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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1월26일(日)雨雪
▲낙동정맥종주17구간(한무당재~아화고개)*52컷
해봉(21명)
제17구간 : 경북 영천시 고경면 북안면, 경주시 서면
♠참 고
▶영천시 북안면[北安面]
위치 경북 영천시 남동부에 있는 면
인구 5,891명(2001)
면적 71.17㎢
동쪽으로 경주시, 서쪽으로 대창면(大昌面)과 봉작동(鳳鵲洞)·영도동(永都洞),
남쪽으로 청도군, 북쪽으로 고경면(古鏡面)에 접한다. 12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 경계선에 구룡산(九龍山:675m)·사룡산(四龍山:685m) 등이 연봉을 이루나,
면 전체에 해발고도 200m 이하의 구릉성 야산이 분포하고, 구룡산 북쪽 기슭에
서 발원하는 북안천이 하류지역에 하안저지를 전개한다.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업면으로, 주곡농업 외에 특히 양잠업이 성하다.
경부고속도로와 군산~경주 간 국도가 동서로 가로질러 경주시·대구광역시 등
지와 연결된다.
문화재로는 박노계집판목(朴蘆溪集板木:경북유형문화재 68), 영천 임포리 봉수
(林浦里烽燧), 영천 도천리(道川里) 조개무지, 박인로 사당(朴仁老祠堂), 박인로
묘, 영천 유상리(柳上里)고분군 등이 있다.
▶경주시 서면(西面)
위치 : 경북 경주시 서면 아화리 359-2번지
서면은 경주시의 서부관문에 위치하여 영천시와 접하고 있으며 8개의 법정리,
13개 행정리,61개 반으로 인구 4,437명이며 면적은 52.86㎢이다.
경부고속도로.국도.지방도,중앙선철도가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
며 미곡 및 축산이 발달된 곳이며 포도,복숭아등 당도높은 과일이 많이 생산되
는 곳이기도 하다
○ 교통안내
경주시내에서 300번
시내버스 수시 운행(10분간격)
중앙선 철도 아화역
♥만불사[萬佛寺]
창건시기 : 1995년
소재지 : 경북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 산46
20세기에 설립된 현대 한국불교의 중심 도량이다.
1987년 서울, 부산, 대구에 포교원을 설립하였고, 1995년 사찰 설립을 완공하였다.
1993년에는 스리랑카에서 부처 진신사리 5과를 이운하였고, 노천아미타불을 점안
하였다. 불교 전파 외에 문화, 의료, 복지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대중불교, 현대불교의 활성화에 힘쓰며 무료 만발공양과 가람불사 실현에 끊임
없이 노력한 결과, 현재 만불회의 신도수는 전국 30만에 이른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로는 노천 아미타불을 비롯하여 국내 최대 법당전불인
삼존불,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 진신사리 5과와 보리수나무, 아미타 영천대불,
부도탑문 등이 있다.
사찰 주변에는 도계서원, 박노계집판목, 할매, 노계시비 등의 명소가 있다.
♧산행 코스 (17구간)
10시50분 한무당재
11시15분 316봉
11시38분 관산,첫조망
13시23분 관산385봉,식사
13시52분 관산393.5봉
15시08분 양계장,시설
15시36분 만불산
16시10분 애기지휴게소
총 5시간20분
♠사진은 오 지호 대원이 촬영했습니다.
♠ 참여 대원(21명)
대장 : 김성수, 하종관(후미담당)
강형태, 김윤근, 김두호, 남상기, 신철호, 오지호, 윤말순,
이승우, 이혜년, 이종원, 이진복, 조숙희, 최철식, 최금영.
*김영철, 권무길, 백운기, 송정환, 정흥식
☞☞☞☞ 지난해 4월, 백화산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경부고속도로상에 영천나들목
을 지나 건천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전면의 정상부분이 두부를 단칼에 잘라낸 듯이 밀
어버린 특이한 산이 보여 주위의 내노라하는 산꾼들에게 무슨 산이냐고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 이 없어 저 펑퍼짐한 정상이 어떨까하고 몹시 궁금했는데,
이번 낙동정맥을 종주를 하면서 단단한 홍역을 치루고 많은걸 체험하며 그 궁금증을
풀 줄은 미쳐 몰랐습니다.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오고 강원도와 전라도지방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비를 주룩주룩 맞으며 캠코더와 겨울장비를 배낭에 챙겨 넣어 집을 나섭니다.
