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사회복지사란 그저 마음이 착하고 봉사정신이 뛰어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잠시 교사로 일하면서 복지사란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착하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복지사를 할 수 있을까? 늘 내 속에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직클럽하우스에서 그냥 실습만 했다면 항상 내 속에 의문으로 남았을 그 질문의 해답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칼 로저스의 ‘사람중심상담’ 이 책을 읽으면서 회원들과 관계를 갖다보니 점점 그 해답을 찾기 위한 퍼즐을 하나씩 찾아가는 느낌이다.
칼 로저스의 비지시적, 비심판적, 자율성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나만 아는 과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지시를 하지 않고, 평가를 하지 않고 어떻게 자율적으로 행동이 가능하단 말인가? 자율적인 행동은 지시와 평가에 의해 학습이 되어 습관처럼 몸에 베어야 자율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부모가 자녀의 재능을 찾아내고 평가해주고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양몰이 하듯이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며 몰고 가는 것이 바른 부모의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칼 로저스는 이런 나의 생각을 반박이라도 하듯이 ‘사람은 자기자신을 이해하고 자기개념, 태도, 자기 주도적인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대한 자원을 자기 자신 안에 갖고 있으며 어떤 토양이 제공되기만 하면 자원을 일깨울 수 있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토양’에 해당하는 것이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며 들어주고 이해한 것을 잘 얘기해주는 것이며 공감적 경청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 말은 비록 부모와 자녀관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내가 관계하는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이 되는 말이다. 특히나 아동과 청소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나의 편견을 깨도록 도와준 한마디이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결정해주고 그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은 비스테이크의 7대 원칙 중 ‘자기결정’권을 빼앗는 행위임을 깨달았다. 내가 늘 강조하는 자기가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답답해서 내가 결정해주면서 마치 내가 열린 부모인양 자랑하듯이 살아온게 정말 부끄럽다. 부모나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결정자의 역할이 아님을 깨닫는다. 인간은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 한다. 그리하여 자녀에게든 나와 관계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똑같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내 경험에 비추어 마치 그것이 정답인양 조언을 해 왔다. 그들은 나처럼 실패하지 않고 바른 길로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간난아이들이 수없이 반복되는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고, 걸음마를 배우며 수없이 넘어지는 과정으로 요령도 익히고 넘어졌을 때 다치지 않는 방법을 익혀 드디어 첫발을 내딛듯이 사람은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칼 로저스에 의하면 ‘내가 모험을 즐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공을 하건 실패를 하건 무언가 배울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모험을 해 보면서 그것을 발견했다. 배우는 것, 특히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나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 왔다. 그러한 배움은 나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준다’라고 했다..이 글을 읽는 순간,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것 들을 내가 차단하지는 않았나 반성해 본다. 한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수용해 주는 것이 배제된 상태로는 상호간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며 그 생각이 밑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그저 착하고 봉사정신이 뛰어난 것만으로 사회복지사를 하기엔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마치 지반이 약한 땅 위에 집을 짓는 것처럼 인간존중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다져지지 않으면 언젠가는 회의를 느끼고 지치게 될 것이다.
제5장에서 ‘미래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현실이 있다는 가정하에 우리의 삶과 교육이 이루어져야만 하며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그 가설을 수용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기술한다. 사람들의 생김새, 환경, 성격, 생각이 모두 다르다. 우선, 그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을 하고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관계 속에 많은 갈등이 있고 가족 속에서도 많은 갈등을 겪는 것 같다. 생김새가 어떻든 모든 사람들은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내가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무엇인가 깨닫고 살아가듯이 그들도 동일한 시간을 살지만 각자 다른 것을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신이 나와 같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배려합니다”가 아니라 “당신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깁니다”라고 말한 칼 로저스의 말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한 말이다.
사춘기인 나의 딸에게 늘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어찌 이렇게 다르냐? 정말 못살겠다”였다. 나에게는 다름을 인정하는 수용, 배려, 존중이 부족했기에 존중받고 싶어하는 사춘기 딸에게 많은 아픈 말들을 내놓았던 것에 딸에게 너무 미안하다. 사회복지사로써 현장에서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한지 깨닫지 못한채 클라이언트에게 상처를 주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람은 수용받고 소중히 여김을 받을수록 자기 자신을 돌보는 태도를 더욱더 발전시키게 된다고 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건 그렇지 않건간에 인간은 누구나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된 사람과 든 사람’!
사회복지사로서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든사람’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가치있는 존재로 보는 ‘된사람’이 균형적으로 이루어질 때, 참다운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사회복지사로 일선에서 일하게 될 나에게, 또한 두아이의 엄마로 살아갈 나에게 칼 로저스의 책은 사람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주는 지침서가 되어 주는 책인 것 같다.
첫댓글 '된 사람'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으신 것 같습니다. 하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