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트래킹을 목적으로 한 4박 5일 특별산행.
너무 너무 행복했고 기억에 영원히 남을 만 하여 그 동안의 기억들을 되살려 추억의 장을 기록합니다.
백두산 산행을 진행하고자 4월 초순부터 계획을 세우고 먼저 여행사를 섭외하였습니다. 무조건 하루는 백두산 서파에서 북파까지 종주산행, 그리고 다음날은 북파에서 천지를 감상하는 것으로 하고, 그 외 쇼핑을 넣지 말고 순수한 관광만으로 하는 조건의 일정을 제시하고 같은 조건이면 비용이 저렴하고 알찬 여행사를 선택하고자 했습니다.
광주의 여행사들과 서울의 여행사들을 함께 견주어 보는데 광주의 여행사들은 서울과 가격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곳은 쇼핑코스 세 곳을 정하고 그 중 한 곳 빠지는데 1인당 6만원이 추가된다는 계약 조건도 있습니다. 출발지도 청주공항, 김해공항, 인천공항 등 출발지가 각 각 다르나 같은 심양으로 가는데도 가격이 크게 20만원까지 차이가 납니다.
그 중 서울의 한 여행사와 가계약을 체결하고 인원을 모집하였습니다. 35명은 쉽게 채워집니다. 그러나 여행사에서 8월 12瞿壙� 같은 달 15일까지의 비행기 티켓을 확보하지 못하겠다 하여 부득이 가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여행사와 접촉을 하는데 이제 시간이 촉박한 지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부득히 일자를 하루 뒤로 밀춰 알아 보던 중 기간을 1일을 더 추가하여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4박 5일로 하되 먼저 가계약했던 여행사와 같은 비용에 맞춰주겠다는 여행사를 찾았습니다. 그것도 광주의 여행사로서 잘 아는 분입니다. 다음의 여러 기회가 생길것으로 믿고 해 주겠다 합니다. 어찌나 고맙던지요. 그러나 이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사정변경이 생기자 8월 16일부터 19일까지는 '을지훈련'기간이라 공무원들은 무조건 못 가게 되니 신청을 취소합니다. 모두 16명이 취소!!
난처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고 오랜 준비기간과 부푼 기대를 누그러뜨리며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추가 모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종 37명이 예약하였으나 한 분이 갑작스런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바람에 총 36명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두 산악회가 협력하여 가기 때문에 비용이 남게되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섭섭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원인이 되기도 할 것 같아 여행사에 지불할 비용과 유류할증료 및 광주에서 출발 당일 아침식사비용과 왕복 관광버스 비용만 포함하여 산출한 금 121만원으로 결정하였습니다.
2011. 8. 13.
차량은 이곳 저곳을 거치지 않고 광주비엔날레 주차장 한 곳에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06:30경 출발하여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인천공항 A카운터 앞에서 '하나투어'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모든 수속을 마치고 '대한한공'에 오르니 어라?? 내 좌석은 맨 앞자리인 비지니스석이네요. 여행사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 줬나 봅니다. 그런데 별로 편한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마음만 불편...인천공항에서 심양공항까지는 1시간 45분 소요.
심양공항 상공입니다. 구름사이로 중국 농촌풍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기내에서 본 심양공항 부근의 풍경
요녕성 심양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15:00경 중국의 시간으로 14:00경, 시차가 1시간이 발생합니다. 하늘에 한 번 떳다 내렸더니 한시간이 젊어져 버렸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현지 가이드를 만나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와 길림성 송강하로 이동합니다. 요녕성 심양공항에서 길림성 송강하까지는 소요시간이 8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도로 공사를 하는 곳이 많아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는 말도 덧 붙입니다. 버스는 대형이긴 하나 신차는 아닌 것이 확실한데 가이드는 이 정도의 차량은 중국에서 신차에 해당한다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으례 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일이 뒤에 발생합니다.
맨 앞좌석에 앉았더니 뒷 자리로 이동하랍니다. 그 이유를 묻자 앞좌석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하였더니 중국의 보험제도는 좌석까지 지정하여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운전석만 또는 앞좌석만이거나 뒷좌석만으로 나누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답니다. 보험료 절감을 위하여... 색다른 제도에 한 번 웃고...심양을 빠져 나가는데 일부 창문이 떨어져 나가고 없는 시내버스가 많은 사람들을 싣고 달리는 모습도 보이고, 중앙선을 무시한채 마음대로 주행하는 모습들도 흔치않게 보입니다.
심양에서 송강하로 가는 길 양 옆엔 가도 가도 옥수수 밭입니다. 가는 도중 휴게소는 단 한 군데. 일행 중 우리나라 돈을 받는지 이런 저런 물건을 사 보는데 우리 돈은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동 중 뒤가 급하면 차량을 세워 여자는 옥수수 밭으로 들어가고, 남자는 길 옆에서 해결을 하고 다시 출발.