눈을 기대하며 나선 등산객들로 우중의 시민회관 앞은 부산스럽고 버스 안에 오르니
뜻밖에 백두대간 종주 시에 알게 된 송정환님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이미 한차례 낙동정맥을 종주한 걸로 알고 있는데...
예상외로 적은 인원으로 출발하여 영락공원 입구에서 고정 멤버 외 강 부회장님이 동참
하여 5명이 오릅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16차 종주 비디오를 보며 달리는데 운전 중인 배기사가 전화를 받습니다.
한 직장의 동료 기사가 좀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그 전화를 받고 다른 동료들에게 연락을
해주며 그 충격에 운전을 제대로 할 것인가 은근히 걱정을 합니다.
언양휴게소에 들려 용무를 보고 다시 달리는 고속도로변이 하얀 눈으로 덮여있습니다.
건천 나들목을 빠져나가면서 장의버스 한대가 정차해 준비물을 옮겨 싣고 있어 묘한 생각
에 잠기는데 다시 배 기사에게 온 전화는 동료기사 사망은 오보이고 경상을 입었다는 소리
에 안도합니다.
아화초등학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져 한참을 달립니다.
마을 개척 당시 심실(深室)이라 하였고
임진왜란을 피해온 晋州河氏 경현(景賢)이란 선비가 골자기가 깊다하여 深谷이라 개칭한
심곡리를 거쳐 오른편으로 하얀 눈으로 덮인 심곡(深谷)저수지를 바라보며 달리다
회리의 S자 코스에서 마을버스가 빙판길에 꼼짝을 못하고 서있고 기사양반은 밖으로 나와
어딘가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서성이고 있습니다.
하 군을 비롯한 대원들이 무관심한 마을에 들어가 삽등을 빌려 흙 뿌리기 작업을 하는데
마을사람들과 마을버스기사는 계속 뒷짐만 지고 서 있을 뿐입니다.
흙이 잔뜩 뿌려지고 난 뒤 마을버스는 올라가고 우리 관광버스는 체인을 감고 출발합니다.
도대체 옛날의 마을 미풍양속인 울력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마을인심은 답답하면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듯 외지인에게 철저히 무관심입니다.
얼마가지 않아 마을버스가 정차해 있는 종점인 도리 2리에 도착합니다.
배기사는 더 이상 올라가면 되돌아올 수 없다며 버스는 차머리를 돌리고
30분 거리라며 이진복 대원과 강 대원을 제외한 19명이 비를 맞으며
상견례도 없이
10시24분, 한무당재를 향해 도보로 출발합니다.
도중에 가축운반 트럭이 임도로 진입하려다 빙판에 미끄러져 구난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을 촬영하며 승용차도 가볍게 오르내리는, 오히려 빙판도
없는 편안한 도로를 따라 올라
10시48분, 좌우 비탈에 눈이 쌓여있는 눈에 익은
한무당재에 당도합니다.
선두는 이미 좌측 옹벽 위의 정맥종주 길로 올랐고
후미담당 하 군에게 혹시
2주전에 잊어버렸든 스틱이 콘크리트 옹벽위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더니 역시나 였습니다.
10시49분, 이제 만불산 자락까지 우 영천시, 좌 경주시의
경계선을 따라갑니다.
눈 대신 가랑비는 계속 내리고 눈이 덮인 콘크리트 계단을 거쳐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서니 바로 무덤이 나타나고
오른편으로 꺾어져 가는데 한 줄로 ‘麗江李氏’무덤 등이
열지어 도열해 있습니다.
비는 계속 주적주적 내리고
눈과 낙엽과 흙이 뒤섞인
등산로는 많이 미끄럽지는 않지만
지대가 낮은 차가운 마을의 결빙을 생각하고
이 대원등이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어 함께 준비합니다.
11시3분, 좌로 작은 저수지가 보이고
11시7분, 첫 조망을 합니다.
