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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시되는 SUV들에게 주행성능만큼 중요한 덕목은 넓은 공간이 주는 편의성이다.
'이동의 수단'에서 '이동하는 공간'으로의 진화, 바로 팰리세이드가 집중한 부분이다./ 글 류청희(자동차 평론가)
요즘 SUV에게는 넓은 공간과 편의성이 요구된다
직업 상, 차를 평가할 때에는 최대한 중립적 관점에서 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개인적 취향은 작고 잘 달리는 차를 좋아하는 부류다.
혈기왕성하던 시절만 해도 덩치 큰 차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크고 무거우면 둔하니까.
그러나 결혼해 아이가 생기고, 가족이 함께 움직일 일이 많아지면서 가족용 차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크는 동안 차를 몇 차례 바꾸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름의 기준도 생겼다.
많은 소비자들이 SUV를 찾는 이유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한다.
사실 지금의 SUV는 정통 SUV와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요즘 대다수 소비자가 원하는 이상적 SUV는 적당히 거친 길도 달려주면서 미니밴의 실내 공간과 세단의 안락함을 갖춘 차다.
크고 넉넉한 실내 공간에 여러 사람이 편하게 탈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좌석을 배치해 쓰임새를 넓힐 수 있으면 좋다.
네바퀴굴림 장치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일반 도로에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기능만 잘 갖춰져 있다면 말이다.
보기에도, 실제로도 큰 차체와 실내
팰리세이드는 큰 차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늘씬하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최근 선보인 현대차 팰리세이드를 보면 그런 흐름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일단 팰리세이드는 지금까지 현대차가 내놓은 SUV 중에서 가장 크다.
길이는 5미터에서, 너비는 2미터에서 손가락 한 마디 모자란 정도.
높이 역시 키가 178cm인 나보다 약간 작을 뿐이다.
국내 기준으로는 대형급에 해당하지만, 이 정도 크기의 차는 미국에서 미드사이즈(midsize) SUV로 분류된다.
이미 국내에도 해당 차급 차종이 몇 가지 팔리고 있는데,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크기가 비슷하다.
두 개의 커다란 덩어리로 이루어진 전형적 2박스 스타일 차체는 앞부분이 거의 수직에 가깝게 세워져 있고, 보닛이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앞 유리가 시작되는 부분까지 거의 평평하게 이어져서 우람한 느낌을 준다.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 수직 방향으로 뻗은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 차체 모서리에 길게 자리잡은 테일램프도 당당한 분위기를 내는 데 한몫 한다.
대시보드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라인은 실내를 더욱 넓게 느껴지게 만든다
문을 열고 차 안을 들여다보면 밖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실내가 좀 더 넉넉해 보인다.
실내 공간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디자인의 영향도 적지 않다.
차체에서 볼 수 있는 쭉쭉 뻗은 선과 담백한 면 구성이 실내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를 함께 감싸는 패널을 비롯해, 가로로 길게 뻗어 도어 트림으로 이어지는 대시보드의 디자인 요소들, 브릿지 타입 센터 콘솔과 전자식 변속 버튼은 시각적으로 탁 트인 느낌을 증폭시킨다.
보고 느끼기에 넉넉한 실내 공간에 풍요로운 느낌을 한층 더하는 것은 좌석이다.
여유 있는 크기에 부드러운 쿠션이 적당한 굴곡으로 몸을 감싸는 1열 좌석은 실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부분으로 꼽을 수 있다.
상위 트림인 프레스티지에 디자인 셀렉션을 선택했을 때 들어가는 나파 가죽 시트는 촉감도 훌륭하다.
차체 크기가 빚어낸 2열 및 3열 좌석의 안락함
안락한 2열 좌석은 중요한 손님이나 어른을 모시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7인승 모델에서는 좌우가 분리된 독립식 2열 좌석에서도 거의 비슷한 안락함을 경험할 수 있다.
세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8인승 모델에서도 부드러운 쿠션이 주는 포근한 느낌은 여전하다.
2열 좌석 슬라이딩(앞뒤 거리 조절)과 리클라이닝(등받이 각도 조절) 기능은 7인승과 8인승 모두 갖추고 있는데, 어느 쪽이든 관계없이 좌석을 최대한 앞으로 밀어도 발과 무릎 주변 공간이 넉넉하다.
실내 높이는 물론 길이도 충분해서, 어른 기준으로도 체형에 관계없이 쉽게 편안한 자세를 잡을 수 있다.
특히 7인승 모델의 2열 좌석은 (1열 좌석보다 크기가 약간 작고 조절 기능이 단순한 것을 빼면) 집안 어르신이나 직장 상사를 모시기에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풍요롭다.
팰리세이드의 3열은 결코 장식용이 아니다. 성인 두 명이 큰 불편 없이 앉아갈 수 있을 정도다
2열처럼 6:4 비율로 나뉘어진 3열 좌석은 다른 좌석에 비하면 중요도가 가장 낮지만,
팰리세이드에서는 오히려 가장 흥미로운 공간이다.
접이식 간이 좌석의 특성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심각할 만큼 비좁거나 불편하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
등받이 높이가 충분하고 좌석 쿠션도 앞좌석처럼 폭신해서, 한 차급 아래 7인승 SUV의 3열 좌석과 비교하면 공간과 편안함이 1.5배 정도는 높다.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을 만큼 뒤쪽도 여유가 있고, 2열 좌석과의 간격이 아주 좁지 않아서 성인도 앉을 수 있다.
바닥이 높아 무릎을 약간 굽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넉넉한 공간이 주는 혜택이 모든 좌석에 골고루 돌아가는 것과 함께 편리함도 더했다.