가는 도중, 삼륜 택시와 화물차, 그리고 오토바위 같은 것에 인력거 처럼 만들어 사람을 운송하는 택시(??) 등이 많이 보이는데 또한 도요타, 혼다, 아우디 등 외제차량도 많이 보여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가는 도중 무덤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등소평이 죽기 전 중국 10억 인구가 모두 무덤을 만들면 머지않아 중국 전체가 무덤으로 뒤 덮일 것이다며 화장제도를 적극 도입하였으며, 등소평 자신 또한 내 뼈가루가 바다에 떨어지면 물고기가 먹어 살이찔 것이고, 들판으로 떨어지면 토지가 비옥해져 농사가 잘 되서 국민들에게 이로울 것이니 화장하여 하늘에 뿌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유언에 따라 장례가 치러졌다 합니다. 가슴 찡한 말입니다. 등소평은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에게 추앙받는 인물이라는데 그 이유가 충분히 헤아려 집니다. 땅덩어리가 중국의 한 쪽 점 심양의 땅 넓이 만큼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우리 남한의 경우는 대선에 나갈 뜻만 있어도 넓은 산을 사들여 거대한 묘지를 조성하기에 급급한데....
이후, 중국 사람들은 대부분 화장을 하게 되었고, 우리 조선족들 또한 비록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곳은 우리 조국임을 잊지 못하고 사는지라 한 줌 재가 되어 바람결에 날려서라도 조국 땅 근처로 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 토묘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스러운 사연입니다.
중국은 사유지라는 개념이 없답니다. 토지는 모두 국가 소유이고, 다만 국가에서 택지와 경작지를 인구수에 비례하여 분할한 후 예전에는 50년 단위였으나 지금은 30년 단위로 임대를 해 준답니다. 그리고 임대료로 수확물의 20 퍼센트를 국가에 팔도록 하였고, 국가는 이 곡물을 싼 가격이 아닌 비싼 가격에 사들여 그들이 안정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지금은 이 제도도 더욱 완화되어 농민들의 부담이 대폭 줄었으며, 이에 더하여 정부에서는 농민들에게 무료로 여러가지의 보장보험을 지원하여 준답니다.
제도가 무척 세심함에 놀라 "중국에는 거지가 없겠다" 하였더니 그렇지 않다네요. 거지가 농촌에는 없는데 도심에는 많답니다. 중국은 인구 억제정책으로 한 세대 한 자녀로 제한하고, 한 자녀만 주민등록을 할 수 있고, 주민등록을 등재한 자만이 정부의 보장을 받을 수 있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택지 분할은 물론 교육, 의료, 직업 등 제반 일체의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살 수 밖에 없는데 그 인구가 무려 10억 인구에 버금갈거라 추정한답니다. 한 자녀를 더 등록을 하려면 벌금 1천만원을 납부하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죽은 사람의 주민등록을 매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그 주민등록을 매수하여 살다가 돈을 주고 바꾸는 경우도 있답니다. 돈과 명예가 있다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는 나라로 고위층이 이동을 하면 고속도로를 전면 통제하는 것쯤도 쉽게 이루어 진답니다.
갑자기 주민등록이 되지 않은 중국인들이 갱단활동을 한다면 어떻게 검거하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겨우 몇 천원의 댓가를 받고 살인을 쉽게 하기도 한다는데 사회보장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고, 이러한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의 문제 또한 중국이 풀어야 할 심각한 사회문제인 듯 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들을 나누며 달리고 달리고 달리니 중국 시간으로 19:55분. 캄캄한 밤에 통화시에 다다릅니다. 일단 가던 길을 멈추고 저녁식사를 한 후 카운터를 나서는데 커피믹스가 보입니다. 당연히 제공도는 서비스 일것으로 생각하고 커피를 집으려 했더니 커피믹스 두 봉에 우리 돈으로 1천원. 써비스는 없습니다. 씁쓸한 기분으로 되놓고 나와 가이드가 가져온 생수 네 밖스를 차에 싣고 숙소가 있는 송강하로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중국에서의 음용수는 모두 가이드가 제공한 생수로 해결하였습니다.
송강하 숙소(1박)
다음날 01:00경 숙소 도착!!
장장 10시간에 거쳐 송강하의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숙소는 호텔이라고는 하나 우리나라의 호텔과 비교할 수는 없고, 이곳에 오기 전부터 숙박시설 등을 우리나라와 비교해선 안된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인지 생각보다는 깨끗합니다. 각 실마다 침대가 둘, 작은 샤워실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샤워기가 줄도 있어 끌어 쓸 수도 있었습니다.(2박 째 호텔은 샤워기가 벽면 부착식이었음). 호텔에는 당연히 1회용 치약 칫솔 및 면도기가 각 호실마다 비치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면도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카운터에서도 면도기가 없다하여 첫날은 같은 룸 메이트인 금강님의 면도기를 빌려 쓰고, 다음 날 부터는 카운터에서 받긴 하였으나 면도기의 성능이 어찌나 좋던지 두 번 밀때까지는 깍이더니 세 번째 밀때부터는 뽑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둘 째날!! (2011. 8. 14.)