하얀 눈을 덮어쓴 무덤을 지나
저벅저벅 반 눈길을 밟으며 비탈을 올라
11시15분, 316봉에 올라섭니다.
삼각점에 깃대가 서있고
‘1982.복구 경주412’라고 새겨 놓았습니다.
바쁘게 주변을 촬영하고 캠코더보호를 위해
우의 안에 넣습니다.
11시25분, 내림을 거쳐 밋밋한 작은 잘록이를 지나
11시36분, 잔솔 숲길과 소나무 숲을 올라가다
11시38분, 신라시대에 벼슬을 하는 사람이 쓰는 관[冠]과 같다고
하여 관산[冠山]이라
불리는 특이한 모양의 신비로운 관산을
나뭇가지 사이로 조망하며 캠코더에 담습니다.
11시48분, 네거리 잘록이를 지나
11시52분, 작은 언덕을 넘어서면서
연이은 무덤이 있는 지역을 내려갑니다.
이번에는 관산이
우측 나뭇가지사이로 보입니다.
11시55분, 잔솔 숲길에서 크게 우측으로 돌아가고
11시59분, 앞서가든 하 군이 오른편 숲 속으로 들어가 보고 나오는데
멧돼지가 팠는지 큰 구덩이가 보입니다.
12시4분, 왼편으로 지반이 찬 탓인가
유달리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무덤을 촬영하며가다
지온이 올라간 지대인지 눈안개가 뽀얗게 피워 오르는
신비한 광경을 캠코더에 담습니다.
12시14분, 관산은 왼편으로 더욱 가까이 조망됩니다.
12시25분, 더욱 가까이 닥아 온 관산을 촬영하며가다
좌로 저수지가 보이고
12시28분, 파평윤씨(坡平尹氏)무덤에 당도합니다.
눈비에 젖은 무덤을 촬영하고 무덤 위쪽으로 난
종주 길로 먼저 간 하 군과 이 대원이
이색적인 고사목 앞에서 모델로 한 장면,
촬영하라며 포즈를 잡습니다.
작은 무덤을 지나는 가 했더니
연이은 무덤이 나타나고
얕은 잘록이를 지나
가볍게 올라가
12시36분, 이제 관산 자락에 들어서는 모양입니다.
다시 잔솔 숲길로 들어가는데
조밀하게 앉아있는 작은 소나무가지에
솔방울이 포도송이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좁은 공간에 질식해 살수 없어요!”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생존을 위해,
종(種)의 연장을 위해
씨앗이라도 퍼뜨리겠다고
그렇게 솔방울을 터뜨리는 지혜를 발휘,
간벌을 해달라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쾌락만 생각하고
임신중절, 낙태 등으로 출산 급락, 자멸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는 걸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말없는 소나무에서 많은걸 배웁니다.
12시48분, 갈림길에서 우로 꺾어져 올라가다
12시51분, 다시 짧은 내리막을 탑니다.
12시57분, 얼룩진 눈옷을 입은 관산이
앞에 떡 버티고 앉아있습니다.
잠시 ‘강산에’시그널이 매달려있는 곳에서
캠코더로 촬영하는데 이제 비탈로 올라가는
이 대원과 하 대원의 모습이 잡히고
반 넘어 올라가고 있는 오 대원의 모습도
깨알처럼 보입니다.
3,4분을 적당한 경사로 올라가는데 위에서
하 대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남 선배님! 조심 하이소~ 대~기 미꺼럽 심더!”
지금까지 수없이 아이젠 사이에 낀 눈을 털며 온다고
신경을 섰습니다.
이제 아이젠 덕을 보는가 했는데
올라 갈수록 경사가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눈과 흙이 섞인 된비알길이 발목을 잡아
두어 번 심호흡을 하며
잠간씩 휴식을 취하며
잡목가지와 줄기를 잡으며 올라가는데
위에서 다시 하 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남 선배님! 조심 하이소~ 올라갈수록 더 위험 합니더!”
경사는 올라갈수록 S자 없이 직선에
발목까지 빠지는 미끄러운 된비알,
거의 코가 눈 덮인 땅에 닿으려 하고
잣지 미끄러지면 저 아래 골짝으로
한없이 굴러갈 상황입니다.
