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시장 규모는 엄청나.”
우명호가 정색하고 말을 잇는다.
“은행에 있다 보면 고객들에 대한 정보가 빠른 편이지. 이 시장은 계속해서 커질 거다. 아마 5년은 이 성장세가 계속될 거야.”
그것은 서동수가 피부로 느끼고 있던 참이다. 1년 전만 해도 세계 시장을 무대로 전자제품을 팔던 영업팀장 아니었던가? 영업팀은 정보가 생명이다. 중국 시장 규모와 성장 가능성도 알고 있는 것이다. 오후 7시 반, 회사에서 퇴근한 서동수가 우명호와 함께 청양의 한국식당에서 오징어볶음으로 저녁을 먹고 있다. 추석 연휴 끝내고 중국에서 처음 만난 셈이다. 수저를 내려놓은 서동수가 넌지시 우명호를 보았다.
“네가 보기에 어느 사업이 유망할 것 같으냐?”
“그야 소비산업이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우명호가 말했다.
“유흥업도 좋고.”
“빌어먹을 자식.”
“룸살롱이 돈 벌기 좋지.”
우명호도 수저를 내려놓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사업 하려고 그래?”
“내가 중국에 그냥 온 것 같으냐?”
입맛을 다신 서동수가 의자에 등을 붙이고 말을 잇는다.
“파면되는 대신으로 난데없는 의류사업부 소속 공장 총무과장이 되어서 중국 땅으로 던져졌단 말이다.”
“…….”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왔을 것 같으냐?”
“인마, 그럼….”
“이곳에서 사업을 할 거다.”
“중국 시장이 크지만 만만하지가 않아. 유대인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곳이 중국이야.”
“그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지.”
“중국 상인은 유대인보다 더 지독하다는 말 못 들었어?”
“한국 상인은 어떻고?”
“이 자식이.”
입맛을 다신 우명호가 정색했다.
“무슨 사업을 하려는 거야?”
“몇 개 검토 중이야.”
“회사는?”
“결정이 되면 정리해야겠지.”
“자식, 회사 총무과장으로 기반이 굳어지는 것 같더니.”
“그런데 넌 언제 귀국하는 거야?”
“연장 신청을 했으니까 일 년쯤 더 근무하게 될 거다.”
“잘됐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이자 우명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야, 아서라. 나한테 사업자금 대출해 달라는 소리는 먹히지 않을 테니까.”
“딴 놈보다 수수료를 더 줄 테니까.”
“어림없는 소리 말아.”
“세탁소나 갈까?”
불쑥 서동수가 묻자 우명호는 몸을 굳혔다. 그러고는 입술만 달싹이며 묻는다.
“너 그렇게 당하고 또 가고 싶어?”
“당하기는? 스릴 만점이었지.”
우명호에게 윤지영, 본명 진희명으로부터 빠져나온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연락해 봐.”
서동수가 재촉하자 우명호는 핸드폰을 꺼내 들며 투덜거렸다.
“이 여편네가 지난번 사건으로 우리한테 삐친 모양이야. 요즘은 연락도 안 해.”
우명호를 시켜 전 선생을 보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버튼을 누른 우명호가 핸드폰을 귀에 붙이더니 곧 어깨를 부풀리며 말했다.
“나요, 우 사장. 추석 잘 지내셨어?”
서동수에게 눈을 끔벅여 보인 우명호가 말을 잇는다.
“누구 없어?”
세탁소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9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주인 메이는 무표정한 얼굴
“두 분이 기다리고 계세요.”
“벌써?”
놀란 우명호가 계단 밑에서 멈춰 섰다.
“이번에는 누구요?”
“짝퉁 사러 오신 사모님들요.”
칭다오의 짝퉁사랑선물
“이쪽은 서 사장님, 이쪽은 우 사장님.”
그렇게만 소개
“여긴 처음이시죠?”
이미 술상이 차려져 있었으므로 술잔을 든 서동수가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가 머리
“메이한테는 술값에다가 뚜쟁이 비용을 내셨겠지만 저한테는 안 주셔도 됩니다.”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서동수가 지그시 여자를 보았다.
“서로 즐기는 데 무슨 대가가 필요합니까? 저는 한 달 동안 굶었기 때문에 오늘 밤에 다섯 번은 할 겁니다.”