04:30경 기상하여 05:30경 식당으로 이동하여 아침 식사를 마치고 06:30경 송강하를 출발. 2시간 정도 이도백하 서파산문으로 이동합니다. 식사는 당연히 중국식인데 독특한 향내음이 나는 음식에 익숙치 않아 식사를 제대로 못하여 힘들어 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그런대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들 고추장과 김치, 깻잎장아치, 소주 등 한국음식과 술을 가져와 먹고 마시기도 하였으나 나는 옷과 카메라 외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술을 마셔도 고량주... 더 많은 중국을 느끼고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서파산문
옛 고구려의 땅!!
그래서인지 중국 공안들이 한글로 표기된 프랑카드나 피켓 등을 펼치면 무조건 압수해 버립니다. 행여 '우리 땅'이라 주장하는 글일까봐 그런답니다.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으로서 여유가 없나 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산악회 프랑카드를 펼쳤다가 순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일이 꼬이면 공안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답니다. 중국인들은 프랑카드를 펼치고 사진을 마음대로 찍고 있어 그 광경을 가리키며 손짓으로 저긴 OK, 우린 NO? Why?? 해봤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아 서로 웃고만 말았습니다.
서파산문을 통과하여 입장하는데는 입장료와 버스 운송비를 포함하여 1인당 180원.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만 5천원 정도입니다. 현지 가이드 1명과 산악가이드 2명을 포함하여 총 39명이 입장하니까 우리가 지불한 돈은 1백 3십 6만원 정도. 여기에 산악가이드의 일당으로 지불되는 돈을 합하면??? 우리 땅으로 많은 돈을 챙긴다 싶습니다. 다음날도 북파산문 입장료와 버스비, 찝차 이용료 등 많은 돈을 주었고, 가는 곳 마다 입장료 또는 이용료가 있는데 1인당 최하 60원, 우리나라 돈으로 1만원에 가깝습니다. 백두산을 북한 땅으로 갈 수 있어 이런 많은 돈을 북한에 주면 아깝지나 않을 텐데 하는 말들이 오갑니다. 한 민족, 한 뿌리의 소중함이 여기서 새삼 더 긴밀하게 느껴집니다.
2일째인 오늘의 백두산 트래킹 코스는
서파산문 - 5호 경계비 - 마춘우 - 청석봉 - 백운봉 - 녹명봉 - 차일봉 - 용문봉 아래 재 - 옥벽폭포 - 온천지대로 거리는 15킬로미터 정도, 소요시간은 9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청석봉을 지나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트래킹 코스는 화원지대로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다들 풍경과 함께 기념사진들을 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덕분에 7시간 정도면 끝낼 줄 알았던 트래킹 소요시간이 9시간이나 소요되었습니다. 물론 고산인 관계로 조금만 스피드를 올려도 거칠게 숨이 차고, 근육의 힘도 떨어져 힘차게 차고 올라가 지질 않아 더뎌진 원인도 있습니다.
이곳은 자주 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번에도 마누나라의 눈치를 엄청 봤는데 언제 또 오겠다 하겠습니까. 평소 증명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 하지 않았는데 이번 만큼은 다르게 증명사진을 제법 찍었습니다. 기념하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일행들 또한 기념이 될 수 있도록 한장의 사진이라도 남겨주고 싶어서 자청하여 사진을 찍기를 권하였는데 어떤이는 싫다 한 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 장만이라도 찍어주고 싶다고 설득하여 찍어 줬으나 맘이 편치 많은 않습니다.
용문봉 아래
좌측 봉우리가 용문봉입니다. 용문봉 뒤로 하여 달문으로 이어진 트래킹 코스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소천지 방면으로 하산을 하였습니다. 달문에서 천지물가를 거닐어 보는 것은 내일 코스에 예정되어 있어서...
백두산은 해발 1,800미터 정도까지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패모양으로 완만힌 곡선을 그리며 부채살처럼 뻗어 내린 긴 능선들이 마치 초원을 방불케 합니다. 2천 7백미터가 넘는 산이 이리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초원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백두산이 그 만큼 광할하다는 것.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구름에 가린 천문봉
철벽봉과 천문봉이 살짝 보입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장백폭포
온천지대
트래킹을 마치고 이도백하로 이동. 이도백하에서 둘 째날의 밤을 보냅니다. 각 호실이 정해지고, 식사를 마치고 나와 전신맛사지를 받기 위해 숙소를 나섰습니다. 내겐 생전 첫 경험!! 어떻게 하는 것인지 상당한 호기심을 안고 들어 섰더니 여자 맛사지사들이 남자 한명씩을 선택하여 맛사지실로 안내합니다. 맛사지실은 7-8명 정도 수용할 수 있도록 침대가 놓여있고 한 명씩 달라 붙어 맛사지를 하는데....아고~~ 이게 뭐 좋다고... 뒤틀고 밟고 때리고.....
