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여인의 "실화(實話) 한 토막"
내가 종로구 필운동 사직공원 옆에 살 때 만난 장여사는 한국일보
여기자였다.
학식도 외모도 실력도 대단한 그녀는 남편이 총 맞아 죽고 아들 하나
데리고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 왔다고 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역시 아들 하나 데리고 밤중에 산 넘고 걷고 걸어서
두 여인은 남쪽으로 온 것이다.
평양여고를 졸업한 두 여자의 일생을 지켜보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본다.
장여사는 한국일보의 유명한 기자로 활동하면서 아들을 경기중ㆍ
경기고ㆍ서울법대 수석 졸업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나사 미항공우주
국에 취직 후 계속 공부하여 하바드대 교수 등 공부벌레로 성공했다.
장여사와 만남 후 장여사는 자주 아들 자랑과 편지를 보여주었다.
지금부터 35년 전 이야기다.
서울대학 시절 아들 뒷바라지 하는 재미로 살고 아들자랑 하는 재미
로 사는데 미국으로 건너간 후 편지만 올 뿐 가끔 국제전화 얼굴은
도통 볼 수가 없었다.
너무 바쁘니 오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의 글이 편지에 적혀 있었고.,
장여사도 이 곳 신문사 일이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휴가 때 미국에 아들 보고싶어 미국에 갔는데 아들은 만나 주지지도
않았다.
여기 저기 강의 강연 스케쥴 때문에 엄마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것은 성공한 아들 아니냐며 아들은 분명 엄마
가 원하는 성공한 아들이 되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시라는 거였다.
울면서 비행기타고 한국에 왔다.
생일날이면 어김없이 20불 카네이션을 주변 꽃집에서 사서 달고
다니라고 보내온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결혼식 했노라고 사진과 편지를 보내왔다.
워낙 바빠서 그냥 둘이 동거를 하기 뭣해서 간단히 사진만 찍는 결혼
식을 했노라고 이해해 달라고 했다.
노랑머리 파란 눈 며느리 사진으로 보고 내 앞에서 엉엉 운다.
성공한 내 아들하며 슬피 운다.
엄마 재산은 전혀 필요 없으니 사회단체에 기부 부탁한다고 써 있었
다. 한국에 올 시간이 전혀 없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미국 간 날 마지막 얼굴 본 아들 10년이 흐르고 또 10년
이 흐르고......,
장여사 친구는 평양에서 오자마자 남대문시장 순대국집 주방에 취직
했다.
아들 때문에 취직이 불가 했으나 순대국집 주인은 받아 주었다.
해서 열심히 일했고 아들은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식당 근처에서 남대문시장에서 뛰어 놀고 6년 후 순대국집 주인이 죽
고나서 그동안 모은 돈과 사채 일수 돈 빌려 순대국집을 인수했다.
24시간 영업 남대문 시장 순대국 집, 골목 나란히 여러 집들 중 한곳
에서 열심히 장사를 했다
아들이 도와주고 효자 아들은 비록 국민학교도 안 가 보았지만 아침
마다 엄마를 업고 재롱을 부린다.
18살에 시골에서 올라와 식당에서 일하는 2살 많은 여 종업원과 결혼
식을 올렸다.
아들 셋 딸 하나 웃음꽃으로 시작하는 그 집은 돈 버는 걸로 20년 전
부터 강남에 땅을 사두었다
무식하니까 여기 저기 미사리, 오금동, 천호동에 조금씩 땅을 사두었
다. 그걸 모두 팔아 테헤란로에 34층 건물을 사고 삼성동에도 건물을
샀다.
두 여인은 가끔 만난다.
근데 이제 장여사도 연락이 두절 되었다.
서울대 하바드대 교수와 국민학교가 뭔가요?
하바드대 교수와 순대국집 주인 아들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하고 잘 사는
걸까요?
※◐♡ 생각의 차이, 삶의 가치 기준 차이에 따라 다르지만
반드시 어느 한 쪽만이 성공이고 행복이라 말 할 수 없
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