어안는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감사
두사람 잘되길.....
감사
즐독입니다,,,,
잘봅니다
즐감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