발 맛사지는 별도 1만원 추가!!
숙소로 돌아와 요산의 멋진 님들과 어울려 중국맥주를 마시며 오늘의 흥분을 나누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다른 방에서 술 한잔 하게 오라는 전화입니다. 요산님들의 양해를 구하고 이동.
술잔이 오가는데 이런 저런 서운한 말들도 나옵니다. 등반대장이 너무 화를 잘 낸다는 둥, 3박 4일 일정도 1백 3십만원을 넘게 받던데 우리는 4박 5일 인데도 1백 20만원 인 것은 싸구려 관광이기 때문이라는 등, 1백 2십만원을 받아도 많이 남을 것이라는 등...
그 말들이 그동안의 피로를 누적시켜 바윗덩이 처럼 짖눌러옵니다. 경비가 120만원인 것은 그동안 수 많은 여행사들과 접촉한 댓가이고, 3박 4일 일정으로 올 경우 일정에 맞춰 이동하기에 바빠 너무 힘들다 하여 하루 더 늘려 관광을 넣었지만 오히려 더 낮은 가격에 훨씬 좋은 조건으로 계약한 것임을 굳이 설명해야 하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하고 비용은 두 산악회가 함께한 관계로 불편한 오해를 없애고, 개인의 불필요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여행사에 줄 돈 외에 아침식사 한끼 비용과 왕복차비만 계산하여 남는 것이 없게 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는 동안 오늘 하루 백두산에서 받았던 행복이 자꾸 화산석처럼 부서져 떨어져 나갑니다.
셋 째날(2011. 8. 15)!!
05:30분 기상. 식사는 06:00부터. 그리고 출발은 07:30경.
오늘 트래킹 코스는
북파산문 - 찝차 이동 - 천문봉 - 달문(천지) - 장백폭포 - 온천지대 - 차량이동 - 소천지 - 녹연담입니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북파산문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습니다. 기상 상태로 보아 오늘은 햇볕을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 그러나 다들 어제의 충만한 행복으로 오늘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160대의 찝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천문봉을 오르내리는 모습도 하나의 볼거리입니다. 천문봉기상대 주차장에 내려서니 안개가 자욱하여 천천히 10분이면 오를 천문봉 산정도 보이질 않습니다. 많이 아쉽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천지의 모습은 또 다를텐데...
달문
천지의 평균수심은 213.3m, 최대깊이가 384m로 세계 최고 수심의 산상 호수로서 이곳 달문을 통하여 1일 유출되는 물의 양이 약 36만㎥(7월)에 이른다 하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산 꼭대기에 있는 천상호수가 어디에서 물을 얻어 세 개의 큰 강을 이루게 하는지 신비롭다는 생각.
가파른 능선엔 화산석이 불안정하게 널려있어 낙석방지를 위해 조심 조심 내려서면 저 장백폭포를 만들어 내는 물길을 건너야 합니다. 물은 어찌나 차던지 여유를 부릴수가 없습니다. 신발을 벗어 목에 걸고 미끄러 넘어지지 않도록 서로 손을 잡고 건너서 천지 물가에서 점심을 먹는데 다들 맛없어 못 먹겠다는 도시락 반찬들이 제법 맛있네요. ㅎㅎ 난 국제거지가 되도 굶어죽지는 않겠다 싶습니다.