“아유, 죽겠네.”
그렇게 말을 받은 것은 앞쪽 여자다, 여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걔도 여러 달 굶었거든.”
“그럼 지금 하실까요?”
정색한 서동수가 여자한테 묻고 나서 머리를 돌려 우명호에게 말했다.
“야, 넌 옆방으로 가.”
“그러지.”
우명호가 엉거주춤 일어나 파트너를 보았다. 서동수의 기세에 휩쓸린 척 따르는 형국이라 안 되어도 상처를 덜 받는다. 그때 여자가 따라 일어서더니 서동수를 향해 다시 웃었다.
“서 사장은 러키가이야, 저 까탈스러운 여자의 마음에 들었다니.”
“야, 시끄러.”
옆쪽 여자가 눈을 흘겼으므로 여자는 입을 다물고는 우명호를 따라 나갔다. 방에 둘이 있게 되었을 때 서동수가 앉은 채로 바지 혁대를 푸는 시늉을 하면서 물었다.
“누님, 밑에만 벗읍시다.”
“자, 잠깐.”
눈을 크게 뜬 여자가 서동수의 팔을 잡았다. 여자한테서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베이지색 가을 점퍼에 같은 색 바지 차림이었는데 아랫배도 나오지 않았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여자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우리 이야기 좀 해, 서둘지 말고.”
“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정색한 서동수가 묻자 여자는 입술 끝으로 웃었다.
“그냥, 아무 이야기나, 막 그러기에는 너무 어색하잖아?”
그러자 서동수가 눈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누님, 그러다가 이게 죽는데요?”
“그러지마.”
아래쪽으로 엉겁결에 시선을 따라 내렸던 여자가 울상을 지었을 때 서동수의 욕정이 와락 치솟았다. 반발심, 또는 잔인함일 수도 있다. 상대가 강하다고 생각했다가 약점을 보였을 때 잔인하게 뭉개 버리고 싶은 가학성, 서동수는 여자의 팔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내렸다. 그러자 이미 성이 날 대로 난 남성
“누님, 바지만 벗으시죠.”
여자가 얼어붙은 듯 가만있었으므로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어색하시면 뒤에서 해드리죠.”
그때 여자가 일어섰다. 그러고는 서동수를 향해 머리를 저었는데 붉어진 얼굴
“못하겠어. 미안해.”
그때 서동수가 여자의 어깨
“그럼 내가 시켜드릴게.”
서동수는 어느덧 화가 울컥 솟아올랐기 때문에 손아귀에 힘이 실려졌다. 여자가 눈만 크게 떴지만 몸을 비틀지도, 입을 열지도 않는다. 서동수는 여자를 다시 의자에 밀어 앉혔다. 행동이 거칠어서 여자는 등을 소파에 부딪쳤다.
“이러지 마.”
다시 여자가 말했을 때 서동수는 바지를 잡았다. 옆구리 쪽 훅을 풀고 지퍼를 내릴 때 숙여진 머리가 여자의 귓불에 닿았다. 도톰한 귓불이다. 지퍼를 내린 서동수의 손목을 여자가 쥐었다. 그러나 약하다. 서동수가 여자의 귓불을 입술로 물면서 말했다.
“그냥 넣을 거야.”
다음 순간 서동수는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내렸다. 여자의 단화가 벗겨지면서 순식간에 하반신은 알몸이 되었다. 서동수는 소파 위로 여자를 밀어 눕혔다. 이제는 여자가 순순히 눕더니 다리
“자, 넣어.”
서동수가 남성을 붙이면서 말하자 여자는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이제 여자의 가쁜 숨결이 서동수의 목에 닿는다. 치켜뜬 두 눈에는 초점이 잡혀 있지 않았다. 여자가 남성을 동굴 끝에 서둘러 붙였을 때 서동수가 말했다.
“해달라고 해.”
그러자 여자가 두 손으로 서동수의 어깨를 쥐면서 말했다.
“해줘.”
다음 순간 서동수는 온몸이 뜨거운 불구덩이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는다. 그 불구덩이는 용암이 쏟아져 나오는 화산의 분화구였다. 입을 딱 벌린 여자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방안은 열기로 덥혀지기 시작했다. 두 몸의 사지가 빈틈없이 엉켰다가 풀어졌으며 낡은 소파는 부서질 듯이 삐걱거렸다. 서동수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열중했다. 여체는 신비롭다. 여자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신음이 터져 나왔는데 그것은 생(生)에 대한 탄성이나 같다. 같은 자세
“다 벗겨줘. 잠깐 쉬고, 응?”
