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17호, 제18호, 제19호-부석사 무량수전 외 by 알쓸수집가
1. 부석사의 가치
위치 : 경북 영주시 부석사로 345
부석사 무량수전. 아마 한 번쯤은 들어봤을 문화재일 것입니다.
무량수전을 포함하여 다양한 문화재가 남아 있는 부석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문무왕 16년인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죠.
부석사라는 이름에는 유래가 있습니다.
의상대사가 상선을 타고 등주 해안에 도착한 어느 날, 신도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죠.
그 집의 딸로 선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의상대사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서 용이 되어 의상의 뱃길 여정을 지켰죠.
그러던 어느 날, 의상이 봉황산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는 도적떼가 우글거렸습니다.
용이 된 선묘는 커다란 바위로 변해서 도둑떼를 몰아냈고, 의상이 절을 창건할 수 있게 되었죠.
이 바위는 바로 부석사 뒤뜰에 지금도 있는 큰 바위입니다.
실제로 공중에 살짝 떠있다고 하는 이 바위에서 절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부석사라는 명칭은 뜰 부(浮)에 돌 석(石)입니다.
이렇듯 창건부터가 전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부석사는 고려시대에도 크게 증축되는 등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고려시대 때 세워진 건물이 바로 부석사 무량수전입니다.
부석사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국보급 문화재들이 존재해 왔기에 당연히 그 중요성과 인지도는
이루 말할 수가 없겠죠.
2. 국보 제17호,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 제17~19호는 모두 부석사의 문화재에 부여된 번호입니다.
그중 첫 번째인 무량수전 앞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의 8각석등 형태의 기본을 잘 보여주는
석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대석-간주-상대석-화사석-옥개석으로 덮은 팔각형의 석등은
당시 신라시대의 기본적인 석등 양식이죠.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이러한 모습의 석등 중, 무량수전 앞 석등은 비례면에서 아주 안정적이면서도 상부 하부가 조화를 이룹니다.
신라시대 문화재 특유의 단아함 속 화려함이 잘 드러나는 문화재이죠.
3. 국보 제18호,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의 건축물 중 가장 유명한 건물일 것입니다.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중수 기록을 통해서 최소 1200년대 중반에 지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안에 소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 무량수전은,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주심포 양식 건물입니다.
배흘림 기둥은 안정감을 가져다 주고 두공과 우주에 보이는 귀솟음 수법은 건물을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적 미를 갖춘 무량수전은 한국 건축 문화재의 조화미, 형태미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재라 할 수 있죠.
배흘림기둥이 상당히 인상적이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내부의 구조도 하나하나 신경을 쓴 면이 돋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불전이라 하면 건물 가운데에 불단을 놓고, 불상을 건물의 향(向)과 같게 합니다.
반면 무량수전은 불단을 건물 서쪽에 배치하고 불상이 동쪽을 향하게 구성했죠.
이는 아미타불이 서방의 극락세계에 있다는 내용을 반영하였기 때문입니다.
4. 국보 제19호, 조사당
조사당은 의상의 진영을 안치하고 있는 곳입니다.
우왕 3년인 1377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조사당은 주심포식 양식의 과도기에 지어진
흔적이 남은 건물입니다.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물 형태라고 볼 수도 있는 이 건물은
앞면은 3칸, 옆면은 1칸 크기의 조사당은 맞배지붕(옆에서 볼 때 사람 인 모양을 한 지붕)입니다.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배흘림 기둥은 약화된 모습을 띠죠.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이곳에는 또다른 유물인 조사당 벽화(국보 제46호)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원본은 보존을 위해 옮겨졌지만
오랜 기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벽화는 고려시대의 유일한 벽화이기에 그 가치를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문화재 외에도 수많은 문화재가 자리한 곳, 부석사는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꼭 가보길 추천하는
곳입니다. 부석사에 들려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우리 민족의 문화를
엿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