천지에도 보트가 한대 띄워져 있습니다. 1인당 얼마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등반대장이 알아 봤나 봅니다. 한 번 타고 내려가자합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 또한 귀한 경험이다 싶어 그러자 하고 여유롭게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의견이 분분하여 조정이 필요하다고 내려오랍니다. 어디로 갈 것인가를 두고 갈등이 생겼는데 장백폭포로 내려가자는 분이 25명, 천문봉으로 오르자는 분이 9명. 서로 의견일치가 되지 않습니다. 원 계획은 천문봉으로 다시 올라 찦차로 내려가거나 용문봉으로 올라 온천지대로 하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장백폭포로 하산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장백폭포는 우리가 꼭 보고 싶은 곳이니 이 의견도 좋은데 문제는 장백폭포로 하산할 경우 1인당 통행료로 우리 돈 2만 5천원을 더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의견에 따라 코스를 둘로 나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산악가이드가 나눠서 이동하는 것을 반대하였나 봅니다. 어떤 이는 편한 코스로 내려가고 어떤 이는 힘든 코스로 가는 것이 싫어서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트래킹은 산악가이드를 반드시 붙여서 다녀야 하는 것이 원칙인지라 이들이 마다하니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숫자 많은 쪽으로 의견을 모으자고 설득해 봤으나 '왜 가이드에 휘둘리려고 하냐' '가이드가 돈 먹기 위해서 그런다'는 불평도 나오고, 장백폭포로 가면 돈은 누가 내 주냐며 버티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제 저녁 두 번째 부름으로 함께 한 자리에서 오간 말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오늘 코스는 장백폭포 쪽으로 통일해 버리자는 제안이 있었고, 이에 장백폭포로 하산하는 경우 개인 부담금이 발생하게 되므로 그러면 그 돈을 누가 내줄 것이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리되면 난감해 질 수 밖에 없으니 각자의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고 그에 따르겠다 하였었는데 그 때 함께 대화를 나눴던 그 분이 천문봉 코스를 고집하며 장백폭포로 내려가자는 말끝에 "그럼 그 돈은 누가 내 줄것이냐?" 며 함께 우려했던 말을 그대로 쏟아냅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울화통이 확 치밀어 오르는데...
결국, 환자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니까 소가 희생하기로 하고 장백폭포로 하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백폭포
이 좋은 장백폭포를 보지 않고 왔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꼬!!!
소천지
몸이 불편한 분이 있어 두 분이 천문봉을 함께 오르지 않고 온천욕을 하고 있겠다고 남은 지라 연락이 이루어 질 때까지 기다려 두분과 합류한 후 모두 셔틀버스를 타고 소천지로 이동하였습니다. 산문 안으로 들어서면 무조건 셔틀버스로 이동을 하여야지 걸어서 이동하는 것은 없습니다.
소천지는 들어 오는 물길도 나가는 물길도 없는데 항상 차고 넘치거나 마르는 일이 없이 일정량의 물을 담고 있답니다.
녹연담
셋 째날 숙소/통화시
이도백하에서 통화로 이동하는데 여수 순천 백두산악회 등반대장으로부터 문자가 옵니다.
"형님! 발 맛사지를 마치고 심양으로 이동 중입니다. 심양 도착시간이 02:00쯤이라네요. 피곤해 죽겠네요. 얼른 눈 좀 붙쳐야겠습니다"
ㅎㅎ 백두산악회는 3박 4일 일정으로 우리와 같은 날에 같은 백두산 코스와 일정으로 여수를 출발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늘려 관광코스를 더 넣었기 때문에 백두산 트래킹이 끝나자 마자 다시 긴 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하여야 하는 고생을 면하게 되었는데 정말 다행스러웠습니다.
넷 째날!! (2011.8.16.)
호텔에서 부페식 식사를 마치고 차에 오를 때까지도 제법 많은 비가 내립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관광일정이니 별로 아쉬울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출발
오늘 관광코스는
환도산성 - 고구려 유적지 - 압록강 등입니다.
환도산성 안내소 앞 냇물
비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환도산성에 도착하니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키 어렵습니다. 차에서 내려 올라가 봤자 산성은 보이지 않을 듯 하니, 급한 용무는 주변에서 스스로 해결하고 다시 차에 오릅니다.
우리가 탄 관광버스와 좌회전하던 차량과의 충돌사고 피해모습
환도산성으로 가는 도중 등반대장과 나눈 대화가 있었습니다. 이곳에 오니 사람이건 차량이건 교통법규를 너무 지키지 않는데 이상하게 사고 현장은 보이지 않는다. 참 대단한 나라다.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지고 채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직접 생생한 사고 순간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길림성집안시인민무장부' 앞 T자형 삼거리를 통과하려는데 좌회전 차량이 머뭇거림도 없이 교차로로 진입해 들어옵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관광버스가 경적을 울리면서 제동을 하며 좌측으로 핸들을 틀어 피하려 해 봤으나 이는 오히려 멈출 줄 모르고 덤비는 좌회전 차량의 측면 운전석 부분을 관광버스의 정면 부위로 충돌하는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바퀴는 떨어져 나가기 직전이고 차량 본체는 우로 밀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모습들도 우리에겐 낯설은 풍경이었습니다. 두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서로 고성을 주고 받으며 한바탕 소란이 일어 날 줄 알았는데 버스 운전자는 어디론가 계속 전화만 하고 있고, 짚차 운전자는 머리에서 열상으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데도 수건으로 피는 닦지 않고 파손된(폐차해야 될 듯 하였음) 차량 본네트만 닦고 있었습니다. 언뜻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지만 살펴보면 중국에서 주택이나 농지 등도 완전한 개인소유라 할 수 없으니 순수하게 개인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자동차가 아닌가 싶습니다. 따라서 순수 내 재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자동차가 폐차시켜야 될 정도로 부서져 버렸으니 그 충격의 정도가 얼마나 클지 그 심정이 가늠되며 마음이 짠해집니다.