좌우에 잡목이라도 있으면 그걸 잡고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겠는데 그마저 없는 곳에서는
네발까지 동원, 계속 심호흡을 하며
짧은 휴식을 취합니다.
도중 촬영은 아예 단념하고
13시22분, 약20분간의 고투 끝에
오 대원을 비롯한 세 대원이 기다리고 있는
관산 385봉에 올라섭니다.
사방 운무와 잡목으로 가려 조망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폭이 6,7m 정도 되는 그저 지금까지 거쳐 왔든
평탄한 평지일 뿐인데 멀리서 보면
그 특이 한 모양으로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단 말인가.
먼저 올라왔든 오 대원이
“무덤에 삼각점이 있다 해서 몇 바퀴 둘러봤는데 보이지 않네요.”
합니다.
잡초와 눈으로 덮여있는 희미한 무덤이 있는데
삼각점은 보이지 않아 하 대원의 제의로
가랑비는 계속 내리고 앉을 곳이 없어 선체 점심식사를 합니다.
13시45분, 보온병의 따끈한 유자차로 몸을 대우고
남쪽으로 촬영하며 출발합니다.
눈이 덮여있는 왼편의 비탈을 끼고 가다
가벼운 오름에
13시50분, 먼저 간 대원들이 눈안개가 피워 오르는
또 다른 봉분 옆에 서있고
삼각점은 봉분남쪽
가장자리에 박혀있습니다.
여기가 관산(冠山)정상인 393.5봉.
콘크리트로 기초한 화강석 삼각점.
콘크리트에는 ‘1982’ 라고 써놓았습니다.
무덤의 후손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그 흔한 비석이 없는걸 보면 삼각점이 들어선 뒤에
무덤을 만든 것 같습니다.
주변을 빨리 촬영하고 세 사람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한데, 같은 고도인데 남향이어서 인가
내리막길은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S자를 그리며 내려 가는데
눈은 보이지 않고 낙엽과 흙이 뒤섞인 미끄러운 비탈길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왼편으로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는
심곡저수지가 보입니다.
고도가 높은데도 능선 길은 눈이 녹아있어 의아하게 생각하며
잘록이로 내려가는데 어럽쇼!
14시17분, 가볍게 올라가는 능선 길은
다시 하얀 눈으로 덮여있습니다.
버석 버석 눈을 밟으며, 눈이 녹아 낙엽과 흙,
눈이 범벅이 된 등산로를
한결같이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짧게 촬영하고 바쁘게 우의 안에 넣고
절벅절벅 녹아가는 눈을 밟으며 걸어갑니다.
14시29분, 무명봉 옆을 올라 좌로 내려서 가다
14시40분, 오른편으로 호화무덤을 구경하고 나오는
세 대원을 발견합니다.
3대를 걸쳐 내려오는 무덤인가 세 번째 단계에 석등에다
‘書記官密陽朴公諱光烈之墓’ 라고 음각한 상석이 놓였는데
왼편으로 높이 3m 가까이 되는 같은 이름의 석비까지 세워
놓았습니다.
앞으로 낙동정맥을 종주할 수많은 산꾼들이 지나칠 터인데
그때마다 한마디씩만 해도 귀가 얼마나 가려울까하고
그런 걸 고인과 유족들은 염두에 두었을까요?
호화무덤을 만들 때 개설해 놓았는지 임도가 계속 이어집니다.
14시50분, 일곱 무덤이 연이어 나타나고
14시54분, 임도에서 우측으로 빠져
잔솔 숲길로 들어갑니다.
두어 곳의 무덤을 지나
15시5분, 좌로 조망되면서 다시 그 아래에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
무덤천국입니다.
저만큼 대형양계장 시설물이 보입니다.
15시8분, 오른편으로 긴 양계장 나타나고
뒤돌아보니 저 멀리
눈안개구름으로 얼굴을 살짝 가린
지나온 관산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작별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넓은 양계단지에 닭이 있는 곳은 한곳의 일부분인데
그나마 판로가 시원치 않는지
계란 저장고에 달걀이 잔뜩 쌓여있습니다.