상반신의 점퍼가 답답한 것이다. 서동수가 위에 앉은 채로 점퍼 지퍼를 내리고 벗겼더니 여자는 스웨터를, 브래지어까지 서둘러 떼어내듯이 벗어 던졌다. 그러자 여자의 눈부신 알몸이 펼쳐졌다. 그때 여자가 말했다.
“자기야, 천천히 해줘.”
서동수가 일어나 앉았을 때는 한 시간쯤이 지난 후였다. 주위는 조용했다. 짝을 이룬 후에는 각각 갈 길을 가는 터라 우명호도 일이 끝나면 혼자 돌아간다. 방안은 아직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 알몸이 된 여자는 점퍼로 하반신만 가린 채로 아직도 가쁜 숨을 뱉어내는 중이다. 상기된 얼굴
“누님, 나 갈게.”
여자가 눈을 뜨더니 초점이 잡힌 눈동자로 서동수를 보았다.
“응, 잠깐만.”
힘들게 상반신을 일으킨 여자의 젖가슴이 조금 늘어졌다. 그러나 탄력있는 몸매피부
“그런데 그냥 가도 돼?”
여자가 손으로 젖가슴을 가리면서 묻자 서동수는 피식 웃었다.
“그럼, 왜?”
“난 좀 주는 줄 알았는데.”
“난 그런 남자
“그래도 미안해서 어떻게.”
“아, 됐어. 난.”
주춤 말을 멈춘 서동수가 지그시 여자를 보았다. 아직 여자의 이름
“누님, 이름이 뭐야?”
“이희영이야.”
그러더니 무엇을 찾는 시늉을 했다.
“왜? 팬티 찾아?”
서동수가 묻자 여자는 머리
“아니, 내 가방
“가방은 왜?”
“내 운전면허증 보여주려고.”
“운전면허증은 왜?”
“내 이름이 진짜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나아 참.”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소파에 등을 붙였다. 지금 둘은 방 안쪽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하나는 입고 하나는 벗었다. 서동수는 다 입고 저고리만 남겨둔 반면 이희영은 점퍼로 아래쪽만 가린 상태다. 그때 이희영이 말했다.
“나, 정말 좋았어.”
“나도 그래, 누님.”
“언제 또 만나줄 거야?”
이희영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심호흡을 했다.
“누님, 이러고 다녀도 괜찮아?”
“나, 이혼했어.”
점퍼로 아랫도리를 여미면서 이희영이 말을 잇는다.
“자식 둘은 애 아빠가 키워, 일년에 한두 번씩만 만날 뿐이지.”
“…….”
“애 아빠가 다른 여자 생겨서 이혼한 거야. 난 이혼하면서 위자료 좀 받았고.”
“그만.”
손바닥을 펴보인 서동수가 이희영을 똑바로 보았다.
“누님, 그런 이야기 다른
“저기, 나는….”
“나 같은 놈 많아.”
눈을 치켜뜬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나보다 물건 더 크고 더 잘해 주는 놈 많다고. 그때마다 이렇게 감동해서 대문 열어주면 어떻게 해?”
그러고는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누님.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서 회포를 풀도록 하지.”
“정말?”
가라앉아 있던 이희영의 두 눈이 커졌고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고보니 이희영도 미인이다. 환한 얼굴이 아름다운 미인.
중국 땅에 제일 먼저 진출한 한국 기업군(群) 중 하나가 섬유산업일 것이다. 그러나 한·중 수교 20년이 지난 현재 노동집약적이며 부가가치가 적은 섬유산업은 경쟁력이 저하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임금과 원부자재 가격 인상, 중국 본토 제품의 질적 향상이 그 원인이다. 그러나 다 위기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출이 증가하고 기반을 굳힌 한국 섬유업체도 있다. 동양상사는 일찍부터 자사(自社) 브랜드를 개발, 전 세계에 수출했기 때문에 고가(高價)의 이미지시장성장매장공사
“갑자기 뵙자고 해서 놀라셨지요?”