그리고 출동한 경찰은 주변 교통정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간단하게 사진 찍고 사고조사서 작성한 후 두 운전자를 경찰서(공안)로 오라하고 현장을 떠나 버립니다. 각자 알아서 차량을 옮기고 난 후 비로소 교통이 원할해 졌습니다.
우리가 탓던 관광버스는 공안의 조사를 받기 위해 정비소에 차를 옮겨 세우고, 우리는 다른 차를 불러 이동을 하는데 우리 차 보다 훨씬 새차인 듯한 대형 버스가 들어옵니다.
앗싸~~ 오히려 잘 됐네!! 하는 생각으로 짐을 옮겨싣고 차에 오르는 순간, 숨이 컥 막히며 심한 두통이 발생합니다. 아~~ 가이드가 거짓말한 게 아니었구나!! 는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차량 내부는 때가 켜켜이 끼어 지저분하여 냄새도 심하고, 천장에서는 빗물이 떨어지는데 엉덩이를 편안하게 의자에 붙이지를 못하겠습니다. 의자에는 꼭 쥐벼룩이 있는 것 같아 몸이 근질 근질해지는 느낌. 때문에 우리 차를 그리워 하는데는 단 1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들 차가 왜이리 지저분하냐 불평을 하는데 운전기사가 우리말은 않하는데 우리말을 잘 알아 듣는 듯 하였습니다. 빗물이 떨어진다는 말에 얼른 수건을 가져가 닦아주고, 낌새가 안절부절 하는 느낌입니다.
장뇌삼 장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장뇌삼을 좋아해서 일까? 가는 곳 마다 제일 먼저 달려오는 장수가 장뇌삼 장수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문을 나서자 어디서 봤는지 금새 찾아와 "한 뿌리에 만원" "한 뿌리에 만원"하고 외치며 호객행위를 합니다. 그런데 3분 정도 흐르는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자 "두 뿌리에 만원"하고 외칩니다. 이에 곁에 있은 우리 일행들이 "에이~~ 세 뿌리에 만원해~~ "하자 "세 뿌리에 만원"하고 외치더니 나중에는 다섯 뿌리에 만원입니다. ㅋㅋ 그리고 차량이 출발 할때 즈음에 신흥님이 나머지 전부를 7만원에 샀던가?? 하여 모두에게 한 뿌리씩 돌렸습니다.
광개토태왕릉
광개토태왕릉에서 북녁의 산하가 보입니다.
주변의 집들은 광개토왕의 유지에 따라 왕릉과 비를 관리했던 촌락들입니다. 중국에서는 지붕을 보거나 무슨 농사를 짓는지만 보고도 우리 조선족이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답니다. 한족들은 대부분 옥수수 농사를 짓고 벼농사를 짓는 논이 있으면 우리 조선족이 사는 곳. 그리고 아래 양식의 팔작지붕의 집이 있으면 우리 조선족이 사는 집이랍니다. 한족의 집 지붕은 팔작지붕이 없습니다.
달리는 길 옆에는 주택들이 보이는데 폐가인 듯 하여 자세히 보면 빨래가 널려 있고, 창틀에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어 사람이 살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데 환경은 너무 좋지 않습니다. 밤이 되어도 집안에는 불빛이 보이질 않는데 전기를 아끼느라 그런답니다. 심지어는 커다란 어린이집도 비어 있는 줄 알 정도로... 전기료는 농촌이 도시보다 더 비싸답니다.
내리는 비에 압록강은 우리의 안타까운 마음보다 더 탁하였습니다. 넘치는 빗물에 죽은 돼지가 떠내려 오기도 하고... 그래도 그냥가기 아쉬워 가는 비를 맞으며 보트를 타고 압록강 수면을 달려 봤습니다. 보트에 타는 시간은 10분 정도. 요금은 우리 돈으로 1만원. 북한 땅으로는 공장과 긴 굴뚝도 보이고, 강 건너 길에는 자전거를 타고가는 아주머니의 모습, 걷고 있는 농부의 모습들이 보입니다. 소리쳐 불러도 보고 대화도 나눠보고 싶었지만 속절없을 뿐...