콘크리트 임도에서 비로소 아이젠을 벗습니다.
왼편으로 복숭아나무를 심어 놓은 과수원을 보며가다
뒤돌아 안개구름에 가린 관산과의 석별.
15시18분,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오른편으로 꺾어지는데
전면의 조망에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만불사의 유명한 거대한
황금빛 아미타불 입상을 발견합니다.
스리랑카에서 보리수와 부처님 진신사리5과를 모셔놓았다는
만불사는 보이지 않고
그 오른 편으로 우리들이 넘어야할 야트막한 만불산이 보입니다.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15시27분, 임도 우측 산비탈에 시그널이 달려있어
만불산으로 오릅니다.
완만한 오름을 거쳐
15시36분, 아무른 표시도 없는
잡목속의 밋밋한 정상을 넘어 내려가다
영천시와 경주시의 경계선과 해어지고
경주시에 들어섭니다.
15시43분, 전면에 시계가 트이면서 무한한 광명을 가진
즉 무량수(無量壽)·무량광(無量光)의 거대한 아미타불이
좀 더 가까이 보이지만
산꾼들을 외면하고 등만 보여줍니다.
이 광경을 촬영하고 코 아래는 무덤이 나타나는데
앞서가든 하 대원이 무전으로 독촉을 받았는지
좀 서둘러야겠다고 앞에서 소리칩니다.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오른편 비탈 아래로 공장지대가 나타나고
15시53분, ‘신라주공, 경작금지. 푯말을 거쳐
오른편으로 멀리 고지리(庫旨里)가 보입니다.
980년대에 개척, 마을의 형태가 창고형이라 해서
고(庫)마을이라 불렸으며, 마을 앞에 큰 바위 8개가
있다하여 팔암(八岩)이라고하는데,
경주(慶州)와 영천(永川)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하여
지경(地境)이라 불려지기도 합니다.
저만큼 하 대원이 멀리 아미타불의 옆모습을 보고
합장하며 머리를 숙입니다.
눈이 쌓인 등산로를 거쳐
15시58분, 좌로 꺾어져
소나무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16시4분, 절개지에서 왼편으로 빠져 내려가다
비탈길로 떨어지고
곧 골재야적장에 내려섭니다.
10여m 높이로 쌓아놓았는데 눈 덮인 골재를
운반 중인지 많이 파여 있습니다.
마침 중앙선에 무궁화호가
경적을 울리며 통과합니다.
야적 골재비탈을 타고 내려서니
곧 아스팔트 2차선 4번국도,
옛날 한해가 심하여 언덕에 불을 지르면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탔다하여
아화(阿火)란 명칭이 붙은 펑퍼짐한
아화리(阿火里)고개 길입니다.
16시10분, 머리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훔치며
좌측으로 지척의 ‘애기지 휴게소’ 도착.
5시간20분의 산행이 끝났는데
마중 나온 김 대장에게 선두는 몇 시에 도착했느냐고
물으니 15시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말한 것처럼
포도주를 숙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숙성도에 따라 맛이 다르듯
느림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향기로운 삶이라고 했지만
언제쯤 자연에 푹 빠져
낙동정맥상의 느긋한 산행을 해 보려나.
늦게 도착하는 네 대원을 위해 뒤늦게 마련한 라면과
소주 한잔으로 허기를 채우고 버스에 오르니
대원들은 집행부에서 준비한 외화 비디오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카바를 씌운 캠코더는 그렇게 비로부터 보호한다고 신경을 섰는데
빗물에 완전히 젖어있어 제대로 촬영되었는지 걱정하며
휴지를 빌려 닦습니다.
16시22분, 계속 부슬부슬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16시35분, 건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비에 얼룩진 차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오늘 17구간이 지금까지 낙동정맥 종주 길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선비의 관을 닮은 관산을 넘으면서
지난 역사 속의 우리도 한때 선비정신이 있어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의상의 의무를 잘 지키는
서구문명의 노블레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를
보여주었는데
오늘날의 일부 사회지도층의 뻔뻔스러운,
후안무치에 분노를 삼키고 한숨을 쉬며
17시27분, 비를 맞고 있는
부산T/G를 빠져나왔습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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