커피잔을 든 한영복이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빙긋 웃었다.
“아뇨, 반가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따라 웃은 한영복의 얼굴
“제 소문 들으셨습니까?”
“예, 공장
그러자 한영복이 천천히 머리
“절반은 맞혔습니다. 그리고 절반은 지금까지 비밀로 감춰 두었지요.”
서동수가 잠자코 시선을 주었다. 오전에 갑자기 한영복의 전화
“그래서 내가 서 과장님을 뵙자고 한 겁니다.”
“저를 말씀입니까?”
얼굴을 굳힌 서동수가 똑바로 한영복을 보았다. 한영복은 중국에서 사업
“나는 서 과장님이 영업 출신이라는 걸 압니다.”
서동수는 호흡을 조정했다. 그렇다면 리베이트를 먹다가 이곳으로 좌천당한 것도 알 터였다. 한영복이 말을 이었다.
“전자
“자, 그럼.”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똑바로 한영복을 보았다.
“이제 말씀하시지요. 무슨 일입니까?”
“저하고 동업합시다.”
상반신을 기울인 한영복이 서동수를 마주 보았다.
“난 이제부터 중국 소비 시장에 뛰어들려고 합니다. 그것이 내가 감춰 둔 절반의 사업이지요.”
한영복이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그러려면 서 과장님 같은 인재
“도대체 어떤 일을 하실 건데요?”
서동수가 묻자 한영복은 심호흡부터 했다.
“동양섬유의 판매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겁니다. 먼저 섬유의 중급 브랜드 제품을 생산, 판매할 겁니다.”
“….”
“난 생산을 책임질 테니 서 과장께선 영업을 맡아 주십시오. 지분을 절반씩 갖는 동업제로 시작하십시다.”
“….”
“간쑤성 공장은 인도네시아로 옮겨 중급품 브랜드를 생산해서 들여오고 고급품은 한국에서 들여올 겁니다.”
“한국에서 말입니까?”
놀란 서동수가 묻자 한영복이 머리를 끄덕였다.
“동대문 시장에서, 거긴 무엇이든 만듭니다.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라벨만 붙이면 돼요.”
서동수는 심호흡을 했다. 자신은 섬유시장을 모르지만 한영복은 수십 번, 수년간 검토를 해왔을 터였다.
“능력 있는 사람도 많을 텐데 하필 저를.”
서동수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더니 한영복이 정색했다.
“나도 신중한 편입니다. 미안합니다만 서 과장님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았습니다.”
“….”
“그리고 서 과장님도 제2공장 총무과장으로 이 귀중한 시간을 보내실 작정은 아니지요?”
그 순간 서동수의 얼굴에서 쓴웃음이 번졌다.
“제가 허송세월하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사업을 하려면 저하고 하십시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한영복이 말을 이었다.
“난 자본금이 좀 있습니다. 서 과장님 투자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동수는 한영복의 얼굴에 진심이 배어져 나온 것을 보았다. 진심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날 밤, 한영복과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로 위스키를 한 병 가깝게 마시고 난 서동수는 12시가 다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어서 오세요.”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소파에 앉아 기다리던 조은희가 웃음 띤 얼굴로 맞는다. 규칙대로 조은희는 중국어를 한다. 서동수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조은희를 보면서 웃었다.
“당신을 보면 항상 자극을 받아.”
“좋은 현상이죠?”
방으로 따라 들어온 조은희한테서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향수다. 조은희는 이제 향수까지 뿌리고 있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색향(色香)이다. 옷장 앞에 선 서동수가 저고리를 벗고 조은희는 뒤에서 받는다. 그때 조은희가 말했다.
“안주인 행세는 안할 테니까 날 안아줘요.”
이것은 중국말이다. 그 순간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앞쪽을 향한 채로 빙그레 웃었다. 조은희는 점점 노골적이 되어 가지만 그와 반비례로 이쪽은 더 벽을 쌓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조은희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바지를 벗으면서 서동수가 말했다.
“그건 알아. 하지만 참고, 상상하는 자극도 만만치가 않지.”
조은희가 바지를 받으면서 손으로 슬쩍 서동수의 남성을 건드렸다가 놓았다. 이미 남성은 잔뜩 성이 나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벌써 몇 번 관계를 맺은 사이의 분위기죠.”