숙소로 이동 중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곳은 조선족 식당으로 하우스식 가옥입니다. 모든 음식이 한국식이었는데 특히 된장국이 일품입니다. 된장국만 세번을 추가시키고 닭볶음은 한 접시 추가하는데 1천원을 달라고 합니다. 음식이 맛있어서 술 생각이 더 하였는지 각자 술을 시켜 마시면서도 뒷말도 들려 옵니다. 술한병씩도 안 돌린다고... 아직도 많은 돈을 남길것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우리가 총 경비에서 5만원을 더 추가하였어도 결코 비싸다는 총평을 받지는 않았을 것인데 어차피 좋은 소리 못 들을 바에야 돈을 더 걷어 인심도 쓰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4박 호텔/심양
다섯째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니 우리나라 호떡처럼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늘여 겉에는 계란을 발라 구워서 익으면 한 쪽 곁을 찢어 그 속에 야채와 쏘세지를 넣어 파는데 한개에 4원 50전. 중국 사람들은 아침식사도 집에서 하지 않는답니다. 대부분 밖에서 사 먹는다는데 보고 있는 동안 계속 손님이 끊이질 않습니다. 소녀는 앳된 얼굴로 보아 부녀지간인 듯 합니다. 아마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사회에 뛰어 든 소녀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진학하기가 힘든데 중국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가 힘들답니다. 따라서 중학교에만 입학하면 마치 우리나라 고3 수험생처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머리 터지게 공부를 하는데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수는 50%정도 밖에 안된답니다. 따라서 나머지 50%는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데 미성년자라 취업하기가 어려워 식당 종업원 등 가벼운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 취업한답니다.
그래서 남자 아이의 경우 사람되라고 군대에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옛날에는 군대에 가는 것은 신분상승의 가장 좋은 기회여서 머리 좋은 사람만 군대에 갈 수 있었고, 군대에 지원하여 합격하면 동네 잔치를 벌여 환송회를 열어 주고, 동네 사람들이 돈을 걷어 금촉 만연필 등을 선물해 주기도 하였답니다. 군대가 그렇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군을 제대하면 공산당원증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취득하기 어려운 운전면허증을 주고,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시장 비서로 취직할 수 있으며, 그러다 줄을 잘서고 잘 풀리면 시장까지 할 수 있는 등 상당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렵게 대학을 나와 높은 지식을 얻고 있는 자들에 비해 너무 쉽게 많은 특혜를 준다는 비판에 밀려 많이 달라 졌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군에 입대하면 복무기간이 2년이면 20만원, 3년이면 30만원을 주는데 그 돈도 그대로 전부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고, 군 생활 중 잘못을 한 때 마다 1원씩 감하여 어떤 사람은 제대할 때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집에서 돈은 가져다 쓴 경우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군에 가려는 이유는 군에 가면 외국어도 가르치고, 컴퓨터도 배울 수 있으며, 운전면허증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험(우리나라의 검정고시 제도와 비슷한 것 같음)을 치러서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도 하고, 공산당원증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자녀들에겐 아직도 기회의 장이 되기 때문이랍니다.
공산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하는데 그 시험의 수준이 상당이 어려운데 군대만 제대하면 공산당원증이 주어지니 그것 만으로도 상당한 수혜인가 봅니다.
아침 옥수수는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지켜 보는 동안 손님 한 분 받지 못하고 결국 다른 자리로 이동을 합니다.
오늘은 여행 마지막날인 닷새째 되는 날!!
오후 비행기 시간까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침 한나절은 심양시 관광.
오늘 관광코스는 누루아치 청태조와 청태종등이 정사를 다스리며 세력을 확장하여 중국 대륙을 통일하였던 심양고궁과 청태종릉이 있는 청태소. 우리 버스는 사고 후 수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와 우리를 태우고 운행을 계속합니다.
중앙선도 필요 없습니다. 상대 차로에 차량이 오고 있는데도 오건 말건... 심지어는 주행차로가 막히자 중앙선을 넘어 3차로 중 두개의 차로까지 점령하여 운전하는 광경도 눈에 띕니다.
심양고궁
심양고궁은 청의 태조 누르하치가 1625년 요양에서 심양으로 천도하면서 만들기 시작해 제 2대황제인 태종 황타이지(皇太極)때 완성되었으며, 제3대 황제인 순치제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을 통일하고 북경으로 천도하기 까지 황궁의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중국에 현존하고 있는 양대 궁전건축군 중 하나로, 전체 부지면적이 6만 평방미터로 72만 펑방미터를 차지하고 있는 자금성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이지만 궁내의 건축물 보존이 매우 잘 되어있고, 심양고궁만의 특색을 갖고 있어 현재 심양에서는 가장 중요한 관광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입장료는 60원.
청태소
청태소 관람을 마치고 조선족타운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는데 이곳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들 하며 즐겁게 식사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곳이 제일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느낌의 차이는 향료가 가미된 중국음식을 먹던 중 우리 민족의 음식이라 길들여진 입맛이 있어 맛있다는 생각을 한 반면, 길들여진 맛이 있는데 그 맛에 못 미치니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식사 후 식당 앞에 펼쳐진 참깨 장수들이 인기입니다. 연변산 참깨가 품질이 좋다고 다들 하나씩 사들고 주섬 주섬 짐들을 챙겨 심양공항으로 이동. 드디어 인천행 대한항공에 몸을 싣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내 좌석은 비즈니스석!! 여행사에서 큰 인심을 쓴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인천공항!!
