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은 오랜 시간 묵상하며 읽어야할 책이기에, 먼저 추천의 글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한편씩 사색하는 가운데 울림을 주는 글들을 정리할 것이다. 150편이므로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무궁한 세계를 거닐다
김기석/ 청파교회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충만과 공허, 의미와 무의미, 빛과 어둠이 수시로 갈마든다. 삶은 이런 두 계속 사이에 걸린 줄 위를 걷는 것 같다(796).
시편의 기도는 크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느껴질 때 터져나오는 감격과 환희의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숨어 계신다고 느낄 때 토로하는 안타까움과 탄식(796).
그리하여,
사람들은 기쁠 대도 슬플 때도 시편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길을 발견한다(797).
불확실성의 운명 속에 내던져진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운명 - 노래하고, 기도한다(796).
2019년 6월 12일(수)
'노래와 기도' -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죽음' 그래서 우리는 삶을 노래하고 때로는 죽음을 노래하고, 단 하나의 분명한 사실을 인식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다른 존재와 구별된다. 만일,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큰 고통 속에서 삶을 저주하며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죽음이 있으므로, 우리는 오늘 주어진 일상을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노래하고, 기도할 수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물론, 슬픔이 노래와 기쁨의 노래, 감사의 기도와 탄식의 기도가 교차하는 삶이지만, 노래와 기도는 인간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조사를 생략하고 읽을 때, 일상 언어라면 상황이 다르지만 시적인 언어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798).
푸른 산(을) 향해 눈을 돌리나니 / 주님의 도우심(을) 그리워하노라/ 만물(을) 지으신 야훼(께서는) 위대하셔라/ 내 영혼(이) 우러러 사모하나이다(42:1)
입을 열면 오해만 축적되고, 입 다물고 살아가니 번민은 가득하고 괴로움이 커져서, 이 세상에 외면 당한 이 맘을 누를 길이 없으니 주님 향해 끝애 입을 열어 여쭙니다(39:1~3).
회주지도 懷主之徒 = 믿는 이들 = 신앙인 =주님을 사모하는 이들, '품다, 사모하다'라는 뜻의 '懷'자에는 '따르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즉, 주님을 사모한다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800).
고난의 시간에 밝힌 등불, 꺼지지 않는구나 / 김민웅 목사, 경희대 교수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가장 낯선 것들과 하나가 되는 놀라움(802).
모든 고전은 인간이 고난을 겪으면서 당대와 격투해온 기록이자 지혜의 보고(802). - 그래서 시편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처지를 또렷하게 보게 된다(803). - 일상의 현실과 만나지 못하는 경전은...낡아빠진 책과 다를 바 없다.
누구나 잘 아는 곳을 연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편 1편과 23편은 고난을 이겨내는 시편의 정신이 극명하게 드러난 대표적인 경우
오경웅의 시편 번역을 읽는 중국정신은 자신의 역사와 히브리 역사가 맞닿는 동일한 공간, 동일한 시간의 차원에 들어가면서 시편 기자의 자리에 서게 한다(803).
자기의 삶, 그 일상의 현실과 만나지 못하는 성서읽기란 얼마나 허망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실에 가장 깊고 높은 것들이 담겨 있음을 번개처럼 일깨우는 것(804).
세계적 유래를 찾기에 그리 흔치 않는 번역
민영진.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오경웅과 장개석 - 1946년에 출간 / 번역과 검토
오경웅과 장개석이 시편 사역을 시도한 중요한 목표중 하나는 중국인들이 시편을 읽을 때...시편이 마치 중국 시인이 쓴 시처럼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808).
동양의 전통음계로 편곧된 히브리의 노래
법인/ 일지암 암주, 참여연대 공동대표
<리그베다> 하나의 진리를 가지고 현자들은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820).
사실 진리는 하나인데 그 표현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마하트마 간디 - 종교란 가지가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820).
종교사상의 근원은 자연이고, 자연은 모든 인위적인 행위를 부정하는 무위적 삶을 지향한다(822).
신영복 <강의> 중에서
자연이 최고의 질서이다. 최고의 질서란 그것의 상위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자연 이외의 어떠한 힘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연에 대해여 지시적 기능을 하는 어떠한 존재도 상상하지 않는다. 자연이란 본디부터 있는 것이며 어떠한 지시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것(self-so)이다. 글자 그대로 자연이며 그런 점에서 최고의 질서이다.
잔잔한 목가에서 비가를 넘어 찬가로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로고스=말씀=도
새롭게 음미하게 되는 시편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자신 안에 흐르는 동양적인 사유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수용될 수 있음을 확증하고 싶어서(830) - 송대선 목사
문은 도를 싣는다
오세종/ 기독교고전번역원 원장
히브리의 우물과 동양의 우물이 함께 하는 것 ,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지비는 그 맛이 다양하여 한없지 않을까?(832).
우리 겨레 개개인의 심성과 정서에는 오랜 세월 유전, 습합되어온 유불선 사상이 내재 되어 있다. 이러한 동양적 사유의 습성에 대해서 범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수용될 수 있음을 확증하고 싶어 했다(833).
