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장 3절 5절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신 예수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사울 이였던 바울을 왜 사도로 세웠습니까?
하나님을 모른 채 죄악 속에 살다가 멸망을 받게 될 택함을 입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마디로 구원을 받게 하는 길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알게 하기 위해서 구약은 죄를 벌하지 않고 용서해줄 메시아가 오실 것이다 하는 것을 예언을 했고 예수님은 그 예언대로 오셨는데 무엇 때문에 예언했고 무엇 때문에 오셨느냐?
우리의 구원 때문에 오셔서 하나님의뜻을 다 이루셨다고 하신 말씀이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자유롭게 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안 짖고 살 수 없는 존재로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6:40절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전12:3절을 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조차도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뜻 아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에 의해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는 구원을 받을 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정말 구원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에게 구원에 대한 감사가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제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받은
감사와 은혜와 평강은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관심은 오직 말씀에 있어야 하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가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됨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우리는 말씀이신 예수님으로만 충분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교인 수나 재정이 교회의 관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어떤 신비한 기적이나 능력 행함이나
예언또한 교회가 목표하는 바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교인 수나 풍부한 재정이나 어떤 은사나 외적인 것에 목표를 두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가 어떤 은혜 아래 있고
어떤 평강을 누리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더 많은 것으로 채움 받기 위해 교인들에게 열심과 봉사 헌신을 강요하는 것으로 끝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은혜와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와 평강을 원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찾아 볼 수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 현재도 온갖 자연 재앙과 전쟁으로 가족간 이웃과의 싸움이 그치질 않고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은커녕 이 전쟁과 싸움이 그치질 않고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야고보서 4:1절을 봅니다.
나의 정욕으로 나오는 죄로 말미암아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화목할 수 없게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은혜와 평강으로 인한 화목이 없고 평안이 없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찰해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하니까 여러분 마음에 은혜와 평강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관대하게 대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합니다.
오늘도 3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평강을 누리게 되었다고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봅니다.
예수님 왜 대속의 십자가에 자기 몸을 죽는데 내어주셨습니까?
우리를 “악한 세대로부터 건지시려고”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악한 세대는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빠져나오기란 불가능한 상태이고
무서운 위험에 빠져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악한 세대로서 반드시 벗어나지 못하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려는 것이
우리 아버지의 뜻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목적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예언되었고
예수님은 하나님아버지의 그 작정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이란 나의 힘과 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내가 노력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뭔가를 해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타락한 이후에 아무리 착하고 선하게 살아도 어떠한 선도 구원을 받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말씀의 핵심입니다.
롬3:10-12절을 봅니다.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하나님을 스스로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정말 인간은 그 어떠한 것을 가지고도 깨달아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히던 다른 복음은 선행을 해야만 한다고 했고
또 때에 따라서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말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참된 복음은 단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까
이렇게 너무나 쉬운 방법으로 인간이 과연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그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도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참된 복음의 진리를 아름다운말로 포장하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우리는 정말 너무나 복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내가 행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구원에 믿음으로 동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악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악한 세대란 어쩌면 지금이 갈라디아교회시대 때보다 더욱 악한 세대인지도 모릅니다.
로마서 1:21∼23절을 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악하지 않고 선합니까?
더 악하면 악했지 갈라디아교회보다 나은 것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한 세대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악한 세대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아니하는 세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않기에 영원한 멸망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버려두면 우리는 그저 악한 세대 속에서 그들과 더불어 그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영원한 생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죽게 되고 그리고는 영원한 형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아 알 때에는
이미 늦은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구원하지 않으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멸망을 받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고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악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생활은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구원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5절에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구원을 받은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감사하는 삶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감사할 때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구속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사람은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잘못된 것들이 있습니까?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현실들이 있습니까?
우리의 잘못이요 우리의 실수며 자유를 남용한 우리의 교만에 따른 죄의 결과입니다.
어느 부잣집 뜰에 난초가 자라고 있었는데 난초 사이에 두꺼비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주인이 나와서 난초에 물을 주면서 난초를 애지중지 하는 표현을 했습니다.
너는 왜 이렇게 아름다우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두꺼비는 너무 부러운 나머지 난초를 향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목이 말라도 누가 물 한 모금 주는 이가 없고 뱀은 날마다 나를 먹으려고 쫓아다니고
어디를 가나 천대만 받는 천덕꾸러기인데 너는 무슨 팔자가 좋아서 주인 이 그렇게 곱게
길러 주고 사랑해 주느냐? 너는 참 행복하겠다.
그 말을 들은 난초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나는 발이 없으니 목이 타도 주인이 물을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소가 와서 나를 뜯어먹어도 도망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데 너는 발이 있잖니? 그래서 너는 자유스럽게 목이 마르면 가서 물도 마시고 도망가고 싶을 때는 도망도 갈 수 있지 않니?그 말을 들은 두꺼비가 비로소 자기는 난초가 갖고 있지 아니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까?
자유를 주시는 예수를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요8:35-36절을 봅니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사망의 권세를 발로 짓밟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소유하신 만 왕의 왕을 믿으면 자유합니다.
고후3:17절을 봅니다.
이번 5월에도 일본 황금연휴로 10일간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삶의 자유를 찾아 어딘가로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참 자유는 여기저기 찾아다닌다고 얻게 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저주와 멸망에서 건짐을 받을 때 참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지 않고 행하는 신앙생활은 힘들고 짜증나고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은혜 아래 있지 않은 사람은 설교가 길면 길다고 불평, 짧으면 짧다고 투덜거립니다.
은혜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봉사란 정말 귀찮고 불평스럽고 피곤하며 재미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사람들에게는 봉사가 얼마나 신나고 즐겁고 보람 있는 일로
자기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속에 살아야 참 자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얻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악한 세대에서 저와 여러분을 건지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의 환경이 어떠한 상황이든 그 삶에서 누릴 줄 아는 나의 자유 나의 구원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짜증과 불평과 원망이 많아졌습니까?
버림받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나 악한 세대에서 여러분을 건지신 구원하신 예수님을
조용히 묵상하시고 이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받은 구원의 큰 감격으로 세상의 어려움들과 짜증과 불평과 원망 등을
모두 이겨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