2열 좌석과 3열 좌석을 개별 조절하기가 쉽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3열 좌석이 있는 차라면 승하차 편의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 시트를 접고 펴는 기능에 치중하면 좌석의 안락함이 부족한 것이 보통인데, 팰리세이드는 기능과 안락함의 균형을 잘 찾았다.
2열 좌석의 바깥쪽 아래, 어깨 부분에는 원터치 스위치가 있다. 버튼을 한 번 누르면 2열 좌석이 앞으로 당겨지면서 고개를 숙인다. 3열의 승하차가 그만큼 편해진다
2열 좌석에 스마트 원터치 워크인 및 폴딩 스위치가 있어, 차 밖에서는 좌석 옆 아래,
3열 좌석에서는 어깨 부분에 있는 버튼을 한 번만 누르면 2열 좌석이 단번에 맨 앞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3열 좌석에 오르내릴 여유 공간이 생긴다.
물론 SUV인 만큼 차체 바닥이 높아서 승용차만큼 타고 내리기가 쉽지는 않지만, 문턱 위쪽을 계단식으로 만들고 3열 좌석 앞쪽 벽에 손잡이를 달아 불편함을 상쇄했다.
3열과 2열 역시 버튼 한 번 누르는 것으로 간단히 접고 펼 수 있다
프레스티지 트림에 패밀리 패키지 옵션을 더하면 파워 폴딩 기능이 추가되어 3열 좌석을 더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트렁크 벽에 있는 원터치 스위치로 간단히 3열 좌석을 접고 펼 수 있기 때문이다.
익스클루시브나 프레스티지 일반 모델에 적용되는 수동 폴딩 기능도 등받이에 있는 띠만 잡아당기면 된다.
미니밴의 장점을 결합한 수납공간과 편의장비
운전석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1열의 음성을 3열까지 쉽게 전달할 수 있다
수납공간과 편의장비는 미니밴의 장점을 그대로 차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후석 대화모드(익스클루시브 트림에서는 선택사항, 프레스티지 트림에서는 기본사항).
일부 미니밴에서 호평을 얻은 바 있는 기능이다.
길이 2미터가 넘는 차량의 실내에서는 1열 좌석과 3열 좌석 사이에 대화를 주고받기가 꽤 어려운데 이 기능은 마이크와 스피커를 이용해 1열과 3열 승객이 마치 인터폰을 사용하는 것처럼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오디오 소리를 1열에만 집중되도록 해 2, 3열 승객의 편안한 취침을 도울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팰리세이드에는 모든 모델에 후석 취침모드가 기본으로 들어갔다.
이 모드를 켜면 오디오 소리를 앞좌석 쪽으로만 내보내어, 뒷좌석에서 잠든 사람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어느 좌석이든 쾌적하게 공기가 조절되는 확산형 루프 에어 벤트, 2열과 3열에 네 개씩 마련된 대형 컵홀더와 두 개씩 있는 USB 충전 포트, 한 개씩 있는 12볼트 전원 소켓 등은 요즘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착실하게 반영한 배려다.
생활공간으로서의 자동차 실내를 디자인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느긋한 주행감
팰리세이드의 주행 감성은 여유롭다
달리는 느낌은 어떨까.
간단히 말하면 너그럽고 여유가 있다.
시승했던 2.2리터 202마력 디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는 같은 구성이 쓰인 싼타페보다 크고 무거운 차체를 끌기 때문에 시원한 느낌은 없지만 힘이 부족하지는 않다.
회전할 때의 반응이나 몸놀림도 큰 덩치를 생각하면 비교적 고르고 안정적이다.
실내로 전달되는 엔진 진동과 소음, 차체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잘 억제되어 있다.
팰리세이드는 한국 시장뿐 아니라 미국 시장도 노리고 있다
승차감에서는 자잘한 요철의 거친 느낌을 억지로 걸러내기보다 전체적인 노면의 흐름을 따라 느긋하게 충격을 흡수하는 특성이 보인다.
정통 SUV에서 느낄 수 있는 야성미와 함께 대륙적인 여유를 고루 갖췄다고나 할까.
한국과 더불어 팰리세이드의 중요한 시장인 미국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뿌리를 둔 브랜드나 미국 시장용으로 개발된 비슷한 성격의 차들에서도 종종 비슷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승차감은 운전자에게는 적당한 긴장감을 주지만 뒷좌석에 앉은 동승자들이 느끼기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기에, 탁 트인 고속도로를 따라 먼 거리를 달릴 때 가장 알맞다.
도심에서도 신호등 사이의 간격이 짧고 정체가 심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구간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차에 탄 사람들이 승차감의 거친 부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요즘 소비자들의 기대를 채우기에 충분한 차
팰리세이드는 당신만의 영역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지도 모른다
어쨌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팰리세이드가 쾌적한 차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쾌적함은 대부분 실내 공간에서 비롯된다.
큰 덩치에 어울리는 여유와 안락함, 차에 탄 사람들을 배려하는 풍부한 장비와 기술, 용도에 맞게 쉽고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좌석 배치, 편안한 고속도로 정속주행 특성. 이 모든 것이 골고루 어우러져 있다.
시승이 끝나고 며칠 뒤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을 방문했을 때, 전시된 팰리세이드 주변은 차를 살펴보는 소비자들로 가득했다.
그들 사이에 섞여 오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공간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요즘 소비자들이 SUV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글. 류청희 (자동차 평론가)
1996년부터 자동차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자동차 전문 글쟁이.
월간 <비테스> 편집장, 웹진 <오토뉴스코리아 닷컴> 발행인, 월간 <자동차생활>,
<모터매거진> 기자를 거쳐 현재 자동차 전문 필자 및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카북>(공역), < F1 디자인 사이언스 >를 번역했으며 그의 글을 묶은 매거진 총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