시편으로 三通하다
이종록/ 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한 교수
삼통독서법 - 詩通 /心通/ 神通(834)
보다 풍요로운 하느님의 신비
정희수/ UMC위스콘신 연회감독
나는 동정녀 마리아의 품에 있는 하느님의 아들 아기가 계신 그리스도의 말구유 앞에 유교의 황금, 도교의 몰약과 불교의 유향을 안고 경배하러 가고 있다(오경웅-동서의 피안). 841.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은 신앙 밖의 일이 아니며, 내 삶의 바탕에 놓인 것들을 들여다보며 나를 발견하는 것 또한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라 여기게 되었다." 846 - 송대선의 해설 중에서
다시 한 번 벌거숭이 아이가 되어
한희철/ 정릉교회 목사
serendipity - 샘 키인 <춤추는 신>
: 우연한 것, 하찮은 것 속에 감추어진 보물을 찾아내는 눈 혹은 그런 능력
기독교가 아닌 동양문화와 사유를 간직한 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충분히 그리고 충만히 노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내게도 전해졌다(33).
5. 지혜로운 이들이 힘쓰는 바는 하느님 싫어하시는 것 끊어버리기라.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른 이를 성인이라 한다면, 수양함으로써 다다를 수 있는 인격체로소 유교적 선비가 지향할 인간의 포준은 군자다(40).
군자 = 덕 있는 사람 = 복있는 사람 = 의인
군자가 저어하는 바는 남의 평가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마음을 하늘에 비추어보며 그에 따를 뿐이다..그래서 그 마음에 부끄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멀리한다...그리하여 지혜로운 군자는 점점 더 마음 속 깇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뿌리가 깊어지니 자연스럽게 울창해져 결실은 풍성해 진다(40).
절개를 지키는 맑은 선비는 세상의 혼탁함 속에서 오히려 그 맑음이 드러난다(41).
하늘 아버지를 닮아야 제대로 된 자식이요 사람이다(41).
토라= 거룩한 도(聖道)
함영(涵泳) -단순하게 늘 잊지 않고 생각하여 입으로 외고 마음으로 사유한다는 것보다는 '늘 젖어든다'
순과 역의 노래
교만한 이는 하나님의 뜻을 굴레로 여기고 고삐로 여겨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내일을 알지 못하는 하루살이, 수레바퀴에 달려드는 사마귀, 불을 향해 날아가는 부나방, 깨어져 바스러지는 질그릇이다.
受命 = 受命於天 하늘의 명을 받았다.
삶이란, 생명이란,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명'은 목숨을 받은 이가 감당해야할 하늘의 뜻이기도 하다.
心悅誠服 - 즐거운 마음으로 성심을 다해 순종한다.
무력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면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굴복하는 것이지 마음으로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제3수 주님 의뢰하니 두려움 없네 恃主無恐
恃(맏을 시) - 우리는 일반적으로 믿는다고 할 때에 信을 사용하지만, 한문에는 믿음을 뜻하는 단어가 여럿이다.
특히 '시恃'는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뜻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어머니에 대한 믿음의 지평이 디를 수밖에 없다. - 자모의 자비로운 사랑과 용납해 주시는 한량없는 기대
생명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은혜는 멀리 있지 않다. 눕고 일어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은혜이며 돌보심이다.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발견하니 삶 전체가 은총으로 충만할 수밖에 없다.(49)
제4수 주님 의뢰함이 영원한 즐거움이라 侍主常樂
공정하신 주님께 호소하오니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소서.
주님 내 마음에 하늘 기쁨 채우시니 세상 기쁨 비할 바 없도다....
3편에서는 '하나님 의지하니 두려움 없다'고 노래했는데, 4편은 '하나님 의뢰하니 그 즐거움 영원하다'고 노래한다.
'시주상락' - 동학의 시천주 개념을 떠올린다. 성령, 내주하시는 하나님...
어리석은 자들은 는 앞의 즐거움을 좇는다.
깨어있는 마음은 중언부언하며 중심을 잃은 무리들의 기도와도 다르다. 세상의 즐거움과는 다른 내밀한 즐거움을 알게 되므로...시주상락이다.
제5수 악을 원수보듯 疾惡如수
새벽 기운 시작부터 주님을 찾사오니 새벽이라한들 무에 그리 이르겠습니까?(3)
소인배들 주 앞에서 어찌 오래 버티겠습니까?(6)
마음엔 독을 품고 목구멍은 무덤인 듯 썩어있는데 입가에는 꿀바른 듯 번들거립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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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원수처럼 여기려면 깨어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 악에 물들지 않는 것, 악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56)
6절에서, 선하신 하나님이 악을 미워하신다고 했을 때, 악인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행하는 악을 미워하신다는 것이며,
우리가 내 다른 이를 내 몸처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선함이 나에게도 있음이며, 그 사람이 가진 악이 내 안에도 있음을 안다는 의미다.(57)
- 이웃사랑에 대한 아주 중요한,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에 대한 근거가 되는 말씀이다.
제6수 참회의 노래(1) 근심과 슬픔
주님, 연약한 인생 불쌍히 여기사 쇠약한 이 몸 고쳐주소서.
시인의 항변 - 죽음의 땅에서는 주님을 기억할 수 없고, 찬양할 수도 없습니다.
연약함과 슬픔 중에서도 주님을 섬겼는데 그런 저를 버리시겠나이까? 그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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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하나님, 이제 나를 그만 혼내소서.
부디 그만 벌하소서...
내가 죽어, 좋을게 뭐겠습니까?
무덤에 묻혀서는 주님의 찬양대에서 노래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쳤습니다. 너무나 지쳤습니다....