중국공항의 환경과는 차원이 다름이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비행기에서 공항 대합실로 이어지는 통로의 덥고 후덥지근한 공기와 시원하고 쾌적한 공기의 차이에서부터 여러 시설등... 이 좋은 인천공항을 외부 자본에 팔아 우선 챙기고 보자 서두르는 속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잠시...
우리나라는 중국 여행기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내렸다 합니다. 도착한 때도 비가 먼저 달려와 반기더니 광주까지 좇아 옵니다. 오는 도중 저녁식사는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광주에 일찍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23:00경이 경과하여 비엔날레 주차장에 도착. 이렇게 4박 5일의 일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첫댓글 다시금 4박5일 여행 한것같습니다 짝짝짝
자세한 설명도 좋았고요
어려운 문제도 있었지만 서로 양보하면서 잘 해결 되어서감사합니다
4박5일 아니 그동안 고생만으셧습니다
저에게는 또하나의 아름답고 멋진 추억이였습니다
다시한번 감쏴하고 수고 하셨습니다
넵. 정말 아름답고 멋진 추억이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님들과 함께해서 더욱 즐거웠구요.
이씨네 곁님께서는 몸이 좋아 지셨는지 궁금하네요.
함께 천지물에 손을 담가 봤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백두산 정기 듬뿍 받아왔으니 모든게 잘 풀리겠죠??
항상 좋은 날 되십시오.
염려 덕분에 좋아지셧습니다
와우~~멋쟁이 울 회장님 역쉬 최고최고!! 여행후기 재미나게 읽었네요. 면도기 스토리에서 빵~터지고 국제거지가 되어도 살아남으신다던 강력한 생존본능에 그만 빵빵~~터졌습니다. 혼자 신나게 웃다가 주위를 둘러봅니다. 누군가가 보고서 미쳤다 할까봐요. ㅋㅋㅋ 4박5일의 기억이 약간씩 짬뽕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풀어주시니 확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가슴 철렁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두루 평화롭고 만족스런 여행 되었습니다. 내년엔 장가계, 원가계, 천문산 코스 어떤가요?? 유명한 대협곡도 있다면서요?? ㅋㅋㅋ
ㅋㅋ 이번 여행기간 동안 울 허브향기님과 후리지아님이 있어 더 즐거웠어요.
내내 조미료같은 귀요운 짓... ㅎㅎ 담 여행 때도 꼭 같이 가게요.
회장님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갑니다. 고고씽!! ㅎㅎ
잘봤습니다. 15년전 백두산 생태조사하러갔다 8일간을 백두산을 뒤진적이있었는데 그때기억이 새록새록나는군요!
천지를 맑은모습으로 본 님들은 축복받은 분들이군요!
심양시내가 지금의 차들이 그땐 자전거행열이었는데~
하루하루가 변해가는 중국은 정령 공룡이라 할수밖에 없습니다.
잘보고갑니다.
정말, 중국의 역동적인 힘이 놀랍게 느껴진 여행이었습니다.
머잖아 세계속에 우뚝설 중국이 눈에 그려지더라구요.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역시 공명회장님 여행후기는 최고입니다
중국의 교통질서는 상상그이하였습니다 중앙선은 왜있는지가 궁금할정도였죠
우리도 4일째는 가이드맨트에 2일째타고다녀도 주유소한번 안가고 신기하다고 하자마자 그대로 서불드만요
택시를 두차례 나눠타고 다니는데 장난이 아니더군요 말그대로 제트키요 무법천지
150만원에 쇼핑3곳,그리고도 가는곳마다 추가금 해서 160만원에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백두산 천지를 최고의 날씨로 봤다는걸로 마음의보상을 받았죠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산이모운영진들께서 고생마니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백두산 트레킹을 하시거든 저도 데려가 주세여
4박 5일 저도 함께 다녀온 것 같은 생생한 설명 감사합니다.어찌나 부러운지....
회장님 사진과 구체적인 설명에마치 제가 백두산 다녀온듯합니다
많은 인원이 가셨는데 어찌 불평불만이 없겠습니까
각자 생각이 다를텐데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도 선진국이죠
여행후기 잘봤습니다
우여곡절끝에 무사히다녀와서 다행이라생각합니다리느라 여러가지로 피로가겹쳐입원까지
전광주도착담날부터 밀린업무에시
그래도 천지를 넘많이봐서 후회가없습니다
정말고생많으셨고 특히 맘고생넘많으셧습니다
혹 제가서운하셨더라도 이해해주시길
이씨네님이 서운하긴요.
함께 해서 좋았고, 힘이되었습니다. 진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