“하지만 안 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몸을 돌린 서동수가 조은희의 원피스를 들치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조은희의 원피스 안은 알몸이었기 때문이다. 짙은 숲과 선홍빛 동굴 입구까지 다 드러났다.
그때 서동수가 시선을 들고 조은희를 보았다. 조은희의 얼굴은 상기되었다. 마주 보는 눈동자 안으로 온몸이 빨려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서동수는 들쳤던 원피스를 내리면서 말했다.
“오늘은 그만.”
“또.”
쓴웃음을 지은 조은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선선히 들고 있던 바지를 옷장에 걸었다. 그렇게 오늘밤도 지나가는 것이다. 씻고 자리에 누운 서동수는 오늘 만난 한영복의 제의를 떠올린다. 한영복의 추측은 맞다. 의류공장 총무과장으로 보낼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중국으로 밀려 나올 적에도 기회를 찾을 작정이었다. 자신은 이미 동양그룹에서 낙인이 찍힌 인물이다. 아무리 공을 세운다고 해도 그 ‘전과’는 지워지지 않는다. 동양그룹에 몸담고 있는 한 숙명처럼 따라다닐 것이었다. 한영복은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투자하지 않아도 지분의 반을 준다는 조건이다. 더구나 한영복은 중국에서 20년간 경륜을 닦은데다 평가도 좋은 기업가인 것이다. 서동수는 문득 인생의 전환점이 자신도 모르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다음 날 오전, 회사에 출근한 서동수의 책상 앞으로 화란과 소천이 다가와 섰다.
“보스, 행사 출장 관계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화란이 영어로 말했다. 후원 사업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내일 본사의 사장이 중국을 방문, 현지에서 중국 측 고위 관리와 함께 학교 기공식을 거행할 예정이었다. 학교 건설을 맡을 회사는 바로 국제공사로 결정되었는데 리베이트 금액이 건설자금으로 된 셈이다. 곧 셋은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가 앉았다. 화란과 소천은 요즘 ‘행사’ 관계로 정신이 없다. 내일은 사장단과 함께 양천마을에 가야 한다. 화란이 입을 열었다.
“오늘 저 대신 소천이 양천마을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서동수는 잠자코 시선만 주었고 화란의 말이 이어졌다.
“전 여기서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소천은 이미 한사람 몫을 충분히 하고 있는 터라 서동수가 소천에게 말했다.
“현지에서 준비할 것 다 알고 있지?”
“네, 보스.”
그러면서 소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빠서 지금 출발해야겠어요.”
활기에 찬 소천의 모습을 본 서동수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소천이 회의실을 나갔을 때 서동수가 화란을 보았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화란이 말했다.
“내일 제 할아버지도 내빈으로 참석하세요. 그래서 모시고 가야겠어요.”
“그렇구나.”
정색한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사장단과 함께 모시고 갈까?”
“아녜요, 현 정부에서 차를 보내준다고 했어요.”
화란이 수줍게 웃었다.
“이래봬도 할아버진 군(軍) 원로시거든요.”
이번 후원사업도 화란의 할아버지 고향에서 시행되는 것이다.
“그럼 너도 내빈용 VIP 좌석에 앉겠구나.”
서동수가 말하자 화란이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보스, 오늘밤 시간 있으세요?”
“없어.”
“술 한잔 사주세요. 며칠간 행사 준비하느라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요?”
“행사 끝나고.”
“내일은 여유가 없어요, 보스.”
화란이 상반신을 비틀었는데 교태가 담뿍 실렸다. 그순간 서동수는 목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호텔 방문을 잠근 서동수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9시가 되어 가고 있다.
“저, 씻고 나올게요.”
방 안까지 아무 소리 안 하고 한 걸음쯤 뒤에서 따라온 화란이 비로소 말을 했다.
머리호텔가슴
“씻지 않으세요?”
시트 안으로 들어오면서 화란이 물었는데 얼굴어깨피부
“허니, 천천히, 시간 많아요.”
서동수는 화란의 두 다리허리
“허니, 키스해 줘요.”
화란이 헐떡이며 말했으므로 서동수는 얼굴을 들었다. 화란이 입을 벌린 채 서동수의 입술을 맞는다. 입이 부딪치자 금방 뜨거운 혀가 뽑혀지듯 나오더니 서동수의 입안에서 꿈틀거렸다. 서동수는 화란의 샘이 이미 흘러넘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보스, 사랑
잠깐 입을 뗀 화란이 말하더니 손으로 서동수의 남성
“허니, 해줘요, 어서.”
열에 뜬 화란은 ‘허니’ 또는 ‘보스’를 번갈아 외쳤는데 기준은 없다. 서동수는 잠자코 화란을 침대 위에 눕히고는 자세
거침없는 탄성이다. 서동수는 자신의 몸이 뜨거운 동굴 속으로 빨려들어간 느낌을 받는다. 어금니를 문 서동수는 끝까지 동굴 안으로 진입했고 곧 격렬한 반응을 받는다. 서동수는 이제 난폭하게 화란의 몸을 짓이겼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화란의 비명 같은 탄성이 쉴 새 없이 터지고 있다. 화란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미끈한 두 다리를 번쩍 치켜들었다가 허리를 비틀면서 서동수를 맞는다. 서동수는 머리를 숙여 화란에게 키스했다. 그러자 화란이 온몸으로 빈틈없이 엉켜 붙었다가 떨어진다.
“각서 가져왔지?”
자리에 앉자마자 서동수가 물었다. 이곳은 칭다오 시내의 중식당 ‘베이징’의 밀실 안이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이인섭이 쓴웃음을 지었다.
“가져왔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들고온 가방을 탁자 위에 놓았다.
“어디, 각서를 보자.”
“그럼 나도 가방 안을 봐도 되겠지요?”
서동수에게 똑바로 시선을 준 채로 이인섭이 되물었다. 전에는 ‘저도’ 했는데 이인섭은 분명하게 ‘나도’라고 자신을 칭했다. 이젠 너나 나나 대등한 입장이라는 표시다. 서동수는 각서를 펴고 읽는다.
“나, 이인섭은 20만 위안을 받는 조건으로 더 이상 서동수의 비리를 파헤치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이에 서명합니다.”
이렇게 써져 있다. 각서에서 시선을 뗀 서동수가 이인섭을 보았다. 이인섭은 1만 위안 뭉치를 세고 나서 머리를 들었다. 굳어진 표정이다.
“맞아?”
“예, 맞네요.”
방 안에 이인섭의 건조한 목소리가 울렸다. 가방 뚜껑을 닫고 제 의자 밑으로 내려놓은 이인섭이 다시 주머니에서 영수증을 꺼내 내밀었다.
“여기 영수증 있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영수증을 받아 쥐고 물었다.
“너, 이렇게 끝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나?”
“당신도 약점이 있으니까요.”
이인섭이 의자에 등을 붙이더니 피식 웃고 나서 말을 잇는다.
“같이 죽으면 당신 손해가 더 클 것이라고 계산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지그시 이인섭을 보았다.
“그것은 정확한 계산이야, 맞아.”
“20만 위안으로 당신이 회사를 그만둘 수 없을 테니까요. 그 열 배, 스무 배를 앞으로 더 챙길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도 맞아.”
“그럼 일어섭시다.”
하고 이인섭이 의자에 붙인 등을 떼었을 때 서동수가 말했다.
“넌 내 성격을 계산에 넣지 않았어.”
이인섭이 눈을 치켜떴을 때 서동수가 손바닥으로 손뼉을 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째 쳤을 때 방문이 열리더니 전 선생이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서동수가 말했을 때 이인섭이 눈을 치켜떴다. 서동수의 입에서 유창한 중국어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녹음하셨습니까?”
옆쪽으로 다가선 전 선생이 묻자 서동수는 가슴주머니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내 내밀었다.
“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손에 쥐고 있던 영수증과 각서를 다시 건네주었다.
“영수증, 각서입니다. 돈은 저기 가방에 담겨 있습니다.”
서동수가 눈으로 이인섭 의자 밑에 놓인 가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머리를 끄덕인 전 선생이 이인섭에게 다가가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너를 공갈 협박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여기 증거물이 다 있으니 공안에 가야겠다.”
“아니, 저는 그것이….”
이인섭의 얼굴은 하얗게 굳어져 있다. 그때 이인섭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한국어로 말했다.
“난 다 버리고 널 집어넣기로 했다. 넌 내 성격을 고려하지 않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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